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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머신 - 바다는 어떻게 세계를 만들고 생명과 에너지를 지배하는가
헬렌 체르스키 저자, 김주희 역자, 남성현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평점 :
해양 과학자 헬렌 체르스키의 ‘블루 머신’은 원제와 번역본의 제목이 같은 드문 책 가운데 하나다. 사물의 작동 원리에 관심이 있어 물리학을 공부했고, 지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 가끔 지질학도 공부했지만 결국 해양과학에 안착하게 되었다는 저자는 바다를 엔진으로 묘사하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인류는 우주로 나간 뒤에야 지구의 가장 큰 특징이 육지가 아닌 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윌리엄 터너 같은 화가를 예로 들며 화가들이 고요한 바다와 목가적인 해안선을 그린 것은 바다를 ‘보면서 즐기는 대상’으로 보았을뿐 안으로 들어가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결과라 말한다.
해양학 발전에도 전쟁이 연관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잠수함 전쟁이 대세를 이루었고 군대가 느닷없이 바다라는 새로운 전투 공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결과다. 저자는 인류는 광활한 바다가 인류의 영향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히 크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한다.(30 페이지) 저자는 지구에 도착했던 햇빛이 다시 우주로 떠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즉 우주로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빛에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 숲의 녹색, 바위의 갈색, 구름과 빙하에서 반사되는 하얀빛, 물의 푸른색 등 역동적인 지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31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바다에서 해류는 수십 수백 가지 요소와 연결된다.(33 페이지) 습윤성, 염분, 수온은 해양 엔진이 일으키는 모든 현상의 토대다. 세 요소는 하나로 연결된다. 물리법칙은 태양에너지를 지구의 필수 화폐로 정하고 지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마다 고정 수치를 편성한다. 빛은 사라질 수 있지만 에너지는 사라질 수 없다. 가시광선은 바다의 열로 전환된다. 사진작가의 손실은 바다 수온계의 이득인 셈이다. 햇빛은 산호초 물고기를 두 번 감싼다. 처음에는 빛으로 감싸고 물이 빛을 흡수한 뒤에는 열로 감싼다. 바다는 태양에 의해 가열된다.(45 페이지)
우리 눈에 보이는 바다 즉 인간이 편안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고 햇빛이 비치며 각양각색의 생물과 식량이 가득한 바다는 전체 바다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두운 심해의 차가운 바닷물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바다 표면만큼 흥미롭고 영향이 크다.(50 페이지) 해양과학자는 성질이 거의 똑같은 해수가 모인 층을 수괴(水塊)라 부른다. 기억해야 할 점은 바다는 해수가 층층이 쌓인 구조이며 해수층은 외부 요인이 없으면 대부분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점이다.(51 페이지)
차가운 심해수에는 수백년간 햇빛이 닿지 않기도 한다. 바다는 열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저장하지만 그것을 원활히 이동시키지는 못한다. 반면 대기는 열 저장 능력이 떨어지지만 에너지를 아주 빠르게 이동시킨다.(61 페이지) 초기 지구는 화산활동이 매우 활발히 일어난 끝에 내부가 안정되었다. 화산은 수소 이온과 염화 이온의 결합체로 반응성이 강한 황 화합물을 다량 분출했다. 이 과정에서 음전하를 띤 염화 이온과 황산 이온이 바다에 유입되었다. 이온들은 각각 양전하 또는 음전하를 띤 상태로 바다의 물 분자 사이에 침투했다.(73 페이지)
지구의 해양 전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해양과 거의 닿지 않아 고립된 몇몇 반폐쇄 바다가 있다. 가장 유명한 반폐쇄 바다는 유럽 남쪽 경계를 이루는 지중해로 웅장한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대서양과 맞닿아 있다. 지브롤터 해협은 폭이 14km에 지나지 않지만 지중해는 스페인부터 시리아까지 동쪽으로 거의 4,000km를 뻗어나가며 21개국의 해안선과 접한다.(76 페이지) 바다는 형태가 고정되지 않는다. 바다의 가장자리는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끝없이 변화한다.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파도를 제거해도 바다 표면은 완벽하게 매끄러워지지 않는다.(107 페이지)
데보라 켈리(Deborah Kelley)는 잠수정을 타고 심해로 내려가는 상황을 별을 헤치며 내려가는 기분이라 표현했다. 그는 시애틀 인근 해안은 물이 정말 맑아 바닷속이라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라고, 꼭 하늘을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119, 120 페이지) 켈리는 바다 화산과 열수구(熱水口) 전문가다. 켈리에 의하면 심해 열수구는 색이 아주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밝은 보라색, 파란색, 흰색을 띠고 굴뚝은 동물로 덮여 암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120, 121 페이지)
그에 의하면 화산 지역의 변화 속도는 아주 빠르다. 수개월 뒤에 돌아가면 아주 다른 장소처럼 보일 정도라고 한다. 저자는 정량 증거를 제시해 이해를 발전시키는 일은 과학이 담당하지만 심해에 관한 통념을 바꾸는 것은 그런 경험이라 말한다. 인류의 호기심은 1960년대 해저에 구멍을 뚫는 대담한 시도로 이어졌다. NASA가 미국인을 최초로 우주에 보내려는 동안 지질학자는 지구의 중심을 관찰하는 방대한 과학적 실험 ‘모홀(Mohole)’을 계획했다. 그것은 미국의 물리 해양학자 월터 뭉크(Walter Heinrich Munk; 1917-2019)의 아이디어였다.
모홀의 목표는 맨틀로 들어가 다른 종류의 암석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모홀은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지구 지각과 맨틀의 경계)과 hole의 결합어다. 지각 두께는 평균 35km다. 화강암 같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대륙지각, 두께가 5~10km에 불과하고 현무암 같은 고밀도 암석으로 이루어진 해양지각으로 나뉜다. 해양지각은 맨틀 표면에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대륙지각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해양지각 표면이 얇고 꽤나 평평하고 대륙지각 표면보다 대개는 몇 킬로미터 낮은 지점에 있어 물이 표면 위 공간을 먼저 채우기 때문이다.(125 페이지) 심해의 광활한 평야를 대양 분지라고 부르는 것은 세면대처럼 깊이가 있어 물이 고이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뭉크는 지구 지각을 통과하는 구멍을 파면 맨틀 아래에 도달해 샘플을 채취할 수 있으리라고 설명했다. 두꺼운 대륙지각이 아닌 얇은 해앙지각을 뚫는 일이었다. 1961년의 일이었다. 베트남 전쟁 비용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미국 의회는 결국 1966년 모홀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대륙지각은 위쪽으로 산맥이 솟아오르고 아래쪽으로 기저면이 맨틀을 침투하여 위아래가 불룩한 대칭을 이룬다. 대륙이 이동하는 동안 대륙의 대략적 형태는 변하지 않지만 바다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한다. 심해저 형태는 심해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따라 변한다.
지각판 사이의 경계는 막대한 지질학적 힘이 변화하는 장소다. 지각판 가장자리가 서로 부딪히거나 멀어지는 동안 수중 화산으로 이루어진 산맥은 꿀렁거리다가 틈새로 용암을 토한다. 오래된 해저는 맨틀 속으로 밀려 내려가면서 두꺼운 대륙판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패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한 등장인물이 파산하는 과정을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라고 묘사했다. 심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지각변동도 마찬가지다.
점진적 변화는 지구의 판 전체가 1년에 수 센티미터씩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갑작스러운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축방향 해산은 매년 6센티미터씩 멀어지는 두 지각판 사이의 틈을 메우는 새로운 암석을 생성한다. 열수구는 검은 굴뚝 또는 하얀 굴뚝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바닷물에 용해된 금속 화합물이 차가운 환경과 만나 주위에 수십 미터 높이로 우뚝 솟은 굴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134 페이지) 데보라 켈리는 열수를 거꾸로 흐르는 폭포 같다고 말한다. 뜨거운 물은 차가운 물보다 밀도가 낮아 위쪽으로 계속 빠르게 흐른다.
지각판은 저마다 대부분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분화하지만 대부분 바다에 완벽히 가려져 있다. 넓디넓은 심해저 평원의 형태는 수백만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정적인 영원의 안정을 느끼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곳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137 페이지) 저자는 달과 심해는 서로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바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달은 수십억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죽은 암석이다.
바다의 형태는 중요한 문제다. 거대한 대륙에 막히거나 좁은 해협을 흐르면서 병목 현상 같은 제약을 겪어도 푸른 기계는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를 둘러싸는 지각판의 느린 이동은 거대한 대양 분지를 생성한다. 해령과 해구로 둘러싸인 밑바닥은 광활하지만 바다를 다 가두지는 못한다. 대륙으로 넘쳐흐르는 바다는 얕은 해안을 형성한다. 지도에는 바다의 가장자리가 깔끔하고 정돈된 공간으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육지와 만나는 바다의 가장자리는 변덕스럽고 모호한 경계다.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는 명확한 선으로 표시될 수 없는 넓은 전환 구역이다.
바다의 불규칙한 형태 탓에 바다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 덕분에 지구 전체 바다는 지역마다 고유의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바다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관찰하면 바다에 아름다운 내부 구조 즉 바다의 해부학을 이해하게 된다. 지구의 심해 바닷물이 수백 년에 걸쳐 천천히 수평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푸른 기계를 이루는 느리고 장엄한 토대다. 북대서양 심해의 차가운 바닷물은 남극해에 도달한 다음 남극대륙을 돌아 인도양과 태평양 바닷물에 섞이며 태양 분지를 순환한 끝에 해수면으로 다시 올라온다. 이 깊고 느린 순환이 전 세계 바다를 하나로 연결한다. 그리고 해수면을 떠난 바닷물은 심해로 천천히 이동하며 대기 및 인간 세계와 단절되었다가 수백 년 뒤 다시 해수면에 도달해 인간과 인간이 만든 세계에 노출된다.
이 느린 컨베이어 벨트는 지구의 열을 분산시키고 벨트의 속도와 복잡한 작동 방식은 기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와 달의 시스템은 하루에 밀물과 썰물을 각각 두 번씩 일으킨다. 이는 바다가 중력과 자전의 물리학에 반응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밀물과 썰물의 결과로 해안선 근처에서 수위가 오르내리는 현상만 떠올린다. 넓은 바다에서 해수면이 몇 시간 동안 대략 1m 상승하려면 어딘가에 있던 엄청난 양의 물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게다가 6시간 뒤에는 반대 방향으로 바닷물이 다시 이동한다.
바다는 깊고 넓어서 전체 깊이에 걸쳐 조금만 움직여도 막대한 바닷물이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하와이 해령처럼 바다 수심의 절반에 해당하는 높이까지 솟아오른 해령이 조수가 이동하는 경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면 대단히 큰 장애물이 된다. 물에 잠긴 하와이 해령 부근과 그 위에서는 바닷물이 좁은 틈으로 밀려들며 내부파가 생성된다.(203, 204 페이지) 내부파는 밀도 및 유속이 다른 두 유체가 상접하여 흐르는 경우 그 불연속 경계면에 발생하는 파를 말한다. 바다를 혼합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대부분이 내부파로부터 공급된다.
물은 소량일 경우 파란색을 띠지 않는다. 물의 양이 아주 많을 때만 파란색이 분명하게 드러난다.(252, 253 페이지) 먼 바다가 파랗게 보이는 것은 두 단계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청색광을 제외한 빛이 빠르게 물에 흡수된다. 남은 청색광이 직선 경로를 따르지 않고 바닷속을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다가 일부가 우리 눈으로 들어온다. 해수면에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이 해저에서는 감지된다. 소리의 속도 변화도 그 중 하나다. 따뜻한 물에서 소리가 더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이다.(291 페이지) 기후변화로 바다가 뜨거워지면 해가 갈수록 소리 신호는 빠르게 이동하고 이동 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어쩌면 지구의 기후 변화는 소리 변화로 측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293 페이지)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구에 축적된 남는 에너지의 90% 이상이 열 형태로 바다에 흡수된다. 저자는 지구는 인류가 힘을 모아 나아가는 카누,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우주의 텅 빈 공간을 항해하는 연약한 오아시스라고 말한다.(427 페이지)
아폴로 9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러스티 슈바이카트(Rusty Schweickart)는 “우리는 우주선 지구호의 승객이 아닙니다. 승무원입니다.”란 말을 했다. 저자는 인류는 유한한 행성에 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생존하게 하는 지구의 생명유지시스템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성장과 소비에 기반한 문화를 구축했다고 말한다. 이뿐 아니라 자연 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면서 자연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구성요소가 되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잃었다고 말한다.(435 페이지)
이 책을 읽으며 얼마전 알게 된 GPGP란 개념을 떠올렸다. GPGP란 great pacific garbage patch란 말의 머리말로 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섬을 뜻한다. 이는 편리성과 일회성에 길들여진 인간이 초래한 거대한 무책임을 일깨우는 장치가 아닐 수 없다. 헬렌 체르스키의 책은 지구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읽은 책이다. 해령, 섭입대, 맨틀, 해양지각 등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었다. 그러니 환경과 미래에 초점을 두고 바다라는 거대한 엔진 시스템을 규명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가 왜 바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게 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하고 다행이다. 전작인 찻잔 속 물리학을 통해 다른 지적 즐거움을 만끽할 필요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