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초의 유토피아 조선강의에서 대학로가 조선 시대에 백정(白丁)들이 살던 지역이었다는 말을 듣었다. 동석했던 한 혜화동 주민은 이 사실에 충격을 표했다. 성균관(成均館)에 백정이나 가면극 연희 종사자들인 반인(泮人)들이 부속(付屬)되어 있었다.

 

()은 학교 반자이고 반궁(泮宮)은 성균관과 문묘를 일컫는 말이다.(반궁은 제후국의 교육 기관, 벽옹(辟雍)은 천자국의 교육 기관이라 하기도 함. 벽은 임금 벽, 옹은 학교 옹자이다.) 반촌(泮村)은 성균관(成均館)을 중심으로 한 인근 동네를 일컫던 말이다. 당연히 대학로 인근이 해당 지역이다. 혜화가 내 인연(因緣)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지난 314일 고산 윤선도 오우가 시비, 빈빈책방, 장면 전 총리 가옥, 한무숙 문학관, 증주벽립(曾朱壁立)이란 각자(刻字)를 볼 수 있는 송시열 옛 집터 등의 헤화동 일대를 순례(巡禮)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송석문화재단을 알게 되어 최초의 유토피아 조선강의도 들었고 송석문화재단의 혜화동 저녁 모임(매월 세 번째 월요일 1921)의 배병삼 교수 강의(‘논어를 묻다: 사람의 길, 배움의 길‘: 521)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한양도성 혜화 안내 센터를 알게 된 것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재능 교육센터를 보다가 이어진 한양도성 혜화 안내 센터를 소개받게 된 것이다.(선생님께 감사!)

 

나는 프로그램에 이 한양도성 혜화 안내 센터도 넣었다. 전망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즐겼고 능소화(凌霄花)의 소란 글자가 하늘 소자라는 말도 했다. 능소화가 피는 계절에 다시 한양도성 혜화 안내 센터를 찾을 것이고 동기들과 한양 도성도 순례할 생각이다.

 

오늘은 아름다운 5(im wunder schonen monat mai)의 첫날이었다. 기대와 약간의 불안이 교차하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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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은 친척들과 기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의 공간 즉 열화당(悅話堂)이라고 하기에는 정치 이야기가 일상으로 오르는 파란만장한 곳이다. 그런 모습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나는 페북을 보며 네덜란드의 화가 르누아르를 생각한다.

"그림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피난처였기에 그는 그림 속에다가 고통을 표현하기를 거부했다."(김화영 지음 '바람을 담는 집' 339 페이지) 이 글은 내가 페북에서 정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해준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달라졌다.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이 빚어낸 놀라운 변화의 결과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정치 이야기를 자주 할 수 있으리란 마음이 생긴다. 전혀 예상 못한 결과에 기대가 큰 현실을 축하한다.

맹목적이고 독선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을 비판하기보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정신 건강에 좋으리란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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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전문가가 한 사상가의 지적 계보와 인연 등에 초점을 두고 강연을 진행하는 세션 중 두 번째 시간에까지 참석했다. 어제 강연자는 해석학(解釋學)에서 말하는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지평 융합, 그리고 전이해(前理解) 등의 개념을 언급했다.

 

사상가가 처했던 삶의 자리와 시대 정신을 알아야 그에 대한 온전한 조명(照明)이 가능하다는 것이 어제 강연자의 결론 중 하나였다.

 

어제 강연자의 지도 교수인 김경재 교수에 의하면 전이해는 어떤 텍스트를 대할 때 독자 또는 수용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특정 시각을 말하는 바 이는 편견, 오해, 아전인수격 해석 등과 관련된 말인 한편 내용 자체를 이해하도록 이끄는 단초(端初)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준비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강연을 들으려면 관련 책 두, 세권 정도는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질문도 하고 깊은 이해의 길에 들어설 수 있고 (필요하다면) 책임 있는 비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달 세 번째 강연자로 나설 양현혜 교수의 시간(526)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말한 대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찾다가 이 분이 쓴 우치무라 간조, 신 뒤에 숨지 않은 기독교인와 번역서인 탕자의 정신사’,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 ‘메르헨 자아를 찾아가는 빛등의 흥미로운 책을 알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번역한 세 책이 모두 정치학과 유럽 정치사상사를 전공한 미야타 미쓰오의 책이기 때문이다. 미쓰오의 책들은 내 관심사와도 관련되었다.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가 특히 그렇다. 성인들에게 동요 작가 윤극영에 대해 말해야 하는 내 과제에 단서가 될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이렇듯 각별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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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의 역(易)이 상형 문자로는 도마뱀을 형상화한 것이고 회의 문자로는 일(日)과 월(月)을 합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일과 월 부분은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용(用)이 일과 월의 합성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위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일과 월을 합하면 명당(明堂)의 명(明)이 된다. 주역의 관점으로 보는 세상은 이렇듯 재미 있는 만큼 어렵다.

문제는 주역을 과도하게 의미화하는 것이다. 초가 삼간이란 말이 있다.

한 주역 애호가가 왜 삼간인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 주역 8괘 때문에 삼간을 기본으로 설정했다는 것이 그의 답이다.

세칸짜리 집은 기둥이 여덟개가 나온다. 그는 이 여덟개의 기둥이 8괘를 염두에 두었기에 나온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사실은 가난하거나 신분이 낮아 세칸짜리 집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주역에 8괘와 삼간 집의 연관성을 언급한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8괘와 삼간 집을 연결짓는 것은 추정한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지?

근거 없이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물론 주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생각인지 아닌지, 추정인지 근거가 있는 것인지 확실히 밝히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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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원 시인의 시전집(최측의농간 출판)을 받았다. 최측의농간으로부터 받은 열두번째 책이다.

시인은 1960년에서 2012년까지 살았고 경기 양평군 양동면 소재의 한 수목원에서 수목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책 뒷편에 황현산 평론가의 ‘박서원을 위하여‘란 제목의 해설이 있다.

˝누가 시라고 하는 것을 주어서 읽어보았는데, 이런 것을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썼고, 그걸 투고했더니 당선되었어요˝라고 했다는 시인이다.

‘부서진 십자가‘란 시를 읽는다. ˝주여,/ 나에게 聖女가 되길 요구하지 마세요.//갈비뼈 앙상한 십자가 허리/ 망치로 내리친다 차례대로 ..../ 손목...무릎..발목...˝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을 성화(聖化)하는 것도 여성 혐오라 했다. 그 생각을 하며 시를 읽게 된다.
이 시인의 시를 읽을 때는 엘가의 슬픈 곡(첼로협주곡)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슬픔 때문에..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반만 맞는 것이 될 터이다. 그의 짧은 삶, 신산(辛酸)했던 삶을 보면 슬픈 곡을 들어야겠지만 시를 보면 슬픔을 의한 곡보다 초현실주의적 그림이나 아트록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심호흡을 하며 읽어야 할 시, 그리고 시인의 삶.. 힘겨운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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