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의 ‘비화림(秘花林)’에 이어 또 하나의 종로의 동네 서점을 알게 되었다. ‘초소(哨所) 책방(冊房)’이 그 주인공이다. 2020년 늦은 가을 문을 연 인왕산 자락의 서점이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세워진 인왕산 경찰 초소를 리모델링해 태어난 이 서점은 수성동 계곡에서 200여미터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수원화성길과 올해 7월 인사동 화랑길에 동행한 이 선생님께 시간 내 그 서점에 같이 가자는 톡을 보냈다.(이 선생님과 5년 넘게 친구로 지내고 있지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처음이다.) 동네 서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올해 3월 연천 전곡에서 오픈한 달달(달리는 달팽이) 서점으로 인해서다.

 

대형 인터넷 서점을 주로 이용하는 입장에서 작은 서점을 들르는 일에는 나름 의미가 있다. 내가 관심 두지 않는 분야의 책들에 대한 독서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이 그 하나다. 지난 2018년 혜화동의 송석복지재단을 통해 들은 강의의 진행자가 운영하는 성남의 작은 책방(블로그)에 들어가서 알게 된 바는 내가 너무 인문 독서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지질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 역사, 서울 문화 답사 등에 비중을 둔 결과 인문이나 고전 등에 소홀한 것이다. 올해 어제까지 모두 88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중요한 점은 이런 정도의 추세라면 주역(周易)과 고전 또는 동양 철학 공부는 물론 니체, 베르그송, 스피노자 등 서양 철학 공부에도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란 점이다.

 

철학과 인문학은 다르기에 그 차이에도 주의해 시간을 써야 할 것이다. 모든 학문은 하나로 통하기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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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 '뉴라이트 역사학의 반일종족주의론' 비판
이철우 외 지음, 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 기획 / 푸른역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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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는 사학자들 다수와 몇몇 의사학(醫史學), 법학(法學) 전공자 등 18명의 필자들이 참여해 뉴라이트의 논리적 모순을 논파한 책이다. 사실에 입각하되 체계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대중적인 글‘을 집필 원칙으로 삼아 쓴 책이다. 출판사의 편집부에서는 책이 너무 차분하고 객관적이다 못해 냉정하게 비치기도 해 더욱 호소력이 있다고 평한다.

 

이철우는 한국은 법적으로 유효하게 일본의 일부가 된, 승전국도 식민지도 아닌 나라였었기에 일본에 대해 어떤 배상 청구의 근거도 가지지 못한다는 논리의 모순을 제기한다. 뉴라이트 학자들은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수탈하고 억압했다는 주장은 과장되었거나 터무니없으며 일제는 법치와 자본주의 교환관계에 의해 경제활동을 전개했을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써야 할 말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수출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출(移出)이 늘었다는 말이다. 중요한 사실은 당시 우리가 이룬 증산분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이 일본으로 유출되어 우리가 식량 부족을 겪었다는 점이다. 산미증산계획과 일본으로의 쌀 이출로 이익을 본 것은 일본인 대지주와 소수의 조선인 지주에 불과했다.

 

당시 우리에게 경제 발전은 혜택없는 개발에 지나지 않았다. 박한용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사람들의 주장에 숨은 의도를 밝힌다. 그들의 주장이 이루어지면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나 임시정부의 공로와 무관하게 세워진 것이 되고 해방 후 3년간 피어린 반공투쟁에 나선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되는 것이다.

 

또한 노덕술, 김성수 같은 특급 친일파들은 건국의 공로자가 되고 민족주의자로서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조차 반국가 사범이 된다. 가장 큰 문제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뉴라이트들이 민주주의라는 말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은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49 페이지)

 

끝없이 확장되는 민주주의라는 영역에 굳이 자유라는 접두어를 고집하는 저의를 바로 파악해야 한다. 전재호가 말했듯 뉴라이트 진영에서 우리를 종족으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를 미개한 부족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다. 반일종족주의는 야만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야만으로 몰아붙이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한국 병합은 합법적이었고 따라서 국가총동원법이나 국민징용령을 일본 국민이었던 한국인에게 적용한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인은 명확하게 차별받았고 권리보다 의무가 앞선 예속민이었다. 당시 한국인에게 보통 선거든 제한 선거든 국정 참정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황상익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이라는 사이트가 제시하는 의사 수 그래프만 보면 일제와 그 추종자들이 식민지 통치의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우는 보건의료 분야의 근대적 발전을 사실인 양 오인할 수 있지만 그 그래프가 감추고 있는 이면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반일 종족주의자들은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우리의 주장을 공격한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제기된 구체적 피해 사실에 대해 반증하지 못한 채 그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만을 하고 있다. 의아한 것은 일본 기업과 재판소가 인정한 가해 사실을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냥 식민지가 된 게 아니다. 밖으로부터의 침략만으로 무너지는 나라는 없다. '반일종족주의'는 또다시 식민지적 상황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는 매우 유용한 책이다"(106 페이지) 김창록의 인상적인 말이다.

 

정태헌은 제국주의는 식민지에서 거둬갈 파이를 키우기 위해 무자비한 약탈과 더불어 수탈의 원천인 잉여가치 규모를 키우는 개발을 병행함을 지적함과 아울러 방임된 시장경제만으로 또는 국가의 뒷받침 없이 기업가만의 힘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전개된 경우는 없었음을 논한다. 조선인은 1인당 미곡 소비량에서 공출이 자행된 전시체제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인 1911~1934년에조차 격감(0. 786석에서 0. 379석으로)했다. 단순 노무직에 집중된 고용구조 때문에 기술 이전 효과도 논하기 어려웠다.

 

황상익은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의원을 세운 배경을 논한다. 일제가, 대한제국이 1899년 자주적으로 설립해 운영한 의학교(국립의과대학)와 광제원(국립병원)을 1907년 강제통합해 세운 병원이 대한의원이다.(81 페이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서유럽 식민지들과 달리 일본은 한반도를 많은 일본인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 즉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일본인들을 위한 병원을 세웠다.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 정부가 거액의 일본 차관을 들여와 최상급 의료기관을 짓게 했다. 물론 일제는 대한제국의 의료 발달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의 가장 큰 문제였던 전염병에 대한 통계조차 세우지 않았다. 일반 병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강성현은 역사적 사실을 인멸한 자들이 엄격한 실증주의자를 자처하는 현실을 개탄한다.(166, 167 페이지) 두더지 게임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논박하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다른 이론이나 사실을 들고 나와 반박해보라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30 페이지) 강제 연행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강성현에 의하면 그것은 증거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다.

 

증거를 제시하더라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거나 일부분에 대해 인정하더라도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하든지 예외에 해당한다고 하든지 남들도 그랬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책임을 회피한다.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도덕적 책임이지 법적 책임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해자가 가해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피해자에게 무한 입증을 요구한다.

 

그간 역사부정론자들은 일본군이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하기 위해 강제연행한 사실을 마치 시각이나 관점에 따라 다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프레임 싸움으로 몰고 갔다. 공창제 하에서 소개업은 필연적으로 인신매매가 조장되었다. 이를 자유 계약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극복해야 할 것은 사실의 진위와 무관하게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탈진실 현상이다.

 

변은진은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차이를 언급한다. 전자는 팩트의 문제고 후자는 팩트이면서 역사 인식과 관련된 문제다. 수많은 사실(事實) 가운데 무엇이 사실(史實)이 되어 기록되고 교육될 것인가는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역사인식의 문제다.(181 페이지) 변은진은 역사는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노력이 어우러져 변화, 발전하는 것임을 주지시킨다.

 

비록 한계가 있었지만 3.1 운동 이래 국내외 항일 운동 특히 일제 말 전시체제기에 국외의 항일 독립운동 세력이 중국, 미국, 소련 등 연합국 측에 합류하여 끝까지 일제의 침략전쟁에 맞서지 않았다면 한국 현대사의 방향은 더 어렵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항일독립운동이 있었기에, 그리고 3.1 운동을 통해 전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분출시켰기에 카이로 회담 이래 연합국의 전후 처리 논의 과정에서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을 당연히 독립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도출되었을 것이다.(184 페이지) 변은진은 항일운동사는 과잉 평가된 게 아니라 여전히 덜 밝혀지고 미평가된 역사라 말한다.

 

김정인은 역사 교과서의 의미를 짚었다. 그에 의하면 보수 우익에게 교과서는 정권의 명운을 건 만큼 반드시 전유해야 하는 이념적 무기였다. ’반일종족주의‘는 식민지 수탈론 비판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 김헌주는 ’반일종족주의‘는 학술서적인 측면이 있지만 학술서를 표방한 대중서이자 정치적 선전물에 가깝다고 말한다. 김헌주에 의하면 이 책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반일 민족주의라는 개념 대신 굳이 종족주의라는 1차원적이면서 인종주의적인 개념을 내세웠다.

 

김헌주는 '반일종족주의의 자가당착의 논리적 모순을 제기한다. 그 주의가 기획된 것은 이승만학당의 유튜브 강의에서였다. 해방 이후 1997년 정권교체 이전까지 50년 동안 이승만 정권을 계승한 정당이 권력을 잡았고 '반일종족주의'는 그때 절정에 달했다. 또한 그들이 극찬하는 국부 이승만도 반일 민족주의자였다.(233 페이지)

 

이승만은 한미일 삼각동맹을 이루기 위한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반일정책을 펼쳤다. '반일종족주의'는 한국의 문명수준을 원시적 단계로 설정했다. 그런데 자유시장경제를 도입하고 호모 에코노미쿠스적 인간형을 구축하며 북한과의 체제 대결을 시도한 것이 그들이 예찬하는 이승만이었다. 이승만 정권 이래 반세기 동안 지속된 자유주의 근대문명이 십수년에 불과한 좌파정권에 의해 원시회귀했다는 주장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서승은 맥아더가 천황을 죽이는 대신 인간선언을 하게 하고 왜소한 천황의 사진을 각 신문의 1면에 보도하게 해 신격을 박탈한 상징 천황을 미군 점령 정책의 수족으로 활용했고 일본은 냉전으로 인해 생긴 장벽을 기화로 이웃 나라들에 끼친 침략 및 식민지 지배 책임을 모른 체 하며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서승에 의하면 일본과 일체가 된 친일파는 세계적 구조 변화 속에서도 냉전시기의 떡고물을 잊지 못하고 냉전의 지속을 바라는 세력이다. 개별적인 능력이나 외모에서도 일본인과 유사하고 문화적으로 앞선 조선을 지배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을 철저하게 열등한 존재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반공과 북한 적대를 내세워 한국 정부를 구태의연한 한미일 군사동맹의 틀 안에 묶어놓으려고 끊임없이 싸웠다. 이는 일본 중심의 반공, 반중국의 동아시아 세계를 복구하려는 의도의 결과다. 서승은 일제 잔재라는 용어보다 친일 레짐(regim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레짐이란 용어를 써야 정치, 군사, 경제적 패악과 제도적 의미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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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사회를 위한 통합적인 접근
건국대학교 생태기반사회연구소 엮음 / 소명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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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사회를 위한 통합적인 접근'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필자들이 생태를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간 책이다. 편집은 건국대학교 생태기반 사회연구소가 맡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생태라는 개념이 독일에서 탄생(20페이지)했으며 거기에 상호연관성, 순환성, 지속성, 역동성 등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건국대학교 생태기반 연구소 소장 사지원은 생태사회를 위한 독일 작가들의 활동과 생태문학을 다룬 글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으로 불린 베티나 폰 아르님의 사고가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태학적 세계관과 같은 맥락에 있음을 논했다.

 

크리스타 볼프는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끝까지 평화를 추구하는 학문은 오로지 문학이라는 말을 했다. 사지원은 우리나라에서 생태와 환경이라는 개념이 구분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으며 생태라는 개념이 남발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귀기울여 들어야 할 말은 생태소설은 고발과 비판을 넘어서는 '실천하고자 하는 강력한 희망'이 담긴 에코토피아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양해림은 생태학과 경제학이 집을 의미하는 eco에서 공히 기원했다고 언급하며 살림살이는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며 전 가족의 생명을 책임지는 고귀한 생명 살리기라는 말을 했다. 생태학이란 명칭이 구체적으로 명명된 것은 1866년 독일의 생물학자 헤켈에 의해서다. 현대 생태학은 자연계는 질서정연한 체계를 이루고, 개체는 독립적으로 살 수 없으며 인간중심주의는 더 이상 지지될 수 없다는 관점을 갖는다.

 

양해림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아닌 다른 생명의 입장에서 사고할 것을 요구하는 역설적 궁지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의 대립 속에서 설정되는 특권적인 자리를 제거하는 것이며 인간을 포함하는 순환계의 입장에서 인간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이병민은 스페인 동북부의 작은 탄광도시이자 바스크 분리주의자의 테러도시로 악명이 높았던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로 스페인의 핵심 문화창의 도시가 되었지만 전 세계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양산됨으로써 예술계의 맥도널드라는 오명을 썼음을 지적한다. 이병민은 도시의 공공성을 지향하고 지역의 기존자산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문화자산을 문화적 재생산의 오브제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세계는 4차 산업혁명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편리와 풍요의 미래가 보장된다 해도 기후환경 위기를 방치한다면 안전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시점에 처했다.(136 페이지)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으로 묶어두는 목표를 이루려면 온실가스를 대폭 줄여야 하고 비용면에서도 3~4배의 노력이 요구된다.(147 페이지)

 

현재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도가 상승했다. 그렇기에 산업화 이전 대비 이미 1도가 상승한 현재 상승폭을 1.5도 ~ 2도로 묶어두기 위해 필요한 여유치는 0.5도에서 1도에 불과하다. 미국 스텐포드 대학교 마크 제이콥슨 연구팀은 2050년 미국이 화석에너지와 핵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만으로 100%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로드맵을 발표했다.(153 페이지)

 

정수정은 지속 가능한 삶과 관계에 대한 관심에 따라 통상적으로 과학교육의 영역으로 인식되어 온 지구사와 우주 관련 주제를 인간과 인간생활, 생명의 근원과 소중함, 공생과 상호관계, 우주 안에서의 인간 등 관계를 중심으로 재조명하고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주장한다.(178 페이지)

 

허순영은 미국의 인류학자인 엘라자베스 미셜 토머스의 '세상의 모든 딸들'을 언급한다. 2만년전 시베리아 남부의 중기구석기인들이 사냥 대상인 순록, 곰, 매머드 등의 이동경로를 따라 춥고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을 여행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 이 소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이후 1만년이 지난 1만년전 농경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인류에게는 발전이지만 자연 입장에서는 훼손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허순영의 말대로 인류의 후손들이 지구라는 별에서 더 오래 삶을 누리려면 더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유미연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지역만들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생물권보전을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만들기에 대해 논한다. 현재 124개국에 701개의 생물권보전지역이 지정되었고 접경생물권보전지역은 21개에 달한다.(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 MAB(Man and Biosphere) 한국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설악산(1982년), 제주도(2002년), 신안 다도해(2009년), 광릉숲(2010년), 고창군(2013년), 순천시(2018년), 강원생태평화(2019년), 연천 임진강(2019년) 등 8개 지역이 지정되었다.

 

북한도 백두산, 금강산 등 5개 지역이 지정되었다. 생물권보전지역은 핵심구역, 완충구역, 협력구역으로 나뉘고 보전, 발전, 지원을 기능으로 한다. 생물권보전지역은 법적 규제가 없는 국제적 규약에 의한 지역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시의적절한 책이다. 책이 나온 시점은 2020년 9월로 파리협정이 발효되는 2021년 1월을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바람직하고 시의적절한 이런 책이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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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한밤은 물론 새벽까지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숨막히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불합리의 극한은 섭씨 36, 37도를 오르내리는 한낮의 기온이다. 섭씨 37도 즉 화씨 99도 상황에서 유행하는 코로나 19는 임계점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든 24일 알라딘 분당 서현점에 다녀온 지 사흘만인 어제(27일) 다시 알라딘 강남점에 다녀왔다. 에어컨이 만들어주는 쾌적한 환경을 보고 낮에 20여분 걸어 도서관에 가기는 하지만 에어컨을 마음껏 틀 수 없는 집으로 다시 걸어 갈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아 시원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전철을 타고 책을 사러간 것이다.

 

전철로 주요 방문지인 종로까지 오고 가는데 3시간이 걸린다. 잘 활용하면 얇은 책 한 권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물론 에어컨이 만들어주는 상쾌함은 스마트폰에 빠지게 하는 빌미도 된다. 그 무의미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어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김 없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책은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최고의 존재다. 에어컨 플러스 책이라는 점에서는 대형서점도 전철이나 도서관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문화라는 복합의 고급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극한 감사거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매번 한 권 이상의 책을 사는 것으로 보답을 대신하고 있다. 어제도 사고 싶은 책이 눈에 띄었지만 그러지 않고 김 선생님 가게(달리는 달팽이)에 주문했다. 급한 책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은 이렇듯 놀라운 여유의 산물이다.

 

나로 하여금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전철에서 쾌적함을 누리게 하는 에어컨 자체가 책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책은 이 만큼 감사한 존재다. 책은 내용으로 나를 채워주고 마음까지 다독여주는데다가 에어컨으로 숨까지 잘 쉬게 해주는 평생의 친구다. 에어컨은 고온과 다습 때문에 종이가 변형되고 인쇄 품질이 나빠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캐리어라는 사람이 발명한 이기(利器)다.

 

서평단에 뽑혀 읽고 있는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을 낸 출판사의 한** 편집위원은 이 사실을 전하며 이 역사적 사실 때문만으로도 인류는 영혼을 끌어모아 책을 사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영혼은 모르겠고 내 경제 사정에 비해 적지 않은 몫의 책을 지속적으로 사니 충분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책이 선사하는 혜택은 나무가 선사하는 혜택으로부터 비롯된다.

 

최근 발레리 트루에의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중세 시대의 고온이 최근 수십 년간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에 추월당했다고 진단하는 연륜연대학자인 저자는 지구 날씨가 정신 나간 것처럼 요상하게 행동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워밍(warming)이 아니라 글로벌 위어딩(weirding)이 정확한 말이라는 말을 했다.

 

이 책에 혹독한 환경하의 나무들은 성장에 심한 제약을 받아 천천히 자람으로써 나이테가 아주 좁고 목질은 치밀한데다가 상대적으로 온화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들에 비해 아주 오래 산다는 내용이 나온다. 궁금한 것이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로 만든 종이는 그렇지 않은 나무로 만든 종이에 비해 고온과 습기에 얼마나 강할까?란 궁금증이다.

 

폭풍이나 태풍이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잎을 뜯어내면 나무는 광합성 능력을 잃는다. 나이테 기록은 가뭄이나 극단적인 기온 변화뿐 아니라 홍수나 폭풍 같은 다른 극한 기후를 재구성하는 데도 활용된다. 폭풍 또는 태풍이 광합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처럼 책과 에어컨(의 발명) 역시 관련이 있을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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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풍경 - 역사가는 과거를 어떻게 그리는가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강규형 옮김 / 에코리브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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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현대사가 중 한 사람인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1941 - )의 ‘역사의 풍경’은 역사와 역사가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다. 우리에게 익숙한 카스피르 다비드 데이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를 설명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 저자는 인문과 자연과학에 대한 풍부한 소양을 바탕으로 논의를 플어나갔다. 이 그림을 풍경에 대한 지배와 한 개인의 하찮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한 저자는 역사의식의 성숙함도 자신의 중요함과 하찮음을 동시에 남겨준다고 주장한다.(24 페이지)

 

역사가는 멀리 지평선에 보이는 모든 것을 화폭에 담을 수 없음을, 또는 과거의 특정 시기조차 일어난 모든 것을 책에 담거나 강의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역사가는 진실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도 성장 과정의 일부로 여겨야 하며 스스로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역사가는 너무 적은 정보와 너무 많은 정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묘사와 추상적 묘사 사이의 균형 인식을 의미한다.(29 페이지)

 

역사가는 선별성과 동시성, 스케일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능력을 갖는다. 역사가가 시간 여행에서 스스로 과거에 의미를 부과하는 것, 과거를 탐구하지만 현재에 머뭄으로써 주도권을 쥐는 것을 선별성이라 한다. 선별성보다 더 대단한 것은 동시성으로 이는 한 공간이나 시간보다 더 많은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스케일이란 거시에서 미시로, 미시에서 거시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능력을 말한다.

 

저자는 에드워드 핼릿 카를 인용한다. 카는 분류와 관련한 문제들에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고 역사가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에 필요 이상으로 근심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65 페이지) 카는 지질학에서 찰스 라이엘이나 생물학에서 찰스 다윈이 이룬 업적은 과학이 정적이고 시간적 제한이 없는 대상을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다루게 된 것이라 말했다.

 

천문학, 지질학, 고생물학 또는 진화생물학과 같은 학문은 도저히 연구실 안에서 그 학문적 대상을 다룰 수 없고 평생을 지켜봐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학문은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s)을 이용한다. 이들이 역사를 재실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상상력에 기대는 것이지만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69 페이지) 지질학자나 고생물학자와 마찬가지로 역사가들은 과거에 있었던 것 중 대부분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거의 모든 일상사는 아예 적당한 기록조차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생물학자나 천문학자들처럼 그들은 애매하거나 때로 상충하기까지 하는 증거들과 씨름해야 한다. 역사에서의 상상력이란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료와 관련되고 자료에 의해 한정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지질학자도 몇 킬로미터 이상 몸소 지표면을 뚫고 들어가본 적이 없지만 땅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 지상에서 어떻게 대륙을 움직이고 지진을 일어나게 하는지 자신 있게 설명한다. 어떤 화석학자도 실제로 공룡을 본 적이 없지만 공룡이 어떻게 살았고 죽었는지를 어린이는 물론 동료들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재구성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어떤 천문학자도 지구 궤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지만 그 제한적인 관찰자의 위치에서도 우주의 지도를 그려낸다.(74 페이지) 합치라고 번역한 consilience는 통섭이라고 많이 쓰는 단어다. 19세기 케임브리지의 한 과학철학자인 윌리엄 웨웰(William Whewell)이 처음 쓴 이 단어는 한 주제에 대한 동떨어진 부분들로부터 도출된 결과가 예기치 않게 일치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쓴 개념이다.(83 페이지) 이 개념을 부활시킨 사람이 에드워드 윌슨이다.

 

‘변수의 상호종속성‘이란 장에서는 환원주의와 생태주의의 차이에 대해 알 수 있다. 환원주의는 현실을 여러 부분으로 쪼개어 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주의에서는 중요도 순으로 원인의 등급을 매기는 것이 필수적이다. 즉 독립변수라는 것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다. 물론 생명체의 진화과정이나 대륙의 이동, 은하의 형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경우 너무 많은 것들이 다른 것들에 종속되어 있기에 설명 대상을 함부로 하위 영역으로 쪼갤 수 없다.

 

천문학, 지질학, 고생물학과 같은 과학은 현실의 생태학적 관점에서 기능한다.(조지 존슨은 환원주의가 소립자물리학에서조차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다.) 생태학적 접근법은 단순한 요소들의 상술(詳述)을 중시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각 요소들이 전체 시스템(구조)이 되기까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고려하며 본질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동등하게 본질적인 우주 내에 그 요소들을 위치시키려 한다. 환원주의적 관점이 배타적이라면 생태주의적 관점은 포용적이다.

 

저자는 원인의 다양성이나 시간의 흐름, 문화적/ 개인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과학자들과 기꺼이 계속 확산되는 변수들을 받아들이는 역사가를 구분한다. 역사가에게 특정 변수를 신성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호 연결성이다.(103 페이지) 저자는 역사가 헨리 애덤스와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 이야기를 한다. 애덤스는 "사람들의 탐구 수단이 점점 궁극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복잡한 환경 속에 내재하는 단순함을 찾고 그 후에는 단순함 밑에 깔린 복잡성을 찾아야 한다. 궁극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푸앵카레의 말을 인용했다.(11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푸앵카레의 위대함은 그가 선형적 관계와 비선형적 관계가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동일한 시스템이라도 그 안에서 단순성과 복잡성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음을 통찰한 데 있다.(120 페이지) 저자는 과학은 역사와 대단히 닮았다고 말한다. 이 세상은 어떤 것은 예측 가능하지만 또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며 규칙성이 있긴 하나 확연한 불규칙성과 함께 존재하고 단순성과 복잡성이 공존한다는 것이 푸앵카레의 견해다.(123 페이지)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을 주장한 굴드는 적자생존이라는 낡은 개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생명의 역사에서 우연성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주장했다. 그가 말한 우연성이란 각 생명체가 호의적인 진화상의 활동 범위에 운 좋게 맞아떨어졌다는 의미다. 굴드가 말한 것을 경로종속성(path dependency)이라 한다. 동작 과정의 초기에 일어난 사소한 사건이 궁극에 가서는 거대한 차이를 불러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 역사가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를 논한다. 그것은 이야기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회과학자가 또한 대부분의 역사가조차 인정했던 것보다 더 세련된 연구 도구로서 새로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128 페이지) 역사가는 한쪽은 자연과학을, 또 다른 쪽은 사회과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기에 좋은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역사가는 방법론적 열등감으로 고뇌할 이유가 없는데 그것은 물리학에 대한 동경이란 것은 역사가의 문제일 수 없고 적어도 은유적 측면에서 역사가는 이미 일종의 물리학을 잘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39 페이지)

 

역사 속에서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이 원인이 발생한 순간을 어떻게 잡아낼 수 있을까? 물리학에서는 상전이(相轉移)를 규명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와 같은 문제 풀이가 이루어진다. 상전이란 안정된 상태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변하는 임계적 상황을 말한다. 물이 끓거나 어는 상황이라든지 모래더미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상황, 단층선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상황 등이다. 시스템이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과 규모와 상관 없는 자기유사성을 가질 경우 임계성(臨界性)이라 한다.(135 페이지)

 

역사 속에 상전이 같은 것이 있을까? 역사가 클레이튼 로버츠는 상전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지만 그와 같은 것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로버츠는 “역사가가 궁극의 원인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때 본능적으로 추적을 멈추는 경계점이 있다. 이 경계점이란 역사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사태의 변동이 막 넘쳐나는 지점을 이른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이 말을 단속평형의 역사학적 버전이라 말한다.(151, 152 페이지)

 

단속평형이란 생물 진화가 지속적으로 매끈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고 불안정한 변동과 구두점 찍듯이(punctuated) 나타나는 긴 안정기가 불연속적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역사가는 결코 역사를 실제로 재현할 수 없다. 천문학, 지질학, 고생물학, 진화생물학 등이 시간을 재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사실적 사유는 매우 엄격한 훈련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반사실적 가정을 한꺼번에 냄비 속에 넣으면 안 된다. 그래봤자 어느 한 가지 효과도 낼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단일변수를 잡을 때 시대에 상응하는 기술과 문화의 영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과거에서 새로운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해도 현대의 변화된 시각을 바탕으로 과거를 향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과거가 무척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역사가는 최선을 다할 뿐이며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역사 연구의 결과물도 언제나 수정될 수밖에 없다.(160 페이지)

 

묘사와 사실 사이에는 경계가 존재한다. 이 점을 언제나 존중해야 한다. 원인이 아니라 결과의 간결성을 선호해야 한다. 역사가는 결과의 간결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원인을 적시하는데 간결성을 중시하는 사회과학자와 구별된다. 사회과학자는 과잉결정된 사건 즉 다수의 원인을 갖는 사건은 설명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본다. 역사가도 일반화를 한다. 하지만 일반화를 이야기 속에 포용하지 이야기를 일반화 속에 포용하지 않는다.

 

연구가 필요한 부분은 시간과 공간과 문화적인 면에서의 거리 때문에 상식처럼 보이지 않는 상식이다. 저자는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가 지적 습득의 방법적 순수성보다 늘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말한다.(167 페이지) 역사를 도덕의 언어로 사고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피해 가서도 안 된다. 저자는 역사가는 묘사와 사실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187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글이 자신에게 영감을 준 블로크나 카의 시각에서 꽤 많이 벗어나 헤매고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저자의 도덕적 당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에게서 도덕의식의 작용을 배제하려는 것은 인간의 특성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그러려면 차라리 물고기, 새, 사슴의 역사를 쓰지 인간의 역사는 쓰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한 저자와 달리 카는 소비에트 역사 전문가인 자신은 스탈린이 두 번째 부인에게 잔인하고 냉담했던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블로크나 카의 말에는 시대가 개인의 삶을 강제한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역사의식이란 하나의 성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성질들 간의 긴장으로 구성된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러면 역사 연구는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역사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고 역사가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직접 겪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203 페이지) 저자는 역사가는 과거를 명료하게 만들지만 그럼으로써 과거를 도망이나 배상, 항소도 불가능한 감옥에 감금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실제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은 접근 가능하지만 변형된 과거를 구성하는 것 즉 과거를 억압하고 그 자발성을 제약하고 그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라 말한다.(207 페이지) 물론 저자는 과거를 억압하는 역사가는 그와 동시에 과거를 해방시키기도 한다는 말도 했다. 저자가 대부분의 역사가보다 역사를 잘 이해했다고 표현한 굴드가 “우리의 선조들이 당연히 가질 수 없었던 현대의 지식에 비추어 그들을 판단하는 오만”을 역사가는 삼간다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가의 사유 목적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사회 내에서, 억압과 해방이란 양극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억압과 해방이란 성장하면서 스스로를 더 잘 돌볼 수 있고 독립적이 되지만 동시에 경험과 교훈, 의무와 책임의 망에 점점 얽매인다는 설명을 통해 드러난다. 저자는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종속이 필요하며 이는 곧 앞에서 말한 생태주의적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완전한 억압과 완전한 해방 모두 노예 상태로 이어진다는 말과 이어진다.

 

저자는 논문을 쓰라는 압력 즉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가하는 억압이 학생들에게 미래의 성장의 조건이 되고 교수들이 학생들로부터 받는 미숙하고 성가신 부담은 학생들을 가르침으로써 젊게 사는 미덕으로 인해 상쇄된다고 말한다. 질문 없이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고 결국 우리를 가르친다.(224 페이지) 저자는 앞에서 말한 카스피르 다비드 데이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의 남자가 보는 것은 앞(미래)인가, 뒤(과거)인가를 굳이 하나의 답으로 볼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둘 다라고 말한다.

 

‘역사의 풍경’은 독특한 책이다. 수미일관한 책, 억압과 해방의 적절한 긴장을 역설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내게는 굴드를 인상적으로 인용한 책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지 한 영역에 자리한 방문자센터에 그려진 그림 가운데 밤나무에 올라 이곳(현재)을 바라보는 구석기인의 모습이 있다. 이를 저자의 해석에 힘입어 과거와 미래를 함께 보는 것으로 설명하고 싶다. 언제 재독할 기회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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