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해설은 사진과 영상 제작 동아리의 어르신들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사진 동아리이기에 프랑스의 위대한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언급한 결정적 순간에 대한 언급으로 운()을 떼었다. 브레송은 삶의 환희와 고통, 현실의 적나라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후에 수전 손탁의 사진 비판론을 논할 팀이 있으면 좋겠다. 손탁은 카메라를 총에 비유했다.

 

1)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의 숭의전(崇義殿)에 있는 관세위(盥洗位)는 제향 때 제관이 손을 씻는 곳이다. 2) 배신청(陪臣廳)은 공신들을 모신 곳이다.(; 씻을 관, ; 모실 배) 3) 이안청(移安廳)은 임시로 어진을 모시던 곳이다. 4)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성인 당포성(堂浦城) 위에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1)2)는 질문이 있어 정확히 답했다. 3)은 종묘의 망묘루 같은 곳이라 잘못 답했다. 4)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 역시 몰랐다.(팽나무의 팽이 한문인지 한글인지 모르겠다. 한문이라면 어떤 글자를 쓰는지 궁금하다.)

 

당포성의 주소를 묻는 분에게 아미리라 했다가 숭의전이 아미리 아닌가요란 말에 아, . 동이리입니다라고 바로 고쳤다. 풍수 지식을 망원경에, 한자 지식을 현미경에, 문사철과 유불선 지식을 그물에, 사주와 관상 지식을 표창에, 샤머니즘 지식을 드릴에 비유한 조용헌 교수가 문득 생각난다.

 

언급한 것들은 조용헌 교수가 20년 넘게 여기저기 답사를 하다 보니 갖추게 된 지식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자 및 문사철과 유불선에 대한 지식 정도는 갖추어야 하리라. 문사철에 포함되는 주역, 유불선에 포함되는 불교 미술에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 그리고 나만의 비기(祕技)를 개발하고 싶다. 물론 박학다식과 함께 갖추는 비기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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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소장하려고 했으나 필요할 때마다 빌려보곤 하던 김용헌의 '조선 성리학, 지식권럭의 탄생'을 어제 알라딘 종로점에서 우연히 보고 구매했다. 정도전, 정몽주, 조광조조식, 이이 등의 문묘 종사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 책이다.

 

어제 청송당(聽松堂) 유지(遺址)가 있는 서촌 해설을 계기로 관심을 두게 된 성수침과 남명 조식의 일화를 흥미 있게 접한 뒤 만난 책이어서 관심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성수침(1493-1564)은 여덟 살 아래의 남명 조식(1501-1572)과 서로 존경하며 일생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런 어느 날 성수침이 시를 써 조식에게 보내 화답을 요청하자 조식은 시는 본래의 소중한 마음을 잃게 하는 놀이 같은 것이라 답했다. 스승 조광조의 사사(賜死)에 충격받아 청송당에 은둔한 성수침과, 자의에 의해 홀로 묻혀 지내며 과거를 대비한 공부가 아닌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연마한 조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남명 조식은 칼을 찬 유학자였다. 몸을 써서 욕망을 절제할 것을 가르쳤고 물 뿌리고 청소하는 일에서 공부가 시작된다고 본 사람이었다. 그가 칼을 찬 모습을 본 경상감사 이양원이 무겁지 않느냐고 묻자 남명은 "뭐가 무겁겠소, 내 생각에는 그대의 허리에 매단 금대(金帶)가 더 무거울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이에 이양원은 바로 말을 알아 듣고 재주 없이 중책을 맡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양원은 겸허하기나 하다. 오늘날 이양원을 보고 배워야 할 인물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정도전은 불교는 사람을 짐승과 구별지어주는 측은지심 즉 인()마저 비워버릴 것을 주장하기에 이단이라 말했다. 그런데 그런 정도전이 만일 임란 때 많은 승려들이 의병활동을 한 것을 보았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그때 백성들을 버리고 의주까지 도망한 유교 국가의 군주 선조는 인()한 존재였는가? 동인 김성일의 말만 듣고 왜의 침략 가능성을 무시한 선조는 지()한 존재였는가?

 

정도전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불교는 모든 정념을 벗어버릴 것을 의도하는 문제적 종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도 출가 후 자신의 나라에 닥친 정치적 문제를 보고 몇 차례 시정을 요구했다.

 

이는 정도전 이전의 일이었으나 아마도 당시의 자료 수준으로는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총체적으로 생각하고 보아야 지혜와 균형감각이 나옴을 정도전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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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의 두 얼굴'을 읽고 있습니다. 조윤민 단독 저자가 왕릉, 궁궐, 성곽과 읍치, 성균관, 향교, 서원, 사찰 등에 대해 쓴 책입니다. 우리 논의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니 책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문화재에 관한 책이어서 사진이 많은 게 눈에 띕니다. 저자도 실력과 명성을 갖춘 분이고 출판사도 대형 출판사인데 사진이 전부 흑백이네요. 출판 연도를 보니 20198월이네요.. 이런 경우도 있네요. 긍정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사진이 컬러라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371페이지에 가격은 16,000원입니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론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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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고원에서 나온 김욱의 '책혐시대의 책읽기''왜 책 낭비만은 피하려 하는가'란 챕터가 있다. 낮에 알라딘 종로점에서 보고 살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나왔다. 충분히 읽지 않아 저자가 어떤 답을 제시했는지 모른다.

 

내가 저자라면 사람들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탄탄한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필요한 지식을 기능적으로 얻으려 하기에 굳이 책을 사서 옆에 두고 수시로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썼을 것이다. 책을 그렇게 대하기에 책이 비싸게 느껴지고 그래서 구입을 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자가 파악하는 우리 시대는 책을 혐오하는 책혐(冊嫌)시대다. 앞 부분에서 내가 말한 풍경은 책을 통해 단편적이고 즉자적인 지식을 얻으려는 시대이기에 일정 정도 차이가 있다. 저자의 진단에 공감한다.

 

여기서 잠시 우에노 치즈코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남자들이 갖는 여성 혐오의 내용을 이렇게 파악했다. 자신이 성적으로 남성인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여자라는 시시하고 불결하며 이해 불가능한 생물에게 욕망의 충족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여성 혐오의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시하고 불결하다는 말은 클라우스 테베라이트가 아우슈비츠의 군인들이 유태인을 표현할 때 더러운, 흐르는, 점액질의, 붉은, 집어삼키는, 몰려드는, 내뱉는 등의 수식어 내지 동사들을 사용하여 피억압자들의 몸을 여성의 몸처럼 흐르고 물렁물렁한 것으로 표현했다는 글(김혜순 지음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203 페이지)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나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모자란 남자들을 읽어볼 것을 주문한다. 분자생물학자의 말이기에 편향된 면이 있겠지만 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모자란 여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남자는 수명이 짧고 쉽게 질병에 걸리며 정신적으로도 약하다는 것이다.

 

신이치는 남자가 여자를 섬기는 이유도 제시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간략하게 말하면 남자가 자신을 압도하는 여성의 능력을 보고 섬길 수도 있고 그런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면 혐오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에노 치즈코와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각에는 접점이 있다.(참고로 말하면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 사회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남성 분자생물학자다. 두 사람 다 일본인이다.)

 

치즈코의 논의에는 일리가 충분하다. 다시 책 이야기를 하면 남성이 여성에 의존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 분노하고 원한을 갖듯 적극적으로 지식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의 높고 견고한 성채 앞에서 원한감정을 갖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김욱 저자를 이야기하자면 그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 책읽기라는 수고를 하는 독자라면 각 분야 저자가 도달한 뛰어난 생각의 결과물보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하찮은 생각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 분야 저자가 만들어낸 뛰어난 생각의 결과물을 발판으로 그럴듯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내기가 만만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책을 외면하는 것이리라. 김욱 저자는 진지한 독자는 결국 책과 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책만 보는 바보가 아니라 책에 담긴 지식을 지배하고 자신의 지혜를 성장시키는 독자가 되어야 하기 떄문이다.

 

그것을 위해 저자는 비판적인 책읽기와 글쓰기를 제안한다. 저자는 책을 만나면 책을 죽이고 넘어서야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과 헤어져야 한다는 말은 부처가 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는 말을 생각하게 하고 책을 만나면 책을 죽이고 넘어서야 한다는 말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임제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

 

후쿠오카 신이치와 우에노 치즈코의 생각이 만나듯 부처와 임제의 말 역시 만난다. 비판적으로 책을 읽고 비판적으로 쓰자. 그것은 자기 생각의 집짓기를 하는 과정이다.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이다. 오래 읽고 써왔지만 느슨해지고 상투적으로 변질되려는 나를 채찍질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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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경복궁의 역사코너에 ’1915년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 조선총독부 박물관 건물 준공란 소개 글이 있다. 시정은 시정(施政)이니 1915년은 일본이 1910년 한일 병탄(倂呑)을 통해 우리에게 정치라는 시혜를 베푼 지 5년이라는 의미이다. 일본의 논리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니 문제다. 일본의 논리를 인용한 것이라면 따옴표를 하든지... (합방을 병탄으로, 조약을 늑약으로 바꾼 것을 보라.)

 

모 신문 기사도 문제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넓은 행정 청사가 필요해진 조선총독부는 신청사 터를 물색했다.”는 기사다. 경복궁 사이트의 소개 글이 일본의 논리를 따라서 문제라면 이 신문의 기사는 조선총독부라는 주어를 사용했으면 그들을 주어로 하는 조선 병합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데 경술국치라는 말을 썼다. 경술국치는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뜻이다. 즉 주체가 우리다.

 

어떻든 일본은 1910년 조선을 병합한 후 경복궁에 넓은 신청사 터를 잡았다. 일제는 1914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연다며 흥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지은 데 이어 총독부 청사를 가린다는 이유로 1927년 광화문을 해체, 동쪽으로 이전했다.

 

근정문 너머로 보였던 조선총독부 건물 축은 경복궁의 중심축과 어긋나 있었다. 일제가 자신들이 지은 남산 조선신궁의 축에 맞추기 위해 조선총독부 건물의 각도를 3.75도 비틀었기 때문이다. 흥례문이 돌아온 것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단행한 구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을 헐어버린 뒤였다.

 

광화문은 한국 전쟁기에 훼손되었고 1968년 복원되었다. 그러나 사라진 목조 부분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한 것이었고 위치도 원래 있던 곳에서 북쪽으로 11.2, 동쪽으로 13.5떨어진 곳이었으며 각도도 경복궁 중심축을 기준으로 3.75˚틀어진 채였다. 2010년 광화문은 원래 위치와 모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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