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군의 경로당 수가 107개라고 한다. 관계자께 들은 이야기다. 오래전 연천읍 통현리에서 일로당(逸老堂)이라는 현판을 본 기억이 나 ”요즘은 경로당이라 하지 않고 일로당이라 하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렇지 않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검색해보니 연천읍 통현리 일로당(逸老堂)이란 글이 떴다.

 

문제는 한 군데서 본 일로당이란 명칭을 근거로 그런 질문을 했다는 점이다. 더 찾아보니 장자(莊子)가 하늘이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일로란 편안한 노인이란 의미다.

 

전북 고창군에 일로당(逸老堂)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일로당(逸老堂)이라는 호를 쓴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돈녕부사를 지낸 양관(梁灌; 1437~1507)이란 사람이다. 궁금한 것은 이름에 물댈 관이란 글자를 쓴 이유다.

 

요즘 읽고 있는 베로니카 스트랭의 ‘물의 인문학’에 관개(灌漑) 이야기가 나온다. ”관개 기술이 급성장하면서 인간 사회의 지도자들은 점차 신격화되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왕의 선정을 관개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은 사막을 비옥하게 만드는 물 공급자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물의 창조적 힘이 현실에 나타난 화신으로 여겨졌다.“(113 페이지)

 

특이하게도 관(灌)이 내림굿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나는 '벚꽃과 그리스도'란 책에 실린 ‘엔도 슈사쿠와 물의 성사(聖事)‘를 읽다가 장마비를 의미하는 매우梅雨와 안개비를 의미하는 무우霧雨를 알았다.(매화 매와 비 우를 쓰는 글자가 장마비라니..아닌 게 아니라 매; 梅에 장마라는 의미가 있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엔도의 작품에서 인간은 물을 통해 생과 죽음의 영역을 왕래한다. 또 물을 통해 인간은 다른 종교와도 만나게 된다. 물은 신의 은총이 인간에게 부어지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45 페이지) 아, 관불식(灌佛式)이 있지. 이제 이런 관념적 상상은 그만 접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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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 - 세계 1위 미래학자가 내다본 로봇과 일자리 전쟁
제이슨 솅커 지음, 유수진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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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 금융 예측가이자 미래학자인 제이슨 셍커의 책이다. 자동화와 로봇 시대를 전망한 이 책에서 저자는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로보칼립소 혹은 로보토피아란 말이 있다. 로봇으로 인해 맞이하는 파멸적 상황 혹은 로봇으로 인해 맞이하는 유토피아적 상황을 말한다.

 

물론 저자는 차분히 분석한다. 저자는 인간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은 투자대비수익률에서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을 것이고 창출되는 일자리도 있을 것이다. 낮은 교육 수준과 기술이 필요한 일은 사라질 것이고 더 많은 교육과 기술이 필요한 직업과, 많은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직업의 전망은 밝다.

 

고용주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하고 자동화는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직업의 미래에 커다란 변화가 있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 미래가 무엇처럼 보일지, 어떻게 노동시장을 변화시킬지가 로보칼립스와 로보토피아 논쟁의 핵심이다.(62 페이지)

 

로봇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인간과의 진정한 접촉을 경험하는 일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로봇이 별다른 역할을 하기 어렵다. 로보칼립스논자들은 1) 사람들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고, 2) 모든 직업이 사라질 것이고, 3)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상실할 것이고, 4) 로봇이 인류를 집어삼킬 것이라 말한다.

 

중요한 점은 로봇 시대에도 고부가가치 일은 전망이 좋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운송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한다. 로보토피아논자들은 1) 자동화 시대가 오면 사람들은 더 많은 이동과 시간의 자유를 누릴 것이고, 2) 공급망이 변하고 최종 사용자와 소비자에게 창고가 더 가까워짐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고, 3) 상품과 서비스의 선택이 증가할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동화를 부추기는 사회보장제도란 말을 한다. 저자는 사회보장제도에 개혁이 없다면 점점 더 불어나는 정부 부채와 변화하는 인구 구조로 인해 자동화가 가속되고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 말한다. 일부 사상가들은 로봇에 급여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저자는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는 미국 경제에 자동화의 과잉이라는 중대 위험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키오스크(분식점, 패스트푸드, 푸드코트에서 고객이 직접 주문, 결제하는 시스템)은 저자는 보편적 기본소득의 맹점을 논한다. 저자는 재원 마련은 차치하더라도 1) 인플레이션의 심화, 2) 세금 인상, 3)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발전 저해, 4) 사회분열 등의 문제를 낳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보편적 기본소득의 길을 한번 따라가기 시작하면 그 어떤 금액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많은 기업 지도자들이 로봇세를 지지한다. 전체 8장 중 7장에서 저자는 답은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소득이 더 많다.

 

8장은 로봇 시대에도 끄덕없는 일자리란 장이다. 저자는 이런 제안을 한다. 1) 자동화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직업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라, 2) 가치 있는 기술을 배워라, 3) 산업, 기업 혹은 지역에 변화를 줌으로써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위치에 머무르라. 등이다.

 

눈에 띄는 말은 “기술을 내 편으로 만들어라.”란 말이다. 사람들은 일에서 삶의 목적을 찾는다고 한다. 저자는 앞을 내다보고 새로운 기술을 지렛대 삼아 경력을 발전시키고 코로나 19의 도전을 넘어 향후 회복의 긍정적 기회를 찾기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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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철학자 ’노자(老子)‘의 말이 소환되는 경우는 아주 제한적이다. 세상에서 물은 가장 상위의 선(善)의 표본이란 의미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할 때 정도다. 일정 정도 의미가 있지만 상선약수만을 이야기한다면 클리세를 반복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더구나 지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상선약수를 언급하는 데 그친다면 너무도 상투적이다.

 

의문이라도 드러내 함께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두보(杜甫)의 ’강한(江漢)‘이란 시가 있다. 강한이란 장강(長江)의 강과 한수(漢水)의 한을 합친 말이다. 우리의 한강과 아무 관련이 없지만 왜 한강이 아니라 강한인가, 란 궁금증에 해결책으로 시를 읽을 수도 있으리라.

 

이 시에 “양자강과 한수, 향수에 젖은 나그네, 하늘과 땅, 한 쓸모없는 선비”라는 구절이 있다. 싯다르타가 쉼 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며 깨닫는 과정을 그린 헷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연상하게 한다. 두보는 회한 또는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물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 그린 것이 아닐지?

 

주로 재인폭포를 드나들고 가끔 베개용암과 백의리층에 들러 물을 바라볼뿐인 나 역시 새 정서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잡아 리얼하게 표현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폭포 인근에 댐이 생겨 마을 입구까지만 운행하는 버스에서 내려 폭포까지 20여분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을 만난다. 내가 하는 생각, 떠오르는 생각 등...

 

하지만 폭포를 바라보며 갖는 생각이나 느낌에 비하면 볼품 없다. 이태호 교수의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같은 책을 비롯 조선의 학인들이 감행한 여행을 다룬 책을 보려고 한다. 이태호 교수의 책에는 박연포도(박연폭포 그림)를 겸재 정선의 실경(實景) 표현 방식으로 정의한 글이 있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재인폭포 이해를 위해 치르는 의식 같은 것이다.

 

5월에 세 차례(13, 20, 22일) ’연강임술첩 - 그 속에서 연천 풍경을 노닐다’ 공부가 예정되어 있다. 겸재가,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재인폭포에 대해 다루지는 않았지만 좋은 기회다. 연천은 어떻든 용암이 만든 검은 돌의 고장이다.

 

’제주 과학 탐험‘이란 책에 “용암이 식는 이유는 공기와 접촉했기 때문이다. 만약 용암이 물과 만났다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베개용암을 만들었을 것“(218 페이지)이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주상절리와 베개용암의 차이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연천 재인폭포 근처에 비가 와야 물이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비와야 또는 비온 뒤 폭포가 있다. 이 부분에서 제주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연천이 내륙의 제주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주에 비가 오고 나면 만날 수 있는 엉또 폭포가 있다. 엉은 절벽이나 벼랑을 의미하고 또는 입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엉은 엉알 해안이라는 말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엉알의 알은 아래라는 의미다. 마이클 브라이트는 ’손 안의 지구과학‘에서 폭포를 침식에 잘 견디는 암벽에서 물이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라 정의했다.(105 페이지) 이런 정의를 눈사람 만들 듯 크게 해 의미 있는 생각으로 이어가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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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경제 - 과거 위기와 저항을 통해 바라본 미래 경제 혁명
제이슨 솅커 지음, 최진선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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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셍커의 ‘반란의 경제’는 과거의 일들이 단기, 중기, 장기적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쓴 책이다. 과거의 일이란 저항과 혁명을 의미한다.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금융 예측가이자 미래학자 중 한 사람인 저자는 저항과 혁명을 둘러싼 15가지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분석했다.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대혁명, 의화단 사건, 러시아혁명, 프라하의 봄, 소련 붕괴, 아랍의 봄 등이다.

 

혁명을 일으키는 주요 결정 요인 중 하나는 민중의 배고픔이다. 저자는 미래학자는 금융시장처럼 변동성이 크고 단기적 움직임을 보이는 분야를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래학자는 의사결정자들이 과거의 트렌드, 변화의 주된 요인, 현재의 현실을 반영해 미래를 바꿀 핵심 수단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고 또 바뀌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불확실하고 가변적인 상황에서도 미래의 잠재적 비전과 전개될 방향을 공유하는 것은 중요하다. 저항과 혁명을 유발하는 여섯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전반적으로 열악한 경제 조건, 2)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경제적 기회 부족, 3)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 4)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외국의 영향, 5) 가까운 시일 내 대규모 무력 충돌에서의 패배, 6) 정치적 대표성의 결여 등이다.

 

저자는 실패한 혁명은 논의하지 않았다. 저자는 대공황 시절 참담한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것이 미국의 큰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 독립혁명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혁명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미국 독립혁명의 주요 동인을 이렇게 본다.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경제적 기회 부족,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 정치적 대표성의 결여 등이다.

 

저자는 프랑스대혁명의 주요 동인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여섯 가지 요인 중 가까운 시일 내 대규모 무력 충돌에서의 패배를 제외한 모든 요인이 제시된 것이다. 15가지 사건 중 의화단 사건도 포함되었다. 이 사건은 청나라 말기 1899년 11월 2일부터 1901년 9월 7일까지 산둥 지방과 화베이 지역에서 의화단이 일으킨 외세 배척 운동이다.

 

민중들의 배고픔이란 말을 했거니와 트로츠키는 1905년 혁명 이전의 러시아 경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매우 낮은 생산성을 보이는 어느 유럽 국가보다도 러시아는 현재 3배에서 4배 가량 더 가난하다.”1905년은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시기다.

 

저자는 1917년 러시아를 가난이 세운 사회주의 국가라 표현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레닌이 내건 슬로건은 “평화, 빵, 땅”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도시 노동자계층의 지지를 받아 1905년 혁명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진행되었다. 레닌과 트로츠키를 주축으로 하는 공산당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치러야 했다. 구체제를 옹호하는 왕정파 백색군과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혁명파 적색군의 수년간의 장기적 전쟁이었다.

 

내전은 백색군의 분열과 민중의 지지에 힘입어 1920년 11월 볼셰비키의 적색군이 최후 승자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1922년 12월 30일에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소련을 결성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긴 했지만 무늬만 민주주의 국가였다. 악명 높은 헌법 48조항 때문이었다. 정부가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이었다.

 

이 조항으로 인해 1933년 히틀러의 정권 장악이 가능했다. 히틀러의 정권 장악을 마흐터그라이풍이라 부른다. 1930년대의 대공항으로 최악의 상항이 전개되자 독일은 나치에 투표했다. 놀랍게도 저자는 여섯 요인 모두가 1933년 나치의 권력 장악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한다. 쿠바 혁명은 정치적 투쟁이자 경제 개혁 혁명이다.(77 페이지)

 

1968년 미국에서 인종 차별 시위가 벌어졌다. 1968년은 유럽에서 프라하의 봄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봄은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과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외국의 영향으로 인해 발생했다. 저자는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경제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렇기에 문화 혁명에 가깝다고 덧붙인다. 1989년 소련은 경제난에 무너졌다.

 

특정 나이대의 미국인들은 코로나 19 팬데믹을 경험하며 특별히 충격을 받았다. 식품, 화장지 등의 생필품이 동이 나는 것을 보면서 구소련을 떠올린 것이다. 저자는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의 구절을 인용한다. “어떻게 파산하셨어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네요. 천천히...그러다 갑자기!” 저자는 놀라운 미국의 부채 수준을 우려한다. 미국은 205년이 걸려 부채가 1조 달러에 도달했으나 2020년 2/ 4분기에는 매달 약 1조 달러씩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중앙은행에서 새로 돈을 공급하는 양적 완화가 지속 가능성에 마냥 좋은 신호만은 아니라고 말하며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공통분모가 존재하지만 강대국간의 패권 경쟁과 SNS가 불만과 동요의 씨앗으로 무기화될 것을 우려한다.

 

저자는 NOISE를 말한다. Necessities(필수품), Occupations(직업), Information(정보), System(시스템), External(외부 요인)을 말한다. 필수품은 식량, 물, 에너지, 주거지, 안전 등을 말한다. 직업은 일, 직업, 취미를 말한다. 정보는 정확하고 안전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시스템은 금융, 보건, 대중교통, 교육 등을 말한다. 외부 요인은 국제 관계, 군사, 공급망, 무역 등을 말한다.

 

저자는 국가 안보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를 언급한다. 1) 할리우드식 해피엔딩, 2) 무역 전쟁 데탕트, 3) 최고의 친구이자 적, 4) 대리전 등이다. 저자는 우리의 경제와 사회는 많은 위험성과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한다. 차분하게 부정적인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도록 스스로 준비하자고, 이후 좋은 날에 있을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며 미래를 계획하자고 말한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두루 담았고 특히 혁명의 여섯 가지 요인을 제시한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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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實, 세계를 만들다 - 실천을 둘러싼 철학 논쟁들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16
김선희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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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지성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실(實)이란 개념은 언제나 전환의 논리. 변화의 지향점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요 논지다. 실(實)을 주제로 책을 쓸 때 어려웠던 점은 학자들마다 큰 변별점을 찾기 어려운 일반론이 반복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은 인간의 인식 여부와 관계 없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성리학자들은 자주 우주의 근원적 진리를 뜻하는 이(理) 앞에 실(實)을 붙여 실리라 표현했다. 이가 공허한 개념이 아니라 실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공자는 명(名)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사물이나 직함의 명칭을 바로잡고 정리하겠다는 의미나 사회적 준거틀을 질서 있게 정리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 사회적 준거와 틀인 개별적인 명칭과 명분이 그에 합당한 분명하고 의미 있는 실질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의미다.(21, 22 페이지)

 

공자는 명과 실의 관계에서 명을 사회가 따라야 할 표준의 이념으로 보고 실을 그에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 이후 유가(儒家)에게 명과 실의 일치 문제는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정치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제재라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성격을 띤다.

 

명과 실이 함께 다루어지지 않은 ‘논어’와 달리 ‘맹자’에는 그 둘이 하나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맹자는 공자와 달리 명과 실의 관계에서 명의 보편성이나 안정성보다는 실의 차원을 더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맹자가 공자가 제안한 정명 즉 올바른 이름과 적절한 명분의 사회적 실현을 중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차라리 맹자는 실의 의미를 더 강화하고 세분화했다고 할 수 있다. 노자는 한정된 인간의 사유와 인식 능력에서 비롯된 언어로는 항상 변화하는 우주의 실재를 포착할 수 없다고 보았다. 유가 입장에서 정명(正名; 명칭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의무를 부과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한 통치법이지만 노자 입장에서는 통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장자는 이름을 실질의 손님이라 표현했다. 순자에게 이름과 그에 맞는 실질은 사회 정치적 질서의 토대였다. 명과 실에 관한 순자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름을 제정하여 실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름이 규정되지 않으면 사물의 명과 실이 뒤얽혀 사물의 실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순자는 명을 고정불변하는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 과정과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기능적인 규약들로 이해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 규약을 혼란 없이 지키기 위해서는 이름이 반드시 실제에 대한 이해와 고찰을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성리학자들에게 실은 이론적으로 긴장을 유발하는 개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실학이라 불렀다.

 

이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학풍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리학의 입장에서 공리공담에 치우친 불교나 도교 등 경쟁하는 학문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하던 일종의 자기 지칭이었다. 성리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이를 실리(實理; 인의예지라는 근원적 가치)라 부르고 이를 담고 있는 마음을 실심(實心)이라 불렀다.

 

이는 세계를 구성하는 보편 원리이자 도덕적인 가치다. 성리학에서 실(實)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 세계이자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참된 원리 즉 세계가 올바른 방식으로 살재한다는 이념이기도 하다, 성리학에서 실은 성(誠)이기도 하다. 성리학이 성즉리를 말했다면 양명학은 심즉리를 말했다.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 중 하나는 사람의 마음 밖에 별도로 형이상학적 원리이자 도덕적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곧 도덕 원리라는 심즉리 이론이다. 성즉리라는 성리학의 이론은 왕양명이 보기에 이와 기, 본성과 마음을 이원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마음과 본성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왕양명은 마음과 그 마음의 일상적 작용이 곧 도덕적 원리의 실천이라 보았다. 왕양명을 계승했거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추상적인 원리로서의 이를 사변적으로 규명하려는 태도를 텅 비어 있는 학문 즉 허학(虛學)이라는 말로 비판하며 이미 도덕적 기준과 실천적 능력을 담고 있는 마음의 현실적 실천을 강조하는 자신들의 학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실학이라고 주장했다.

 

명말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일군의 학자들은 더 이상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실제의 일에서 실질적인 증거들을 확보해 실질적인 실천과 개혁을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후기의 특별한 학풍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전 실학은 시나 산문을 짓는 문학적 글쓰기와 다른 경학을 의미했다.

 

물론 경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실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경서를 텍스트로 하는 과거 공부조차도 일종의 실용적 기술로 치부했다. 오직 성리학의 근본적 이념에 대한 진정한 탐구만이 실학이었다는 의미다. 율곡 이이만큼 실을 중시하고 다양한 개념을 활용한 조선 유학자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홍대용이 스승인 미호 김원행으로부터 배운 학문은 성리학이었다. 김원행은 조선 후기 호락논쟁 즉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를 두고 벌인 논쟁에서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주장(낙론洛論; 인물성동이론)한 핵심 인물이다. 권상하, 한원진 등은 인물성이론(호론; 湖論)을 주장한 사람들이다. 홍대용은 실심에서 실사로, 실사에서 실지로 향하도록 실의 태도를 모든 영역에 확장하고자 했다.

 

성리학과 대별되는 역사적 실체로서의 실학이 존재하는지, 그 개념이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쟁은 완결되지 않았다.(83 페이지) 실을 강조하는 학문적 경향과 관련하여 다른 유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약용이 성리학의 이론적 토대인 이 개념과, 이가 곧 우리의 본성이라는 이론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정약용의 관점에서 실심은 마음의 본체가 아니라 도덕적인 각성을 통해 매순간 실천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실학은 국가를 새롭게 개조해줄 서양 과학의 다른 이름이었다. 실, 그리고 실학은 통시대적인 개념이었다. 어느 시대고 나름의 학문으로 존재했다는 의미다. 일제 강점기 일군의 학자는 실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조선 후기에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학풍이 존재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현재 실학자로 분류된 학자들의 사상이 모두 사회개혁적인 것만은 아니며 더 나아가 반성리학적이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94 페이지) 성호 이익은 서양 과학 지식을 높게 치고 실용적인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조선의 주자로 추앙받았던 퇴계를 평생 존숭했으며 그의 학문을 계승하고자 노력했다.

 

천문학, 수학, 지리학, 의학, 기계 제작 등 사변적인 이론논쟁보다 백성의 삶에 유용한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한 것을 곧바로 근대성의 추구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더구나 실학과 성리학을 대척점에 있는 학문으로 규정하는 것은 20세기의 관점이다. 당시 조선 후기 학자들에게 성리학과 실학 사이에 강력한 긴장이 존재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문제는 실학에 대한 연구에 지나치게 근대성이란 틀을 적용하려는 연구 태도다. 맹자는 먹이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가축으로 대하는 것이고 사랑하지만 공경하지 않는 것은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어 공경은 물질적인 것이 오가기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그 실질이 없다면 군자는 헛되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실이라는 개념을 통해 진실과 진정성이 없는 관계를 비판한 것이다. 순자는 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명과 실의 불일치 또는 불안정에서 찾았다. 순자는 실보다 명을 중시했다. 공자는 실질적 내용이 겉모양보다 뛰어나면 투박하고 겉모양이 실질적인 내용보다 뛰어나면 번지르르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채(文彩)와 실질이 적절히 조화된 뒤라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점은 공자가 말의 내용에만 마음을 쓴 것이 아니라 표현에도 마음을 썼다는 사실이다. 공자가 지나치게 말을 잘하는 사람을 경계했다면 순자는 말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군자의 본질로 여겼다. 물론 순자의 의도는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선왕과 예악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장자는 치우치지 않지만 양쪽의 평균을 구하지도 않는 조화의 상태를 천균(天均)이라 부르고 그 천균에서의 행위를 양행(兩行)이라 불렀다. 성리학의 관점에서 명과 실은 어느 한쪽도 폐기할 수 없는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송대 성리학자들에게 명과 실은 상호 긴장관계에 놓여 있을뿐 아니라 형식과 내용처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주희의 제자가 주희에게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논어’의 구절에 대해 물었다. 이 구절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유사하지 않느냐고 묻자 주희는 불교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여기고 삶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면 얼마든지 삶을 포기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유학의 도는 삶을 하찮게 여기거나 죽음을 중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도를 깨닫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고 답했다.(159 페이지)

 

유학은 실의 학문, 불교는 허망한 학문이라는 말이다. 성리학적 맥락에서 실리(實理)와 실심(實心)은 우주의 근원적인 이치가 인간과 아무 관계 없이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인 마음에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개념쌍이다.(161 페이지) ‘중용장구’에는 치우치지 않음은 중(中)이고 변치 않음은 용(庸)이라고 한다는 구절이 있다.

 

‘논어집주’에는 명성을 추구하는 일과 잇속을 추구하는 일은 고상함과 비루함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탐욕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은 같다는 말이 있다. 주희, 정이천, 윤돈은 한결 같이 명과 실을 대비시키며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실질에 힘쓰려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주자어류’에는 ”요즘 공부하는 이들이 실지에 발을 붙이지 않고 항상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 비유하자면 밥이 있는데도 스스로 먹으려고 하지 않고 다만 문 앞에 펼쳐놓고 자기 집 안에 밥이 있다고 남에게 알리려고만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생각을 깨끗이 없애야 비로소 발전이 있다.“는 구절이 있다. 착실(着實)이란 실지에 발을 붙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진실하고 절실하다는 의미다. 왕양명은 성리학이 자기 내면의 완전성과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자꾸 외부에서 탐구한 이치를 통해 자기 마음을 보완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식이라면 결국 외부 세계와 내 마음이 둘로 나뉜다는 것이다.(174 페이지)

 

왕양명의 생각은 근원적 이치가 나의 마음과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마음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양지(良知)란 순간적인 결단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내 마음의 등불이자 지도를 의미한다. 양지는 내 마음 안에 들어온 천리라는 것이다.

 

왕양명이 양지를 강조한 것은 외부에 이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해도 내 마음이 스위치처럼 켜져서 외부 사물과 접촉하지 않으면 결국 그 이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76 페이지) 후대 학자들은 왕양명의 주장을 주관 유심주의 즉 외부의 객관적 세계를 부정하고 마음만을 진실한 것으로여겼다고 비판하지만 그의 의도는 외부 세계와 내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 것, 객관 세계와 주관 세계가 양분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추사는 실사구시를 유학의 학문적 이념으로 세우고 이와 다른 학풍들 즉 노장, 불교,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술을 거짓된 학문 즉 허학이라 비판했다. 시서화에 능했던 뛰어난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김정희 역시 요순우탕, 문무주공과 같은 고대 유학의 성인들을 높이고 그들의 가르침에서 진리를 도출하는 일을 진정한 실사구시로 파악하는 유학자였다.(20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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