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서(唐書) ‘양관전에 양관이 출세하기 전 왼쪽에 지도를, 오른쪽에 역사책을 놓고 공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하네요. 이를 좌도우사(左圖右史)라 한다지요? 아무래도 법궁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을 두는 좌묘우사(左廟右社)란 말로부터 영향을 받은 말인 듯 합니다.

 

또한 이 말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서 유래한 도서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리학자 이현군 교수는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에서 지도는 소모품(세상을 보는 수단)임을 잊지 말라는 말을 했지만 책상 앞에 앉아 책으로 역사를 공부할 때 지도의 유용함은 작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눈길을 끄는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옛 그림으로 본 서울’(최열 지음), ‘서울, 권력 도시’(토드 A. 헨리 지음) 등입니다. 특히 서울, 권력 도시는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19101945) 조선 왕조의 수도였던 한양이 서서히 일본적 근대의 전시장으로 전환하면서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식민 지배를 위한 새로운 무대로 만들어진 역사를 파헤친 책이어서 더욱 관심을 끕니다.

 

이 책들은 제 답사에 중요한 안목을 부여할 것입니다. 전기한 이현군 교수는 역사지리학도 공부하기 쉽지 않지만 고고학이나 인류학도 하나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학문이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을 합니다.(‘서울, 성 밖을 나서다’ 203 페이지) (사전) 답사가 역사지리학, 고고학, 인류학 전공자의 어려움에 미치지 못하지만 역사지리학이나 고고학 또는 인류학을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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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vs 칼뱅’, ‘사르트르 vs 메를로퐁티’, ‘니체 vs 바그너’, ‘하이데거 vs 레비나스등의 프레너미(frenemy) 시리즈를 출간한 출판사에 전화해 정약용 vs 듀이는 언제 나오는지 물었다. 곧 한 권이 출간되지만 내가 찾는 정약용 vs 듀이는 아직 일정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정약용 vs 듀이는 특별하다. 생전에 한 번도 시대를 공유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그것도 우리나라 사상가와 서양 사상가를 프레너미 즉 경쟁자이자 친우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 사상가가 선학(先學)이고 우리나라 사람이 후학(後學)이라면 사숙(私淑) 관계일 수도 있겠지만 듀이가 후학인 정약용 vs 듀이란 파트너에 대해서는 동시대인이 아니라 해도 수렴되는 요소, 대립되는 요소가 섞여 있다는 말 정도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프레너미로 논할 사람들을 설정해보라고 스스로 과제를 부여한다. 물론 쉽지 않다. 방향이 불분명한 공부를 해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르트르 vs 메를로퐁티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몽골 초원에 간 한국인들은 자신이 보기에는 계속 하늘과 땅만 있을 뿐 어떤 지형지물도 없는 곳에서 몽골인들이 지도도 네비게이션도 없이 방향을 잘 잡아 어김없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란다는 것이다.(91 페이지)

 

이는 저자(강미라)가 몸 도식(schema corporel)이란 개념을 설명하려고 든 실제 사례다. 몸 도식은 내 몸이 세계를 향해 내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어폐(語弊)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서경덕 vs 이지함을 생각해낸다. 어폐란 말을 한 것은 두 사람이 스승, 제자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 vs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스승 - 제자 프레너미도 설정되어 있지 않은가? 서경덕을 화담(花潭)보다 주역에서 기인한 복재(復齋: 地雷復)라는 호로 부르는 나는 송도(개성의 옛 이름) 3절이 박연폭포, 화담, 명월이라는 세 자연물이 아니었을까 한다는 글(이상국 지음 ’옛 사람들의 걷기 301 페이지)을 수용한다.

 

서경덕은 꽃피는 연못인 화담에서 호를 따왔고 황진이는 명월 즉 달에서 기생 이름을 따왔다. 황진이가 서경덕에게 송도의 세 가지 뛰어난 것으로 자신을 포함해 서경덕, 박연폭포를 거론했다고 하지만 훗날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었을 것이란 말이다.

 

() 자체가 아닌 기의 변화를 보았던 서경덕은 변화는 그저 바뀌는 것일 뿐 슬플 것도 기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죽음 앞에서도 초연(담담했다고 해야 하나?)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 그의 삶은 놀이하듯 즐기는 (유유자적한, 처사다운) 삶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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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인생엔 미지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1989년 나온 김승희 시인의 시집 달걀 속의 생에 실린 낯선 고향 속으로의 일부다. 즐겨 읽는 시다.

 

가을 햇빛 아래 링겔 바늘을 팔뚝에 꽂고 죽음이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세브란스 병원 마당을 지나가는 환자복의 아이를 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인생엔 미지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상념에 젖는 시인의 이야기다. 몸이 많이 아팠을 때는 내가 시의 아이라도 된 듯 읽고 비감(悲感)해 하던 시다.

 

이런 읽기 후 이어지는 것은 슬픔과 감동 덕에 책을 덮는 것이었다. ‘달걀 속의 생에서 내가 외우는 유일한 시는 낯선 고향 속으로다음 다음 시인 목련꽃 필 때. 만개한 봄산의 백목련을 흰 만장(輓章)으로, 자목련을 붉은 색 만장(輓章)으로 상상한 시다.

 

봄산에서 만난 흰 현호색(玄胡索)을 현호색이 상복을 입은 것으로 표현한 조용미 시인의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적인 구절이다. 오늘 아침 뒤늦게 전기한 두 시 사이에 숨은(?) 시를 알게 되었다. ‘모래내에서 연신내로란 시다.

 

모래내에 살 때부터 강물보다 모래를 더 많이 보았지만 모래내라는 이름 속에서 물을 느끼고서 풍경(살풍경)에 절망하기보다는 말 속에서 미래를 꿈꾸는 버릇을 가졌다는 시다. 꿈꾸지 않는다면 봄날 쇼윈도우 밖에 내걸린 드라이 클리닝된 세탁소의 옷처럼 계속 메말라 쌓여가는 패각총(貝殼塚)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시다.

 

이혜원 평론가는 김승희 시인의 시 세계를 죽음의 부정과 초월의식, 일상성의 부정과 비상의 욕망, 제도의 부정과 현실 비판, 제국주의의 부정과 여성의 재인식의 단계로 발전했다고 정리했다.(’자유를 향한 자유의 시학참고)

 

김승희 시인은 여성을 woman이라 표현할 때의 어원이 바로 woe 즉 늑대 + man이란 사실을 아는가 묻는다. 야성의 늑대를 원형으로 하는 원초적인 신성한 어머니의 원형이 기독교의 영향으로 손상되고 마녀재판 등으로 학살되었다는 것이 김승희 시인의 메시지다.(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추천의 글)

 

이 해설은 아담의 첫 번째 아내 릴리스(Lilith)를 연상하게 한다. '사이코의 섬이란 책에서 베드로가 바울에 대해 한 말은 바울에 대해서보다 베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한다.“란 인상적인 말을 전한 한스 요하임 마츠가 쓴 책 가운데 릴리스 콤플렉스가 있다.

 

아담의 첫 번째 부인 릴리스는 남녀동등권을 주장하며 쾌락을 즐기고 모성애를 거부한 여성이다. 최근 나온 신승철의 장편 소설 아담의 첫 번째 아내의 첫 번째 아내는 바로 릴리스를 말한다.

 

'아담의 첫 번째 아내'는 릴리스 - 순빈 봉씨 박지연(역사를 근거로 다시 쓴 후사의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순빈 봉씨는 여종과의 동성애로 폐출된 세종의 며느리(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로 주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기보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선 능동적 여성이다.

 

책을 들면 내려놓기 힘들게 만드는 책이라는 평이다. 조선사 공부를 위해서라도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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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불순한 동기를 가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부터 질문 받은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들은 음행중 붙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께 와 질문했다. 이런 경우 율법은 죄지은 자를 돌로 치라 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하겠는가? 란 질문이다.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아포리아적 질문에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답으로 대처했다. 예수는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이 사건을 처음 접한 오래 전에는 함께 음행을 했을 텐데 남자는 어디로 갔는가, 란 의문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의문도 의문이지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스피노자(1632 - 1677)를 탈근대의 예수라 말하는 책(신승철 지음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271 페이지)을 보며 나름으로 스피노자와 예수의 닮은 점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스피노자가 미끼를 문 장면을 접하게 되었다.

 

스피노자와 간절히 교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 스피노자의 가장 친한 친구를 자처하는 두 젊은이가 신이 신체를 가지고 있나요?”, “영혼은 불멸하나요?” 등의 질문을 던졌다. 아니 미끼를 던진 것이라 해야겠다. 스피노자는 경전은 영혼이 실재적이고 영속적인 실체가 아니고 단지 환영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음이 확실하다고 답했다.

 

스피노자는 이어 영혼은 단지 그 질료가 아주 미세하고 거의 투명하다는 말을 했다.(스티븐 내들러 지음 에티카를 읽는다’ 31 페이지) 기이한 것은 최근 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내게 구약 성경 창세기를 보여주며 성경은 영혼이 불멸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혼은 단지 그 질료가 아주 미세하고 거의 투명하다는 스피노자의 말이다. 이 말은 마음 역시 기()이지만 물질성을 극한적으로 떨쳐버린 기()“(이정우 지음 인간의 얼굴’ 126 페이지)라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스피노자는 영혼을 거의 투명하다고 말했고 전기한 책은 마음은 기() 중에서 가장 투명하고 섬세하다고 말했다. ()는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측정 가능한 모든 것을 이른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저술 중 단절을 경험한다. 3부까지 쓴 상황에서 그를 후원하던 공화파 요한 드 비트 형제가 오라녜세력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중앙집권적 군주제를 추구하던 오라네의 호전적이고 감정적인 대응과는 달리 자유와 관용의 정신에 입각해 합리적인 공화정책들을 시행하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 이후 스피노자의 에티카후반부는 전반부와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쓰였다.

 

'에티카' 완성 2년 후 스피노자는 죽음을 맞았는데 이는 후원자의 잔인한 피살로 빚어진 급격한 에너지 소진을 이기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스피노자의 삶은 렌즈 세공을 하는 작은 도제조합의 영토를 비롯해 친구들과의 교류와 우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적인 관계망과 배치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이 관심을 끈다.

 

프레데리크 로르동의 정치적 정서를 읽어야겠다. 정치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정치의 윤리 즉 좋은 정치 또는 나쁜 정치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스피노자를 길잡이로 데려온 책이다.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정 따위의 전통적 이원론을 전복하고 변용과 정서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스피노자를 면밀히 검토해 정치를 '변용의 기술'로 규정한 책이다.

 

오래 살았지만 마음으로 가까이 하지 못해 서울보다 낯설었으나 지난 해 지질(地質) 해설 교육 과정을 통과한 뒤 올 초부터 활동하고 있는 경기도 최북단 연천에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갖는 나는 동기들, 그리고 몇몇 마음 맞는 선배들을 보며 공동체란 말을 음미한다.

 

물론 스피노자나 프레데리크 로르동이 말한 공동체와 많은 의미적 갭이 있을 수도 있겠다. 다만 지금은 스피노자에게 현실 세계 외에 다른 가능세계들이란 없다는 말(스티븐 내들러 지음 에티카를 읽는다‘ 184 페이지)을 길잡이로 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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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 스피노자와 함께 인생의 새 판 짜기
신승철 지음 / 사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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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의 주저(主著) ‘에티카의 메시지로부터 비롯된 책이다.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란 부제를 가진 에티카는 자로 재고 칼로 자른 듯한 논리적 형식 속에 가장 비논리적인 영역의 정서, 사랑, 욕망의 자기 과정을 그려낸 책이란 것이 저자의 주지(主旨).

 

스피노자는 물론 신승철의 책들을 읽으려면 정동(情動)이란 개념을 알아야 한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감정과 정동을 날카롭게 가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감정은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기분 및 고립된 상태의 기분을 의미하고 정동(情動; affect)은 움직임과 관련된 생각, 삶과 관련된 것. 돌봄, 살림, 보살핌, 섬김 등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기쁨, 슬픔, 욕망 등이 정동의 기본적 형태이며 여기서 우울, 희망, 공포, 연민, 호의, 후회, 겸손 등이 파생된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기쁨, 슬픔 등의 정동은 아주 사소한 우발성에서 기인한다. 우발적인 것은 그저 돌발적이고 휘발적인 것이 아니라 정동의 자기원인이 되어 기쁨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도 한다.

 

물론 우발적인 것은 외부로부터 수동적으로 주어지지만 우리의 삶 내부에는 수동을 능동으로 바꿀 정동과 사랑의 능동적인 능력 즉 기쁨의 능력이 숨어 있다. 저자는 꽃은 한 뿌리에서 나와도 남성성이 강하면 수술을, 여성성이 강하면 암술을 만든다는 말을 하며 삶의 미세한 영역에서 사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더 지혜로워지는 것이 여성성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자신은 자신 안에 잠재된 여성성의 영역을 더 계발할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욕망이란 말은 갈애나 탐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로서의 욕망이자 더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라 설명한다. 스피노자는 그것을 코나투스(conatus: 자기보존욕구)라 불렀다.

 

천 개의 고원에서 들뢰즈, 가타리는 사랑을 되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남성 되기는 없다는 전제하에 사랑이 성립하려면 여성의 여성 되기와 남성의 여성 되기가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내면에 여성성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 되기는 이미 자기 안에 있는 여성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살림의 지혜, 생태적 지혜를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에티카의 출발점은 아주 작은 삶의 영역(국지적 영역)이다.

 

되기의 존재론은 존재의 존재론에 대한 의문에서 생겨난다.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왜 바로 이렇게 존재할까?, 세계는 왜 꼭 그렇게 존재할까? 현실성보다 더 많은 존재, 실존하는 세계보다 더 큰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인 인간은 늘 이렇게 묻는다..현실과 가능이 꼭 들어맞도록 일치한다면, 있음과 있을 수 있음(그리고 있어야 함)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는 기쁨도 슬픔도, 희망도 절망도, 기대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다른 삶으로의, 바깥으로의 이행을 들뢰즈, 가타리는 되기라 부른다.”(이정우 지음 천 하나의 고원’ 164, 165, 166 페이지)

 

저자는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해야한다는 당위나 의무가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있다는 경우의 수를 제공하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되기는 사랑이라 말한다. 소수자 되기가 여성 되기, 노숙인 되기, 장애인 되기, 아이 되기, 동물 되기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51 페이지)

 

공동체가 전제되지 않은 내재성의 철학은 상상하기 어렵다. 스피노자의 삶은 렌즈 세공을 하는 작은 도제조합의 영토를 비롯해 친구들과의 교류와 우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적인 관계망과 배치 위에서 이루어졌다.(내재성이란 초월성의 영역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스피노자의 내재성의 철학은 프로이트의 동일시와 다르다. 프로이트는 상담자에 대한 내담자의 동일시를 전이(transference)라 부르면서 각별히 중요시했다.

 

스피노자의 내재성은 타자와의 동일시가 아니라 타자가 갖고 있는 생명과 활력으로서의 특이성을 자신의 내재성(타자화된 외부가 자신의 내부적인 삶과 마음, 생활에 자기원인으로 들어와 있다는 의미다.)으로 이해하면서 공통성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차이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과정이다.(67 페이지) 연대한다는 것은 다른 삶, 다른 생각, 다른 관계가 생산되고 환대받는 것을 의미한다.(68 페이지)

 

스피노자는 프로이트에 앞서 무의식이란 개념을 고안한 사람이다. 스피노자에게 무의식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념이나 내면이 아닌 배치의 관계망에서 서식하는 마음이라 보았다. 스피노자는 우리의 삶에 순식간에 자리 잡는 욕망을 허구나 가상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구성하는 원천이자 자기원인이라 생각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단순하고 소박하고 절제된, 어쩌면 촌스럽게 느껴지는 정서의 기하학을 담고 있는 책이다.(115 페이지) 스피노자에게 사랑은 신적 속성이자 신체변용이다.(123 페이지) 스피노자는 순수, 겸양, 소박을 초월적인 신의 것으로 두지 않고 삶의 내재적인 것으로 보았다. 스스로 가장 먼저 내재적인 신, 범신론적인 신에 입각한 삶을 살았다.

 

물론 이는 개인도 수행하면 신이 될 수 있다는 영지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렇게 생각하기 이전에 사물, 생명, 식물, 광물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범신론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모두가 소중하고 유일무이하고 특이한 것으로 가득하다.(125 페이지)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 , 행동을 변화시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지혜를 얻는 과정이다.(144 페이지)

 

스피노자는 욕망을,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성이라 정의했다.(149 페이지) 스피노자는 사랑과 욕망이 많아질수록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는 평행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평행론의 끝에는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는 결론이 있다. 지혜는 우리 안의 여성성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153 페이지)

 

스피노자에게 앎이라는 문제는 나와 별개로 존재하는 수많은 진리를 내가 얼마나 많이 수용하고 취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지혜를 나의 신체변용을 통해 얼마나 사랑하고 욕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160 페이지) 저자는 스피노자가 추구한 생태적 지혜의 노선은 생명과 삶이 던지는 문제제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물음표, 호기심, 문제의식, 질문이 많아질수록 더 지혜로워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상을 뻔한 것으로 보지 않으려면 질문을 던져야 한다.(161 페이지) 전문가만이 문제의 핵심과 본질은 이것이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 제기는 답이 없을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다. 특히 삶, 사랑, 실존에 관한 질문이라면 더욱 그렇다.(162 페이지)

 

스피노자에게 정신은 신체변용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전개되거나 성숙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164 페이지) 저자는 물론 모든 정동, 사랑, 욕망의 흐름이 과연 지적이고 이성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작동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174 페이지)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일시적으로 다가와 마음에서 공회전하는 생각이 감정이고 그 감정 중에서도 자기원인에 따라 움직이는 생각이 정동이라고.(182 페이지)

 

주자(朱子)와 스피노자의 삶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주자는 황제에게 올릴 상소문을 쓴 후 주역으로 점괘를 보고 올릴지 말지를 결정했다. 스피노자는 유한 속에 내재된 잠재성을 통해 무한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스피노자의 이런 태도를 이론적으로 구현해낸 사람이 들뢰즈다. 그의 노마드는 제자리에서 여행하는 법인 국지적 절대성을 의미한다.

 

국지적 절대성의 과제는 국지적인 영역인 지금 여기 - 가까이에 무한한 잠재성이 내재한 삶과 신체가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하면 촉매하고 고무하여 색다름을 생산하고 창조할 것인가이다.(186, 187 페이지)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자 되기라는 개념은 스피노자의 정동 개념을 현대적으로 혁신한 개념이다.

 

정동의 흐름이 성공주의, 승리주의, 성장주의의 논리처럼 위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소수자에 대한 사랑을 통해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는 점에서 그렇다.(190 페이지) ’에티카는 후반부에서 전반부와 전혀 다른 필체, 내용 등을 보여준다. 그를 후원하던 공화파 드 비트 형제가 잔인하게 피살당한 사건이 그런 변화를 초래했다.

 

스피노자는 3부 이후 당대의 증오, 예속을 영예로 여기던 상황, 맹목적 신앙에 빠진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고심했다. 스피노자는 입구와 출구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 소진을 이기지 못하고 에티카완성 2년 후인 167744세의 삶을 마쳤다.(195, 196 페이지)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영구적 사랑의 탈주선이었다.

 

스피노자는 혼자였지만 가상의 독자를 설정해 자유인의 해방전략 즉 사랑이 곧 혁명이라는 것을 일갈했고 민주사회와 다중에 대한 민주주의 전략을 이야기했으며 사랑, 욕망, 정동의 지도 그리기를 시행했다.(215 페이지) 노마드 이론에 최적화된 사람이 은둔자로 불렸던 스피노자일 것이다.(220 페이지) 문제는 현실을 뻔하고 비루하게 보는 데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생명과 자연이라는 그 신기한 외부가 우리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삶의 내재성은 곧 외부성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잠재성을 더 풍부하고 다양한 특이성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255 페이지) 저자는 스피노자를 탈근대의 예수로 정의한다. 답을 내놓는 철학이 아닌 아이처럼 호기심, 상상력, 질문을 던지는 탈근대의 상황으로 지평을 가로질러 주파했기 때문이다.(270, 271 페이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는 자기원인에 따르는 욕망 즉 정동의 개념이다.(285 페이지) 스피노자는 에티카를 완성하고 정치론과 민주주의에 대해 정리하던 중 폐결핵을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아무런 소유도 없었고 병마에 시달리려 가냘픈 몸만이 있었다.

 

그는 임종을 지켜준 로데빅 마이어와 친구들을 평생 투명한 렌즈를 응시했을 그 눈으로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다.(287 페이지)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신 즉 자연이 지닌 질서를 이해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할 수 있을 뿐 결코 복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신은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욕망, 정동이다.(29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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