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 - 고전에서 찾은 나만의 행복 정원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재형의 ‘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은 저자가 읽은 고전에서 길어올린 사색의 편린들을 다듬어 교훈의 형식으로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한 달에 50권 이상의 책을 읽는 분이다. 책은 6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 2장 우리는 사랑으로 산다. 3장 단 한 번뿐인 삶, 욕망하라. 4장 살아 있음이 곧 기적이다. 5장 내 삶의 의미를 묻다. 6장 행복해지고 싶을 땐 등이다.

 

각 장에는 세부 주제가 있다. 1장에는 자아, 여행, 독서 등이 있고 2장에는 사랑, 타자, 슬픔 등이 있는 방식이다. 자아에 해당하는 작품은 헤세의 ‘데미안’이고 여행에 해당하는 작품은 라이언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다. 모두 28편의 고전이 망라되었다.

 

첫 작품으로 호명된 헤세의 ‘데미안’에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초인(超人)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장의 제목인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은 우리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는 ’데미안‘의 구절에서 유래했다. 이런 방식의 유기적인 구성이 이 책의 특징이다.

 

책에는 은유가 풍성하다. 은유 없이 사유는 가능하지 않다. 삶은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말, 고전은 혼란스럽고 답답한 정신을 위한 영양제라는 말,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말,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말, 인생은 누군가가 헝클어놓은 실타래(페르난도 페소아)라는 말 등이 모두 훌륭한 은유다.

 

물론 이런 말은 계속 쓰면 진부해진다. 새로운 은유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책에 나오는 작품 중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는 비가 온다는 말을 하늘이 운다고 표현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에 시인은 우편배달부에게 그것이 메타포(은유)라고 말한다.

 

저자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다룬 슬픔이라는 장의 제목을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로 설정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는 말은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한 말이다. 사랑이라 했거니와 스피노자는 사랑은 외부 원인의 관념에 동반하는 기쁨’이라는 말을 했다. 스피노자는 사랑에 의해 완전히 극복된 증오는 사랑으로 바뀌는데 그것은 증오가 선행되지 않은 사랑보다 한층 더 크다는 말도 했다.

 

사랑에 의해 완전히 극복된 증오는 용서일까? 어떻든 스피노자는 욕망을 인간의 본질로 규정한 철학자다. 그가 말한 욕망이란 갖지 못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나타난 장애, 덫, 기회 등을 가로지르며 역량을 증대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왜 위대할까? 그것은 그가 역량 자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가난과 장애물들을 뛰어넘으며 자신의 역량을 증대시키려 노력했다. 인간은 어느 만큼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것처럼 평생 지속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고 하루 아침에 봄이 오지 않듯 사람도 하루 아침이나 단기간에 행복해지지 않으니 평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력은 기다림이기도 하다.

 

앙드레 지드는 기다림이란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말했다. 괴테는 노력하는 사람만이 방황한다는 말을 했다. 인간의 생애는 희망에 의해 끊임없이 기만당하면서 죽음의 품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도 있음을 기억하자.

 

저자는 절망 속에도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를 다룬 장에서 한 말이다. 안네는 글을 쓰는 순간에는 어떤 슬픔도 잊을 수 있었고 새롭게 용기가 솟아났다고 말했다. ‘안네의 일기’는 안네가 2차대전 당시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은신처에 숨어 살기 시작한 열세 살 때부터 2년 뒤 나치에 발각되어 끌려가기까지 써내려간 일기다. 저자는 자신이 소개한 고전 문학들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관건은 입문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혜나의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은 인도(印度), 요가, 파괴적 사랑, 식이장애, 깨달음 등의 키워드로 분석할 수 있는 소설이다. 저자는 인도 마이소르 아쉬탕가 요가 연구소에서 요가 아사나, 요가 철학, 산스크리트어 등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쓴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은 요가 수행 자체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은 아니지만 기법보다 중요한 정신에 대해 회의하는 형식으로일망정 많은 사유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요가 강사인 정윤희라는 여자로 그녀는 요한이라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이로 나온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윤희는 인도로 건너간다. 그녀가 단행한 것은 수행이기보다 여행이었다. 그녀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카르마의 문제점은 물론 요가 수행자들의 욕심 등을 불편하게 바라본다.

 

윤희는 요가에 대해 이런 의문점을 갖는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제어함으로써 요가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욕망이 모두 소진되어 무력해지고 마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61 페이지) 윤희는 사랑하는 사람 요한의 난치병을 보며 그에게 그런 삶을 허락한 신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몸부림친다. 윤희는 급기야 신의 섭리를 받아들일 수 없고 그렇기에 그런 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윤희는 요가 강사로서의 삶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 어느 곳에서도. 어느 누구에게서도 진짜 행복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왜 고통스러운 아쉬탕가 요가를 그만 두지 못하는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어디에서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다. 소설은 윤희가 한국에서 만난 요한과의 일을 한 챕터에 걸쳐 이야기하고 다음 챕터에서는 인도에서의 사건을 전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작품이다.

 

윤희는 교회에서 요한을 알게 된 이래 그의 작곡가로서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다. 본문에는 요가에서 가장 큰 죄악은 살인도 절도도 투기도 아닌 무지라는 말이 나온다. 무지의 늪에 빠진 사람은 끊임없이 죄악의 업보만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보는 드물게 만나는 것인 만큼 귀하다. 여덟을 의미하는 아쉬토와 나뭇가지 또는 단계를 의미하는 앙가의 결합어인 아쉬탕가는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서 제시된 요가의 여덟 가지 측면을 의미한다.

 

요가는 결합을 의미한다. 요한의 부모는 큰 자산가임에도 아들을 치료하느라 재산을 소진하고 요한은 몸 때문인지 병적인 의식을 보이기도 한다. 윤희는 요한의 그런 모습을 보며 요한도 맑고 환하게 빛나는 신의 아들이 아닌 더럽고 추악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음을 자책한다. 윤희는 식이 장애를 앓는다. 그녀는 새벽에 요가 수련만 마치고 나면 종일 자신의 손과 입에서 음식들을 떼어내지 못했다.

 

한국에서나 인도에서 그녀가 음식을 먹어치우는 것 외에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절제가 주요 미덕인 요가 수행자로서는 이례적인 일인 듯 하다. 윤희가 어릴 적부터 앓아온 폭식증이 재발한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아쉬탕가 요가를 수련하면서부터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녀가 인도로 오며 가장 바랐던 것은 그저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정량의 음식만을 먹으며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싶어서, 어느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어느 누구와도 대화 나누고 싶지 않아서 인도 마이소르 땅까지 도망쳐온 것인지도 모른다. 윤희는 요가 수행을 하는 지인 언니들의 위선(?)에 분노감을 표출한다. 물론 마음 속으로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한 줄 모르고 그저 더 많은 물질,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명예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무언가를 비우고 주어진 것에 순응하는 수련을 해나가는 요가의 세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 오히려 그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면서도 무언가 더 가지기 위해 요가까지 하는 사람들...”(232 페이지) 상당히 아픈 이야기다. 근본적인 것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요가 정신에 대한 반성적 성찰 못지 않게 윤희가 앓는 폭식증에 대해서도 상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은 윤희가 인도 여행에서 도움을 받은 케이와 나누는 이야기로도 눈길을 끈다. 어차피 똑같은 수련법이라면 왜 굳이 이곳 마이소르까지 와서 매일 수련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케이의 말에 윤희는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의 논리를 들려준다.

 

윤희는 아쉬탕가 요가를 접하고 새벽마다 똑같은 순서의 수련을 반복하다보니 차이란 반복되는 것들의 차이고, 반복이란 차이 나는 것들의 반복이라는 ‘차이와 반복‘의 철학이 받아들여지더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삶과 철학과 요가가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나무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 같다고 말하는 윤희는 회의(懷疑)하고 시달리니 어쩐 일인가?

 

새로운 깊이, 몸으로 부딪치는 현실의 접면이란 말을 차이와 반복의 문제의식으로 읊조린다. 요가라고 불리는 원초적 선정(禪定) 수행(일지 스님 지음 ’중관불교와 유식불교‘ 참고)이란 말도 아울러.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은 소설이 재미를 찾아가게 하는 것 만큼 수행과 철학을 생각하게 하는 경험을 드물게 느끼게 하는 책이다.

 

참고로 차문디 언덕이란 남인도의 옛 도시 마이소르에 자리한 언덕이다. 이곳에 1001개의 돌계단과 함께 그 위에 차문디 여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다. 차문디 언덕 계단을 오르며 동행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그것은 맨발로 산을 올라가는 고행이나 단식 또는 시바 신의 이름을 거듭 염송하는 것과 맞먹는 영적인 공덕을 가진다.(에리얼 글룩리크 지음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 참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병묵 교수의 과학 논문 쓰는 법
원병묵 지음 / 세로북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병묵 교수의 과학 논문 쓰는 법‘은 몇해 전 읽은 김기란의 ‘논문의 힘’에 이어 읽는 두 번째 논문 책이다. 나에게 논문 쓰기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이기에 참고용으로 읽은 책이다. “논문 쓰기는 delicate tension 과정의 연속”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delicate tension은 칸딘스키의 작품 이름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연구가 완결되어 데이터 정리가 가능한 상태에서 일주일만에 논문을 완성하여 투고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구자는 논문 쓰기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논문 작성에는 일정한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며 이것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과학 논문은 과학적 주제를 다룬 '논리를 갖춘' 글이다. 논리적 사고의 구조화가 논문 쓰기를 통해 우리가 진짜로 배워야 할 기초 역량이다.

 

논문 쓰기는 아주 능동적인 작업이다. 저자는 과학이라는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탐험가라면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언제든 길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구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는 과정이라면 논문은 연구에서 얻은 해답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글이다.

 

연구가 우수해야 훌륭한 논문을 쓸 수 있지만 연구를 잘 한다고 논문을 잘 쓰는 것은 아니며 논문을 잘 쓴다고 연구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논문을 왜 쓰는가, 무엇을 써야 하는가, 언제까지 써야 하는가이다. 사안이 정확하고 명확하면 굳이 힘주어 주장할 필요가 없다.

 

과학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글이고 매끄러운 글은 그 다음이다. 논문 쓰기는 주장할 내용이나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차근차근 글로 풀어 쓰는 과정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자신의 연구를 초등학생에게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논문을 쓰려면 무엇보다 연구 주제(글감)가 좋아야 한다.(43 페이지) 그 이후 주제가 잘 드러나도록 구성(틀잡기)을 잘 해야 한다.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 결론을 예상하고(초기의 예상이 결국 틀리는 경우도 많지만) 연구의 핵심 내용과 연구 방향을 포함하여 전체 틀을 잡아 보는 훈련을 하면 연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힘을 집중할 수 있다.

 

연구 노트에 적은 연구 내용을 참고하여 핵심 주제나 결론을 하나의 짧은 문구로 표현하는 훈련은 추후 논문 제목을 정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의외의 결론에 도달하면서 처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마무리되는 연구와 논문은 얼마든지 존재한다.(45 페이지) 수많은 원인으로 논문 작성에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을 왓슨 증후군이라 한다.

 

일주일만에 논문을 쓰는 순서는 이렇다. 1일; 제목과 초록(抄錄) 작성. 2일; 그림과 표 완성. 3일; 문헌 탐색과 정리. 4일; 서론 작성. 5일; 본론 작성. 6일; 결론 작성. 7일; 전체 조율 및 논문 초고 완성 등이다.(제목, 저자, 초록, 서론, 본론, 결론, 참고)

 

학술지 논문은 하나의 주제를 다루며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래서 학술지 논문은 길이가 짧은 편이다. 박사 논문은 통상 다수의 주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며 여러 학술지 논문을 종합한 내용으로 구성되기에 짧게 쓰기가 어렵다.(48, 49 페이지) 논문 쓰기의 본질은 끊임없는 연습(혼자 하는 글쓰기)과 훈련(논문 지도 받는 것)이다.

 

저자는 학술지 논문과 학회 초록 작성을 지도하면서 또는 시험 답안을 채점하면서 학생들의 글쓰기 수준에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풀어 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간결하고 논리적이며 문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시에 재미있고 유익하게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논문의 제목은 상품의 브랜드와 같다. 초록(抄錄)은 1) 연구 주제의 일반적 배경과 이슈. 2) 논문에서 다루는 문제의 핵심. 3) 연구의 핵심 방법과 결과. 4) 주요 결과의 상세 요약. 5) 연구의 기여와 전망 등을 쓴다.(77 페이지) 서론(序論)은 초록의 확장이다. 선행 연구를 설명하는 문구 바로 뒤에 해당 문헌 번호를 인용하는 것이 좋다.

 

문장이 다 끝난 후에 인용하면 어디까지가 선행 연구인지가 모호해진다. 표절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선행 논문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문장을 완전히 새로 쓰는 편이 좋다.(89 페이지)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조사했을 때 중복성이 보통 15퍼센트 이내이면 괜찮다. 논문의 본론은 결과와 논의를 포함한 부분이다.

 

결과를 설명하는 문단은 두괄식 전개가 좋다. 본론에는 결과와 함께 내 연구의 결과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학문의 계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101 페이지) 결과와 논의를 적을 때는 사실 그대로 적는 것이 좋으며 지나친 형용사나 부사 사용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102 페이지) 논문은 주장하는 글이지만 결과가 명확하면 주장하지 않아도 결과가 스스로 빛난다.

 

논문은 결과를 사실 그대로 적고 논의하며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차분히 서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나의 논문은 하나의 결론을 강조한다. 결과는 연구에서 얻은 주요 데이터를 말한다. 결론은 연구의 최종 종착점이다. 대부분 짧은 논문의 결론은 하나다. 초록에서는 결론이 뒤에 나오지만 결론 부분에서는 곧바로 결론부터 쓴다.

 

초록은 결론을 얻기까지의 목적과 과정을 먼저 서술하고 결론을 요약한다. 결론 부분에서는 결론 내용을 먼저 서술하고 그 결론을 얻게 된 주요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면 된다.(106 페이지) 결론에서는 이전 연구의 한계를 명시하며 현재 연구의 최종 성과를 확정한다. 결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앞으로의 연구 전망을 서술한다.

 

연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면 좋을지, 어떤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지, 향후 연구에서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적어 주면 후속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 논문은 연구 내용이 압축되어 있고 용어와 내용이 전문적이라 관련 분야 연구자라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논문은 재빨리 읽고 핵심 내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논리적인 말하기는 논문을 쓰는 순서와 맥락이 같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면 논문 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 무슨 이야기든 핵심을 먼저 간략하게 요약하는 것이 좋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에 앞서 배경지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청중을 천재라 가정하지 말라. 어떤 이야기든 마무리가 중요하다.

 

이야기의 핵심 결론을 한 번 더 요약 강조하고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추가될 수 있을지 전망과 예측을 곁들이면 좋다. 박사 주제는 되도록 빨리 잡는 것이 좋다. 초반에 박사 주제의 방향을 잘 잡으면 길이 스스로 열린다. 좋은 주제를 찾으려면 선행 문헌 조사가 거의 완벽해야 하고 학문의 흐름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박사 주제와 연관 지으라.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종착점에 도달할 수도 있기에 모든 경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연구 노트를 성실하게 적으면서 아이디어의 흐름을 잘 이어가라. 연구실 밖에서도 훌륭한 연구 활동이 가능하다. 가끔은 온전히 쉬는 것이 연구에 더 큰 도움에 되기도 한다. 다른 분야의 학문에도 관심을 기울이라.

 

다른 인접 학문에 대한 관심은 더 넓은 기회를 열어 줄 것이다. 모든 일에 자신을 믿으라.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여기까지 온 것으로도 충분히 잘한 것이다. 젊은 동료들과 소통하라. 도움받는 것에 주저하지 말라. 언젠가는 젊은 동료들에게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 적절한 휴식을 취하라. 확신을 가지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 박 팀장님과 함께 광진구 향토사학자 김민수(金玟秀) 선생님을 만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광진구 인물을 소재로 한 동화 기획에 필요한 절차였다. 나는 ’호모 루덴스‘의 저자 요한 하위징아가 ’문화사의 과제‘란 책에서 한 말을 전했다. "아마추어 향토사가 중에도 역사에 대한 현자가 있는가 하면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 중에도 둔감한 지식의 소매상들도 있는 법이다"란 말이다.

 

우리는 김 선생님에게서 광진구 화양정 느티마당의 안내판에 모윤숙 시인의 시가 게재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느티나무는 모윤숙 시인의 옛집터에 자리한 나무다. 모윤숙 시인은 ‘렌의 애가(哀歌)‘라는 제목의 산문 작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렌은 wren인데 무심코 지나칠 법하지만 굴뚝새를 이르는 말이다.

 

박 팀장님께 유명 건축물도, 인물도, 역사적 사건도 종로, 중구, 성북 등에 편중된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여지는 크지 않아도 새 인물을 찾아보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다음 만날 날을 9월 17일로 잡고 헤어졌다. 상황을 보아서 광진구의 나무를 대상으로 동화를 만드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건의할 생각이다. 요즘 나무나 꽃을 세밀화로 그리는 것이 인기를 얻고 있으니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 경우 동화화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역사적 인물은 이미 충분한 이야기가 축적되어 있으니 다듬고 각색하면 되는 데 비해 나무는 단순히 세밀화로 구성하지 않는 한 작품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대망(待望)의 9월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대망이라 했지만 이것 저것 하느라 더 바빠지는 것일 수도 있다. 글도 쓰고 답사도 갈 것이라 계획한 달이다.

 

앞에서 말한 부분과 관련해 “모든 정상적인 사람은 나이가 들면 향토사학자가 된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이 말은 한 건축가가 스쳐 지나가듯 들은 출처와 기억이 불분명한 말이지만 그 건축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설득력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말을 했다. 모두라고 할 수 없지만 젊어서 역사, 문화, 유적 등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그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따로 시간을 내어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해설을 하는 사람들도 젊어서 관심이 거의 없던 경우가 많다.

 

박 팀장님께 고향이 어디냐고 여쭈어 궁궐해설사 동기 이 선생님과 동향(同鄕)이라는 답을 들었다. 어제는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해 6월 혜화 해설 전에 대학로 학림(學林) 다방에서 박 팀장님을 만나 업무 이야기를 하고 인근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만남 후 나는 7월(어린이 대공원)과 11월(광나루) 해설을 했다.

 

박 팀장님께서 내 해설에 참여하신 것은 2020년 4월(청계천), 5월(올림픽공원), 6월(혜화)이었다. 그러니 내가 박 팀장님 앞에서 행한 세 차례의 해설은 테스트를 받은 시간이었다 할 수 있다. 어떻든 내가 기억하기로 학림은 원래 학림(鶴林)이었다.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들자 사라쌍수 숲이 학처럼 하얗게 변해 학림(鶴林)으로 불렸었다.

 

어제 김 선생님을 뵙기 전에 박 팀장님과 점심 식사를 한 곳은 가온(家溫)이었고 일 이야기를 나눈 곳은 카페 피아트(Cafe Fiat)였다. 만남 후 교보에 들러 김혜나 작가의 장편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을 샀다. 요가 수련을 위해 인도에 간 주인공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본문에 나오는 아쉬탕가 요가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 것이 있다.

 

여덟을 의미하는 아쉬토(astau)와 나뭇가지를 의미하는 앙가(anga)를 합한 말이다. 요가 수행의 여덟 가지 측면을 나뭇가지에 비유한 말이다. 아쉬탕가라는 말만을 아는 사람이 그 개념의 근원인 아쉬토 플러스 앙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틀렸다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 요가 수행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읽는 것은 혹시 만날 수도 있는 분과의 대화를 위해 준비하는 차원이다.

 

이 준비(책 사기, 읽기, 기억하기)는 무용(無用)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한 지인분께서는 내게 그 사람을 만나 말하기보다 듣고, 답하기보다 답을 들을 수 있도록 유도하라고 조언했다. 유도하더라도 알고 해야 하리라. 우선 읽자. 소설을, 광진구 자료를, 연천 자료를, 기타 필요한 과학과 인문 책들을. 내일부터 3일 정도는 나도 몸 쓰는 보조 일을 해야 하니 시간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잘 있거라 황진이’를 듣는다. 스물 여섯 살 최향이란 분이 부른 곡이다. 가수는 매서운 눈매와 약간 거칠어 묘한 매력을 띠는 목소리로 매우 인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술이 아닌 것에도 취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곡은 묘하게 슬픈 한편 마음을 설레게도 한다.

 

못 이룬 사랑을 아쉬워하는 노랫말 가운데 ”서 화담 그리운 님 저승 간들 잊을쏘냐 섬섬옥수 고운 님아...“란 구절이 있다. 화담은 황진이와의 이야기로 유명한 서경덕의 호 화담(花潭)을 말한다. 서경덕은 복재(復齋)라는 호도 썼었다. 주역에서 유래한 호다. ”서 복재 그리운 님 저승 간들 잊을쏘냐”라고 했다면 이상했을 것이다.

 

지난 8월 25일 미얀마 민주화 운동 후원 기금 마련을 위한 서화전(인사동 나무화랑)에 다녀왔다. 신영복 사상 연구 단체인 더불어숲과 성공회대 교수회가 공동 주최한 ‘미얀마 민중과 함께 여는 새날’이란 제목의 이 전시회 출품작들은 신영복 선생님에게서 서화를 배운 제자들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나는 안내 직원에게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작품이 없어 아쉽다고 말하며 석과불식과 관련 있는 주역의 산지박(山地剝) 괘를 간단히 설명하기까지 했다. 아래로부터 다섯 음효가 자리한 뒤 오는 하나의 양효가 씨 과일로 쓸 석과의 의미를 갖는다. 이 산지박 괘 다음에 지뢰복 괘가 자리한다. 산지박에서 지뢰복으로의 변화는 박탈(剝奪)당했다가 회복(回復)되는 것을 뜻한다. 서경덕의 복재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나는 내 처지(處地)가 석과를 떠올리는 불우(不遇)한 처지라 생각하다가 곧 다른 생각을 찾는다. 석과를 떠올린다는 말은 모든 과일이 떨어진 뒤 하나 남은 씨로 쓸 과일을 떠올린다는 뜻이다. 불우하다는 말은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하여 불행하다는 의미이니 무엇인가 만들지 못한 나와 연관지을 수 없는 말이라 생각한다.

 

서경덕은 어땠을까? 죽음을 앞에 두고도 초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서경덕이 아닌가? 그는 젊은 시절에 어진 스승을 만나지 못해 공부에 헛심을 많이 썼다고 말하며 공부하는 이들은 이런 나를 본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 덧붙였다. 그리고 몽매함을 깨우쳐 줄 스승을 만나지 못해 잡된 공부에 얽매였다는 말을 했다.

 

관건은 무엇일까? 좋은 시절을 나의 덕이 만든 결과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리치 칼가아드의 ‘레이트 블루머’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늦게 피는 사람들인 레이트 블루머들은 일찍 피어난 어얼리 블루머들에 비해 호기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연민 능력을 갖추었고, 회복력을 갖추었고, 통찰력과 지혜 등을 가졌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것은 성공을 나의 덕으로 돌리지 않는 것과 공명한다. 어얼리 블루머든 레이트 블루머든 꽃이 피었다고 하지 말고 꽃을 피웠다고 해야 하리라. 오규원의 시는 어떤가? “별이 바위에 스며들어 꽃이 되었다.“

 

이 경우 별이 죽음을 맞이하며 우주 공간에 흩뿌린 원소들이 우리 몸을 이루고 바위를 이루고 꽃을 이루는 것이니 그렇게 엄청난 차원으로 담긴 우주의 진리 앞에서는 꽃이 피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주에서 발견되는 무거운 원자핵들은 뜨거운 별의 중심핵에서 가공되어 별이 폭발할 때 방출된다.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들은(우리를 구성하는 성분들도) 사실상 격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자이안트 날리카 지음 ‘별의 일생’ 153, 154 페이지)

 

”꽃은 한꺼번에 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꽃들이 많다. 꽃이 거의 동시에 피기 때문에 꽃들의 수분(受粉) 매개체에 대한 선택압력이 크다. 따라서 꽃들은 수분매개체를 유인하기 위해서 적응하다 보니 저마다 크고 화려한 색깔들을 띠고 있다.“(이상태 지음 ‘식물의 역사’ 214 페이지)

 

생태 전문가 차윤정은 이런 말을 했다. ”한 번이라도 꽃을 피워본 사람이라면 꽃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꽃이 피기까지의 그 긴장감과 피어 있을 동안의 고단함을 이해한다면 차라리 햇빛에 녹아버리며 시들어가는 꽃잎에서 해방감을 느낄 것이다. 꽃으로 피어나는 것,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성스러운 일이다.“(‘꽃과 이야기하는 여자’ 41 페이지)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들은(우리를 구성하는 성분들도) 사실상 격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고 ”스타일이 없으면 진정으로 스승과 결별할 수조차 없다.“(김영민 지음 ‘공부론’ 11 페이지)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늦게 꽃 피우는 일 역시 의미있고 그래서 기꺼이 감내해야 과제이자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