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엘이 들려주는 지질조사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97
이한조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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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조의 라이엘이 들려주는 지질조사 이야기는 지질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할까를 고민한 저자의 문제의식이 담긴 정수(精髓) 같은 책이다. “지질조사는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어렵고 복잡한 일이 아니다.”

 

영국의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 1875)지질학 원리의 저자로 지질학을 근대 과학의 한 분야로 편입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다윈이 진화론을 저술하는 데 지질학 원리를 참고한 것은 유명하다.

 

지질이란 지각(地殼)을 이루고 있는 암석의 종류와 분포, 구조, 변화된 역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화석을 발견하면 주로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곳을 조사해야 한다. 지질 조사는 생활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등고선들의 간격이 좁으면 경사가 급한 지역이고 넓으면 완만한 지역이다.

 

원래 지층은 물밑에서 퇴적될 때 수평으로 쌓인다. 그런데 퇴적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며 지각변동을 받으면 지층이 기울어지거나 휘어진다. 이를 지층이 습곡을 받았다고 말한다. 암석의 종류를 구분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암석의 색깔을 보는 것이다. 암석이 오랫동안 바깥에 노출되면 원래의 색깔을 잃는다. 이를 암석이 풍화되었다고 말한다.

 

이 경우 암석을 지질조사용 망치로 깨트려 풍화되지 않은 안쪽을 보아야 한다. 암석은 광물들의 집합체고 광물은 일정한 성질을 가진 자연 상태의 물질이다. 화강암은 석영, 장석, 운모로 이루어져 있다. 퇴적물이 암석이 되는 과정을 속성작용이라 한다. 입자 크기가 2mm 이상이면 자갈, 2 1/16 mm면 모래, 1/16 mm이하면 진흙이라 한다.

 

자갈로 이루어진 암석을 역암이라 한다. 역암 가운데 자갈 표면이 각지고 모나 있거나 입자가 거칠면 각력암이라 부른다. 물속에 녹아 있던 소금이 침전되어 암석으로 변하면 암염이라 부른다. 조개껍데기 등을 이루는 탄산칼슘이 침전되어 만들어진 암석을 석회암이라 부른다.

 

땅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는 암석은 마그마가 광물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 크기가 큰 입자를 만든다. 규산이 많이 모여 이루어진 암석은 대체로 밝은 색을 띤다. 조금 들어 있으면 어두운 색을 띤다. 화강암은 규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밝은 색을 띠고 현무암은 조금 들어 있어 어두운 색을 띤다.

 

규산 함유 정도, 식은 장소가 지하인가 지표인가 여부 등이 중요하다. 암석을 변하게 하는 것은 열과 압력이다. 700도가 넘어가면 암석이 녹는다. 열에 의해 변성작용이 일어나는 경우(열변성작용)와 마그마의 화학성분에 의해 변성작용이 일어나는 경우(접촉변성작용)가 있다.

 

진흙을 구워 도자기로 만들면 입자가 단단해지듯 혼펠스는 이암(泥巖)일 때보다 훨씬 단단하고 치밀해진다. 암석이 광역변성작용을 받으면 높은 압력에 의해 알갱이들이 눌려서 압력 방향에 직각으로 평행하게 배열된 편리(片理)라는 이름의 줄무늬가 만들어진다.

 

고무풍선에 동그란 점들을 그린 후 위에서 누르면 점들이 납작하게 눌려서 줄무늬로 나타나는 것을 연상하면 좋다.(에는 조각, 한쪽, 납작한 조각 등의 의미가 있다.) 편암은 다른 광물의 색깔이 교대로 나타나며 평행한 단속(斷續)의 줄무늬를 이룬다. 편마암 역시 단속(斷續)의 줄무늬를 이루는데 편암보다 결정이 크다.

 

지각 운동으로 인해 지층이 끊어져 서로 다른 위치로 이동하는 현상을 단층(斷層)이라 한다. 지층이 끊어졌지만 위치가 서로 이동하지 않는 것을 절리(節理)라 한다. 역단층은 양옆에서 미는 횡압력이 작용할 경우 만들어진다. 지질구조 중 지층이 구불구불하게 주름진 것을 습곡(褶曲)이라 한다.(: 주름 습)

 

암맥(dike)이란 지하의 마그마 웅덩이로부터 마그마가 지표로 올라온 길이다. 암맥과 달리 지하 깊은 곳까지 연결되지 않은 줄무늬를 맥(vein)이라 한다. 점이층리(漸移層理)는 하나의 층 안에서 아래에서 위쪽으로 갈수록 퇴적 입자의 크기가 굵은 것에서부터 가는 것으로 점진적으로 변하는 구조를 말한다.

 

아래쪽에 큰 입자가 쌓여 있고 위쪽으로 갈수록 점점 작은 입자가 쌓여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점이층리는 퇴적작용이 일어나는 동안 물의 흐름에 변화가 일어나 생긴다. 사층리(斜層理; cross bedding)는 수심이 얕은 물밑이나 사막 같은 환경에서 퇴적물들이 흘러가면서 쌓여 생긴 퇴적구조를 말한다.

 

화석은 뼈의 종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생물의 모습, 생활환경 등을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화석이다. 아주 작아서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화석을 미화석(微化石)이라 한다. 나무가 퇴적물 속에 묻힌 뒤 오랜 시간 동안 주변에 지하수가 흐르면 나무의 유기질 성분은 서서히 분해되고 그 자리에 지하수에 포함되어 있는 규산 성분이 들어간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 나무 자체는 사라지고 원래 나무와 같은 모양의 규산질 나무 화석이 남는다. 이를 규화목(硅化木)이라 한다. 화석이 될 수 있는 조건은 1) 빨리 묻히고, 2) 단단한 부분이 있고, 3) 화석화 작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룡처럼 특정시대(중생대)에만 살았다가 멸종한 화석을 표준화석이라 한다. 삼엽충(고생대), 매머드(신생대)도 표준화석이다. 지질시대의 선후 관계를 비교하는 것을 지층 대비라 한다. 표준화석이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따라서 특정한 한 지역에서만 발견되면 표준화석으로 사용될 수 없다. 지층 대비에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일과정의 원칙은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고사리는 고생대 말부터 지구상에 번성하여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고사리가 사는 환경은 습한 응달이다. 고생대 지층에서 고사리 화석이 발견되면 당시의 퇴적 환경도 지금과 같이 습한 응달이라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옛날의 환경을 알아낼 수 있는 화석을 시상화석(示相化石)이라 한다.

 

생존 기간이 길고 일정 환경에서만 사는 생명체의 화석을 시상화석이라 한다. 과거의 기록이 지층과 암석에만 남아 있는 시기를 지질시대라 한다. 지질시대는 선캄브리아대(40억년에서 57천만년), 고생대(57천만년에서 245백만년), 중생대(245백만년에서 65백만년), 신생대(65백만년에서 1만년)로 나뉜다.

 

선캄브리아대는 거의 모두 변성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반암을 이룬다. 우리나라 고생대 중기 때의 기록이 없다. 부정합(不整合)이 주인(主因)이다. 부정합은 지층이 위 아래로 붙어있지만 연속적으로 퇴적되지 않고 두 층 사이에 오랜 시간 간격이 있는 것을 말한다. 부정합의 원인은 융기와 침강이다.

 

신생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에 동해는 없었다. 1700만년전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동해가 만들어졌다. 1700만년전의 100배인 17억년전에 우리나라는 남극 쪽에 옹기종기 붙어있던 대륙 한 귀퉁이에 붙어 있었다. 대륙 이동은 고지구자기를 측정하면 알 수 있다.

 

고지구자기는 암석에 보존되어 있는 과거의 지구자기장이다. 머리, 몸체, 꼬리로 이루어진 삼엽충은 몸체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엽충은 고생대 바다에서 번성했던 생물이다.

 

공룡이 지역의 퇴적암이 처음부터 단단하지 않았던 시대에 호숫가의 부드러운 퇴적층을 걸으면 발자국이 찍히고 그렇게 찍힌 발자국 위에 다른 퇴적물이 덮이면 발자국이 퇴적물로 보존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위로 두꺼운 퇴적물이 쌓이고 압력을 받으면 단단한 퇴적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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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은 교실에 앉아서 사고하기보다 야외에서 그 대상을 직접 관찰하고 만져 보고 느낄 수 있을 때 가치가 더욱 빛나는 학문”(이한조 지음 라이엘이 들려주는 지질조사 이야기책머리에)이란 말을 들었을 때 생각한 것이 방콕 여행자(voyager casanier: 보야지 카자니에 정도의 발음일까요?)란 말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바로 이 방콕 여행자란 개념이 담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을 한 번도 자신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난 적 없이 언제나 동일한 도정을 따라 산책을 한 방콕 여행자의 상징같은 칸트에게 바친다는 말을 했다. 칸트는 오직 책을 통해서만 외부 여행을 했음에도 알프스 지형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백종현 지음 인간이란 무엇인가’)

 

피에르 바야르는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 이야기를 한다. 마르코 폴로가 가족 소유의 해외 상관(商館)이 있었던 콘스탄티노플에서 숱한 여행객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자신의 몽상을 살찌웠을 것이라 주장한 중국학 전공자 프랜시스 우드의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갔었는가?“란 책을 언급하며 바야르는 폴로가 대단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던 게 분명하다고 말한다.

 

마르코 폴로가 과연 콘스탄티노플까지 갔는지조차 의심스럽고 차라리 베네치아 외곽의 어느 평화로운 장소에 은둔했으리라는 것이 바야르의 생각이다. 마르코 폴로는 청금석(靑金石)이라 불리는 라피스라줄리와 인연이 깊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라피스라줄리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마르코 폴로다.

 

그가 아버지 니콜로와 숙부 마테오를 따라 중국을 향해 가던 중 방문한 아프가니스탄의 바다흐샨 광산에서 본 것이 푸른색으로 빛나는 돌과 그 표면에 박힌 금이었다. 마르코 폴로 일행이 광산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황과 쿠빌라이 칸의 친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좌용주 지음 가이아의 향기‘ 65 페이지)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의 저자인 바야르가 쓴 자매격의 책인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해 말할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바야르는 책들에 관한 담론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전체를 숙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언급한 숙지란 고립된 요소들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관계들을 잘 아는 것이라 말했다. 공감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바탕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문리(文理)가 트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지식을 습득해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참고할 말을 꺼내고 싶다. 철학 박사이자 글쓰기 강사인 이유선의 말이다. ”거의 일년 내내 책을 읽으면서도 항상 책을 읽으면서 살았으면 하는 꿈을 꾸면서 산다. 아마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 책이 내가 진정으로 읽고 싶은 책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책을 읽는 대부분의 상황이 내가 꿈꾸었던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럴지 모르겠다...늘 시간에 쫓겨 책을 읽는다. 아무리 읽어대도 책들은 마치 공포영화의 좀비들처럼 새롭게 나타난다.“(‘아이러니스트의 사적 진리’ 16, 17 페이지)

 

철학박사이자 글쓰기 강사로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그가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지 못해 읽고 싶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쉼없이 나타나는 공포영화의 좀비들에 비유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세상에는 하나로 수렴하는 앎의 총체성이 있기에 지식들의 관계니 맥락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사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문학평론가 정은경(鄭恩鏡)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이야기는 다 얘기되었고 모든 형식도 다 실험되었다고 생각했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 같고 그 파도의 출렁임 속에 피로와 허무로 잔뜩 찌들어 있던 어느 날, 이 책은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서사가 다시 반복된다 해도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고 이야기는 새로운 인간과 작가들에 의해 첫 키스처럼, 첫 리듬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밖으로부터의 고백 디아스포라로 읽는 세계문학’ 109 페이지)

 

할레이드 호세이니의 장편 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두고 한 말이다. 문학작품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문과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읽은 인상적인 책들 가운데 김경만 교수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폭력이란 개념을 논한 책이다.

 

상징폭력이란 선학(先學)들이 이루어놓은 지식의 장()에 진입해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들이 이루어놓은 성과로부터 연구를 시작해야 하기에 감수할 수 밖에 없는 후학들의 고통을 말한다.(123 페이지) 김경만 교수는 거인의 어깨를 논한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탔기 때문이라는 뉴턴으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작가이자 수학자인 로빈 애리앤로드는 뉴턴의 말이 진리를 겸손하게 인정한 말일뿐 아니라 자신에게 끊임없이 표절 혐의를 씌운 키가 작고 구부정한로버트 훅을 겨냥한 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물리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101 페이지) 애리앤로드는 거인의 어깨운운한 뉴턴의 말을 뉴턴답지 못한 말이라고 말했다.

 

어떻든 뉴턴이 설령 훅을 조롱해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이는 후학이 선학으로부터 상징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는 사태를 잘 말해주는 경우라 하겠다.(후크는 최초로 세포; cell‘이란 말을 사용했고 뉴턴과 달리 빛의 파동설을 지지한 사람이다.) 요컨대 선학과 후학의 근원적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일 상징폭력이란 말을 숙지하고 있다면 그런 관계를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개념을 숙지하는 것도 관계를 숙지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학문(學問)이란 말은 주역(周易)‘에서 비롯된 말이다. 배움으로써 모으고, 물음으로써 분별할 일(’학이취지: 學以聚之 問以辨之’)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주역 건괘 문언전)

 

칸트 전공자인 백종현 교수는 많이 배우는 것이 먼저이고 분별하는 것은 나중이라고 말한다.(‘인간이란 무엇인가’ 75 페이지) 개별 지식보다 관계를 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내공이 어설픈 사람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종현 교수는 철학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칸트를 언급한다.(‘인간이란 무엇인가’ 76 페이지이 말은 고립된 지식에 집착하지 말고 지식들의 관계를 헤아려야 한다는 말과 맥락이 같다. 지질학 공부를 위해 책을 펼쳤으나 첫 줄을 읽고 이런 가외(加外)의 상상을 하는 나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나는 고향 밖을 한 번도 여행한 적 없으면서도 알프스의 지형을 누구보다 많이 숙지했던 칸트가 부럽다.

 

사물들 속으로 산책하기 위해 눈을 통해 나선 내 정신의 여행을 접어야겠다. 나는 엄청난 암기력과 학구열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을 흡수(홍대선 지음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147 페이지)했기에 책만으로도 알프스의 지형을 깨알처럼 알 수 있었던 칸트를 섣불리 닮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공부하자. 나는 많으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란 말을 믿는다. 물론 내 지식의 맥락 안에서 의미 있는 개별 지식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염두에 두는 공부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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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1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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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마샬의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은 매력적인 책이다. ‘지리적 조건의 수인(囚人)‘ 정도로 번역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의 수인이란 규정에 대항(?)하는 공간의 수인 정도의 말이리라. “인간은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공간 앞에서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다.“(이정우 지음 탐독(耽讀)‘ 188 페이지)는 멋진 말을 생각한다. 부연해 말하자면 인간이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장소 앞에서가 아니라 공간 앞에서다.

 

장소는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공간은 사물들을 담고 있는 빈 터.“로 인간은 이 추상적 사유의 대상에 입문해야만 과학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탐독저자의 설명이다. 팀 마샬이 지리로 인한 한계를 절감할 수 있는 예로 든 것은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 만들어낸 물리적 장애물, 우기에서 비롯된 난관들, 천연자원이나 식량 차원에 대한 접근 등은 피할 수 없다. 이념은 스쳐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10 페이지)

 

나는 예상하지 못한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내 편견을 확인했다. 저자에 의하면 아프리카는 지리가 최대의 장애물이며 고립의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아프리카 남쪽 땅의 상당 부분은 정글과 늪, 사막 또는 가파른 고원지대라 설명한다, 이런 지형에서는 밀이나 땅을 재배하기도, 양을 치기도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코뿔소나 가젤, 기린 등은 짐을 나르는 짐승이 되기를 완강히 거부한다.(224 페이지)

 

서유럽과 남유럽의 차이는 또 어떤가. 두 유럽이 보여주는 양상은 대조적이다. 남유럽은 북유럽에 비해 농업에 적합한 연안 평야가 적고 가뭄이나 여타 자연재해의 피해를 더 많이 받았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러시아에게 세바스토폴은 단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부동항이다. 그렇지만 흑해를 나서서 지중해로 진출하려면 1936년 몽트뢰 협정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의 관리를 위임받은 나토 회원국 터키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다.”(139 페이지)

 

보스포루스 해협은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가르는 바다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터키는 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으로 나뉜다.(정인경 지음 보스포루스 과학사수록 강응천 추천사) 저자는 인도와 중국이 한 달 간 이어진 1962년 국경 분쟁 이후 충돌한 적이 없는 것을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히말라야)이 두 나라 사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10 페이지)

 

중국이 이제까지 변변한 해군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데도 지리적 원인이 작용했다. 광활한 땅덩어리와 긴 국경선, 짧은 바닷길 덕분에 굳이 해양 세력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23 페이지) 그런 중국이 해양 강국이 되려는 이유는 명백하다. 상품 생산에 필요한 자원이 고갈되거나 자원 유입 통로(해상)가 봉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42 페이지)

 

저자는 중국과 미국이 해상에서 벌일 충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금세기 강대국 외교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 말한다.(42 페이지)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적 위협이 되었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20155월 두 나라가 지중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거의 145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해역까지 진출한 베이징의 이 같은 결정은 자국 해군력을 전 세계로 확대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지중해에서 발견된 가스전에 은근히 눈독을 들이는 러시아와, 중국은 나폴리에 주둔하는 미국의 제6함대를 포함해서 이 지역에서 나토의 영향력을 제거하자는 데 의기투합했다.(156, 157 페이지)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한반도의 지리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것이 남과 북 사이에 인위적 분단이 가능한 이유가 되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지리상으로 동과 사이에 실질적인 분단이 빚어졌다. 반도의 서쪽 지형은 동쪽보다 훨씬 완만하며 인구의 다수도 이곳에 모여 산다.(169 페이지) 섬나라 일본은 과거에는 고립을 택했지만 이제는 군사적 개입을 선택했다. 중앙아메리카는 지리적 측면에서 보면 파나마 단 한 곳만 빼면 살아가는 데 유리하지 않은 곳이다. 지금 중국으로부터 파나마로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브라질 국토의 1/3은 정글 지대다. 개척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브라질 정부는 화전 농업 종사자들에게 정글의 나무들을 베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몇 년이 지나면 작물을 재배할 수 없을 정도로 토질이 나빠진다는 점이다. 농부들은 더 많은 삼림을 벨 수밖에 없다. 일단 파괴된 삼림은 다시 자라지 못한다.(208, 209 페이지)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에는 셰일 가스와 셰일 오일이 널리 퍼져 있는 지층이 있다. 스페인어로 죽은 소(Dead Cow)를 의미하는 바카 무에르타 지층으로 유명한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소 도매 시장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는 유럽인들이 인위적으로 그려놓은 선들이 그대로 국경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목격되는 내전들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민족들을 한 국가 안에서 억지로 단일 민족으로 묶으려한 식민주의자들과 그들이 쫓겨난 뒤 새로 부상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한 신진 지배 세력, 그리고 그에 수반된 폭력의 결과물이다.(229 페이지) 아프리카에게 자원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오랜 세월 외부인들의 약탈 대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원 공유를 주장함에 따라 다른 나라들은 훔치기보다 투자를 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혜택이 별로 돌아가지 않는다.(235 페이지) 제국주의 영국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 남아프리카를 지배한다는 것은 희망봉을 재배하는 것이었고 이는 곧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의 해상 교통로를 장악하고 있음을 의미했다.(249 페이지)

 

레바논은 산맥 이름이 나라 이름이 되었다. 프랑스가 그렇게 했다. 시리아는 소수파가 다수파를 지배하는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다. 이란 북서부에는 유럽이면서 아시아이기도 한 나라가 있다. 터키가 그 나라다. 터키는 자신들의 북쪽과 북서쪽에 있는 이웃들에게 진정한 유럽으로 받아들여져본 적이 없었다. 터키는 국토의 5 퍼센트 이하가 유럽에 속해 있다.

 

대다수 지리학자들은 터키 국토의 아주 작은 면적 즉 보스포루스 해협의 서쪽만을 유럽으로 보고 나머지 즉 보스포루스의 남쪽과 남동쪽은 넓은 의미에서 중동으로 보고 있다.(293 페이지) 유럽은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순간 경제적 불평등에 시달리는 75백만명의 터키 인구가 유럽 국가들로 몰려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터키가 대형 이슬람 국가라는 점도 이유의 하나다.

 

파키스탄은 순수한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물론 이는 분단상황을 말해주기도 한다. P는 펀잡, A는 아프가니스탄, K는 카슈미르, S는 신드, T는 탄을 의미한다.(313 페이지) 북극은 21세기 경제 및 외교의 각축장이다. 북극 즉 arctic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아르크티코스(arktikos)는 그리스어로 곰 근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 별 두 개가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는 큰곰자리를 의미한다.

 

북극해의 넓이는 1,409만 제곱 킬로미터다. 러시아만큼 넓으며 미국의 1.5배에 달한다. 하지만 해저의 대륙붕은 그 어떤 대양에 비교해도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북극 지역은 캐나다 일부, 핀란드,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스웨덴, 미국 알래스카 일부까지 포함한다.

 

북극 지방의 얼음이 녹아가자 북극이사회의 8개 회원국(북극 접경 국가 5개국: 캐나다, 미국, 러시아, 노르웨이, 덴마크, + 북극권 국가 3개국: 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웨덴)들은 더욱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정학(geopolitics) 토론이 지극학(geopolarctics)으로 변모해 가는 양상이다.

 

북극이사회에 끼지 못하는 나라들 중에서 이 지역에 대한 합법적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나라들이 있다.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개념에서 북극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주권 문제는 동일한 욕망과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군대와 상업적 운항을 안전하게 확보하려는 욕망과 자기가 잃어버린 곳을 남들이 차지할지 모르는 데에 따른 두려움이다.(358 페이지)

 

현대 기술이 우리를 지리라는 감옥에서 탈출시켜준 사례들도 있음을 상기시키며 저자는 인간 본성의 탐욕스런 부분을 극복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득이 되는 그레이트 게임을 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지리가 모든 사건의 방향을 지시하지는 않지만 위대한 사상과 위대한 지도자들 역시 지리라는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력이라는 족쇄만을 풀었다. 게다가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 속에 갇혀 있다. 타인에 대한 의심과 자원을 탐하는 원초적 경쟁이 형성한 틀 속에 말이다. 우리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36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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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겸재(謙齋)에 관심이 많다. 그것의 시작은 김정숙(미술사학 전공) 님의 그 마음을 그대는 가졌는가란 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 책에 나오는 균형이냐 대립이냐는 글에 의하면 정선(鄭敾)은 금강산을 음양으로 구성된 태극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왼쪽 흙산이 음()이고 오른쪽 바위산이 양()이다.

 

이어 한정희(미술사학 전공) 님의 한국과 중국의 회화를 통해 17, 18세기에 우리가 그렇게 문화 독립적인 자주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접했다. 저자는 겸재가 금강산을 찾고 그림을 그린 것은 우리 것을 찾고자 하는 자아의식이나 국가의식의 발로라기보다 세속에서 잠시 떠나 초속(超俗)의 진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심진(尋眞)의 경지이며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신선의 마음이 되어보려는 일종의 신선사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후 이상국(문화콘텐츠 전공)님의 옛 사람들의 걷기에서도 겸재를 만났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겸재를 찾다가 그가 주요 내용으로 다루어진 부분이 있어 책을 산 것이라 해야 한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겸재가 신라의 일월 고사(古事)에서 이름을 따온 세오(細烏)에게 한 말이다.

 

겸재는 조선에는 조선의 그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하며 보고 또 보고 싫증이 날만큼 실컷 돌아다니며 자연현실을 들여다보라(포유어간; 飽遊飫看. ; 물릴 포, ; 놀 유, ; 물릴 어, ; 볼 간.)는 말을 했다. 이어 여러 명가를 섭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당히 시사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오늘 산 전영우(산림생물학 전공) 님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겸재가 진경산수화풍을 확립한 때는 포항 청하 현감 재임시란 말이다. 저자는 옛 그림에 나타난 소나무는 유교적 윤리 규범의 상징이나 도교적 장생사상을 뜻하는 장수(長壽)의 상징물로 형상화한 것이 대부분이고 자연 그대로의 소나무를 화폭에 담는 일은 드물었다고 말한다.

 

한정희 님의 지적(겸재가 금강산을 찾고 그림을 그린 것은 초속(超俗)의 진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심진(尋眞)의 경지이자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신선의 마음이 되어보려는 일종의 신선사상에서 나온 것)과 공명한다. 이래저래 공부가 산만해졌다. 진경(眞境)이냐 아니냐를 논하기보다 겸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지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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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혐시대의 책읽기
김욱 지음 / 개마고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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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시대는 책혐(冊嫌)시대라는 김욱의 정의(定義)에 공감한다. 혐오 대상으로서의 책은 즉각적인 실용성이 떨어지는 책이고 이 문제 극복을 위해 인위적으로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처방이다. 하기야 책혐 사태를 극복할 문제로 보지 않는 사람이 책에 대한 혐오감을 표하는 것이 아닌 이상 책혐 시대에 대한 책을 쓸 이유는 없으리라.

 

저자는 좋은 책이란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도록 도와 독자를 창의적으로 각성시켜주는 책이라 말한다. 책을 읽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바로 안 뒤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이 되도록 애쓰지 않으면 책 읽기는 무용한 중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책읽기를 통해 생각이 발전하고 창의적인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생각의 진화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는 누구나 참여해야 한다.

 

책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책과 화해하기, 2장 책과 마주하기, 3장 책과 사귀기, 4장 책과 헤어지기 등이다. 책읽기는 가장 강력한 쾌락이라는 것이 저자의 전제다. 그럼에도 책읽기에 나서지 않는 사람은 맛을 몰라서일 것이다. 베스트셀러 추종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책읽기 능력을 끊임없이 키워가는 것이다. 또한 책읽기를 통해 체계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로부터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책읽기 능력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키워가야 한다는 불문율 같은 깨달음이다. 저자는 애초에 우리가 낭비 없는 성공을 꿈꿀 수 없다는 전제하에 책읽기에서 상당한 낭비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주 작은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한 사람을 전문가로 정의한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말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책읽기 능력을 체계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은 자신의 문제의식으로 세상을 보고 답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책읽기를 통해 정보를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긴 호흡의 논리적 사고능력을 키워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책을 읽지 못하는 또는 읽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감수해야 하는 뇌의 피로감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책읽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습관이 되지 않아서다.

 

한국인의 평균 독서율은 OECD 평균에 가깝지만 연령대별로 상당히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16에서 24세의 독서율은 1, 25에서 34세는 5, 35에서 44세는 8, 45에서 54세는 16, 55세에서 65세는 최하위다. 저자는 말한다.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언어능력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능력이 뒤떨어진 사람들이 다른 영역에서 고도의 경쟁력을 가지리라 보기는 어렵다고.

 

우리에게는 자기 생각의 한계를 깨는 책이 필요하다. “나를 더 강하게 키우는 것은 내 틀에 박힌 생각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책이 아니라 내 생각에 감히 도전하는 책들이다.”(63 페이지) 저자는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 외의 책을 읽지 않는 것을 책혐의 하나로 본다. 저자는 인문, 사회과학자들이 자연과학에 대해 무지한 것보다 자연과학자들이 인문, 사회과학에 대해 무지한 것이 사회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라 생각한다.(70 페이지) 후자의 경우 사회에 이용당하는 바보가 되거나 원치 않는 죄를 지을 수 있다.

 

전공과 무관한 책읽기, 다양한 책읽기, 인간(세상)에 대한 책읽기 없이 서로 다른 사물을 결부시키는 능력은 길러지지 않는다.”(73 페이지) 인문학은 과거를 균열내고 어떻게든 인간 중심의 미래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중세의 지배 엘리트나 왕들이 감당했던 지적 수고와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책읽기를 통해서라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저자도 말했듯 고통 없는 재미만을 통해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108 페이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거나 난해한 철학 개념을 이해했을 때 느끼는 지적 희열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책읽기를 통해 재미만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재미와 함께 하는 고통이 키워드다. 상당한 습관이 되면 적응이 용이하지만 읽기 자체가 고통이고 읽기를 통해 얻은 깨달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순과 불합리의 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구(名句)만을 탐하는 것도 문제다. 오직 관건은 책 전체와 조응하는 맥락적 연관성 내에서 드러나는 적확한 문제의식이다. 저자의 정치(精緻)한 논리는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 내가 열심히 책을 읽는 이유는 내 고유의 생각의 몫을 늘리기 위해서다. 선인(先人)들이 이룩한 방대한 지적 보고(寶庫)를 섭렵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내 생각을 펼칠 수는 없다. 물론 그 생각들 위에 내 것을 얹어야 한다.

 

책읽기는 지적인 건축과정이다. 붕괴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 그럴 듯 해야 한다. 책읽기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하나의 책에서 꼬리를 물고 다른 책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한비자가 신흥봉건세력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그로서 법치(法治)를 주장했다면 공자는 한비자 이전 시대의 노예주 귀족들을 대변하는 상대적 진보 이데올로그로서 예치(禮治)를 주장했다는 사실(139 페이지)이다.

 

이런 예를 종교개혁 시기의 대립에서도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세력은 신흥 상공업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했고 구교 세력은 농업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는 말이다. 저자는 역사책이 모든 것의 배경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를 알기 전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149 페이지)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다면 우선 그 진보의 의미가 무엇이든 역사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진보한다는 관점으로 쓰였는가, 아니면 진보란 인식할 수 없고 역사란 각 시대의 독자적인 의의와 완결성을 사실로써 이해하는 것이라는 관점에 의해 쓰인 것인가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150 페이지) 조지형의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랑케 & 를 참고하면 좋다.

 

이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의 문제의식과 비교를 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쿤의 과학관(科學觀)은 근본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변천 및 발전이 혁명적이라는 데 요지를 둠으로써 과학의 진보가 축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종래의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김명자 번역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역자 해설 참고)

 

상설하지 않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랑케와 카의 대립은 바슐라르(불연속)와 베르그송(지속)의 대립(이정우 지음 담론의 공간참고)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그저 역사 속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며 내일을 위해 역사 속 당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154 페이지)

 

저자는 철학책, 사회과학 분야의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저자는 자연과학책 읽기는 겉핥기라도 좋다고 말한다. 이 분야에서 나온 이야기 가운데 쿤 이야기도 있다. 이는 내가 앞서 언급한 바대로다. 저자는 과학자의 세계에서 혁명 이전에는 오리였던 것이 이후에는 토끼가 된다.“는 쿤의 말을 인용하며 이를 칸트의 물자체(物自體)에 비유한다. 칸트는 물자체는 알 수 없고 오성(悟性) 형식을 통해 사물을 인식할 뿐이라는 말을 했다.(181 페이지)

 

저자는 문학책 읽기는 허구로 진실을 이해하는 읽기로, 예술책 읽기는 책읽기 자체가 시비로 설명한다. ”예술을 접하고 심미적 즐거움을 느끼고, 다시 책읽기를 통해 심미적 안목을 깊이 있게 만들어 나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되고, 귀에 들리지 않는 많은 것들이 들리게 될 것이다.“(208 페이지) 종교, 심리학책 읽기는 인간의 무/ 의식적 현상으로 규정되었다.

 

4장은 책과 헤어지기다. 저자는 책의 신비화를 저자의 전문성에 대한 맹신을 포함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타나는 무비판적인 활자 맹신 현상으로 정의한다.(223 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어떤 분야(심지어 자연과학 분야까지)도 관련 전문가 모두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크로스 체킹이다.

 

저자는 자신의 기존 관념과 일치하지 않는 도끼 같은 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저자든 독자든 자신의 생각을 지키려면 최소한 자신의 수준에서라도 다른 의견에 반론할 수 있어야 하고 반론할 수 없으면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 모르는 경우에는 당연히 겸손해야 한다.(225 페이지) 저자가 책을 쓴 배경, 상황, 의도를 집중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글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고종석의 표현)는 말을 염두에 두고 아름다운 책을 조심하자는 것이 저자의 처방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자기식의 비판을 하는 일이고 글의 허점이나 모순을 발견하는 일이고 저자의 주장과 싸우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정립해가는 일이다.(233 페이지) 저자는 읽기를 분량의 문제로 치환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239 페이지)

 

각자의 책이란 생각할 거리, 살면서 마주치는 투쟁 대상이라는 말로 들린다. 동의한다. 덧붙일 말은 세상이란 책같은 것 말고 좁은 의미의 책이야말로 가장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장치라는 점이다. 저자는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책들에 관한 담론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전체를 숙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숙지란 관계들을 잘 알고 있느냐는 것이지 어떤 고립된 요소를 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그것은 그 전체의 대부분을 모른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는 어떤 책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시공을 초월해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말이다.(242 페이지)

 

독자가 하나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그 구체적 내용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총체적 맥락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느냐의 문제라는 의미다. 이는 외국어 독해 시험에서 모르는 단어가 군데군데 있더라도 제시된 전체 글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모르는 단어들의 뜻을 유추할 수 있는 원리와 비슷하다.(243 페이지)

 

필요한 것은 다양한 책을 꾸준히 읽어 자신의 머리 속 도서관 책들간의 맥락을 이해하고 최대한 활성화시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246 페이지) 저자는 한나 모이어와 마르틴 게스만의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를 예로 들며 우리가 정작 신경 쓸 일은 두뇌의 저장용량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에서 획득하는 미래를 향한 대응능력(창의력, 판단능력)이라는 답을 제시한다.(249 페이지)

 

답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겠지만 이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어떻든 베르그송이 언급한 기억에 대해 말할 상황이다. 베르그송에게 기억이란 단순한 암기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삶이 전개되는 모든 시간 속에서 지나온 과거 전체를 고스란히 보존했다가 현재의 순간으로 연장하여 적절하게 활용하는 정신의 유동성을 말한다.(김재희 지음 물질과 기억 반복과 차이의 운동성‘ 103 페이지)

 

저자는 본심(?)을 말한다. ”지식이 전혀 없는 지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252 페이지) 우리는 지혜로워지기 위해 지식을 추구해야 하고 미래를 위한 과거를 위해 책읽기를 해야 한다. 책 읽기의 완성이 글쓰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내 수준 또는 이해력을 확인 및 점검하고 사유를 형성하게 하는 글쓰기는 말이 따를 수 없는 체계성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글은 일상의 말(녹음해 재생하지 않는 한)과 달리 문제점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여지가 없다. ”글쓰기는 잔인할 정도로 자신의 한계를,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비춰준다.“(266 페이지) 저자는 생각을 완벽하게 정리한 뒤 글쓰기를 하려 하지 말고 일단 글쓰기를 해가면서 부족한 생각을 완성시키는 방법을 권한다.(267 페이지)

 

생각의 부족이나 나태함으로 아무 고민 없이 택하는 단어들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268 페이지)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고전(古典)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책들이 역사의 한계를 어떻게 돌파했는지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275 페이지)

 

새겨 읽어야 한다. 저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투쟁하며 얻은 답을 참고로 해야 한다. 스스로의 문제가 관건이다. 저자가 말하는 책으로부터의 해방이란 지식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지배하는 지혜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279 페이지) 내 이야기를 하고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책을 통독하며 우리에게 지혜, 요령, 독립적 해결 능력 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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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4-19 0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내용이 너무 정리가 잘 되어서 이 책을 보지 않아도 충분한 도움이 될것 같아요!ㅎ

벤투의스케치북 2020-04-19 06:25   좋아요 0 | URL
네..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