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not evenly distributed.)”란 말을 했다. ‘뉴로맨서는 뉴 로맨서(new romancer: 새로운 전기傳奇 작가)가 아니라 뉴로 맨서(neuro mancer)이다.

 

신경(神經) 주술사(呪術師), 신경(神經) 예언가(豫言家) 정도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사이버펑크 장르의 대표 소설가로 꼽히는 깁슨은 광역 인터넷을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들었다.

 

물론 조크로 던진 말이지만 꽤 일리 있게 여겨진다. 기술 발달 여부에 따라 참 많은 것이 달라지는 세계가 아닌가. 양자(量子) 물리학 박사 마이클 브룩스는 정보는 물리학적이라는 물리학자 롤프 란다우어(Rolf Landauer: 1927 1999)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찾은 모든 정보는 모종의 물리계와 연결된다고 덧붙인다.

 

가령 생명체의 정보는 DNA 가닥의 분자 배열을 따라 운반되며 컴퓨터에서는 정보가 전기 회로에 연결되어 있는 축전기의 전하를 통해 암호화되며 정보는 광자(光子)의 양자 상태에 저장되어 전화 통화나 광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물리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 333 페이지)

 

() 선생님의 도움으로 생전 처음 usb를 사(20171221) 자료를 만들어 담고 어제 처음으로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강의를 하고 돌아오며 내가 떠올린 것은 바로 깁슨의 말이었다. 이렇게 유쾌했던 어제를 돌이키지만 나는 요즘 교양 과학 책을 거의 읽지 못해 점점 인문학 영역에서만 노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우울하다.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헤스컬의 '나무의 노래', 마쓰바라 다카히코의 '물리학은 처음인데요', 작곡(석사) 및 물리학(박사)을 전공한 존 파웰의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등의 책이 내 치우침을 바로 잡아 줄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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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의에서 석연경 시인, 그리고 수유리(水逾里)를 무너미라 말씀하시던 문익환 목사 님에 대해 이야기했다.(逾; 넘을 유)

저녁 무렵 종로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석연경 시인의 시집을 보았고 이충렬 선생의 ‘간송 전형필‘을 검색해 수유리 중고 서점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기이한 느낌이 든다. 노원행 열차를 두 대나 그냥 보내야 할 정도로 퇴근 무렵의 인파는 대단하다.

종로 알라딘에서는 김광식 선생의 ‘한용운‘을 두고 한참 망설이다가 포기했다.

김종주 정신과 의사의 ‘이청준과 라깡‘에 나오는 만해 관련 자료를 읽고 사도 사야 할 것이란 생각에 그런 것이다.

책을 고르는 것은 늘 어렵다. 종로 알라딘에서 ˝사러 가는 동안 원하는 책이 팔리면 어떻게 하지요?˝라고 물었더니 직원은 ˝운명이지요˝란 말을 했다.

그리 나이가 많지 않은 사람이 평범한 책 한 권에 대해 쓸 말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혹시 책 한 권도 누군가에겐 우주와 같은 무게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책, 책, 책.. 오수연 작가가 ‘부엌‘이란 장편 소설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요리사가 아니어도 부엌에서 인생이 간다.˝

이 구절을 ˝읽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읽기 위해서는 책방을 돌아다녀야 하고 작가가 아니어도 서점에서 인생이 간다.˝라는 말로 바꾸어 본다.

물론 읽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언제고..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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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읽는 법 - 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감상의 기술
이종수 지음 / 유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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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미술사학자의 '옛 그림 읽는 법''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감상의 기술'을 부제로 한다. 저자는 화가의 의도를 헤아리는 그림 독법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앞 부분에서 저자는 겸재 정선을 이야기한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진 분이다. 진경산수화는 산수화의 한 갈래이다.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풍속화 등이 있다. ()는 장르 전체를 의미하고 도()는 개별 작품을 의미한다. 중국 당나라의 미술사가 장언원의 역대명화기에 의하면 종병(宗炳)이란 사람은 자신의 늙음과 병고를 슬퍼하며 산수를 즐기고 싶으나 그곳으로 갈 수 없을 때 산수화를 감상하는 것으로 느낌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누워서 산수를 감상한다는 의미의 와유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진경산수화의 상대 개념은 정통 산수화, 관념 산수화 등이다. 상상 속의 경치를 가짜라고 할 수는 없다. 관념 산수화는 특정 지명에 얽매이면 안 되었다. 누구나 좋아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다.

 

진경산수화는 정선으로 인해 하나의 장르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정선 이전에도 진경을 그린 화가가 있었지만 정선에 이르러 하나의 장르로 완성된 것이다. 진짜 경치를, 그것도 한양에서 먼 금강산을 그려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그렸냐는 의문은 누구를 위해 그렸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60 페이지)

 

산수화를 즐기고 주문하는 이의 대부분은 사대부 남성이었다. 17세기 조선의 시인, 묵객 사이에는 산수 유람이 유행처럼 번졌다. 첫 손 꼽히는 유람지는 금강산이었다. 산수 유람이 먼저였는지 우리 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먼저였는지 단정짓기 어렵다.

 

정선 이전의 진짜 그림은 실경(實景)이라 했다. 정선의 진경이란 말에는 실경이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진경산수화에는 기록 이상의 의미 즉 감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정선은 자신이 본 산수를 어떻게 더 멋지게 재현할지에 관심을 쏟았다. 단적으로 말해 정선은 실경산수화를 의뢰받았는데 진경산수화로 답한 것이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관념산수화가 그려지다가 실경산수화가 나타나고 실경산수화에 회화적인 멋을 더해 진경산수화가 되었다. 진경산수화가 등장한 이후에도 대세는 관념산수화였다. 정선도 만폭동을 그리기 전은 물론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이후에도 수많은 관념산수화를 그렸다. 감상하는 사람이 화가에게 기대한 것은 와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수화이지 실제의 장소를 그대로 옮겨낸 지형도는 아닐 것이다.(79 페이지)

 

'만폭동'은 소재가 꽤 촘촘하게 배치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실제 금강산에서 그린 그림이지만 화면 구도처럼 모두를 볼 수 있는 장소는 없다.(88 페이지) 정선(1676 - 1759)은 자신이 직접 본 각각의 실경을 하나의 화면에 불러들인 것이다.(89 페이지) 다시점 그림은 옛 사람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방식이었다.

 

정선은 진경다움을 살리면서 이상적인 산수의 아름다움을 함께 얻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실경으로서의 진경(眞景)에 머물지 않고 선경(仙境)으로서의 진경(眞境)이라는 평을 듣는다.(94 페이지)

 

일반적으로 풍경화는 다시점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화가를 중심에 두고 그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그림이 풍경화라면 자연을 중심에 두고 그 모습을 여러 시점으로 담아낸 그림이 산수화이다.(97 페이지) 동양의 산수화를 보고 원근법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장성을 중시하는 정도로 볼 때 진경산수화는 이전의 산수화에 비해 풍경화에 매우 가까운 그림이다.(98 페이지) '만폭동'은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모았다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전체 구도가 아주 자연스럽다.(99 페이지) 실경과 얼마나 닮았느냐가 진경산수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물음이 아닌 것처럼 이상적인 산수화에 가깝다고 해서 더 나은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화가가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가, 그것이 작품에 어떻게 구현되었는가가 관건이다.

 

정선은 과장과 생략에 능했다. 더 나은 화면을 위해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렸다.(100 페이지) 준법(皴法)의 준은 주름 준으로 준법은 산의 주름(굴곡이나 음영)을 그리는 법을 의미한다.(103 페이지) 준법은 실제 산수의 느낌을 잘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준법은 일종의 정형화된 양식이다.

 

정선에게는 변형하든 창조하든 조선 땅에 어울리는 새로운 화법이 필요했다. 산세에 어울리는 준법을 스스로 만들기, 이것이 선배 산수화가들이 정선에게 가르쳐 준 정신이었다. 정선은 실제와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갇히지 않고 화가로서 더 나은 그림을 보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 나갔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준법을 만든 것이다.

 

정선은 자신의 겸재준이라는 자신의 독특한 준법에 충실할 때 좋은 작품을 남겼다. 준법 사용은 화파 형성의 기준이 된다. 옛 그림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식이 축화(軸畵)이다.(161 페이지) 두루마리는 옆으로 긴 형식의 그림이고 축화는 위 아래로 긴 형태의 그림이다. 축은 궤() 또는 족()이라고도 불린다.(: 조릿대 족, : 길 궤)

 

화가의 이름과 그림 제목 등을 기록한 것을 관() 또는 관지(款識)라고 한다.(180 페이지) 여기에 인장까지 찍으면 낙관(落款)이라 한다. 삼재(三齋)와 삼원(三園)이 있다. 삼재는 세 명의 문인 화가로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고 삼원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이다.

 

동양화에서 인장 만큼이나 독특한 요소가 화제(畫題)이다. 제시(題詩)나 찬() 등이 있다.(190 페이지) 동양화라고 해서 처음부터 그림과 글이 하나의 화면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192 페이지) 그림을 그리면서 어울리는 시를 더하기도 했지만 시나 이야기를 화제로 삼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저자는 모른다면 볼 수 없겠지만 안다고 해서 모두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마지막 조각은 자신만의 감상으로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198 페이지) 감상의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선의 동시대 화가 조영석은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조선 산수화의 개벽이라 했다. 반면 추사 김정희는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조선 그림을 망쳐놓았다고 거침없이 혹평했다.(199 페이지) 그림 평가는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20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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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1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8-01-3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아니라 대기면성(大器免成)이 맞다는 주장이 있다. 노자(老子)에게서 나온 대기만성은 큰 그릇은 모양이 없다(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의미의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봐야 옳다는 주장이다. 주인공은 울산대 중문학과 박삼수 교수로 쉽고 바르게 읽는 노자’(20162)란 책을 통해 제기된 바에 의하면 대기’(大器)’()를 의미하는 말이다.

 

박 교수는 노자가 쓰인 2500년 전 만()자는 무()를 뜻하는 면()자의 가차자(假借字·어떤 뜻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 뜻은 다르나 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 쓰는 것)였다고 말한다. ..

 

이 대기면성은 앞 구절인 큰 사각형은 오히려 모서리가 없다는 뜻의 대방무우(大方無隅)는 물론 뒷 구절인 한없이 큰 소리는 오히려 들을 수 없다는 의미의 대음희성(大音希聲)과 문맥상 맞는다.

 

대방’, ‘대기’, ‘대음이 모두 도()를 의미하고, ‘’, ‘’, ‘가 모두 없다는 뜻이기에 일관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앞뒤 구절에 비추어 대기만성을 해석하는 것을 보며 김수영 시인의 '' 해석을 떠올리게 된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이 시는 여러 해석이 엇갈리는 난해시라 할 수 있다. 김수영 시인은 을 쓰기 전에 해동(解凍)’이란 수필을 썼다.

 

이 수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 봄의 과제 앞에서 나는 나를 잊어버린다. 제일 먼저 녹는 얼음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철이고 싶다. 제일 먼저 녹는 철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얼음이고 싶다.”

 

현실이나 외적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의 리듬에 따라 살아갈 것이라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대기만성을 앞뒤 구절에 비추어 일관된 해석으로 연결해내는 것은 ''의 어려운 구절을 의미가 통하는 그의 수필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물론 나는 수필을 참고해 시를 해석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만 타자의 해석의 자유를 존중한다. 나는 다만 시는 시 나름의 논리가 있겠지만 시가 시인의 삶 및 생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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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화요일 지구과학 강사인 동기 이** 님에게 ‘수학 언어로 문화재를 읽다‘(2017년 8월 출간. 수학 교사 오혜정 지음)란 책을 소개했다.

그러자 그는 학생들에게 과제로 낼 것이라며 책 제목을 메모해 갔다. 문화재에 관심을 두는 사람과 수학(자연과학)에 관심을 두는 사람에게 모두 유용할 것이라 생각되는 책이다.

‘다양한 문화 속에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실현된 건축 수학‘이란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첫번째 챕터인 경복궁의 품격에서 도형과 수를 만나다‘부터 심상치 않은 구성을 선보인다.

근정전이 품은 금강비란 글이 그것이다. 두번째 챕터인 ‘지혜로 한옥을 짓다‘에서는 선조들이 선택한 지붕 곡면의 정체, 사이클로이드란 글이 눈길을 끈다.

사이클로이드란 말은 지난 해 11월 세미나에서 부적절한(어려운) 용어로 선정된 것들 중 하나이다.

네번째 챕터인 ‘과학적 사고로 지은 수원 화성은 철옹성‘에서는 ‘수문을 받들고 있는 오각 기둥의 숨은 역할‘이란 글이 관심을 부른다.

좋은 책인데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전문적인 내용은 익히기도 어렵고 익힌 것을 쉽게 풀어내는 것도 만만치 않다.

결정적인 것은 그런 내용들을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건축과 관련된 세 권의 책이 기억에 남아 있다. 철학자의 건축학 책인 박영욱의 ‘필로아키텍처‘, 건축학자의 철학 책인 임기택의 ‘생성의 철학과 건축 이론‘, 건축학과 철학 두 분야의 박사인 브랑코 미트로비치의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건축을 위한 철학‘ 등이다.

KMOOC(Korean Massive Open Online Course)에서 건축 강의가 몇 개 있었다.

건축으로 읽는 사회문화사, 현대건축의 흐름, 건축공간론 등.

건축가 승효상 교수는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란 책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건축을 공학이나 예술의 일부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하며 건축물의 외관인 아닌 공간의 조직을 보아야 바른 인식(공부)이 된다고 결론지었다.

승효상 교수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방법을 의미하는 공간의 조직은 쉽게 말해 거실과 주방, 침실 등을 얼마나 크게 하고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는 방법이 달라짐을 의미한다.(13 페이지)
건축은 사물들로 이루어진 장소와 사물들을 담고 있는 무엇인 공간을 두루 다루는 학문이 아닐지?

나무, 돌, 흙, 철근으로 짓는 집이 아닌 언어로 짓는 집을 말하는 책이지만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을 읽어야겠다.

요즘 부족했던 몽상이라는 심성을 보충하기 위해서, 그래서 실제의 건축에 관심을 더 잘 가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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