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감정의 정치학 마이크로 인문학 6
김종갑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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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嫌惡)라는 감정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으로 김종갑 교수의 혐오, 감정의 정치학을 읽는다. 물론 해명 이후에 대안 제시 아니 적어도 당위 차원의 당부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혐오는 분노와 달리 말이 통하지 않는 감정이다. 혐오는 상대를 동물화하는 감정이다.

 

혐오의 본질은 타자화에 있다. 저자는 혐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를 그것이 정치적이기 때문이라 말한다.(16 페이지) 혐오는 자기보다 약하고 만만한 상대를 타겟으로 고르기에 정치적이라 말한다.(191 페이지) 저자는 혐오의 에너지도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18 페이지) 혐오감은 생명 유지는 물론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도 기능한다.(26 페이지)

 

중요한 점은 혐오감은 이해관계보다 더욱 강력한 동기 즉 자기 정체성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93 페이지) 혐오는 자신에 대해서도 작동한다. 이런 자기혐오는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자기혐오는 나르시시즘적이다.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 자기를 먼저 부정하기 때문이다.(65 페이지) 자기혐오는 한편으로는 죽지 않는 영혼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죽어가는 비루한 육체라는 이중적 존재인 인간 정체성으로 인해 생긴다.(41 페이지)

 

취향과 감각에도 역사가 있다.(51 페이지) 혐오는 철저하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혐오 식품이란 말을 보자. 이 말은 1984년에 생겼다. 올림픽 유치로 인한 현상인데 이는 당연히 외국이라는 타자의 시선을 염두에 둔 결과이다.

 

혐오의 주체는 혐오의 대상에 대해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 혐오는 나르시시즘을 강화한다.(66 페이지) 대상을 혐오하면 할수록 자신은 그 대상과 다르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가령 악을 혐오하면 할수록 자신은 선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82 페이지) 혐오의 논리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논리로 발전한다.(92 페이지)

 

증오와 폭력이 집단적 규모로 확대되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소지가 있는 범죄가 혐오 범죄로 분류된다.(70 페이지) 전두환 정권의 삼청 교육대 사건은 권력이 사회악으로서 혐오의 대상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혐오의 정치는 권력 내부의 폭력을 외부의 대상으로 투사하는 권력의 기제다.(76 페이지) 혐오 범죄는 소수의 희생(타자화)을 통한 다수의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이다.(78 페이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혐오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1930년대 초 남부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앵무새는 미워하고 욕할 이유가 없는데도 누가 욕하면 덩달아 미워하고 욕을 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이다.(93 페이지)

 

이를 보며 생각할 수 있는 말이 역치(閾値)가 낮다는 말이다. 자기혐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흠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타자 혐오는 남에게서 찾아낸 흠을 가지고 자신의 결점을 숨기는 것이다.(103 페이지) 물론 엄밀하게 말해 자기혐오는 자기혐오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발전의 도약판으로 삼기 위한 행동이다.

 

저자는 혐오감은 자기 정체성의 한 축을 이룬다고 말한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좋아한다면 그것은 내가 개성이나 정체성이 없다는 말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좋아하는 것은 무질서이다.(109 페이지) 인상적인 말이지만 자기 정체성을 위해서라면 굳이 혐오가 아니라 배제의 감정, 불선택의 감정만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혐오는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변수이다. 이는 개인의 성향과 취향이 진공 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114 페이지) 저자는 동성애에 대한 관점 변화를 거론하며 혐오스러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대상을 바라보는 혐오의 감정과 태도만이 있을 따름이라고 말한다.(115 페이지)

 

혐오 가운데 가장 문제적인 여성 혐오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는 넓게 보면 가부장적인 역사와 문화, 제도가 만들어낸 관행, 언어, 생각, 태도, 감정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117, 118 페이지) 여자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식의 생각, 바람 등은 여성 혐오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물론 저자는 가부장제가 곧 여성 혐오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119 페이지) 판도라의 신화와 아담을 타락시킨 이브 이야기는 여성의 잘못으로 인해 죄 없는 남성들이 불행을 덤터기로 짊어지게 되었다는 주장을 근저에 깔고 있다. 이를 보며 군 가산점 폐지로 인해 손해를 감수함으로써 피해의식과 박탈감 등에 시달리는 남성들이 여성 험요를 하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무엇일까? 서양 철학은 남성을 이성적 존재로, 여성을 감정과 본능의 존재로 그렸다.(121 페이지) 그렇다면 여성을 그런 존재로 만든 기독교의 신(그리스 신화의 경우는 생략)을 문제삼아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손쉽게 여성을 문제삼는다. 이는 병역 가산점 제도로 피해를 여성, 장애인 등에게 부가하는 정책을 펴다가 그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남성들에게 불리를 감수하게 할 뿐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 대신 여성에 분노와 적대감을 표하는 것을 닮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말한 바를 통해 알 수 있듯 20세기 초반까지 여성들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읽고 쓰는 것을 남자들이 독점했다. 여성은 공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와 매체를 갖지 못했다.(122 페이지) 최근 강신주는 여성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 외에는 없다는 말, 페미니즘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 등을 했다. 몰이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여성혐오와 남자들이 이해하는 여성혐오에는 딱 부러지게 규정하기 어려운 편차가 존재한다고 말한다.(154 페이지)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보자. 이 책에서 개진된 치즈코의 논의는 구조주의적이다. 여성혐오는 의식의 표면보다 무의식의 심해에서 일어난다고 본 것이다.(156 페이지)

 

치즈코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을 여성 혐오로 보았다. 이는 마사 너스바움의 논의와도 통하는 바이다. 저자는 지나치게 구조주의적 접근은 왜 여성혐오가 한국사회에서 최근 지배적인 정동이 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162 페이지)

 

세상이 많이 변했다. 특히 가부장 질서가 많이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여성이 살기 힘든 사회가 우리 사회이다. 소크라테스를 주목하게 된다. 그는 남성 우월적인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디오티마라는 여성을 만나 그녀의 지혜에 감탄하고 그녀로부터 사랑의 본질에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얻었다.(187 페이지)

 

저자는 혐오 대신 분노로 혐오의 구조에 저항하며 그것을 전복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반복의 악순환에 온몸으로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19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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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로 시작하는 심보선 시인의 첫 줄에 짧은 감상을 덧붙여 본다. 시인은 첫 줄이 써진다면 첫눈처럼 기쁠 것이고, 첫아이처럼 기쁠 것이고, 죽음의 반만 고심하리라는 말을 했다. 네루다의 시가 내게로 왔다를 떠올리게 된다.

 

김정란 시인은 시인들이란 예감을 가로채는 존재라는 말을 했다.(‘비어 있는 중심’ 114 페이지) 두 말은 대립하는 것인가? 요즘 내 화두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기’ vs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기의 관계 규명이다. 공자도 이런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하늘로부터 주어진 선천적 조건들보다는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는 후천적 차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이정우 지음 인간의 얼굴‘ 15, 106 페이지) 적극은 때로 무리수가 된다.

 

짧은 세션(충분한 시간에 걸쳐 내담자를 상대하는 대신 10 15분만에 갑자기 중단하는 것. 이는 분석가가 돈을 버는 데만 유리한 기법이다.) 때문에 국제정신분석협회로부터 축출된 라캉은 자신의 처지를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한 스피노자의 그것에 비유하는 놀라운 제스처를 취했다.(홍준기 지음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 26 페이지)

 

어제 최초의 유토피아 조선강의 시간에 아버지의 이름 즉 금지하는 질서, , 상징 체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아이는 금지를 받아들이거나 무시하거나 자신의 법을 새로 만든다.) 좋은 어머니란 개념도 있다. 멜라니 클라인은 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견딜 수 있는 우울적 주체로 성장해 가는 데 좋은 엄마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헬조선에는 정신분석수록 홍준기 글 불안: 우리는 왜 충분히 좋은 엄마 또는 사회적 국가를 필요로 하는가‘ 203, 204 페이지)

 

홍준기는 우리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좋은 엄마가 가진 긍정적 의미와 깊이를 확대해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포괄할 수 있는 정신분석 및 인문사회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 33 페이지)..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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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유토피아 조선‘ 강의 두 번째 일정이 지났다. 첫 일정과 달리 오늘은 나도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첫 시간에 오늘과 같은 점심 모임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강사와 두 분의 직원, 네 명의 수강자가 함께 가진 모임이었다. 한 여자 수강자께서 점심 값을 모두 내셔서 ‘아, 벌써‘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분은 성균관대 앞의 사회과학 서점 ‘풀무질‘ 소식을 전했다.

나도 경희대 앞의 지평 이야기를 했다.(25년 전 자주 들렸던 곳인데 폐점했지만 나는 아직도 02 963 2328이라는 전화번호가 기억난다.) 우리는 다음 모임과 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인사동의 화랑이나 미술관 가는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직원 가운데 한 여자 분은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 듯 하다. 내가 자신의 재단에서 활동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네, 좋지요.. 그런데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도의 말로 답을 대신했다.

나는 과연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강사분께 프로그램이 좋아 확장하면 책으로 내기에 적당할 것 같다고 하자 자기는 게을러 책 같은 것 못 쓴다는 말을 했다. 내가 김** 시인의 글은 도저히 흉내낼 수조차 없다는 말을 하자 혜화 사시는 한 여자 분이 책 이름을 물었다.

대답했더니 바로 검색을 하셨다. 그냥 물은 것이 아니라 사서 읽으려는 마음이 있는 듯 했다. 이 분은 공자가 55세부터 공식 기록이 있다는 오늘 강의 내용을 반추하며 자신에게 희망이 되는 사실이라 말했다.

그런 점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인연이 계속 이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 좋아하는 분들과의 만남이니 인연이 이어진다면 좋겠다. 여섯 차례의 강의가 남았는데 모두 끝나고 나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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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홀릭 - 되새길수록 좋은 서울의 한옥마을 이야기
로버트 파우저 지음 / 살림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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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한국과 인연을 맺은 로버트 파우저(1961 - )서촌 홀릭은 되새길수록 좋은 서울의 한옥 마을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저자는 서촌에는 인(), (), () 사이에서 나오는 여유가 있고 현대인의 일상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독특한 정취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 보존을 선과 악으로 극명하게 구분짓는 이분법적 사고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보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28 페이지) 저자는 성북동 이태준 고가(古家), 북촌 등을 둘러본 뒤 한국에 개발(이라는) 악이 작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했다.(31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서울은 빨리 변하는 도시이다.(45 페이지) 그리고 자기 흔적 찾기가 힘든 도시이다.(46 페이지)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인스턴트 도시이다.(51 페이지) 저자가 서촌(西村)을 발견한 것은 2008년 늦가을이다.(53 페이지)

 

저자가 2008년 가을에 서울에 와 서울 속에서 자신만의 작은 교토를 찾기 위해 첫 번째로 탐험한 곳이 북촌이다.(59 페이지) 교토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의 일원이었던 저자의 아버지로 인해 살게 된 도시이다.(55 페이지) 그곳에서 저자는 문화의 깊이에 매료되었다고 말한다.(55 페이지)

 

저자는 한옥 보존 반대, 주민은 재개발 원한다 등의 현수막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60 페이지) 저자는 북촌보다 서촌이 그간 꿈꾸었던 작은 교토에 가까워 보여 서촌에 매력에 빠져들었다.(61 페이지)

 

저자는 혜화동 추억도 밝힌다. 1980년대 말은 대학로 시대였다. 소극장 중심으로 문화 활동이 활발했던 시대이다. 당시 저자는 재능교육문화센터 자리 뒤에 자리한 마음에 드는 한옥을 찾았다.(72 페이지) 저자는 혜화동에서 한옥 살이를 해본 경험 덕분에 한옥이 한국 고유의 신비로움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감정은 매우 반가우면서도 부담이 될 때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76 페이지)

 

한옥은 마당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자연이 집 안으로 끌려들어오는 셈이다.(86 페이지..이 문장은 형용사로서의 자연과 명사로서의 자연이 함께 등장하는 드문 예이다.) 한옥은 자연과 소통하는 집이기에 불편하다. 저자에게 한옥은 집이기보다 각박한 일상에서 비발디의 사계(저자가 초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하던 음악)처럼 화조풍월(花鳥風月)을 즐거워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다.(87 페이지)

 

저자는 한국의 유교 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한국이 근대 사회를 열면서 옛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전반적인 성향은, 자신들의 전통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유교 사상을 낡은 것이라 강조하며 한국의 수많은 문화적 재산을 파괴한 일본적 정서에 대한 반대급부 때문이라는 것이다.(107 페이지)

 

한국이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 전쟁을 끝낸 뒤 남한의 군사 독재 정권은 국민적 단합을 위해 유교 사상을 강조했고 북한은 조선시대를 봉건시대로 규정했다. 그 뒤로 두 국가는 조선시대를 다르게 서사하고 있다.(108 페이지)

 

저자는 선불교로부터 오리엔탈리즘적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파트를 투기 대상으로 삼는 우리 모습을 보며 우리 정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샤머니즘이 아파트를 통해 새롭게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 짐작한다.(116 페이지) 무당이 특별한 능력으로 한 사람의 고민을 구명할 수 있듯 아파트가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구명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118 페이지)

 

저자는 곧 없어질(재개발 될) 한옥 지구를 사진 찍는 것을 폐허 포르노에 해당한다고 말하며 폭력 행위라 할 그런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120 페이지) 고통의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의식을 높이지도 않고 동정할 수 있는 능력도 키우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한 번 보면 계속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120 페이지)

 

저자는 한옥에 워낙 관심이 많아 집 뼈대부터 섬세한 창살까지 한옥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 하던 차에 전주 한옥 마을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한다.(152, 153 페이지) 저자에게 전주는 한국의 교토다.(155 페이지)

 

저자는 서촌에 살면서 동네의 모든 역사를 멸시할 재개발을 반대했고 곳곳에서 일어나는 난개발도 반대했다. 동네를 보존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다.(180 페이지) 저자는 보존(保存)과 보전(保全)의 차이를 논한다. 환경과 자연 경관을 이야기할 때는 보전이란 말을 쓴다. 특정 유물이나 건축물에 대해서는 보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181 페이지)

 

저자는 역사적 가치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옛것은 다 철거하고 어디서나 찾아볼 법한 특색 없는 건물을 그렇게 쉽게 짓는 우리의 심리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심리라 말한다.(186 페이지)

 

저자는 한국의 곳곳을 많이 다녔다.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리라. 저자는 골목의 정취가 좋다고 말한다.(202 페이지) 저자는 교토를 보존해야 한다는 자신의 강한 생각이 낭만적 시선 어떻게 보면 오리엔탈리즘적 이해로 인한 생각인 것 같았다고 말한다.(204 페이지) 그리고 오래된 것을 지키는 것은 선이고 없애는 것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시간이 갈수록 교토의 오래된 경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다양해졌다고 말한다.(204, 207 페이지)

 

저자는 집을 산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고 원형이 잘 보존된 것보다 좋은 위치, 주변 건물들이 높이 올라갈 수 없다는 환경적 요건이 자신을 사로잡았다고 말한다.(215 페이지) 저자는 한국에 살며 답답한 것 중 하나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분위기라 말한다.(223 페이지)

 

저자는 어락당의 주인이었다. 체부동의 도시형 한옥이다. 저자는 언젠가 다시 한옥을 짓는 과정이 자신에게 필요하면, 그때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어락당을 지었을 때처럼 즐겁게 할 것이라 말한다.(225, 226 페이지)

 

2015년 이후 서촌은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큰 몸살을 앓고 있다.(230 페이지) 서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젠트리피케이션보다 상업화에 가깝다. 저자는 무분별한 개발은 반대하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데에 중심을 두기로 했다고 말한다.(233 페이지)

 

저자가 인용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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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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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女性嫌惡)를 비판하는 글을 써야 하기에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읽었고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3년만에 다시 읽고 있다. ‘혐오와 수치심은 알라딘 신간평가단 과제여서 리뷰를 썼지만 미흡하다는 생각 때문에 1개월여만에 리뷰를 다시 쓰다가 중단한 상태이다.

 

3년만에 다시 읽는 너스바움의 책에서는 월트 휘트먼에 대한 기술(記述)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이는 올해 읽은 두 권의 책(박홍규 지음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장석주 지음 은유의 힘’)에서 휘트먼에 대한 글을 만났기 때문이리라.

 

박홍규의 책에서 시집 풀잎의 시인인 휘트먼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헤세에게 큰 영향을 미친 구스타프 그레저와의 관계하에서 거론되었고 장석주의 책에서는 은유와의 관계하에서 거론되었다.

 

구스타프 그레저는 자신의 성()인 그레저(Graser)는 그라스(grass)의 복수를 의미한다며 풀 잎 한 닢을 명함으로 삼았다.(‘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144 페이지) 휘트먼은 한 아이가 풀잎을 따와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織造)된 깃발이라고 말했다.(‘은유의 힘’ 25 페이지)

 

논점이 달라서이지만 이 책들에서 거론된 사실만으로 휘트먼의 온전함을 아는 데는 부족하다. 휘트먼은 몸의 흥분을 노래한다란 시에서 남자의 몸도 여자의 몸도 신성하다네./ 어느 누구의 것이든 몸은 신성하다네. 노동자 집단의 몸이라고/ 비천할까?”란 말을 했다.(‘혐오와 수치심’ 218 페이지)

 

너스바움에 의하면 전 생애에 걸쳐 휘트먼의 응답은 섹슈얼리티의 수용적이고 여성적인 측면을 기쁘고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같은 책 220 페이지) 너스바움은 휘트먼의 미국은 하나의 허구로 실제 사회는 그에 의해 표현된 방식으로 혐오를 이겨내지 못했다고 말한다.(같은 책 224 페이지)

 

너스바움은 휘트먼이 그린 사회를 이상적인 규범이라고 성급하게 결론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너스바움이 말한 바는 여성 혐오가 없는 사회를 이상적인 규범으로 성급하게 결론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혐오가 없는 사회를 이상적인 규범으로 성급하게 결론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든 이유는 세 가지이다. 우리에게 혐오는 실제적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준 진화적인 유리함이 있었다는 것이고,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문화에서 또는 최소한 같은 문화 속의 여러 사람에게 혐오스러운 것과 매력적인 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바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섹슈얼리티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휘트먼의 요구대로 하려면 결국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과 퇴화를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껴안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같은 책 225, 226 페이지)

 

꽤 설득력 있지만 동의하기가 꺼려진다.(세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불교 수행을 참고한다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에노 치즈코는 성적으로 남성인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여자라는 시시하고 불결하며 이해 불가능한 생물에게 욕망의 충족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남자들의 분노와 원한이 여성 혐오의 내용일 수 있다고 말한다.(‘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16 페이지)

 

치즈코는 여성 혐오라는 개념을 얻게 되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호색남이 실은 여성을 멸시하는지, 또는 왜 남자가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여자를 욕망하는지 잘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남성에게 이성애 질서는 남성이 성적 주체임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289 페이지)

 

정녕 시시한 존재에게 의존한다고 생각한면 분노나 혐오보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겸허함이 필요한 것이 아닐지? 남자가 여성 의존도가 클수록 현실 부정에서 기인하는 여성 혐오는 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니체가 말한 고상한 위선이 아닐지?

 

우에노 치즈코의 책은 복잡 다기(多岐)한 폭력과 도착(倒着)적인 현실을 잘 그려낸 책이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읽는 데 꽤 불편하다.(우에노 치즈코는 사회학자라는 직업이 업보라 생각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기분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마음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쾌한 것, 화가 나는 것, 용서하기 힘든 것을 대상으로 골라 그 수수께끼를 밝혀내고자 골몰하기 때문이다.)

 

우에노 치즈코에 의하면 여성 혐오는 남성에게는 여성 멸시, 여성에게는 자기 멸시이다.(13 페이지) 저자는 여성이 성녀로 추앙되든 매춘부로 업신여겨지든 모두 한 동전의 양면이라 말한다.(27 페이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이 생식용 여성(아내)와 쾌락용 여성(매춘부)의 이분법적 시각이다. 전자는 생식의 영역으로 소외되고 후자는 생식으로부터 소외된다.(53 페이지) 물론 이때 말하는 쾌락이란 오로지 남성의 쾌락만을 의미한다. 저자는 남성에 의해 성녀와 창녀로 나뉘는 여성의 현실을 분할 통치라 말한다. 성녀와 창녀는 여성 억압의 두 가지 형태일 뿐이며 양쪽 모두 허울 좋은 타자화에 지나지 않는다.(57 페이지)

 

저자는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에 대한 동일화는 여성을 성적 객체화하는 것에 의해 성립하며 그 경계에는 수많은 혼란이 존재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며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 수수께끼가 한꺼번에 풀리게 된다고 말한다.(39 페이지)

 

저자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갈파(喝破)를 언급한다.(43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남자는 다른 남자의 성적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가 된다. 이로 인해 남성됨의 방식에는 다양성이 없다. 음담패설이 정형화되고 나는 ...’식의 일인칭 말하기가 성립하지 않는다.(43, 44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남자가 남성으로서의 성적 주체화를 달성하기 위해, 여성 멸시를 아이덴티티의 핵심 깊은 곳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 여성 혐오이다.(51 페이지) 중요한 것은 호모 포비아이다. 남성은 자신이 여자 같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 없이 증명해야 한다.(51 페이지)

 

이브 세지윅에 의하면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는 남성 간 연대를 성립시키는, 분리하기 어려운 한 쌍의 계기이다. 자신이 남성임을 다른 남성에게 인정받으려면 자신이 여자가 아님을 증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102 페이지)

 

남성과 여성의 균형은 끝까지 남성 우위를 지킴으로써, 다시 말해 여자가 남자를 떠받드는 것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는 연약한 것이다.(79 페이지) 여성 혐오를 기반으로 조직된 사회를 가부장제 사회라 한다.(111 페이지) 여성 혐오는 남자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여자가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저주하는 것이다.(112 페이지) 페미니스트는 스스로의 여성 혐오를 자각하고 그것과 싸우는 사람이다.(297 페이지)

 

여자의 질투는 남자를 빼앗은 다른 여자에게로 향하지만 남자의 질투는 자신을 배신한 여자에게로 향한다. 그것은 소유권의 침해, 한 명의 여자가 자신에게 소속됨으로써 유지되던 자신의 자아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위험을 뜻하기 때문이다.(125 페이지)

 

남자는 바보 취급 가능한 여자를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그런 여자를 한 명 확보해 놓는 것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시키기 위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177 페이지)

 

어떤 의미에서 여성이라는 사실을 혐오하는 감정은 모든 근대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보편적 감정이라 할 수 있다.(154 페이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전편이 밀도 높은 데다가 정신분석적 개념에 근거해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9어머니와 딸의 여성 혐오가 그렇다.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라캉 학파의 계승자인 사이토의 모녀관계론은 프로이트 이론에 익숙한 이라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남성에게 해부당하는 것은 어쩐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든다.”.(169 페이지)

 

저자는 말한다. 페미니즘이 부정하는 것은 남성성이지 개개의 남성 존재가 아니라고.(302 페이지) 그리고 이브 세지윅에 의거해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는 남성 간 연대를 성립시키는, 분리하기 어려운 한 쌍의 계기라는 말을 한다. 자신이 남성임을 다른 남성에게 인정받으려면 자신이 여자가 아님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갈파(喝破)를 언급한다. 치즈코에 의하면 남성됨을 인정해주는 것은 이성인 여성이 아니라 동성인 남성이다. 남성의 성적 주체화에 필요한 것은 자신을 남성으로 인정해주는 남성 집단이다.

 

물론 나는 이런 남성 집단의 인정에 별 관심이 없다.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 이 부분에서 나는 김영민 교수(철학)의 말을 떠올린다. 그는 사람은 자식이라는 생산성을 통해 불멸성을 선사받는다는 플라톤의 향연의 논의를 겨냥해 자신에게는 자식이라는 생산성을 통해 불멸하려는 욕심이 없다는 말을 했다.(‘보행’ 319, 322 페이지)

 

어떻든 정녕 시시한 존재에게 의존한다고 생각한다면 분노나 혐오보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겸허함이 필요한 것이 아닐지? 남자가 여성 의존도가 클수록 현실 부정에서 기인하는 여성 혐오는 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니체가 말한 고상한 위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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