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열 명의 그녀들
이화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버지니아 울프와 밤은 새다는 소설가 이화경에게 힘이 되어준 열 명의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다. 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실비아 플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버지니아 울프, 잉게보르크 바흐만, 로자 룩셈부르크,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봐르 등이다.

 

저자는 이 열 명의 작가들을 여자 창힐(蒼頡)로 본다. 창힐은 문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고대의 전설 속 인물로 네 개의 눈을 가진 존재였다. 그들은 환멸의 어두움으로 채색된 현재를 넘어서기 위해 찢어진 겹눈으로 미래를 투시했고, 이미 판가름 난 실패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건지기 위해 복안(複眼)을 굴린 존재들이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의 작가이다. 시집도 가지 않고 유산은 한 푼도 받지 못한 무일푼의 여자였던 제인 오스틴은 단독 서재도 없이 가족 공동의 번잡한 거실 한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소설을 쓴 작가이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하지만 그녀가 평생 쓴 장편 소설로 번 돈은 700파운드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바느질 삯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녀는 가난한 작가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수치심과 우월감을 함께 느꼈다. 그녀에게 글쓰기로 첫 사랑에 실패한 분노와 비통함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녀에게 창작은 수명을 단축시킨 열병이었다. 독신으로 42세에 삶을 마친 그녀는 오만과 편견을 나의 사랑하는 아이라 불렀다.

 

오스틴은 소설가는 자신의 생애라는 집을 허물어 그 벽돌로 소설이라는 다른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에 잘 부합한 작가였다.

 

조르주 상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란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지나갈 것이다. 이것이 내 철학이다.”라며 침착하게 견뎠다. 그녀는 임종을 맞던 순간에 마치 소풍을 가듯 안녕, 안녕, 이제 곧 죽을 거야, 안녕,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를 남겼다.

 

조르주 상드는 문학인들이 모인 파티에서 금발에 방탕한 스물 세 살의 아도니스를 보고 단박에 자신의 뮤즈임을 알았다.(59 페이지) 상드는 많은 편지를 썼다. 쇼팽에게 결별을 선언할 때도 편지를 썼다. 쇼팽이 자신의 딸에게 눈독을 들였음을 뒤늦게 안 상드는 절교 편지를 보낸 뒤 처참한 심정으로 앓아누웠다.

 

상드는 좌파 혁명가 루이 불랑과 손잡고 무정부주의자 바쿠닌과 친교를 맺고 마르크스와도 교유했다. 플로베르 등 여러 인사들에게 편지를 썼다.

 

실비아 플라스(1932 1963)는 너무도 이른 봄날에 너무도 빨리 만개해버린 얼리 블루머(early bloomer)였다.10대에 이미 자신이 창작한 시 400여편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초년의 찬란한 성공이 생애 전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독이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77 페이지)

 

그녀의 유일한 장편 소설은 벨 자(Bell Jar)’’이다. 벨 자는 종 모양의 유리 그릇을 의미한다. 실비아는 세상의 온갖 벨 자에 갇힌 여상의 참혹한 실체를 소설을 통해 적나라하게 까발렸다.(78 페이지)

 

저자는 실비아 플라스가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는 세평에 대해 지금 이 세상도 여전히 너무 낡아 보인다는 말로 응수한다. 실비아는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창작에 몰두해 시와 단편을 잡지사와 출판사에 산더미처럼 보내지만 끊임없이 반송되고 계속 거절당한다.

 

반면 남편 테드 휴즈는 첫 시집부터 평단의 주목을 받고 승승장구의 출세 가도를 달린다. 쉽게 상처받고 편집증적 기질마저 있는 실비아에게 작가로서의 성공을 거머쥔 남편의 존재는 비수처럼 그녀의 내면 깊숙이 후비고 들어와 상처를 입힌다.(88 페이지)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과도하게 집착한다. 그녀는 남편의 시적 대상인 상상 속 뮤즈에게마저 질투를 느끼며 괴로워한다.

 

그녀는 남편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망과 의존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느낌 사이에서 수시로 흔들렸다.(90 페이지) 저자는 실비아의 자살은 엄마의 인형이자 남편의 그림자로밖에 살지 못했던 가짜 자아를 죽이고 새로운 자아로 재탄생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의 행위가 아니었을까, 란 말을 한다.(93 페이지)

 

프랑수아즈 사강은 열세 살에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고 자신의 작가로서의 소명을 인식했다. 그녀가 창작이라는 고독하고도 위대한 세계로 들어설 결심을 한 것은 지드, 랭보, 카뮈를 통해서였다. 프랑수아즈 쿠아레에서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그녀가 프루스트의 사라진 알베르틴에 나오는 등장 인물의 이름을 보고서였다.(102 페이지)

 

사강은 프루스트를 통해 모든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20대에 교통사고로 인해 맞은 모르핀이 중독 증세를 일으킨 이후 평생 그녀는 즁추신경계를 흥분시키는 약물인 암페타민과 코카인에 절어 살았다.(116 페이지) 코카인 소지 혐의로 재판정에 선 그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항변했다.(116 페이지)

 

조앤 롤링은 쓸모 없고 게으르고 부도덕하고 국가 재정을 좀먹는 사회적 문제아라는 악의적인 눈길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울프는 한숨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아파트의 방 대신 등불이 따뜻한 카페 구석에 처박혀, 커피 한 모금으로 한 시간을, 다음 한 모금으로 두 시간을 버텼고 흰 종이 위를 굶주린 들개처럼 쏘다니며 8만 개의 단어를 물어다 날랐다.(122 페이지) 첫 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그녀는 처음으로 방 세 칸에 정원이 딸린 자신만의 집을 샀다.

 

1929년 출간된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강연 요청을 받고 쓴 글이다. 이 글에서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명료한 주장을 했다.(130 페이지) 무엇보다 대단한 울프도 한때는 단지 몇 파운드를 벌기 위해 밥벌이에 성실하게 복무한 사람이었다.(132 페이지)

 

헌책방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한 아름 사는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서, 빈둥거리면서 여행하기 위해서, 원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원고지와 잉크를 맘껏 사기 위해서, 울프는 제 손으로 돈을 벌고 싶어 했다.(133 페이지)

 

울프는 이렇게 썼다.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하찮고 방대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않고 온갖 종류의 책을 써보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보고 몽상에 잠기며 길모퉁이를 어슬렁거리고 상념의 낚싯줄을 강물에 깊이 드리울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울프는 평생 책의 물결에 휩쓸려가고 책으로 비옥해지고 스스로를 책으로 가득 채워갔다. 울프는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는 잘난 남자 형제들에 대해 느껴야만 했던 열등감과 지적인 외로움을 마치 돌처럼 견뎌냈다.(142 페이지)

 

저자는 울프의 제이콥의 방을 정상과 광기 사이의 경계와 틈 사이에서 길항하고 대치하고 저항하는 전쟁터에서 거둔 훈장이라 평한다.(145 페이지)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스물네 살에 마르틴 하이데거 실존주의 철학의 비판적 수용이란 논문으로 빈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155 페이지) 그녀는 이성, 논리, 법칙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개인적 자아의 정신을 억압하고 감성을 파멸시키는 도구이자 남성적 폭력이라 비판했다. 아울러 인간 존재의 총체적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성 특유의 감각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의 이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155, 156 페이지)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와의 갈등을 견지하는 것이었다.(156 페이지) 바흐만은 한때 환희이자 열망이었던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가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악용한 것을 알고 깊은 충격에 빠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의사들을 찾아 다녔고 그녀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연인이자 비운의 시인이었던 파울 첼란의 투신 자살 소식을 듣는다.(161, 162 페이지)

 

저자는 어디선가 바람결을 타고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이국적인 여성 혁명가의 이름이 들려왔다고 말한다.(176 페이지) 그녀는 러시아 혁명을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첫 번째 여자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칭송을 받았다.(179 페이지) 그녀는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조국이며 자유, 평등, 박애 앞에서 어떤 국경선도 인정하지 않았다.

 

로자는 다섯 살 때 골수 결핵에 걸렸다.(180 페이지) 일찍이 생의 비극성을 간파한 어린 로자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비의(秘儀)를 찾기 위해 독서에 몰입하기 시작했다.(180 페이지) 낭만주의 시나 읊조리던 순진한 문학소녀였던 로자는 펜을 칼처럼 휘두를 정치 행동가로 훌쩍 도약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알았다.(181, 182 페이지)

 

19세기 러시아 제국이 철권으로 폴란드를 지배하던 그 시절에 여중생 로자는 전제정치에 저항하며 투옥되고 교수형에 처해지는 폴란드의 여자 테러리스트들을 지켜보며 투쟁의 불씨를 가슴에 틔웠다.(181 페이지)

 

섬세함과 강인함, 연약함과 전투성, 이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그녀의 글과 연설과 정치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민족주의와 쇼비니즘을 격파할 국제주의자가 될 채비를 갖추었다.(186 페이지)

 

그녀는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는 글에서 베른슈타인을 겨냥한 날카로움을 선보였다. 수정주의자와 개량주의자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든 로자의 시퍼런 창끝은 예리하고 단호했다.(189 페이지)

 

논리적 엄격성을 유지하면서도 문학적 은유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그녀의 글쓰기는 혁명의 망치질이었다.(191 페이지) 그녀는 철저하게 대중의 자발성을 신앙처럼 받들었다.(193 페이지)

 

수전 손택은 `스타일에 대하여`에서 우리의 겉모양새가 우리의 존재 방식이고 가면이 곧 얼굴이란 말을 했다. 저자는 이를 전하며 지식인들의 취향을 추종하거나 엘리트 비평가들의 비평가들의 판단에 충성을 바치지 말고 내 스타일인가 아닌가를 따져서 끌리는 대로 예술 작품과 에로틱한 사랑에 빠지면 된다고 말한다.(205 페이지) 스타일의 획일성이 문제이다.

 

그녀는 문화적 황무지에 살고 있다고 느끼며 마구잡이로 책을 탐독하다 시절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접하면서 애리조나 너머 유럽 문명의 진수를 맞보았으며 그 책을 인생의 중요한 책으로 여길 만큼 문학에 탐닉했다.

 

그녀는 작가란 회의적인 족속이며 누구보다 스스로를 더 의심하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녀는 무엇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 야만, 폭력, 빈곤, 차별, 테러리즘에 가슴 미어질 듯한 고통과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는 평생 징징 거리거나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 병이 늙은 육신을 유린할 때도 그녀는 명랑 할 것, 감정의 휘둘리지 말 것, 차분할 ,것 슬픔에 골짜기에 이르면 두 날개를 펼쳐라 등의 말로 스스로를 위무했다.

 

한나 아렌트는 지적인 아버지 파울 아렌트와 좌파 성향의 어머니 마르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암기력이 탁월하고 지적인 토론을 열망하던 10대 시절 한나는 칸트,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등 수많은 철학자의 책을 섭렵하며 질풍노도의 세월을 보냈다.

 

아침에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는 딸의 요구에 어머니는 아침 수업을 면제해 달라고 학교에 부탁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늦게 일어나 등교 준비로 부산을 떠는 대신 수도승처럼 커피 한잔을 마시는 느긋한 딸을 어머니는 너그럽게 이해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유대인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도중에 가방을 싸서 나와 버린 당돌하고 비타협적인 딸이 퇴학을 당해도 어머니는 딸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아렌트의 첫사랑은 철학이었다. 아렌트를 동해 하이데거는 평생의 역작인 존재와 시간의 영감을 받았으며 뜨겁게 사유할 수 있었다.

 

함께 있다가도 벼락처럼 떠나는 연인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고독과 슬픔에 잠겼다.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떠나 하이델베르크로 학교를 옮겨 칼 야스퍼스 밑에서 공부를 개진했다. 아렌트와 야스퍼스는 사제관계이자 정신적 동반자 관계를 평생 지속했다.

 

아렌트는 혁명적 실천가이자 프롤레타리아이며 사유를 종교로 삼은 블뤼허를 만나 평생 지란지교와 같은 부부관계를 맺었다. 세탁부의 가난한 아들이었던 블뤼허는 배달하면서 생긴 돈으로 책을 사고 일을 쉴 때마다 엄청나게 책을 읽었던 깊이 있는 독학자였다.

 

그는 하이데거나 첫 남편과 달리 그녀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배려했다. 블뤼허에게 자극을 받은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 ‘과거와 미래’, ‘사회 혁명론’ ‘폭력론’, ‘공화국의 위기같은 주요 저작을 왕성하게 저술했다.

 

악의 평범성이란 악이 평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악한 일을 한 인간이 평범할 수 있다는 의미,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244 페이지)

 

생각하기의 무능함, 생각의 무능함,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함(판단의 무능함)이 결합되면 전체주의와 홀로코스트가 부활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245 페이지)

 

1949년 보봐르가 발표한 2의 성은 교황청으로부터 포르노그래피란 혹평을 받았다. 친구 카뮈마저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초기 페미니즘적 비판과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분석이 결합된 독창적인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여성은 절대적 타자라는 것, 여성성은 구성된다는 것 등이다.(26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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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1975)에게 부러움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그의 생에 어머니(Martha Arendt - Beerwald: 1874 1948), 철학자 연인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 1969), 시인이자 마르크시스트 철학자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Heinrich Blücher: 1899 1970)가 큰 몫을 차지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보적 성향의 어머니 마르타는 아침에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는 딸을 위해 아침 수업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학교에 부탁하기까지 했던 분이다. 아렌트는 학생 시절 칸트나 야스퍼스 등의 책을 읽느라 학교의 오전 수업에 빠지곤 했다. 아렌트의 어머니는 그런 딸을 너그럽게 이해했다.

 

아렌트는 야스퍼스와 평생 사제관계겸 정신적 동반자 관계를 이어 나갔다. 아렌트는 혁명에 대하여의 첫 장에 존경과 우정과 그리고 사랑을 담아스승 야스퍼스 부부에게 바친다는 글을 썼다. 아렌트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이자 사유를 종교로 삼았던 하인리히 블뤼허를 만나 평생 친구 같은 부부관계를 맺었다.

 

세탁부의 가난한 아들이었던 블뤼허는 배달 일을 해 번 돈으로 책을 사고 쉬는 날을 골라 엄청나게 책을 읽은 독학자였다. 그는 아렌트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배려했다. 아렌트는 블뤼허로부터 영감을 얻어 전체주의의 기원’, ‘사회 혁명론’ ‘폭력론등의 주요 저작들을 저술했다.

 

정신분석학자 엘리자베스 영-브륄(Elisabeth Young-Bruehl: 1946 - 2011)은 아렌트를 우정의 천재로 묘사했다. 브륄에 의하면 아렌트는 스승, 위대한 정신, 가족, 동료들과의 우정에 그치고 않고 이를 세계 사랑으로 승화시킨 철학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아렌트의 사례를 보며 여성에게는 좋은 어머니, 동반자 같은 스승, 더 나아가 어두운 그림자까지 이해하려는 배려심 깊은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좋은 어머니란 개념은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개념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을 활용하는 시()치료를 접하며 이제서야 나는 영화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렌트 같은 사례가 담긴 영화가 있을까? 이것이 요즘 내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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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개씩 순우리말을 익히라..지난 해 용산도서관 시 수업 때 유종인 시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고 요즘 다시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유종인 시인으로부터 듣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그 주문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어제 눈에 띄는 책을 샀다. 수필가 이승훈 님의 ‘아름다운 예문과 함께하는 국어사전에 숨은 예쁜 낱말‘이다.

‘노량으로'란 단어와 ‘시적시적‘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노량으로‘는 ’어정어정 놀면서 느릿느릿’을 뜻하고 시적시적은 ‘힘들이지 않고 느릿느릿 행동하거나 말하는 모양’을 의미한다.

‘어정어정‘은 몸집의 사람이나 동물이 이리저리 천천히 자꾸 걷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나는 어제 밤 11시부터 오늘 아침 5시까지 12일이 기한(期限)인 두 편의 급한 글 가운데 한 편을 썼다.

일정을 예상했던 글이다. 9일, 10일, 11일, 12일 모두 서울에 가야 하기 때문에 두 날 외에는 시간이 없다.

어제의 글은 배가 고파 두 번(새벽 2시, 4시)이나 간식을 먹으며 쓴 글이다. 그러니 두 단어는 나의 어제 행동을 설명하는 데는 맞지 않는다.

요즘 나를 설명하는 데 맞춤인 말은 ‘암만하다‘란 말이다. ‘이러저러하게 애를 쓰거나 노력을 들이다’란 뜻의 말이다.

‘입찬소리‘(지나치게 장담하는 말) 하지 않고 ‘넌짓넌짓‘(드러나지 않게 가만가만히) 경영해야 할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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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상상계라는 말은 현실이 상상의 산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는 일정 정도 착각하거나 잘못 상상하거나 그릇된 믿음을 갖지 않고서는 현실을 인식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가령 현실은 단편적으로 묘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한정 묘사만 하고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묘사한 후 그것이 완벽한(무모순의) 진술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의미의 고정점이라고 할까.

홍준기 교수의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라캉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그의 진술 때문이다.

그 이후 구조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읽은 김형효 교수의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을 통해 그가 혁명적이고 전복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홍준기 교수의 글을 읽으면 라캉은 대단히 문제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홍준기 교수의 책은 대단히 설득력 있고 논리적이다.

어떻든 라캉의 이론과 사유는 비인간적이고 모순적이고 독단적이고 가부장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이론이 공허하다는 사실이다. 남의 이론을 가져다 출처도 명기하지 않고 써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그것이 그 자신의 고유한 이론인 것처럼 오인하게 한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라캉 비판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단서는 멜라니 클라인의 ‘좋은 엄마‘라는 개념이다.

라캉 비판은 소칼과 브리크몽의 ‘지적 사기‘의 그것과 다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의 이론으로부터도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면 그래야 한다.

* 32, 000원 짜리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17, 000원에 사고 나니 득템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판매한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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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초콜렛 선물을 받고 집에 돌아오니 루이지 피란델로의 소설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이 눈에 띈다. 최측의농간(출판사)에서 보내준 선물이다. 나는 첫 문장에 주목한다. “뭐해?” 평소와 달리 거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화자(話者)에게 그의 아내가 한 말이다.

 

첫 문장이 인상적인 안나 반티의 소설 아르테미시아생각이 나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논 피앙게레(Non Piangere) 즉 울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은 불가피하게 수전 손탁을 생각하게 한다. 손탁은 평생 징징거리거나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 병이 늙은 육신을 유린(蹂躪)할 때도 그녀는 명랑할 것, 감정에 휘둘리지 말 것, 차분할 것,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면 두 날개를 펼쳐라 등의 말로 스스로를 위무했다.(이화경 지음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221 페이지)

 

손탁은 타계 전에 쓴 타인의 고통에서 우리의 특권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는 말을 했다. 너무도 성숙한 태도이다. 손탁의 자세는 어떤 것이 제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며 도대체 부처님의 마음은 뭔가요?라 물은 한 사미승에게 네 마음도 모르면서 어찌 부처님의 마음을 알겠느냐?고 한 승찬(선불교의 3대 조사祖師)보다 낫다.(이화경이 손탁에 대해 쓴 글 제목이 타인의 아픔에 울어보지 않고 나를 알 수 있을까임을 생각하자.)

 

네 마음도 모르면서 어찌 부처님의 마음을 알겠느냐? 같은 말이 무슨 심오한 진리라도 되는 양 떠도는 것은 참 우습다. 겸허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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