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재생 - 공간을 넘어 삶을 바꾸는 도시 재생 이야기
정석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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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생명체다. 도시가 생명체라면 도시 재생은 생명을 다시 살리는 일이다.“.. 도시설계자/ 도시학자 정석의 진단이다. 도시 재생은 크게는 국토 재생이고 작게는 지역과 마을 재생이다. 어쩌면 내 몸 재생까지 포함되는 개념이 도시 재생이다.

 

도시 재생이란 말에 나는 풍수의 비보(裨補)를 생각한다. 정동(貞洞) 해설을 할 때 ‘한 조각 꽃잎이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드는 것을‘이란 두보(杜甫)의 구절을 인용한 기억이 난다. 정동을 현대적 의미의 명당으로 정의하며 그곳의 건축물들이 그곳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인지 명당이기 때문에 모인 것인지 모르지만 이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정동을 이루는 아우라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정체(整體) 관념이란 것이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개념으로 하나로 이어진 우리 몸의 원리를 말하는 개념이다. 정(整)은 완전성을 의미하는 integrity와 뜻이 통하는 말이다. 저자는 도시를 살리는 일에서도 정(整)과 integrity가 핵심이라 말한다.

 

1970년대 브라질 쿠리지바 시장을 역임한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는 큰돈을 들이는 대규모 프로젝트 대신 작은 비용으로 침을 놓듯 작은 변화를 주어 영향을 확산시키는 방식을 도시 침술(urban acupuncture)이라 표현했다.

 

수많은 사람이 각자 자신의 집을 지을 때에도 마음대로 짓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며 짓기에 여러 사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집을 짓고 길을 내고 다리를 놓아 만든 도시가 마치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조화롭게 보인다.

 

재개발이 도시를 물건이나 상품처럼 대하는 것이라면 도시재생은 생명 다루듯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저자는 도시재생이란 말보다 삶터 재생이란 말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블랙홀처럼 사람을 빼앗아가는 수도권, 대도시, 신도심보다 사람이 빠져나가는 지방, 시골, 구도심을 먼저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외연 확장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 재구축이다. 삶터 되살림의 속도는 "천천히"다. 현시대는 인구가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 재개발은 맞지 않다. 도시재생 시대의 개발은 개발 단위를 단지에서 필지로 줄이고 새로 만드는 대신 고쳐 써야 한다. 이렇게 작은 단위로 도시를 살리면 작은 설계사무소와 동네 자영업자도 참여할 수 있다.

 

일본 영화 ’인생 후르츠‘에 나오는 메시지가 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과일이 익는다. 차근차근 천천히.“ 차근차근 천천히와 정반대인 빨리빨리 한꺼번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지금은 개발시대가 아니다. 빨리빨리 한꺼번에는 개발시대에 맞는 말이다.

 

재개발에는 철거형만 있지 않다. 남길 곳을 최대한 남기면서 재개발 하는 수복형도 있고 오랜 역사적 장소를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보존형 등이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철거형이 지상 목표였다.

 

1965년 재개발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세운상가가 첫 재개발 대상이었다. 주택재개발이 시작된 배경에는 무허가 주택 확산이 있다. 현저동, 홍제동, 아현동, 공덕동, 후암동, 한남동, 숭인동, 창신동, 흑석동, 노량진, 청계천, 중랑천, 정릉천 주변 등 판잣집에 무허가 건축물이 들어섰다.

 

1961년 당시 무허가 주택은 4만채가 넘었다. 이에 서울시는 무허가 주택을 철거한 뒤 주민들을 서울 외곽의 새로운 주거지로 이주시켰다. 도봉동, 구로동, 상계동, 사당동, 봉천동, 신림동, 마천동, 거여동, 신정동, 창동, 쌍문동, 가락동 등 외곽 공유지역에 재정착촌이 마련되었고 이주자들은 10 ~ 20평 규모의 작은 대지에 약간의 건축자재를 지원받아 스스로 집을 짓고 살았다.

 

1960년대 말에는 교외 지역 국공유지가 고갈되자 재정착지로 이주시키는 대신 무허가 주택지에 공공아파트를 건립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1970년에 와우아파트가 붕괴되어 서른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고 1971년에는 광주(廣州; 현 성남시) 단지로 강제 이주당한 주민들이 정부의 무계획적 도시 정책과 졸속 행정에 반발하여 광주대단지 사건을 일으켰다.

 

서울시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도심재개발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제기된 계기는 어디에 있을까? 1966년 미국 존슨 대통령의 방한이 주요 계기가 되었다. 시청 앞에서 존슨 대통령 환영행사가 열렸는데 맞은 편인 북창동과 남산 자락의 무허가 주택의 적나라한 모습이 텔레비전 보도를 통해 미국까지 전해지자 재미 교민사회에서 대통령에게 도심 환경 개발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서울시가 도심재개발을 서울시정의 핵심과제로 삼았다.

 

그 이후 22층의 더플라자호텔이 지어졌는데 이는 당시 서울광장 뒤편의 낙후한 화교 집단거주지였던 지금의 북창동을 시각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가로가 길고 세로는 짧은 병풍 모양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1970년대 말 북한과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북한의 포격 사정 거리 안에 있는 서울에 과도하게 인구가 집중되는 것은 불리하다는 주장에 제기되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도심재개발 활성화 정책이 마련되었다. 1983년 서울시는 670%였던 도심재개발 용적률을 1,000%로 늘렸다.

 

산보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로 인해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다. 서울의 아름다운 산, 언덕과 강변 풍경이 아파트로 인해 훼손되었다면 서울 도심부의 역사문화유산들은 재개발로 인해 지워졌다. 2000~2010년대는 개발 역풍 속에 맞이한 재생시대다.

 

역풍이란 선거로 인해 빚어진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2006년 선거 때 뉴타운 공약을 내걸어 당선된 단체장들이 2010년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는 바로 그 뉴타운 때문에 우수수 떨어졌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들은 뉴타운과 재개발의 대안으로 도시재생을 들고 나왔다.

 

새 길이란 큰 회사들만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개발프로젝트가 아닌 스몰 프로젝트, 건물을 헐고 짓는 하드웨어보다 사람을 불러모으는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에 돈을 쓰는 것을 말한다. 외연 확장을 그만두고 도시 안의 빈 곳을 채우고 혁신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도시를 살리려는 도시재생이 도시를 파괴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일본의 경우 재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인구 감소 우려 때문이다. 사람이 없어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는 제도는 지역부흥협력대이고, 세수 격차로 재원 고갈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방에 돈을 보내는 제도는 고향납세제도다.(100 페이지) 모두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일본은 꽤 오래전부터 사람과 돈을 지방에 보내는 사업을 지속해왔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다. 시작이 늦었다고 서두르기보다 차근차근, 천천히 제대로 하면 좋겠다.“(103 페이지) 문제는 일자리다. 마을(지방, 고향)을 떠나는 젊은이들을 붙잡아두려면 그곳에만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자생하지 않으면 재생이 아니다. 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 주거환경관리사업 등을 시행하면서 주어진 예산으로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신축해도 사업 종료 후 운영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해법은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다.(156 페이지)

 

도시재생에서 젠트리피케이션도 문제이지만 듀플리케이션(복제)도 문제다.(179 페이지) 저마다 자기 지역에 맞는 재생이어야 하는데 성공 사례를 따라하는 것이 문제라는 의미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뒤 학업과 취업 때문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U 턴이라 한다. 고향 가까운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J 턴이라 한다. 고향이 아닌 시골로 가는 것을 I 턴이라 한다.(214 페이지)

 

대한민국은 행복하지 않은 선진국이다. 헬조선이란 말이 있다. 20대와 30대의 90% 이상이 헬조선론에 동의한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표현되는 빈부격차와 부의 불균형, 높은 실업률, 낮은 취업 기회, 고용 불안정, 고물가, 일상화된 경쟁구도, 저녁이 없는 삶 등이 이유다.

 

소득 향상이 행복을 담보한다는 믿음은 깨진 지 오래다.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심층구조와 기본골격을 바꾸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픈 도시는 우리의 책임이다.(243 페이지) 저자는 지금처럼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의 도시계획은 수요에 맞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와 결핍을 이어주는 도시계획이어야 한다고 말한다.(268 페이지)

 

‘딱 적당한 만큼의 초록just green enough’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윈프레드 커란Winifred Curran과 트리아나 해밀턴Trina Hamilton이 처음 쓴 말이다. 대규모 사업은 아무리 녹색 사업이라고 해도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새길 말이 아닐 수 없다. 수도권에 전 인구의 반 이상이 몰려 사는 극단의 경쟁 국가 한국의 숨통이 도시재생과 함께 조금씩 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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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조용헌, 로버트 파우저, 이현군 등이 쓴 ’서울의 재발견’과 정석이 쓴 ‘천천히 재생’, 박진빈 교수의 '도시로 보는 미국사'에서 공히 추천받은 도서가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이다. 도시, 미국 등을 키워드로 한 책 가운데 내가 읽은 것이 박진빈 교수의 ‘도시로 보는 미국사’ 한 권이다. 이 책에 미국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마이클 카츠Michael B. Katz가 ‘왜 미국 도시들은 불타지 않는가Why American Cities Don‘t Burn’(2013년)란 책을 썼다는 내용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분노를 담은 책이다. 책의 의미를 원래 불타야 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라고 설명한 저자는 사실 미국의 도시는 민권 운동기 이전에도 불탔었다고 말한다. 젠트리피케이은 1964년 독일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 1912 - 1990)가 런던 시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유입하면서 기존 거주자들인 노동자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보고 붙인 용어다. 박진빈 교수의 책에는 ‘딱 적당한 만큼의 초록just green enough’이라는 말도 나온다.

 

Winifred Curran과 Trina Hamilton이 처음 쓴 말이다. 대규모 사업은 아무리 녹색 사업이라고 해도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1. 젠트리피케이션. 2. just green enough. 3. 에리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의 3. 5% 룰(최소 3.5%의 사람들이 평화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의 법칙). 4. 도시재생이 최근 내가 생각하는 개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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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를 보았다. 서양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도 천주님을 믿고 나는 성리학을 통해 기하학과 수리학을 받아들였다는 정약전의 말이 기억 남는 영화다. 정약용이 주인공이었다면 감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약전에게 물고기에 대해 가르쳐준 스승인 ’장창대’의 아내가 나는 흑산이 좋소라는 말을 한다. 이 말에 남편 장창대는 “흑산이 아니라 자산(玆山)이지, 이(this) 산이지.”라는 말을 한다. 이 부분이 영화의 끝 부분이다. 알다시피 정약전은 흑산이란 말을 두려워 했다. 흥미로운 점은 자(玆)란 글자가 이것(this)을 뜻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산 즉 우리가 사는 산이지란 말이 나왔을 것이다.

 

홍어(洪魚)의 영어 단어가 skate라는 사실도 알았다.(우리 영화이지만 영어 자막을 넣은 것은 해외 팬들을 위해서이겠다.) 어떻든 지금은 영화에 대해 이 정도 말만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 ‘자산어보’를 본 곳은 광화문 씨네큐브였다. 이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곳이다. 미국 영화 ‘매기스 플랜‘(2017년 2월 2일)과 레바논 영화 ’가버나움‘(2019년 2월 19일), 프랑스/ 일본 영화 '파비엔느에 관한 진실'(2019년 12월 19일) 등의 영화를 감상한 곳이고, 일본 영화 ’인생 후르츠‘의 포스터를 본 곳이기도 하다.

 

'인생 후르츠‘는 이선생님의 추천작이기도 하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과일이 익는다. 차근차근 천천히.“란 대사가 인상적인 영화다. 이 대사를 만난 것은 영화가 아닌 도시설계자/ 도시학자 정석의 ’천천히 재생‘이란 책에서다. 창신동 도시재생을 주제로 해설하기 위해 읽는 책이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지고, 그러면 땅이 비옥해진다는 말은 ”한 조각 꽃잎이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드는 것을”이란 두보의 시와 정서가 다르다. 나는 이 말을 지난 2017년 정동(貞洞) 해설에서 활용했다.

 

정동을 현대적 명당으로 정의하며 그곳의 건축물들이 정동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해 모이게 된 것인지 정동이 명당이기 때문에 모이게 된 것인지 모르지만 그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만 지금과 달랐어도 정동의 아우라는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의 영화로 인해 이런 다채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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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 제현(諸賢)의 ('질정; 叱正'이 아닌) 질정(質正)을 바란다는 저자의 책을 읽고 있다. 질정(叱正)은 꾸짖어 바로잡는다는 의미고 질정(質正)은 묻고 따져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흔히 꾸짖어 바로잡는다는 뜻의 叱正을 많이 쓰니 약간 기이하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質正이 훨씬 뜻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강호라는 말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중국의 유명 선사인 마조의 활동무대인 강서(江西)의 강과 석두의 활동무대인 호남(湖南)의 호를 딴 것이라고 한다. 물론 강호라는 말 자체가 강과 호수 즉 자연을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 강호제현이란 말을 들었을 때 혹시 무슨 상징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생각나는 것은 우리나라와 중국은 산을 앞에 두어 산하, 산천, 산수화, 요산요수 등으로 부르지 물을 앞에 두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2019년12월 30일 아주경제 수록 강효백 교수 글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 첫 소절부터 일본식 표현' 참고) 어떻든 앞서 말한 저자의 책으로 돌아가면 이야기로서의 역사는 사랑받고 있지만 학문으로서의 역사는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 눈에 띈다.

 

꾸짖음이든 물음과 비판이든 받을 사람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 또는 사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는 질정 앞에 겸허해야 한다. 단재가 조선상고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궁예의 성씨가 궁씨냐 김씨냐 같은 사소한 문제를 두고 따질 것이 아니라 궁예의 실패한 불교개혁의 의미처럼 무게감 있는 것들을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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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신채호 지음, 박기봉 옮김 / 비봉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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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작이다. 성균관 박사까지 지낸 유학자 출신의 사학자인 단재는 구한말 궁녀 출신의 박자혜와 결혼한 분이다. 단재가 논한 우리 상고사는 어떤 시기보다 많이 왜곡되는 등 논란이 큰 분야다. 책은 1편 총론에서부터 2편 수두 시대, 3편 삼조선의 분립 시대, 4편 열국 쟁웅(爭雄)시대, 5편 고구려의 전성시대, 6편 고구려, 백제 양국의 충돌, 7편 남방 제국의 대(對) 고구려 공수동맹, 8편 삼국 혈전의 시작, 9편 고구려의 대 수(隨) 전쟁, 10편 고구려의 대(對) 당 전쟁, 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등으로 구성되었다.

 

안타깝지만 선생의 조선상고사 저술은 미완으로 끝났다. 57세에 여순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책은 역사란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심적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선생에 의하면 주관적 위치에 선 자가 아(我)이고 그 외의 모든 존재는 비아(非我)다. 선생은 아든 비아든 역사적 아가 되기 위해 두 가지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상속성(相續性)과 보편성(普遍性)이다. 전자는 시간적으로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후자는 공간적으로 영향이 파급되는 것을 의미한다.

 

선생은 조선사는 내란이나 외구(外寇)의 병화(兵火) 때문이 아니라 조선사를 쓰는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이 없어지고 파괴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의 역사가 사대주의적이었음을 증거한다. 선생의 읽기는 해체적 읽기의 전형이다. 선생은 김부식을 유학자로, 일연을 불교도로 언급하며 논의를 이어나갔다. 즉 김부식과 일연이라는 두 다른 세력이 화랑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삭감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화랑은 우리 고유의 것이고 유교와 불교는 외래의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물론 두 외래의 사상이 긍정적인 영향도 끼쳤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문제적임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우리의 역사가 전해진 것은 사대주의자인 김부식이 중국의 사료에 적힌 내용을 자신의 책에 담았기 때문이다. 선생은 삼국사기와 동국통감 등의 정사를 사대주의적 저술로 평했다. 선생이 보인 것은 선행 사료를 비판적으로 읽는 일관성이다. 한편 중국에는 춘추필법이라는 역사 서술 방법이 있다. 위국휘치(爲國諱恥), 위존자휘(爲尊者諱), 위현자휘(爲賢者諱) 등이다. 위국휘치는 나라를 위해 부끄러운 일은 숨기는 것이다. 위존자휘는 존귀한 자의 잘못이나 수치는 감추는 것이다. 위현자휘는 능력 있는 사람을 위해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것이다.

 

이렇기에 역사는 언제나 비판적으로 읽고 맥락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추론해 읽어야 한다. 기록된 부분은 여러 사료를 고루 읽어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부분을 채택해야 한다. 그러면 기록되지 않은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기록되지 않은 부문은 유물이나 시대 정황 등을 미루어 읽어야 한다. 선생은 백제와 신라의 관계에 대해서 합리적 의심을 했다. 백제는 백전(百戰)의 나라이자 미수 허목이 ‘호전지국 막여벡제(好戰之國 莫如百濟’)라 평한 대국이다. 선생은 이런 나라가 작은 나라 신라를 향해 늘 화의(和議)를 구걸했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읽었다. 김춘추마저 신라는 나라가 작고 백성들이 약하기에 오직 외원(外援)을 빌려 백제에게 복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선생이 행한 비판적 읽기의 두 가지 사례를 보자. 1) 선생은 김유신의 명성은 패전은 감추고 작은 승리들은 과장한 결과 생긴 것이라 보았다. 이 부분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고구려가 중국을 비롯 이민족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힘을 소진했다는 점이다. 고구려가 아니었다면 신라는 통일을 이루기 전에 소멸했을 것이다. 2) 선생은 연개소문이 중국에 정벌차 들어간 기록이 없자 당 태종이 모래를 쌓아 양곡 창고(노적가리)라고 속이고 고구려인들이 쳐들어오면 복병으로 유격했다고 한 황량대를 연개소문이 북경까지 추격했음을 알리는 유적으로 읽었다.

 

우리가 나라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한(韓)이 왕(王)을 뜻한다는 사실, 삼조선은 신조선, 말조선, 불조선이란 사실 등은 새롭다. 선생의 책은 복잡한 사건들을 하나 하나 가려내 읽은 노고의 산물이다. 고구려의 원래 이름이 가우리였다고 한다. 이는 전장에 선 선두 깃발을 의미하는 말이다. 신크마리는 스승 중 가장 높은 사람을 의미한다.

 

선생의 책은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편으로 종결되었지만 총론에서 조선 이야기를 꽤 했다. 1392년 고려를 무너뜨리고 건국한 조선의 경우 세종과 세조 이야기를 대표적으로 했다. 할아버지 태조와 아버지 태종이 내세운 사대가 굳어지는 가운데 세종은 몽골의 압박을 받던 고려 말엽 이전의 각종 실기에 근거하여 역사를 짓지 못하고 몽골의 압박을 받은 이후 외국에게 아첨하던 문자와 위조한 고사(故事)에 근거해 역사를 지어 구차스럽게 사업을 마쳤고 전대의 실록은 세상에 전포(傳布)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규장각 안에 비장(秘藏)했다. 물론 이 기록은 임진전쟁 중 불탔다.

 

세조는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만주 침략의 꿈을 품고 강계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하지만 이는 태조의 존명건국(存明建國)의 국시와 충돌했다. 이 일로 인해 여러 신하들이 끊임없이 간쟁한 데 이어 명의 압박과 경계가 심해지자 세조는 생각을 바꾸었다.

 

선생은 우리 역사는 대개 정치사들이고 문화사는 별로 없으며, 정치사 중에서는 동국통감과 동사강목 외에 고금을 두루 관통한 저작이 없고 모두 한 왕조의 흥망만을 전했으며 공자의 춘추를 역사의 절대적 준칙(準則)으로 알고 그 의레를 흉내 내어 군왕을 높이고 신하를 억누르는 존군억신(存君抑臣)을 주장하다가 민족의 존재를 잊어버렸고 중국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숭화양이(崇華攘夷)를 주장하다가 끝에 가서는 자기 나라까지 배격하는 편벽됨에 이르렀고 역사를 자기 국민들이 비추어 볼 거울로서 제공하지 않고 외국인에게 아첨하고 잘 보이려는 데 치중해 자기 나라의 강토(疆土)를 조금씩 잘라 양보함으로써 결국 건국시대의 수도까지 모르게 했다고 비판했다.

 

국민들이 비추어 볼 거울이란 문장에 나오는 거울이란 말은 ‘서학, 조선 유학이 만난 낯선 거울’이란 김선희 교수의 책 제목을 생각하게 한다. 어떻든 단재가 든 아쉬움은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이다.

 

지난 2월 중국 대사관도 포함된 명동 해설 시간을 가졌다. 중국대사관이 있는 자리는 1882년 갑신정변 이래 청나라 군사가 사용하던 곳이다. 청나라 군대에 의해 정변이 좌절된 개화파의 수장 김옥균이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이 방대한 자치통감이다. 단재는 아홉 살에 그 책을 배웠다니 대단하다. 물론 선생에 의하면 자치통감은 당 태종이 고구려군이 쏜 화살에 눈을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요동에서부터 악성 종기를 앓은 끝에 죽었다고 썼다.

 

선생은 5, 6 종의 서적 수천 권을 반복하여 출입하거나 무의식중에서 얻거나 고심 끝에 찾아내 당 태종이 안시성에서 화살에 눈을 상하고 도망쳐 돌아가서 30개월을 고생하다가 죽었다는 수십 자의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선생은 ”원효와 퇴계가 만일 희랍의 강단에서 태어났다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지 않았을까?“란 말을 했다. 그리고 ”프랑스나 독일의 현대에 태어났다면 베르그송이나 오이켄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말도 했다. 베르그송 철학을 읽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그런가 하면 오이켄은 나도 생소하게 느끼는 철학자다.)

 

선생은 개인은 사회라는 풀무에서 만들어질 뿐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개인이든 사회든 환경과 시대를 따라서 자성(自性)이 성립한다는 말도 했다. 선생은 역사 읽기의 한 모범 사례를 제공했다.

 

가령 궁예의 성이 궁(弓)인가 김(金)인가를 논할 것이 아니라 신라 이래 존숭하던 불교를 개혁하여 조선(우리나라)에 새로운 불교를 성립시키려 한 것이 궁예 패망의 도화선이 되었으니 만일 왕건이 아니었다면 궁예의 계획이 성취되었을까? 성취되었다면 그 결과를 확인한 후 이를 계획하였던 궁예와 그에 적대한 왕건의 사(邪)와 정(正)을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누구의 핵심 사관을 논하기보다 이름 등에 너무 크게 관심을 두었으니 그간 지엽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언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역사에 대해 더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재독할 날을 기다린다. 더 나아진 문제의식과 내공으로 더 깊이 이해하는 읽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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