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터[559]번째 책이야기

청색 수국 / 김정수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청색 수국 / 김정수
김정수 수필집. 김정수의 글은 가족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가 자기 일생을 통해 가장 열정적으로 공부한 것은 가족이라는 텍스트를 통한 '인류학'이다. 그는 가족이 다 떠나고 이제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 밥상에는 떠난 가족 모두가 다 와서 둘러앉은 듯하기 때문에 항상 정성을 들여 차린다는 것이다.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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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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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헌학 박사 배철현 교수 님의 ‘심연’은 찾음(모색)에 대한 지혜를 주는 책이다. 가령 저자는 열정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라 정의한다. 이 열정이 내면 가장 깊숙한 곳 즉 심연으로 가는 지표이다. 깨어 있음도 찾음의 차원에서 논의된다. 나의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란 존재가 보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인간이기를 그치고 자신을 깊이 응시하며 새롭고도 놀라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선 조앤 롤링(‘해리 포터’작가)도 저자의 문제의식에 잘 들어맞는 사람이다.


자신을 찾는 결정적 순간이 진실에 가깝게 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천재란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이 있음을 믿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찾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일생 동안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리멘(limen) 아래에서(sub) 자신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 속에서 최선의 것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인 천재는 숭고(崇高: sublimation)하다. 천재가 되려면 우선 명상적이고 성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심연’이 말하는 천재란 독창적인 사람, 지혜와 영감으로 빛나는 사람이다. 극장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시어터(theatre)는 무대에서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고민하는 자신을 관조(觀照)하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는 비상식적으로 느껴지는 사례가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있었다. 아테네인들이 자신들의 일가친척을 죽인 적인 크세르크세스와 함께 눈물을 흘린 것이다. 관조적인 삶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나는 이 부분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근거가 불충분하다.)


저자는 유대 지식인이 창조하다를 뜻하는 바라(bara)라는 히브리 단어로 ‘창세기’ 1장을 서술한 것을 설명하며 오늘날 그 의미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핵심을 찾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지적한다.(창조란 무에서 유를 낳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핵심을 찾아가는 것이다.) 1세기의 수사학자인 롱기누스에 의해 처음 언급된 숭고(崇高)는 독자들을 이성의 경계를 넘어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한 곳으로 인도하는 수사학적인 힘’이다. 이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서 인간의 감성과 연결된 반응으로 바뀌었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대한 경험에서 발견되는 개념으로. 경외, 두려움, 공포에 대한 반응인 숭고. 숭고함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어느 순간 내가 없어져 무아 상태로 진입하고 오히려 그 대상이 나를 관찰하는 것을 이른다. 저자는 ‘반가사유상’ 앞에서 그것이 자신의 부산함을 관찰하는 듯 했다는 말을 한다. 저자가 말했듯 사유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시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를 인간이 극복해야 할 관습과 관행, 습관과 편견 등을 상징하는 존재로 본다.(167 페이지) 박상륭 작가가 ‘죽음의 한 연구’에서 외눈을 편견으로 설명한 것을 연상하게 하는 해석이다.


저자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새롭게 해석한다. 물론 두 갈래 길이 모두 좋아 보였다고 말한 시인에게서 단서를 얻은 것이기에 새로운 해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즉 시인은 어떤 것이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자기기만적으로 찬양하고 위안을 얻은 것이다. 프로스트의 시와도 통하는 내용이 진부함이란 말의 풀이이다. 서양인들에게 진부함이란 산 정상에 오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친 나머지 중턱에서 머뭇거리는 상태를 뜻한다.


진부함과 대비되는 참신한 삶은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만들어내는 삶이다. 저자는 우리는 종종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을 나와 상관없는 과거의 성인이나 철학자들이 남긴 이야기에 의지해 찾으려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내가 가야 할 길은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심연’은 자신을 찾는 방법에 대한 책, 스스로 설 수 있는, 그리하여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책이다. 빛나는 잠언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그러나 결단을 촉구하는 무거운 책이다. 종교와 신앙의 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 저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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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자기 여행 : 규슈 7대 조선 가마 편 일본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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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님의 ’일본 도자기 여행‘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도자기 전쟁‘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갈피갈피 일본의 도자기 명소를 찍은 화려한 사진들이 맛을 더한다. 저자가 논문이나 다큐멘터리 형식의 책을 쓰는 것을 넘어 엄청난 노력과 시간, 비용을 들이면서 방대한 도판을 곁들인 것은 그 노력이 우리 도자 산업에 대한 국민적 애정과 질책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도자기 전쟁‘이란 등식을 긍정한다. 일본은 조선을 침공하면 도공들을 생포해 올 것을 각 장수들에게 명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한 바탕에 도자기가 있다는 것, 일본 도자기가 한국에서 건너갔다는 사실에 자만심을 조금이라도 갖는다면 우리 도자 산업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것 등이다. 왜란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만든 일본의 도자기들은 유럽으로 수출되어 막대한 부를 낳았고 이는 메이지 유신이 추진될 수 있는 자본이 되었다. 이 자본을 바탕으로 일본은 대한제국을 합병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도자기의 운명이다. 메이지 유신 성공의 기반이 되었지만 후에 전국의 번을 현으로 바꾸는 폐번치현(廃藩置県) 정책이 펼쳐짐에 따라 다이묘(だいみょう: 10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일본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며 권력을 누렸던 영주)들이 영지를 반환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이 운영하던 전국의 관요(官窯: 어용 가마)들이 폐쇄된 것이다. 팔산(八山: 일본어로는 핫산)이란 이름이 있다. 경북 고령군 운수면 팔산리에 살다가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인 팔산은 1601~1602년 무렵 후쿠오카의 다카도리산 서쪽에 가마를 열어 일본 도자기의 시초가 되었다.


관요 폐쇄로 인해 벌어진 9대 팔산과 10대 팔산의 갈등은 한국 도자기의 역사, 그리고 예술의 위상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 살아남기 위해 가마에 불을 지피고 민간에서 쓰이는 자기라도 만들어 팔아야 한다는 10대 팔산(아들), 대대로 현상물용 명기를 만들어 온 자부심으로 살아 왔기에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9대 팔산(아버지)... 9대 팔산은 뜻을 거스른 아들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유명(幽明)을 달리 했다. 작품전을 준비하던 10대 팔산은 영양실조와 폐렴으로 60세에 숨을 거둔다.


1973년 서울 신세계 백화점에서 다카코리 세이잔 여사의 작품전이 열렸다. 초대 팔산 입장으로는 11대 후손 팔산인 세이잔 여사의 몸을 빌려 하게 된 375년 만의 귀국인 셈이다. 여사는 주최측이 제공한 비행기를 마다하고 부산행 배를 이용했다. 초대 팔산이 붙잡혀 온 길을 따라 감으로써 그 영혼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어서였다. 책의 부제는 ’규슈의 7대 조선 가마‘이다. 가라쓰(당진唐津)를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조선 침공의 전진기지였던 곳이다. 가라쓰의 원래 이름은 한진(韓津)이었다. 고대 가야 사람들이 처음 이곳과 교류하면서 한민족의 나룻터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일본 도자기에 끼친 조선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가마는 사쓰마야키 가마이다. 정유재란 때 납치된 조선 사기장들에 의해 도자기의 요람이 된 곳이다. 심수관(沈壽官)을 빼놓을 수 없다. 사쓰마도기(薩摩燒)를 개창한 인물이 심수관이다. 심수관은 왜란 때 일본에 납치되어 간 조선인 도공 심당길의 후손이다. 심수관은 심수관가 15대를 총칭하는 말이다. 일본어로 아시데 가쿠(あして かく)라는 말이 있다. 발로 쓰라는 말이다. ’일본 도자기 여행‘은 그런 말을 붙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귀한 책이다. 아니 단지 열심히 발품을 팔아 낯선 일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수많은 사진을 찍고 글감을 건져올린 노고는 빛난다.


저자는 훗날 자신이 죽어 한 줌 흙이 되었을 때 어느 사기장이 그 흙으로 하나의 찻사발을 만들 수도 있을지니 그것이 바로 억겁의 인연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 도자기 여행‘이 자랑스러운 것은 메이지 유신과 관련한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리타 및 사가 현이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밝힌 것이라 말한다. 그간 우리 학계는 아리타의 출발이 이삼평공(公)이었다는 사실 또는 일본의 본격적 도자 문화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사기장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에만 매몰되어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아리타와 도자기가 한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도공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李參平)은 일본 아리타(有田), 이마리(伊萬里) 도자기의 비조(鼻祖)로 꼽힌다. 저자는 아리타 및 규슈 도자기의 의미는 조선 출신 사기장에 대한 연구만으로 종결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이 일본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그래서 그것이 현대 일본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등의 총체적 관계를 모두 풀어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 역시 물꼬를 튼 저자의 연구가 후속 연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는 점에서 저자와 생각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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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98
호안 푸니에트 미로 지음, 이경자 옮김 / 시공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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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Joan Miro: 1893 - 1983)는 개인적 이름을 버림으로써 일반적 보편성을 얻는 과정을 통해 침묵 속에 숨어있는 소리, 부동 상태에서의 움직임, 무생물에서의 생명성, 유한상태에서의 무한성, 공백 사이에서의 형태, 익명성 안에서의 자기 자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개관 기념으로 Joan Miro, the parade of obsessions' 전을 개최한 경기도 미술관의 미로 도록(圖錄)에 인용된 미로의 말이다.


왜 강박(强拍) 또는 망상(妄想)일까?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침묵 속의 소리, 부동 상태에서의 움직임, 무생물에서의 생명성, 유한상태에서의 무한성을 찾는 것은 일본의 유학자 오구라 기조가 말한 제3의 생명을 닮았다. 그가 제시한 제3의 생명이란 어린아이가 보여주는 귀여운 몸짓, 더운 날 오후에 문득 느끼는 바람의 시원함, 꽃 한 송이가 서 있는 모습의 순진함.. 등이다. 기조가 말한 제1의 생명은 육체적 생명, 생물학적 생명을 말한다.


2의 생명은 비물질적 생명, 종교적 생명 등을 말한다. 미로의 경우 침묵 속에 숨어있는 소리, 부동 상태에서의 움직임, 무생물에서의 생명성, 유한상태에서의 무한성, 공백 사이에서의 형태, 익명성 안에서의 자신을 찾는 것과 강박성, 망상 등이 어울리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것들을 강박적으로 추구했다고 하면 아귀가 맞는다. 도록에 의하면 미로의 작품은 11,000점 정도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전시회에 선보이는 미로 작품 수는 300점이니 고도로 압축된 비율의 수이다.


미로의 세 번째 손자인 호안 푸니에르 미로, 페르낭 브로델과 함께 일하기도 했던 글로리아 롤리비에르 라올라가 함께 쓴 미로: 추상과 기호의 장인은 미로에게 최초의 양식(糧食)과 색감을 부여한 것으로 카탈루냐와 마요르카 섬의 산을 꼽는다. 학생 시절의 미로는 점토를 반죽하고 축축한 덩어리를 잡아 누르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데생이나 회화에서 갖지 못했던 육체적 즐거움을 만끽했다. 미로 역시 고흐, 세잔, 쇠라의 작품 경향을 답습하다시피 한 시절이 있었다.


1918년 첫 개인전을 연 미로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당시 구매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미로는 동향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 - 1973)에게 늘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미로가 그린 포도나무 밑동은 미로 자신이 카탈루냐 땅에 쏟는 애착을 반영하듯 휘어져 있다. 이는 강박적인 애착의 결과이다. 28세에 연 첫 번째 국제전시회 역시 실패로 끝났다. 모색의 시기에 미로는 시가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회화를 뛰어넘는 곳으로 자신을 인도했다고 말했다.


미로가 기호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을 저자들은 그의 작품에 환상이 깃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한다. 미로는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등과 블로메가(: Rue Blomet) 그룹에 속했었다.(블로메는 프랑스의 지명이다.) 전쟁(스페인 내전: 1936 - 1939)이 미로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전쟁은 미로로 하여금 무의식을 그대로 옮겨놓는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 내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미로와 고흐에게 구두가 갖는 공통의 의미이다. 그것은 가난, 기아, 고통, 비극 등을 상징한다. 미로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같은 참여정신이 담긴 작품을 그리지 않은 것은 서술적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로는 여자, , 새 등을 그리는 데 강박적이었다. 미로가 에드가르 바레즈,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 지미 헨드릭스 등의 음악을 좋아한 것은 이채롭다. 미로는 지미 헨드릭스와 자신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로가 즐겨 읽은 문학작품들은 랭보, 아폴리네르, 로트레아몽 등의 것들이다. 미로는 그림과 시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미로는 청동검을 만들기도 했다. 숭배의 대상인 청동 여성상도 미로의 목록에 포함된다. 커진 육체는 영혼의 보충을 기다리고 있다.는 베르그손의 말이 생각난다. 미로의 추상 세계,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이해하려면 새로운 눈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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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예찬 - 넘쳐야 흐른다
최재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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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품 예찬‘을 읽게 된 이유는 책 읽기 또는 공부와 관련한 습성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느 시기까지는 이런 저런 분야의 책을 남독(濫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시기를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 습관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습관에서 좀체 벗어나기 어려워서 문제이다. 한편으로는 읽기가 헤프고 비효율적이라 생각을 하고 한편으로는 혜자(惠子)에 대한 장자(莊子)의 일침(一針)을 생각하며 헤프고 넓게 읽는 습관을 정당화하는 습관의 반복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나이다.


장자는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발을 딛고 서 있는 넓이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바닥 밑면만을 남겨두고 주위의 땅을 파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라는 말로 ’자네의 이론은 현실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다는 혜자를 머쓱하게 했다. 장자의 일침은 촌철살인의 지혜라 할 수 있다. 서문(序文)에서 저자는 맡은 바 소임에 그저 알맞은 정도의 사람을 앉히면 허덕허덕 겨우 해낼 뿐이지만 능력이 넘치는 사람이 일을 맡아야 여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도 말했듯 이런 사고 방식은 자연주의적 오류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현상을 자연스러운 것 즉 좋은 것으로 보고 그로부터 당위를 이끌어내어 사회에 적용하는 오류이다. “인간을 탐구하는 과학이 자연과학에서의 실험실 상황을 흉내냈을 때 그것은 인간적 삶의 현실을 결정적으로 왜곡하게 된다.”(이정우 지음 ’인간의 얼굴‘ 285 페이지) 같은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지구라는 행성의 생물은 낭비를 기본 조건으로 선택했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자연이 낭비를 선택했듯 자본주의도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언제나 출렁이게 마련이라는 말을 하는데 자연주의적 오류를 의식해서인지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대안을 고민하는 현실을 언급한다.


핵심 챕터인 ’자연은 낭비를 선택했다’(1부)를 포함한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거품 예찬‘은 자연과 인간, 사회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을 두루 담아낸 책이다. 거품 예찬을 뒷받침하는 말은 ’넘쳐야 흐른다‘는 말이다. “무모하리만치 많이 태어나고 그중에서 특별히 탁월한 개체들만이 살아남아 번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바로 자연선택의 힘이 발휘된다. 그 결과로 적응 진화도 일어나는 것이다.”(39 페이지)


’나눔과 베풂‘이란 글에서 저자는 경쟁자가 거의 다 제거되었을 때 다양성을 잃어 천재지변이나 병원균 등 외부의 침입에 취약해지는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연생태계에서 지나친 독점이 파멸을 부르듯 인간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은 자연과 사회를 연결짓는 저자의 주지(主旨)를 다시 접하게 하는 부분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얼핏 생각난다. 굴드는 생물 진화에는 목적성이나 방향성이 없다는 말을 했다. 낭비라는 개념으로 진화를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정해진 길, 정해진 목적이 없기에 무분별하고 비효율적인 것 즉 낭비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자연은 먼 옛날 벌어진 진화의 결과에 따라 각본대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86 페이지)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들려준다. 행동생태학의 불모지인 이 땅에 들어와 학생들의 다양한 학업 욕구를 무시한 채 자신만의 연구 주제를 고집하기 매우 어려웠다는 저자는 그래서 일찌감치 자신을 버리고 학생들과 함께 실로 다양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해 왔기에 자신의 연구 논문 목록이 그야말로 산지사방(散之四方: 사방으로 흩어짐), 중구난방(衆口難防: 여러 사람의 입은 막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일일이 막아 내기 어렵게 사방에서 마구 지껄여 댐을 이르는 말)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에게 일관된 키워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회‘이다. 어떻든 나는 산지사방, 중구난방이란 저자의 말에서 넓어 헤프고 비효율적인 내 관심의 스펙트럼을 본다. 관련하에 유의미하게 읽히는 글 가운데 ’피카소처럼 살자‘를 빼놓을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이라는, 아무나 칠 수 있는 홈런이 아닌 ’최고의 홈런‘을 친 야구 선수에 비유된다면 피카소는 좋은 공, 나쁜 공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방망이를 휘두르며 높은 출루율을 자랑한 야구 선수에 비유된다고 말하는 이 글의 요지는 섬광처럼 빛나는 천재성보다 성실함과 약간의 무모함이 때로 더 큰 빛을 낸다는 것이다. 거품 예찬의 진의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글이다.


실제 야구에서 이 공 저 공 다 휘두르며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타자가 출루율이 높다는 사실을 통해 드러난다. 볼넷을 얻어낸다는 말은 나쁜 볼을 골라냈다는 의미이다. 이 공 저 공 다 휘두르면 안타수는 많아진다. 야구는 안타를 치려는 타자의 시도를 정해진 룰 안에서 방해하는 상대팀 투수라는 장애물이 있지만 피카소의 경우 매너리즘이나 슬럼프에 빠지는 자신이 유일한 난제였으리라. 거품 예찬이란 말보다 피카소처럼 살자란 제목을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거품, 천재성보다 성실함과 약간의 무모함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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