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오늘 드디어(?) 카카오 뱅크 계좌를 만들고 체크카드까지 신청했습니다. 붐을 보고 한 덩달이 같은 행동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3333 - 01 - *******라는 계좌 번호를 받아드니 기분이 묘합니다.

신원 확인을 위해 카카오 뱅크가 제 다른 계좌에 1원을 입금할 때 보낸 사람 이름으로 설정한 것을 확인창에 입력해야 하는 절차에서 제게 할당된 것은 멋진 수국이었습니다.

카카오 뱅크가 제가 수국을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혹시 모든 사람이 그런 입금자명으로 돈을 받는 시스템은 아니겠지요?

갈고 닦는 것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한문 사전을 보고 연(硏), 탁(琢), 마(磨),차(磋) 등이 모두 그런 의미를 지닌 단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라는 말에서의 연, 절차탁마라는 말에서의 마와 차, 탁 등인 것입니다. 혹시 다른 단어가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방배동 효령로의 한 빌딩에 다녀왔습니다. 방배동에 있다가 종로 서촌으로 자리를 옮긴 사찰 전문 음식점인 마지(摩旨)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磨)처럼 마(摩)도 갈고 닦는 것, 문지르는 것, 닿다, 쓰다듬다 등을 뜻하네요. 그리고 지(旨)는 뜻 지이기도 하고 맛있을 지이기도 합니다.

마(磨)에는 갈고 닦는다는 의미, 문지르다는 의미, 연자매의 의미가 있네요.

수국 이야기도 그렇고 마 이야기도 그런데 칼 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동시성을 운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잉해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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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전철의 최북단 역인 소요산역 가는 버스 안. 북위 38도선 기념비 가까운 곳의 한탄강 정류장에서 한 여자 분 탑승.

단말기에 교통 카드를 태그하지 않고 잠깐만요란 말과 함께 놓고 내린 우산을 찾으러 왔다는 말을 하고 버스에 올라 곧바로 우산을 찾아 들고 내린다.
우산을 놓고 내린 것을 알고 바로 택시를 타 버스를 앞지른 뒤 한탄강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던 듯.
가볍게 미소지을 상황임에 분명한 일이어서 나는 그 마음이 이해된다는 의미를 담은 웃음 소리를 냈다.

그 여자 분은 우산 때문에요? 란 기사의 말에 중요한 물건이라서요란 답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이어서였겠지만 스마트폰이나 귀한 가방 같은 물건들을 잃어버리고도 찾지 않는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그 분은 신문 기사를 통해 알려지는 것처럼 천이 찢어지거나 살이 부러지거나 펴지지 않는 우산을 수리 센터에 맡겨 고쳐 쓰는 사람들의 부류일 것이다.

나는 천 원짜리 펜을 잃어버려도 누군가와 헤어진 듯 마음이 스산하기만 하다. 그런 내게 그 여자분은 정이 많은 사람으로까지 보인다.

이상은 어제 있었던 일이고 상념이었다. 비는 내리지 않아 좋았지만 많이 내릴 거라는 예보를 따라 경복궁 리허설을 월요일로 연기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서울 가는 길의 평안함이 서울에서는 사라지는 것이 이제 낯설지 않다. 그래도 바쁘고 여유 없는 가운데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은 최고의 피서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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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책 대출 권 수 때문에 직원에게 어필했다. 물론 예의를 갖추고 논리로 그렇게 했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경우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지난 월요일 책 10 권을 빌렸고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요일)인 그제(7월 26일) 10 권을 더 빌릴 수 있다는 지침을 확인하고 그렇게 한 뒤 어제 다섯 권을 반납하고 그 수 만큼 빌리려 했는데 직원은 내가 15 권을 빌린 상태이기에 대출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이 도서관은 1인당 열 권을 2주간 빌릴 수 있고 1주일에 한해 연장이 가능하다. 물론 문화가 있는 날에는 열 권을 더 빌릴 수 있다.)

나는 반납한 권 수 만큼 빌리는 것인데 왜 안 되느냐고 물었고 직원은 규정상 대출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러면 지난 월요일 빌린 책들과 문화가 있는 날에 빌린 책들을 집에 두고 있다면 스무 권을 계속 가질(읽을) 수 있는 셈이고 다섯 권을 반납한 뒤 그 수보다 적은 수의 책을 빌리려 한다면 결국 스무 권보다 적은 수의 책을 빌리려(읽으려)는 셈인데 대출이 안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문화가 있는 날 추가 대출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어필했다.

그리고 ‘이런 일(문화가 있는 날에 책을 추가로 빌리려는 사람의 등장)은 처음이시죠? 문화가 있는 날에 책을 더 빌릴 수 있다는 말만 하고 이런 발생 가능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또는 대비)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책을 더 빌릴 수 있다는 큰 틀은 정했지만 세부 사안에 대해서는 상세한 정보를 제시하지 못해 더운 날 이렇게 멀리서 책을 들고 걸어오게 했으니 규정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규정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일반 요일에 빌린 책과 별개로 문화가 있는 날에는 책을 더 빌릴 수 있게 하고 반납 규정도 별도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필요한 책들이기에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런 말도 했다. 대출 제한(10 권)을 없애고 스무 권, 서른 권씩 책을 빌리게 해도 다른 이용자들이 또 다른 이용자들에 의해 대출된 책을 찾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그리고 인문서나 자연과학서들처럼 다른 장르의 책들에 비해 더 안 읽히는 책들은 융통성을 발휘해 문화가 있는 날이 아니어도 더 빌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결국 나는 반납한 수 만큼 다른 책들로 바꾸어 왔다. 도서관측이 대출에 관한 세부 사안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 결과이다.

지난 달 페북에서 작은 오해 때문에 한 여자 분과 논쟁을 했는데 유명 강사인 이 분은 특이하게도 논리적인 공방일망정 어필을 주고 받은 사람인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나를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도 말했다. 예의를 지킨 채 논리만으로 어필하고 방어했으니 그런 소리를 듣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제도 논리로 맞서고 예의도 지키며 생각을 주고 받은 것이니 장려할 일은 아니고 실수하지 않은 것이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논리와 합리는 다를 수 있다.

논리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지만 형식만 그럴 수 있고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논리에 감성을 입혀야 한다.

나를 돌아 보게 된다. 생필품도 아닌 책을 생필품 대하듯 하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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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고수들의 숨겨진 노하우를 훔쳐라 - 포커스 라이팅
박성후 지음 / 오디세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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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斬新)을 참신하게 해석한 것이 눈에 띈다.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전제 하에 나온 말이다. 참신의 참은 벨 참자이다. 신은 새로울 신이고. 모든 분야의 대가들은 어디에선가 재료를 가져와(나무를 베듯 가져와) 새롭게 만드는 작업의 명수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되고 자기다워야 한다.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창작(지음)의 비밀이다.

 

짓는다는 말은 서로 다른 재료들을 섞거나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글은 사람이라 표현한다. 글에는 저자의 정신과 삶에 대한 가치관과 인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의 요건은 이렇다. 본질적인 주제에 충실하고, 독창적이되 타당성과 설득력을 가져야 하고, 정확하고 명료해서 과장되지 않아야 하며, 최소의 말로 최대의 효과를 만드는 간결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확성(correct), 명료성(clear), 간결성(concise)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茶山)은 공부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이자 어려운 것을 쉽게 풀이하는 절차라 말했다.(133 페이지) 다산은 복잡한 것을 갈래로 나누고 무리를 지어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종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산은 언제나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큰 문제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공부는 따지는 데서 시작해서 따지는 것으로 끝난다. 선명한 길이 뚜렷이 드러날 때까지 따지고 또 따져라.”란 말을 했다.(225 페이지)

 

책을 쓰는 사람들은 목차를 정리하고 나면 책의 절반은 완성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만큼 목차는 중요하다.(136 페이지) 고수들의 책은 아무리 두꺼워도 키워드가 그리 많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물려받은 재능이 없는 사람이 문학적 글을 제대로 쓰려면 오랜 시간의 뼈를 깎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반면 실용적 글쓰기는 주제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논리적 구조 세우기가 우선되어야 한다.

 

저자는 중()의 특성을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삼각형의 정점과 같은 최선의 시너지를 도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74 페이지) 이것은 윈윈 전략이기도 하다. 함께 이기는, 소통을 의미한다. 글쓰기의 목적은 소통임을, 서로 바람직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지식 창조를 염두에 두지 않는 배움은 허무한 것이며 글쓰기를 생각하지 않는 책읽기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103 페이지) 상당한 자극이 되는 말이다. 물론 글쓰기와 책쓰기는 차원이 다르다.

 

칸트는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는 말을 했다. 또한 지성은 아무것도 직관하지 못한다. 감각은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한다. 오직 양자의 결합을 통해서만 지식이 태어난다.”는 말도 했다.(320 페이지) 각 개인에게는 서로 다른 주관적 형식인 선험적 사고의 틀이 있지만 반면 공통적 사고의 틀도 있다. 글쓰기는 이 두 사고의 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다.(105 페이지)

 

책은 천천히 한 번 읽는 것보다 핵심 중심으로 빠르게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 더 활용 가치가 높다.(129 페이지) 전략적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논리적인 구조 안에 스토리텔링이 담긴다면 가장 효과적인 설득 방법이 될 것이라 말한다.(172 페이지)

 

고수들은 실패의 대가들이다. 가장 많이 실패한 사람들이 고수가 될 자격이 있다.(198 페이지) 베케트는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말을 했다. 세종대왕은 백독백습(百讀百習)으로 유명하다.(208 페이지) 한 권의 책을 백 번 읽고 백 번 필사(筆寫)한 것이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주제를 정하라.(232 페이지) 첫 문장이 중요하다. 계속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첫 문단 또는 첫 문장에서 거의 결정된다.(252 페이지) 요점을 세 개 이상 만들면 그것은 이미 요점이 아니다.(255 페이지) 헤드라인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나 대답해야 할 의문을 제시한다. 이어 3개의 핵심 메시지를 설정한다. 결론부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위한 지시나 명령, 제안, 단정 등을 제시한다.(255 페이지)

 

소설이 아닌 실용문에서 연역적 방식으로 논리를 정연하게 펼치기는 어렵다. 연역법은 결론을 나중에 제시하는 수사법이다. 또한 특수한 사실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귀납법은 반대이다. 결론이나 핵심을 먼저 제시하고 그 증거나 이유들을 나열하는 방식이다.(270 페이지) 귀납법적 사고를 하려면 여러 가지 복잡한 사실들 중에서 핵심을 포착하는 안목과 공통 분모를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하다.(272 페이지)

 

논리적인 글쓰기에서 필수적인 것은 단 하나의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이다.(292 페이지) 에토스와 파토스 위에 로고스를 세워야 한다.(147 페이지) 로고스는 논리, 이성을 말한다. 파토스는 청중분석을 바탕으로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감성적 어필을 말한다. 에토스는 화자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주장과 근거를 내세워야 한다.(합리성) 글쓴이의 주체적인 색깔이 선명해야 한다.(주체성).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목적성) 저자는 상식적인 생각으로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비상식적인 관점으로 다르게 구상해 볼 것을 권한다.(306 페이지) 소통과 융합을 추구하되 다른 사람의 생각에 끌려다니지 말고 내면에서 끌리는 대로 질문을 마구 던질 필요가 있다.(32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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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과 에세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생동하는 실험적 사유의 글을 찾다가 미국의 페미니스트 이론가 벨 훅스의 인상적인 글을 접했다.

“대학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은 유토피아를 창조할 수 있는 장소다.”(2017년 4월 17일 교수신문 수록 김종영 교수 글 참고)

내가 읽은 벨 훅스의 책은 ‘사랑은 사치일까?’ 한 권이다. 그래서 저 말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지만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가 아닌가, 하고 추정할 만하다.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의 원서 제목인 ‘Teaching to Transgress: Education as the Practice of Freedom’에 교육을 뜻하는 단어인 education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계 넘기보다 위반하기 또는 금기 어기기 정도가 더 타당할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교육이란 부제가 눈에 뛴다. 이 책에서 훅스는 케케묵은 인식론을 유지하는 대학 교육을 비판했다.

훅스는 교육을 왜곡하고 있는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등 각종 편견들을 보며 교사/교수들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훅스는 노동 계급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교육이라 생각하고 어린 시절부터 열렬한 독자(讀者)로 살아온 분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온갖 차별과 서열주의의 시발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훅스가 만일 이런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지금 우리가 하는 비판과 자탄 이상의 말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기형도 시인의 ‘오래된 書籍‘을 소개한 이령 시인 덕에 다시 그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들춰 보았다.

이 시집에 대학의 유토피아성 여부에 대해 사유하게 해주는 ’대학 시절’이란 시가 있다.

이 시는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로 시작된다.

그리고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는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는 구절이 있고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는 구절로 끝이 난다.

(최루탄을 쏠 때 들리는) 총성과 감옥, 군대, 기관원 등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옛 정서를 불러 일으키는 시이다.

앞서 인용한 김 교수는 벨 훅스의 말을 언급한 데 이어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국의 대학은 유토피아를 창조하고 있는가? 아니다...‘헬’(hell)을 창조하고 있다.”는..

벨 훅스가 말한 대학이 갖추어야 할 위상과 너무도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학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한 기형도는 대학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유토피아로 보았는지 모르지만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다만 유토피아에 가까운 곳은 있으리라.

물론 기형도 시인이 대학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가 대학을 유토피아로 생각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기형도 시인은 대학을 유토피아가 아닌 사회보다 덜 두려운 곳으로 보았을 것이다. 총성, 감옥, 기관원 등은 기형도 시인이 살았던 시대(1960 - 1989)의 대학이 유토피아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당시 대학은 사회보다 덜 전쟁터 같았던 곳이자 낭만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지?

문득 그런 시절이 그립다. 물론 이는 장소를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갔기에 돌아갈 수 없는 특정 시간을 그리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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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7-31 0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쓰는 후배는 기관원이라고˝....이 문구가 확 들어옵니다.헬을 창조하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겠지요?

벤투의스케치북 2017-07-31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습니다... 인상적인 구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