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책을 사지만 이거다 싶은 책을 발견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지난 번 주역에 관한 책들 중 획기적인 ‘주역 강의‘(서대원 지음)를 산 데 이어 오늘 마침내(?) 지금 내게 꼭 필요한 한 - 영 버전의 전통 문화 해설서를 손에 넣었다.

정독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복사하다가 언급한 한 - 영 버전의 전통 문화 해설서는 복사를 하기보다 소장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여기 저기 수소문해 교보나 영풍이 아닌 알라딘(중고매장) 합정점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 달음에 달려가 샀다.

평소 읽었지만 한 권도 소장하고 있지 않은 저자의 책이어서 기분이 묘한데 사실 번역자에게 더 큰 감사함을 표해야 마땅하다.

책을 구입하는 행위란 기본적으로 올라가 멀리 볼 수 있는 거인의 어깨를 확보하는 행위이거나 지붕에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확보하는 행위이다.

문제는 사다리로 인해 벌어진다. 장하준 교수를 통해 알게 된 개념들 중 사다리 걷어차기가 있다.(자세한 설명 생략)

이 개념은 내가 지붕을 올라갈 때 사용한 사다리를 다른 사람들은 이용하지 못하도록 걷어차는 행위이다.

나는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이 글에 관심을 보일지 회의적이지만 다른 책들은 얼마든지 제목을 공개할 수 있는 반면 오늘 산 책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오늘 나의 이런 행위는 사다리 감추기에 해당한다.

나는 오늘 내내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란 조은 시인의 ‘언제가는‘의 구절을 생각하며 우울했었는데 전기한 책을 손에 넣고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이 무엇인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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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서점 직원에게 ˝책 읽을 시간이 무지 무지 많겠어요. 이렇게 책에 둘러싸여 앉아 있기만 하면 되니까요.˝란 말을 하자
직원이 이렇게 답했다 한다.

˝손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그러자 손님이 ˝나요? 난 옷가게에서 일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직원이 ˝음.. 그러면 손님은 옷 입어볼 시간이 정말 많겠어요. 그렇게 옷에 둘러싸여 계시잖아요.˝라고 말했다.

북 런던의 고서점에서 일하며 시와 단편소설을 쓰고 있는 젠 캠벨의 ‘그런 책은 없는데요‘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에 둘러 싸여 있으니 책 읽을 시간이 무지 많겠어요˝란 말을 한 사람이 하필 옷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만일 그렇게 물은 사람이 아무 일도 안하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어떻든 다소 작위적이지만 흥미롭다. 저자는 그런 질문을 받고 옷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을 가상해 상상 속에서 그런 답을 하는 것을 그린 것일 수도 있다.

서점 근무는 낭만 및 한가와 거리가 멀다. 운영해 본 적도 없고 직원으로도 근무한 적도 없지만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젠 캠벨이 말한 옷가게 직원은 서점 상황을 충분히 관찰하지도 않고 막연한 선입관으로 그런 질문을 한 듯 하다.

˝이 책을 모두 읽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 십 분의 일도 못 읽었다. 혹시 당신은 세브르 도자기로 매일 식사를 하느냐?˝고 답했다는 아나톨 프랑스의 멋진 말로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

아나톨 프랑스가 마주친 방문객의 질문도 썩 현명하지는 않지만 젠 캠벨이 마주친 손님의 질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우문현답 시리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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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초쯤으로 보이는 주부 옆 자리에 앉은 전철. 그녀, 걸려온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는다.

˝오늘 화요일이예요. 전화 걸지 마세요.˝ 화요일은 일이 있으니 전화 하지 말라는 말인가?

책을 찾아 알라딘 강서홈플러스점까지 가는 길에 만난 풍경이다.

그녀는 엄마란 말을 한다.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를 어찌 저렇게 받는 걸까?

왜 그런 것일까 ?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겠지만 옆의 나에게까지 불편함이 전해진다.

내 안에 있는 불효에 대한 자책감을 그녀가 자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승희 시인의 ‘우란분절‘을 연상하며 마음 상해하던 또는 위로받던 나는 오늘 옆 승객의 전화 사건으로 불편하고 우란분절의 화자처럼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다.

강서홈플러스 알라딘에 가기 위해 마주쳐야 하는 의류 점포 앞에서 나는 책보다 옷에 비중을 두며 사는 삶은 참 편하고 가벼우리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친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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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은 해를 중심으로 열달 동안은 해의 동쪽으로 갔다가 다음 열달 동안은 서쪽으로 간다.
금성이 해보다 더 동쪽에 있으면 새벽에 해보다 늦게 떠오르기 때문에 아침에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날 저녁 금성은 해보다 나중에 지게 되어 저녁놀 속에서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즉 금성이 해보다 더 동쪽에 있으면 저녁별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금성이 해보다 더 서쪽에 있으면 해보다 먼저 떠 아침에 보이는 것이다.

즉 금성은 열달 동안은 저녁에 보였다가 다음 열달 동안은 아침에 보인다.˝(천문학자 박석재 박사의 소설 ‘개천기‘ 122 페이지)

참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원전 1733년 7월 일어난 오성취루(서쪽 하늘에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화성, 수성, 토성, 목성, 금성의 순서로 다섯 행성이 늘어선 것)를 기록한 ‘환단고기‘를 근거로 고조선이란 나라의 존재가 증명되었다는 박석재 박사의 말에는 침묵하던 사람들이 일반인들이 고조선의 존재를 주장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말한다는 점입니다.

고조선은 천문현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조직과 문화를 소유했었다고 주장하는 박석재 박사에 의하면 설령 ‘환단고기‘가 다른 기록을 베꼈다한들 고조선이 건재했었다는 사실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5성취루 기록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박석재 박사에 의하면 ‘환단고기‘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 존재를 무조건 무시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볼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생각한 것은 염명순 시인의 다음의 구절입니다.

˝만약 당신이 카페 아르뷔스뜨에서 나를 만나자고 한다면 내 눈앞이 온통 인동덩굴이라 나는 당신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를 열달 동안은 저녁에만 볼 수 있고 다음 열달 동안은 아침에만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해보다 더 동쪽에 있기에 해보다 늦게 뜨지만 그날 저녁에는 해보다 나중에 지는 금성을 보며 김수영 시인의 ‘풀‘을 생각해 보게도 됩니다.. 바람보다 빨리 눕고 먼저 일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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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마지막 무애도인(無碍道人)“ 무산(霧山) 조오현 스님의 입적(入寂: 526) 기사를 읽는다. 세수(歲首) 87, 승랍(僧臘) 60세의 시조 시인이신 스님의 입적을 한 일간지에서는 시의 세계로 홀연히 떠난 것으로 표현했다. 실재에 부합할뿐 아니라 멋지기까지 한 표현이다. 일지(一指) 스님이 성철(性徹) 스님의 입적을 불생불멸의 풍광 속으로 고요히 걸어 들어가신 것으로 표현한 것 만큼 의미 있어 보인다.

 

스님에 의해 처음으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목격전수(目擊傳授)란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 스님의 공이 컸다. 목격전수는 입 열어 말하지 않고 눈끼리 마주칠 때 전할 것을 전해 준다는 의미이다. 눈끼리 마주친다는 의미의 독일어 블릭 움 블릭(Blick um Blick)이 생각나지만 함의(含意)도 배경도 다를 것이다.

 

2007년 제19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에 즈음해 스님은 불가의 목격전수(目擊傳授)’라는 말처럼 나는 여러분을, 여러분은 나를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인사를 하자는 인사를 했다. 내게 가장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표현은 마지막 무애도인이란 말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말로 인해 탐욕과 권력에 물든 파계(破戒) 권승(權僧)들을 비판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거리낌 없다는 표현은 집착과 욕망의 폭력성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숱한 문제승들을 부끄럽게 하는 효과를 발한다 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표절, 성폭행, 도박, 학력 위조 등 세속의 기준으로도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회심(回心)하겠는가, 이다.

 

이도흠 교수에 의하면 이런 파계 권승들로 인해 300만의 불자가 절을 떠났다. 나도 불자였다면 당연히 그 대열에 들었을 것이다. 생황, 배소, , 필률, 비파, 요고, , 공후, 방향 등의 악기가 내는 화음(和音)이 그만 화음(花陰)이 되는 시간...꽃그늘 아래로 너울거리며 내려오는 모든 알 수 없는 음계를 다 들이마시며 어느새 누워 있다는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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