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正租) 교양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 해 1화성(華城),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란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의 저자인 김준혁 교수가 한신대 정조(正租) 교양학과 교수이다.

 

한신대에 언제부터 이 과가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단 김 교수가 2014년부터 재직했다니 정조의 호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 연구로 박사가 된 김 교수와 더불어 과가 생겼으리라 생각된다.

 

김준혁 교수가 진행하는 동작(銅雀) 도서관에서의 정조의 능행길을 따라 가다란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829일부터 928일까지 6회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한 차례(921)의 수원 화성 및 융건릉(隆健陵) 탐방 순서도 포함되어 있다.

 

동기들 톡방에 프로그램 소식을 알렸더니 무려 세 사람이 신청했다. 정조의 인기를 실감했다. 이틀만에 신청(30)이 마감(에버러닝)된 것도 그렇다.

 

비교의 대상이 될지 모르겠으나 대학원에 진학하면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사를 전공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 혼자 정조를 연구해보겠다고 해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김준혁 교수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당시 일반에서 정조는 어떤 존재로 여겨졌을까? 정조와 그 이후 시기를 총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페미니즘 영화인문학 산책!(페미니즘과 영화와 인문학과 산책이라는 선호하는 네 개념이 다 들어 있는)..가보고 싶은데 슬프게도 멀고 먼 전남 광주에서 열리네요..(8월 28일 - 9월 12일) ㅜㅜ 이화경 작가가 설명과 함께 감상하게 되는 영화 ‘실비아‘의 주인공인 시인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 - 1963)의 말을 음미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요..

‘나에게 언제나 착하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지 마시길..나에게도 냉정하고 생각없고(부주의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으니 말이예요‘라는..

일찍 죽은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 하며 격렬한 죽음 충동에 시달리는 한편 죽음 너머에서까지 자신을 지배, 조종하는 폭력적 아버지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한(김승희 지음 ‘남자들은 모른다‘ 38 페이지) 시인 실비아 플라스.

이화경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에서 ˝여자로 태어난 게 나의 끔찍스러운 비극˝이라는 실비아의 통곡을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하필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을 세 가지 한이라 말한 허난설헌과 함께 논합니다.

마포의 한국영상자료원에 가서 ‘실비아‘를 감상하고 와야겠습니다.

˝과대망상적인 욕망과 수동적이고 쓸모 없는 존재라는 느낌 사이에서 분열˝(‘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91 페이지)된 실비아를 보아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군 연천에 고종 황제의 영손(令孫) 이근이 종묘 제례를 관장했던 종로 고택 염근당(念芹堂)을 그대로 옮긴 한옥 호텔 조선 왕가가 있다.

염근당은 혼탁한 물 속에서 추운 겨울을 이기고 자라는 미나리의 기상을 생각하는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재인폭포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이 곳은 해설사 되기 전 일 때문에 고문리에 가며 가끔 보던 곳이다.

물론 당시에는 의미를 몰랐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행 글쓰기 과정(6회)에서 여행기 작성 과제를 위해 둘러볼 곳을 찾다가 이 곳도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정릉(貞陵)과 그 능의 원찰(願刹)인 봉국사로 목적지를 정했다. 참고한 책은 ‘점심 시간엔 산사에 간다‘란 책이다.

9월 21일 해설사 동기 세 사람과 함께 수원 화성과 융건릉을 탐사하기로 일정이 잡힌 나는 아쉬움을 느낀다.

여행 글쓰기 일정이 수원 화성 및 융건릉 탐사 이후에 잡혔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다.

네 차례의 강의(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 정조대 문예부흥과 개혁정치/다산 정약용, 화성을 설계하다/ 정조의 화성행차와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함께 잡힌 이 탐사는 정조에 대한 입체적 시각을 갖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갈 곳도 많고 들을 강의(장석원 교수의 ‘김수영 시의 난해와 감동‘을 비롯)도 많고 읽을 책도 많고 강의와 해설 준비도 해야 하고 바쁘다. 감사하고 다행스런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wine 포스팅을 보고 ‘in vino veritas.. 저는 vino(wine) 대신 vinegar입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요즘 마시는 와송 식초는 발효주 같다. 술 분위기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이 말을 한 것은 식초를 만들려면 우선 술부터 만들어야 하기에 술과 식초는 하나로 이어진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알콜 도수 12도 이하의 술을 오래 보관하면 식초가 된다.: 구관모 지음 ‘내 몸을 살리는 천연 식초’ 40 페이지)

술 속에 진리가 있다고 알고 있었던 저 말을 내가 처음 안 것은 작고한 경제학자 정운영 선생의 책에서였다.

새삼 그 분이 생각난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산책’, ‘노동가치이론 연구’ 등 가지고 있었던 책들도 생각난다.

지금 그 책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관심을 두는 분야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는 바이지만 술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보다 술을 마시면(취하면) 진담을 발설하게 된다는 의미가 더 타당할 것이라 보인다.

이는 전이(轉移)에 관한 이야기에도 적용할 말이 아닌가 싶다.

즉 전이라는 착각이 진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기보다 사실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바슐라르는 말을 운반하는 매개체인 술을 불의 물(뜨거운 물)이라 불렀다.

에덴 동산에 둘러쳐진 불 모양의 칼(라하트 하헤렙) 즉 화염검(火焰劍)을 칼 모양의 불이라 불렀던 습으로 보면 술을 물의 불이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고종석은 ‘기자들’이란 소설에서 “..그 공유된 과거가 우리를 술자리로, (그리고 바슐라르가 주장하는 호프만 콤플렉스에 의해) 수다로 이끌었다...”는 말을 했다.(고종석 작가가 ‘기자들’에서 묘사한 김현 선생 생각도 난다.)

호프만 콤플렉스는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불의 물이란 말은 절묘하다. 불과 물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불은 집중하고 파고들고 무엇보다 수직으로 자신을 태우며 상승하고 물은 흐르고 고이며 비추기 때문이다.

“..독한 술잔에 기울은/ 도시의 지붕 위에/ 바람에 너펄거리는 철조망/ 철조망 같은 상처/ 그 자국마다에/ 어느 보초의 칼 끝 같은/ 노여움이 내린다..”(박이문 시 ‘상처’ 중에서)란 구절을 음미한다.

모두 술처럼 술술 풀리는 날들을 맞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세계 예술 마을로 떠나다‘ 저자를 만나 물었다. 어떻게 1년 반의 시간을 여행을 할 수 있었냐고.

저자는 영국 유학을 위해 돈을 모았는데 연 4000만원의 학비를 보고 자신이 과연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인지 회의했고 그 결과 모아둔 돈으로 여행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머지 않은 미래에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저자에게 가시면 꽤 허전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예술 마을은 어떤 곳들일까? 오래 전 한 도예가의 이야기를 담은 강석경 작가의 장편 소설 ‘가까운 골짜기‘를 읽으며 막연히 예술에 대한 동경을 키웠었다.

예술, 하면 장인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산속 깊은 곳에서 죽염을 굽는 사람들에게서도 장인정신을 느낀다. 지나친 것일까?

베르그손은 ˝그림이건 조각이건 시이건 음악이건 예술은 실질적으로 유용한 기호, 관습적으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 일반성 즉 현실 그 자체와 우리가 대면할 수 있도록 현실을 가리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했다.(최영주 엮음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2‘ 27 페이지)

백상현 정신분석가는 예술가들을 유령을 소환하는 무당으로 정의하며 그들이 화폭 위로 불러낸 유령들은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의 매혹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상자에게 일깨우며 기존의 세계 질서 속에 안주하고자 하는 보수적 욕망을 포기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라캉 미술관의 유령들‘ 21 페이지)

여기서 말하는 유령이란 ˝존재들의 있음의 질서 속에서는 출현할 수 없었던 무언가가 그와 같은 존재 질서의 일관된 흐름이 멈추는 지점에서 출현하게 되는 현상˝이다.(같은 책 13 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베르그손이나 백상현 정신분석가가 예로 든 ‘새롭고 낯선 세계가 드러난 미술 작품‘을 내 힘으로 찾는 것일 테다.

박혜영 교수는 존 버거가 자연과 예술이라는 두 렌즈를 갈고 닦아 명징하게 보고자 한 것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날실과 씨실로 짜여진 현실이라는 말을 한다.(‘느낌의 0도‘ 153 페이지; 이 렌즈의 비유는 존 버거가 존경한 스피노자 즉 안경 렌즈 가는 일로 생계를 꾸린 스피노자의 일화에서 얻어온 것이다.)

나도 렌즈를 갈고 닦아야 하겠다. 시라는 렌즈, 정신분석이라는 렌즈, 철학이라는 렌즈. 도나 노비스 파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