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東九陵)은 동팔릉이었던 시절, 동칠릉이었던 시절, 동오릉이었던 시절, 동삼릉이었던 시절을 거쳤다.

최종 이름인 동구릉은 서울 동쪽에 자리한 아홉 왕릉의 군집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동구릉(東龜陵)이 있다. 개성에 소재한 릉으로 왕릉으로 추정하는 곳이다. 거북 받침으로 된 비석이 있기에 구릉(龜陵)이라 불린다.

서구릉(西龜陵)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구릉을 한문으로 변형하려면 東九陵이라고만 뜨는 반면 서구릉은 西龜陵이라 뜬다는 점이다.

동구릉은 고려의 왕릉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고 관련 문헌들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서구릉은 주인을 알 수 없지만 고려 왕릉임이 분명한 무덤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구릉도 서구릉도 보존급 유적이다.(장경희 교수 지음 ‘고려왕릉’ 참고)

‘고려왕릉’을 구입한 것은 동구릉의 한철수 선생께서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다.

‘고려왕릉’을 보고 왕릉 공부의 길이 훤하게 보여 전율감마저 일었다는 그 분의 표현이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피노자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자신의 과거는 물론 내생까지도 훤하게 꿰뚫게 되었노라는 철학자 김영민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2018년 우리 왕릉 연구팀은 여주 영릉(英陵: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파주 장릉(張陵: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 김포 장릉(章陵: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 영월 장릉(莊陵: 단종의 능) 등 서울 밖의 능들을 돌아보게 된다.

설렌다. 팀장님을 비롯 전 팀원들 덕이다. 새 팀원 세 분이 합류하게 되니 더욱 그렇다. 멋진 2018년을 그리게 된다. 무엇보다 12월을 열심히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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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미술 이야기(The Story of Art)'인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직역해 '미술 이야기'라 하지 않고 서양 미술사라 한 것은 왜일까? 곰브리치의 전공이 미술사학과 고건축이라는 데에 눈이 간다.

 

그가 만일 우리나라에서 문화유산 해설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종묘 정전을 세계에서 가장 장엄한 건축물이라 평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처럼 그도 어떤 멋진 말을 남겼을 것이다. 물론 그런 말보다 더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곰브리치가 세운 원칙이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서 도판으로 수록하지 않은 그림은 가능한 한 언급하지 않으려는 원칙을 세웠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를 예술가들을 장황하게 나열하지 않은 친절한 책으로 만들었다.

 

이 두 미덕은 문화해설을 하는 데 특히 참고해야 할 점들이다. 문화해설은 궁궐이든 박물관이든 왕릉이든 현장의 전각 또는 전시물을 설명하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한다. 장황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시간을 내어 그의 '서양 미술사'를 다시 읽고 싶다. "부분은 단순하지만 전체는 빈틈없는 성채(城砦)"인 곰브리치의 역작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문화 해설을 하기 이전에 읽었던 책이 입문 후인 지금 어떤 의미로, 어떤 참고점을 주는 책으로 읽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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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산책이 끝나면 문장에서는 종종 쓸모없는 단어들이 제거되었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났던 문장과 이전에 써놓았던 문장을 비교해보면 나는 이따금 만족스러운 생략과 압축 같은, 일종의 청소가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레진 드탕벨이 인용한 소설가 쥘리앙 그라크의 말.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100 페이지)

 

<고리키도 체호프와 톨스토이에게서 문장이 거칠다는 비평을 받고 나서는 다듬어 쓰기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였다. 그래서 그의 친구가 "그렇게 자꾸 고치고 줄이다가는 작품이 어떤 사람이 태어났다, 사랑했다, 혼인했다, 죽었다의 4마디만 남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고리끼의 다듬어 쓰기는 끝이 없을 정도였다... 동서양의 문호라 일컫는 사람들이 명문 명작품을 낳을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다듬어 쓰기라는 갈고 닦는 작업이 밑받침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서정수 지음 '문장력 향상의 길잡이' 470 페이지)

 

<..내가 건네준 원고를 대충 훑어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는 매우 흥미로운 듯하나 너무 길게 썼으니 한 반쯤으로 원고를 줄일 수 없겠느냐고 물으면서 왜 그렇게 길게 썼느냐고 나무라듯이 말했다. "짧게 쓸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서요." 하고 내가 빈정대듯이 대답했다. ", 파스칼이 한 말이군요!" 하고 노인이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기 소개를 했다. 그가 다름아닌 그 유명한 조제 코르티씨(출판인)였다.>(김화영 지음 '바람을 담는 집' 185 페이지)

 

산책도 하고 긴 우회로를 거쳐 짧게 쓰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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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 마지막 연금술사로 불린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접한 것은 20년 쯤 전이다. 당시는 그 말이 누구의 것인지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답은 경제학자 케인즈의 말이다. 최근 한국의 모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경제지 기고를 통해 마르크스도 케인즈도 없는 한국 경제학을 우려하는 글을 발표했다.

 

수학 방정식에 갇힌 대학 교육이란 부제를 가진 글이다. 지난 2011년 데이비드 오렐의 경제학 혁명에서 이런 글들을 읽은 기억이 난다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부정확한 생각을 미분학(微分學)의 언어로 가장하는 기발한 습관을 개발했다.”(수학자 노버트 위너),

 

그들은 이 내용(물리학자들의 작업을 수학화 하려는 사회과학자들의 작업)이 다 틀렸으며 단지 사람들을 겁주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

 

이런 지적들은 대부분의 경제학 수업은 경제학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고급 수학을 이용해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으로 구성된다.”는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견해와도 공명한다.

 

케인즈가 어떤 배경에서 저런 말을 한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경제학을 오로지 수식으로만 푸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는 학자의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경제학 연구의 근본적인 철학 및 역사적 원칙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결론이다.

 

열흘 전 나는 한 경제학 전공자에게 경제학이 엄밀 과학이냐는 물음을 던졌다.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 궁금하지 않는가그는 내가 던진 그런 근본적인 또는 관념적인 질문을 처음 접했는지 미분(微分)이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그쳤다.

 

케인즈가 어떤 관점(*)에서 뉴턴을 마지막 연금술사라 불렀을까를 생각해보기 전에 그의 미분 발언의 배경을 궁리해보고 싶다.

 

* 뉴턴은 연금술에 관심을 보인 신비주의자이다. 그가 만유인력을 주장한 것은 그런 신비적 관점에 따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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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사진을 올린 페친을 보며..

 

내 생각을 대변해준 글들의 변천사(1에서 2, 2에서 3으로)를 말하고자 한다.

 

1.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요리사가 아니어도 부엌에서 인생이 간다. 새와 짐승들은 요리를 하지 않고도 잘 산다.

 

그들처럼 풀이나 날고기를 씹어 삼킬 자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그러지 않으려면 평생 부엌에서 콩나물을 다듬고 생선 내장을 훑어내야 하다니 별로 나은 선택도 아니다.

 

인간은 특별한 동물이기 때문에 요리를 먹어야 한다면 먹는 일이나 사는 일, 둘 중의 하나는 잘못되었다." - 오수연 장편 소설 '부엌' 첫 문장.

 

2.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오랫동안 음식은 인간 사회의 중요한 핵심적 역할을 해 왔다. 단순히 소비 경험으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매우 심오하게 사회적인 경험이었던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해준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은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가정 내에서 남성과 여성을 묶어 주고 가정이 더 큰 사회로 공고하게 만들어져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어 인류의 진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 사이먼 레이험 지음 '죄라고 부르는 유익한 것들' 95, 96 페이지

 

3. a.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화학비료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토양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꽃가루 매개자들이다.

 

b.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성 어린 단일 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대규모 산업농이 아니라 소농, 농사짓는 가정, 텃밭 일꾼들이다.

 

c.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이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여성이다. - 환경 사상가, 환경 운동가 반다나 시바 지음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세계 사회를 통틀어 식량,영양, 음식물의 재배와 공급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은 여성들..)

 

1에서 2를 거쳐 3으로 내 인식은 변화해 왔다. 12 사이에는 오랜 단절이 있는 만큼 변화는 점진적이었다.

 

3c처럼 여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지 오래이지만 반다나 시바처럼 총체적이고 대안적인 생각을 만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생선국에 풀죽은 쑥갓을 건져내며/ 눈가에 차오른 술을 거둬내며 본다 무심하게 건너가버린 시절/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었던 시절"(허수경 시인의 '무심한 구름' 마지막 부분)이란 시를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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