궤도 너머 - 불확실한 세계를 돌파하는 과학의 태도
카밀라 팡 지음, 조은영 옮김 / 푸른숲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여덟 살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스물여섯 살에 ADHD 진단을 받은 생물화학자인 카밀라 팡이다. 카밀라 팡은 “자폐성 뇌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세상“이란 말을 한다. 카밀라 팡은 ADHD 뇌를 장착했다는 것은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집중하기라는 의미라고 말한다.(77 페이지) 카밀라 팡은 다른 생각들을 멈추고 한 곳을 명확하게 보는 일이 참 힘들지만 그것은 과학자로 생각하고 일하는 데 근본이 되는 요소라고 말한다. 카밀라 팡은 자신에게 과학은 영원한 안식처라 말한다. 카밀라 팡은 과학 이론과 법칙이 주는 확실성 속에서 달콤한 위안을 찾곤 했다. 나는 카밀라 팡의 태도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카밀라 팡이 과학과 맺은 관계는 진화했다. 세상에는 과학의 규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변칙, 예외, 이례가 수두룩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카밀라 팡은 과학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면서 더 많은 발견을 탐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더 넓게 그물을 던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물을 너무 넓게 던지면 자신이 무엇을 끌어당기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77 페이지) 카밀라 팡은 모든 것이 연결된 이 세상에 대해 말한다. 카밀라 팡은 과학은 혼돈 그 자체여서 더 흥미롭다고, 물론 과학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의 엄밀함과 지식, 기술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카밀라 팡은 실패에 쉽게 좌절하지 말고 자기의 아이디어와 지나치게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말한다. 


카밀라 팡에 의하면 과학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며 유연한 사고를 기르되 규율과 틀을 함께 제시하는 탐구 방법이다. 카밀라 팡은 자신을 신경 다양인이라 표현한다. 자신과 같은 뇌를 가진다는 것은 입력된 데이터와 세부 사항이 머릿속에서 영원히 회전하는 가운데 매일매일 자기가 본 바를 이해하려 애쓰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 말한다. 카밀라 팡은 관찰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예상에 기반해 가정하는 대신 실제로 일어난 일을 관찰한다는 과학의 기본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잉게 골드스타인, 마틴 골드스타인은 ”이 세상에 존재 가능한 사실은 그 수가 무한하므로 무엇은 중요하고 무엇은 중요하지 않을 듯하다는 개인의 느낌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란 말을 했다. 


과학자들이 관찰에 투영하는 선입견은 연구를 효과적으로 돕는 만큼이나 연구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지나치게 개방적인 자세와 선입견에 휘둘리는 자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라면 갈피를 잃을 가능성이 높고, 후자라면 선입견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카밀라 팡은 ”수학 법칙은 현실을 설명하기엔 확실하지 않고, 확실한 수학 법칙은 현실과 관련이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가장 좋아하는 과학 명언으로 꼽는다. 카밀라 팡은 어떤 종류든 암은 세포 구조, 분자, 화학 신호 물질이 이루는 복합물이라 말한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프랑스의 진화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콥의 말을 떠올렸다. 즉 인간은 핵산과 기억, 욕망과 단백질의 가공할 혼합물이라는 말이다. 


한 과학자는 연구란 불이 꺼진 방에서 문을 찾기 위해 벽을 더듬는 과정과 같다고 말한다. 마침내 문을 찾아내 열고 나가면 더 크고 더 어두운 방이 나타난다. 과학은 선입견들을 없애지 말고 조정하라고 말한다.(46 페이지) 카밀라 팡은 훌륭한 연구자는 고정성과 유연성 사이에서 기꺼이 외줄 타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모든 것에 열려 있을 때 수반되는 광범위한 가능성에 압도되지 않는 동시에 어떤 결정에 얼마만큼의 주의를 기울일지 유념해야만 비로소 관찰의 힘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과학자는 관찰과 배움, 그들이 발견한 것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품지만 첫 관찰의 씨앗을 수확해 더 크게 키울 시점을 미루지도 않는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카밀라 팡은 논리와 이성만이 과학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연구란 과거에 저지른 잘못, 시간을 낭비했다는 증거,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암시 등으로 자신을 매질하는 시도다. 과학은 찬란하게도 불확실한 세계다. 카밀라 팡은 종양(암)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양은 오래된 세포가 동일한 새 세포로 대체되는 선형적 패턴을 따르지 않고 조상 세포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각기 다른 경로로 진화해 자기만의 특성을 지닌 파생물이 된다. 이런 가지치기식 진화는 동일한 치료에 내성을 보이는 과정을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이론에 도전하고 기존 합의점이 제시하는 논리에 생긴 아주 작은 균열까지도 찾아내 설명하려 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자기 충족을 위한 일이고 중독 증상까지 일으키는 강박이다. 


카밀라 팡은 종양처럼 과학 연구 과정도 선형이 아니라 가지가 갈라지며 사방으로 뻗어나간다고 말한다. 가지치기식 진화설을 규명한 발단이 된 것은 실패한 예측이었다. 카밀라 팡은 눈앞의 증거들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틀렸음을 증명하다고 해서 서운해 하면 안 된다고 하며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이 아니라 과학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일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카밀라 팡은 과학에는 법칙과 확실성이 존재하지만 자유로운 사고 역시 필수라고 말한다. 카밀라 팡은 겸손은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증거 앞에서 기꺼이 방향을 바꿀 줄 아는 태도라 말한다. 카밀라 팡에 의하면 가설은 길잡이지만 완성되지 않은 지도다. 


카밀라 팡은 해결하려는 문제를 최대한 크게 부풀려 사방을 구석구석 뒤지고 난 뒤에야 어디에서 시작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카밀라 팡이 주문하는 균형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개방적인 자세와 선입견에 휘둘리는 자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카밀라 팡은 과학자들은 널리 적용할 만큼 일반적이면서도 본연의 의미를 잃지 않을 만큼 구체적인 해답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82 페이지) 그 끝이 시작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카밀라 팡은 데이터 랭글링(Data Wrangling)이란 말을 한다. 이는 분석에 부적합한 원시 데이터(raw data)를 수집, 정제, 결합, 변환하여 구조화된 형식으로 바꾸는 전처리 과정을 의미한다. 


최적 멈춤이란 의도한 결과를 달성할 기회를 최대화하는 동시에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최소화 하는 순간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카밀라 팡은 자신과 같은 사람은 발견한 바를 요약하거나 단순화하라는 요청을 받으면 뇌가 심각한 수준으로 정지 한다고 말한다. 과학자의 현실은 훨씬 엉망진창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단서를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자신이 가는 방향을 확신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의심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가설을 세웠다고 해서 이내 어디를 집중해서 파헤칠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프로젝트의 적절한 출발선에 도달하기까지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카밀라 팡은 가시적인 성취라는 보상이 즉각 주어지지 않아도 묵묵히 매진하는 이들이 과학의 돌파구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돌파구란 영어로 breakthrough다. 책의 원제가 [Breakthrough]다. 


카밀라 팡은 과학은 이성적인 추구인 동시에 감정적인 추구라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연구자들은 차갑고 딱딱한 데이터와 분투하는 동시에 자기 기분 상태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카밀라 팡은 연구 과정의 속성상 마지막에 발견된 사실이 논문의 시작을 얼마든지 바꿔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은 게걸음 같은 이상한 춤이다. 어떠한 과학연구도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가설, 발견, 이론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세계를 탐험하고 이해하려고 애써온 연속체의 일부다. 카밀라 팡은 과적합이란 말을 사용한다. 이는 특정한 한 곳에 집중된 아이디어는 다른 영역에 유용할 가능성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특수한 아이디어, 문제, 데이터 집합에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지나치게 세분화되면 다른 곳에는 전혀 적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과학은 누구도 들을 수 없고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 라디오 주파수와 다를 바 없다. 


과학자는 나무를 베어 길을 내야 하지만 자신이 중요한 나무를 베어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역시 알아야 한다. 또 결론이 너무 모호해서 쓸모없어지지 않도록 충분히 구체적이고 주목받을 만한 내용으로 다듬어야 한다. 카밀라 팡은 물론 과소적합도 경계한다. 과학이란 결국 데이터 수집이 아니라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과학의 역사는 처음에는 중요해 보였지만 결국 의미 없는 것으로 판명난 이상체, 탐구 될 가치는 있었으나 결국에는 어떤 결과도 끌어내지 못한 기이한 데이터, 대단한 결과가 탄생할 줄 알았지만 결국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발견들로 가득 차 있다. 카밀라 팡은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증거를 잘못 해석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야심찬 가설에 힘을 싣기 위해 증거를 다분히 의도적으로 잘 못 해석하는 일만이 연구자가 쉽게 빠지는 유일한 함정은 아니다. 


이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는 실제로 대단한 사실을 가리키는, 특히 현재 통용되는 중요한 과학적 합의가 잘못되었다고 암시하는 데이터를 보고도 믿지 않는 경우가 있다. 위대한 과학의 돌파구는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을 믿고 단단한 틀을 깨뜨리려는 충동과 똑같은 열망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배운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모든 가능한 결과를 떠올려 그것을 꼬고 빗으로 빗느라 길을 잃거나 마비가 될 정도로 고민해서도 안 된다.(131 페이지) 이는 앞서 이야기한 상반되는 두 행태 사이에서의 균형을 의미한다. 과학 연구에서 실수, 실패한 실험, 기각된 가설은 또 다른 엔진의 연료가 된다. 무엇이, 그리고 왜 작동하지 않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해결책이 작동하기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누구나 잘못된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나 그 현실을 피하기보다 끌어안고 나아가는 쪽이 더 생산적인 태도라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확실하다.(136 페이지) 삶에서 낯설고 어려운 일을 시도할 때 좋은 결정과 나쁜 결정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그 사이에서 선택지가 연속되거나 경로가 여러 방향으로 다양하게 갈라진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한 가지 사실은 실패란 어느 시점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며 그 때는 이것을 기꺼이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다.(149 페이지) 과학의 위대한 발견은 단일 사고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원래는 다른 목적으로 자아냈던 실타래를 수년 혹은 수십 년 뒤에 누군가 집어들어 다른 방향으로 풀어내며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려면 실패한 원인을 밝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성공했던 부분만 추려서 따로 살핀 다음 남은 과제를 다시 창의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때로 연구자는 고립되어 실험하지만 실제로 과학자들이 혼자서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현실에서 과학연구는 상호관계의 복잡한 그물로 발전한다. 과학자들은 함께 일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혹은 동일한 주제를 두고 독립적으로 일하기도 한다. 또한 학회에 참가해 서로의 연구를 듣고 이바지한다. 자신의 연구에 박차를 가할 신선한 통찰을 찾아 새로 출판된 연구를 열심히 파헤칠 때도 있다. 현실 속 과학은 헝클어진 머리의 과학 교수가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자기 실험실에서 홀로 분투하는 모습과는 정반대다. 때로 연구자는 고립되어 일하지만 실제로 과학자들이 혼자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카밀라 팡은 당신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그로부터 어떤 생각을 떠올리는지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는지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166 페이지)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프리슈는 우라늄의 핵이 실은 단단한 고체가 아니라 흔들거리는 통통한 빗방울 같아서 아주아주 약한 힘으로도 분해될 수 있다고 가정했다. 닐스 보어는 핵은 액체 방울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 물리학자들은 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기껏해야 양성자와 중성자 몇 개가 분리된다고 생각했다. 중성자처럼 작고 연약한 발사체가 핵 전체를 동강내기란 전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수영장에 한 사람이 뛰어들면 수영장의 물 전체가 흘러 넘칠 수 있다고 보는 것과 같았다.(170 페이지) 


카밀라 팡은 현실에서 약간의 마찰은 필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오히려 모두가 항상 같은 의견인 것이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과학은 혼자서 개척하고 씨름하는 일이 아니다. 더 많은 발견을 위해 함께 비옥한 토양을 파헤치는 일에 더 가깝다. 공동연구는 거의 언제나 바퀴를 부드럽게 널리는 윤활유이자 발전을 가져오는 촉매라고 말한다. 과학에서 협력은 서로 다른 유형의 과학자, 나아가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과학이 한데 모이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단일 경작으로 황폐해진 땅을 복원시켜야 하듯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생물 다양성이 필요하다. 카밀라 팡은 수개월이 지나고 또 수년이 지나서 돌아보면 자신을 신선한 질문과 사고방식으로 이끌었던 강연은 자기의 전공 분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주제였던 경우가 많았다고 말하는 신경과학자 로히어르 키비트의 말을 인용한다. 


카밀라 팡은 과학은 우리에게 자기가 몸담은 분야의 한계를 알려준다고 말한다, 진정한 팀워크는 비판할 줄 아는 친구들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진실을 위해 사랑의 채찍을 드는 셈이다.(193 페이지) 과학은 근본 개념을 증명하기 위해 길고 굴곡진 여정을 거친다.(197 페이지) 과학자는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에 의존한다. 카밀랄 팡은 스스로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든지 인내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도구라 말한다. 애초에 과학에서 무언가가 증명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도전이라 말한다.(204 페이지) 카밀라 팡은 증명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한 가지 문제는 그 속성상 끝이 없는 과정에서 최종을 암시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언젠가 반증되거나 대체된다. 또는 적어도 불완전하다고 밝혀진다. 보편, 법칙이라는 이름이 붙은 개념조차 적절한 때가 오면 그 어느 것도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과학자들은 아무리 덩치가 큰 이상체라도 예외 몇 개로 이론을 폐기하진 않는다. 과학자의 본능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팽개쳐버리지 않는다. 대개는 그 이례적인 발견을 정당화하고 특정 이론이나 법칙의 경계 안에서 이해되게끔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연구자들은 먼저 그들이 놓치고 있을 무언가를 가정한다. 존재가 밝혀지면 그 이상 현상은 설명해 줄 새로운 힘이나 변수 같은 요소 말이다. 새로운 발견이라는 유혹은 훌륭한 과학자들도 길을 헤매게 한다. 발견의 열망이 너무 커지면 실재하지 않는 존재까지 보게 된다. 신기루를 좇는 것이다. 


1964년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어느 강연에서 ”그 어떤 확실한 이론이라도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 이론이 옳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과학에서 통념이 원리, 이론, 법칙이라는 말로는 불려도 결코 증명이라고 불리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원리는 바뀔 수 있다. 이론은 오류로 증명될 수 있다. 법칙은 수정되거나 갱신될 수 있다. 그러나 증명은 절대적이고 최종적이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사람이 알겠지만 과학이란 절대적일 수도 최종적일 수도 없다.(215 페이지) 완벽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다. 끝없는 준비로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하다가는 평생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일단 시도해보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 일단 시작하고 나서 그때그때 배우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러한 태도는 특히 소외되는 상황에서 중요하다. 자신에 속한 업계나 커뮤니티의 틀에 자신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를 정당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만 하면서 세월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 당신 같은 사람도 그런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보여지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의심받는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하고 싶다면 언제까지고 초대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닥치고 뛰어드는 것만큼 최선의 준비는 없다.(216 페이지) 어떠한 과학 이론도 본질적으로는 판타지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과학 이론이란 특정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한 이상화된 판타지다. 과학자는 그 안에서 소설가가 등장인물과 줄거리로 그러하듯 요소들을 배열한다. 


이러한 그림 대부분에는 설득력을 가진 증거가 있고 판타지는 명료함을 달성하는 유용한 방법임을 증명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에는 그럴듯한 환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219 페이지) 증명을 향한 충동은 과학이라는 작업을 계속 유지시킨다. 그러나 그로 인해 연구자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가게 된다. 혹은 증명을 과도하게 추구하면서 균형감을 잃는다. 이는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경고다. 우리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쥔 듯 반짝이는 물체 앞에서 주위가 흐트러진다. 그러나 차를 빠르게 몰고 다닌다고 해서 남성성이 증명되지는 않고 Instagram 팔로워 수가 진짜 인기를 증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일이 우리를 의미 있는 목표로 이끌기보다 길을 잃게 할 때가 더 많다. 증명되지 않은 이론이라도 멋지고 유용할 수 있다. 


인생도 우리가 성공과 연결 짓는 사회적 지위라는 상징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충만할 수 있다. 과학은 너무 근시안적으로 집중하느라 진정으로 중요한 일을 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220 페이지) 증명이란 결정적이고 보편적이며 이론의 여지가 없는 진실을 암시한다. 이는 그 어떠한 과학의 원리도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다. 증명은 과학적 발견의 여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군더더기 없이 수월하게 진행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헛발질, 우회로, 막다른 길만 정신없이 이어지고 결국 새로운 세대에게 바통을 전해주는 일만이 유일한 결론일 뿐이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것 같은 성공에도 언제나 필수적인 고통의 서막이 있다. 우리는 과학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이론이 특정한 맥락에서 진실임은 증명할 수 있지만 그 이론이 교체하는 모든 맥락에서 사실임을 증명할 수는 없다. 


증명은 단일체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강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약한 거미집에 가깝다.(222 페이지) 책을 읽으며 공감을 많이 하게 된다. 깊고 넓게 보는 성숙함이 돋보인다. 하지만 허무하기도 하다. ”결국 새로운 세대에게 바통을 전해주는 일만이 유일한 결론일 뿐이다.“ 같은 글을 통해 느끼는 바이다. 카밀라 팡은 나를 위로한다. 이런 글을 통해서다. ”그러나 증명이 가진 찾기 어렵고 환상에 가까운 속성이 과학자로 하여금 모든 도구를 내려놓고 자포자기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실 증명은 과학에 존재하는 가장 크고 훌륭한 동기부여 중 하나다. 발견할 것, 해야 할 일이 항상 더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가 남았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발견은 언제나 열린 결말이다. 과학연구는 우리가 증명할 수 없는 것들, 어쩌면 영영 증명할 수 없는 것들 덕분에 계속해서 번성한다. 모든 답을 이미 다 알고 있다면 인생 그리고 과학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223 페이지) 


과학은 편향의 완벽한 해독제여야 한다. 우리는 냉정하게 객관을 실행해야 한다. 그게 카밀라 팡이 항상 과학을 사랑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법이었다. 과학의 차가운 확실성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느꼈던 가열된 혼돈에 대한 해독제였다.(225 페이지) 어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 역시 편향 없는 청정구역이 아니다. 파격적인 차트, 상세한 공식, 추상적인 언어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축구 경기 관람만큼 속세와 가까운 활동이다. 과학자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내고 싶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불과하다. 그들은 어떤 커다란 깨우침을 찾아내 중요한 발견을 하고, 논문을 쓰고, 승진하고, 상을 타고 어쩌면 세상을 조금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사람이다. 또한 과학자는 연구비를 주는 개인이나 기관, 다음 논문을 투고할 학술지, 그 분야 내 다른 이들의 연구 등에 영향 받기 쉽다.(227 페이지) 


카밀라 팡은 연구자는 분명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보거나 찾고 있기에 그들이 고려하지 않은 입력과 그들이 기대하지 않은 결과는 거부하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고 말한다.(228 페이지) 아주 중요한 말이다. 인간인 우리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찾는 경향이 있다. 과학 특유의 엄격함이 이를 막아 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숙련된 전문가들조차 그 함정에 빠진다. 과학자들은 관찰의 오류와 의심스러운 해석, 의도적으로 편향된 설계로 왜곡된 실험까지 다양한 결과를 낳는다. 편향은 늘 우리 주위에 있으므로 삶의 다른 영역과 비교해서 과학이라고 특별히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각자 편향을 품고 있다.


카밀라 팡은 박사과정은 매일 자기 분야에 관해, 자기 자신의 존재에 관해 묻는 것이 임무인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며 이론물리학자 김현철 교수가 말한 바를 생각했다. [우주의 중심으로 사는 법]에서 저자는 박사 학위 과정은 홀로 서는 기간이고 박사학위는 비로소 혼자서 연구할 수 있다고 인정해주는 자격증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카밀라 팡은 BIAS란 말을 만들었다. behave in alternative scenario란 말의 이니셜이다. 대체 시나리오에서의 행동을 의미하는 말이다. 편향은 맥락을 제공하고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그것은 곧 창의성과 독창성을 풍부하게 불러일으키는 힘이다. 아주 많은 위대한 과학자, 사업가, 발명가가 삶의 경험과 정신의 기질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가 성공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게 바로 편향 때문이며 그 편향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독특한 관점을 준다.(241 페이지) 카밀라 팡은 적어도 이론은 징검다리의 디딤돌이라고 말한다.(254 페이지) 물리학과 철학 사이의 변경에서 사람들은 정신을 뒤흔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과 싸운다. 이상하고 불안정한 공간에 들어가려면 먼저 우리가 만질 수 있는 편안한 담요를 걷어내야 한다. 과학의 상당 부분이 실험과 증거를 통해 그림을 완성하는 반면 이런 물리학의 이 분야는 현실을 갈갈이 찢는다. 그런 뒤 우리가 쌓아올린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에서 느슨한 실타래를 잡아당긴다. 그리고 그림 전체가 흐트러지는 모습을 관찰한다. 여기에서 과학자들은 저 바깥에 있는 것을 설명하는 현재의 개념이 현실의 진정한 본질을 비슷하게라도 반영하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는 과학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 질문을 던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당신이 이 세상에 대해서 이미 안다고 믿는 모든 것이 사실은 틀렸다면?(256 페이지) 


카밀라 팡은 파동 함수는 확률의 표현이라는 점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입자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위치를 말한다. 그것을 측정하면 그 확률은 확실성이 된다. 이는 양자 입자의 난해한 속성을 표현한다.(259 페이지) 숀 캐럴은 우리가 세상을 볼 때 보이는 것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다세계는 보편적 파동 함수라는 개념을 알기 쉽게 줄인 말이다.(265 페이지) 누구라고 상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브라이스 디윗(Bryce DeWitt)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 마지막 장인 9장 ‘상상; 한계를 넘어 새로운 현실을 설계하기‘에서 카밀라 팡은 양자역학의 다세계, 파동함수(붕괴)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해하지만 상상과 흥미를 찾아 새 길을 가게 하는 장이 아닐 수 없다. 


”상상력은 다른 아마도 더 나은 세상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미지를 개척하는 연구의 기본 신조어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보여주었듯이 때로 과학의 기본 기술은 이해에 방해가 된다. 합리적인 질서와 정제된 이론을 향한 갈망은 우리 우주에서 일어나는 규모의 일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그것은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제한된 구조를 강요한다. 이 때문에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지점에서 과학자를 비롯해 우리 모두 구속복을 벗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문제를 틀에 맞추려 하기보다 그 문제가 문제되지 않는 더 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한 모든 영광스러운 불확실성과 가능성을 편안하게 탐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본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카밀라 팡이 이야기한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만큼 심오하다는 생각을 한다. 결론부에서 카밀라 팡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커털린 커리코가 메신저 RNA를 연구하며 그랬듯이 다른 이들이 포기하라고 말할 때에도 자신의 아이디어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 진심으로 확신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큰 선의와 강력한 가설을 뒷받침할 좋은 증거가 있더라도 자신의 엄청난 아이디어가 쓸모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 오래 산 사람이 아닌데(카밀라 팡이 밝혔듯 31세다) 생각도, 글 솜씨도 대단하다. 거장을 연상하게 한다. 


카밀라 팡은 ”과학자는 끝없이 읽어야 하는 방대한 논문, 파헤쳐야 할 무한한 자료, 조율해야 할 수많은 인간관계에 둘러싸여 살아간다.”고 말한다.(277 페이지)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 나는 책을 많이 읽고 특히 과학책 읽기에 정성을 기울이기에 과학자는 아니지만 그 구도적 자세는 통한다 생각했다. 나는 물론 과학자가 아니다. 카밀라 팡은 추구하던 일에서 성공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과학은 혼자서는 그 어디에도 쉽게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과학자 성향이 아닌 결정적인 이유는 조율, 소통, 협업에 거의 제로에 가까운 점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 읽는 면에서 나는 과학자적 사람이라 생각한다.


카밀라 팡이 말한 여러 점에서의 균형을 내 읽기, 생각, 쓰기에 적용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카밀라 팡은 빠르게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조급한 사람들은 노벨상이 대개 수상자가 학계에서 은퇴하고서도 한참 후에 수여된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기를 바란다는 말을 한다. 카밀라 팡의 대단한 독서량에 경의를 표한다. “꿈을 추구하되 쉽게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지 말아라. 통념에 도전하되 먼저 자기가 깨부수려는 규칙을 완벽하게 이해하라.”(284 페이지) 


카밀라 팡은 단순화는 과정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고 고된 작업에 대한 보상이라 말한다. 나는 글을 쉽게 쓰는 것도 단순화라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과정을 이해하고 난 뒤 취하는 간결한 단순함이어야 한다. 이에 카밀라 팡은 편집자들이 저자들에게 책을 길게 쓴다고 무조건 잘 쓴 원고라 말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고 말한다. 단 벽돌책도 쓰고 짧은 책을 써야 할 것이다. 카밀라 팡은 기후변화 해결에도 단순화, 덜어내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버지니아 대학교 공학 및 건축학 교수 레이디 클로츠는 학생들에게 “세상에는 타당한 질문이 무한히 존재하고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무한정 있지만 과학자와 연구자의 수는 무한하지 않다”고 말한다고 한다. 이를 나의 책읽기에 전용하고 싶다. 세상에는 매력적인 책이 무한히 존재하고 내가 모르는 것들도 무한정 있지만 내 시간과 체력은 무한하지 않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밀라 팡은 [궤도 너머]에서 진정한 팀워크는 비판할 줄 아는 친구들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진실을 위해 사랑의 채찍을 드는 셈이다. 이 문장을 접하며 자신의 단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그리하여 반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친구를 위해 비판하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자신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사람을 진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궤도 너머]라는 책의 원제가 마음에 든다. 원제는 [Breakthrough]. 이는 돌파구(를 찾다)란 의미다. 물론 궤도 너머라는 말도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실험실 지구 - 스티븐 슈나이더가 들려주는 기후 변화의 과학 사이언스 마스터스 10
스티븐 H.슈나이더 지음, 임태훈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책이 적어도 몇몇 독자들에게는 지구에 대한 지식을 더욱 추구하려는 동기를 유발하고, 거의 모든 이들에게는 지구 시스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하도록 해주지 않을까, 희망한다는 스티븐 슈나이더(Stephen Schneider; 1945-2010)의 책이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환경 생물학 지구 변화(environmental biology and global change) 교수를 역임한 저자는 고체 지구가 공기와 물 그리고 생물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는 지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의 경험만으로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현상의 모든 범위를 샅샅이 조망할 수 없다. 우리의 개인적인 척도는 너무 제한적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풍부한 다양성에 대해 지각의 창을 열어젖히기 위해서는 더욱 큰 공동체의 관찰과 추정을 필요로 한다. 세상은 분명 커다란 규모의 관점과 작은 규모의 관점을 모두 필요로 한다. 21세기 환경 문제는 단순히 어떤 지방이나 지역의 규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로 전 세계적인 규모로 나타난다는 특성이 있다. 또한 훨씬 더 심각하고 오래 지속되고 어떻게 되돌릴 수조차 없는 결과까지 나타날 수 있다. 시행착오를 통해 가르침을 얻는다는 식은 이제 더 이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저자는 유기체와 무기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듯 지구 화학과 생물학 지질학과 기후학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후와 생명체의 그늘진 미래를 살피기 전에 우선 몸을 돌려 우리의 생물 지리학적인 뿌리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필수적이리라고 말한다. 젊은 지구가 최초로 생명을 잉태했던 시대, 머나먼 과거의 시생대로 말이다. 저자는 반드시 방문하고 싶은 특별히 흥미를 끄는 시기를 생명 탄생의 시대 즉 약 35억 년 전의 시생대라고 말한다. 당시에는 산소가 있긴 했지만 그 양은 현재 약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산소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지구에 가장 먼저 나타난 기체는 수소와 헬륨이다. 35억 년 전에는 태양이 지금보다 더 작았다. 태양은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는 핵융합 반응을 거치며 점점 커지고 또 밝아졌음을 생각해보라. 희미한 원시 태양의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메탄과 암모니아라는 두 기체가 지구 대기의 하층부에서 적외선 복사를 차단하는 데 매우 탁월한 효과를 갖고 있으며 시생대에는 이 두 기체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부족한 태양열을 보충해서 온난한 기후를 유지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원시 지구에서 메테인은 주로 물과 철 및 마그네슘이 풍부한 암석이 반응하는 사문암화 작용과 같은 비생물학적 열수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사문암화 작용이란 지구 맨틀의 철·마그네슘이 풍부한 초염기성 암석(감람석 등)이 물과 반응하는 변성·열수 작용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감람석, 휘석 같은 1차 광물이 사문암으로 변하며 열을 발생시키고 암석의 부피를 증가시키며 수소 및 메테인 가스를 방출한다. 


태양이 커진 상태에서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 가스를 상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칼슘, 마그네슘, 규산염 같은 광물들이 대기의 탄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고 칼슘의 탄산염인 석회암, 마그네슘의 탄산염인 돌로마이트 같은 퇴적암에 탄소를 붙잡아둔다.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태양 광도가 커짐에 따라 시생대의 대기 중에 있던 높은 수준의 이산화탄소가 제거되었다는 이론도 있다.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서 이산화탄소와 물을 탄수화물과 산소로 바꾸는 과정을 광합성이라 한다. 탄수화물과 산소가 결합해서 열을 방출하고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호흡이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석탄 덩어리를 태우면서 화석의 유기물 속에 붙들려 있는 공룡시대의 이산화탄소와 태양열을 소생시키고 있다. 지구과학자들은 바다에 있던 대부분의 환원되어 있는 광물이 소모된 약 20억 년 전부터 대기에 많은 양의 산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대사 작용을 진행시킬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산소를 필요로 하는 새롭게 진화한 생물체들의 생태학적 자리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지구의 대기는 산소가 충분히 만들어진 뒤에야 생물이 육지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하는 오존을 만들 수 있었다. 대기 중에 산소와 오존이 존재한 지난 10억 년 정도의 기간 안에 원핵 생물에서 단세포의 진핵 생물로, 그리고 다시 다세포의 후생동물로의 빠른 진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나는 변화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관심을 끄는 것은 탄소의 순환이다. 탄소는 현재 대기 속에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아주 적은 양(0.035 퍼센트)이 들어 있고 해양과 퇴적물, 암석들에는 이산화탄소나 다른 형태로 훨씬 더 많은 양이 존재한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대기에 존재하는 미량 기체다. 이는 현재 이산화탄소의 양이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 7500억 톤의 대기 탄소가 대기의 열 균형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큰 편이다. 이산화탄소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산화탄소가 대부분의 태양 복사 에너지는 통과시키는 반면 대부분의 적외선 복사 에너지는 흡수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구에서 복사되는 열의 일부를 차단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차단되지 않은 지구 복사열은 대기를 통해 우주로 탈출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산화탄소는 온실 기체다. 대기 속에는 강력한 온실 효과를 내는 다른 미량 기체들이 있다. 대기 중에서 이들의 농도는 증가하였다. 그중에서도 메테인이 유명하다. 메테인의 양은 산업혁명 이후 약 150%나 증가했다. 메테인은 동물과 세균이 만들어내는데 채광이나 경작 같은 인간 활동에서 나온 오염물질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일산화이질소의 양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질소 비료의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기후학자, 진화 생태학자, 경제학자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는 빠르고 정확한 모형이다. 이 일은 방정식을 풀고 지구관측 시스템 예를 들면 인공위성에서 들어온 자료를 처리하고 개념을 발전시키고 모형 작업을 시험하는 빠른 대형 컴퓨터의 발달이 있기까지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다. 사실 현대의 슈퍼컴퓨터가 나오기까지는 1960년대의 대학과 대기업에서 사용한 그 당시로는 상당히 비싼 계산기계조차 너무 느려서 계산을 충분히 할 수 없었다. 대기의 역사가 현재 대기의 실제적인 모형으로 작용했는데 이는 지질학자들의 동일과정설이라는 견해와 견줄 수 있다.


루이스 프라이 리처드슨은 일기예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 놓았다. 그것은 바로 닮은 꼴 방식의 일기도 작성이 아닌 물리법칙에 기초한 수학적 모형이었다. 모형 제작의 이점은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실행할 수 없는 실험들을 수행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후의 시뮬레이션을 위해서 모형을 만드는 사람은 기후 시스템의 구성요소에 무엇을 포함시켜야 할지, 포함시킬 변수들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장기간에 걸친 일련의 빙기와 간빙기를 시뮬레이션하기로 했다면 지난 수백만 년 동안의 기후 시스템의 상호작용한 주요 요소들이 미친 영향을 분명하게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생물은 기후에 영향을 주므로 역시 포함시켜야 한다. 이렇게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하위 시스템은 모형의 내적 구성요소를 이룬다. 한편 일주일과 같이 매우 짧은 기간에 일어난 기상 현상만을 모형화하려 한다면 단기간에는 거의 변화가 없는 빙하, 심해, 지형. 숲과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모두 무시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모형화한 기후 시스템의 외적 구성요소로 할 수 있다. 


지질학의 역사를 통해 자연계에서 일어난 이런 행성 규모의 실험 중에서 그 어느 것도 현재 진행중인 인간이 이야기한 전 세계적인 변화의 실험과 정확하게 필적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예측이 올바르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모두 현재의 예측이 최소한 상당히 그럴듯하다는 암시를 주는 많은 정황적인 증거를 보태고 있다. 저자는 이 점은 지구의 생태계와 우리의 운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미래의 기후변화에 대한 엄밀한 예측을 위해서는 육지와 바다, 얼음 속으로 파고들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지질학적, 고기후학적, 고생태학적 기록을 들춰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고 말한다.


불행히도 일부의 근시안적인 정치적 이해관계가 이런 일을 정략적인 것으로 생각해서 난해한 것처럼 보이는 이런 작업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91 페이지) 우리가 이런 시험의 목적을 위해 갖고 있는 최고의 물리적 실험실은 유리와 강철로 세운 연구실이 아니라 지구 자체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지구의 오랜 옛 시절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다.(94 페이지) 과학자들은 언제나 변화 뒤에 숨어 있는 원인을 찾는다. 원인이 확실하다면 변화와 요동을 구별할 수도 있다. 과거의 기후는 상당히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빙기도 있었고 빙하가 없는 시기가 수천만 년 동안 지속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대기에 산소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던 시기도 10억 년 이상이나 된다. 오늘날과 비교할 때 대륙들은 다른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의 양도, 대기의 조성도 달랐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규모의 변화를 나타내는 자연의 실험이 있었다. 많은 경우 이런 변화는 향후 수십년 동안 인간이 어떤 일을 함으로써 대기의 화학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자연적인 변화의 속도는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인간이 자연에 강제한 것에 비해 지극히 완만했다. 


기후를 예측하기 위해 우리는 도구를 확인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기후변화를 강요하는 요인 즉 기후 강제 요인이 어떤 것들인지 확인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96, 97 페이지) 열을 가진 모든 물체는 복사 에너지를 방출한다. 지구는 절대온도 255K(- 18 ℃) 정도 되는 흑체의 총복사 에너지량에 필적하는 복사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지구 표면의 공기의 평균 온도는 287K(14 ℃)로 지구의 흑체 온도에 비해 32 ℃ 정도 따뜻하다. 따뜻한 표면 공기 온도와 지구의 복사 등가온도 간의 32 ℃ 차이가 바로 그 유명한 온실효과에 의한 것이다.(118 페이지) 


대기는 온실 효과를 통해 태양 복사 에너지의 적지 않은 부분을 지구의 표면까지 투과시키고 그 뒤에는 지표면과 낮은 대기에서 나온 위를 향한 지구의 적외선 복사를 많은 부분 차단한다. 정확하게는 도중에서 가로 채 낮은 에너지로 재복사한다. 아래쪽을 향한 재복사는 지표면의 온난화를 더욱 강화시켜 32 °C의 자연적인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는 사변적인 이론이 아니라 충분히 양해 되고 완전히 검증된 자연현상이다.(119 페이지) 


자연계의 온실 효과는 분명히 과학적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되었다. 지금까지 기후와 생물의 공진화를 진행시켜온 자연의 온난화를 설명해주고 있다. 인간이 자연계의 온실 효과를 확대하는 일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120 페이지) 


저자는 정치가들은 자신의 선거구민들의 인식에 반응하는 데는 탁월한 재간을 보인다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의견을 전단할 때 특히 그렇다. 우리가 정치 지도자들을 다그쳐 창조성을 갖고 그 중에서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북돋울 장기적 해결책을 마련하고 중국인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서 그들이 계획하고 있는 비효율적인 석탄 이용을 개선시키며,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사람들의 급속한 삼림 벌채 계획을 바꾸어놓도록 조치할 수 있게 만든다면 정치가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여러분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알 수 있도록 하자. 우리가 침묵한다면 특수한 이해당사자들이 보낸 팩스만 통과될 것이다. 역시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아니 최선이 이것이다.


지구 화학과 생물학 지질학과 기후학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저자의 기후와 생물의 공진화란 말로 수렴하는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상북도립 영양 공공도서관 인장이 찍힌 책 한 권이 내게 있다. 29년 전인 1997년 발간된 스티븐 슈나이더(Stephen H Schneider; 1945- 2010)[실험실 지구]란 책이다. 몇 단계 기증을 거쳐 나에게까지 온 책이다.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지난 해 여름 연천군 백학면 광장애서(廣場愛書) 서점의 기증 도서 가판대를 통해서였다. 소설, , 수필, 잡지, 역사서 등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하드 커버 서적이 눈에 띄었는데 놀랍게도 기후과학 책이었다. 저자는 2007년 정치인인 엘 고어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분이다.

 

2021년 일본계 미국인 기후학자 마나베 슈쿠로, 독일의 해양학자 클라우스 하셀만, 이탈리아 물리학자 조르주 파리시 등이 기후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같은 과학자인 스티븐 슈나이어는 평화상을 받은 이유가 궁금하다. 슈나이더는 유기체와 무기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듯 지구 화학, 생물학, 지질학, 기후학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독일 기후학자 프란츠 마울스하겐의 [꿰뚫는 기후의 역사], 마나베 슈쿠로, 앤서니 브로콜리의 [기후의 과학], 스티븐 포더의 [엘리멘탈]을 연이어 읽고 서평을 썼는데 곧 [실험실 지구]도 완독하고 서평까지 써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티븐 포더의 [엘리멘탈]을 읽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카밀라 팡의 [궤도 너머]를 읽는다. [엘리멘탈]의 번역자는 물리학 전공자 김은영이고 [궤도 너머]의 번역자는 생물학 전공자 조은영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읽는 책이지만 완독하고 서평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지은이는 여덟 살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스물여섯 살에 ADHD 진단을 받은 생물화학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폐인 출신 과학자 템플 그랜딘의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를 읽어 두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카밀라 팡은 이런 말을 한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 역시 편향 없는 청정구역이 아니다....과학자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내고 싶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불과하다.... 연구자가 아무리 엄격하고 철저하게 연구에 임한다고 해도 과학은 주관적인 견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볍게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