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 이후 자주 가는 식당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내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지질 해설사입니다라고 답했더니 당신이 다른 해설사들을 몇 명 아는데 그 분들과 내가 무언가 달라 묻게 되었다고 말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다른가요? 라고 물으니 사장님은 내가 진품명품 같다고 이야기 하셨다. 사장님은 아마도 나와 동료가 식사하며 나눈 대화를 바쁜 중에도 들었을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해설사들이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답했다. 내가 한 이 말은 입증된 바이지만 근본을 헤아리면 관건은 스스로 동기(動機)를 찾느냐의 문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지질해설사이기에 지질에 중점을 두지만 그럼에도 지구과학의 주요 다른 구성 요소인 천문, 대기, 해양에도 어느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공부도 하고 주요 이론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다른 해설사들은 지질만 하거나 지질도 안 한다는 차이가 있고 근본적으로 나는 연 1회의 시연, 필기 같은 최소의 압박 요인마저 없기에 공부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는 것이고 다른 해설사들은 압박 요인이 없어서 필요를 느끼지 않아 안 하는 것이다.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 나는 지구과학 공부에 도움을 얻기 위해 물리학, 천체물리학, 화학까지 공부하니 다른 해설사들 눈에 그런 나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는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다. 지질박물관장을 역임한 이승배 씨는 '우리 땅 돌 이야기'라는 책에서 영월의 굴곡 많은 지질과 단종의 굴곡 많은 인생을 한 차원에 놓는 글을 썼다. 굴곡 많은 지질이란 뜻은 영월이 습곡과 단층의 흔적이 뚜렷한 땅이라는 의미이고 굴곡 많은 인생이란 단종이 영월에서 한많은 유배 생활을 했음을 뜻한다. 역사를 끌어다 지질을 설명한 것이다.

 

이론 물리학자 리사 랜들은 '암흑물질과 공룡'이란 책에서 공룡 멸종에 대해 논했다. 공룡 멸종과 관계된 유력 후보 지역인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칙슬루브 충돌구 이야기를 하며 실험물리학자 루이스 앨버레즈의 활약상을 언급했다. 루이스 앨버레즈가 주목한 것은 탄소질 콘드라이트였다. 그의 아들인 지구과학자 월터 앨버레즈가 쓴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우주 지구 생명 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나는 빅 히스토리는 아니지만 스몰 히스토리 이상을 지향한다. 

 

루이스 앨버레즈는 핵무기를 만드는 맨해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B 29 폭격기에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파괴력을 측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루이스 앨버레즈는 2차 우주선(宇宙線)인 뮤온을 이용해 피라미드 내부를 촬영한 인물이 되었다. 지구과학, 물리학, 고고학, 역사학 등은 이렇게 만난다. 뮤온으로 피라미드 내부를 보는 것은 엑스선으로 인체 내부를 보는 것과 원리가 같기에 의학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코스믹 쿼리'라는 책에서 지구의 물이 모두 증발하면 판운동도 멈추게 된다는 말을 했다. 여기서 물이 하는 역할이 드러난다. 물은 마찰을 줄여 판을 움직이게 해준다. 물은 석영암맥 형성에도 관여한다. 우주배경복사, 중력파, 연주시차, 중성자별, 펄서, 블랙홀, 반입자, 질량결손 등의 천문학 또는 물리학 용어는 참 설레는 말이다


태양 중심에서 수소 원자핵 네 개가 만나 헬륨 원자핵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량 결손분이 빛이 되어 우리를 밝혀주니, 그리고 입자 10억개와 그에 미세하게 못 미치는 개수의 반입자가 만나 ‘쌍소멸’되지 않았기에 무언가가 존재하게 된 것이니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이 밖에 우주 형성 당시의 극도로 미세한 차이들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 부분에서 세상은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란 철학적 질문을 던져도 좋다. 


단층, 습곡, 오피올라이트, 관입, 대륙이동, 섭입, 조산 등 지구과학 용어 역시 지구의 놀랍고 긴 역사를 증언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남다른 말들이다.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일은 그 만큼 설레는 일이다. 설레는 만큼 즐겁다. 재미 있으니 즐기는 것이고 그런 만큼 자발적이 될 수밖에 없다진품명품 이야기를 하신 식당 사장님께 나는 진품명품이 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설령 그렇게 되지 못해도 과정 자체가 소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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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30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벤투님은 지질해설사이셨군요! 정말 소수의 전문가가 서재에 계시다니 참으로 놀랍고 반가운 일입니다. 고교 때 가장 재밌었던 과목이 지구과학이었은데 고교 입시 인문계는 죄다 생물를 택했지만 유릴헌 지학선택자였죠. 근데 지학에서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 방위각과 적경 적위 계산이었다는..ㅎㅎ

벤투의스케치북 2026-01-30 19:27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유일한 지학 선택자셨군요.. 저도 그 부분은 더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쉽게 설명할 수 있을 때 포스팅을 하고 싶어요.. 반갑습니다...
 

지난 해 921일 문산도서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늘 그렇듯 큰 기대를 가지고 갔지만 반납은 되고 대출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반납은 되고 대출은 되지 않는 것은 한시적인 일로 도서관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는 관계로 빚어진 변화였다. 그날 퇴근 후 나를 연천면 장남면 근무지에서 문산도서관까지 30분 넘게 차로 데려가준 친구는 대출이 되지 않자 거기서 연천의 반대방항으로 30여분 더 시간을 내 나를 교하 도서관까지 태워 주어 책 네 권을 빌릴 수 있도록 해주는 은혜를 베풀었다.

 

오늘 나 혼자 전곡에서 95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걸려 문산역에 도착한 뒤 마을버스를 타고 문산도서관에 갔다. 빌린 책들은 이런 수학은 처음이야 3, 멋진 우주 우아한 수학, 물리의 핵심, 신유물론 입문 등이다. 2026년은 아직 첫 달이 다 가지 않았는데 어제까지 12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시간이 많이 났기 때문이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추구심이 커서였고 세상(삿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기에 실망스러워 고도의 질서를 논하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질서로운 학문은 물리, 천문학, 지구과학 등이다. 물리와 천문학은 그 자체로 필요하지만 지구과학 공부에 도움을 얻고자 읽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올해는 인문 분야의 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 바람직하다. 좋은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천문대에 피아노가 떨어졌다', '우주를 깨우다'에 이어 '우주는 어디에서 왔을까'까지 우주 관련 책이 풍성하다.

 

크리스 페리와 게라인트 루이스가 쓴 '우주는 어디에서 왔을까'는 양자물리학과 천문학으로 읽는 우주 탄생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가슴 설레게 하는 책이다. 한 번 언급했지만 올해 닐 니그래스 타이슨의 '코스믹 쿼리'를 읽은 이래 천문학에 대해 더 관심이 깊어졌다. 앞 부분에서 도움을 얻고자 한다는 말을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지구과학 글의 시야가 넓어지고 반듯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라 말해야겠다. 그렇게 되도록 애써야 하리라.

 

사이토 가쓰히로의 '하루 한 권, 주기율의 세계'는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학, 물리, 지구과학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 해 3월부터 올 1월까지 11편의 지질 글을 쓴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물론 감사한 일이다. 인문 분야에도 예전처럼 관심을 기울여야 좋은 과학적 안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2026년의 첫 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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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돌 이야기
이승배 지음 / 나무나무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2020년 당시 지질 박물관장이던 이승배 씨의 '우리 땅 돌 이야기'. 저자의 전공은 고생물학이다. 화석 외의 돌에 대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오류를 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학술적인 내용을 과장 또는 비약하거나 반대로 단순화하여 쉽게 전달하고자 했다고 한다. 아직 저술 목록에 없는 고생물학 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책은 4부로 구성되었다. 수도권, 충청권, 덕적군도 일대, 강원권 등이다.

 

원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연장되어 지표로 노출된 암반을 노두라 한다. 노두가 아닌 암석은 현재 그 위치가 겪어온 지질 역사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지질학자들은 예쁜 바위가 아닌 노두를 찾아다닌다. 저자는 변성암의 일종인 호상 편마암에 대해 말한다. 얼룩줄무늬 편마암이다. 기존 암석이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광물들의 성질이 변해 흰색 광물 띠와 어두운 색 또는 검은색 광물 띠로 분리된 암석이다. '분리된'이라고 하기보다 '서로 다른 색으로 결정화된'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다.

 

흰 띠는 굵은 모래 성분이 변해서 된 것, 어두운 띠는 고운 진흙 성분이 변해서 된 것이다. 지리산은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산은 지형이 비교적 완만하다. 편마암의 어두운 색 띠 부분에는 흑운모라는 광물이 많다. 흑운모가 많이 들어 있는 호상 편마암에는 화강암에 비해 다량의 수분이 들어갔다 나갈 수 있다. 이러면 돌은 쉽게 풍화된다. 충남 아산시의 온양채석장은 대표적인 호상 편마암 채석장이다. 원래 암석이 무엇이었는지 알기는 어렵다. 같은 암석이라도 어디에서 어느 정도의 열과 압력을 받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변성암이 된다.

 

편암은 신선한 암석을 보기 힘들고 대부분 땅을 파내야 그 실체와 만나게 되며 노두가 드러나 있다 해도 쉽게 부스러진다. 운모와 같은 판상광물들은 점토광물이라 한다. 물을 잘 머금는다. 편암 지역에도 비교적 높고 가파른 산들이 있다. 석영편암은 장석이나 운모가 상대적으로 적고 석영의 비율이 높은 암석이다. 거의 대부분 석영으로만 이루어진 변성암을 규암이라 한다. 채석장은 지질조사를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곳이다. 풀과 나무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명백한 지하 암석의 증거, 정말 싱싱한 노두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강암을 구성하는 알갱이들 중 비교적 투명한 것들은 석영이고, 분홍빛이나 주황빛을 띠는 흰색 또는 밝은 회색 알갱이들은 장석이다. 점점이 박힌 검은 알갱이들은 흑운모다. 마그마 속에서는 광물 입자들이 조금씩 자란다. 그 입자들이 조금씩 맞물려 치밀한 암석이 된다. 마그마가 솟아오르는 지점이 점점 동쪽으로 밀려났다는 증거는 쥐라기 다음 지질시대인 백악기의 화강암이나 화산 분포를 보면 알 수 있다. 쥐라기의 화강암들은 강원도 삼척에서 전라남도 목포를 가상의 선으로 이었을 때 대체로 그 선의 서쪽에 분포하고 백악기의 화강암이나 화산암들은 그 선의 동쪽인 경상도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지각에는 가장 가벼운 암석들만 모여 있다. 지각은 그보다 더 무거운 맨틀 위에, 맨틀은 더 무거운 핵 위에 떠 있다. 지각을 맨틀의 거품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김포 문수산층은 원래 문주산층으로 기록되었다. 문주산은 문수산의 오기(誤記). 일본이 그랬다. 지층의 이름은 최초에 붙은 이름을 계속 쓰는 것이 규칙이지만 처음 실수가 인정되면 고쳐서 쓸 수 있다.

 

붉은색을 띠는 퇴적층은 적색층이라 불린다. 대체로 바다가 아닌 육상 환경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철분을 포함하는 모래나 진흙 입자들이 공기에 노출되어 산화될 때 전반적으로 붉은 빛을 띠는 퇴적층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두꺼운 적색층을 볼 수 있는 곳들은 대부분 중생대 동안 쌓인 지층이 분포하는 곳이다. 김포, 연천, 보령, 문경, 영월-단양 등지에서는 트라이아스기 말에서 쥐라기에 걸쳐 쌓인 퇴적암들을 볼 수 있다. 경상도 전역, 전남 해안, 공주, 음성, 영동, 화순, 진안, 태백-삼척, 경기 탄도(안산), 고정리(화성) 등지에서는 백악기의 퇴적암들을 볼 수 있다.

 

트라이아스기-쥐라기의 지층 중에는 당시 숲을 이루었던 거대한 나무줄기와 잎들이 매몰되어 암석화한 석탄이 곳곳에 존재한다. 백악기 지층은 식물, 조개, 고둥, 물고기, 공룡과 익룡의 뼈화석과 발자국 등 다양한 파충류 화석으로 유명하다. 이 지층들의 특징은 모두 육상환경(하천, 호수)에서 쌓인 것이다. 오목한 지형인 퇴적분지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 대륙끼리 충돌해 지각이 두꺼워지면서 무거워져 가라앉아 주변의 얇은 지각도 함께 가라앉는 경우도 있다.

 

한 부분의 지각이 산을 만들 정도로 두꺼워지면 계속 솟아오르기만 하지는 않는다. 무게 때문에 가라앉기도 한다. 물에 뜬 얇은 나뭇가지와 두꺼운 통나무릍 비교해보자. 통나무는 무거운 만큼 물에 잠긴 부분도 두꺼움을 알 수 있다. 단단한 암석이 가라앉으면 그와 연결되었던 얇은 지각도 휘어지거나 끊어지면서 아래로 조금씩 꺼진다. 김포의 경우 통진층 위에 문수산층이 자리한다. 저자는 두 층간의 관계(연대)가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두 층이 연속적으로 쌓였다면 중생대에 하나의 분지가 있었다는 뜻이고 두 층간에 수천만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면 어떤 분지가 먼저 만들어진 후 그 안에 진흙과 석탄 위주의 지층이 쌓이고 이들이 매몰되어 암석 즉 통진층이 된다. 그 위의 정체 모를 지층은 다 침식되어 사라진 후 문수산층을 쌓은 새 분지가 생겼다고 이해할 수 있다.

 

수정(水晶)은 석영이라는 광물 중 결정형이 뚜렷하며 투명한 상태의 광물을 말한다. 순수한 석영은 무색투명하지만 철, 티타늄 등 불순물이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에 따라 또는 결정 격자구조의 불완전함 등으로 인해 여러 색을 띠기도 한다. 자수정은 석영 내에 철이 포함되어 있어 자주색을 띠는 광물이다. 마그마는 암석이 녹은 반() 액체의 광물질로서 상당량의 물도 들어 있다.

 

마그마 속에서 단단한 광물들이 생겨나는 와중에 무거운 원소들이 먼저 사용되고 뜨거운 물이 분리된다. 이 물을 열수라 한다. 가벼운 원소인 규소가 여전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보통 화강암은 석영, 장석, 흑운모로 구성되는데 이 광물들을 만드는 데 규소가 소모되고 나서도 열수 안에 규소가 많이 남아 있다. 마그마가 암석이 될 때 부피가 줄어들어 금이 생긴다. 이 공간을 따라 열수가 침투하면서 마지막으로 규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석영을 침전하게 된다. 암석에 방향성이 있게 난 띠들은 화강암 틈으로 열수가 침투하여 석영을 침전시킨 석영맥이다. 빈 공간에서 자라는 광물에 비해 마그마 속에서 다른 광물들과 자리 싸움을 하며 자라는 광물들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낮다.

 

대전 옥녀봉을 이루는 석영반암은 석영 입자가 얼룩덜룩 박혀 있는 암석이다. 심성암이라기에 입자가 작고 곱고 화산암이라기에 밝고 입자 조성이 단순하다. 반심성암이다. 셰일은 지름이 0. 0625 mm보다 작은 알갱이들 즉 진흙이 쌓여 다져진 퇴적암인 이암(泥巖) 중 층리(쌓인 알갱이들의 입자 크기가 달라 차곡차곡 쌓은 줄무늬 흔적)를 따라 쪼개짐이 발달한 암석이다. 짙은 회색에서 검은색을 띤다. 검은색을 띠는 이유는 생물의 구성 성분이 유기질 탄소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석탄이나 석유가 검은 이유와 같다.

 

흑색 셰일은 산소가 부족한 수중 환경을 지시한다. 철이 녹슬면 갈색이 되듯 퇴적물도 그 안에 포함된 다양한 광물들이 산화하면 비슷한 색을 띤다. 대이작도의 한반도 최고령 암석의 학술적 명칭은 토날라이트질 편마암이다. 토날라이트는 화강암처럼 석영이 20-60%를 차지하지만 나머지 성분 대부분이 사장석 특히 알칼리 장석이 10% 미만을 차지하는 암석을 말한다. 토날라이트에는 화강암류보다 각섬석, 휘석 같은 어두운 색 광물이 많아 전체적으로 어둡다. 이 최고령 암석은 촘촘한 얼룩말 무늬처럼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번갈아가며 띠를 이루고 있다. 밝은 띠에는 석영, 장석이 많고 어두운 띠에는 각섬석이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최고령 암석은 왜 이작도에 드러나 있을까? 답은 모른다. 다만 이작도가 내륙과는 다른 지질작용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한반도의 지하 어딘가에 같은 암석이 자리할 것이다. 모래와 진흙이 쌓이는 도중에 여러 번 자갈들이 와르르 몰려와 쌓일 수 있는 조건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천 중상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갈 많은 풍경은 가끔씩 생기는 급류에 의해 자갈들이 서로 부딪혀 미래의 퇴적물인 모래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는 길고 긴 지질학적 시간의 한 순간일 뿐이다.

 

선상지는 경사가 급한 산지의 계곡을 흐르던 하천이 완만한 지대로 접어들 때 유속이 느려지면서 모래나 자갈 등을 부채 모양으로 부려놓은 지형이다. 퇴적암이 겪은 오랜 지각변동을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증거는 가파르게 서 있는 층리다. 흐르는 물에 의해 모래나 진흙이 쌓일 당시에는 표면 경사가 아주 완만하다. 가파른 선상지도 경사가 고작 몇 도다. 최초로 퇴적암이 되었을 때 층리 역시 거의 수평이었을 것이다. 그런 층리가 지금은 수십 도 아니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것은 퇴적암이 크게 휘었다는 뜻이다. 암석이 엿가락처럼 휘려면 열과 압력이 높아야 한다. 이런 곳은 지하 깊은 곳이다. 퇴적암체가 깊은 곳에서 수평적으로 미는 힘을 받으면 지층이 휜다. 이때 지표면에서는 산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해변에서 보는 진흙, 모래, 자갈은 어떤 바위였을 것이다. 이암도, 사암도 암석 순환의 한 순간일 뿐이다. 마그마의 점성이 커서 폭발력이 강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미세 돌가루인 화산재가 굳어 생성된 암석이 응회암이다. 화산재는 세립의 마그마 물질이 공기에 노출되어 빠르게 식기 때문에 미세 유리 광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질이란 결정질의 반대다. 투명하지는 않다. 화산재는 하늘에서 눈처럼 곱게 내려앉기도 하지만 암석 조각들이 화산가스와 반죽이 되어 산사태가 난 것처럼 흘러내리기도 한다. 이를 화산쇄설류라 한다. 화산은 한 번 분화한 곳에서 거듭 분화하기에 화쇄류는 이전 분화 때 만들어진 암석을 부수어 자갈처럼 포함되기도 한다. 또는 마그마 자체가 지각을 뚫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지하를 구성하는 다른 종류의 암석을 뜯어 올라와 굳기도 한다. 그래서 응회암에는 여러 자갈이 들어 있곤 한다. 암석 파편을 많이 함유한 응회암을 화산력 응회암이라 한다.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화산에는 흔히 부석이라는 유리질 암석이 만들어진다. 백악기에 분출한 화산은 그렇게 큰 지각변동을 겪지 않았다. 덕적도의 응회암은 열과 압력이 높은 지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바위들일 가능성이 있다. 지표에 쌓인 화산 물질이 겹겹이 쌓인 후 비교적 빨리 식어가면서 수축할 때 지표와 거의 평행한 방향, 지표에 거의 수직인 방향의 절리들이 생겨 암석이 깍둑썰기로 존재한다. 단층과 달리 절리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화강암은 높은 압력을 받다가 압력이 낮은 곳으로 올라와 사방팔방으로 팽창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방향으로 쪼개져 금이 간다. 현무암은 빨리 식으며 부피가 줄어드는 만큼 틈이 생긴다.

 

지표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암석에는 절리가 있다.(162 페이지) 암석의 종류에 따라 각도나 간격이 다를뿐이다.(170 페이지) 대륙이동은 인공위성 관측으로 입증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보는 자연의 모습은 아주 긴 자연 다큐멘터리의 극히 일부분, 정지 화면과 같다.(177 페이지) 암석의 풍화는 두 가지다. 물리적 풍화와 화학적 풍화다. 전자는 물과 바람의 작용, 온도 변화로 인한 수축과 팽창, 스며든 물이 얼고 녹아 암석이 점점 작은 덩어리로 부서지는 현상을 말한다. 후자는 암석이 공기나 물과 반응하여 새로운 물질로 변하는 과정에서 부스러지거나 녹아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석회암은 산성 용액에 약하다. 석회암은 약산성 빗물이나 지하수(탄산)와 만나도 칼슘이 분리되는 '화학적 풍화'를 겪는다. 이 때문에 석회암 지대에는 동굴이 많다. 탄산칼슘 뼈대를 만드는 생물이 많은 얕고 맑은 바다에서 석회암이 만들어진다. 지층은 어디든가 연장된다.(201 페이지) 퇴적암은 수평적으로 연장성이 좋다.(203, 204 페이지) 인류가 쌓은 지질학적 지식은 18세기 영국인들로 하여금 석탄층을 추적하면서 최초의 과학적인 지질도를 완성하게 했다. 지표면에서 바위가 물, 바람, 식물에 의해 풍화되어 어디론가 제거되면 그만큼 육지가 가벼워진다. 이 때문에 우리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위로 떠오른다. 그렇게 수백만 년이 지나면 지하 수 킬로미터 아래에 있던 지층이 드러난다.(208 페이지)

 

조산운동 중에는 암석들이 미는 힘을 크게 받기 때문에 단층이 많이 생긴다. 지층이 좌우에서 밀리다가 끊어질 겅우 한쪽 암반이 끊어지면서 반대편 암반 위로 솟아오르기도 한다. 이를 역단층이라 한다. 역단층 중에서도 단층면의 각도가 낮아서 가령 왼쪽의 지층들이 오른쪽의 지층 위로 올라타서 중첩(重疊)되는 경우를 충상(衝上) 단층이라 한다. 이런 단층이 많이 발견되는 것에서 관찰이 쉬운 구조가 습곡(褶曲)이다. 단단한 돌이 다른 돌 위를 타고 오르기 위해서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바위에 힘이 가해졌을 때 마냥 단단하기만 해서는 부서지기만 할뿐이다. 충상 단층은 둘이 어느 정도 유연한 상태에서 생길 수 있다. 엿을 예로 들 수 있다. 차가울 때 힘을 주면 뚝 부러지지만 어느 정도 따뜻한 상태에서 힘을 주면 구부러진다.(216 페이지) 충상 단층을 따라 암석이 이동할 때 마찰이 발생하는 단층면을 따라 습곡이 발생한다.

 

퇴적암과 퇴적암 사이에 아주 긴 시간이 사라져 있는 경우 그 사이의 경계를 부정합(unconformity) 또는 비정합(disconformity)이라 한다. 퇴적암과 변성암 또는 화성암 사이에 긴 시간이 사라져 있는 경우에는 난정합(nonconformity)이라 한다.

 

암석 속에 사라진 엄청난 시간이 있다는 사실,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이라는 사실을 요즘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현대과학이 대중화되었다. 지질학을 선도했다는 유럽조차 1700년대에는 지구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지층에 기록된 지구 시간은 연속적이라 생각했다. 시간에 대한 지구인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꾼 계기가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 제임스 허턴이 스코틀랜드 해안을 조사하다가 시카 포인트(Siccar Point)에서 급경사를 이룬 실루리아기 사암층과 완경사를 이룬 데본기 사암층이 맞닿아 있는 부정합을 발견했다. 실루리아기에 먼저 쌓인 지층이 지각변동을 겪으면서 습곡된 후 침식되어 깎이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그는 결국 지구 나이와 지질학적인 과정이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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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말하는 현대물리학 - 광속도 C의 수수께끼를 추적 전파과학사 Blue Backs 블루백스 78
고야마 게이타 지음, 손영수 옮김 / 전파과학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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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윌리엄 톰슨이 지구 나이를 수천만년이라고 주장한 것을 보며 그렇다면 도저히 원시 생물이 인간으로까지 진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구 나이 문제에 돌파구가 된 것은 19세기에 방사성 원소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이에 대해 런던의 한 대중지는 최후 심판의 날이 연기되었다고 말했다. 방사성 원소의 붕괴는 열원일뿐 아니라 지구 나이를 측정하는 시계로서 주목을 받았다. 갓 태어난 우주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는커녕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도 아직 형성되지 않은 채 빛 에너지만 충만한 상태였다. 우주배경복사는 빅뱅 후 38만년이 지난 시점 직진을 시작한 빛의 흔적이다. 이를 빛의 화석 또는 빅뱅의 잔광(殘光)이라 한다. 절대온도 3K까지 내려간 찬 빛(전파)이 우주의 모든 방향으로부터 균일하게 오고 있다. 


온도가 내려가는 과정에서 전자와 양성자 등의 입자가 형성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가벼운 원소가 생성되었다. 최초로 연주시차(年周視差)를 측정한 사람은 독일의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베셀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토머스 영은 빛의 파장설을 주장했다. 뉴턴은 빛은 입자라고 보았다. 뉴턴의 학설과 다른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환멸감을 느끼고 원래 직업인 의사 일을 하는 한편 고고학 연구로 진로를 바꾸어 로제타석을 해독했다. 로제타석은 나폴레옹이 거느린 프랑스군이 이집트 나일강 하구의 로제타에서 발굴한 현무암 석판(石板)을 말한다. 물론 완전한 해독에 성공한 사람은 프랑스 언어학자 샹폴리옹이다. 물론 뉴턴은 명확하게 빛은 입자라 말하지 않았다. 


뉴턴은 미소(微小)한 물질, 직선적으로 진행한다 같은 표현을 했다. 질량보존의 법칙, 산소 등을 발견한 라부아지에는 빛도 자연계의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입자)라고 보았다. 이는 라부아지에가 뉴턴의 영향하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프레넬은 영의 간섭 이론의 불충분함을 보완하고 회절 현상을 일반적으로 기술하는 파동 이론을 제창했다. 회절은 빛이 장애물 뒤로 돌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마이클 패러데이가 19세기를 대표하는 실험가였다면 제임스 맥스웰은 19세기를 대표하는 이론가였다. 전자기파의 속도는 광속과 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맥스웰은 빛은 전자기파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질량이 큰 물질이 맹렬하게 운동하면 거기서부터 중력의 파동이 광속도로 전파해 간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으로부터 도출되었다. 


전자기력에 비해 중력의 효과는 너무 미약해서 그것을 실험으로 포착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초신성 폭발 같은 거대 질량이 관계하는 천체 현상을 볼 필요가 있다. 2015년 9월 14일 우주의 중력파가 사상 최초로 관측되었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파로 블랙홀 두 개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다. 이 중력파가 미국에 있는 라이고 검출기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13억년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제철(製鐵)에 주력했다. 문제는 높은 온도를 어떻게 정확하게 측정하는가, 였다. 열복사(熱輻射)가 필요하다. 가열된 물체가 빛을 즉 전자기파를 복사하는 현상이다. 물체의 온도에 따라 빛의 스펙트럼이 변화한다. 


검은 철도 가열하면 빨갛게 되고 더욱 온도가 올라가면 오렌지색, 백색으로 바뀌어간다. 색깔을 보면 온도를 알 수 있다. 측정과 일치하지 않았다. 막스 플랑크가 스펙트럼을 나타내는 수식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당시까지 물리학계에 없었던 기묘한 가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열복사로부터 나오는 진동수의 빛(전자기파) 에너지는 hv를 단위로 하여 정수배의 값만 가질 수 있었다.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며 변화하는 것이다. 소수점은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띄엄띄엄한 에너지를 양자(量子)라 한다. 아인슈타인은 진동수 v(뉴)는 hv라는 에너지를 갖는 입자로서의 성질도 갖는다고 생각했다. 빛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라는 의미다. 


빛 입자를 광양자(光量子) 또는 광자(光子)라고 한다. 자극을 주는 방식에 따라, 실험의 종류에 따라 파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입자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 빛이다. 금속에 빛을 충돌시키면 전자가 튀어나온다. 이것이 광전효과다, 물론 언제라도 전자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파장이 긴 빛을 아무리 강하게 충돌시켜도 금속으로부터 전자는 튀어나오지 않는다. 빛이 광자라고 하는 에너지 덩어리(탄환)가 되어 전자에 충돌해야 하는 것이다. 레이저는 단색성(單色性)과 지향성(指向性)이 뛰어난 빛이다. 루이 드 브로이는 파동이라고 생각되던 빛에서 입자성을 볼 수 있다면 입자(물질), 이를테면 전자가 파동성을 나타낸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파동과 입자의 관계는 양방향성이다.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은 빛뿐 아니라 일반 입자에도 적용되는 보편 현상이었다. 러더퍼드는 원자의 중심에는 양전하가 응집한 핵이 있고 그 주위를 음전하의 전자가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자가 회전 운동을 하면 빛(전자기파)을 방출하면서 에너지를 잃어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닐스 보어는 핵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는 특정 궤도 밖에 취할 수 없다고 가정했다. 즉 인공위성처럼 궤도를 임의로 선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 궤도를 도는 것을 정상상태(定常狀態)라 한다. 보어는 전자는 빛을 방출하지도 않고 에너지를 잃지도 않는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런데 전자가 어떤 궤도로부터 다른 궤도로 옮겨갈 때 그 에너지차 E에 대응하는 진동수의 빛이 방출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자로부터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은 연속적이지 않고 파장은 띄엄띄엄한 값만 갖는 것이다. 원자에 속박되어 있는 전자도 파동으로서의 측면에 주목하면 기타의 현(絃)과 마찬가지로 정재파(定在波)를 형성하는 것이다. 폴 디랙이 전자의 파동성을 기술하는 앙자 역학의 방정식을 상대성 이론에 합치하도록 고쳐 썼다. 이때 방정식의 답으로서 전자의 에너지에 플러스만이 아니라 마이너스 값이 쌍을 이루며 나타났다. 디랙은 현실에 맞는 플러스 값만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버리는 안일한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디랙은 마이너스의 에너지 상태는 다른 전자에 의해서 꽉 채워져 있다고 보았다. 전자는 낯가림이 심한지 하나의 에너지 상태에는 절대로 한 개의 전자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광자는 같은 에너지 상태에 여러 개의 것이 수용된다. 모든 자리가 만원이 되어 있다면 플러스의 에너지 상태의 전자가 아래로 떨어져 내릴 걱정은 없어진다. 디랙의 가설에 의하면 진공이란 공허한 공간이 아니라 마이너스의 에너지인 전자가 충만해 있는 상태라는 이야기가 된다. 마이너스 에너지의 전자는 그대로는 관측에 걸리지 않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플러스의 에너지 상태로까지 끌어올려주면 보통의 전자로서 포착할 수 있다. 


진공을 무대로 감마선(에너지)이 소멸되면 대신 입자(질량)가 생성된다. 전자와 양전자는 반드시 쌍으로 나타난다. 전자와 양전자가 충돌하면 쌍소멸이 일어나며 감마선이 발생한다. 디랙이 예언한 양전자가 관측된 것은 1932년이다. 반양성자가 발견된 것은 1955년이다. 모든 입자가 반입자를 갖는다. 광자는 자기 자신이 반입자다.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이 생긴 것은 어째서일까? 10억 개 당 하나꼴의 비대칭이다. 붕괴 방식에 미세한 차이가 생긴 결과다. 상대를 찾지(만나지) 못한 입자만이 살아남았다. 반입자가 거의 없어졌을 때 우주에는 입자만이 남았다. 우주가 탄생했을 때 모든 힘은 서로 구별이 되지 않았다. 


팽창과 더불어 중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이 분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물질의 근원이 되는 기본 입자(우주의 부품)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그것에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우주에 별이나 생명은커녕 원자조차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빛이 힘이다. 별의 형성에 있어서 중력 상수 G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별은 우주 공간에 떠돌아 다니는 가스가 중력의 작용으로 서로 끌어당겨져서 수축하는 데서부터 태어난다. 수축이 진행되면 가스 덩어리의 밀도가 충분히 높아지면서 중심부에서 수소 핵융합이 일어나고 이때 헬륨이 생성된다. 이때 막대한 에너지가 광자(감마선)로서 방출된다. 마하자면 태양(항성)이 되기 위한 점화 스위치가 눌려지는 것이다. 


발생한 감마선은 별의 내부에서 가스와 충돌하여 조금씩 에너지를 잃어간다. 상실된 에너지는 열로 전환한다. 이로써 별의 중심부에서 온도와 압력이 높아진다. 그 결과 중력에 의한 가스의 수축에 제동이 걸린다. 중력에 의한 수축과 핵융합의 균형이 잡혀 태양은 수 십억년에 걸쳐 안정 상태로 정착한다. 에너지를 잃은 감마선은 서서히 파장이 길어져서 별의 바깥층 부분에 도달할 무렵에는 가시 광선으로 모습을 바꾸어 우주로 복사된다. 중력 상수가 현재 값보다 컸다면 가스 수축은 멎지 않고 진행되어 감으로써 태양은 짧은 기간에 연소되고 만다. 우주에는 짧은 수명으로 빛을 잃어버리는 별이 연달아 태어났다가 사라져 가게 된다. 중력 상수가 현재 값보다 작았다면 가스 수축이 뜻대로 되지 않으며 우주에 반짝이는 별들이 태어날 가능성은 없어진다.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태어난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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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 -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참된 예배와 증언, 어린 양을 따라 새 창조로 나아가다
마이클 J. 고맨, 박규태 / 새물결플러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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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은 읽기 어렵고 위험한 책으로 알려졌다. 계시록의 내용을 근거로 말세, 종말, 대환난, 심판, 666, 적그리스도 등의 말이 유포되고 있다. 유사 이래 늘 그랬지만 요즘 들어 특히 본격화하고 있다. 신약 신학자 마이클 고먼(Michael J. Gorman; 1953 - )의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는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참된 예배와 증언을 부제로 하는 책이다. 시민 종교란 세상 권력을 섬기는 종교를 말한다.(2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시민 종교는 이전의 제국, 초강대국 행사를 하는 나라, 보통 국가 심지어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도 발견된다.(114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책이 적그리스도의 정체 또는 주님이 재림하실 날을 놓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아울러 휴거 때 뒤에 남겨질질 모른다는 두려움을 조장하거나 자기 도취적인 종말 대비를 강화하는 식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어내는 태도에 맞설 대안을 찾는 이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고 말한다.(30 페이지) 


Reading Revelation Responsibly라는 수식어가 눈에 띈다. 요한계시록 책임감 있게 읽기라는 의미다. Re로 시작하는 세 단어가 나란히 들어선 것이 경쾌하게 여겨진다. 요한계시록을 책임감 있게 읽는다는 말은 요한계시록을 미래를 위한 극본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극본으로 읽는다는 의미다.(351 페이지) 저자는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 시대 정황이 달라져도 늘 신선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나 요한계시록의 경우에 어떤 해석들은 다른 해석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기독교에 부합하지도 않고 건강하지도 않다고 지적한다.(26 페이지)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로마의 아시아 속주(屬州)에 자리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형식의 경전이다. 일곱 교회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이다. 


저자는 에베소가 출발점인 이유는 그곳이 요한이 유배당하기 전 그의 사역 거점이었기 때문이요/ 이거나 그곳이 유배지인 밧모섬과 가장 가깝기 때문일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제목 후보들 가운데 ‘어린 양을 따라 새 창조로 나아가다‘란 부제를 가장 선호한다고 말한다.(53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요한계시록의 장르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다른 문학 양식의 특징을 모두 가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묵시(默示)는 저항 언어이자 저항 문학이다. 미국의 신약 학자인 리처드 호슬리는 유대 묵시 문헌 저자들은 세상 종말이 아닌 제국의 종말을 고대했다고 말한다. 호슬리에 의하면 그들은 사람들이 예상한 우주 용해(溶解; 우주가 녹아 없어짐)라는 그늘에 살지 않고 이 땅이 새롭게 되어 인간 사회의 삶이 새로워지기를 고대했다.(58 페이지) 


신학자 미첼 레디쉬(Mitchell Glenn Reddish)는 요한계시록 언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은 정보를 전달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요한이 체험한 것을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중요한 점은 ’상징 언어를 어떻게 볼까?‘이다. 상징 언어는 뭔가를 일깨워주며 풍부한 의미를 표현한다. 상징 언어는 산문이 쓰는 언어가 아닌 시가 쓰는 언어다. 상징은  비록 초월성을 지녔더라도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즉 상징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허구가 아니며 상징이 지시하는 언어는 문자와 딱 들어맞지 않아도 실존하는 세계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사람들조차 요한계시록의 상징을 상징으로 여기면서도 메뚜기는 헬리콥터요, 뿔이 열 개 달린 짐승은 다시 뭉친 로마 제국인 유럽 연합을 가리킨다는 식으로 해석한다고 지적한다.(67 페이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언에 대해 바르게 아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의 전통을 살펴보면 예언은 오로지 미래에 있을 일만을 천명하거나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예언은 그런 것을 천명하고 미리 이야기하는 것을 아예 주된 내용으로 삼지도 않는다. 오히려 예언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구체적 역사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거나 그들에게 도전을 던지는 말을 이야기한다. 선지자들은 위기 때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한다.(72 페이지) 이사야 6장, 에스겔 1장처럼 구약 선지자들은 때로 환상을 체험하는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이 이들을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요한도 주의 날에 체험한 환상(요한계시록 1장 9 – 20절) 중에 그가 본 것을 기록하라는 사명을 받았다. 


새 바벨론(로마) 관원들은 분명 요한의 신실한 증언을 문제삼아 그를 밧모섬에 유배했다.(71 페이지) 종교 업무와 정부 업무를 맡은 관원들은 요한의 증언은 신을 모독함으로써 정치 질서와 사회 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보았다.(78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중요한 점은 예배 문학이요 예전(禮典) 문헌이고 저항 문학의 성격은 한 단계 아래다.(75 페이지) 요한도 골로새 사람들과 에베소 사람들에게 서신을 보낸 다른 사도처럼 순수하게 서신 형식만을 따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이 도미티아누스 치세기 말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라 말한다. 3장에서 저자는 요한계시록이 가진 예전(禮典)과 신정(神政) 차원에 대해 논한다. 이 두 차원은 고대의 초강대국을 비판하는 고전 텍스트의 구성 요소이자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특히 이 시대 세계 초강대국인 나라 안에 또는 그 나라 가까이 사는 이들에게 전하시는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다.(85 페이지) 


이교도 불신자들은 예수를 주라 고백하면서 그리스 – 로마에서 이루어지던 종교, 사회 정치 활동과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을 애국심이 없고 신을 섬기지 않는 행위로 보았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동업자에게 따돌림 당했고 정부 관원에게 조사를 받기도 했다. 요한계시록 2장에는 버가모의 안디바가 폭도 손에 또는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기록이 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비판하는 대상은 제국의 우상 숭배(시민 종교)와 불의(군사와 경제와 정치와 종교 쪽의 억압), 특히 로마의 우상 숭배와 불의다. 그러나 십중팔구 요한계시록은 국가의 조직적 핍박이나 대중이 그리스도인에게 광범위하게 자행하고 있는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일상적인 제국 즉 매일 우리가 씨름하는 여러 악, 불의 그리고 그릇된 충성에 대한 반응으로 읽어내는 것이 더 낫다. 


요한계시록에서 중심이자 중핵을 이루는 환상은 요한이 하나님과 어린 양을 본 환상 특히 하나님과 어린 양을 예배하는 환상이다.(90 페이지) 요한계시록은 첫 번째 계명을 신실히 지키라는 예언자의 요구로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요구이자 거짓인 모든 신을 버리라는 요구다. 요한계시록 본문에는 수많은 찬미와 예배 노래들을 표현해놓은, 신학시(神學詩)가 지닌 에너지가 힘차게 고동친다.(91 페이지) 송영(찬양) 본문들과 환호라 불리는 것들도 있다. 요한계시록은 예전을 따라 축도와 마지막 아멘으로 끝을 맺는다. 요한계시록은 환상과 기도의 융합체다.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지금도 이어지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동참하라는 요구인 동시에 예배로 드려지는 거룩한 드라마를 펼쳐 보인 텍스트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이야기, 하나님의 선교를 시작하라는 소환장이기도 하다.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사실을 모르면 어느 누구도 요한계시록을 읽을 수 없다. 요한계시록은 겹치고 동시성을 띠고, 서로 뒤엉켜 연결되어 있는 몇몇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요한계시록의 내러티브는 다섯 가지다. 창조와 재창조, 구속(救贖), 심판, 증언, 승리 등이다. 요한계시록은 로마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로마를 하나님 백성을 대적하는 큰 원수인 도시 바벨론으로 비유하여 묘사한다. 황제 숭배는 도시 종교 또는 시민 종교의 핵심이었다. 로마의 평화 즉 팍스 로마나는 무력을 앞세운 정복, 노예 삼기, 다른 형태의 폭력에 의존한 로마의 통치권 확립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황제 숭배는 소아시아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교회들이 자리한 도시들에 널리 퍼져 있었다.(105 페이지) 


에베소와 서머나에는 황제를 숭배하는 중요 신전이 있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어떤 식으로든 황제를 숭배했다. 요한계시록은 신정적인 텍스트다. 이 책은 누가 참 하나님이신지, 그리고 하나님과 사회 정치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옳고 그른 관계들을 놓고 여러 가지 주장을 제시한다. 요한계시록은 제국의 정치 신학과 이 정치 신학의 바탕이 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도전한다. 아울러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과 어린 양만이 참 주권자며 모든 복의 근원이시며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분명히 밝힌다. 더욱이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진정 누가 주권자이신지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이 행사하시는 주권이 어떤 종류인가 일러준다. 그 주권은 많은 이들이 폭력 및 강압과 거리가 먼 어린 양의 권세라고 불러온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어디에서나 또 어떤 식으로든 폭압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세상 권력을 비판하는 책으로, 특히 사람들이 신성하다고 여기고 섬기며 충성하는 세상 권력을 비판하는 책으로 읽는 것이다.(111 페이지) 저자는 최근 미국이 베네수엘라, 그린란드를 대하는 방식에도 참고가 되는 이야기를 한다.(’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가 나온 것은 2014년이다.) 저자는 미국의 체제를 세속 칼뱅주의로 규정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속 칼뱅주의는 부지런한 노동과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적절한 너그러움이 결합하면 반드시 훨씬 더 큰 자유와 번영을 얻으며 이 자유와 번영을 하나님이 복을 베푸시는 표지로 간주하지만 이면에 군사력 만능주의와 신성한 폭력이라는 신화가 존재한다고 말한다.(117 페이지) 


이런 신화는 곧 미국이 역사 속에서 예외적 존재이자 메시아 역할을 할 위치에 있다 보니 평화로운 수단이 바람직하지 않거나 소용없을 때는 미국이 폭력을 사용해도 좋다고(원주민들을 죽이거나 어떤 나라를 침공하거나 전쟁을 벌이거나 다른 식으로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고)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확신, 심지어 폭력을 사용하라고 명령하셨다는 확신을 말한다. 신성하다고까지 말하는 이런 폭력은 다양한 세력 팽창의 정당성을 제공해 주었고 요 근래에는 자유와 정의를 보호하고 증진한다는 메시아적 사명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을 예전(禮典) 텍스트이면서 신정(神政) 텍스트로 규정한다. 한 분이신 참 하나님,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대안(代案)이기에 필연적으로 세상 권력에 중점을 둔 정치적 믿음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126 페이지) 전통적인 우상이 아프로디테, 아스클레피오스, 디오니소스, 마르스, 카이사르 등이라면 오늘날의 그것은 성(性), 건강, 건강하고 단단한 몸, 쾌락, 전쟁, 힘, 안녕을 비롯한 것들이다. 


저자에 의하면 슬프게도 이런 우상을 따르는 이들 대부분이 교회에 속해 있다. 요한계시록은 우상 숭배를 회개하고 그로부터 돌아서기를 요구한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가 실제로 재림하시기 전에 그 예비 조치로서 은밀히 교회를 하늘로 들어 올리시리라는 말이 없다고 말한다.(133 페이지) 요한계시록은 현실에 순응하는 교회에는 도전을 던지고 핍박 받는 교회에게는 위로를 전한다. 요한계시록은 신학시적이고 신정적인 텍스트로서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이루어질 하나님과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통치, 제국과 시민 종교를 겨눈 강력한 비판, 그리고 신실하게 저항하고 삶으로 예전을 표현하며 복음을 전할 소망을 가진 공동체 안에서 어린 양을 따르라는 도전을 던지는 권면을 '영감이 넘치는 환상'에 담아 우리에게 전해준다.(134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책이 과거나 미래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요한계시록이 현재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 책이라 말한다.(150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는 세부사항보다 큰 그림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의도는 시험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어 이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끝까지 신실함을 지키면서 헌신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60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드러내는 구절을 인용하지 않은 것은 여기 저기서 한 구절씩 인용한다 해도 요한계시록의 환상이 기진 힘이나 그 환상들이 제시하는 신학적 주장의 완전한 의미는 물론 그런 환상들이 통합하여 한 책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미치는 효과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61 페이지) 


저자가 제시하는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일곱 가지다. 1) 보좌. 2) 현실로 존재하는 악과 제국. 3) 우상 숭배와 부도덕으로 유혹함. 4) 언약에 신실할 것과 저항을 요구함. 5) 예배와 다른 시각. 6) 신실한 증인;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모범. 7) 임박한 심판과 구원/ 하나님의 새 창조 등이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은 1세기 그리스도인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1세기의 문화 도구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기록한 경전임을 기억하라고 말하며 그렇기에 21세기에 실제로 존재할 것들을 특별히 이미 알려주지는 않으나 우리 시대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요한계시록이 우리 시대에도 중요한 거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이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죽음과 파괴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과 정화를 상징한다고 말한다.(168 페이지) 


일곱 교회에 주는 메시지에는 패턴이 있다. 1) 교회의 사자에게 하시는 말씀. 2) 대부분 여는 환상으로부터 가져온 ‘그리스도를 묘사한 말’. 3) 칭찬. 4) 꾸지람. 5) 도전; 권면/ 경고. 6) 이기는 이들에게 주시는 종말의 약속. 7) 성령에 귀를 기울이라는 권면 등이다. 이를 줄이면 1) 인정. 2) 바로잡음. 3) 동기를 불어넣는 약속이다. 교회는 두 가지 당면한 과제 앞에 있었다. 여러 종류의 협박, 현실에 순응하라는 강력한 유혹이다. 요한은 여러 잡신에게 바친 희생제물을 먹은 교회 사람들에게 영적 음행, 간음을 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경우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는 책망을 받은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라오디게아 근처에는 히에라폴리스 온천이 있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이롭게 한다. 미지근한 물은 맛도 역겹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 본문은 두 극(예수를 따르는 뜨거움과 예수를 거부하는 차가움)의 중간 입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교회는 중용을 따른 교회가 아니라 현실에 철저히 순응하고 타협하는 교회로서 살아남는 데 필요하다면 현실에 순응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그 시대 지배층과 권력자들이 따르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모조리 받아들인 교회다. 


나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으니라는 말을 들으며 차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무관심 또는 떠남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께서 그런 의미의 말을 하셨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웠었다. 일곱 교회를 아우르는 과제는 타협하느냐 마느냐였다. 이런 점에서 요한계시록 18장 4절을 보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거기서 나오라는 말씀이 있다. 요한계시록이 무책임하게 순교를 칭송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1세기에 순교자란 말은 증인을 의미했다. 순교자가 신앙을 지키다가 죽은 증인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은 그 후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주신 일곱 메시지는 죽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를 더럽히는 모든 것을 멀리하는 일을 포함하여 제자의 갈 길을 가라는 것이다.(194 페이지) 


저자는 요한계시록 4장 8절에 나오는 우주의 중심에 앉으신 하나님과 그 주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언급한다. 네 생물, 24명의 장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정체가 아니라 그들이 찬송과 예배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인(印)을 떼기에 합당하신 분 그리고 그 뒤에 그 두루마리를 열어 마지막 심판과 구원을 시작하실 분은 바로 신실함을 지키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부활, 승천하셔서 승리하신 주님이다.(216 페이지) 이 부분을 읽지 못하는 요한계시록 읽기는 문제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은 필요하면 무력도 불사하는 신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경책이 된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신실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나타낸다는 것은 역설이다.(219 페이지)


요한은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란 말을 한다.(요한계시록 5장 6절) 요한은 우상을 숭배하는 죽음의 문화인 강력한 바벨론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 말한다.(요한계시록 17, 18장) 억압과 죽음뿐인 바벨론이 무너지고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 온전함과 생명이 어우러진 새 문화가 대신 들어선다.(요한계시록 21, 22장) 요한계시록의 세 주인공 중 첫 번째는 하나님이다. 알파와 오메가,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다. 두 번째는 어린 양이요 신실한 증인이신 그리스도다. 인상적인 말은 요한은 밧모섬에 있지만 성령 안에 있다는 표현이다.(요한계시록 1장 10절, 4장 2절, 17장 3절, 21장 10절) 


요한계시록이 펼쳐보이는 우주 차원의 묵시극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연이시고 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엇비슷하게 하나님 - 그리스도- 성령을 패러디하여 거룩하지 않은 삼위일체를 이룬 사탄과 두 짐승이 주연에 맞서는 상대역으로 등장한다.(238 페이지) 짐승은 666이라는 특별한 숫자를 가졌다. 사람들은 통상 이 짐승을 적그리스도라 부르지만 요한계시록에 적그리스도라는 말은 없다. 짐승은 지배계급이냐 아니냐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짐승의 표를 받고 경제 활동에 참여하라고 요구한다. 짐승의 표는 제국을 나타내는 슬로건이나 인장, 이미지일 수 있다.(241 페이지) 666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777의 패러디일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신실한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요한은 (입에는) 달콤하지만 (배에는) 쓴 두루마리를 먹는 환상을 본다. 유배당한 요한은 하나님이 다른 이들도 증인으로 부르셨음을 깨닫는다. 증인이 되라는 소명은 어렵고 위험하지만 이 소명에는 지금도 하나님이 보호해주신다는 약속과 장차 하나님이 보상해주시리라는 약속이 함께 따른다.(254 페이지) 요한계시록은 이런 보호를 고대 관습인 인(印)을 찍음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한다. 이 인과 대립하는 것이 짐승의 표다. 하나님이 교회를 보호하신다는 것은 교회가 시험과 고난을 모면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시험과 고난이 불가피한 현실이 되어도 이에 굴하지 않고 보호해준신다는 의미다. 저자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카페테리아 스타일의 기독교와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257 페이지) 


요한계시록은 6장부터 20장까지 줄기차게 전쟁, 기근, 역병, 죽음, 불공정한 시장 행태, 반역을 묘사한다. 이는 모두 우주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기보다 인간이 저지르는 악이다.(265 페이지) 미국의 성서학자 브루스 메츠거는 우리는 흰 말, 정복자의 입에서 나오는 칼, 죽은 천사들의 살을 포식하는 새들을 보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이들은 철저하게 상징이다. 이 환상들의 1차 목적은 두려움을 불어넣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뿐 아니라 제국을 동원하여 잠자는 자들을 깨우려는 데 있다. 요한계시록의 말 탄 네 사람, 어린 양이 연 두루마리의 일곱 인 중 첫 네 인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잘 알려진 사건들을 상징한다. 정복, 평화의 붕괴, 전쟁과 죽음, 불공정한 경제 체제, 기근과 질병 등이다. 이는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지만 근원은 결국 죄가 낳은 결과다.(269 페이지) 물론 그것은 하나님이 내리신 벌이기도 하다. 


저자는 요한계시록 19장 13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저자는 그의 적들과 싸우기 전에 이미 옷이 피에 젖었으니 이는 그리스도가 흘린 피라고 말한다.(272 페이지) 오늘 서구 세계에서 우리 개인, 우리 가정, 우리 교회를 형성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에 어긋나는 소비만능주의, 하나님과 인간을 거스르는 가치들이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에 폭력이 많음을 지적하며 그러나 폭력을 완화시키는 일곱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1) 제국이 몰락을 자초하는 것은 정의가 작동함을 뜻한다. 2) 자비가 파멸을 누그러뜨린다. 이는 회개에 목적이 있음을 말한다. 3) 죽임을 당하셨다가 하나님이 일으키신(다시 살리신) 어린 양의 모습에서 생명을 주고 폭력을 쓰지 않고 로마에 맞섬으로써 승리를 얻으신 하나님의 방법을 본다. 4) 어린 양이 거둔 최종 승리는 군사적인 행동이 아니라 다른 이를 죽이기는커녕 도리어 다른 이들을 위하여 죽은 이로부터 나온 계시와 설득과 심판의 말씀의 형태로 다가온다. 5)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이 회개를 거부할 때에 비로소 다가온다. 6) 요한계시록을 아우르는 강령은 구원이지 복수심에 불탄 파괴가 아니다. 7) 하나님의 백성은 제국을 폭력으로 뒤엎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과 신실한 삶으로 제국에 맞서라는 소명을 받는다. 


저자는 특정한 재해를 하나님이 일부러 쏟아내신 진노요 심판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속속들이 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는 오만이라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을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라 냉혹하다 할 만큼 정의로우신 분으로 묘사한다.(299 페이지) 저자는 요한이 새 예루살렘을 사각형으로 묘사하다가 육각형으로 묘사했다고 말한다. 당시 사람들이 사각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지성소가 육각형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여러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을 보여주는 환상에서 출발해 모든 나라가 와서 예배하리라는 약속을 거쳐 구속(救贖)받은 인류를 보여주는 환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곳에서는 혼돈과 악을 상징하는 바다가 없어졌고 죽음이 없다. 눈물, 애통함, 곡함이 없다. 악하거나 부정하거나 저주받은 것들/ 사람들이 없다. 성전이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새 예루살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해나 달이나 다른 발광체가 없으며 별도 없다. 닫힌 문이 없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물리적 세계에 변형이 일어난다는 의미다. 


요한계시록 21, 22장이 제시하는 각본을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회 정의, 개인 구원과 상관없는 사회 정의를 일러주는 환상 정도로 축소하여 읽으면 안 된다. 요한계시록은 도피주의 종말론도 허용하지 않지만 하나님이나 개인 구원과 상관없이 사회정의나 이야기하는 본문으로 보는 흔한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다.(325 페이지) 우리는 짐승과 어린 양, 제국의 힘과 어린 양의 권세를 동시에 섬길 수 없다. 하나님과 어린 양을 예배하면서 동시에 시민 종교를 섬길 수 없다.(335 페이지) 저자는 정치권력, 경제력, 군사력을 삼위일체 거짓 신이라 부른다.(338 페이지)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요한계시록 3장 3절) 입은 옷을 늘 깨끗하게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요한계시록 22장 4절) 


성경의 어느 한 책이 말하는 영성이 성경 전체가 들려주는 증언을 대신할 수 없듯 요한계시록도 분명 성경에서 유일한 책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의 영성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은 정경의 나머지 부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들려주는 묵시 – 예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오직 요한계시록만이 일으킬 수 있는 어렵고도 아주 예리한 질문을 던지지 못할 수 있으며 요한계시록만이 아주 분명하게 계시하는 것들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348 페이지) 저자는 요한계시록을 보고 들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배하고 증언하라고 말한다. 이어 나와서 저항하라고 말한다. 이어서 따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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