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시여, 침을 뱉어라‘(2017년 12월 30일 16시 - 17시. 김수영 문학관. 02 - 2091 - 5673. 무료) 관람을 신청했다.

이 연극이 내게 ˝송년˝의 잔치가 되기를 기대한다.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이상 ‘눈‘에서)는 김수영 시인의 시, 더 구체적으로는 ‘시여, 침을 뱉어라‘란 산문에서 유래한 ‘시여, 침을 뱉어라‘를 제목으로 설정한 이 연극을 보면 김수영 시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을 예상 해볼 생각으로 ‘눈‘을 읽어보았지만 특별하게 얻은 것은 없다. 다만 ˝시는 그 속에 시인이 모종의 심오한 뜻을 새겨놓고 그 해석의 열쇠를 어딘가에 감춰놓은 상형문자가 아니˝(‘시의 아포리아를 넘어서‘ 287 페이지)라는 글을 읽게 된 것이 소득이다.

시인이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는 말을 작품의 첫 줄에서 말하고 있음에도 그간 눈을 순수한 것으로 읽어온 것이 일반적인 독법이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순수보다 살아있음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하는데 말이다. 자료를 찾다가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의 첫번째 수록 시가 ‘공자의 생활난‘이란 사실을 알았다.

이 시를 이야기하는 것은 철학자 김상환 교수가 작년 6월 ‘공자의 생활난‘이란 인문서를 출간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는 ‘김수영과 논어‘이다.

검색해보니 이 작품이 ‘2014 연극 창작환경 개선 지원 사업 민간 소극장 활용 창작스튜디오 선정작‘이다.(당시에는 전석 2만원이었고 예술가 1만원, 김수영 시인 관련 서적을 가져오거나 인증샷을 보여줄 경우 1만원을 할인해주었다. 혜화동 소재 스튜디오 76 공연장)

남은 2주 동안 김수영 시인의 시와 산문들, 시인론 등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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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꾸 사야 할 책들이 생긴다. 신간이 아닌 구간을 그것도 책 내용이 아닌 저자의 행동 때문에 사게 되다니.

다름 아닌 일본의 카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 - 1996) 이야기이다.

읽지 않고도 그의 이름, 그의 작품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김은국(金恩國) 작가의 ‘순교자‘를 읽고 관련 자료로 함께 읽으려 했었지만 실패해 이름만을 기억하자고 생각한 덕이다.

‘순교자‘를 읽은 것은 1989년 시골교회 청년회 시절이다. 담당 전도사께서 추천하신 책이었다.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읽으려 하는 것은 그가 윤동주 시인 등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한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다와 독약‘이 윤동주 시인 등에 대한 일제의 생체실험을 직접적으로 폭로하지는 않았다.

‘바다와 독약‘은 2차 세계대전 말기 일제가 미군 포로에게 행한 생체해부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일제의 생체 실험 폭로의 서막이 된 것이다.

김승철에 의하면 ‘바다와 독약‘은 액체성의 제목이 붙은 소설이다. 액체성은 서구 기독교와 일본의 정신적 풍토를 날카롭게 대립시켰던 엔도 슈사쿠가 물이라는 상징을 매개로 두 대립항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벚꽃과 그리스도‘ 37 페이지)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은 ‘침묵‘, ‘깊은 강‘ 등이다. 김승철이 인상적으로 해석한 엔도 슈사쿠의 액체성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4원소의 상상력을 떠올리게 하고 더 나아가 주역(周易)까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개그 같지만 엔도 슈사쿠의 ‘바다와 독약‘, ‘침묵‘은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으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 물론 개그라 하기에 ‘바다의 침묵‘은 엔도 슈사쿠의 정신 세계와 통하는 바가 있다.

‘바다의 침묵‘을 쓰기 전 소설을 쓴 적이 없었던 화가 베르코르가 소설로 그린 세계는 거대 담론보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순수한 개인들의 세계이다.

아, 이 순수(fine)한 무목적의 논의라니! 순수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 즉 끝(피날레; finale)이라는 의미이다.(모티머 애들러, 찰스 반 도렌 지음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23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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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 - 책으로 만나는 윤동주 100년 생애 전시회
윤동주 100년 포럼 지음 / starlogo(스타로고)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윤동주(尹東柱) 시인 탄생 100년의 해가 다 저물어 간다. 여러 기념 행사가 열렸고 최근 윤동주.윤일주(尹一柱: 1927 1985) 형제 동시집 민들레 피리도 출간되었다. 이 책은 윤동주 형제들에 대한 관심을 끈다. 31녀인 윤동주 형제 가운데 셋째인 윤일주 시인은 건축학과 교수를 지낸 시인이다. 넷째 윤광주도 시인이었다.

 

윤동주 100년 포럼이 엮은 사진으로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통해 윤동주 시인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얻는 것은 어떨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10여 페이지의 이 책은 사진과 글 자료가 비슷한 분량과 비중으로 담겼다. 전체 7(1부 가족, 2부 소년기, 3부 청춘, 4부 유학, 5부 옥(), 6부 죽음, 7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긴밀하게 엮였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 시들은 어떤 것들일까? ‘별헤는 밤’, ‘자화상’, ‘십자가’, ‘참회록’, ‘편지등이 포함될 것이다.(나는 쉽게 씌어진 시를 가장 좋아한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같은 구절 때문이다.)

 

19171230일 북간도 명동(明東)에서 태어나 해방을 6개월여 앞둔 19452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獄死)한 윤동주 시인은 대표적인 민족 저항시인으로 알려져 있다.(명동明東은 동쪽의 조선을 밝힌다는 의미이다.)

 

지난 98일 종로구 청운동 소재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윤동주 탄생 100주년 특별 강연에서 구효서 소설가는 윤동주 시인의 시들을 자신의 내면과 투쟁하는 뛰어난 세계관을 갖춘 시로 평하며 그의 뛰어난 시들을 세계문학으로 넣고 싶다면 민족 저항 시인이라는 특수한 프레임 안에 가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평생 윤동주 시인에 빠져 윤동주 시인을 연구한 일본의 시인이자 윤동주 시인의 릿쿄 대학 후배로 윤동주 선배가 자신과 같은 의자에 앉아 공부했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한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元泰子)의 주장과 맥이 닿는다. 그는 윤동주 시인은 저항을 넘어 보편 가치를 추구한 지성(知性)이라 말했다.

 

윤동주 시인은 의대 진학을 바란 아버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윤동주 시인의 6촌인 가수 윤형주도 부친이 의대 진학을 원했다. 윤형주는 연대 의대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윤동주 시인은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 문과(文科)에 입학했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을 마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윤동주 시인에게는 많은 인연이 있었다. 절친으로 50대 후반에 늦봄이라는 아호를 짓고 시인으로 데뷔한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2년 후배로 윤동주 시인에게서 받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필사본이 책으로 출간되게 한 정병욱(1922 1982)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고향 용정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던 분으로 1948년 월남할 때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와 사진 등을 가지고 내려온 윤혜원(1923 2011), 윤동주 시인과 같은 해 같은 집에서 태어난,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으로 독립운동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송몽규, 1948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도록 한 분으로 윤동주, 송몽규 등과 연희전문 입학 동기이자 경향신문 기자였던 강처중 등..

 

이 밖에 직접 인연이 닿지는 않았지만 윤일주 교수의 요청을 받고 용정 동산에 있는 교회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윤동주 시인을 찾아낸 일본인인 오무라 마스오 교수, '바다와 독약'이란 책을 발표해 일본이 윤동주 시인 등에게 행한 생체실험을 폭로한 문인이자 일본의 양심으로 불린 엔도 슈사쿠, 앞서 언급한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元泰子やなぎはら やすこ: 윤동주 연구자, 릿쿄(立敎)대학 시인 윤동주 기념회 회원, 시인 윤동주의 고향을 찾는 모임 회원. 1946 - )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윤동주 시인(1917 1945)과 그가 타계한 해에 태어나 윤동주 연구가가 된 야나기하라 야스코(1946 -)의 관계는 성호 이익(1681 1763)과 그가 타계하기 1년 전에 태어나 그를 사숙했던 다산 정약용(1762 1836)의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릿교대학을 다니던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시적 스승인 정지용(1902 1950) 시인이 다닌 도시샤(同志社)대학으로 적()을 옮겼다. 시인은 194242일 릿쿄 대학에 입학했으나 단발과 군사 훈련 등을 강요한 일본 군국주의 체제가 싫어 한 학기만에 도시샤 대학으로 편입했다.

 

윤동주 시인은 이곳에서 독립운동가인 사촌 송몽규와 자주 만나 민족의 진로에 대해 논의한 것 때문에 독립운동죄로 기소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정체불명의 생체 실험용 주사를 맞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고문을 당한 윤동주 시인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유달리 허약했고 뼈만 남았을 만큼 말랐다. 한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가졌는가’(함석헌 선생님의 글)를 연상한다고 말한다.(경상일보 2017528. 엄계옥 시인)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윤동주 시인의 부친 윤영석(1895 1965)과 모친 김용(1891 1948)을 생각하게 된다.

 

청운동의 윤동주문학관을 다시 가보아야겠다. 연희전문 입학 2년 만에 기숙사를 나와 지금은 서촌이라 불리는 종로구 누상동에서 정병욱과 하숙을 시작한 윤동주 시인은 효자동 길을 따라 인왕산에 올라 시상을 다듬곤 했다. 나도 윤동주 시인처럼 윤동주문학관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책들을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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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부터 벽초 홍명희 옛 집터, 함석헌 기념관, 김수영 문학관, 연산군 묘 등을 순례했다.

도봉문화원과 연락이 닿아 연산군 자료집 몇 권을 얻었다. 가는 곳마다 이야기로 소통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함석헌 기념관이었다. 함석헌 기념관은 선생님의 묘소가 있던 연천(전곡읍 간파리. 내가 사는 곳은 전곡읍 전곡리) 이야기,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번역한 김용준 선생님과 선생님의 인연, 무교회주의의 우찌무라 간조와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기에 좋은 곳이다.

김용준 선생님은 20대 초이던 1949년 봄 우연히 들은 선생님의 강연에 푹 빠져 ‘내가 본 함석헌‘이란 책을 쓰기까지 했다. 11년 전인 2006년의 일이다.

김용준 선생님은 자신의 전공인 유기화학 외에 모든 것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는 말을 했다.

일정을 마쳤으나 시간 여유가 없어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언주역까지 직행해 마감 직전에 병원에 들어가 위장약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오는 길이다.

연산군 자료를 펼치니 명성태황후 121주기 기신제 참반(參班)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명성황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왕후는 가냘픈 미인이었다... 눈은 차고 날카로워서 훌륭한 지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명석하고 야심적이며 책략에도 능할 뿐 아니라 매우 매혹적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비숍 여사의 여행기를 출처로 하는 글이다. ‘연산군‘에는 의외로 단종의 시가 실려 있었다.

원통한 새 한 마리가 궁궐에서 나오니
외로운 몸 그림자마저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매는구나
밤은 오는데 잠들 수가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산에 울음소리 끊어지고 달이 흰 빛을 잃어가면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겠구나
하늘은 귀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서러운 이 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지는가

특별한 설명 없이 언급된 단종의 삶에 관한 글에 인용된 시이다.(이유가 궁금하다.) 너무 가슴 아픈 시이다.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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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사이 서촌(7일), 성북동, 혜화동(10일) 답사를 한 내게 김환기 화백(1913 - 1974)의 일화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서울도 당연히 배워야 할 텍스트이다.

서화숙 논설위원의 ‘마당의 순례자‘를 다시 읽은 덕이다. 보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본다는 괴테의 말은 이런 때 사용할 말이다.

지난 2013년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서울에서 제일 아름다운 진달래길이 실은 북한산이 아니라 인왕산에서 부암동으로 내려오는 길에 있다는데 거기도 가본 적이 없다. 내년 봄도 저 내년 봄도 있으니 천천히 가볼 것˝(105 페이지)이란 글을 보고 낭만에 빠졌었는데 오늘은 [˝이쪽은 환기미술관. 환기가 원래는 성북동에서 살았대. 그런데 가족이 미국에서 귀국해보니 옛날 한국을 떠날 때 성북동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 이곳 부암동이더래. 그래서 환기미술관을 지었지. 저기 북악산 성곽 보이지?˝](5 페이지)란 글에 눈이 멈추었다.

옥선희 영화평론가가 ‘북촌탐닉‘이란 책에서 ‘북촌에 정독도서관이 없었어도 이사왔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란 멋진 말을 했는데 서화숙 위원의 마을 사랑도 인상적이다.

지난 9월 19일 왕릉 연구팀이 번개로 서대문에 모였었다. 그때 프랑스 대사관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나는 이 모임 이후인 9월 24일 정동에서 러시아 대사관을 해설했었다.

‘마당의 순례자‘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서대문구 부암동이라는 돌 문패를 단 집도 나온다. 건축가 김중업 씨가 프랑스 대사관을 지을 때 활용한, 시멘트 처마가 있는 집이다. 부암동이 1975년에 서대문구에서 종로구로 편입되었으니 이 집은 그 전에 지어진 집이다.˝(102 페이지)

줄줄이 이어지는 인연과 역사가 신기하다. 한번 읽은 책도 다시 읽을 거리를 만들어야겠다. 14일 김수영 문학관, 연산군 묘 등을 둘러보게 되는데 답사가 아닌 순례라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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