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뭐가 있어요?”란 아이들의 물음에 , , 별이 있단다.”고 답한다는 천문학자 박석재 박사의 책(’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는 원리‘ 67 페이지)을 다시 읽는다. 저 질문에 무엇이라 답할까? 나는 온도 차이가 있다고 답할 것이다.

 

해에는 주위보다 온도가 낮아 어둡게 보이는 부분인 검은 점(sunspot)이 있고 달에는 신록이나 높은 고원 지대 즉 밝은 부분과 달리 바다라 불리는 낮고 어두운 지역이 있다.(’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는 원리‘ 78 페이지)

 

물론 이름이 바다일 뿐 그곳에 물이 있지는 않다. 우리 민족은 달의 어두운 부분을 방아 찧는 토끼로 표현했다. 알아줄 만한 감수성이다.

 

여기서 어두움의 수사적 의미가 빛나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놀랍고 수수께끼 같은 우주의 구성 요소 치고는 다소 평범한 이름”(폴 스타인하트, 닐 투록 지음 끝없는 우주‘ 54 페이지)인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는 빛을 방출하지도 흡수하지도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주를 이루는 물질의 90 퍼센트가 암흑 물질(중력과만 상호작용을 하는)이다. 우주 에너지의 70 퍼센트가 암흑 에너지이다.(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우주의 풍경‘ 8 페이지)

 

암흑 물질은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우주의 팽창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하는 물질이고 암흑 에너지는 우주를 가속 팽창하게 하는 에너지이다.(이강환 지음 우주의 끝을 찾아서‘ 60 페이지.. 이론(천체) 물리학자 폴 스타인하트와 닐 투록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란 이름을 놀랍고 수수께끼 같은 우주의 구성 요소 치고는 다소 평범한 이름이라 말한 반면 이강환은 암흑 에너지를 멋진 이름이라 말한다. 나는 전자의 의견에 공감.)

 

천문학자 이강환에 의하면 우주 초기에는 물질이 끌어당기는 힘(중력)이 더 커서 우주가 감속 팽창을 했고 그 이후 빈 공간이 점점 커짐에 따라 암흑 에너지의 힘이 더 커져 가속 팽창을 하게 되었다.(’우주의 끝을 찾아서‘ 254 페이지)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달의 극지방(極地方)의 분화구에 생명체가 있다면 햇빛을 산란시킬 만한 대기가 없음에도 영원한 어둠 속에서 살아 가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타이슨이 연주하는 우주 교향곡 2‘ 50 페이지)

 

영원이란 어떤 의미일까? 타이슨은 해의 중심에서 생성된 광자(光子: 빛 입자)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표면으로 직진한다면 단 2.3(해의 반지름은 695km. 빛의 속도는 초당 30km.: 69,5/30 = 2.3166)가 걸린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빛은 평균 1cm를 진행할 때마다 전자, 원자 등과 충돌하고 해의 자체 중력 탓에 중심부의 밀도가 아주 높아 밖으로 움직이는 도중 어딘가에 흡수되었다가 재방출되면서 추가시간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중심에서 표면까지 이동하려면 100만년이 걸린다고 말한다.(’타이슨이 연주하는 우주 교향곡 1‘ 84, 85 페이지)

 

말할 것도 없이 100만년은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하지만 그 수조차 영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달을 광기(光氣)와 연결시키는 서양 사람들의 사고는 유명한데 그들이 한 달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을 blue moon이라 칭하는 것은 달의 극지방에 살아 있을 수도 있는 영원한 어둠 속의 생명체를 생각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한 달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은 불길하다는 의미의 blue moon이지만 대기의 먼지나 연기 때문에 달은 정말 푸르게 보일 수도 있다.

 

감기 때문에 복용한 항생제 때문에 그간 좋았던 위의 한쪽에 불편감이 생기는 것을 보며 내가 생각한 것은 해의 흑점과 달의 바다이다. 아픈 곳은 실제 온도가 낮아진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아울러 나는 한다.

 

, 나는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敎: 조로아스터교) 신자인 듯 하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1981년 영화 '불을 찾아서'를 기억한다.

 

이 작품은 이웃 종족의 습격으로 생명과도 같은 불씨를 잃어버린 한 종족이 불을 위해 세 사람을 파견하는 이야기이다. 셋은 불을 찾아서 죽도를 광야를 헤맨 끝에 불씨가 아닌 불을 만드는 방법을 습득해 온다.

 

예나 지금이나 불은 여전히 숭배의 대상이다. 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불을 만드는 법이다. 고기를 낚아 주는 것이 아닌 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어야 한다는 유대인의 지혜를 받아 나도 건강에서도 사유에서도 스스로 불을 만드는 법과 어울려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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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es are burning, ocean gypsy 등의 곡으로 유명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르네상스(Renaissance)를 좋아한다.

여성 보컬 에니 헤슬램(Annie Haslam)의 청아하고 신비로운 음성 때문이지만 클래시컬하고 서사시적인 르네상스의 음악세계와 에니 헤슬럼의 목소리가 이루는 조화 때문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오랜만에 그들의 곡을 다시 들으며 내가 생각하는 것은 문예부흥이라는 그룹 이름처럼 나도 부흥의 몸짓을 하고 있고 계속 그렇게 하고 싶다는 점이다.
그러나 ˝내겐 꽃시절이 없었˝다는 한 시인의 말이 내 말이기도 하다면 부흥이 아니라 영국의 하드록 그룹 레인보우(Rainbow)의 ‘상승‘을 뜻하는 라이징(Rising)이라는 앨범 제목을 내게 점지된 괘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는 물론 ˝내겐 꽃시절이 없˝었다는 시인이 다른 지면에서 건넨 고통스런 자기 고백들까지 나를 설명하는 말로 차마 삼지 못한다.

‘안팎‘이라는 시, ‘빈 산‘이란 시 등은 너무 적나라한 슬픔과 비참을 담아낸 시이고 내가 아무리 힘겨웠을망정 정치사회적인 맥락의 시를 내 처지를 설명하는 언어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독한 모색과 실험을 계속했다는 그 시인의 80년대는 나의 지금 이후의 시간들과 맞먹을 것이다.

오늘은 이 정도만.. 호사다마를 경계하는 조심스런 마음으로.. 이렇게 추상에 실어 나를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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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K는 가장 깊고 어둔 곳에 울음방 하나를 만드는 것을 명심하고 집을 짓는다고 한다.(한이나 시인의 ‘울음방‘ 참고)

이전 같았으면 K가 누구인지 궁금해 했겠지만 나이 드니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특정인만의 사연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몇년 전 일본 도쿄 신주쿠 지역의 한 호텔에 하룻 밤 내내 마음껏 울 수 있는 울음방이 생겼다.

다만 이곳은 20대에서 40대까지의 여성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

며칠 문 걸어 잠그고 숨어 개화를 감상하고 싶다고 했던 한 문인이 생각난다.

이 역시 울음방처럼 굳이 고유 명사가 필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예상하지 못한 독감으로 앓아 누워 있다. 아, 왜 하필 지금인가?

˝뒤척임과 뒤척임 사이/ 목마름과 목마름 사이˝(염명순 시인의 ‘감기‘ 중에서) 나는 그저 침대 하나만 있는 방을 만들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프든 울든 오로지 그것 하나만 할 수 있는 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나는 스스로 산만한 시간들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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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읽는 새로운 시선
최재정 지음 / 홍시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도시(都市)의 도()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는 의미이고 시()는 교환이 일어나는 장소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도시는 무엇인가? 릴케는 사람들은 죽기 위해 도시로 몰려온다는 말을 했고 프랑스의 신학자 자크 엘륄은 카인이 도시를 세웠다는 말을 했다. 하나님의 에덴을 자신의 도시로 대체했다는 의미이다.

 

도시 역사 문화 전문가이자 지리학자인 조엘 코트킨은 도시는 인류의 예술, 종교, 문화, 통상(通商), 기술의 대부분이 태어난 것이라 말한다.(‘도시, 역시를 바꾸다’ 16 페이지)

 

최재정은 도시를 읽는 새로운 시선에서 도시가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도시가 인류에게 준 혜택이 훨씬 크고 강렬하게 보인다고 말한다.(21 페이지) 도시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는 것은 미국의 건축 비평가, 문명 비평가, 역사가 루이스 멈퍼드(1895 1990)의 도시론을 접하고서부터이다.

 

멈퍼드는 고대 도시에는 종교로 사람들을 통합하는 구심점인 신전을 중심으로 군영(軍營), 창고(倉庫), 시장(市場), 사제들의 재생산 기관인 학교와 문서고, 병원과 목욕탕, 신과 인간의 교류를 매개하는 극장과 경기장 등이 있었다고 말했다.(‘역사 속의 도시’ 12, 13 페이지)

 

물론 이 이전인 지난 해 9월 소 논문격의 글을 쓰기 위해 서울시립 미술관에서 열린 자율진화도시전을 감상한 것부터 거론해야 옳겠다. 최재정은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 알렉산더 코제브가 반지를 반지이게 하는 것은 반지의 빈 공간이라는 말을 한 것을 상기시키며 도시를, 아직 구현되지 않은 영원한 여백을 품은 공간으로 정의한다.(24 페이지)

 

도시를 읽는 새로운 시선3부로 이루어진 책이다. 1부 현대 도시 여행, 2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넘어서, 3부 내일의 도시, 도시의 내일 등이다.

 

저자는 첫 삽을 뜬 지 100년도 더 지난 지금도 공사가 진행중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성당(안토니오 가우디 설계)을 예로 들며 아름다운 건축물에 의해, 그리고 정책적 비전 또는 자연환경이나 역사, 음식, 미술, 때로는 도시민의 생활문화에 의해서도 도시의 운명은 새롭게 재창조된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카우퍼(J. M 카우퍼)가 한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말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도시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지표면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가 세계 자원의 75% 이상을 소비하며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43 페이지)

 

저자는 현 시대를 창의성이 부의 원천이 되는 시대로 진단한다.(67 페이지) 비록 부패, 무능한 정권에 의해 그 의미가 왜곡, 변질되었지만 창의성은 중요한 덕목이다. 지금은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사고를 통해 창의성을 발휘하는 인재가 주목받는 시대이다.

 

창의 도시는 보헤미안 지수가 높다. 보헤미안 지수는 화가, 무용가, 작가, 배우 등 예술가들이 얼마나 사는지를 나타내는 지수이다.(71 페이지) 보헤미안 지수가 낮은 곳은 인재 지수도 낮게 나타난다.

 

창의성은 도시의 생존이 걸린 제1 명제가 되었다. 현대의 많은 건축가가 자연과 문화, 예술, 더 나아가 산업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창의도시 건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세계의 도시들은 창의도시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74 페이지)

 

오늘날 도시를 디스토피아로 만든 것은 산업화에 따른 인구 집중이다. 주택, 교통, 인프라, , 오염, 쓰레기, 녹지 공간 감소, 슬럼 등이 주요 문제들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필연적으로 도시인들은 고향 없는 세대이다.(102 페이지)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처음으로 도시를 설계한 사람들은 유토피안이라는 말을 했다. 그에 의하면 유토피아는 모든 진보의 원리이고 더욱 좋은 미래를 위한 시도이다.(112 페이지)

 

물론 유토피아 추구의 바탕에는 현실 문명 비판이 있다. 로버트 오웬은 산업 도시에 대한 대안적 구상을 실험한 최초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이다.(120 페이지)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122 페이지)

 

21세기 도시 경쟁력에서 가증 중요한 요소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어메니티(amenity) 개념이다.(129 페이지) 쾌적한, 기쁜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라틴어 아모에니타스에서 유래한 이 말은 단순한 미적 개념이 아니라 환경적 개념으로서 종합적인 삶의 쾌적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저자는 지속가능한 도시 만들기는 지역 특성에 바탕을 둔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주민 참여, 행정과의 협력의 산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성이 중시되는 21세기에는 환경, 정보, 복지, 문화, 교육, 여성의 시대이자 생명 존중의 시대이다.(129 페이지)

 

루크 리트너는 도시의 르네상스란 책에서 예술은 도시 재생과 재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말을 했다.(131 페이지) 미래 사회에서는 국민총생산(GNP) 대신 국민총매력지수(GNC: gross national cool)가 부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저자는 도시의 매력을 측정하는 지수로 네 가지를 든다. 재미, 정체성(identity), 이야기(narrative), 품위(elegant) 등이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인 한편 호모 루덴스이다. 브랜드화를 통한 도시 가치 향상이 필요하다. 특히 지방 도시에서. 우리는 우주 공간이나 다른 행성에 도시를 건설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저자는 도시는 현대인의 요람이자 무덤, 인간의 손으로 창조한 우주라고 말한다.(210 페이지) 스페이스(space), 유니버스(universe), 코스모스(cosmos) 모두 우주로 번역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우주란 코스모스라 해야 옳다. 스페이스는 인간이 갈 수 있는공간을 말하고 유니버스는 별과 은하로 채워진 거대한 우주를 말한다. 코스모스는 유니버스+알파이다.(‘알파는 인간의 주관적 요구사항이다.: 2014121일 세계일보 기사. 박석재 교수 글 ‘space, universe, cosmos’ 참고)

 

도시는 이미 지난 시간들(과거)과 현재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완의 여백(미래)을 모두 품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가 공간을 창조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그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고 덧붙인다.(214 페이지) 장소는 고정된 것이지만 공간은 창조하는 것이라는 강남순 교수의 글(‘배움에 관하여참고)이 생각난다.

 

만들되 대안적인 지속가능한 공간을 창조해야 덜 고생한다는 비근한 말로 이해해도 될지 모르겠다. 오독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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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로운 문화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암스테르담의 베스터가스파브릭은 가스 공장을 폐하고 만든 공원이다. 윤동주 문학관이 수도 가압장과 그에 부속된 기계실을 개조해 만들어진 것처럼.

 

윤동주 문학관은 기계실이었던 곳을 영상실로 활용하고 있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경우 가스공장의 보일러실이었던 곳을 영화관과 에스프레소란 이름의 커피숍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가 접한 여러 도시론 가운데 루이스 멈퍼드의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고대 도시에는 종교로 사람들을 통합하는 구심점인 신전을 중심으로 군영(軍營), 창고(倉庫), 시장(市場), 사제들의 재생산 기관인 학교와 문서고, 병원과 목욕탕, 신과 인간의 교류를 매개하는 극장과 경기장 등이 있었다는 말을 했다.

 

도시, 하면 카페를 빼놓을 수 없다. 궁금한 것은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카페문화는 언제 시작되었는지이다. 요즘 나는 서울에 가 식사를 한 뒤에는 반드시라 해도 좋을 만큼 커피숍을 들르고 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연출되는 장면이 있다. 노트북으로 문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며 매번은 아니지만 노동의 의미를 음미하곤 한다. 작년에 타계한 박이문 시인/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이 까페가 생긴 것도, 저 비어홀이 생긴 것도 노동의 결실이고 저 분수, 저 쇼윈도, 이 십자로 전체가 아름답게 보이는 본질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모두 노동의 열매이기 때문이다..(1997년 출간 '다시 찾은 빠리 수첩' 237 페이지)

 

그런가 하면 박홍규 교수는 사르트르가 주로 부르주아 가정이 아닌 거리의 카페에서 먹고 일하며 행복을 추구했고 누구에게나 공개된 카페에서 아무런 비밀이나 벽도 없이 함께 나누는 삶을 예찬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 전쟁을 거부했으며 거리의 사상과 문학을 추구했다는 사실 등에 근거해 그를 아나키즘 사상가로 정의했다.(2008년 출간 '카페의 아나키스트, 사르트르' 참고)

 

이런 환경을 꿈꾸기에 현대는 그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가? 나는 그 허와 실을 헤아리기 위해 정수복 교수의 '파리일기'(201826일 출간)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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