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지 않는 상황을 밀운불우(密雲不雨)한 상황이라 말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기다림이다. 구름을 모으는 것이 내 일이라면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구름을 모으는 일이란 말은 메타포다. 물론 굳이 이런 말을 안 해도 된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녕 의도하는 것이 자연 현상인 비가 내리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다. 자연현상인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구름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새로울 것 없는 말이지만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자세가 필요하다. 식물학자 안드레아스 바를라게는 땅 위에 계속 물웅덩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란 글에서 거의 매년 봄마다 정원 일을 시작해도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3월 초에 햇살 드는 날들을 고대하는 한결 같은 자신의 습성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바를라게는 토양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토양의 점성이 크다면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고 말한다.

 

주역(周易)의 다섯 번째 괘인 수천수(水天需)괘는 기다림에 대한 괘다. 기다림<; >이란 유부(有孚)해야 즉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유부옹약(有孚顒若)을 줄여서 부옹(孚顒)이라 한다. 믿음이 있으면 우러름이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물을 의미하는 감()괘를 구름을 상징하는 괘로 풀이한 주역 책들이 있음을 말하고 싶다. "구름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날씨과학’ 163 페이지)기 때문이리라.(구름이, 너무 많이 가진 수분의 일부를 내려놓는 것이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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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읽는 조선 - 공간을 통해 본 우리 역사 규장각 교양총서 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도시는 내 주요 관심사다. 서울 및 연천 해설의 연장선상에서 생긴 결과다. 서울은 한성백제와 조선, 일제하의 경성 등의 키워드로, 연천은 고구려와 고려 등의 키워드로 풀어나가고 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펴낸 도시로 읽는 조선은 한양, 개성, 전주, 변산, 제주, 평양, 인천, 원산, 경성 등의 아홉 도시를 해명함으로써 조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공간과 장소는 의미가 다르다. 공간은 낯설고 유동적이어서 쉽게 잡히지 않는 개념이고 장소는 공간에 주관적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책에서 다룬 아홉 도시 가운데 내게 주관적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곳은 한양, 개성, 원산, 경성 등이다. 물론 한양, 경성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고 개성, 원산은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곳이다. 다만 한양, 경성은 서울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만나는 곳이고 개성은 고려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원산은 내가 사는 연천을 통과하던 경원선의 종착점이다. 한양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려 문종대부터다. 고려는 건국 이후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서경(西京)으로, 신라의 수도 경주를 동경(東京)으로 삼아 개경(開京)과 함께 3경 체제를 구축한 데 이어 문종대에 양주를 남경(南京)으로 승격시키고 궁궐을 조성했다.

 

58세에 고려 수도 개경의 수창궁에서 즉위한 조선 태조는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태조는 즉위 2년까지 고려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계룡산을 새 수도로 추천한 사람이 권중화였다. 하륜은 무악(현재의 신촌, 연희동 일대)을 추천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성(漢城) 설계를 담당했던 정도전도 처음에는 천도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태조대에 전조후시(前朝後市) 원칙에 따라 신무문 밖에 시장을 조성했으나 지역이 좁고 바로 뒤가 막혀 있어 태종이 종로로 옮김으로써 유통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개성은 20136월 개성역사유적지구란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영조실록에서 처음으로 두문동(杜門洞) 일화가 나온다. 두문동(杜門洞)은 고려가 멸망하자 조선 시대 송도(개경, 개성) 성거산 서쪽에 고려의 신하 72명이 살던 곳이다. 72명은 공자의 제자 72현을 모델로 만든 수()로 보인다.

 

전주는 감영(監營)으로 호명되었다. 감영은 감사(監司)의 본영(本營) 즉 조선시대 8도에 파견된 관찰사(2)의 업무 공간이었다. 전주는 나주, 광주에 비해 서울에서 가까운 고을이다.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관찰사는 일상적으로 지방관의 근무를 평가하고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감찰(監察) 업무를 치르는 등 상당히 힘든 일정을 치렀다. 조선 후기 전주는 감영을 바탕으로 대도시로 성장했다.

 

사람 살기에 적합하면서도 호젓하고 풍광이 빼어난 변산은 한 면은 넓게 바다로 열려 있고 나머지 세 면은 산으로 둘러쳐져 있는 호리병 같은 곳이다. 변산반도와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있다. 교산 허균과 반계 유형원이다. 변산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형원은 서른 두살 때 변산에 들어와 죽을 때까지 살았다. 변산에서 유형원이 집중적으로 저술한 책이 반계수록이다. 이 책은 토지제도를 비롯, 정치, 교육, 군사 제도 및 사회신분제 등 국가 전 분야에 걸쳐 조선의 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법제를 모색한 국가 기획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기조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에 둔 변혁이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등에게로 이어졌다.

 

제주는 풍부한 신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브리콜뢰르(손재주꾼)의 브리콜라주(손재주 작업 결과물)로 파악한 신화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 제주다. 치밀한 계획이 아닌 무엇이든 손쉽게 사용 가능한 재료로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다.

 

평양은 평안도의 감영이 있던 곳이다. 평양 감사가 아니라 평안 감사라 해야 맞다. 감사 즉 관찰사는 도 단위의 관직이다. 평안감사가 탐관오리의 대명사가 된 것은 평양이 사행로의 주요 경유지였기 때문이다. 경유지 도처에서 사신들을 접대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은 일본에 의헤 설치된 조계(租界) 지역이었다. 인천은 1876(고종 13) 강화도 조약 이후 부산(1876), 원산(1880)과 함께 개항된 세 항구 중 하나다. 인천이 개항된 시기는 1883년이다.

 

영흥만에 위치한 원산은 태조 이성계의 조상인 목조(穆祖) 때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조선은 일본이 개항지로 영흥만을 요구하자 왕릉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일본이 원산을 개항지로 고집한 것은 가상의 적인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경성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의 500년 도읍지인 한양(한성)을 대체해 불린 이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 도시인 서울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가 20세기 초 즉 경성 시절이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독립운동과 저항, 상존하는 위험이 그 사대의 전부가 아니듯 모던함도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근대 또는 현대라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변화와 속도를 당대인들은 모던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경성과 밀접했던 시인, 작가가 이상(李箱), 박태원 등이다. 이상은 제비 다방, 쓰루(つる; ) 다방 등을 운영했다. 상자 속에 갇힌 듯 전공이나 제한된 관심사에 매몰된 근대인을 희화화한 이상은 암울하고 무력한 식민지 시대에 비상 충동을 느꼈으리라.

 

책의 앞 부분에 이상의 오감도 이야기가 나온다. 1인의 아해부터 13인의 아해까지 등장하는 이 시에서 13이란 숫자는 조선 13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 8도가 13도가 된 것은 1896년 갑오개혁 이후다. 이상의 오감도는 막다른 골목이자 뚫린 골목인 식민지 시기 한반도의 공간성과 역사성을 결함시킨 작품이다.(9 페이지) 이상의 날개가 관념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좌우된 개인의 실존을 드러낸 작품이듯 오감도 역시 시대상황과 무관할 수 없는 작품이다. 도시 이야기를 다룬 여타의 다양한 책들을 읽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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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상징하는 감괘가 겹친 중수감(重水坎)은 내가 좋아하는 괘다. 엎친 데 덮친 격의 어려움을 의미하지만 소성괘의 가운데에 양효가 자리하고 위아래에 음효가 자리한 것이 대칭이어서 좋아보이는데다가 그런 소성괘 두 개가 위아래로 배치된 정연한 질서의 괘이기 때문이다.

 

이 괘의 육사(六四; 네 번째 음효)는 납약자유(納約自牖). 어두움(어려움)에 처해 스스로 창문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周易)이란 인간사의 변화상을 64개의 괘(384)로 코드화한 텍스트다. 다른 책들도 인간사의 여러 국면을 말하지만 집중적으로 변화에 초점을 맞춘 책은 주역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주역의 경고에 귀를 닫았다.”는 말은 그는 인생의 경고에 귀를 닫았다.”는 문장으로 고쳐도 좋으리라.(어기서 말하는 그는 연산군이다.) 어떻든 납약자유(納約自牖)란 구절을 읽다가 스스로 창문을 만든다는 의미의 자유(自牖)는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의미의 자유(自由)가 아닌가, 란 생각을 했다.

 

요즘 내 심정이기도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지금까지 참 자유롭게 지냈으면서도 실로 그 소중함을 몰랐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모두 깨달음은 이미 넘치게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소중함을 가슴으로 느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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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주공(周公) ()을 꿈에서조차 뵙지 못하게 되었다며 탄식했다. 주공 단은 주나라 무왕의 동생이다. 공자는 주나라를 이상국가로 여겼다. 반면 진시황은 주나라의 봉건제를 철저하게 혐오했다. 봉건제도는 제후에게 봉토를 나누어주어 그 영역(‘; ‘)을 다스리게 하는 통치제도다. 진시황은 바로 이 봉건제도를 혐오해 강력한 중앙집권제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순수(巡狩)를 감행하다가 과로로 죽었다. 순수란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말한다. 만일 진시황이 봉건제를 수용했다면 광활한 중국 대륙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순수(巡狩)하다가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진흥왕 순수비의 그 순수다. 반면 제후가 천자에게 가는 뵙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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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전공하지 않아서이거나 못해서이겠지만 세종은 내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왕이다. 하기야 전공자가 아니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라면 정조도, 성종도, 중종도 관심 밖에 두어야 옳으리라. 정조에 대해 집중하느라 그랬다고 볼 수도 없다. 정조에 대해 정통하지도 못했으니 면목이 없거니와 공부는 두루 하는 것이 옳으니 말이 되지 않는다 하겠다.

 

본질이라 하기 어려운 '여진족인 태조의 후손'이라는 이슈, 과학기술이란 이슈 정도에 집중 했을 뿐 세종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은 문화해설을 하는 입장으로 변명의 여지 없이 부끄러운 일이자 위험한 일이다. 물론 세종을 천문학, 음악 등의 키워드로 언젠가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씩이라도 읽어야 후에 고생하지 않을 것이다. '후에 제대로'란 말은 불성실한 공부를 의식한 수사(修辭)인지도 모른다.

 

최근 내가 사는 연천에 뒤늦게 관심을 기울이는 나는 오늘 (중고를 파는 오프라인 매장인) 알라딘에 나온 박현모 교수의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를 구입했다. 종로 알라딘으로 건너오기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이석제 저자의 '세종이 꿈꾼 나라'를 읽다가 가사평, 송절원, 불로지산(佛老只山), 거여평, 부로지산(夫老只山) 등의 연천의 주요 지명들이 강무(講武)와 관련해 언급된 것을 확인했다.

 

연천이 세종의 강무가 펼쳐진 곳이라는 말은 얼마전에 들어 알고 있었다. 단 그저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해야 옳다. 그러던 중 오늘 종로 알라딘에서 박현모 교수의 책에서 세종이 강무를 지나치게 거행했다는 내용을 접했다.(강무는 사냥을 겸한 군사훈련이다.)

 

비판도 지지도 아닌 있는 그대로 읽되 연천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단서를 얻는다면 좋겠다. 박현모 교수의 책을 산 것은 이런 점 외에도 세종의 아버지 태종을 비롯 황희, 박연, 정인지, 김종서 등의 신하와 세종과 비교되는 군사(君師) 정조 등 아홉 사람이 본 세종을 기록한 책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어서였다. 기획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요즘 나는 이렇게 충동 구매의 대책 없음을 자탄(自嘆)하는 마음으로 책을 살 이유를 스스로 몇 가지는 제시할 수 있어야 중고일망정 구입하자고 다짐하고 있다. 빨리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송파(松坡)에 이어 광진(廣津)을 해설하게 되었는데 그간의 조선사 위주의 공부를 지양하고 고구려, 백제 등의 역사를 익힐 기회라 생각한다.

 

고구려는 내가 사는 연천의 호로고루와 임진강을 통해서도 익히고 있다. 그간 조선사에 다소 소홀해 세종을 읽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종은 정통성 없이 (반정으로) 왕이 된 까닭에 타개책으로 성리학과 사림을 택했다는 임자헌 님의 설명을 듣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 요즘 지치고 힘들어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하지만 한국사는 그런대로 쉽게 읽고 있다.

 

귀신을 잔뜩 싣고 다닌다는 의미의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란 말로 죽은 사람들을 잔뜩 나열하는 시()를 조롱했던 이규보의 비판의식을 역사서 읽기에 비추어 보아야 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쉽게 읽히지만 역사서 읽기는 어렵다. 우리 역사서를 읽으면 조선이나 고려, 삼국 등의 인물들 이야기를 많이 인용하고 현대서를 읽으면 서양 사람들 인용 빈도가 높은 것이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책을 잘 안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어휘력이 초라해짐이 느껴지고 문제의식이 사라지거나 엉성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러니 인용 빈도가 높은 것을 우려하지 말고 열심히 읽되 내가 공들여 생각한 것 다시 말해 덜 의존적인 이슈들을 다듬는 것이 옳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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