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미술관이 문화가 있는 수요일 프로그램을 안내하며 사전 접수 泌이라는 표현을 했다.

사전 접수를 반드시 하라는 의미이겠는데 그렇다면 필(必)이라 쓰는 것이 맞다.

泌이란 글자도 필이라는 음가를 지니지만 이는 스며 흐를 필이고 분비할 비이다. 물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게시 글에 사전 접수를 반드시 하라는 의미로 泌이라 쓰신 겁니까? 그렇다면 必이라 고치셔야죠.˝ 정도의 글을 올릴 수 있겠다.

필(泌)이 필(必)과 동자(同字)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두 글자가 같은 의미로 쓰인다면 굳이 조금이라도 복잡한 글자를 쓸 필요는 없다.

이것이 미술계의 관행인지 모르지만 비슷하되 차원이 조금 다른 문제 제기를 할 것이 낙관(落款)이란 표현이다.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라 낙관을 찍는다는 표현이 문제이다. 낙관은 하는 것이다.

낙관이란 도장을 의미하는 관(款)을 낙(落)하는 것 즉 찍는 것이니 낙관을 찍는다는 말은 역전(驛前) 앞이란 표현과 같은 중복 표현이다.

늘 생각하는 바이지만 단어는 내용 또는 기획에 비해 덜 중요하지만 기본은 지켜져야 한다.

어제 역사학자 홍순민 교수의 창덕궁 해설을 들었다.

전각이나 역사적 인물 이야기와 함께 복원이 잘못 된 부분을 많이 지적해주신 의미 있는 답사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자신의 비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특히 친일 화가들의 서양화들이 희정당에 걸려 있는 사실을 불편해 하셨다.

복원이 잘못된 부분은 참 많다. 궐내각사의 책고(冊庫)에서 억석루(憶昔樓)로 가는 길(삼로; 三路)에서 임금의 길보다 왼쪽 길이 더 높게 만들어진 것이나 위로 올라가기에 너무 옹색한 억석루 등 지적된 부분은 많다.

용어의 바른 사용과 미의식 또는 건축적 안목 더 나아가 역사적 안목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까? 이것이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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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을 읽지 않은 지 3, 4년 정도 된 것 같다. 물론 그 사이에 본격 읽기만 하지 않았을 뿐 제목과 목차, 그리고 저자 후기 정도의 글은 읽었다.

그러니 주례사 같은 평론, 과도한 이론 의존의 평론 등의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사정이야 어떻든 내가 평론 특히 시 평론집을 읽지 않아온 것은 내가 그 책들로부터 내 삶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발견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최근 두 가지 점에서 평론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나는 모 밴드로부터 주 1편 정도의 시 해설을 게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내 글은 본격 시 평론과 소략한 느낌 전달 사이에 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제 대형 서점 신간 매대에서 본 평론집이 내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박슬기의 첫 평론집이자 시 평론집인 ‘누보 바로크‘가 그 책이다.

모든 책이 그렇지는 않지만 잘 쓴 책들은 제목에 주제가 압축적으로 깃들어 있다.

알다시피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바로크란 말을 통해 저자가 전하는 것은 우리 시들이 함유하고 있는 우울, 알레고리, 파국에 대한 사유이다.

‘누보 바로크‘를 읽고 저자가 언급한 시집들을 읽는 것이 내 목표이다.

다르게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최근 읽은 이은봉 시인의 글이 하나의 단서로 여겨진다.

요즘 시는 독해법을 익히지 않고서는 읽기 어렵다는 의미의 글이다. 이 글이 시 읽기의 의지를 새롭게 한다.

중요한 것은 시와 시 평론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와 시 평론 모두 어렵지만 두 장르의 차이까지 느낄 수 있다면 최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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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고 ‘어둠 속의 작업‘이라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장편 소설을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 교수의 소개 글을 읽고 접하게 되었거나 문학평론가 김화영 교수의 책을 통해 알고 읽게 되었거나 두 가지 중 하나이다.

김현 교수의 책에서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를 알게 되어 읽은 기억은 확실하다.

김화영 교수의 책을 통해서는 파트릭 모디아노에 대한 소개 글을 읽은 것이 확실하다.

유르스나르의 소설 중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란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은 뛰어난 장군 출신으로 로마의 평화를 이룬 비범한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죽음을 앞에 두고 편지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병고에 시달리던 황제가 이올라스라는 젊은 의사에게 독약을 조제해 줄 것을 호소한다. 이올라스는 황제를 동정하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 때문에 거절한다.

황제가 거듭 호소하자 이올라스는 설복된다. 하지만 이올라스는 실험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황제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으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이올라스가 택한 죽음이었다.

이올라스의 이야기는 소설 전체의 주제부는 아니지만 딜레마적인 삶을 알게 하는 의미 있는 부분이다.

강석경 작가의 ‘숲 속의 방‘이란 소설에 하드리아누스의 제의에 자살로 대응한 젊은 의사 이올라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숲 속의 방‘은 우울증 관련 자료를 찾다가 20년 정도만에 다시 읽게 된 소설인데 이 소설에서 이올라스는 혜양이라는 학생으로 하여금 의대를 선택하게 한 인물로 나온다.

이것도 할 수 없고 저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살이라는 제3의 길을 택한 것에 불편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올라스가 자기희생의 숭고한 인물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절대 죽음이 장려되어서는 안 된다. 상황도, 개인의 실존도 절대적이지는 않고 그때 그때의 선택이 중요하리라.

삶은 그 둘이 만나 변증법적으로 생성되는 무엇이다.

이올라스가 1안(案)도 아니고 2안도 아닌 제3의 안을 택했듯 우리에게는 그런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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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곱시 클래식 FM으로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를 들었다. 오랜만에 들어서인지 상쾌한 바람 같았다.

곡을 들으며 저녁과 어울리는 음악을 아침에 들으니 생소하기도 하고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소함은 듣는 시간대로 인해 갖게 되는 느낌이다. 작곡가의 작품 경향에 비추어볼 때 생소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가 그런 경우이리라 생각한다. 이는 피아노 작품 위주의 레퍼토리를 갖는 그의 성향 때문에 느껴지는 경우이다.

스트라빈스키가 흥겨운 재즈 스타일의 장르인 부기우기 스타일의 곡이라 말한 베토벤의 마지막(32번) 피아노 소나타도 새롭고 파격적이다.

술의 향연이라 통칭되는 베토벤 7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런가 하면 아침 음악회를 뜻하는 마티네 세션에 청중으로 참석하면 곡 대부분이 색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는데 음악이 아닌 수업 또는 강연 듣기는 어떨까? 아침 시간이 정상적이지만 학생이 아닌 직장인의 경우 그 시간대에는 참여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의 성인 대상 인문학 강의는 늦은 밤에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여건이 안되는 사람에게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다.

아침 시간에 좋은 인문학 프로그램이 많이 마련된다면 좋겠다. 낯설게 하기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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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박태웅입니다. 최근 선생님 페북에서 알게 된 장영훈 선생님의 책 가운데 왕릉 풍수와 조선의 역사를 읽고 있습니다. 풍수 초보자인 제게는 배울 점이 많은 흥미로운 책입니다. 체계가 산만한 것이 아쉽지만 대가에게서 그런 점까지 기대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산(勢山), 형산(形山), ()의 의미 자체가 새로운데다가 그 세 체계로 경복궁, 창덕궁, 동구릉을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이 제게는 희유(稀有)의 매력으로 느껴집니다.

 

명당이나 혈(정기가 모인 곳)은 지세가 강한 세산이 아닌 부드럽고 온화한 산인 형산에 자리한다는 설명과 함께 경복궁은 북악산이라는 형산이 풍수상으로는 적격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 것, 창덕궁은 세산인 북한산(경복궁의 세산도 북한산이지요.)과 형산인 응봉(鷹峯)이 교과서적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도 흥미롭습니다.

 

동구릉의 세산은 불암산, 형산은 검암산이라고 하지요?

 

즉 경복궁/ 창덕궁/ 동구릉이라는 혈이 들어선 형산인 백악산 / 응봉/ 검암산, 형산과 달리 거친 세산인 북한산/ 북한산/ 불암산이란 말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런데 체계가 아니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비문(非文)이라고 하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문장들은 문의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임수(臨水)에 해당하는 왕릉 앞쪽의 물줄기는 생동하는 기운의 방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장 금기시했다...˝는 문장이 그렇습니다.

 

풍수 자체가 어려운데 문장이 간결하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다 생각합니다. 풀어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검색하다가 씁쓸한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처도 표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책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자신들의 카페나 블로그 등에 게시한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제가 최근 구산 선문 계보도를 댓가 없이 공개하시고 풍수관련 지식을 정리, 게시하시며 이 모든 것은 고 장영훈 언생님의 저서에 기반을 하고 있으며 이 모든 지식을 남겨주신 고 장영훈 선생님을 꼭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는 글을 올리신 선생님께 밀교(密敎)가 아닌 현교(顯敎) 종단을 보는 듯 하다는 댓글을 단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외람되지만 내용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문체이고 주술(主述) 호응이고 전달력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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