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 나의 복잡한 심리를 이해하는 방어기제 수업
조지프 버고 지음, 이영아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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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부정(否定), 전치(轉置), 반동형성, 분리, 투사(投射) 등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주요 방어기제들이다. 방어기제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이나 감정 등을 의식에서 몰아낼 때 사용하는 방식들을 의미한다.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는 여러 방어기제들의 작용 원리를 설명함은 물론 우리가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상세하게 풀어쓴 책이다.

 

심리치료사이자 정신분석자로 30년 이상 활동해오고 있는 저자가 말했듯 모든 방어기제를 없앨 필요도 없고 무의식 속의 모든 것과 꼭 대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어기제가 너무 단단하게 고착되어 인간관계를 심하게 방해할 경우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은 마주하거나 인정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심리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심리적 방어기제는 생의 고통을 견디는 데 유용하지만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고통이 될 때가 있다.

 

이때 심리학 책을 읽거나 상담을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유능한 상담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이지만 40여년 전 우울증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다.(274 페이지) 물론 저자는 여전히 매일 똑같은 감정과 씨름한다고 자신을 소개한다.(260 페이지) 또한 특정 경험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꽤 강했고 지금도 그럴 때가 있다고 말한다.(135 페이지)

 

저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스스로 개발한 여러 기법을 규칙적으로 연습하기에 힘든 도전을 감당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님을 강조한다. 저자는 심리치료사로서 새로운 내담자를 만날 때마다 제일 처음 마주치는 어려움 중 하나가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일이라 말한다.(48 페이지)

 

저자는 감정은 일시적인 경험이어서 순식간에 사라지며 늘 하나의 감정만 느끼는 사람은 없기에 행복의 성취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49 페이지) 같은 차원에서 저자는 어떤 감정에 휩쓸리면 그것이 영원할 거라 느끼지만 그것 역시 지나간다고 말한다.(255 페이지)

 

감정은 세분되거나 차별화된다. 가령 시기와 질투는 정상적인 감정이지만 거기에 수치심이 가세하면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저자는 기본적인 욕구에 지나치게 자립적인 것도 의존적인 것도 문제임을 암시한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상대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자립적인 것도 문제이다.

 

방어기제는 다양하게 범주화된다. 문제는 누구든 한 범주에 말끔하게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진단범주에 자신을 끼워맞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성장 배경과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방어기제는 본질적으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68 페이지)

 

억압은 방어기제의 대표로 성적인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억압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붓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방어기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할 법하다. 나르시시즘, 경멸, 남 탓하기도 심리적 방어기제들이다.

 

화풀이는 전치(轉置)라 불린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말 못하고 애꿎은 약자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다. 저자는 양가감정이란 말을 색다르게 설명한다. 한 대상에게 미움과 사랑처럼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자는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 즉 우리의 욕구가 여러 방향으로 갈린다는 뜻이라 설명하는 것이다.(108 페이지)

 

저자를 찾은 내담자들 중에는 늘 상대를 이상화해서 그에게 있지도 않은 장점을 부여하고 그의 본색을 모른 체하다가 현실을 깨닫고 환멸에 빠져 관계를 끊고 우울증에 빠지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 사람은 실제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미래의 일을 이상화하게 된다. 어려움은 외부 문제이기도 하고 내면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135 페이지)

 

합리화(合理化) 즉 변명이 특정 사실에 대해 작동한다면 주지화(主知化)는 모든 불쾌한 감정에 대해 작동한다. 책에 소개된 모든 강정들 중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것이 수치심이다. 저자는 우리가 방어기제를 인식한다 해도 그것이 그냥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이치는 금방 깨우칠 수 있어도 습관은 쉽게 고치기 어렵다는 의미의 '이수돈오 사비돈제: 理雖頓悟 事非頓除'란 말이 생각난다.)

 

습관이 뇌 속 신경연결망과 경로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방어기제는 유용하지만 고착화되면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에 해결이 필요하다. 저자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평소 가동 중인 방어기제를 관찰하고 가능하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부단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230 페이지)

 

저자가 권하는 또 하나의 기술은 불교의 마음챙김, 호흡 집중, 명상 등이다. 알아차림으로써 문제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 더 현명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힘겨운 감정에 더 건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변화를 위해 용기를 내야겠지만 자신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지 말고 한계 또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239 페이지) 저자는 의식하고 나면 방어기제가 예전만큼 강하게 우리를 휘두르지 못한다고 말한다.(263 페이지) 예컨대 아끼는 사람에게 화가 나면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분노를 있는 그대로 다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26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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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부작용, 비용 등보다 오래 전 읽던 일본인 면역학자의 책을 정리..

 

* 가슴 안의 말랑말랑하고 뽀얀 색의 장기인 흉선(胸腺; 면역사관학교라 불리는)은 사람의 경우 10대 전반에 크기가 최대(무게 35그램)이고 성적으로 성숙해진 뒤에는 급속히 작아진다.

 

그리스 사람들은 어린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흉선의 존재를 일찍부터 알았다. 먹을 때 백리향(thyme)과 같은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해서 thymus라 불렀다. 흉선을 떼어낸 동물은 감염증에 잘 걸리고 이종 동물의 백혈구를 주입해도 항체가 만들어지지 않고 일찍 죽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듯 흉선은 면역반응의 필수 장기다. T세포는 자기(自己)와 비자기(非自己)를 구분, 비자기를 강력하게 배제하는 반응의 주역이다. 비자기(병균, 이물질 등)를 공격하는 것은 정상, 자기(아군)를 공격하는 것은 자가면역질환, 사소한 비자기에 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앨러지(알레르기), 자기가 아닌 것을 공격하지 않는 것을 비자기 관용이라 한다.

 

흥미로운 것은 태아의 경우이다. 아버지에게서 절반의 염색체를 받은 태아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반() 이물질이지만 어머니의 면역계로부터 거부당하지 않는다. 태반의 일부에서 HLA(인체백혈구 항원) 분자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타다 토미오의 '면역의 의미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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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케이스 - 국가상징에 대한 한 연구
이해영 지음 / 삼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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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주권의 구현체인 국가(國家)와의 정서적 결속이자 충성의 서약인 국가(國歌)는 정치적이고 시민 종교적인 면을 강조할 수밖에 없으며 공동체의 합의된 가치인 애국을 담아야 한다.‘. 이는 한신대 이해영 교수가 안익태 케이스에서 제시한 핵심 주장이다.

 

현 안익태의 애국가에 국가(國歌)로서의 자격을 묻는 것이다. 그간 안익태는 애국가의 작곡자이자 한국을 빛낸 세계적인 음악가로 알려졌다. 안익태가 애국가를 만든 건 1935년경이다. 그 후 2년여 만인 1937년 안익태는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향했다.

 

1938년 안익태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애국가가 포함된 코리아 판타지를 초연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조선의 새 애국가의 작곡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해영 교수에 의하면 당시 안익태의 애국가는 같은 가사에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을 빌려온 애국가 등 여러 애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았을 뿐이다.

 

해방 후 임시정부 인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열린 행사에서 부른 애국가도 안익태 작곡이 아닌 올드 랭 사인곡조의 애국가였다. ’애국가가 문제인 것은 단지 친일 부역자가 지은 곡이어서가 아니라 만주국 건국 10주년(1942) 경축 음악회를 위해 만주에서 유행하는 선율들을 활용해 만든 만주국 환상곡의 피날레 부분이라는 데에 있다.

 

잘 알고 있듯 만주국은 일본제국이 만주 사변 이후 세운 괴뢰 국가이다. 안익태 즉 에키타이 안은 1944년 파리 해방을 앞두고 파시스트 독재 국가 스페인으로 도주하며 친일 부역의 산물인 만주국 환상곡악보를 폐기한 데 이어 현재 악보와 음원이 전해지지 않는 1938년 더블린 판 코리아 판타지를 개작해 1944년 판 한국 환상곡으로 만들었다.

 

독일과 일본의 패망이 눈앞에 다가오자 꾀한 변신의 일환이다. 자작 애국가매국의 도구로 재활용하다 애국으로 포장하면서 1938년부터 1944년에 이르는 친일 행적을 숨긴 것이다.

 

1965년 스페인에서 세상을 떠난 안익태의 시신은 현재 국립 현충원에 묻혀 있다. 해마다 그의 기일이 되면 정계와 문화계 인사 등이 주도하는 추모제가 열린다. 물론 그에게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올랐다.

 

안익태는 더블린에서의 코리아 판타지초연 이후 에키타이 안(Ekitai Ah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에하라 고이치(江原綱一)의 베를린 저택에 2년 반 가까이 머물렀다. 이해영 교수는 미 육군유럽사령부 정보국의 문건인 ‘2차대전 기간 전시 독일의 외교 및 군사 정보 활동 보고서를 참고, 에하라 고이치가 주 베를린 만주국 외교관으로 위장한 일본 정보기관 총책이었으며 다양한 분야에 있는 300여 명의 정보원을 관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에키타이 안을 일본 정보기관의 특수 공작원이나 정보원이었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이해영 교수는 안익태가 1959년 전통 아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고 주장한 강천성악’(降天聲樂)이 일본 아악의 선율을 서양 악기로 편곡해 전시 유럽에서 선전용으로 연주한 에텐라쿠의 개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안익태가 친일부역행위를 했다 해도 애국가를 만들 당시엔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해영 교수는 국가(國歌)로서의 자격을 갖기 위해선 그 곡을 만든 이의 전 생애를 판단해 국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흠결 없는 삶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양 출신의 안익태가 일본에 유학할 때 사용한 이름은 안에키타이(あんえきたい)이었고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할 때는 에키타이 안(Eak-tai Ahn)이었다.

 

일본 도쿄의 사립 세이소쿠(正則) 중학교를 거쳐 도쿄 구니다치(國立) 고등음악학원(현재 구니다치 음악대학)에 입학해 첼로를 전공한 안익태가 미국에서 유학한 뒤 유럽으로 건너간 것은 1937년이었다.

 

19382월 더블린방송교향악단 객원으로 후에 '한국환상곡'으로 알려진 자작곡 '교향적 환상곡 조선의 초연을 지휘했다. 같은 해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에텐라쿠(越天樂)를 발표했다. 1959년 이 작품은 '강천성악(降天聲樂)'으로 개작되었다.

 

19437월 안익태는 나치 정부의 제국음악원 정식 회원(회원번호 RKK A 115.)이 되었다. 이해영 교수는 안익태가 나치 시절 괴벨스가 주도한 '음악가 조직인 제국음악원에 입회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교관으로 포장한 베를린 지역의 첩보 총책' 에하라(江原) 덕분이었다고 주장한다.

 

이후 프랑스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스페인으로 피신, 활동하던 그는 종전 뒤인 1946년 스페인 마요르카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고, 같은 해 7월 로리타 탈라베라와 결혼했다. 안익태는 19553'이승만 대통령 탄신 제80회 기념음악회' 지휘차 귀국했고 4월에는 제1호 문화포장을 받았다.

 

그는 5년 뒤 이승만의 '탄신 85회 음악회' 지휘를 위해 다시 귀국한 바 있다. 1962년에는 박정희를 예방,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혁명'을 경축하기 위한 대한민국 국제음악제 개최를 협의했다.

 

1930년 조국을 떠난 안익태는 25년 동안 고국을 찾지 않았고 굳이 일본 국적을 가질 일도 없었고 일제의 강압에 시달리며 일제에 협력할 필요도 없었지만 일제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었고 에하라(江原)의 지원을 받아 유럽 무대에서 지위를 굳혔다.

 

일본 제국주의에 이어 나치 파시즘에도 봉사한 것이다. 이해영 교수는 이제 '애국가'를 어찌할 것인가 묻는다. "'국가'는 한 나라의 상징"인데 "법으로 공인된 '국가'가 아님에도 그냥 관습적으로 불러왔던" 애국가를 어찌할 것인가란 물음을 던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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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7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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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기본 입자를 뜻하는 쿼크(quark)라는 용어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론의 주요 개념은 문학작품에서 기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쿼크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피네건의 경야(Finnegans Wake)에서 비롯된 용어라면 자연선택에 대한 대중의 그릇된 인식은 알프레드 테니슨의 장시 ’In Memoriam‘에서 비롯되었다. 테니슨은 이 장시에서 이빨과 발톱을 피로 물들인 자연이라는 표현을 썼고 그로부터 9년 후에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되었다.

 

영국의 생화학자인 닉 레인(Nick Lane)에 의하면 자연에 대한 테니슨의 황량한 시각은 훗날 자연선택에 대한 느낌을 형성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그 표현은 모든 생명의 관계를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의 생생한 싸움으로 단순화시켰고 다윈이 일반적인 생존경쟁을 더욱 선호한 것처럼 여겨지게 했고 개체와 종 사이의 협동과 한 개체 안의 유전자들의 협동의 중요성을 경시하게 했고 공생의 중요성을 무시하게 했다.(’생명의 도약‘ 239, 240 페이지)

 

하나의 잘못된 시초가 얼마나 고치기 어려운지를 우리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의 생성과 유통 과정을 통해 알게 된다. 존 캐서디는 최근 나온 시장의 배반에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에 의하면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한 것은 단 한번이고 그나마 얼버무리는 식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체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단 한번 얼버무리는 식으로 언급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이 수백년 동안 주류 경제학의 모토로 기능해왔다는 사실이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 ~ 1921)만물은 서로 돕는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잘못된 기원 또는 인식의 오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크로포트킨을 무정부주의자로만 간주하는 것은 일면적 인식에 불과하다. 귀족 출신 장군의 아들로 프랑스인 가정교사의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 사상을 지녔던 크로포트킨은 시베리아 극동 지역의 정치범 수용소를 목격한 뒤 갖게 된 혐오감을 혁명으로 승화시키려는 꿈을 꾸었다.

 

크로포트킨은 1888년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해 다윈의 불독이라 불렸던 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1825 ~ 1895)의 논문에 자극받아 만물은 서로 돕는다(Mutual Aid)'라는 불후의 책을 썼다. 크로포트킨은 자연은 이기적인 생명체들이 벌이는 냉혹한 투쟁의 장이라는 헉슬리에 맞서 인간은 원래 선하고 자비롭게 태어났지만 사회 또는 문명에 의해 타락했다는 사상을 천명했다.(크로포트킨에 의하면 헉슬리는 다윈의 핵심적인 사상보다 용어 몇 개를 가져다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사상에 과학적인 외피를 입힌 사람이다.)

 

크로포트킨은 시베리아에서 다윈의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되는 장면들을 목격한다. 동물들이 자연의 힘 앞에 혹독한 생존경쟁을 치르는 한편 수많은 개체들, 군체들 사이에서는 어김없이 상호부조와 상호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크로포트킨에게 그 모습은 생명의 유지와 종의 보존, 나아가 종의 진화에서 엄청난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느껴졌다.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를 입중해주는 사례들이 너무나도 풍부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크로포트킨의 주요 논지는 인간의 삶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협동과 상호 도움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크로포트킨에 의하면 수많은 다윈 추종자들은 생존 경쟁이라는 개념을 가장 협소하게 제한했다. 동물 세계의 개체의 이익을 위한 투쟁을 인간의 원리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크로포트킨은 동물들 사이에서 격렬한 경쟁의 시기에는 종의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착안했다. 크로포트킨은 동물, 야만인, 미개인, 중세의 도시인, 근대인등이 보인 다양한 상호 부조 사례를 예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크로포트킨은 개별적인 투쟁을 최소화하면서 상호부조를 최고조로 발전시킨 동물 종들이야말로 늘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며 가장 번성하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런 예들은 인간 사회에서도 그대로 발견되었다고 크로포트킨은 주장한다. 상호부조를 기반으로 하는 제도들이 전성기를 누리는 시기야말로 예술, 산업 그리고 과학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크로포트킨은 개미와 흰 개미는 홉스주의적 전쟁을 포기했다는 말을 했다. 이는 인간이 진화의 정점(定點)이 아니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주장이다. 생물학자들을 중심으로 인간은 진화의 정점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크로포트킨의 주장은 낯설거나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생물학자 프란츠 부케티츠는 진화과정이 고등한 형태가 오래된 원시적 형태를 단지 대체하는 것이라면 오늘날에는 고도로 진화한 종족 즉 몇몇 영장류만이 현존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는 진화가 진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주장이다.

 

반면 물리학자 한스 그라스만은, 진화는 발달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경험상 명백한 모순에 빠진다는 말을 했다. 내 경우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고 진화를 보는 시각은 하나로 고정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진화로 인해 에너지 흐름의 값이 더욱 커지고 이로 인해 환경 전체에 더 큰 무질서가 발생한다는 점을 예로 들어 진화가 진보가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한스 그라스만이 말한 진보는 지력(知力), 언어 능력, 도구 사용 능력 등의 면에서 정점(定點)에 오른 인간의 위상을 말하고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는 리프킨의 말은 더 큰 무질서(더 큰 엔트로피 총량)에 착안(着眼)한 말이다. 자연에 되돌릴 수 없는 충격을 가하며 유용한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방향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현재의 행태는 진보와 발전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루소가 자연에서 필사적인 싸움을 도외시했다면 헉슬리는 투쟁만을 보았다는 이유로 양자를 모두 비판하며 서로 도움을 주는 종이 싸움만 하는 종에 비해 적자(適者)라고 주장하는 크로포트킨은 다윈의 저작에서 경쟁에 대한 실제적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다윈이 극심한 생존 경쟁을 주장한 것은 중간 변종의 절멸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따라서 절멸이라는 말은 은유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중간 형태의 절멸은 필연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크로포트킨은 경쟁하지 말라, 경쟁은 항상 그 종에 치명적이며,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많다는 주장을 펴며 인간들이 자연의 일반적인 법칙에서 예외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상호 부조가 지배적인 세계로 보았음에도 그 법칙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이 지배하는 정글로 보고 있기에 인간만이 자연 법칙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남으려는 것이 결코 아님을 지적해야겠다.

 

생물학자 매트 리들리는 홉스는 다윈의 직계 조상이라는 주장을 폈다. 홉스는 데이비드 흄을, 흄은 애덤 스미스를, 애덤 스미스는 맬서스를, 맬서스는 다윈을 낳았다.(‘이타적 유전자‘ 347 페이지) 한편 스미스는 밀턴 프리드먼을 낳았고(경제학), 다윈은 도킨스를 낳았다.(생물학) 리들리는 헉슬리의 능력주의에서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그 잔혹한 우생학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을 한다.(리들리는 주목할 만한 생물학 이론가이다. 붉은 여왕 이론과 별개로 히틀러의 우생학은 다윈이나 스펜서가 아닌 마르크스에게서 배운 것일 수도 있다는 그의 주장은 새롭고 논쟁적이다. 다윈은 마르크스의 저서를 탐독했으며 저작에 그의 글을 많이 인용했다.)

 

리들리는 대의(大義)를 추구하는 본능은 북돋고 자기이익과 반사회적 행동을 추구하는 본능은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기적(또는 이타적)이라는 선언이 사람들을 그렇게(이기적 또는 이타적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전제하에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인간에게는 사리(私利) 추구를 향해 치닫는 천성이 있다는 진실을 숨기거나, 가능하다면 우리 내면에는 고상한 야만인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리들리는 침팬지와 달리 남녀 평등, 평화와 배려 등의 특징을 보이는 보노보가 우리에게 조금 더 일찍 알려졌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을 것(‘내 안의 유인원을 쓴 프란스 드 발 교수)이라는 보노보를 둘러싼 이슈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보노보에 비해 폭력적인 침팬지가 인간 본성의 모델로 결정되었기에 인간들이 폭력적이거나 거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듯 평화와 배려를 특징으로 하는 보노보가 인간 본성의 모델이 된다고 해서 인간들이 평화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특성을 갖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지만 이타적 유전자를 말하는 리들리의 주장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리들리는 크로포트킨이 희망했던 자유로운 개인들의 세계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크로포트킨의 정의(定議)에도 불구하고 이타적 상생을 위한 길은 멀어 보인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닉 레인의 책(‘미토콘드리아생명의 도약‘)과 린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을 정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써야 할 것 같다. 책을 선물해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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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의 발견' 서평단에 응모했다. 지난 해 한양도성 박물관 혜화전시관을 가다가 일본의 대표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재능교육 건물을 보고 일본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과도 관련이 있지만 그보다는 책 욕심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말 겐치쿠(けんちく: 建築)란 말이 등장함으로써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건축가 김광현 님의 건축 책들을 읽을 생각이다. 구축 의지, 건물은 산 기하학은 땅 등이 있는 '질서의 가능성', 연상, 은유, 빛과 물체, 빛과 공간 등이 있는 '말하는 형태와 빛',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 구조주의 건축, 부분의 건축 등이 있는 '부분과 전체', 홈 파인 공간과 매끈한 공간, 보고 높이는 시선, 높은 시선, 낮은 시선 등이 있는 '지각하는 신체', 주택은 도시다, 건축의 자연, 나무에게 배우는 것, 정원, 정원의 건축, 바람의 건축, 풍경과 경관 등이 있는 '도시와 풍경', 시간의 두 모습, 건축의 시간, 표현과 노출 등이 있는 '시간의 기술' 등이다.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읽고 (전체 열권의 건축 강의 시리즈 중) 여섯 권의 상기한 책을 읽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가라타니 고진의 '은유로서의 건축'을 다시 읽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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