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연천군 전곡읍에서 갈 수 있는 외지(外地) 도서관으로 덕정(양주시), 적성, 파평, 문산(이상 파주시) 등을 들 수 있다. 덕정 도서관은 식사가 가능한 휴게실이 있어 좋고, 적성도서관은 가까워서 좋고, 파평도서관은 아늑하고 작아서 좋고, 문산도서관은 1시간 이상 소요되지만 시설이 현대식이고 소장 도서가 많아 좋다.

 

오늘 다시 파평도서관에 다녀왔다. 가지고 간 책은 그제 문산도서관에서 빌린 '주기율표의 핵심', 이론물리학자 매트 스트래슬러가 쓴 '불가능한 바다의 파도'. 500 페이지 정도 되는 '불가능한 바다의 파도'를 하루에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부지런히 읽다 보면 의외의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 두꺼우면 전체를 다 정리하려 하기보다 주요 내용들로부터 영감을 얻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하다. '불가능한 바다의 파도'의 부제는 '일상적 삶은 어떻게 우주의 바다와 연결되는가?'.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단단한 암석을 통과하려면 강력하고 파괴적인 저항에 부딪히지만 지진파는 저항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저자는 암석의 입장에서 우리는 이방인과 같은 존재이지만 지진파는 암석 그 자체의 진동이라는 말을 했다. 저자는 지진파가 암석의 한 측면이고 음파가 공기의 한 측면이듯 우리는 우주의 한 측면이라 말한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말한 바대로 우리가 휘어지고 늘어지고 파동을 일으키는 빈 공간을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거리낌 없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불가능한 바다의 파도'는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만큼 흥미로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류의 책이 좋다. 저자는 가급적 간결하게 풀어내려 했지만 아인슈타인이 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문구를 빌려 "필요 이상으로 단순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난해한 개념들을 새롭게 풀어내는 데 소질이 있어서 나름으로 물리학자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항상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냈기에 그들의 복잡한 사유를 빠르게 정리하고 풀어내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자신의 분야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오랜 시간 물리학자로서 살아오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 이해의 길을 찾을 수 있고,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도서관, 하면 카를 마르크스와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난다. 두 사람 모두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집필을 한 대표 인물이다. 특히 마르크스는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40년 가까이 대영박물관 도서관을 거의 매일 찾았다.

 

나는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출근을 비롯 이런저런 일들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제한적 출입도 좋다. 감사한 일이다.


핵심을 정리하면 오늘날 우리는 지구 중심을 향하는 중력이 우리를 튕겨 나가게 하는 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안다.(53 페이지) 지구의 자전은 4분마다 1도씩 휘어지는 거의 직선에 가까운 등속운동이다. 상대성 원리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직선에 가까운 등속운동을 감지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우리는 지구 자전을 느끼지 못한다.(54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2017년 출간(원서 기준), 양자중력을 연구하는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이다. 로벨리는 이 책보다 3년 먼저 나온(원서 기준)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저자에 의하면 공간의 양자들의 극도로 작은 규모에서 볼 때 자연은 보편적인 시간을 지휘하는 단 한 명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 리듬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는 독립적으로 그 자신의 리듬에 따라 춤을 추는 각각(各各)이 있을뿐이다.

 

저자는 양자중력을 연구하는 물리학은 극단적이지만 너무 아름다운 풍경 즉 시간이 없는 세상을 파악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때로는 번뜩이지만 때로는 혼란스러운 아이디어들이 펄펄 끓는 용암이 될 것이라 말한다. 물체가 떨어지는 것은 시간 지연 때문이다.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는 곳, 가령 행성 사이의 공간에서는 물체가 추락하지 않고 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구의 표면에서는 사물이 자연스럽게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쪽으로 향한다.

 

세상은 사령관의 구령에 맞춰 움직이는 군부대의 대형처럼 균일한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차이가 나타날 때마다 열()이 관여한다는 글을 보자. 이 글이 가장 핵심일 수 있다. 공이 이동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추는 것은 마찰 때문이고 이 마찰이 열을 생산한다.(34 페이지) 그리고 열이 있는 곳에서만 과거와 미래가 구분된다. 시간에 대한 책답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는 클라우지우스, 볼츠만 이야기가 나온다. 엔트로피가 매개가 된 결과다.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말한 바는 열은 차가운 물체에서 뜨거운 물체로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열은 분자들이 일으키는 미세한 동요(動搖). 자연의 무질서가 증가한다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의미로 언제 어디서나 친숙하게 일어난다. 궁금한 것은 과거에는 왜 엔트로피가 낮았을까?‘. 저자는 우주 곳곳에 잘 정의된 지금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환상이자 우리 경험의 부적절한 외삽(外揷)이라 말한다.(53 페이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고요 속에서 아무런 신체적 경험이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면 우리는 즉시 어떤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한다고 말했다.(73 페이지) 뉴턴은 사물이나 사물의 변화와 상관없이 진짜 시간은 흐르고, 모든 사물이 멈추고 우리 영혼의 움직임마저 얼어붙어버려도 진짜 시간은 냉정하게 그리고 동일하게 계속 흐른다고 보았다.(74 페이지) 라이프니츠는 시간은 사건이 발생한 순서일뿐 자율적인 시간 같은 것은 없다고 보았다.

 

뉴턴 이전에는 누구도 사물과 상관없는 시간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뉴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위에 있는 것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정의한 공간이 상대적이고 겉보기이며 통속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공간 그 자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존재하는 공간이 절대적이고 참되며 수학적이라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과 뉴턴의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보석 같은 연구로 통합되었다. 갑자기 머리에 섬광이 번쩍이듯 아인슈타인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의 생각이 모두 옳았음을 알게 된다.

 

저자의 전공은 시간의 양자적 특징을 연구하는 학문을 양자중력이다. 아직까지 과학 사회의 승인을 얻고 실험을 통해 확인된 양자중력 이론은 없다. 양자중력의 주요 세 관점은 물리적 변수의 입자성, 미결정성, 관계적 양상이다. 입자성은 자연에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빛은 광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 속 전자들의 에너지는 특정 값 외에 다른 값은 취할 수 없다. 밀도가 아주 높은 물질처럼 아주 깨끗한 공기도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양자역학의 두 번째 발견은 불확정성이다. 전자는 한 번 나타났다 곧이어 다시 나타나는 동안에 정확한 위치를 가지지 않는다. 확률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듯 하다. 이를 위치의 중첩이라 한다. 시공간도 파동처럼 흔들리며 다양한 형태로 중첩될 수 있다. 시공간이 중첩되면 한 입자가 공간에서 널리 퍼질 수 있듯 과거와 미래의 차이도 흔들릴 수 있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전과 후 모두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요동이 아무것도 결코 결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특정한 순간에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결정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미결정성은 하나의 양이 다른 양과 상호작용할 때는 해소된다. 상호작용 중에 전자는 어떤 한 지점에서 구현돼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자는 스크린에 충돌해 특정 지점에 놓여 있던 입자 검출기에 잡히거나 광자와 충돌한다. 이럴 경우 전자는 그 특정 지점에 놓임으로써 구체적인 위치를 얻는다.

 

그러나 이런 전자의 구체화에는 묘한 측면이 있다. 전자는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다른 물리적인 물체와의 관계하에서만 구체화된다. 물리적인 물체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과의 상호작용은 미결정성을 확산시킬 뿐이다. 전자가 특별한 형태로 구체화되는 것을 확률구름이 붕괴한다고 말한다. 시간은 더 이상 일관성 있는 하나의 캔버스가 아니라 관계들의 느슨한 망이 된다. 현재라는 개념은 효력이 없다. 광활한 우주에 우리가 합리적으로 현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다. 실제로 잘 살펴보면 매우 사물다운 사물들은 장기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아주 단단한 돌의 경우 우리가 화학과 물리학, 광물학, 지질학, 심리학에서 배운 바로는 양자장의 복잡한 진동이고 힘들의 순간적인 상호작용이다.

 

돌은 짧은 순간 동안 자신의 형상을 유지하고 다시 먼지로 분해되기 전 자체적으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사물이 아닌 변화를 연구하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프톨레마이오스에서 갈릴레오, 뉴턴, 슈뢰딩거에 이르기까지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사물이 아니라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헨리 넬슨 굿맨(1906-1998)의 말을 인용한다. "사물 자체도 잠깐 동안 변함이 없는 사건일 뿐이다." 시간이 그저 사건을 뜻하는 것뿐이라면 모든 사물은 시간이다. 시간 속에 있는 것만 존재한다. 우리가 이 우주를 통일된 단 하나의 시간 순으로 정리할 수 없다고 해서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여러 변화들이 단일한 시간 순서에 따라 정리되지 않을뿐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은 허상이 아니다. 이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다. 하나의 세계적인 질서에 따라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에너지와 시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엔트로피는 임의의 주관적인 양이 아니라 속도처럼 상대적인 양이다. 물체의 속도는 물체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다른 물체와의 관계 속에서 맺어진 물체의 성질이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엄마가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에게 기차 창문으로 뛰어내려 지상과의 관계 속에서 그곳에 멈추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차와의 관계 속에서 아이가 멈추어야 한다는 뜻이라 말한다.(153 페이지)

 

저자는 아주 먼 과거에 엔트로피가 낮은 것은 우리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 세상을 설명할 때 기술하는 거시적 변수들의 수가 너무 적은 관계로 극적인 희미함이 발생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저자는 우주 초기의 낮은 엔트로피 즉 시간의 화살은 우주보다는 우리로 인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주의 수많은 변수들 가운데 극히 일부분과 상호작용을 하며 그 안에서 우주를 관측한다. 우리가 본 것은 희미한 이미지다. 이 희미함은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우주의 동역학이 희미함의 양을 측정하는 엔트로피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저자는 에너지가 보존된다면 굳이 에너지를 더 만들 필요가 있을까?라고 묻는다. 답은 세상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라는 것이다. 에너지는 열에너지 즉 열로 전환되어 차가운 사물로 이동하는데 여기서부터는 특별한 조치 없이는 에너지를 이전 단계로 되돌릴 수 없고 식물을 자라게 하거나 모터를 돌리기 위해 재사용할 수도 없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는 동일하게 유지되지만 엔트로피는 상승하는데 이 역시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저자에 의하면 불은 나무가 높은 엔트로피 상태로 건너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과정이다. 나무 더미는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가 아니다. 탄소나 수소 같은 구성 성분들이 아주 특별한(질서 있는) 방식으로 결합하여 나무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이 특별한 조합이 깨져야 성장한다. 나무가 불에 타면 이 결합이 깨진다. 나무를 형성한 특별한 구조에서 나무의 구성요소들이 분열하고 엔트로피가 맹렬하게 증가한다. 저자는 간혹 생명이 특별히 질서화된 구조들을 만들어낸다거나 국소적인 영역에서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라고 말한다. 그저 낮은 엔트로피의 음식을 분해하고 소비하는 과정이다. 나머지 우주에 존재하는 스스로 구조화된 무질서 그 자체다.(171 페이지)

 

우주적 존재가 되는 것은 점진적으로 무질서해지는 과정이다. 우주를 섞는 거대한 손은 따로 없고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우주의 각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스스로 조금씩 섞일뿐이다.(172 페이지) 우리는 과정이자 사건들이며 구성물이고 공간과 시간 안에서 제한적이다.(180 페이지) 저자는 내면적 성찰이 아닌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자아에 대한 개념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형성한 프로세스들은 도처에 깔려 있고 기억은 이 프로세스들을 함께 단단히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생존의 기회를 늘린다. 진화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뇌 구조를 선택해 왔다. 우리가 바로 그 선택의 결과물이다.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이 선택이 우리 정신 구조의 핵심이다. 이 선택이 우리에게는 시간의 흐름이다.(186 페이지)

 

시간의 특성을 다룬 최고의 책 중 한 권으로 꼽히는 시간의 방향에서 한스 라이엔바흐(1891- 1953)가 제시한 것처럼 파르메니데스는 시간이 초래한 불안을 피하기 위해 시간의 존재를 부정하려 했고, 플라톤은 시간의 존재를 초월해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상상했으며, 헤겔은 정신의 덧없음을 초월하여 그 충만함 속에서 자신을 아는 순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는 영원의 존재를 상상했고 다수의 신들 또는 하나님 또는 불멸의 영혼들이 거주하기를 바라는 시간을 초월한 이상한 세상을 상상했다.(205, 206 페이지)

 

저자는 시간에 대한 반대의 태도를 보인 헤라클레이토스나 베르그송과 같이 시간에 찬사를 보내는 태도도 많은 철학을 낳은 데 기여했지만 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주지는 못했다고 말한다.(206 페이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를 비교하는 것도 좋겠다.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말을 했다. 이는 동어반복이 아니라 세계에 무엇인가 존재하고 무()는 아니라는 말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라는 명제로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으로서의 생성(生成)을 제시했다.(이정우 지음 세계철학사 1‘ 101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더 많은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제대로 공식화할 수 없는 질문들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60세가 된 시점이다.

 

저자는 예순이 된 지금도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았다. 내 삶을 사랑하지만 인생은 피곤하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나는 죽음이 포상 휴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흐는 56번 칸타타(나는 기꺼이 십자가를 지겠노라)에서 죽음을 잠의 자매라고 불렀다. 죽음은 내 두 눈을 감겨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곧 오게 될 친절한 자매다.”라고 말한다. 저자의 책은 물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책이다. 물론 실존적 이야기에도 비중이 실린 책이다.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읽고 서평을 썼다. 일요일을 틈타 아침 8시부터 읽기 시작해 밤 9시 정도에 서평까지 마무리했다. 무려 16000자나 되는 서평이었다. 출간 당시 구입하려다가 말고 8년이 지난 시점에 빌려 읽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8년이 지나 자신감이 생겨서 읽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제 파평도서관에 있는 것을 보고 어려우면 반납하고 다음 기회를 찾자고 생각하고 빌린 것이다. 8년이 지났지만 물리학 책은 20년전~15년전에 많이 읽었을뿐 그 이후로는 거의 읽지 않았기에 실력이 늘고 말고 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요즘 물리학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지구과학 공부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리학 책은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이 점 때문에 계속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다만 일시적인 호기심의 발로는 아니라 확신한다.

 

어떻든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어렵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그의 다른 책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중고로라도 사서 비치해두고 찬찬히 읽고 싶다. 오늘 읽은 책에 부분적으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설명되어 있어서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를로 로벨리(1956 - )는 철학적 의미가 담긴 물리학 책들을 쓰는 이탈리아 물리학자다. 그의 그런 점은 그가 쓴 책 제목들을 통해 드러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등. 이 가운데 가장 짙은 철학적 뉘앙스를 지닌 책이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다. 저자는 밀레토스 학파 이야기부터 한다. 밀레토스 학파는 판타지나 고대 신화, 종교 등에서 답을 구하는 대신 관찰과 이성을 면밀하게 사용함으로써, 무엇보다 비판적인 사고를 날카롭게 발휘함으로써 우리의 세계관을 거듭 바로잡고 통상적인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실재의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여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선언한 학파다.


한편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하늘에 떠 있으며 지구 아래로도 하늘이 계속되고 지상의 물이 증발해 빗물이 된다는 점을 이해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우주 전체는 끝없는 공간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속에서 무수한 원자들이 돌아다니고 공간은 한계가 없으며 위도 아래로 없고 중심도 경계도 없다고 보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맞서 싸웠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다른 사상을 옹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이후 몇 세기 동안 지식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데모크리토스의 자연주의적 설명을 거부했고 목적론적 세계 이해를 옹호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만일 대격변이 일어나 모든 과학 지식이 소멸되어 단 한 문장만을 다음 세대에 전해줄 수 있다면 자신은 모든 것은 세상은 원자로, 즉 서로 조금 떨어져 있을 때에는 끌어당기지만 서로 압착되면 밀쳐내면서 영구 운동을 하며 돌아다니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화학에서 많은 단서가 나왔다. 화학 물질들은 몇 가지 원소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어진 정수비에 따라 형성된다. 화학자들은 물질이 원자들의 일정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분자들로 구성된다는 발상을 고안해냈다. 가령 물은 수소 둘과 산소 하나의 비율로 이루어진다. 이를 믿지 않은 사람의 대표는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에른스트 마흐였다.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로 아인슈타인에게 큰 영감을 준 그는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의 강의가 끝나자 “나는 원자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선언했다. 1897년의 일이다.(이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한 사람이 아주 근시안적나면서 또 다른 면에서는 선견지명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말한다.; 82 페이지) 철학자 이정우는 베르그송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볼츠만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고 그의 유명한 ‘기체론 강의’를 읽었다고 말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볼츠만의 시대는 실증주의의 시대였고 에른스트 마흐의 그늘 아래 있던 많은 과학자들이 볼츠만의 가설들을 형이상학이라며 비웃었고 볼츠만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의 길을 택했다.(‘탐독’ 245 페이지) 이정우 교수는 모든 과학이 처음에는 형이상학이었다고 말하며 학문의 역사는 형이상학과 과학의 길항(拮抗) 과정이라 덧붙인다.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자 가설이 나온 것은 아인슈타인에 의해서였다. 1905년의 일이다.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데모크리토스의 서적들이 전부 유실된 사건을 고대 고전 문명의 몰락을 가져온 가장 큰 지적 비극이라 선언한다. 아쉽게도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데모크리토스의 원본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재구성한 것들이다. 저자는 혹시 데모크리토스의 작품들이 모두 살아남아 전해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우리 문명의 지성사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37 페이지) 칼 마르크스의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라는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클리나멘이란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원자의 움직임이 충돌에 의해 엄격하게 결정된다고 보았던 스승 데모크리토스와 달리 후계자인 에피쿠로스는 스승의 엄격한 결정론을 수정하여 고대 원자론에 비결정성을 도입했다. 


클리나멘(Clinamen)은 에피쿠로스의 원자 이론을 변호하기 위해 루크레티우스가 지은 원자의 예측할 수 없는 이탈이란 뜻의 라틴명이다. 루크레티우스에 의하면 이 이탈은 온 세상을 통해 살아 있는 생명체들에게 자유의지를 제공한다. 저자는 라틴어 시인 루크레티우스를 논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제자인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고수한 그의 운문 작품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루크레티우스가 노래한 데모크리토스의 세계에는 신들에 대한 두려움, 종말, 목적, 우주의 위계, 지구와 하늘 사이의 구별이 없다. 그는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 속에 평온하게 빠져들어 우리가 자연의 깊은 한 부분임을 인식한다. 남자, 여자, 동물, 식물, 구름은 모두 위계가 없이 놀라운 전체의 유기적인 조각들임을 인식한다. 프랑스 인식론자 미셸 세르의 ‘물리학의 탄생과 루크레티우스의 텍스트’도 읽어야 할 책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학, 자연학 등에서 놀라운 과학적 성과를 냈다. 우리가 아는 최초의 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으로 그것은 결코 나쁜 물리학이 아니다.(44 페이지) 실험과학은 갈릴레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실험은 간단했다. 물체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즉 물체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본성적 운동을 하도록 놓아두고서 떨어지는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다. 결과는 중대했다. 사람들은 모두 물체가 항상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낙하 초기에 속도는 점점 증가한다. 이 단계에서 일정한 것은 낙하 속도가 아니라 가속도이다. 속도가 증가하는 비율이 일정한 것이다. 마법처럼 이 가속은 모든 물체에서 똑같은 것으로 드러난다. 갈릴레오가 측정한 그 값은 약 9.8m/s²이다. 물체가 낙하하는 동안 속도가 1초에 9.8m/s 만큼 증가한다는 것이다. 공전하는 물체는 계속 방향을 바꾼다. 방향 변화는 가속이다. 작은 달은 지구 중심 쪽으로 가속되는 것이다. 뉴턴이 계산한 값은 9.8m/s²으로 갈릴레오의 계산 값과 일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정한 사물의 본성적 자리는 없다. 세계의 중심도 없다. 전자기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마이클 패러데이와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에 의해 이루어졌다. 마이클 패러데이의 직관은 이것이다. 우리는 뉴턴이 가정했던 것처럼 힘들이 떨어져 있는 물체들 사이에 직접 작용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공간에 퍼져 있는 어떤 실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전기와 자기를 띤 물체에 의해 변형되고 그 다음에 물체들에게 밀거나 당기면서 작용한다. 패러데이는 이 실체가 존재함을 직관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장(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뉴턴은 자신의 걸작(무생물인 물체가 비물질적인 다른 어떤 것의 중재 없이 다른 물체에 작용을 가하고 상호 간의 접촉 없이 다른 물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발견) 자체를 부조리라고 여기며 독자들의 판단에 맡겼다. 


그렇다면 장이란 무엇일까? 패러데이는 무한히 가는 선들의 다발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고 상상한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을 채우고 있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거미줄이다. 그는 이 선들을 역선(力線; lines of force)이라고 불렀다. 이 선들이 어떤 식으로 힘을 나르기 때문이다. 마치 밀고 당기는 케이블처럼 역선들은 전기력과 자기력을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전달한다. 장이라는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면서 패러데이는 뉴턴의 우아하고 단순한 존재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다. 세계는 더 이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입자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배우인 장이 무대 위에 등장한다. 패러데이는 자신이 내딛는 이 한 걸음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중력 정도를 제외하고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것들이 맥스웰 방정식으로 잘 기술된다. 맥스웰은 자신의 방정식에 의해 패러데이의 역선들이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예측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는 패러데이의 역선들의 파동이 움직이는 속도를 계산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빛의 속도와 정확히 같다는 것이 밝혀진다. 맥스웰은 빛이란 패러데이 선들의 빠른 진동일뿐이라 이해한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 빛이 무엇인지도 일거에 알아낸 것이다. 추가해 설명하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전기력과 자기력을 나르는 것이다.(80 페이지)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색으로 차 있다. 그런데 색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빛이라는 전자기파의 주파수 즉 진동의 속도이다. 만일 빛 파동이 더 빨리 진동하면 빛은 더 파랗게 된다. 조금 더 느리게 진동하면 빛은 더 붉게 된다. 우리가 지각하는 색은 서로 다른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식별하는 우리 눈의 수용체가 생성해낸 신경 신호의 심리 물리적 반응이다. 정동욱의 ‘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를 읽을 필요가 있다. 빛은 이처럼 패러데이 선들의 거미줄의 빠른 진동이다. 우리가 패러데이 선들을 못 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진동하는 패러데이 선들만 본다. 본다는 것은 빛을 지각하는 것이고 빛은 패러데이 선들의 움직이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옮겨주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공간 속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뛰어넘어갈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전류 기술은 전자기파라는 물리적인 존재자의 사용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발견된 것이 아니다. 맥스웰이 예측해낸 것이다. 패러데이가 코일과 바늘로부터 얻은 직관을 설명할 수 있는 수학적 기술을 찾으면서 알아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론 물리학의 탁월한 힘이다. 세계는 달라졌다. 세계는 더 이상 공간 속의 입자들만이 아니라 공간 속의 입자들과 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수십년 뒤에 한 유태인 청년, 한 세계 시민이 그로부터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이는 마이클 패러데이의 뜨거운 상상력 훨씬 너머까지 나아갈 것이며 뉴턴의 세계를 그 바닥까지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화성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1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저자는 이를 시드니에서는 사람들이 우리와 반대로 서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이상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럼 남반구의 시드니 사람들은 왜 떨어지지 않는가, 란 질문에 대해 알아보자. 중력은 아래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중심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어떻든 이는 화성에서 일어난 사건을 일러 바로 지금이라 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 용어로 절대적 동시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를 연장(延長)된 현재가 있다고 말한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연장된 현재의 지속이 2백만년이다. 이 동안 일어나는 일은 우리와 관련해서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이란 하나라는 개념으로 유명하다. 시공간이란 개념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전자기장으로 하나가 되는 것과 맥락이 같다. 시공간이란 개념은 질량과 에너지도 같은 방식으로 하나로 결합된다. 아인슈타인이 안 것은 질량과 에너지가 동일한 존재자의 두 면이라는 점이다. 자기장과 전기장이 동일한 전자기장의 두 면이고 시간과 공간이 시공의 두 면인 것처럼. 이는 질량이 그 자체로 보존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너지도 독립적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에너지와 질량은 서로 전환된다. 질량과 에너지의 총합이 보존될뿐이지 각각 따로인 것은 아니다. 지금 여기라는 말은 뜻이 통하지만 온 우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가리키기 위해서 지금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물리학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이론이며 양자중력의 첫째 기둥이다.(79 페이지) 


앞에서 말한 패러데이의 해법은 중력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즉 중력장이 중력을 중력을 전달하는 것이다. 뉴턴의 공간은 중력장이고, 중력장이 곧 뉴턴의 공간이다.(83 페이지) 그러나 평평하고 고정된 뉴턴의 공간과 달리 중력장은 장이기에 맥스웰의 장이나 패러데이의 선들처럼 방정식에 따라 물결치는 어떤 것이다. 이런 세계의 단순화에 의해 도출되는 결론에 따르면 공간은 더 이상 물질과 다르지 않다. 공간은 물결치고 유동하고 휘고 비틀리는 실재 존재자다. 구부러진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공이다. 지구는 신비로운 원거리 힘에 이끌려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경사진 공간 속에서 곧바로 나아간다. 아인슈타인이 자기보다 더 수학에 정통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온갖 고생 끝에 완성한 방정식에 의하면 시공의 리만 곡률은 물질의 에너지에 비례한다. 시공은 물질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휜다는 것이다. 


이 하나의 공식에 눈부신 우주가 들어 있다. 아인슈타인은 행성의 움직임이 케플러와 뉴턴의 방정식이 예측한 대로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똑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별 가까이에서 공간이 어떻게 굽어지는지 기술한다. 이 굽음 때문에 빛도휘고 시간도 휜다. 아인슈타인은 지구의 높은 고도에서는 시간이 더 빨리 흐르고, 낮은 고도에서는 더 느리게 흐를 것이라 예측했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처럼 지구도 시공을 비틀어 그 주위에서 시간이 느려지게 한다. 


입자성, 비결정성, 관계성은 양자역학의 세 가지 중심 아이디어다. 에너지가 유한한 묶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아이디어는 당시에 알려져 있던 모든 것들과 맞지 않았다. 당시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변한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저자는 도대체 전자가 특정 진폭으로만 움직이고 다른 진폭으로는 움직이지 않을 까닭이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막스 플랑크에게는 이것이 좀 이상한 계산상의 수법이었고 실험실 측정 결과를 반영하는 데에는 유효했지만 그 이유는 전혀 불명확했다. 광전효과는 빛의 강도(에너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빛의 색(진동수)에 따라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고전 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이는 주위의 에너지 총량과 상관없이 개별 에너지 알갱이가 충분히 큰 경우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자동차 지붕에 떨어지는 우박 덩어리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자동차 지붕이 움푹 파일지를 결정하는 것은 떨어지는 우박의 총량이 아니라 개별 우박 덩어리의 크기다. 많은 양의 우박에 쏟아져도 알갱이가 모두 작으면 아무런 피해도 없다. 마찬가지로 빛이 아주 세더라도(전체에너지가 크더라도) 빛의 개별 알갱이 크기가 너무 작으면 (빛의 진동수가 너무 낮으면) 전자는 원자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이 에너지 묶음을 빛을 뜻하는 그리스어 포스를 빌어 포톤(광자)이라고 부른다. 광자는 빛 알갱이 즉 빛의 양자이다. 처음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동료들에 의해 젊은 과학자의 치기로 여겨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는 찬사를 보냈지만 광자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빛이 전자기장의 파동이라는 것을 이제 겨우 납득했는데 그 파동은 또 어떻게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건지? 빛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바탕에는 입자성이 있다. 플랑크가 양자역학의 생부라면 아인슈타인은 그 이론을 낳고 기른 생모라고 할 수 있다. 색은 빛의 진동수 즉 패러데이 선들이 진동하는 속도다. 빛을 방출하는 전하들의 진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전하들은 원자의 내부를 돌고 있는 전자들이다. 그래서 스펙트럼을 연구하면 전자들이 핵의 주위에서 어떻게 진동하는지를 알 수 있고 역으로 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진동수를 계산하여 각 원자의 스펙트럼을 예측할 수도 있다. 뉴턴 역학에서는 전자는 그 어떤 속도로도 핵 주위를 돌 수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진동 수의 밑도 방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원자가 방출하는 빛은 모든 색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몇 가지 특정 색만을 지니고 있는 걸까? 왜 원자의 스펙트럼이 연속적인 색이 아니라 몇 가지 분리된 선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 닐스 보어는 원자 내의 전자들의 에너지가 오직 어떤 양자화된 값만 가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설명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어는 전자가 핵으로부터 어떤 특별한 거리에서만 다시 말해 어떤 특정한 궤도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척도는 플랑크 상수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전자들은 허용된 에너지를 갖는 한 원자와 다른 원자 궤도 사이에서 도약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양자 도약이다. 


양자역학의 두 번째 초석이자 가장 어려운 열쇠는 모든 사물의 관계적 양상이다. 전자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할 때에만 존재한다. 다른 무언가와 충돌할 때 어떤 장소에서 물질화한다.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의 양자 도약이 전자가 실제하게 되는 유일한 방식이다. 하나의 전자는 한 상호작용에서 다른 상호작용으로의 도약들의 집합이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없다면 전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자가 어디에서 나타날지를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여기 또는 저기에서 나타날 확률을 계산할 수는 있다. 이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미래가 확실하게 예측 가능한 뉴턴의 이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변화이다. 


양자역학은 사물의 변화의 핵심부에 확률을 가져다 놓는다. 바로 이 비결정성이 양자역학의 세 번째 초석이다. 전자나 다른 입자가 공간이 한 지점이나 다른 지점에서 발견된 확률을 넓게 퍼진 구름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구름이 짙을수록 입자를 볼 확률이 크다. 핵 주위를 도는 전자 하나를 나타내는 구름은 전자가 나타나기 더 쉬운 곳을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이를 원자의 궤도 함수라 한다. 디랙은 자연에 대한 기술을 더 근본적으로 단순화하는 길을 발견한다. 뉴턴이 사용한 입자의 개념과 패러데이가 도입한 장의 개념 사이의 수렴이다. 한 상호작용과 다른 상호작용 사이의 전자들에게 동반되는 확률 구름은 장과 다소 비슷하다. 그러나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장은 다시금 알갱이들로 즉 광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입자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장처럼 공간 속에 퍼져 있을 뿐 아니라 장들도 입자처럼 상호작용한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구분했던 장과 입자의 개념이 양자역학 속에서 마침내 합치하는 것이다. 전자기파는 패러데이 선들의 진동이지만 작은 척도로 보면 광자의 무리이기도 하다. 광전 효과에서처럼 다른 것과 상호작용할 때는 입자처럼 보인다. 우리의 눈에 빛이 개별 광자로 방울져서 떨어지는 것이다. 광자는 전자기장의 양자이다. 그러나 전자들과 세계를 구성하는 다른 모든 입자들도 마찬가지로 장의 양자이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장과 비슷한 양자장으로서 입자성을 지니고 양자 확률을 따른다. 광자가 전자기장의 양자이듯 입자들은 장의 양자이며 모든 것은 상호작용에서 이런 입자구조를 가진다. 세계는 장과 입자가 아닌 양자장으로 이루어졌다. 


시공 속에서 기본 사건들이 일어나는 양자장만이 존재할뿐이다. 양자역학은 정보는 유한하고, 비결정성이고, 실재는 관계적이라고 말한다. 양자역학의 비결정성 때문에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세계는 사물들이 끊임 없이 무작위적인 변화를 겪는 세계다. 우리가 보는 돌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지만 우리가 그 돌의 원자들을 관찰할 수 있다면 그것들이 쉬지 않고 진동하면서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양자역학은 세계는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수록 더 변화무쌍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준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세계는 떨림으로, 작은 우글거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실재는 관계적이다. 양자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들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기술한다. 그것은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기술하지 않고 입자가 어떻게 다른 것에게 자신을 드러내는지를 기술한다. 


예로 속도를 들 수 있다. 그것은 한 대상이 다른 대상에 대해 갖는 속성이다. 사물이 있어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사물이란 개념을 낳는 것이다. 파도가 바닷속으로 녹아 들어가기 전에 잠시 모습을 유지하듯 돌은 잠시 구조를 유지하는 양자들의 진동이다.(136 페이지)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과정이고, 과정들 사이의 상호작용인 사건들을 기술한다. 아인슈타인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폴 디랙이 세계에 관해 근본적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인정하면서 그들을 노벨상 수상자로 추천했고 한편으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이론이 전혀 말이 안 된다고 불평했다.(138 페이지) 


앞에서 아인슈타인을 양자역학을 낳은 모친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이론은 제 길을 갔고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이 더 이상 자기 이론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정도가 되었다.(116 페이지) 물리학자, 엔지니어, 화학자 및 생물학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 이론의 방정식과 그 결과들을 날마다 이용하고 있지만 이론 자체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저자는 양자역학은 그저 하나의 물리학 이론일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어쩌면 내일, 세계에 대한 훨씬 더 깊은 다른 이해 방식이 등장해 그것을 바로잡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양자역학이 엄청나게 경험적인 성격을 거두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론에서 무엇을 수정해야 할지를 묻기보다 이론이 이상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우리의 직관에 어떤 제약이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이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 상상력의 한계 때문이다.(141 페이지) 저자는 바스 반 프라센(Bas van Frassen), 미셸 빗볼(Michel Bitbol), 마우로 도라토(Mauro Dorato) 등의 저명 철학자들이 양자역학에 대해 논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경우도 장회익의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란 책이 있다. 난점은 여기에 있다. 중력장은 양자역학을 고려하지 않고서, 장들이 양자화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서 기술된다. 양자역학은 시공이 휘며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따른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공식화되는 것이다.(147 페이지) 달의 움직임을 기술할 때 양자는 잊어도 되고 원자는 너무 가벼워 공간을 유의미할 정도로 구부리지 못하기에 원자를 기술할 때는 공간의 곡률은 잊어도 된다. 


역설은 두 이론이 모두 놀랍도록 각기 잘 작동한다는 점이다. 공간의 곡률과 양자의 입자성이 모두 문제가 되는 물리적 상황이 있다. 아직 우리는 이런 경우에 작동하는 물리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블랙홀의 내부가 그 하나의 예이다. 빅뱅 시기에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도 그렇다. 우리는 아주 작은 규모에서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양자역학은 시공의 곡률을 다룰 수 없고 일반상대성이론은 양자를 감안할 수 없다. 양자중력 문제는 이런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플랑크 길이의 규모보다 엄청나게 큰 우리의 규모에서는 공간은 매끈하고 평평하며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기술된다. 그러나 우리가 플랑크 규모로까지 내려가면 공간은 부서지고 거품이 인다.


저자의 책은 양자중력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흘러간다. 누가 설명해도 그럴 것이다. 루프이론이라고도 하는 이 이론은 공간이 연속적이지 않다고 전제한다.(167 페이지) 저자는 제논의 역설 중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에 대해 논한다. 무한히 작은 공간을 가야 하기에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역설(궤변)이 나온 것이지만 저자는 공간이 유한한 크기의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기에 무한히 작은 걸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아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에게 점점 다가가서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양자도약만 하면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에서는 반 정수는 양자역학에서 아주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스핀이라 부른다.(170 페이지) 광자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반면 공간의 양자는 공간 자체를 구성한다. 양자중력의 핵심 결과 중 하나는 공간은 불연속적 구조를 거지며 공간의 양자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174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공간을 불변하는 용기(用器)로 생각하는 것을 버린다면 시간을 실재가 펼쳐지는 불변하는 흐름으로 생각하는 것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사물들을 담고 있는 연속적 공간이라는 생각이 사라지듯 현상들이 발생하는 흐르고 있는 연속적인 시간이라는 생각도 사라지는 것이다. 시간을 국지적인 것으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 지 한 세기도 넘었다. 우주의 모든 대상은 자신만의 시간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그 흐름은 국지적인 중력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력장의 양자적 본성을 고려할 때는 이 국지적 시간조차도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양자 사건들은 아주 작은 규모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를 매길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지 3년만에 나온 저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가 있다. 우연이 아닌 것이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할까? 기본 방정식에 시간 변수가 없다는 것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리어 변화가 도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기본적인 과정들을 순간들의 연속에 따라 순서로 매길 수 없을 뿐이다. 


공간의 양자들의 극도로 작은 규모에서 볼 때 자연은 보편적인 시간을 지휘하는 단 한 명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 리듬에 따라 춤을 추지는 않는다. 각각의 과정은 이웃과는 독립적으로 그 자신의 리듬에 따라 춤을 춘다. 시간의 흐름은 세계에 내재되어 있고 세계이면서 그 자체로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양자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세계 속에 태어난다. 사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주 복잡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178 페이지) 양자 중력에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우리가 아주 작은 것들을 다룰 때에는 뉴턴의 도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턴의 도식은 좋은 것이었다. 다만 큰 현상들에만 유효했다. 


저자는 우리를 둘러싼 연속적인 공간과 시간이라는 가정은 기본적인 과정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멀리서 흐릿하게 보고 있는 결과라 말한다.(183 페이지) 시공 연속체와 공간의 양자 사이의 관계는 전자기파와 광자 사이의 관계와 같다. 전자기파는 광자를 큰 규모에서 어림하여 본 것이다. 광자는 전자기파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고 연속적인 공간과 시간은 중력의 양자들의 역학을 큰 규모에서 어림하여 본 것이다. 중력의 양자는 공간과 시간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수학이 일관되게 중력장과 다른 양자들을 기술한다. 


오늘날 우리는 빅뱅이 진짜 시작이 아니라 그 전에 또 다른 우주가 존재했을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 많이 이야기한다. 마에스트로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을 쓰는 벨기에의 사제(司祭)가 빅뱅이론이 나오자 교황이 그 이론이 창세기의 이야기를 확증한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온갖 채널을 통해 만류하게 한 것은 유명하다. 그 사제는 조르주 르메트르다. 르메트르는 과학과 종교를 섞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라 확신했다. 성서는 물리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물리학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202 페이지) 빅뱅 시점인 140억년 이전에 달하면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들이 유효하지 않아 양자중력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전역학에 따르면 핵을 향해 곧바로 떨어지는 전자는 핵에 의해 삼켜져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고전역학은 불완전하여 양자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실제의 전자는 양자적 대상이어서 정확한 궤적을 따르지 않는다. 한 지점에 전자를 계속 붙들어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정확하게 전자의 위치를 설정할수록 더 빠르게 빠져나간다. 만일 모든 전자들이 핵 속으로 떨어진다면 원자도 없을 것이고 우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주도 같다. 우주가 수축하여 매우 작아져 그 자신의 무게로 붕괴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양자역학을 고려하면 우주가 한없이 붕괴할 수는 없다. 마치 그런 일을 막는 양자의 반발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수축하는 우주는 어떤 한 점으로 내려앉지 않고 되튀어 마치 우주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팽창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 우주의 과거도 그런 되튐의 결과일 수 있다. 빅뱅이 아닌 빅 바운스다. 이것이 루프(고리)양자중력 방정식을 우주의 팽창에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일이다. 되튐이란 물론 은유다. 전자를 원자에 가능한 한 가까이 두려고 하는 경우 전자는 더 이상 입자가 아니다. 대신 우리는 전자를 확률의 구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전자의 정확한 위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빅뱅이라는 결정적 변화 과정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잘 정의된 공간과 시간을 생각할 수 없고 공간과 시간이 완전히 사라진 확률들의 구름만을 생각할 수 있다.(205 페이지) 


우리의 우주는 또 다른 우주가 공간과 시간이 확률 속에 용해되어 있는 이러한 양자적 국면을 거쳐 붕괴한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우주라는 단어가 애매해진다. 만일 우주라는 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면 그 정의상 두 번째 우주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우주라는 말은 우주론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은하들로 가득 차 있는 시공 연속체를 가리키는 말로서 우리는 그 기하학적 구조와 역사를 연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는 이 우주가 존재하는 유일한 우주라고 확신할 이유가 없다. 


양자중력에 대한 이른바 실험자료는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양자와 굽은 공간이 모두 존재하는 세계를 어떻게 일관되게 만들 수 있을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미지의 것들을 바라보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이론을 뒷받침할 더 확고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다른 쪽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원시 우주에 대한 연구가 이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창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반증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우주배경복사에 우리 우주의 양자적 시작의 자취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215 페이지) 


양자중력은 무한히 작은 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한다. 양자역학을 무시하는 것은 이 하한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이론상에서 무한한 양이 나타나는 어떤 병적인 상황을 예견한다. 이를 특이점이라 한다. 양자중력은 무한에 한계를 주어서 특이점을 치료한다.(226 페이지) 특수상대성 이론은 모든 물리계에 최대 속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양자역학은 모든 물리계에 최대 정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무한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에 붙이는 이름일뿐이다. 정보란 어떤 것의 가능한 대안들의 수를 측정한 것이다.(234 페이지) 


저자는 양자역학을 물리계들이 상호간에 갖는 정보의 기술로 해석하면 양자역학의 신비를 들여다보기가 더 쉬워진다고 말한다.(241 페이지) 열시간(熱時間; thermal time)은 책의 마지막 아이디어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언제나 열이 발생한다.(246 페이지) 열은 많은 변수들을 평균화한 것이다. 열 시간이라는 아이디어는 왜 시간이 열 소산(消散)을 낳는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왜 소산이 시간을 낳는지를 묻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13장 신비’란 제목의 글에서 진실은 깊은 곳에 있다는 데모크리토스의 말을 인용한다. 저자는 과학의 요체는 의심에 있다고 말한다. 의문을 제기해야 발전이 있다. 저자는 때로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하노라 자처한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전 세계의 실험실에서 모든 연구자들이 하루 하루 자신의 한계와 씨름하며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과 대결한다. 저자는 우리는 우리가 연구하는 이 아름다운 이론이 정말로 옳은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확실한 대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최선의 대답을 주기 때문이다. 찾아낸 답이 최선의 답인 까닭은 우리가 그 답을 확정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언제나 개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256 페이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비감을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세계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다. 양자중력이 드러내 보여주는 세계는 새롭고 기묘하고 신비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단순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정합적인 세계다. 저자는 여전히 밝히고 탐구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는 광대한 세계란 말을 했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어렵지만 재미 있는 묘한 책이다. 내 물리학 지식이 더 많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했을 것이다. 배운 것도 많다. 저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어야겠다. 이 책 역시 집중해서 읽어야 할 어려운 책이겠지만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 개념 따라잡기 : 물리의 핵심 - 지식 제로에서 시작하는 지식 제로에서 시작하는 개념 따라잡기 시리즈
    Newton Press 지음, 이선주 옮김, 와다 스미오 감수 / 청어람e(청어람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7년에 쏘아올린 보이저 1호는 지금도 태양계 밖을 향해 같은 속도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움직이는 물체에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그 물체는 계속 같은 속도로 진행한다. 이를 운동의 제 1 법칙(관성의 법칙)이라 한다. 물리학에서는 속도와 속력을 구별한다. 속도는 운동의 방향도 포함하기에 화살표(벡터)로 표현한다. 힘은 물체의 속도를 변화시킨다. 일정 시간의 속도 변화량을 가속도라 한다. 무거운 물체일수록 가속도는 작아진다. 같은 물체에 가해지는 힘이 셀수록 가속도는 커진다. 힘은 질량×가속도다.


    수축한 용수철의 힘이 풀릴 때 위에 올라 탄 사람이 가벼우면 급격히 가속하고 무거우면 천천히 가속한다. 이 때의 힘과 가속도로 위에 탄 사람의 무게를 알 수 있다. 우주에서 용수철로 몸무게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수영 선수가 벽을 차면 벽은 찬 힘과 같은 크기의 힘으로 수영 선수를 밀어낸다. 중력처럼 ‘떨어져 있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에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성립한다. 즉 스카이 다이빙 선수가 지구 중력에 끌려 떨어질 때 지구도 스카이 다이빙 선수에게 끌리고 있다는 말이다.


    달은 지구 주위를 초속 1km로 계속 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데도 달이 날아가 버리지 않는 것은 지구와 달이 만유인력으로 서로 당기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이 없다면 달은 관성의 법칙에 따라 직선으로 날아가 버렸을 테지만 실제로는 만유인력으로 달은 지구에 끌리기에 곡선으로 움직인다. 만유인력 때문에 생기는 달의 속도 변화는 속력이 아니라 방향 변화다. 앞으로 똑바로 던진 공은 만유인력의 영향으로 직선보다 아래쪽을 향하는 궤도를 갖는다. 이를 낙하라고 하면 공은 던져진 순간부터 낙하하는 것이다.


    급가속하는 버스에서는 뒤쪽으로 관성력이 작용하고 급정거하는 버스에서는 앞쪽으로 관성력이 작용한다. 속도 변화가 없는 버스에서는 관성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공기조차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지면이나 공기를 밀어 가속할 수 없다. 연료를 방출하면 반대 방향으로 운동량이 생긴다. 하야부사 2호는 이온엔진을 탑재했다. 이온엔진은 가속할 때 가스 상태인 제논 이온을 뒤로 배출한다. 하야부사는 일본의 소형 소행성 탐사기다. 운동 에너지가 커지면 위치 에너지가 감소한다. 운동 에너지가 감소하면 위치 에너지가 증가한다. 두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 이를 역학적 에너지 보존법칙이라 한다.


    에너지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열 에너지, 빛 에너지, 소리 에너지, 화학 에너지(원자나 분자에 저장된 에너지), 핵 에너지(원자핵에 저장된 에너지), 전기 에너지, 운동 에너지, 소리 에너지 등이다. 에너지는 서로 바뀔 수 있다. 에너지가 바뀌어도 에너지의 총량은 늘거나 줄지 않고 항상 일정하다. 이를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 한다. 역학적 에너지 보존만을 따지면 컬링 선수가 밀어낸 켤링 스톤은 운동 에너지를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가겠지만 마찰력이나 공기 저항 때문에 멈춘다. 마찰력은 접촉한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운동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가해지는 힘'이다. 두 물체가 접촉하는 한 마찰력은 절대 0이 되지 않는다.


    공기 저항도 물체의 운동을 방해하는 힘이다. 마찰력이나 공기 저항은 운동을 방해하는 방해꾼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힘이 없으면 세상은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마찰력이 없으면 지면을 차면서 걸을 수도 없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출 수도 없다. 공기 저항이 없으면 빗방울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떨어져서 피부에 맞으면 견딜 수 없이 아플 것이다.


    공기 중에는 항상 대량의 기체 분자가 날아다닌다. 그 기체 분자가 흡착판에 충돌할 때 작은 힘이 더해지고 그것이 모여 큰 힘이 되어 흡착판을 벽에 누른다. 공기(대기)에 의한 압력을 대기압(기압)이라 한다. 대기가 상온일 때는 1세제곱 센티미터에 기체 분자가 대략 10의 19제곱 개(1000조의 1만배) 존재한다. 기체 분자의 움직임이 온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온도란 원자나 분자 운동의 활발한 정도를 가리킨다. 여름이 덥게 느껴지는 것은 기체 분자가 우리 몸에 활발하게 부딪혀 기체 분자의 운동 에너지가 우리 몸으로 전해져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온도가 점점 내려가면 원자나 분자의 운동이 줄어 결국 이론상의 최저온도에 도달한다. 이를 절대 영도 K(켈빈)라 한다. 절대 온도 0도씨는 마이너스 273. 15K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해져 기압이 낮아진다. 과자 봉지에 가해지는 압력보다 봉지 안의 기체가 밖을 향해 미는 힘이 강해져 봉지가 부풀어 오른다. 뜨거운 물체는 주위의 원자를 강하게 흔든다. 온도 차이가 있는 물체 사이에 열이 이동한다. 진동의 차이가 없어지면 온도의 차이가 없어진다. 뜨거운 캔의 표면에는 금속 원자가 활발하게 진동하고 있다. 손으로 잡으면 손의 표면에 있는 분자가 강하게 요동하고 결국 손 내부의 분자까지 진동해 열을 느낀다. 기체의 열에너지는 외부로 향한 일의 양만큼 감소한다. 이를 열역학 제1법칙이라 한다.


    파동이란 주위로 어떤 진동이 전달되는 현상이다. 소리와 빛이 대표 예이다. 빛은 공간 자체에 존재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진동이 전달되는 파동이다. 빛은 횡파이고 소리는 종파다. 파동의 진행 방향에 대해 수직으로 진동하는 파동이 횡파다. 파동의 진행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진동하는 파동이 종파다. 소리는 공기가 성긴 부분과 빽빽한 부분이 교대로 전달되는 현상이다. 북을 두드리면 북의 가죽이 갑자기 푹 꺼진다. 그러면 가죽 주위의 공기가 희박해지고 밀도가 낮은 소(疎) 부분이 생긴다. 그 다음 북의 가죽이 격렬하게 튀어 오른다. 그러면 북의 가죽 주위의 공기가 압축되어 공기의 밀도가 높은 밀(密) 부분이 생긴다. 북의 가죽이 튀어 올랐다가 움푹 꺼질 때마다 주위 공기에 밀 부분과 소 부분이 생기고 주위로 전달된다. 이때 공기는 그 자리에서 앞뒤로 진동을 반복한다. 소와 밀의 변화가 차례차례 전해지는 현상을 소밀파라 한다. 이것이 음파의 정체다.


    지진파에는 종파와 횡파가 있다. P파는 세로로 요동을 일으킨다. S파는 땅 위에서 가로로 크게 흔들린다. P파는 종파, S파는 횡파다. 피해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주로 S파이다. 컵에 물을 부으면 컵 바닥에 놓인 동전이 떠올라 보인다. 빛의 왼쪽과 오른쪽에 속도 차가 생긴다. 빛이 공기에서 물로 진입하면 속도가 느려진다. 이미 물로 진입한 빛과 아직 진입하지 않은 빛 사이의 속도 차이로 빛의 진로가 꺾인다. 굴절이 일어나는 것이다. 속도 차이가 클수록 크게 꺾인다.


    흰색 태평광이 프리즘에 들어가면 파장(색)에 따라 굴절 각도가 달라져 무지개처럼 일곱 가지 색으로 나타난다. 이를 빛의 분산이라 한다. 비 갠 후 나타나는 무지개는 빛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수한 물방울을 통과하며 분산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비눗 방울에 닿은 빛은 서로 다른 경로로 진행한다. 비눗 방울의 표면이 알록달록한 이유는 간섭으로 강해진 빛의 색이 보이기 때문이다. 빛이 반사되는 위치나 각도에 따라 강해지는 빛의 파장(색)이 조금씩 바뀌어 무지개 같은 무늬가 보이는 것이다.


    소리는 벽을 타고 돌아서 온다. 이를 회절이라 한다. 파동은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 간다. 회절은 기본적으로 파장이 길수록 잘 일어난다. 사람 음성의 파장은 1미터 전후로 비교적 길어서 벽이나 건물을 돌아서 가기 쉽다. 빛의 파장은 짧아서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회절하지 않는다. 그늘이 생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빛이 회절하면 직접 태양 빛이 닿지 않는 건물 뒤에도 빛이 돌아가 그늘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푸른 이유는 공기가 파란색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미세 입자에 부딪히면 빛은 사방팔방으로 튄다. 푸른 하늘도 노을도 모두 빛의 산란이 만들어낸다. 파란색이나 보라색은 파장이 짧아서 하늘의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눈에 들어온다. 건물이 높을수록 지진에 천천히 흔들린다. 물체에는 크기에 맞게 잘 흔들리는 주기와 진동수가 있다. 이를 고유 주기 또는 고유 진동수라 한다. 건물이 높을수록 주기가 느린 지진파와 공명한다. 제자리에서 진동을 반복하는 파를 정상파(定常波)라 한다. 바이올린처럼 양끝을 고정한 현에 발생하는 파는 제자리에서만 진동을 반복하고 나아가지 않는다.


    전기와 자기는 서로 닮았다. 자극도 서로 당기거나 밀어낸다. 스마트폰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도선의 원자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전류의 정체는 전자의 흐름이다. 전류의 방향은 전자의 이동 방향과 반대다. 도선에 전류가 흐르면 자석이 된다. 전류가 자기장을 만든다. 발전소는 자석을 돌려 전류를 만든다. 발전소에서 만들어 가정으로 보내는 전기는 흐르는 방향이 계속 바뀐다. 이를 교류라 한다. 1초 동안 교류의 주기적 변화가 반복되는 횟수를 주파수라 한다. 플레밍의 왼손법칙으로 도선에 걸리는 힘을 알 수 있다.


    코일이 회전하여 모터가 된다. 전기와 자기가 빛을 만든다. 교류처럼 방향이 바뀌면서 전류가 흐르면 주위에는 변화하는 자기장이 생긴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 자기장을 감싸듯 변하는 전기장이 생긴다. 그 결과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연속적으로 파동처럼 나아간다. 맥스웰은 이 파동을 전자기파라 불렀다. 맥스웰은 전자기파가 나아가는 속력을 직접 측정하지 않고 이론적인 계산으로 구했다. 그 값은 초속 30만 km다. 빛의 속력과 같다. 전자기파는 빛이라는 의미다.


    원자의 크기는 1000만 분의 1mm다. 전자는 특정 궤도에만 존재한다. 통상 전자는 원운동을 하면 전자기파를 방출하여 에너지를 잃는다. 그래서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점차 에너지를 잃고 원자핵으로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닐스 보어는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띄엄띄엄 떨어진 궤도에만 존재하며 바깥 궤도에서 안쪽 궤도로 이동할 때 외에는 전자기파를 방출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전자는 왜 특정 궤도에만 존재할까?


    루이 드 브로이는 전자도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질 때 전자 궤도의 길이가 전자 파동의 정수배이면 전자 파동이 궤도를 한 바퀴 돌 때 정확하게 파동이 이어진다. 이때가 전자가 전자기파를 방출하지 않는 안정 상태가 된다고 보았다. 궤도의 길이가 파장의 정수배가 되지 않으면 그 궤도에는 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 내부에서는 수소 원자핵이 융합한다. 태양 중심 온도는 1500만도씨, 기압은 2300억 기압이다. 그런 곳에서는 수소 원자핵과 전자가 제각각 흩어져 날아다닌다. 수소 원자핵 네 개가 격렬히 충돌하고 융합하여 헬륨 원자핵이 만들어지는데 반응 전과 반응 후의 질량 합계는 0.7% 가벼워진다. 


    줄어든 만큼의 질량이 태양을 빛나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원자력 발전에서는 우라늄 원자핵이 분열한다. 핵분열 반응도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원자로 내에서 핵분열이 일어날 때 중성자가 방출되고 그 중성자가 다른 우라늄 235에 흡수되어 연쇄적인 핵분열이 일어난다. 우라늄 235 원자의 핵은 중성자 1개를 흡수하면 불안정해져 아이오딘 139와 이트륨 93 등 가벼운 두 개의 원자핵으로 분열하여 막대한 에너지를 만든다.


    원자 구조 연구에서 양자역학이 태어났다. 관측하면 전자의 파동이 순식간에 줄어든다. 전자는 관측하지 않을 때는 파동의 성질을 가지면서 공간에 퍼져 존재하고 빛을 쬐어 그 위치를 관측하면 전자의 파동이 순식간에 줄어들어 한 곳에 집중된 뾰족한 파동이 형성된다. 이렇게 한 점에 집중된 파동은 입자처럼 보인다. 미시 입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이론을 양자역학이라 한다. 양자역학은 현대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이론의 하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