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우종학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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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 차원이지만 최근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되었다. 기독교인들과의 대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한 요인이 되었다. 그들과의 대화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느꼈다. 그들은 기독교에 대한 내 지식 또는 과학으로 기독교를 분석하는 내 방식에 불편감을 드러냈다. 그들의 문제는 지식 특히 과학 지식이 많은 사람을 신앙심이 없는 부류로 치부한다는 점이다.

 

나는 그들로부터 믿음이 좋은 사람이란 말을 들으려면 가끔씩이라도 하나님, 아멘, 주님 등의 말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자연이라는 책을 통해 신성한 존재를 느끼는 데 관심이 있다. 이런 내 지향성과 공명하는 책이 ‘지질학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같은 책이다. 어떤 내용이 펼쳐졌을지 큰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이다. 합리적인 부분이 있으면 수용할 생각이다.

 

각설하자면 성경과 자연을 하나님을 알려주는 두 가지 책으로 놓고 이야기를 펼친 책이 있다. 우종학 교수의 ‘과학시대의 도전과 하나님의 응답’이다. 저자가 전제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1) 성경과 자연, 이 두 책의 저자는 한 분 하나님이기 때문에 서로 모순될 수 없다.(32 페이지) 2) 과학은 자연이라는 무대에서 벌어진 현상을 읽은 내용인 동시에 다양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리고 과학의 다른 설명들과 모순되지 않는 하나의 인과적 설명 체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34 페이지)

 

3) 과학은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발전할수록 자연의 참 모습을 점점 더 정확하게 밝힐 것이다.(37 페이지) 4) 과학은 자연에 대한 영원한 근사(近似)이지만 그럼에도 창조의 역사에 대한 놀라운 비밀들을 드러내주는 유용한 도구다.(38 페이지) 저자는 과학이 자연을 100%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는 나이브한 실재론이나 자연의 참모습과 상관 없는 주장일 뿐이라는 상대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과학이 자연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용하게 드러낸다고 보는 비판적 실재론을 지지한다.(38 페이지)

 

본문에 기록된대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과학으로 우주의 창조를 설명하려는 노력 자체를 불편하게 느낀다.(77 페이지) 과학은 새로운 데이터나 이론, 발견 등의 출현으로 인해 바뀔 수 있는 가변적 학문이지만 그렇다고 마구 바뀌는 학문은 결코 아니다.(82 페이지) 이에 나는 경험이 인식 수준으로 상승하는 과정을 지배하는 규칙성이란 말을 덧붙이고 싶다.

 

과학은 경험적인 대상만을 다루기에 초자연적인 신 존재나 섭리 등을 본질적으로 다룰 수 없다.(83 페이지) 과학은 중립적인 반면 가치중립적이지는 않다. 과학이 중립적이라는 말은 자연세계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학문이기에 유신론이나 무신론에 대해 중립적이라는 의미이고 가치중립적이지는 않다는 말은 연구비가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에 따라 방향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과학이 중립적이라는 말은 큰 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가치중립적이지는 않다는 말은 사회적 차원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는 진화론은 목적이 없지만 사회진화론은 인간(단체)의 의지가 투사되어 목적을 장착했다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럼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성경은 창조의 방법에 관해서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106 페이지) 지구를 중심으로 한 고대의 우주관은 성경의 배경이 되는 근동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상식이었으며 동시에 고대 히브리인들이 가졌던 우주관이기도 했다.(109 페이지) 성경은 창조주를, 자연은 창조세계를 보여준다.(115 페이지)

 

저자는 성경과 과학을 합리적으로 조화시켜 보려는 노력을 일치론적 해석이라 칭한다. 일치론적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경 본문을 여전히 과학 교과서처럼 읽음으로써 성경 본문의 기술과 과학의 내용을 조화시키기 위해 작위적인 가정들을 자꾸 만둘어내게 된다.(122 페이지) 비일치론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창세기 1장을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포괄적 서술로 해석한다.(124 페이지)

 

성경이 창세(創世) 사실을 비유적으로 즉 과학적 사실과 거리가 있는 방식으로 기술했다고 해서 창세 사실 자체가 없었던 일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창조 기사를 비유적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창조 기사를 허구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126 페이지) 설득력 있는 말이다. 저자는 과학은 기독교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고 말한다.(127 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과학이 다루는 내용에 관해서는 과학자들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철학적 해석에 관해서는 과학자들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134 페이지)

 

저자는 과학주의 무신론의 공격에 대해서는 지성적 접근을 하라고 권한다. 자자는 그들의 주장에 귀기울이라는 말을 한다. 그들의 주장을 믿고 따르라는 말이 아니라 냉철히 살펴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이 어떤 점을 잘못 이해하는지 파악해 그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역사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광해군 이야기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폭군(暴君) 또는 혼군(昏君)으로 알려진 광해군이 재평가된 것은 일본인 이나바 이와키치로 인해서이다. 그는 광해군의 미덕을 새삼 일깨웠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하며 일부에서 이나바 이와키치의 발언이 자신들의 대조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광해군에 대한 충실한 해석은 수용하되 이나바 이와키치의 의도를 간파해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어려운가?란 것이다. 더욱이 일본인 학자가 주장했다고 해서 맞는 이야기임에도 폐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설령 이나바 이와키치의 의도에 빠져든다고 해도 일제 강점기가 지나도 한참 지난 지금 어떻게 그 인식을 실천하겠는가?(역사 이야기 시간이 아니어서 이만 줄임)

 

저자가 천문학을 이야기한 부분이나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담긴 아포리아를 지적한 부분은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지의 사실이기에 상술하지 않는다. 짧게 언급하자면 인간을 포함해서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탄소를 비롯한 다양한 원소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졌으며(140, 141 페이지) 핵융합 반응의 재료가 되는 수소나 헬륨 등은 어디서 기원했을까?(142, 143 페이지) 저자는 무(無)를, 공간은 존재하지만 질량이 없는 빈 공간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양자역학에서 진공에서도 순간적으로 에너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럼 공간은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묻는다.(147 페이지)

 

오늘날 과학이 밝히지 못한 내용이라고 해서 앞으로 몇 백년 뒤에도 밝힐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리 지혜롭지 않지만 현대 과학이 물질의 기원을 엄밀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147 페이지) 저자는 신은 스스로 존재한다고 말하며(148 페이지) 도킨스의 주장(”신은 누가 만들었는가?“)에 담긴 허점을 지적한다. 도킨스의 주장대로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가?

 

물질이 진화 과정에서 인간을 만들어냈다면 그 물질은 누가 만들었는가?(149 페이지) 또한 자연법칙은 어떻게 기원했는가?(154 페이지) 저자는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그래서 에너지와 물질이 존재한 것이라 말한다.(157 페이지) 또한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뒤에 우주가 스스로 운행되도록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주를 붙들고 다스리면서 자연법칙에 따라 우주가 운행되도록 섭리하고 있다고 말한다.(158 페이지)

 

과학만으로 기독교 신앙과 과학주의 무신론 중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 없다고 해도 과학을 넘어서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포함하여 전체 우주에 관한 질문들을 던져본다면 무신론의 설명보다 유신론의 설명이 훨씬 더 포괄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맑시스트 테리 이글턴은 도킨스와 히친스가 종교보다 더 큰 해악인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놀랄 정도로 침묵한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이글턴의 지적은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생각임을 절감했다. 과학주의 무신론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해석이다.(171 페이지) 저자는 자연현상이 과학으로 설명된다면 무신론이 되는가?라고 묻는다. 신은 필요 없게 되는가?란 질문이다. 저자는 기독교가 제시하는 초월적인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여전히 자연현상을 붙들고 섭리하고 계신다고 말한다.(178 페이지)

 

나는 자연법칙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일어난 첫 창조의 시점에서 끝나지 않았고 긴 시간 계속되었음을 과학이 증언하고 있다고 말한다.(201 페이지) 아퀴나스도 이런 생각을 피력했다. 저자에 의하면 이런 계속적 창조는 범재신론이나 과정신학의 관점으로 볼 필요는 없다.(202 페이지) 존 폴킹혼은 자연법칙을 통해 섭리하시며 인과율에 따라 새로운 창조물들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 즉 계속적 창조는 하나님의 초월성보다 내재성이 강조된다고 이해한다.

 

폴킹혼은 무로부터의 창조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계속적 창조는 내재성을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나는 지구가 1만년전에 창조되었고 인간과 공룡이 함께 존재했다고 보는 창조과학을 잘못이라 생각한다. 지구가 1만년전에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젊은 지구 창조론이라 한다. 많은 지성인들이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과학을 부정하는 창조과학 때문이다. 그들의 젊은 지구론을 수용하려면 지질학, 천문학, 대기과학, 생물학, 물리학 등 상당히 많은 과학을 포기해야 한다.(217 페이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는 일을 기뻐해야 하지만 복음과는 상관 없이 자기 잘못으로 고난받는 것은 그저 안타까운 일이다.(219 페이지) 우리가 태양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조금 있다고 해서 태양이 핵융합 반응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는 사실이 무너지지 않는다.(225 페이지) 창조과학회가 제시하는 지엽적인 반증들이 설령 과학적인 가치가 있다 해도 젊은 지구론을 지지해주지 않고 자연계에는 아직 설명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다양하고 놀라운 새로운 지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무 때나 반증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 이론이 아직 확립되지 않아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이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새로운 대안이 요구될 때반증 사례를 제시해야 한다.(226 페이지) 이 책을 통해 흥미로운 개념을 많이 접한다. 오랜 지구 창조론이 그 중 하나다. 천문학이나 지질학의 결과는 수용하지만 생물진화는 부정하는 입장이다.(236 페이지)

 

기독교의 여러 창조론 가운데 ‘날 - 시대(day - age theory)’ 이론이 있다. 성경 창세기의 하루를 100만년이나 10억년처럼 오랜 기간으로 보되 창조의 순서는 성경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셋째 날에 태양이 창조되고 넷째 날에 태양이 창조된다는 창조 기사는 태양이 창조되기 이전에 식물이 창조되어 10억년 동안 생존해야 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오랜 지구론이나 젊은 지구론은 모두 생물 진화를 반대하는 반진화 운동의 창조과학 흐름 안에 있다.(257 페이지)

 

진화적 창조론은 과학 발전 과정과 성경 해석의 역사를 반영한다. 물론 이는 과학 발전에 따라 성경 해석이 달라지는 문제를 낳게 된다. 저자는 성경 자체와 나의 성경 해석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고 나의 성경 해석도 계속 변한다고 말한다.(271 페이지) 상경 해석이 변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점이다. 성경이 원래 의미하는 메시지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고 이는 신앙의 성숙을 의미한다.(272 페이지)

 

저자는 구원의 길은 성경에서 찾고 창조의 역사는 자연을 통해 배우라고 조언한다.(281 페이지) 진화는 시간에 따른 변화를 의미한다.(287 페이지) 가령 별이 초신성으로 일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진화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다고 증언하는 동시에 자연법칙을 사용해서 섭리하고 창조할 능력이 있다고도 중언한다. 하나님이 실제로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알려면 자연이라는 책을 읽어야 한다.(293 페이지) 하나님이 천사를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지질학적 방법을 사용해 바위를 창조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간절히 창조과학 신봉자들이 좋은 스승이나 균형 잡힌 책을 통해 창조주를 믿으면서도 과학을 수용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성경)는 인간의 언어로 주어졌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근원적 한계를 갖는다. 하나님의 계시는 무한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완벽하지 않다.(300 페이지) 우리는 하나님이 시간을 초월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진화라는 개념이 성경에 위배된다는 주장은 성경에 표현된 문자에 얽매어 하나님의 전능한 창조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301 페이지) 과학에서 사용하는 우발성이라는 개념과 우리 일상 용어인 우발성이란 개념은 전혀 다르다. 과학에서 설명하는 우발성이란 다양한 실현 가능성 중 하나가 실현됨을 말한다. 과학은 그 현상 뒤에 어떤 목적이나 섭리가 있었는지 또는 없었는지 다루지 않는다. 진화는 과학적으로 우연한 현상으로 설명되지만 전능한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대로 진화를 통해 생물들을 창조할 수 있다.(302 페이지)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적인 설명을 진화론이라며 일방적으로 누명을 씌운다.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과학이 자연이라는 실제에 대한 영원한 근사에 불과하듯 신학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영원한 근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과학도 겸손해야 하고 신학도 겸손해야 한다. 교회는 젊은 지구론이 무너지면 복음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미세 조정된 우주(fine tuned universe)란 개념이 있다. 우리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 100억년 이상의 우주 역사가 필요하고 1000억개나 되는 은하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인간이 탄생하고 존재할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주의 물리적 조건이 마치 누군가에 의해 미리 세밀하게 조절된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이를 인류 원리라 한다. 여섯 가지 우주 상수 값들이 초기 우주에서 0.00000001%만 컸다면 수소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0.00000001%만 작았다면 탄소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인간 없는 황량한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수소가 없다면 물도 만들어질 수 없다. 탄소가 없어도 생명은 생길 수 없다. 탄소 기반 생명체 외에 다른 생명체는 없다.) 다중우주론은 이런 미세한 조정을 우연으로 돌리는 것이다.(우주가 하나만이라면 그런 대단히 놀라운 조건을 갖추는 것이 이상하지만 우주가 아주 많다면 그렇게 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에서 인류가 존재할 조건을 갖추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직 모른다는 설명도 있다. 초월적 존재의 섭리로 설명하기도 한다. 은하 숫자들이 적었다면 우주 팽창이 더 빨라져 인류가 살 수 없는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넓은 공간에 우리 밖에 없다면 엄청난 낭비라고 말하며 외계인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상정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지만 같은 현상을 통해 인류원리를 제시하는 것을 접하고 보니 신선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점이다. 나는 다중우주론을 (의미도 모르고) 좋아했지만 초월적 존재의 섭리라는 설명을 하는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같은 책에 관심이 간다.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평범성의 원리라고도 하는 이 원리는 지구는 특별하지 않다는 원리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25,000 광년 떨어진 변두리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 은하 역시 1000억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 중 하나라는 사실도 그렇다. 이 원리는 생물학에까지 적용되었다. 인간은 침팬지나 오랑우탄 같은 영장류와 98% 정도 비슷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인간의 특별성을 찾아야 할까? 변두리 중의 변두리에서 먼지로 만들어진 존재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숨결이 불어넣어진 방법으로 신에 의해 창조된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예시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 중 특별한 것이 이성이다. 기독교에 아니 창조 섭리와 구원에 관심이 있지만 아직 제도권 기독교인이 아닌 나는 저자의 결론과 다른 길을 제시하고 싶다. 이성과 감성, 그리고 기억의 연관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저자를 통해 놀라운 우주의 비밀을 엿본 느낌이 든다. 지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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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당신이 왜 우울한지 알고 있다 - 나의 알 수 없는 기분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처방전
야오나이린 지음, 정세경 옮김, 전홍진 감수 / 더퀘스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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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권의 정신의학과 박사 야오나이린의 ‘뇌는 당신이 왜 우울한지 알고 있다’는 뇌와 나의 관계를 쉽게 설명한 친절한 책이다. 1부 뇌는 당신이 왜 우울한지 알고 있다, 2부 뇌가 지각하는 세상이 당신이 볼 수 있는 세상, 3부 뇌는 답을 알고 있다 등으로 이루어졌다.

 

우울증이 가장 먼저 나오고 제목에도 등장하는 것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3억명이 우울증의 영향을 받고 그 중 80만명은 목숨을 끊는다. 우울증 발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유전자다. 우울증은 기억력을 책임지는 해마의 신경세포 20퍼센트를 손상시킬 수 있다.

 

우울증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많다. 그 중 네 가지를 들어보자. 모노아민 가설, 염증가설, HPA축 변화 가설, 신경가소설 가설 등이다. 저자는 친절하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불안도 같은 유형으로 다루어졌다. 저자는 전문가답게 사회불안장애 환자에게 관계 기술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덧붙여 대인관계의 불안을 대처한 버트런드 러셀의 예도 든다.

 

조증(燥症) 환자가 극도로 흥분된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소모한 후 불쑥 극도로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든다는 설명을 통해 우리 몸이 에너지와 관련이 깊으며 양극성정동장애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양극성정동장애 환자는 더 빨리 늙는다고 한다. 명상 등을 통해 감정을 잘 조율하고 다스리는 것이 필요함을 절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은 가벼운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뇌일까? 나일까?란 말이 그것이다. 트라우마에는 물론 우울증에도 적용될 수 있을 말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유산소 운동을 해 해마 손상을 막는다. 명상을 한다. 스트레스도 해석 방법에 달렸음을 인식한다 등이다.

 

저자는 중독은 도파민이 만든 뇌의 욕망일 뿐 행복이 아니라고 말한다. 도파민은 행복 호르몬이 아니라는 뜻이다. 도파민은 당신이 뭔가를 원하게 한다. 또한 당신이 나서서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게 한다. 연구에 따르면 하나의 행동이 무의식적인 습관이 되는 과정에서 뇌의 활동은 복측선조체(측좌핵)에서 점차 배측선조체로 옮겨간다. 이 습관이 고착될수록 뇌의 전전두엽이 그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약해진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공부를 싫어하는 것은 공부할 때 도파민 분비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원시적 생존과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신이 배움의 결과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것 자체를 보상으로 여긴다면 좀 더 쉽게 공부에 중독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공부 중독은 좋은 중독이다. 난이도가 높지 않아야 하며 너무 큰 기대를 품지 말아야 하며 비교적 빨리 보상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한다면 나쁜 중독을 대체할 수 있다.

 

환각은 머릿속 탐정인 시각피질이 추리한 세상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추리하는 것이 시각피질이다. 조현병 환자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기억력도 떨어진다. 사고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한 가지 일이나 생각에 관해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두서 없이 말하기 십상이다. 심지어 하던 이야기를 잊기도 한다.

 

조현병의 유전 기여율은 85퍼센트에 이른다. 하지만 어떤 하나의 유전자나 몇 개의 유전자로는 그 발병 원리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저자는 최신 연구 성과도 소개한다. 가령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알츠하이머병에 대항하는 데 도움을 주는 숨은 영웅이라는 반전의 결과가 그것이다.(201 페이지)

 

공기 오염이 알츠하이머 발병율을 높인다는 주장도 있다. 만성 당뇨병도 뇌의 위축을 가속화한다. 운동으로 뇌의 노화를 늦추어야 한다. 특히 유산소 운동이 좋다. 절식(節食)은 뇌의 노화를 늦춘다. 모든 형식의 배움은 대뇌의 노화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다. 적극적 대인관계도 중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창의력(있는 사람)과 사이코패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도파민이다. 사이코패스와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의 공통점은 도파민 분비량이 많아 보통 사람보다 새로운 자극을 좋아하고 신기한 것과 보상을 추구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과 달리 모험이나 처벌을 그다지 꺼리지 않는다. 그들은 승률과 상관없이 모험심을 자극하는 일이어야 흥분한다.

 

저자는 어떤 심리적 특징도 환경을 벗어나 혼자 존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평생 발달하는 뇌의 비밀은 연결에 있다고 말한다. 관건은 꾸준한 기능 훈련에 있다. 흥미롭게도 청소년기부터 성년기가 될 때까지 뇌의 부피는 오히려 감소한다.(239 페이지) 이는 뇌가 쓸모없는 시냅스를 계속 잘라내고 쓸모 있는 시냅스만 강화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뇌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뇌는 30세가 되어야 안정을 찾는다. 뇌는 부피가 줄어들수록 안정되는 아이러니한 존재다. 브루스 후드의 ‘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에 의하면 지난 2만년 사이 인간의 뇌는 15퍼센트나 줄어들었다.(이 책은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는 글로 포문을 연 인상적인 책이다.)

 

저자는 일생에서 뇌 가소성이 가장 활발한 아동기에 주입식이나 경쟁을 붙이는 공부는 아이에게 불안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킴을 지적한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뇌 신경세포의 유전자 발현과 뇌 신경망의 구축은 물론이고 아이의 열린 마음과 학습능력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저자의 견해에 두루 공감하지만 특히 최상의 수면이 최상의 뇌를 만든다는 말에 가장 크게 공감한다. 잠은 몸과 마음을 수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말이겠지만 잠을 자면 뇌가 회로를 수정하는 능력을 강화해 정보를 빠르게 배우고 조합하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말(253 페이지)에 관심이 간다.

 

잠은 단순히 발육을 위한 원시적 보조기능이나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 반응에 머물지 않고 뇌의 신경가소성을 향상시켜준다.(254 페이지) 사람의 뇌가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을 신경을 재생한다 하고 이런 특성을 신경가소성이라 한다.(32 페이지)

 

잠을 자면 뇌의 독소를 배출할 수 있다. 자는 동안 일어나는 기억의 공고화는 단순히 하루 종일 겪은 일의 모든 구체적인 사항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많은 구체적인 사항을 전체적인 개념으로 정리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한 후 이미 있는 신경 기억망으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259 페이지) 잠 자는 시간은 감정 회복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 양질의 잠을 자게 하고 낮에 졸음을 덜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낸다. 심각한 우울증 환자는 해마의 신경세포 중 20퍼센트가 죽음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기억력의 핵심은 신경가소성이다. 정보는 막 뇌에 들어왔을 때 일단 단기기억의 형식으로 해마에 저장되고 다시 몇 시간에서 며칠 안에 종류별로 부호화되어 대뇌피질의 장기기억 저장소(신피질)로 들어간다.

 

적정한 정도로 잘 잊어버리는 사람일수록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뛰어나다. 뇌는 새로운 자극에 먼저 반응한다. 새로운 반응을 편애한다고 할 수 있다. 진화 과정에서 익숙한 일보다 돌발적 사건에 주목하는 것이 생존에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집중력의 필수 조건은 멍 때리기다. 뇌는 우리가 일이나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때도 뇌의 여러 영역에서 광범위한 활동이 일어난다. 이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 한다.

 

어떤 일에 흥미가 있을수록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런 사실은 감정이 행동을 하도록 한다는 말을 기억하게 한다. 그런데 행동은 기억과 밀접하다. 감성을 담당하는 부분과 기억을 만드는 영역이 중첩되어 있다는 말도 예로 들 수 있다.

 

유산소 운동은 언제나 답이다. 한 번의 운동으로도 뇌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중강도의 운동은 뇌의 실행 기능에 도움을 주고 고강도의 운동은 뇌의 정보 처리에 도움을 준다. 명상은 집중력을 올려준다. 창의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보통 사람보다 강하다.

 

가난은 뇌의 창의력을 떨어뜨린다. 전두엽이 아니라 소뇌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소뇌는 운동을 조절하고 자세와 균형 유지에 필요한 기관이다. 전문 영역과 관련 없는 지식이라 해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해야 한다. 소재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려도 자신의 창의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양질의 검증받은 과학 지식을 많이 가지라고 권하는 전문가(박문호 박사)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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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권의 정신의학과 박사 야오나이린(姚乃琳)이 쓴 ‘뇌는 당신이 왜 우울한지 알고 있다’를 읽고 있다. 姚는 예쁠 요란 글자다. 琳은 옥(玉)을 뜻하는 림이란 글자다. 요(姚)가 예쁠 요란 글자이기 때문에 요조숙녀란 글자의 요자로 알 수 있지만 요조숙녀는 窈窕淑女라 쓴다.(姚는 예쁠 요자이기도 하고 경솔할 조자이기도 하다. 요와 조니 요조라 해도 될까?) 요조숙녀라는 말은 군자호구(君子好逑)란 말과 같이 쓰인다. 요조숙녀는 군자에게 딱 맞는 짝이라는 의미다. 逑는 짝을 의미하는 글자다.

 

요조숙녀 군자호구란 ‘시경(詩經)’에 수록된 글로 주(周)나라 문왕과 그의 아내 사씨(氏)의 결혼을 찬양한 것이라고 한다. 시경의 명성은 높다. 시경이 출처인 문구 가운데 유명한 것이 징비록(懲毖錄), 쇄미록(瑣尾錄) 등이다. 瑣는 자질구레할 쇄자다. 부스러지다, 가루 등의 뜻도 있다. 이 글자와 유사한 의미들을 가진 글자가 설(屑)이란 글자다. 화산쇄설암의 설자다. 정신의학과 박사의 이름으로부터 화산쇄설암이란 말까지 온 이 글쓰기는 너무 요동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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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주상절리(柱狀節理)와 당포성(堂浦城)을 다녀왔다. 주상절리까지는 전곡에서 81번 버스를 타고 10여분 가서 입구에서 내려 10여분 걸어들어갔고 당포성까지는 40분간 걸어서 갔다. 당포성에서 숭의전까지 걸어가고 싶었으나 당포성 앞에서 14시 10분쯤 81번 버스를 다시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14시 50분쯤 숭의전에 도착해 백학에 갔다가 전곡으로 돌아오는 58번 버스를 탈 수 있었으나 피곤하기도 하고 버스 시간을 몰라서(집에 와서 검색하고 알았음) 그냥 81번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주상절리에서 당포성까지 걸어가는 중에 폐교된 학교(왕산초등학교 마전분교)와 유엔군 화장장 등을 지나쳤다. 임진강 주상절리는 내가 80(%) - 90(°) - 100(점)이란 숫자로 표현한 곳이다. 절리(節理)를 성리학과 연결지었던 나는 절리의 리가 대리암(大理巖)의 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등을 퀴즈로 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은 제주도 말로 주상절리를 모가 난 수직절벽이란 의미에서 모시기정이라 부른다는 사실에 관심이 많이 간다. 벼랑과 절벽을 뜻하는 엉과 아래쪽을 의미하는 알이 결합되어 절벽 아래쪽의 산책로를 의미하는 엉알이란 말도 제주도 말이다.

 

임진강 주상절리는 미산면 동이리에서 보는 군남면 남계리 지역이다. 베개용암이 연천 전곡 신답리에서 보는 포천 창수면 지역이듯. 임진강 주상절리에는 두 가지 정도의 논란이 있다. 개경 팔경의 하나인 장단석벽으로 불렸다는 것, 옛 한탄강 지역을 흐르던 용암이 임진강 쪽으로 역류했다는 말 등이다. 나는 연천 지역이 개경 지역이 아니지만 임진강 주상절리를 장단석벽(이라고 한다면) 즉 개경 팔경의 하나로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역류했다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한다.(역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계속 지리 또는 지질 이야기를 하자면 석회암이 오랜 세월 용식(溶蝕) 작용을 받으면 생기는 붉은 흙이 테라 로사(terra rossa)다. 나는 테라 로사란 철자를 보고 내 전화 번호를 떠올린다. 내 전화 번호 앞 자리에는 55가, 뒷자리에는 11이란 수가 있다. 앞쪽에는 rr이, 뒷쪽에는 ss가 있는 terra rossa란 단어를 닮은 것이다. 견강부회인가? 유쾌했던 나들이를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유쾌한 말 정도라 생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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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관 교수의 Let's go! 지리여행
박종관 지음 / 지오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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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地理)를 모른 채 지리(地利)만을 취하는 얄팍한 세상의 혼돈이 땅 원리에 대한 공부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말하는 책. 우리가 보는 북한산은 1억 6천만년전 지하에서 굳은 화강암이 만든 산이다. 그 이후 암석체 위의 지표면이 깎여 나가 우리 눈에 보이게 된 것이다. 절리란 한 방향으로 평행을 이루며 갈라진 틈을 말한다. 절리는 땅 위의 모든 암석에서 발견된다.

 

절리의 원인은 습곡이나 단층 등 여럿이지만 대표적인 것은 땅 속 기반암이 지표면에 노출되기 시작하면 봉압(封壓)에서 풀려나면서 부피가 팽창해 생기는 것이다. 절리는 여러 방향으로 생기지만 화강암의 경우 가로 방향으로만 탁월하게 발달한다.(여럿이 둘러 앉기 좋은 개울가의 바위) 인편상(鱗片狀) 구조라고 해야 할 것을 판상절리라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계적 풍화작용 결과 암석 표면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것을 박리(剝離; exfoliation)라 한다.

 

풍화(風化; weathering)는 암석이 지표면에서 위치가 그대로인 채 지표의 영향을 받아 변질되는 것을 말한다. 나무뿌리에서 나오는 산성물질들도 암석의 화학적 풍화작용을 일으킨다는 주장도 있다. 토르/ 토어(tor)는 탑 모양의 기반암체다. 영국 남서부의 다트무어 국립공원의 화강암 지형에서 유래했다. 차별적 풍화작용 때문에 생긴다.

 

바위가 썩은 풍화토를 새프톨라이트(saptorite)라 한다. 토르/ 토어는 화강암 산지에 잘 발달되어 있다. 설악산 흔들바위도 토르/ 토어의 일종이다. 타포니(tafoni)는 풍화혈이라 한다. 벌레가 파먹은 것처럼 바위 표면이 움푹 팬 곳을 말한다. 마이산에서 볼 수 있다. 그루브(groove)는 화강암 돔의 새로 방향으로 만들어진 홈이다. 나마(gnamma)는 가마솥 바위라 불린다. 테일러스(talus; 애추; 崖錐)는 절벽으로부터 암설(巖屑; debris)이 떨어져 쌓여 생긴 직선 단면의 원추형 퇴적지형이다.

 

석회암의 화학적 풍화작용은 주로 물과 반응해 일어난다. 물 속에서 석회질 성분이 쌓여 굳은 암석을 석회암이라 한다. 탄산칼슘이라는 석회질 성분이 50퍼센트 이상 포함된 퇴적암을 말한다. 카르스트란 유고슬라비아의 아드리아해 북부 카르스트 지방의 이름을 따온 말이다. 석회암이 오랜 세월 용식(溶蝕) 작용을 받으면 붉은 흙(테라 로사; terra rossa)가 만들어진다. 테라 로사가 붉게 보이는 이유는 석회암이 용식된 후 철이나 알루미늄 성분이 산화작용으로 붉게 변하기 때문이다.

 

붉은 흙이라고 해서 모두 테라 로사라 하면 안 된다. 적색토도 있기 때문이다. 돌리네(doline)는 카르스트지형에 발달한 움푹한 와지(窪地)를 말한다. 포노르(ponor)는 하천이 지하로 사라지는 장소를 말한다. 기존의 석회동굴이 무너져 깔때기 모양으로 깊게 패인 곳을 싱크홀(sinkhole)이라 한다. 석회암 지대에 있는 싱킹 크리크(sinking creek)는 어느 지점에서 강물이 갑자기 줄어들다가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다시 흐르는 곳을 말한다.

 

종유석(鐘乳石)은 석회동굴 천장 내부에 달린 고드름 모양의 탄산칼슘 집적체를 말한다. 석순(石筍)은 종유석에서 동굴 바닥으로 떨어진 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죽순 모양의 집적체를 말한다. 필리핀 피나투보(Pinatubo) 화산은 1991년 6월, 600년만에 분화 활동을 재개했다. 마그마는 땅 속 깊은 곳에 녹아 있는 돌을 말한다. 용암(lava)은 마그마가 땅 위로 솟아나온 것을 말한다. 마그마나 용암이 굳어서 생긴 지형을 화산지형이라 한다.

 

화산에 관한 두 편의 영화를 이야기해 보자. 볼케이노와 단테스 피크다. 볼케이노는 용암을 소재로 한 영화고 단테스 피크는 화쇄류(火碎流)를 소재로 한 영화다. 현무암은 볼케이노를 만들고 유문암은 단테스 피크를 만든다. 화산암은 대개 석영, 장석, 운모, 휘석, 감람석, 각섬석 등의 광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석영이 용암 속에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 따라 볼케이노처럼 용암이 활활 분출하는 화산이 되기도 하고 단테스 피크처럼 펑 하고 터지는 화산이 되기도 한다.

 

석영 함량이 50% 미만일 경우 하와이나 제주도처럼 용암이 줄줄 흘러내리는 분화 형태를 보인다. 이 경우 검은 색의 현무암이 만들어진다. 폭발식 분출이 아닌 일출(溢出)식 분화가 일어난다. 폭발식 분화에서와 같은 화쇄류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석영의 함량이 65퍼센트 이상일 때는 마그마의 유동성이 작아 땅 속 내부 압력이 높아져 폭발식 분화(explosive eruption)를 하게 된다.

 

산성 용암은 터진다.(석영 함량이 65퍼센트 이상인 경우로 '폭발식 분화; explosive eruption'를 한다.) 밝은 계열의 화산암을 만든다. 유문암이 대표적이다. 염기성 용암은 흐른다.('일출식; 溢出式 분화; effusive eruption'를 한다.) 검은 색 계열의 화산암을 만든다. 현무암이 대표적이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점성이 작은 용암류다. 아아 용암은 점성이 큰 용암류다. 화구가 함몰해 본래보다 커진 것을 칼데라라 한다. 백록담은 화구호, 백두산은 칼데라호다. 물을 가지고 있는 지층을 대수층(帶水層)이라 하고, 땅 속으로 들어간 빗물이 지하수가 되었다가 지표로 다시 올라오는 샘물을 용천(湧遷)이라 한다.(湧; 물솟을 용)

 

규모와 위치에 따라 강(江)과 천(川)을 나누고 둘을 통칭해 하천이라 부른다. 강원도 태백시는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이다. 한강의 발원지는 검룡소, 낙동강의 발원지는 황지(黃池)다. 우리나라는 동고서저 지형 때문에 대부분의 하천이 서해와 남해로 흐른다. 이 하천들은 길이가 길고 경사가 완만하고 동해로 흐르는 하천들은 길이가 짧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상류에서 하류로 갈수록 퇴적물의 크기는 줄어든다. 두 학설이 설득력이 있다. 선택운반설과 마모설이다. 폭포는 물이 떨어지는 힘에 의해 폭포 아래에 폭호(瀑壺)라는 물 웅덩이를 만든다. 폭호가 점점 커지면서 아래쪽으로 파들어가게 되면 윗부분의 암석은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폭포는 상류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보통 물살이 빠른 곳에는 자갈밭이, 느린 곳에는 모래톱이 만들어진다. 하천 상류 지역의 지반 융기와 함께 만들어진 사행천(蛇行川)을 감입곡류천(嵌入曲流川)이라 한다. 동해안은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태백산맥 때문에 해안 경사가 급하며 바닷가 면적이 좁다. 해안 발달이 미약하다는 의미다. 사빈(沙濱)이란 모래가 깔린 바닷가를 말한다. 서해안은 해안경사가 완만해 사빈이 발달했다. 동해안에서는 갯벌을 볼 수 없다. 황하나 양쯔강처럼 다량의 점토질 토사를 유출하는 큰 강이 없고 서해와 달리 폐쇄된 만(灣)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다.

 

중국 서부내륙의 황토층이 황사의 근원임은 물론 갯벌의 근원이기도 하다. 남해안 곳곳에서는 자갈해안을 볼 수 있다. 모래해안보다 자갈 또는 암석해안이 더 일반적이다. 패사(貝砂) 해안도 있다. 해안단구는 동해안, 서해안에서 공히 볼 수 있다. 이는 융기(隆起)의 증거다. 우리나라 지형은 동고서저 지형이다. 예전에는 한반도 동쪽이 융기했고 서쪽이 침강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동서의 융기 차이가 동고서저 지형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바닷물이 들어온 해안을 침수해안(浸水海岸), 빠져나간 해안을 이수해안(離水海岸)이라 한다. 융기는 이수해안의 효과를, 침강은 침수해안의 효과를 갖는다. 바닷물이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밀물과 썰물은 지구와 달의 인력(당기는 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지구와 달이 일직선상에 놓이면 인력에 의해서 바다 물이 부풀어오르게 되어 밀물(만조)이 되는 것이며 반대로 달과 직각방향에 있는 곳에서는 바다 물이 줄어들게 되어 썰물(간조)이 된다.

 

간석지(干潟地)는 갯벌, 간척지(干拓地)는 매립지를 말한다. 갯벌은 산에서 침식, 운반된 부유토사가 해안가에 쌓여 생긴다. 영국과 같은 고위도에서는 저수온으로 인해 바다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단 여름에 30도씨 이상이 되면 바다냄새가 난다.

 

세상은 비가 올 때 바뀐다. 지구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다. 빗방울의 엄청난 에너지가 지표면을 때린다. 급격히 불어난 지표수는 지표면을 깎아 흙탕물을 만들며 흘러내린다. 땅 속으로 침투한 빗물은 토양의 공극을 채우며 지하수가 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하수는 지표면으로 배어나와 하천이나 호소(湖沼) 등의 지표수와 합류한다. 바다로 빠져나간 물은 증발하여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지구의 물은 세상을 바꿔가며 이렇게 순환한다.

 

유역이란 산으로 둘러싸인 집수구역을 말한다. 땅속으로 침투(浸透)해 들어간 빗물이 지구 중력에 의해 지하수위를 향해 흘러 가는 것을 침루(浸漏)라고 한다. 비는 대기 중의 아주 작은 입자에 물 입자가 붙어 생긴다. 아차산은 계곡 좌측에는 화강암이, 우측에는 편암이 자리한다.(좌화우편) 아차산 화강암은 원래 이곳의 기반암이었던 편암을 뚫고 관입해 자리잡은 암석이다. 편암 풍화토는 화강암 풍화토보다 점토질 성분이 많아 두껍다.

 

아차산에 비가 내리면 어떻게 될까? 화강암 암벽 위로 떨어진 빗물은 긴 물줄기를 이루며 급류한다. 암반 위에서 시냇물 소리를 내며 흐르는 빗물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반면 오른쪽의 숲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가 올 때 아차산 계곡물의 대부분은 왼쪽의 화강암 암벽으로부터 흘러나간 빗물고 구성된다. 비가 오지 않을 때의 계곡물은 오른쪽 숲속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날이 맑을 때의 아차산 계곡물은 비가 올 때와 달리 오른편의 편암지대로부터 서서히 흘러나오게 된다. 그러나 아차산 공원 유역 자체가 좁고 편암이 차지하는 면적도 작아 많은 양의 지하수를 계곡으로 흘려보내지 못해 실제 아차산의 계곡물은 거의 말라 있다.

 

지하수는 땅 속 토양 입자와 입자 사이의 공극이 물로 100퍼센트 포화되어 있을 때 해당하는 말이다. 지하수는 진흙층과 같은 불투수층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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