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에 지나지 않지만 서촌 해설시에 빼놓지 않고 찾은 곳이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이다. 사실 해설 코스에 포함시키지 않았기에 어정쩡하게 짧게 언급하고 지난 그곳은 방문한 것이 아니라 들른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회영 선생님 전기인 '한 번의 죽음으로 천 년을 살다' 서평단에 응모하며 한 번이라 할 것을 한 건이라 했다가 얼른 고쳤다. 이회영 선생님은 오늘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면적인 자기 희생과 헌신의 삶을 보냈다.

 

이어 신병주 교수의 참모로 산다는 것에도 응모했다. 이 책에는 정도전, 서거정, 김종직, 조광조, 남명 조식, 이이, 송강 정철, 허목, 정약용 뿐 아니라 송시열, 한명회, 세조, 신숙주, 임사홍, 이귀 등 싫어해 애써 공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당첨되면 진흙탕 같은 시간을 맞는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정도전, 조광조, 조식, 정약용, 김종직, 허목 등만 따로 집중적으로 읽을 시간이 올 거라 기대한다. 독서 친구는 요즘 일제 치하의 독립 운동가 전기 및 송우혜 작가의 '못 생긴 엄상궁의 천하',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 '왕세자 혼혈 결혼의 비밀', '평민이 된 이은의 천하' 등을 읽고 있으니 나도 이 두 책('한 번의 죽음으로 천 년을 살다', ‘‘참모로 산다는 것’)으로 송우혜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겠다.

 

이 두 책은 내 역사 지식을 늘려줌은 물론 그것들을 조각조각난 채 내 머릿 속에서 부유(浮遊)하는 역사 지식들과 연결시켜 줄 것이다. 우선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먼지처럼 모인다면 후에 산삭(刪削: 필요 없는 글자나 구절을 지워 버림)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생각한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지만 나에게 서평단 응모는 투수의 불펜 피칭과 같은 것이다. 즉 실전 등판을 위한 연습이다. 물론 나는 불펜 피칭도 전력으로 한다. 그래서 서평단 당첨 비율이 높은지도 모르겠다. 본 게임에 지장을 줄 수도 있지만 어떻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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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님의 이른 죽음이 波浪처럼 여겨집니다. 저와는 전화 몇 번, 톡 두 세 번 하고 댓글은 비교적 많이 주고 받은 정도인데 참 슬프네요. 그녀의 장례식에 다녀온 사람이 너무 많은 책을 처리하느라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 한다는 글을 썼더군요.

 

그녀가 읽다 둔 책들을 유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타계 소식을 듣고도 믿을 수 없어 그녀의 톡에 '잘 지내시나요?'란 글을 남겼습니다. 슬프고 허망합니다. 요즘 읽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우리가 불상이나 하늘의 별을 보면서 성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안에 성스러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별 관계도 아닌 사람의 죽음을 보며 슬픔과 허망함을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제 안에 슬픔과 허망함이 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어떤 점이 그 두 감정을 자극한 것일까요? 다시 언급한 책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책은 아치(我痴)라 표현했더군요. 아치의 전형은 의식으로는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 인정하지만 자아의식 때문에 무의식 차원에서는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네요.

 

이 책은 명상서답게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잘 안 되네요.. 그녀가 아픔 없는 곳에서 잘 살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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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1-1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투의스케치북님, 그장소님 부고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알라딘 서재에 말씀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다들 몰랐을거예요.
마음 아픈 일 먼저 아시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때는 충격이 너무 커서 거기까지는 말씀드리지 못햇어요.
늦었지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3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그장소님과는 페북을 함께 해서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고 허망한 일이네요.. 감사합니다.. ㅜㅜ

보물선 2019-01-14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알았어요.... 너무 놀래서 오전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너무 뜻 밖의 일이지요.. 슬픈 사연이고요.. ㅜㅜ
 

    

"...반가하지 않아도 사유할 수 있지만 반가하면 사유가 잘/ 진행된다는 걸 당신도 아는지 사유의 형식이 사유를 돕기/ 는 하지만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걸/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겠지 늘 반가상처럼 앉아 있겠지..."

 

조용미 시인의 '당신은 학을 닮아 간다'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사유의 형식이 사유를 돕기는 하지만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걸 아느냐 묻는다. 시인이 말한 사유의 형식은 반가 자세를 말하는 듯 하다. 반가(半跏)는 책상다리 자세이다.

 

서광 스님의 '단단한 마음 공부'에 이런 말이 있다. "좌선 자세를 하고 척추를 곧게 세워 보십시오. 호흡을 자연스럽게 두세 번 한 다음 몹시 미워하는 사람을 떠올려서 열심히 미워해 보십시오. 잘 안 될 것입니다."(103 페이지)

 

자세가 감정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의 글이다. 사실 이런 상관 관계는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는 그러니 이제는 어떤 자세가 어떤 감정과 밀접한지 등에 대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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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송희님. 문학작품 속 갑질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톡으로 그 분께 문의했었다. 재작년 7월이었다. 내 갑작스런 질문에 송희님은 만족할 답을 하지 못해 "죄송해서 어쩌죠?"란 말을 했다. 별 일 아닌데,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송희님은 "죄송해서 어쩌죠?"란 말을 했다.

 

오늘 송희님의 지인이 송희님이 일주일 전 여고생 딸 하나를 두고 암으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송희님의 페친인 시인 여** 님께 메신저를 통해 알려왔다고 들었다. 이제 갓 마흔을 넘긴 너무 이른 나이로 수천 권이 책이 꽂힌 방에서 앉은 채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몇 번의 통화와 톡, 알라딘(송희님의 닉네임; 그장소)과 예스(송희님의 닉네임; 언강이 숨트는 새벽)에서, 페이스북에서 주고받은 댓글이 소통의 전부였지만 문학책을 좋아하는 사람 특유의 열정과 번뜩이는 재치가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을 뒤져보니 지난 2016814일 내가 쓴 '스승을 못 만나는 것은 고아나 다름 없다는 말로부터'란 글에 송희님은 "나의 우파니샤드 - 시집 생각이 덜컥 나는군요!^^"란 댓글을 남겼다.

 

송희님이 우파니샤드란 말을 꺼낸 것은 다음의 글로 인해서이다. <(레비나스의 제자를 자칭한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레비나스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에는 책을 매개로 한 만남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직접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스승 곁에 앉는다는 의미를 가진 우파니샤드적 만남을 연상하게 하는 레비나스적 스승 - 제자 관계가 생각하게 하는 것은 스승 - 제자 관계에서는 고아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다시 최윤의 '회색 눈사람'의 마지막 구절을 읊게 된다.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 송희님의 알라딘 서재는 2018년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된 송희님에 대한 축하 인사와 답을 끝으로 20181219일 이후 새 글이 오르지 않은 상태이다.

 

슬프고 허망하다. 즐겁게 수다 떨 날들을 기약한다고 했던 송희님. 이제 대답을 들을 수 없다.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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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1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1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16:07   좋아요 1 | URL
네.. 고맙습니다.. 좋은 공부 거리네요...

hnine 2019-01-11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몸이 안좋으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시다니요...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15:37   좋아요 0 | URL
네.. 안타깝습니다...ㅜ ㅜ

2019-01-11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17:04   좋아요 0 | URL
송희님의 지인이 송희님이 일주일 전 암으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송희님의 페친인 시인 여영현 님에게 메신저를 통해 알려왔다고 합니다... 슬프고 허망합니다..

stella.K 2019-01-1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을 수가 없네요.
저도 가끔 그장소님과 댓글을 주고 받았는데.
최근 들어 알라딘도 예스24 조용하셔서 궁금하긴 했지만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너무 안타깝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17:04   좋아요 1 | URL
네. 너무 허망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9-01-11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17:05   좋아요 0 | URL
네.. 애통합니다..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니데이 2019-01-1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장소님 소식 여기서 이렇게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
위의 글에서는 오늘 이라고 나오지만, 일주일 전에 돌아가신 건가요.
너무 슬퍼요.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슴 아픈 일입니다.. ㅜㅜ..

oren 2019-01-1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안타까운 소식이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애도합니다..

cyrus 2019-01-1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들의 글에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고, 댓글도 많이 달 정도로 마음씨 좋은 분이셨는데, 비보를 접하게 되니 슬픕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슴 아픈 일입니다.. 슬프네요. 너무 이른 나이에.. ㅜㅜ

겨울호랑이 2019-01-1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소식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ㅜㅜ.. 슬프고 한숨 나는 소식입니다.

사과나비🍎 2019-01-1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에게도 댓글 남겨 주셨던 분이셨는데요. 안타깝네요....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23:27   좋아요 0 | URL
네..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애도합니다..

Breeze 2019-01-1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알라딘에서도 예스에서도 늘 열정적인 모습을 뵀었는데 안타깝습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1 23:28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허망하고 아프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페크pek0501 2019-01-1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픈 소식에 놀라고 당황하게 됩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9-01-12 22:20   좋아요 0 | URL
네... 슬픔이 크네요.. 너무 이른 나이에... 명복을 빕니다..
 
임금의 도시 - 서울의 풍경과 권위의 연출
이기봉 지음 / 사회평론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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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도시'는 지리학자의 책이다. 풍수를 연상하고 책을 접한 것은 아니다. 도시에 대한 관심이 주된 요인이다. 풍수는 정치적으로 이용된 경우가 많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새 나라를 세우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이 후속 작업이다. 정통성 확립을 말하는 것이다. 천도는 새 임금과 신하들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풍수를 근거로 논전을 펴고 결론을 내린 과정이 조선 건국 이후 벌어졌다. 조선은 고려 백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풍수를 주요 원리로 활용한 고려의 관례대로 풍수를 활용했다. 반면 고려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나라임을 보이기 위해 중국의 도시 조영 원리를 새롭게 도입했다.

 

저자는 종묘와 사직을 언급하며 궁궐 - - 하늘이 일직선상에 위치한 것을 3단계 풍경이라 정의한다. 일직선상에 위치시키기 위해 진입로가 정방향이 아니게 설정되었다는 것으로 종묘도 사직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이다. 좌묘우사를 따르면서도 정확한 좌우대칭을 따르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종묘는 외대문(정문)과 보현봉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입로를 정북이 아닌 서북쪽으로 향하게 했고 사직은 인왕산과 일직선상에 놓이게 하기 위해 진입로를 서서북으로 향하게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창경궁이 동향인 이유도 3단계 풍경을 설정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진입로를 꺾고 정전의 방향을 달리하고 정전의 위치를 치우쳐 만든 것들은 모두 3단계 풍경을 구현하기 위한 필연의 산물이다. 인상적인 것은 보편과 특수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94 페이지)

 

권위의 풍경을 만들고자 하는 목적(보편성)은 동일하지만 그 방법(특수성)은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거대 건축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106 페이지) 이는 권위를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구현방식을 달리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 산에서 궁궐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는 외국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경우 권위를 표현하는 중심은 경복궁 너머의 북한산, 관악산이고 건축물인 경복궁의 경우 그 자체가 별개의 시각대상이 아니라 북한산, 관악산과 얼마나 일치감을 줄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결정된다.(110 페이지)

 

이는 경복궁 뿐 아니라 우리의 주요 궁궐, 종묘, 사직, 성균관, 지방 고을의 관아, 향교, 사찰, 서원 등에 두루 해당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높고 웅장한 건축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세계의 풍경과 3단계 풍경의 차이는 산의 유무이다.(117 페이지) 저자는 명당을 살기 좋은 땅으로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본 낭만적이고 비학문적 시선일 뿐이라 말한다. 가령 서울 최고의 명당인 경복궁과 근정전의 터를 잡는 데 동원된 풍수 명당 논리는 사람이 살기에 편안한 땅을 찾기 위한 이론이 아니라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권위 있는 공간 찾기 이론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흥미롭다. 창경궁이 남향이 아닌 동향인 이유가 지금껏 정치를 하는 군주들의 궁이 아니라 대비(大妃)들을 위해 지은 궁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정답이라도 되는 듯 퍼져있는 상황에서 풍수에 근거 3단계 풍경 이론을 제시한 것만 보아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경복궁이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을 고르려 한 결과 선정, 영건(營建)된 것이 아니라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위 있는 공간을 찾은 결과 영건된 것이라 말한다. 그는 명당에 터를 잡은 것과 상서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 실질적 인과관계는 전혀 없다는 말을 한다.

 

중요한 것은 풍수가 가진 실용적 측면과 사상으로서의 풍수란 말(144 페이지)이다. 간혹 풍수가 가진 실용적 측면이 주목되기도 했지만 이 경우 사상으로서의 풍수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는 말이 중요하다.

 

책을 읽다가 뷔리당의 당나귀 생각을 했다. 모든 면에서 똑같은 두 개의 건초더미 앞에 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어 굶어죽는 당나귀이다. 나는 점서(占書)로서의 성격과 사상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주역도 생각했다. 지금껏 나는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다. 풍수에 대해서도 주역에 대해서도. 결론은 둘 다 사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용적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고려 대상은 아니라는 의미다.

 

고려의 경우 건국 이후 임금풍수(임금과 관련된 모든 공간에 적용한 풍수; 172 페이지)가 역사의 전면에 다시 나타난 것은 110여년이 지난 문종, 숙종, 예종 시기이다. 고려시대의 정치가 가장 안정되고 문물이 가장 발달했다고 평가받는 때였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건국과 통일의 긴장감이 사라져서 새로운 변화를 통해 긴장감을 다시 불어넣어야 하는 시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때 이용되었던 것이 바로 풍수의 지기쇠왕설인데 수도로 정해진 지 오래되어 약해지기 시작했다고 여겨진 개성의 지기를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궁궐이나 작은 서울인 남경을 건립하고 서경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났다.(188 페이지)

 

저자는 풍수 이론가들이 득수국(得水局) 명당은 방어에 취약하고 장풍국(藏風局) 명당은 방어에 유리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지레 방어를 포기하고 도망간 전력을 왜 고려하지 않는지 묻는다. 경회루 부분도 흥미롭다.

 

경회루는 다른 나라의 어떤 누각과 정자보다도 크다. 저자에 의하면 경회루는 연못이나 인공적으로 심은 나무보다 인왕산, 북악산, 경복궁의 전각 지붕과 남산을 바라볼 수 있게 설계되어 건물 자체가 클 수 밖에 없다.(261 페이지) 저자는 향원정도 천원지방의 영향이 아닌 경회루와 같은 차경(借景)의 원리에 따라 지어진 것이라 말한다.(268 페이지) 저자는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아야 정원이 보인다고 말한다 .

 

저자는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연구자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멋진 말이다. 이런 책을 보면 기존의 논의가 참 공허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천원지방 등의 말을 해설 때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릴케가 '말테의 수기'에서 말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을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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