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宗廟) 해설 시간에 희생(犧牲)이란 단어를 이야기한 것은 종묘가 제례 공간이기에 그렇다. 희생이란 종묘 제사에 바치는 살아 있는 소를 말한다. 임금이 성생위(省牲位)에서 직접 그 제물들을 점검했다. 기를 때는 축(畜)이라 하고 제사할 때는 생(牲)이라 한다.

소 우(牛)자가 들어 있는 생이란 단어도 그렇지만 양(羊)자가 들어 있는 의(義), 미(美) 등의 단어들도 관심거리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해설서(김영수 지음 ‘절대 역사서 사기’)를 읽다가 ‘평준서’를 만났다.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列傳) 등으로 이루어진 사기 전체의 백미는 경제에 관한 내용을 담은 평준서(平準書)이다.

상업과 상인을 극도로 억압하던 시대적 분위기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자유경제론을 제시하는 한편 경제가 인간의 생활은 물론 심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은 왜 평준이란 말을 썼을까, 이다. 평화(平和)를 파자(破字)하기를 벼(화禾) 즉 식량이 입(구口)에 고르게(평平) 들어가는 것이라 말하지만 사마천은 경제는 평준(平準)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답은 농업과 상공업의 고른 발전을 강조하기 위해서란 것이다.(조선의 농업 위주의 정책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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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류성 식도염도 몸의 복잡미묘한 생리를 반영하는 질환인 듯 하다.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에게 빈발한다는 이 질환에 대해 내가 오해를 했었다.

위산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인데 역류성 식도염이란 산이 부족한 상태로 일을 하던 위장이 힘에 겨워 내는 신음이라 할 수 있다.

통제력을 잃었기에 부족하나마 가지고 있던 산이 역류하는 것이다. 생각을 줄이는 것도 좋지만 생각을 줄이기 이전에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꼭꼭 씹어먹는 것 등만으로도 충분한 반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은 줄이려 하기보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지 않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거나 하는 식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 경우 커피가 문제인데 별 맛도 느끼지 못하면서 동기들과 어울릴 때 함께 마시게 됨을 반성한다.

내 동기 중 내가 존경하는 여자 분이 있다. 다섯 살 연하의 이 동기에게 나는 존경한다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한다.(물론 너무 자주는 아니게.) 지식이 많고(서울대 역사교육과 출신) 똑똑한 데다가 수영, 사이클 등의 운동에도 열심인 이 분은 나에게 늘 단순하게 살라고 충고한다.

생각이 너무 많고 말이 너무 많고 쓰는 글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런 말에 조금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숱한 지적 섭렵 끝에 범위와 양을 줄여 책을 읽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현명한 동기로부터 듣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과 삶을 대하는 방법에서부터 운동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내가 이 동기에게서 배울 것은 많다.

이 분도 내가 ˝스승˝이라고 말하는 대신 ˝존경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 것이다. 생각의 현명한 줄임, 이것이 내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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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답사 시간에 호위청의 호위가 호위(扈衛)라는 사실을 알았다. 호위(護衛)로 알고 있었는데.. 호위(扈衛)는 궁궐을 지키어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호(扈)는 사람의 성으로도 쓰인다. 호영송이라는 시인이 생각난다. 그래서 더욱 호위(扈衛)라는 말이 뜻 밖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최근 옥새(玉璽)라고 해야 할 것을 옥쇄(玉碎)라고 쓴 책을 읽었다. 옥새는 임금의 도장이고 옥쇄는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의미로 대의나 충절을 위한 깨끗한 죽음을 뜻한다. 전혀 다른 것이다.

물론 언어가 크게 중요할까 싶기도 한데 이는 대개의 사람들이 이야기의 덩어리를 문제삼(듣)지 구체적인 단어 하나 하나를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옥새를 옥쇄라 한 책은 전체적으로 뛰어난 내용을 구성으로 한다. 문장들이 다소 산만한 감이 있지만..

최근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올해도 진행합니다.˝라고 쓴 사이트에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올해도 진행됩니다˝라고 하든지 ˝서울미래유산이 올해도 역사탐방을 진행합니다.˝라고 하든지 해야 바른 문장이 된다는 댓글을 달았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 반응도 표출되지 않았다. 역사나 문화 등의 글쓰기는 비문(非文; 문법이나 어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문화해설을 하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내 스타일은 기본적인 사실들을 언급하며 편안한 해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이상의 사실들을 엮어 깊이 있는 해설을 하려 하거나 임팩트 있는 사실을 전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화해설은 역사 강의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고 쉽게 해설하라는 말도 들었다. 공감하고 수용할 수 밖에 없다. 감사한 일이다.

답은 어디에 있을까? 기본 지식에 문제가 있으니 어려운 것들에 의존하는 것일 수 있다. 기초 과정에서 (경복궁 두 시간, 해설 시연 무) 궁이 아닌 주먹 도끼, 농경문 청동기, 금동대향로, 명도전 등을 배웠기에 4대궁을 기본적으로 다 배우고 두 번씩 해설 시연을 치른 다른 기초 과정 동기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올 1월 전문해설사 과정 시연을 치르고 보니 알게 되는 것들은 그 짧은 시간의 준비를 위해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이고 그렇기에 단순히 외우는 것과는 다르게 많은 부분이 구체적으로 입력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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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7-06-0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 댓글을 썼는데 흔적없이 날아갔네요^^
최근 훌륭한 문화해설사님을 만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벤투님도 그런 분이실 것 같아 내심 뿌듯하네요

벤투의스케치북 2017-06-08 09:28   좋아요 1 | URL
아고.. 저는 훌륭한 해설사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좋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언젠가 우리의 한 아카데믹한 연구자가 철학 이론으로 가수 김광석의 노래를 분석한 책을 냈었다.

어제, 오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맴돌았지만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았다.

김광석 분석서에 대해 저자 이름은 물론 제목마저 기억하지 못하지만 김광석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분석한 위에 일반론을 도출한 뒤 다시 구체적 개인의 실존적 정황을 언급했으리라 보인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란 가사가 나온다.

무엇과 이별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구체적으로 알려하지 않는 것은 나도 매일 이별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별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책이다. 시간 때문에, 그리고 체력은 물론 지력 때문에라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오는 신간들‘의 일부만을 읽을 수 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책들과 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약할 수 없는 어느 시점에선가 만날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문제의식면에서나 정서적으로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기에 지금 이별하는 책들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무한 팽창하는 우주처럼 우리의 책들은 우주가 종말을 맞을 때까지 쉼 없이 생겨날 것이다.

이 정도이면 이별의 아쉬움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공포감을 느낄 법하다. 이별을 아쉬워하기보다 만남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인가 보다.

자신의 출신학교는 책이라고 말한 한 선인의 말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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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의 저자 요한 하위징아가 이런 말을 했다. ˝아마추어 향토사가 중에도 역사에 대한 현자가 있는가 하면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 중에도 둔감한 지식의 소매상들도 있는 법이다˝(‘문화사의 과제‘ 21 페이지)

많은 해설을 듣지는 못했지만 실력 있고 인품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밖에서는 잘 몰랐는데 문화유산의 세계에 들어와 보니 공부할 것이 참 많다는 사실도 실감하게 된다.
명법 스님의 ‘미술관에 간 붓다‘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도덕의 요체는 자비심이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자기 것이 아닌 사상과 행위, 인격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타인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자신의 것으로 공감하지 않는다면 도덕은 앙상한 의무 사항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92 페이지)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역사의 유물들과 당대의 사람들을 이해하며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쉽고 친절한 해설을 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나눔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부지런히 밭 갈고 씨뿌려 풍성한, 그리고 나만의 결실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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