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화여대 기독교사회윤리학 교수 백소영 님의 강의를 들었다. 장소는 함석헌 기념관이었고 주제는 '함석헌의 무교회 정신'이었다. 기획자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함석헌보다 강연자에 더 관심이 가 참석했다. 원래 일정으로는 23일에 치러야 하는 강의였으나 교수님의 착오로 한 주가 미뤄진 것이었다.

 

'함석헌보다 강연자'란 말을 했는데 그것은 최근 페미니즘 책을 두 권 낸 백 교수님의 행보와도 관련 있는 바다. 두 권의 페미니즘 책이란 공저인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20186월 출간)과 단독 저서인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20183월 출간)이다.

 

이화여대 87 학번인 백 교수님이 지난 주 제자의 주례를 섰다는 이야기가 강연 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사연은 분명 페미니즘적 맥락에서 숙고할 부분이다. 사연인즉 졸업생이 주례를 부탁해 수락하면 졸업생(신부)의 부모가 화를 내며 반대하는 경우가 있곤 했다는 것이다.(화 낼 일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영광으로 여길 일이 아닌지?)

 

내가 읽은 백 교수님 책인 '세상을 욕망하는 경건한 신자들'을 근거로 판단하건대 교수님은 세속과 기독교, 그리고 신앙과 지성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합리적인 분이다. 제자 즉 졸업생의 부모가 이런 사실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이겠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식의 주례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이런 부분은 교수님의 감성과 관련한 면모를 알 수 있는 부분인데 같은 맥락에서 함석헌과 김교신을 함께 고려해 도출해낸 기독교의 초월적 역사의식이란 논문을 쓴 백 교수님은 살아 생전 함석헌 선생을 직접 뵌 분들로부터 "그건 함석헌 선생님의 사상이 아니거든요" 같은 반박을 접하며 생전 예수를 뵌 적이 없는 사도 바울이 예수와 실제 대면하고 함께 했던 베드로 등의 제자들 앞에서 느꼈던 소외감 같은 것을 경험했었다고 한다.

 

생전 결정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함석헌 선생님에 대해 강연한 백 교수님은 의의로 주제의 무거움을 무색하게 할 만큼 밝고 소탈하셨다. 논란이란 무교회주의 플러스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대속 신앙) 부정으로 인해 빚어졌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속론을 믿는 무교회주의자들로부터 함석헌 선생님이 끝까지 무교회주의를 고수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들었던 상황에서 백 교수님은 처음 뵌 고려대 교수 유희세(1919- 2018) 선생님으로부터 귀한 자료들을 얻었었다는 말을 했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백 교수님의 책을 구입해 가져가 사인을 받았을 텐데 아쉽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백 교수님의 다음 강연에 참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내가 정리한 내용들이 오류가 아니기를..)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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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심리학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노무라 소이치로의 생각 그물에 걸린 희망 건져올리기란 책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심리학 책들을 보며 아, 내 이야기구나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생각 그물이란 일정한 틀에 박혀 생각이 돌고 도는 현상을 말한다.

 

생각 그물에 걸렸다고 꼭 정신질환에 걸린 것은 아니며 정신질환자가 반드시 생각 그물에 걸렸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책이 관심을 촉발한다. 칸트 인식론 생각이 난다.

 

칸트는 우리의 감성이 감각적으로 소재의 상황을 인식한 것을 오성이 분석, 판단한 뒤 이론이성이 양쪽을 정리해 인식으로 연결시킨다고 보았다.

 

이론이성이 그 양쪽을 정리해 인식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실패하면 체계 없이 늘 생각을 다시 하고 또 다시 하지 않을지? 의식과 다르게 무의식 차원에서 고통을 지향하거나 고통에 집착하는 경우도 분명 있으리라. 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과()를 가야 하는가, 란 말이 아니라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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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경제학자 피에로 스라파는 생산 체계의 외부에서 부과되는 요인이 경제 법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해명하였다.“ 읽은 지 25년이 지난 이 글은 경제학자의 글이 아니라 국문학자의 글이다.

 

이 글에는 이런 부분만이 아니라 이윤율, 잉여가치 등의 경제용어는 물론 가변자본, 불변자본 등과 관계된 C + V + mV - (C + V)(1+r) 같은 수식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상상력과 원근법에서 읽은 도식과 욕망이란 글인데 저자 김인환 교수의 또 다른 책인 글쓰기의 방법’(2005년 출간)을 지난 달 알라딘 중고서점 건대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도 전작의 문제의식 및 수식 활용과 차원이 같은 글이 있다. 주역(周易) 책을 쓰기도 한 김 교수의 최근 작은 과학과 문학 : 한국 대학 복구론이다.(2018626일 출간) 나는 저자로부터 주역 관련 지식을 얻으려는 마음 이상으로 경제에 대한 수학적 기술(記述)로부터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최근 작에서 저자는 문학과 과학의 쉽게 넘어설 수 없는 경계를 전제한 뒤 언어와 수학은 실재를 기술하는 연모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함으로써 지금껏 보여온 자신의 인식을 확인시켜주었다. 나에게는 문학평론가의 글 가운데 김인환 교수의 글이 가장 스타일적으로 맞는다.

 

플라톤과 조지 오웰을 대비시킨 글은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조금 밖에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경험하지 않은 많은 것을 알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였고, 조지 오웰은 많은 것을 경험하는 인간이 왜 그토록 무지한가라고 질문하였다.“(‘글쓰기의 방법’ 51 페이지)

 

저자는 책의 내용은 유한하고 현실의 계기는 무한하기 때문에 책은 현실이 아니며 현실이 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책벌레가 되지 말라는 말 즉 책만 읽지 말고 자연을 관찰하고 사회를 경험하라는 말을, 그러나 경험이 독서보다 반드시 삶에 더 유효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데에 독서의 신비가 있다는 말로 논파(論破?)한다.(같은 책 115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사랑이나 우정에는 지식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엄연히 존재하는 지식의 영역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온당한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같은 책 117, 118 페이지)

 

글이 마치 얼마 전 유은정의 심리학 책인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를 샀고 선안남의 심리학 책인 진짜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를 사려는 나를 설명하려는 것 같이 되었지만 그것은 아니고 이 책들은 30대 남녀 또는 여성들에 초점이 맞추어진 책이다.

 

말하자면 두 책은 타자에 대한 간접 대면(對面)의 책들이다.(경험이란 말 대신 대면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의도적이다. 젊은 그들을 경험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겠다는 의미이다.)

 

연애를 잘한다는 것은 인기 많은 남자를 많이 만나거나 끊임없이 연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유은정의 조언(‘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썸이 주는 심리적 이득‘: 203 페이지)이 눈에 띈다.

 

'썸이 주는 심리적 이득즉 썸타는 것이 주는 이득을 말하는 이 글에서 저자는 불같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자기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란 귀띔을 한다. ”책들 사이의 맥락을 고려할 것을 주문하는 김인환 교수의 어법을 빌자면 심리학 책을 읽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와 불가피하게 이어져 무관할 수 없는 타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식(儀式)을 대표하는 방편이다. , 바쁜데 불요불급한 책을 읽으려는 나의 나쁜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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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을 걷는다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울역사산책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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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西村)’을 걷는다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통일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북한 전문가가 쓴 이례적인 책, 역사적 배경에 충실한 책이다. 책은 전체 5장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1장 느리게 걸어보자 서촌, 2장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서촌, 3장 수많은 예술가들의 둥지 서촌, 4장 도심의 살아 있는 박물관 서촌, 5장 우리가 몰랐던 서촌 등이다.

 

저자에 의하면 서촌이란 엄밀히 말해 북촌의 일부이다. 그런데 책에서 말하는 곳이 서촌이라 불리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 종로구 가회동 일대가 북촌 한옥마을로 알려지면서 옥인동 일대를 북촌이라 이름하기 어색한 까닭이었다.

 

현재 책이 말하는 곳은 경복궁 서쪽 마을이란 의미로 서촌이라 불리고 있다. 일제때 청계천이 복개(覆蓋)된 것은 조선을 대륙 침탈의 병참기지로 삼으려는 총독부의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물론 재정문제로 일부만 진행되었을 뿐이다.

 

세종문화회관편에서 우리는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을 이용해 자연에서 독립한 것으로 보이지만 도시설계자들은 대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바 일반인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알게 된다.

 

한편 저자가 주시경의 집터여서 용비어천가 빌딩으로 불리는 곳을 논한 자리에서 우리는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시행한 문헌이 한 외국인이 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책은 영국인 목사 존 로스가 쓴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이다.

 

저자는 조선이 전조후시(前朝後市)를 완전히 따르지 않고 시장을 궁궐 뒤가 아닌 종로와 남대문로에 세웠다는 점, 성곽을 네모나 원으로 짓지 않고 산을 기준으로 분지에 성을 지었다는 이유를 들어 조선이 같은 유교문화권이었지만 자기 환경과 조건에 맞는 자주적이고 독창적인 성곽 축조의 관념을 보유했다고 말한다.(62 페이지)

 

저자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영추문(迎秋門)이 경복궁의 대문들 중 유일하게 콘크리트(로 복원된) 문이라는 사실도 접하게 된다.(82 페이지) 이 역시 일본의 조선 궁궐 훼손 역사와 맞닿아 있다.

 

이런 슬픈 역사는 영추문 앞 보안여관에도 깃들어 있다. 서정주 시인이 투숙한 뒤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등과 함께 시인부락을 창간한 보안여관 이야기인데 일본에서 건너온 부락(部落) 즉 부라쿠(ぶらく)란 말은 신분적사회적으로 심한 차별대우를 받아 온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동네의 고유 명칭을 부락으로 명명한 것 역시 영추문 사건처럼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에 의한 것이다.(85 페이지)

 

오감도의 시인 김해경이 이상(李箱)이란 필명을 쓰게 된 사연이 역사적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 서촌을 걷는다의 특징이기도 하다. 화가 구본웅이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들어간 김해경에게 사생상(寫生箱: 화구畵具를 담는 상자)을 선물했다. 가난했던 김해경은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필명에 상자를 의미하는 상()을 넣겠다고 했다. 더 나아가 앞 글자는 흔한 성씨이되 사생상이 나무이니 나무 목()자가 들어간 성씨를 사용하기로 했다.

 

연애로 이름을 알린 이상은 후에 구본웅의 이모 변동림을 세 번째 여자로 맞는다. 변동림은 이름을 김향안으로 바꾼 뒤 화가 수화(樹話) 김환기와 결혼했다. 그녀는 김환기 사후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세웠다. 변동림의 이복 언니가 변동숙이고 변동숙의 호적상 증손녀가 발레리나 강수진이다.(101 페이지) 구본웅은 우리 나라 최초의 야수파 화가였다.

 

이상의 집과 2 3분 거리에 시인 노천명의 집이 있다. 노천명의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수묵화의 거장 청전 이상범의 집이 있고 바로 옆에 그의 화실이 있다. 이상범의 집 처마 아래로 누하동천(樓下洞天)이란 친필 편액이 보인다. 동천이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또는 신선이 사는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115 페이지)

 

서촌의 또 다른 명소인 대오서점 이야기도 흥미롭다. 대오서점은 조대식, 권오남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이름이다. 자식들을 교육시킨 서점인 대오서점을 지금은 다섯 째 딸이 북카페로 리모델링 해 계승하고 있다.

 

서촌의 맛집 골목인 통인시장은 일본인의 생활 편의를 위해 만든 시장이다. 통인시장의 일부가 옥류동천 상류의 물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본래 통인시장은 일본이 19416월 효자동 일대에 살고 있던 자국인들을 위해 개설한 제2공설시장이다.

 

서촌에서 가장 많이 방문객이 몰리는 곳은 옥인동이다. 옥류동과 인왕동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옥인동 면적의 반 이상을 소유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 아버지 윤덕영이다. 그의 저택인 벽수산장은 16천평의 대지를 차지했었다.

 

박노수 미술관은 윤덕영이 시집간 딸을 위해 지어준 집이기도 하다. 벽수산장 본채와 정원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박노수 미술관이 있다.(132 페이지) 자수궁(慈壽宮)은 문종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문종이 선왕 세종의 후궁들을 거처할 수 있게 마련한 공간이다. 후에 성종의 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였던 윤씨가 빈()으로 강등된 후 거처했고 중종 비 단경왕후도 궁에서 쫓겨난 뒤 생활했다.

 

재혼할 수 없었던 왕의 후궁들은 비구니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 자수궁은 5천여명의 여승을 수용한 국내 최대 승방이었다.(164 페이지) 자수궁 터인 군인아파트 정문을 마주보며 서 있는 세종아파트는 사회주의자 이명건의 집이 있던 곳이다.

 

이명건은 친구 김원봉, 김두전과 함께 1948년 이승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다. 이명건은 여성(如星), 김원봉은 약산(若山), 김두전은 약수(若水)란 호를 가졌다. 김원봉의 고모부가 지어주었다. 별과 같이, 산과 같이, 물과 같이란 의미이다. 민족해방 운동을 위해 중국에 가는 그들에게 이국땅에서도 조국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지어준 것이다.(167 페이지) 이명건의 동생이 화가 이쾌대이다.

 

아픈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곳은 옥인동 보안수사대이다. 조선 최악의 매국노 이완용과 윤덕영의 가옥 바로 옆이다.(195, 196 페이지) 마지막 5장은 우리가 몰랐던 서촌이다. 전체 다섯 장(), 44편의 글 가운데 40번째 글이 왕을 낳은 후궁들의 사당 육상궁(毓祥宮)이다.

 

()은 기를 육인데 같은 자로 육()이 있다. 김포 장릉(章陵; 인조의 부모를 모신 능)에 가면 인종의 어머니가 묻혔던 육경원(毓慶園)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육경원과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의 흥경원(興慶園)이 합쳐져 장릉이 된 것이다.

 

마지막 44번째 글은 혈흔처럼 남은 인조반정의 역사 창의문(彰義門)’이다. 청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깊고 수석이 밝게 빛나는 모습이 개성의 자하동을 연상하게 한다고 해서 자하문(紫霞門)이라 불리기도 하는 창의문은 태종 13년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 일대는 경복궁의 두 팔에 해당하므로 길을 열지 말고 지맥(地脈)을 온전하게 하소서라는 상소를 함에 따라 늘 폐쇄되어 있었는데 어명에 의하지 않고 창의문을 출입한 경우가 단 한 번 있었으니 바로 인조반정을 말하는 것이다.

 

서인이 주도하고 남인이 동조해 이루어진 인조반정으로 명청 중립외교를 펼치던 광해군과 대북파가 제거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 세력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역사의 계승과 세월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게 된다. 이렇듯 서촌 순례를 통해 우리가 생각할 것은 역사를 배우는 현재적 의미이리라. 역작(力作)임을 실감하며 책을 덮는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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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으로부터 지금껏 자신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만 해왔기에 그 벌로 너희 일곱 형제 모두 34세 이전에 죽을 것이란 말을 듣고 자란 키에르케고르는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정신불안증으로 우울한 인간이 되었다.

 

어떤 직업도 없이 부자 아버지에게 빌붙어 산 키에르케고르는 자기 기분대로 살며 열 살 연하의 레기네 올슨에 구애해 약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녀를 위해 그녀의 행복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치워주어야겠다. 근데 그게 대체 뭐지? 어머 그게 바로 나? 그런가? 나란 말인가? 그래 나다....”란 생각 끝에 결국 혼자서 멋대로 파혼을 단행한다.(가게야마 가츠히데 지음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 258 페이지)

 

키에르케고르, 참 어이없는 인간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레기네 올슨에게 마음이 간다. 키에르케고르의 이상(異常)보다 더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레기네 올슨의 상실(喪失), 분노 등이리라.

 

최근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를 낸 심리상담사 선안남 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만나서 눈 보며 대화를이란 기사이다.(20171122)

 

이 기사 중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상대방에 대한 좌절은 나의 환상에서 기인한다. 나의 어떤 결핍이 상대에게 환상을 품게 만들었는지 돌아보고 이별 후 충분한 애도를 통해 단단한 마음을 만들자.”

 

공감한다. 그런데 환상에 기반을 두지 않는 만남도 있는가?란 궁금증이 생긴다. 양자(兩者)의 환상이 엇비슷하면 성공 이별이 아닌 것 - 에 이르는가? 이래 저래 심리학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은,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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