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7219 - DMZ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
이상철 지음 / 시공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전방 GOP 중대장을 거쳐 2019년 연천, 철원의 제 5사단장으로 부임해 DMZ 유해 발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뒤 중장으로 전역해 현재 한양대 특임 교수로 재직 중인 이상철 저자의 책이다. 제목인 38.17.21.9는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의 북위(北緯)를 지칭한다. 그런데 동경(東經; 127.06.34.2)까지 명기해야 정확할 것이다. 동경은 큰 글씨로 표시된 북위 아래에 작은 글씨로 기록되어 있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 서쪽 3km 지점의 고지로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다. 한국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는 프랑스 군대가 용감히 사수한 진지였다. DMZ 유해발굴이 성사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에 따른 결과다. DMZ는 말이 비무장지대이지 불발탄, 지뢰, 전쟁 후 수거해 가지 못한 물품들로 가득한 위험지대이자 중무장지대다.


DMZ 안에서 이루어진 작업이기에 투입 병력은 방탄복과 방탄 헬맷을 착용해야 하고 방탄판도 착용해야 한다. 거기에 개인 화기(火器)와 장비 등을 휴대해야 하니 20kg이 넘는 무게를 이고 지고 올라가야 한다. 남방한계선 철책을 지키는 초소를 GOP(general outpost)라 한다. 비무장 원칙을 어기고 남북은 DMZ 안에 감시초소인 GP(guard post)를 운영한다. GP에 들어가려면 남방한계선 철책에 있는 통문을 열고 DMZ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 번 배치되면 2~3개월을 기다려야 나올 수 있다. 군 병력이지만 GP 밖으로 한 걸음도 다닐 수 없다. DMZ 유해발굴이라 하니 굉장히 한가로운 작전으로 비칠 수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인 DMZ 내에서의 극한 난이도의 작업이다. 휴전선(군사분계선)에 철책이 없고 1292개(유엔이 주관하는 696개+ 북한이 주관하는 596개)의 표지 기둥이 있다. 그러나 DMZ 내에는 추진철책이 있다.


앞으로 진출해 GP를 짓고 그 GP를 지키기 위해 철책을 설치한 것이다. GP에 들어가는 인력을 우리는 민정경찰, 북한은 민경대라 부른다. 군사작전이 아니라 치안유지 작업을 수행한다는 일종의 편법인 셈이다. 1973년 육군 3사단의 3.7 완전작전이 유명하다. 표지 기둥 보수작업을 하던 우리 군사를 북한군이 총격 도발하자 박정인 사단장이 북한 GP에 포격을 명령해 북한군 GP를 초토화 시켰다. 당시 북한군 GP 병력 29명 전원이 사망했다.


화살머리고지에서 북쪽으로 13km 지점에 북한의 780고지인 고암산이 있다. 일명 김일성 고지다. 한국전쟁 당시 그 산에 김일성이 올라 전투를 진두지휘했다는 설이 있다. 처음에 남과 북이 합동으로 유해를 발굴했지만 곧 중단되었다. 군사분계선에서 국군과 만난 북한군 여단장이 악수를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해 총살된 뒤로다.


작업은 이렇게 진행한다. 지뢰 제거반이 들어가야 하고 공병대가 투입돼야 한다. 유해 발굴단이 투입되는 것은 물론이다. 기초적인 발굴 작업을 진행하는 장병들이 있어야 하고 유해 흔적을 발견하면 전문 발굴팀이 들어가 세부 작업을 진행한다. 언제 어디서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작업 과정 시작부터 끝까지 발굴팀을 보호하는 경계 병력이 있어야 한다. 의료 지원 병력, 통신 지원 병력, 식사와 간식을 보급하는 병력까지 있어야 한다. 작은 부대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대규모 작전'이다.


발굴팀은 크게 둘로 나뉜다. 기초 발굴 팀과 정밀 발굴 팀이다. 오렌지색 헬멧을 쓴 기초 발굴팀은 호미와 야전삽을 들고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의 토양을 초벌로 걷어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유해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유해가 발견되면 검정 조끼를 입은 정밀 발굴팀이 투입된다. 이번에는 붓으로 조금이라도 긁힐세라 굉장히 신중하게 발굴 작업을 이어간다.


유해 하나를 완전히 발굴하는데 몇 주 혹은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발굴한 모든 유해는 오동나무로 만든 작은 관에 넣는다. 충격에 부서지는 것을 방지하고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유해 조각을 일일이 한지로 감싸 차곡차곡 관 안에 넣는다. 조각을 채우면 관 뚜껑을 덮고 그 위에 명정(銘旌)까지 만들어 얹는다. 붉은 천에 흰 글씨로 만든 명정에는 6 25 전사자의 관이라는 글을 적는다.


유해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관을 흰 천으로 두르고 국군으로 추정되거나 확신하는 경우에는 관 위에 태극기를 씌운다. 약식 차례를 치른다. 아군이 분명한 경우에는 사단장이 직접 제례를 주관한다. 간단히 제례 음식을 준비해 관 앞에서 경례와 묵념을 하고 술을 따르는 의식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망자에 대한 예를 갖추려 최대한 노력한다. 제례를 마치면 복장을 단정히 갖춘 병사가 관을 목에 걸고 차량으로 이동한다.


봉송 차량이 지나는 길목에 장병들이 일렬로 도열해 경례하는 것으로 고인이 떠나는 길을 배웅한다. 육십여 년 만에 고지를 떠난 원혼들이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군종 장교들이 나와서 각각의 종교의식에 따라 망자의 영혼을 위로해준다. 그렇게 땅 속을 벗어난 유해는 국방부 감식소로 보내진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기나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야 한다.


영영 이름을 알지 못하는 유해가 거의 대부분이다. 매년 11월 말이 되면 유해 발굴 작전을 마감한다. 땅이 얼어 유해 발굴 작업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1945년 유엔이 창설된 이래 유엔군을 편성한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남쪽 끝까지 밀렸다가 북쪽 끝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38선 인근에서 고착된 전쟁이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란 작품이 생각난다.


’DMZ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란 부제처럼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고 반듯하다. 저자는 유해가 발견된 자리에 작은 비석을 세웠다고 말한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묘비였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죽은 자에게 지켜야 할 예의를 끝까지 지키려 노력했다. DMZ 유해 발굴 작전은 망자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 군인에 대한 예의, 선대에 대한 예의를 절로 배우는 작전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인간으로, 전후로, 핏줄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참고가 될 만한 책 세 권을 알았다. ‘대백록(待百錄)’, ‘갈암 이현일의 철학사상’, ‘()의 철학’(안유경 옮김) 등이다. 이현일은 유배 이후 백호 윤휴, 고산 윤선도, 미수 허목과 함께 200여년간 노론 세력으로부터 ‘4으로 비판 받은 남인의 이론가다. ‘대백록은 조선 후기 남인측 정론을 대변하는 당론서라고 한다


안유경이 옮긴 리의 철학은 리 개념의 변천사를 다룬 책이다. ‘대백록은 남산도서관의 신간 소개 코너에서 알았다. 6년전에 나온 책이 신간이라니, 하겠지만 신간인 연려술속(燃藜述續) 2권의 공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원재린의 이전 작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책이다


원재린의 조선후기 성호학파의 학풍연구도 읽고 싶다. 원재린의 연려술속을 낸 혜안 출판사를 검색하다가 구만옥의 조선후기 성호학파의 자연학을 알았다. 구만옥은 세종시대의 과학기술을 쓴 분이기도 하다. 천문기상학, 사학,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등을 공부한 학자다. 노영구의 한국의 전쟁과 과학기술문명도 읽을 필요를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탄주(灘舟)란 두보의 시 ‘낙일(落日)‘에 나오는 여울에 정박한 배를 뜻한다. 여울에 기대어 둔 배에서는 저녁 밥을 짓는다란 의미의 초탄의탄주(樵爨倚灘舟)가 완성구다. ’곡강(曲江)‘에 나오는 한 조각 꽃잎이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드는 것을(一片花飛減却春; 일편화비감각춘)이란 구절 만큼 멋진 구절이다.


일편화비감각춘은 조용미 시인이 ’탐매행(探梅行)‘의 서두에 인용한 구절이기도 하다. 초탄의탄주는 한잔 부어 마시니 온갖 시름이 흩어지네란 의미의 일작산천수(一酌散千愁)와 어울린다. 두보는 주당(酒黨)이었다. 그런데 지난 해 말 나온 ’취하여 텅 빈 산에 누우니‘의 두 저자는 술과 인생을 노래했던 이름난 시인들의 주량도 알고 보면 서너 잔이란 말을 한다. 이백(李白)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리라.


재작년인가 재인폭포 해설시 이백의 '망여산폭포'를 외웠더니 방문객이 우리나라가 이래서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란 말을 했다. 이에 나는 서양 문학도 즐깁니다란 말을 했었다. 문학의 문외한(門外漢)인 한 해설사가 외운 시가 어떻게 문학에 영향을 미치겠는가? 더구나 망여산폭포는 재인폭포의 원 이름(자연폭; 紫煙瀑)과 관련이 있어서 외운 시였다.


지난 해 한강 시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하며 그 방문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블루 머신 - 바다는 어떻게 세계를 만들고 생명과 에너지를 지배하는가
헬렌 체르스키 저자, 김주희 역자, 남성현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양 과학자 헬렌 체르스키의 ‘블루 머신’은 원제와 번역본의 제목이 같은 드문 책 가운데 하나다. 사물의 작동 원리에 관심이 있어 물리학을 공부했고, 지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 가끔 지질학도 공부했지만 결국 해양과학에 안착하게 되었다는 저자는 바다를 엔진으로 묘사하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인류는 우주로 나간 뒤에야 지구의 가장 큰 특징이 육지가 아닌 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윌리엄 터너 같은 화가를 예로 들며 화가들이 고요한 바다와 목가적인 해안선을 그린 것은 바다를 ‘보면서 즐기는 대상’으로 보았을뿐 안으로 들어가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결과라 말한다. 


해양학 발전에도 전쟁이 연관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잠수함 전쟁이 대세를 이루었고 군대가 느닷없이 바다라는 새로운 전투 공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결과다. 저자는 인류는 광활한 바다가 인류의 영향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히 크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한다.(30 페이지) 저자는 지구에 도착했던 햇빛이 다시 우주로 떠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즉 우주로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빛에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 숲의 녹색, 바위의 갈색, 구름과 빙하에서 반사되는 하얀빛, 물의 푸른색 등 역동적인 지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31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바다에서 해류는 수십 수백 가지 요소와 연결된다.(33 페이지) 습윤성, 염분, 수온은 해양 엔진이 일으키는 모든 현상의 토대다. 세 요소는 하나로 연결된다. 물리법칙은 태양에너지를 지구의 필수 화폐로 정하고 지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마다 고정 수치를 편성한다. 빛은 사라질 수 있지만 에너지는 사라질 수 없다. 가시광선은 바다의 열로 전환된다. 사진작가의 손실은 바다 수온계의 이득인 셈이다. 햇빛은 산호초 물고기를 두 번 감싼다. 처음에는 빛으로 감싸고 물이 빛을 흡수한 뒤에는 열로 감싼다. 바다는 태양에 의해 가열된다.(45 페이지) 


우리 눈에 보이는 바다 즉 인간이 편안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고 햇빛이 비치며 각양각색의 생물과 식량이 가득한 바다는 전체 바다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두운 심해의 차가운 바닷물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바다 표면만큼 흥미롭고 영향이 크다.(50 페이지) 해양과학자는 성질이 거의 똑같은 해수가 모인 층을 수괴(水塊)라 부른다. 기억해야 할 점은 바다는 해수가 층층이 쌓인 구조이며 해수층은 외부 요인이 없으면 대부분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점이다.(51 페이지) 


차가운 심해수에는 수백년간 햇빛이 닿지 않기도 한다. 바다는 열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저장하지만 그것을 원활히 이동시키지는 못한다. 반면 대기는 열 저장 능력이 떨어지지만 에너지를 아주 빠르게 이동시킨다.(61 페이지) 초기 지구는 화산활동이 매우 활발히 일어난 끝에 내부가 안정되었다. 화산은 수소 이온과 염화 이온의 결합체로 반응성이 강한 황 화합물을 다량 분출했다. 이 과정에서 음전하를 띤 염화 이온과 황산 이온이 바다에 유입되었다. 이온들은 각각 양전하 또는 음전하를 띤 상태로 바다의 물 분자 사이에 침투했다.(73 페이지) 


지구의 해양 전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해양과 거의 닿지 않아 고립된 몇몇 반폐쇄 바다가 있다. 가장 유명한 반폐쇄 바다는 유럽 남쪽 경계를 이루는 지중해로 웅장한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대서양과 맞닿아 있다. 지브롤터 해협은 폭이 14km에 지나지 않지만 지중해는 스페인부터 시리아까지 동쪽으로 거의 4,000km를 뻗어나가며 21개국의 해안선과 접한다.(76 페이지) 바다는 형태가 고정되지 않는다. 바다의 가장자리는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끝없이 변화한다.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파도를 제거해도 바다 표면은 완벽하게 매끄러워지지 않는다.(107 페이지) 


데보라 켈리(Deborah Kelley)는 잠수정을 타고 심해로 내려가는 상황을 별을 헤치며 내려가는 기분이라 표현했다. 그는 시애틀 인근 해안은 물이 정말 맑아 바닷속이라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라고, 꼭 하늘을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119, 120 페이지) 켈리는 바다 화산과 열수구(熱水口) 전문가다. 켈리에 의하면 심해 열수구는 색이 아주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밝은 보라색, 파란색, 흰색을 띠고 굴뚝은 동물로 덮여 암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120, 121 페이지) 


그에 의하면 화산 지역의 변화 속도는 아주 빠르다. 수개월 뒤에 돌아가면 아주 다른 장소처럼 보일 정도라고 한다. 저자는 정량 증거를 제시해 이해를 발전시키는 일은 과학이 담당하지만 심해에 관한 통념을 바꾸는 것은 그런 경험이라 말한다. 인류의 호기심은 1960년대 해저에 구멍을 뚫는 대담한 시도로 이어졌다. NASA가 미국인을 최초로 우주에 보내려는 동안 지질학자는 지구의 중심을 관찰하는 방대한 과학적 실험 ‘모홀(Mohole)’을 계획했다. 그것은 미국의 물리 해양학자 월터 뭉크(Walter Heinrich Munk; 1917-2019)의 아이디어였다. 


모홀의 목표는 맨틀로 들어가 다른 종류의 암석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모홀은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지구 지각과 맨틀의 경계)과 hole의 결합어다. 지각 두께는 평균 35km다. 화강암 같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대륙지각, 두께가 5~10km에 불과하고 현무암 같은 고밀도 암석으로 이루어진 해양지각으로 나뉜다. 해양지각은 맨틀 표면에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대륙지각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해양지각 표면이 얇고 꽤나 평평하고 대륙지각 표면보다 대개는 몇 킬로미터 낮은 지점에 있어 물이 표면 위 공간을 먼저 채우기 때문이다.(125 페이지) 심해의 광활한 평야를 대양 분지라고 부르는 것은 세면대처럼 깊이가 있어 물이 고이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뭉크는 지구 지각을 통과하는 구멍을 파면 맨틀 아래에 도달해 샘플을 채취할 수 있으리라고 설명했다. 두꺼운 대륙지각이 아닌 얇은 해앙지각을 뚫는 일이었다. 1961년의 일이었다. 베트남 전쟁 비용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미국 의회는 결국 1966년 모홀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대륙지각은 위쪽으로 산맥이 솟아오르고 아래쪽으로 기저면이 맨틀을 침투하여 위아래가 불룩한 대칭을 이룬다. 대륙이 이동하는 동안 대륙의 대략적 형태는 변하지 않지만 바다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한다. 심해저 형태는 심해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따라 변한다. 


지각판 사이의 경계는 막대한 지질학적 힘이 변화하는 장소다. 지각판 가장자리가 서로 부딪히거나 멀어지는 동안 수중 화산으로 이루어진 산맥은 꿀렁거리다가 틈새로 용암을 토한다. 오래된 해저는 맨틀 속으로 밀려 내려가면서 두꺼운 대륙판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패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한 등장인물이 파산하는 과정을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라고 묘사했다. 심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지각변동도 마찬가지다. 


점진적 변화는 지구의 판 전체가 1년에 수 센티미터씩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갑작스러운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축방향 해산은 매년 6센티미터씩 멀어지는 두 지각판 사이의 틈을 메우는 새로운 암석을 생성한다. 열수구는 검은 굴뚝 또는 하얀 굴뚝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바닷물에 용해된 금속 화합물이 차가운 환경과 만나 주위에 수십 미터 높이로 우뚝 솟은 굴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134 페이지) 데보라 켈리는 열수를 거꾸로 흐르는 폭포 같다고 말한다. 뜨거운 물은 차가운 물보다 밀도가 낮아 위쪽으로 계속 빠르게 흐른다. 


지각판은 저마다 대부분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분화하지만 대부분 바다에 완벽히 가려져 있다. 넓디넓은 심해저 평원의 형태는 수백만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정적인 영원의 안정을 느끼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곳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137 페이지) 저자는 달과 심해는 서로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바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달은 수십억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죽은 암석이다. 


바다의 형태는 중요한 문제다. 거대한 대륙에 막히거나 좁은 해협을 흐르면서 병목 현상 같은 제약을 겪어도 푸른 기계는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를 둘러싸는 지각판의 느린 이동은 거대한 대양 분지를 생성한다. 해령과 해구로 둘러싸인 밑바닥은 광활하지만 바다를 다 가두지는 못한다. 대륙으로 넘쳐흐르는 바다는 얕은 해안을 형성한다. 지도에는 바다의 가장자리가 깔끔하고 정돈된 공간으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육지와 만나는 바다의 가장자리는 변덕스럽고 모호한 경계다.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는 명확한 선으로 표시될 수 없는 넓은 전환 구역이다. 


바다의 불규칙한 형태 탓에 바다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 덕분에 지구 전체 바다는 지역마다 고유의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바다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관찰하면 바다에 아름다운 내부 구조 즉 바다의 해부학을 이해하게 된다. 지구의 심해 바닷물이 수백 년에 걸쳐 천천히 수평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푸른 기계를 이루는 느리고 장엄한 토대다. 북대서양 심해의 차가운 바닷물은 남극해에 도달한 다음 남극대륙을 돌아 인도양과 태평양 바닷물에 섞이며 태양 분지를 순환한 끝에 해수면으로 다시 올라온다. 이 깊고 느린 순환이 전 세계 바다를 하나로 연결한다. 그리고 해수면을 떠난 바닷물은 심해로 천천히 이동하며 대기 및 인간 세계와 단절되었다가 수백 년 뒤 다시 해수면에 도달해 인간과 인간이 만든 세계에 노출된다. 


이 느린 컨베이어 벨트는 지구의 열을 분산시키고 벨트의 속도와 복잡한 작동 방식은 기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와 달의 시스템은 하루에 밀물과 썰물을 각각 두 번씩 일으킨다. 이는 바다가 중력과 자전의 물리학에 반응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밀물과 썰물의 결과로 해안선 근처에서 수위가 오르내리는 현상만 떠올린다. 넓은 바다에서 해수면이 몇 시간 동안 대략 1m 상승하려면 어딘가에 있던 엄청난 양의 물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게다가 6시간 뒤에는 반대 방향으로 바닷물이 다시 이동한다. 


바다는 깊고 넓어서 전체 깊이에 걸쳐 조금만 움직여도 막대한 바닷물이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하와이 해령처럼 바다 수심의 절반에 해당하는 높이까지 솟아오른 해령이 조수가 이동하는 경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면 대단히 큰 장애물이 된다. 물에 잠긴 하와이 해령 부근과 그 위에서는 바닷물이 좁은 틈으로 밀려들며 내부파가 생성된다.(203, 204 페이지) 내부파는 밀도 및 유속이 다른 두 유체가 상접하여 흐르는 경우 그 불연속 경계면에 발생하는 파를 말한다. 바다를 혼합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대부분이 내부파로부터 공급된다. 


물은 소량일 경우 파란색을 띠지 않는다. 물의 양이 아주 많을 때만 파란색이 분명하게 드러난다.(252, 253 페이지) 먼 바다가 파랗게 보이는 것은 두 단계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청색광을 제외한 빛이 빠르게 물에 흡수된다. 남은 청색광이 직선 경로를 따르지 않고 바닷속을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다가 일부가 우리 눈으로 들어온다. 해수면에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이 해저에서는 감지된다. 소리의 속도 변화도 그 중 하나다. 따뜻한 물에서 소리가 더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이다.(291 페이지) 기후변화로 바다가 뜨거워지면 해가 갈수록 소리 신호는 빠르게 이동하고 이동 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어쩌면 지구의 기후 변화는 소리 변화로 측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293 페이지)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구에 축적된 남는 에너지의 90% 이상이 열 형태로 바다에 흡수된다. 저자는 지구는 인류가 힘을 모아 나아가는 카누,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우주의 텅 빈 공간을 항해하는 연약한 오아시스라고 말한다.(427 페이지) 


아폴로 9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러스티 슈바이카트(Rusty Schweickart)는 “우리는 우주선 지구호의 승객이 아닙니다. 승무원입니다.”란 말을 했다. 저자는 인류는 유한한 행성에 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생존하게 하는 지구의 생명유지시스템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성장과 소비에 기반한 문화를 구축했다고 말한다. 이뿐 아니라 자연 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면서 자연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구성요소가 되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잃었다고 말한다.(435 페이지) 


이 책을 읽으며 얼마전 알게 된 GPGP란 개념을 떠올렸다. GPGP란 great pacific garbage patch란 말의 머리말로 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섬을 뜻한다. 이는 편리성과 일회성에 길들여진 인간이 초래한 거대한 무책임을 일깨우는 장치가 아닐 수 없다. 헬렌 체르스키의 책은 지구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읽은 책이다. 해령, 섭입대, 맨틀, 해양지각 등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었다. 그러니 환경과 미래에 초점을 두고 바다라는 거대한 엔진 시스템을 규명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가 왜 바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게 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하고 다행이다. 전작인 찻잔 속 물리학을 통해 다른 지적 즐거움을 만끽할 필요를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단(長湍)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금, 토, 일요일 DMZ(1, 21 침투로에서 비룡전망대까지) 해설 근무를 위해 모이는 고랑포(高浪浦) 지역이 옛 장단군(현재 이 이름의 군은 사라졌다. 옛 장단군의 장단면, 진동면, 군내면이 파주에 속하고 장남면은 연천에 속한다.)의 한 지역이다. 사무실 주변에 고랑포구, 호로고루, 경순왕릉, 고랑포구 역사공원, 괘암(卦巖) 등이 자리한다. 
관계된 인물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미수(眉叟) 허목(許穆), 풍석(風石) 서유구(徐有榘) 등이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에서 나오면 보이는 임진강이 너무도 근사하게 드리워진 곳이다. 동국여지지, 기언(記言), 목은 이색의 학문과 학맥, 상택지; 임원경제지 등을 주문해 놓았다.(남산도서관 택배대출) 여지도서(輿地圖書)는 다음 번에 빌리기로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