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존재들 -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는 혁명적 환경 철학
에릭 잠파 앤더슨 지음, 김성환 옮김 / 한문화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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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잠파 앤더슨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고 세상의 중심이 되는 존재라는 신념인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인 동시에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지구에 살아가는 동안 모든 존재와 역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일깨우는 이야기다. 티베트 의학을 공부하고 불교를 수행한 역사학자이자 교육자인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데에는 식물을 사용 대상이 아닌 관계 자체를 위한 고유한 생명체로 바라보게 된 전환이 자리한다. 


저자는 2017년 캘리포니아 토팡가의 티베트 의학 클리닉으로 시작해 2019년 런던으로 이전한 후 신체적, 정신적, 생태적 회복에 전념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한 Shrimala의 창설자이기도 하다. 책 제목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란 초자연적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외면해 온 수많은 존재들을 이르는 말이다. 저자는 모든 생명이 본질적으로 인식 능력이 있고 모든 존재가 자신의 진화론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인식 과정에 참여한다는 사실에는 더 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무시하고 착취하는 태도가 오늘날 무수한 사회적, 생태적 위기를 불렀다. 


저자는 인류세란 용어는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권력을 행사한 수천 년의 기간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수동적인 사물이나 배경이 아닌 밀접하게 연결된 작용 요인들의 광대한 집합체라는 사실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시기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라 말한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모든 인류가 기후 위기에 같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곧 자연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중심주의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인간 아닌 존재들을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법을 매우 효율적으로 학습한 결과다. 


저자는 동물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 아닌 생명체를 생물학적 기계로 간주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인간중심주의의 뿌리로 규정한다. 인간중심주의의 시작은 그리스였지만 그것을 전 세계로 이어지게 한 세력은 기독교다. 물론 저자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생기는 문제들을 모두 플라톤의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남성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자연의 배경화를 옹호하는 사상들의 뿌리가 대부분 그리스 철학의 이 위대한 거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한다.(111 페이지) 


기독교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로마 지역의 종교 운동인 만큼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발달한 다양한 철학사상을 이어받은 상속자나 다름없다.(117 페이지) 성체성사와 같은 기독교 의례는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에서 영향을 받았을뿐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를 지배했던 신비주의적 제례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게다가 초기 기독교도들은 신플라톤주의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에 깊은 친밀감을 나타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실상 불멸의 창조신 관념에 반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가톨릭 교회의 권위자들은 말썽이 생길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의 작품들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더욱 확고하게 융합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혼(理性魂) 개념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인간의 존재적 우위는 물론 인간적인 탐색의 과정을 통해 신성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개념 모두를 입증하려 했다. 이 두 전통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인간 중심주의라는 공통의 기반 덕분이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자신의 확신을 입증하기 위해 개와 다른 동물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인 생체 해부 실험을 벌여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20세기 초가 될 때까지 뉴턴과 다윈주의는 우주의 작용에 신성이 관여한다는 모든 가설을 완전히 몰아냈다.(122 페이지)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다. 관건은 인간중심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다고 인간의 번영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36 페이지) 탄소발자국이란 용어는 과학자나 정책입안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석유와 가스 산업에 쏠리는 부정적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브리티시 페트롤륨이란 석유 & 가스 회사가 고용한 홍보 전문 기업이 만든 용어다. 민간 부문 사업자들은 산업 규제의 기미만 보이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며 반발했고 인간이 자연의 제약을 넘어선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위해 지구를 창조했다면 인류의 번영이 지구를 파괴하도록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식의 인간중심주의적 신화를 즐겨 인용했다. 


저자는 가장 설득력 있는 과학 이론이라 해도 이야기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이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신을 제품 하나만 보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신화적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 경험과 정체성을 고려해 구매하는 것을 보라. 저자는 갈릴레오나 뉴턴, 마리 퀴리 같은 혁신적인 연구자들도 하나같이 과학적인 과정에 냉철하게 몰두하면서도 마술적인 기법과 초자연적인 신념에도 진지한 관심을 보였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식물의 뿌리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Merlin Sheldrake 참고) 뿌리는 진화론적으로 뒤늦게 추가된 부분이다. 식물이 독자적으로 성장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들은 5000만 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뿌리의 역할을 대신하는 균류에게 의존해 왔다. 마치 실처럼 생긴 이 균사체는 식물군이 땅속으로 수 킬로미터까지 뻗어나가면서 화학 신호와 영양분 치료용 화합물 등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균류가 없었더라면 초기의 식물은 5억 년 전에 절대 물 밖으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균근균은 수천만년 동안 식물의 뿌리 역할을 했고 식물이 스스로 뿌리를 내리는 법을 배운 후에도 계속해서 식물군을 돕는 역할을 도맡아왔다. 오늘날에도 균사체는 식물 공동체 내에 민감한 미생물 군집을 보호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번영을 돕는다. 


하지만 균류가 그저 식물의 보디가드겸 광대역 통신망을 제공하는 역할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태양빛을 활용해 스스로 영양분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유기체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유형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균형 잡힌 환경을 유지하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존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균류는 사실 유전학적으로 식물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특수성 덕에 그들은 생명체계 속에서 그들 자신만의 특별한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균류가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균류는 우리의 내부와 주변부에 두루 퍼진 채 자연환경이 거의 모든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인간 아닌 존재들을 무시하는 태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이 주조(鑄造)한 하나의 공동 산물과도 같다.(101 페이지) 신성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143 페이지) 신성의 개념은 우리 발아래에 있는 땅을 향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사용할 수도 있고 우리를 생태학적인 해리(解離) 상태로 몰아가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옥, 악마 등의 개념이 유대 계시 신앙과 조로아스터교의 상호작용으로 뒤늦게 추가된 개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기후 변화의 결과들과 직면하겠지만 그 결과가 균형 잡히거나 균등한 방식으로 배분되지는 않을 것이다.(152 페이지) 


티베트 의학에서는 정신 질환을 보이지 않는 존재들 때문에 시작된 병으로 보기도 한다.(172 페이지) 티베트 의학의 패러다임에 따르면 인류의 건강은 우리 주변 존재들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개인의 몸과 에너지, 마음의 균형뿐 아니라 인간 이외의 존재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내부의 균형까지 함께 유지해야 한다.(174 페이지) 저자는 신화라는 말을 넓게 사용한다. 그에 의하면 신화는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한다. 자연 세계와 인간 이외의 생명체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평범한 바위조차 무한한 경외감의 원천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과학 소설가 어슬러 르 귄은 일반적인 현실주의 소설들과 달리 공상 소설은 인간이 아닌 개체들을 핵심적인 존재로 포용한다고 말했다. 르 귄에 의하면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과 대등한 가치를 지닌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은 곧 강박과도 같은 현실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214 페이지) 저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존 로널드 루엘 톨킨(반지의 제왕의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공상은 인간의 자연스런 활동이다. 이것은 이성을 파괴하거나 모욕하지 않는다. 게다가 공상은 과학적 진실에 대한 인식을 방해하지도 진실에 대한 취향을 무디게 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이성이 더 예리하고 명료할수록 창작할 수 있는 공상의 질 역시 더 나아질 것이다.> 


나는 이를 종교와 과학의 관계로 바꾸어 읽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과학적 이성에 능할수록 종교적 마인드가 더 높아진다고. 저자는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 모두를 자연 자체로 인식하는 세계관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한다.(242 페이지)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붓다의 8정도이다. 저자의 글을 통해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다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류의 메시지에 공감할지 모르겠다. 아니 공감은 많은 사람들이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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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 1만세 운동 106주년 기념일이자 내게는 오랜만의 휴무일이다기념행사 등()에는 참가하지 않고 미뤄두었던 일을 하다가 15시 32분 전곡역을 출발해 한반도 통일미래센터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오늘 지나게 될 노선은 지난 해 10월 새로 생긴 32번 버스가 통과하는 길이다그간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도감포 위에 자리한 한반도 통일미래센터 가는 길은 자기 차가 없으면 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오늘 길은 새로 생긴 버스 노선과 주변 지형지리 등을 확인해 해설에 반영하기 위해 나서는 길이다전곡역 - 남계리 교회 - 한반도 통일미래센터(회차점)를 거쳐 전곡 터미널까지 오는 데 33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15시 32분 탑승 - 16시 5분 도착환승하는 데까지 남는 시간은 연천 종합복지관 앞에 마련된 소은숙(邵恩淑), 소은명(邵恩明자매의 독립운동가 동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채울 것이다두 자매는 연천군 출신으로 1920년 3. 1 운동 1주년 기념 만세 운동에 참여한 인물들이다당시 두 자매는 배화여고 재학중이었다


이 순례를 마치면 연천 지선 버스 터미널에서 16시 35분에 출발하는 56번 버스를 탈 것이다종점인 고문리 용하(龍河마을에 가서 친구를 만나 그의 차를 타고 오늘의 출발점인 전곡역이 있는 시내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다내일은 근무모레는 원주 문막행글피는 일산(一山교회 예배 등이 예정되어 있다토요일인 8일은 오랜만에 연천 지인들과의 산행이 기다리고 있다


독일어로 시냇물을 의미하는 바흐(Bach)에 대해 음악학자 폴 뒤 부셰는 바흐는 동유럽 방언으로 순회 음악가를 뜻한다는 말을 했다상기한 일정은 내가 참 바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사실 이 정도는 누구나 치르는 일 또는 의식(儀式)이 아닐지순회 음악가란 말이 낭만을 생각하게 하는 반면 순례 음악가란 말은 종교적 느낌을 갖게 한다순례 답사가란 말을 나에게 붙이기는 좀 그렇다답사는 원래 순례이니 순례 답사란 동어반복인 셈이다.


머리로 하는 답사도 있다루스 베네딕트의 저서인 국화와 칼이 그 결과물이다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 문화를 연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루스 베네딕트는 전쟁 중이기에 현지 조사를 수행할 수 없어 방대한 자료 조사와 미국 거주 일본인들의 도움으로 일본 문화를 탁월하게 분석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를 간접 조사가 실답(實踏)을 능가한 경우라 해석할 수는 없으리라실답의 성과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경우라 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봄이니 이곳 저곳 갈 일이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야흐로 바흐를 들을 때라는 유희적 말을 하던 때가 있었다. 마음의 봄은 아직 더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원주 문막 취병리(翠屛里교회 옆 저수지를 보며 칸트적 의미에서 불확실하고 모호한 잡다(雜多)를 정리종합하고 싶다기도가 주 목적이다. 어제 새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자 목사님께서 하신 힘 내세요란 말을 기도 열심히 하라는 말이라 해석한 친구를 생각하며 기도의 의미를 생각한다. 당연하지만 실기(實祈)와 실도(實禱)가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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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보관함에 넣은 구입 희망 도서 수가 8000권을 넘었다. 처음으로 담은 책의 일시는 2016년 3월 24일이다. 이 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심 분야가 이어지는 책도 있는가 하면 지금은 거의 사라진 분야도 있다. 

2021년 것은 어떤가? 모 신문에서 2021년 11월 12일 출간된 ‘물이 몰려온다’란 책을 접하고 보관함에 넣는 버튼을 누르자 2021년 11월 15일(출간 3일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넣은 책이라는 문구가 뜬다.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보관함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다가 처음으로 담은 책과 비슷한 시기에 담은 ‘교토대 과학수업’을 알게 되었다. 과학에서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고 다루고 결실로 연결짓는지에 대해 논한 책이다. 
일본 기초과학 노벨상 수상자 19명 중 6명을 배출한 교토대에서 한 과학 수업의 비결을 전해주는 책이다. 
<쉽게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누구나 생각해낼 만한 아이디어일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억지로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쥐어짤 때가 바로 기회가 된다. 모자라거나 원래의 방향과 다르거나 당장에 도움이 안 되더라도 그 지점에서 생각의 출발을 다시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내지 못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정리될 것>이라 말하는 책이다. 

도움이 많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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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책에서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완독하기 어려운 책을 찾아 읽는다. 이정우 교수의 세계철학사 3‘이 그 책으로 여기서 인식론적 단절이란 개념을 다시 들여다 본다. 이미지의 차원에서 태양을 보면 그것은 200 피트 정도 떨어진 곳에서 빛나는 노란 쟁반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천문학에 의하면 태양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거대한 불덩어리다. 이 양자 사이에는 인식론적 단절이 존재한다. 물론 천문학을 통해 태양을 인식했다고 해서 태양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구글에서 검색하니 이런 제목의 글이 있다. ’지질학자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지질학의 현상학과 그 인식론적 의미(What is it like to be a geologist? A phenomenology of geology and its epistemological implications)‘. 이 글은 임의로 epistemological break between sense and geology를 제목으로 설정해 검색한 결과 만난 글이다. 이 부분이 인식론적 단절과 관계 있는 것일까


지질학에도 인식론적 단절이 있을 수 있겠다. 편광 현미경으로 본 암석과 육안으로 본 암석의 차이는 어떨까? 바슐라르에 입각할 때 현대과학 그가 특히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양자역학이다 - 은 고전적인 인식론으로 해명할 수 있는 사유가 아니며 근대 과학의 범주들과는 전혀 다른 범주들을 통해 해명되어야 한다. 현대 물리학이 다루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이정우 지음 세계철학사 4’ 213 페이지) 이 설명에 근거하여 보면 지질학은 물리학은 물론 천문학과 비교해도 상당히 소박해 보인다. 물론 소박한(?) 학문마저도 적어도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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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 창비 한국사상선 1
정도전 지음, 이익주 편저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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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주(李益柱) 교수의 정도전에서 한자를 많이 배운다. 추대(推戴), 산직(散職), 총재(冢宰) ...추대의 대는 받들다, 머리에 인다 등의 의미를 지닌 대(). 대관식(戴冠式)의 그 대다. 한직(閑職)은 들어보았지만 산직(散職)은 처음이다. 한산(閑散)하다는 말의 한과 산이 모두 높지 않거나 한가한 직()을 뜻하는 것으로 쓰이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총재는 이조판서를 이르는 말이다. 무덤 총자를 쓴다는 점이 흥미롭다. 세계(世系)는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이어지는 계통을 말한다. ()은 찌지, 덧붙이는 쪽지, 주석(註釋)을 의미한다. 찌지는 간단한 쪽지를 말한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왕건을 가리켜 궁예를 대신하면서 고려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왕건 외의 박석김(朴昔金), 온조, 견훤, 주몽, 궁예 등이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국호를 세우고 서로 침탈했다고 썼다. 오직 기자만이 주() 무왕의 명을 받고 조선후(朝鮮侯)에 봉해졌다고 전제한 정도전은 지금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계승했으므로 마땅히 기자의 선정을 강구할 것이라 썼다. 정도전은 재상(宰相)의 재()는 다스린다는 의미이고 상은 돕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정도전은 임금은 오직 사람이 어진지 그렇지 못한지를 알아서 등용하거나 물리치면 백관이 다스려질 것이며 일이 온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펴서 구분해 치리하면 만물이 제자리를 찾고 만민이 편안해질 것이라 썼다. 임금의 직책은 재상 한 사람만을 택하는 데 있고 그 밖에 아래의 여러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순리라 썼다. 지인(知人)은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 ()는 모두 찬성하는 의미의 감탄사다. (), ()은 반대하는 의미의 말이다.(144 페이지 참고


정도전은 임금은 좋은 신하를, 신하는 좋은 임금을 만나기 어렵거니와 바야흐로 지금은 밝은 임금과 좋은 신하가 만나 성의로써 서로 믿으며 유신(維新)의 정치를 함께 도모하니 천년, 백년 만의 융성한 시기라 썼다. 정도전은 과거에 대해서도 논한다. 문장으로 시험을 보면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는 무리가 그 사이에 끼어들게 되고 경사(經史)로써 시험하면 실정에 어둡고 편벽되며 고루한 선비들이 간혹 나오게 된다고 했다. 경학과 부논(賻論)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상(農桑)은 농사와 뽕나무를 가꾸는 일을 말한다. 친경(親耕), 친잠(親蠶)과 함께 생각해볼 만하다


정도전은 농상 즉 농사와 양잠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의 근본이니 왕도정치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 말했다. 정도전은 나주(羅州) 지역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곳이 상마(桑麻)가 풍부하다고 했다. 상마는 뽕나무와 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옷감의 재료를 뜻한다.(230 페이지) 정도전은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라고 했다. 본실(本實)은 농업을, 말업(末業)은 수공업이나 상업을 의미한다. 천조(天朝)는 천자의 조정을 제후국에서 이르는 말이다. 정도전은 구리와 철은 그릇, 농기구뿐 아니라 무기를 만드는 소재이니 필수품이라 칭했다. 철장(鐵場)은 쇠를 단련하는 곳을 이른다


연경(燕京)은 북경(北京)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 연나라의 수도였던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본문에는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大都)라고 설명되어 있다. 정도전은 수공업자, 상인, 무당, 재인, 화척 등은 농사를 짓지 않고 남들이 생산한 것을 먹는 사람(생산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견면(蠲免)은 세금이나 부역을 감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관헌(祼獻)은 술을 땅에 뿌리고 음식을 올리는 제사 의식(儀式)을 말한다. 선마(宣麻)의 선은 임금의 말, 하교(下敎) 등을 이르는 말이다. 마는 조서(詔書)를 의미한다.


사람은 토지가 아니면 설 수 없고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적전(籍田)은 임금이 몸소 경작하는 밭을 의미한다. 온 천하가 다 같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오직 문묘(文廟)뿐이다. ()은 성정(性情)의 바름에서 나오는 것을 성문(聲文; 소리)을 빌려 표현하는 것이다. 상제(喪製)편에는 참최복(斬衰服)과 재최복(齊衰服) 이야기가 나온다. 참최복을 재최복으로 갈아 입는 이야기다. 주나라 제도에서는 병(), ()이 일치했다. 정도전은 평소 무사한 때에 군사훈련은 반드시 전렵(田獵)을 통해서 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


정도전은 사마양저(司馬穰苴)의 병법을 가감해 강무도(講武圖)를 지어 바쳤다고 말했다. (((()4계의 사냥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선 성종은 1489"나라의 큰일은 사사(祀事)와 융사(戎事)에 있는바....···(蒐苗獮狩) 하는 것을 중하게 여겼다...우리 나라의 강무(講武)하는 법은 곧 이 수···수의 뜻이라 조종 때에는 오래 거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기해년(1479년 성종 10) 이후 일이 많아서 여기에 미칠 겨를이 없다가, 전에 두 해 동안 외방(外方)의 군사를 징발하여 근교(近郊)에 벌였으나, 또한 사고 때문에 문득 다 파하여 보냈다...이제 다행히 일이 없고 곡식도 익어 가는데 이 큰 일을 강습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928일에 교외에서 열병(閱兵)하고 102일에 경기와 강원도에서 사냥하고자 한다.“고 하교했다.


정도전은 사냥은 한가한 놀이에 가깝고 잡은 짐승을 자기가 갖는다는 의심을 살만하므로 성인은 이런 점을 염려해서 사냥의 법도를 만들었다고 썼다. 하나는 백성의 곡식을 해치는 짐승만을 사냥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잡은 짐승을 제사에 바치는 것으로 이는 종묘사직과 생명을 위한 계책이라고 풀이했다. ()은 교통 요지에 설치한 관문, ()은 교통 요지에 설치한 나루를 말한다. 정도전은 임진도(臨津渡)와 벽란도(碧瀾渡)는 서울에서 매우 가까우므로 특별히 별감을 파견해서 검문을 더 하게 했으니 이는 또한 서울을 존중하고 나라의 근본을 소중히 여긴 까닭이라 썼다.(120 페이지


매이(罵詈)는 말로 욕하는 것, 소송(訴訟)은 관청에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악독(嶽瀆)은 산과 강을 말한다. 정도전은 경제문감에서 재상의 업무는 임금을 바로잡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없다고 말한다. 정도전은 마땅히 임금을 바르게 해야 할 사람이 옳은 것을 건의하고 그른 것을 고치도록 하지 않고 부화뇌동해서 임금의 뜻을 따르는 것을 능사로 삼으며 세상을 경륜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자신을 보전하고 은총을 굳히려는 술수를 부린다면 재상의 직분을 잃은 것이라 말한다.(156 페이지) 정도전은 어찌하여 붕당이 없는 것을 옳다고 하고 붕당이 있는 것을 그르다고 하는가라고 말했다.(159 페이지


()은 조화롭게 한다는 의미다. 정도전에 의하면 지엽적인 일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저절로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경제문감에는 중국의 여러 재상에 대해 논한 부분이 나온다. 주공(周公)은 성왕의 재상이 되어 예악을 정하고 천하의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하다고 정도전은 평했다. 미단숙영(微旦孰營)이란 말이 있다. 주공(周公) ()이 아니면 그 누가 경영하겠는가?란 의미다. 한나라의 장량(張良)은 고제(高帝)의 재상이 되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항우를 핍박해서 공()이 역시 극에 달했다. 정도전은 임금은 지극히 존엄하고 재상과 장수는 지극히 귀하지만 또한 간언하고 문책하며 규찰하고 탄핵할 수 있으니 나머지는 가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도전은 허물은 원래 임금이 피하지 못하고 간언은 신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말했다. 다음의 글을 보자. ”조선은 탄핵의 나라였다. 조선왕조실록에 탄핵(彈劾)463번 언급되고, 유의어인 대론(臺論), 거핵(擧劾), 탄론(彈論), 대탄(臺彈) 등을 합치면 1852건에 이른다.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신진 관료들을 대간(臺諫)으로 임명하고 면책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거침없는 직언의 길을 보장해 주었다. 이마저도 당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면이 있지만, 적어도 왕이나 권세가의 폭주를 막는 제도적 기능은 이어졌다.“(송혁기 교수 글


정도전은 무릇 사물의 이치에는 하나의 옳고 그름이 있을뿐인데 오늘날 조정에서는 옳고 그름을 과감하게 말하려 하지 않아서 재상이라면 굳이 임금의 뜻을 거역하려 하지 않고 대간 역시 재상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옛날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문()으로써 태평을 이루고 무()로써 난리를 평정했다.(190 페이지) 정도전은 책임을 지지 않는 수령에 대해 개탄하며 관리는 백성의 유모요 목자라고 결론짓는다. 책임이란 남이 주는 음식을 먹는 자가 지는 책임을 말하며 남이 주는 옷을 입는 자가 지는 근심을 풀어주는 책임이다


경제문감별집은 주역에 근거한 서술이 전개되는 글이다. 몽괘(蒙卦)의 육오 효사(爻辭)에 동몽(童蒙)이니 길하다란 주역 구절을 예로 들며 임금이 된 자가 지성으로 어진 이에게 맡겨서 그 공을 이룬다면 자기에게서 나온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란 결론을 내린 글이 대표적이다. 정도전은 임괘(臨卦)의 육오 효사에 지혜로 임함이니 대군의 마땅함이니 길하다는 구절을 예로 들며 오직 천하의 선()을 취하고 천하의 총명한 사람에게 맡기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으니 자신의 지혜만을 스스로 믿지 않으면 그 지혜가 큰 것이라 말한다. 26괘인 산천대축(山川大畜)괘의 육오 효사에는 멧돼지를 거세하여 어금니를 쓰지 못하게 함이니 길()하다란 구절이 있다.(분시지아 길; 獖豕之牙 吉


정도전은 임금은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덜어내어 아래 있는 어진 이에게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나라 문왕이 위수(渭水) 북쪽에서 낚시질을 하던 강태공을 만난 것도 새길 만하다. 본문에 덕은 크고<; > 길고<; > 곧다<; >란 말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도전은 절개가 돌과 같아서 결단하기를 하루가 다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니 바르고 길하다는 주역 예괘(豫卦)의 육이 효사를 언급한다.(232 페이지) 정도전은 돌이 단정하고 단단하며 수려하고 의젓한 것이 덕 있는 군자의 모습 같다고 말하는가 하면 기기괴괴하게 생긴 돌은 고요한 산속의 선비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연고로 사람들이 돌을 즐기는 것이라 풀었다.


공양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이 눈길을 끈다. 정도전은 덕()이란 득()이니 마음에서 얻는 것이고, ()이란 정()이니 몸을 바로잡는 것이라 한 뒤 덕이란 것이 처음에 타고나기도 하고 수양해서 얻기도 하는데 전하께서는 평소에 책을 읽어 성현의 모범을 깊이 헤아려본 적이 없고 일을 해서 지금 세상에 통용되는 사무를 안 적이 없으니 어찌 덕을 꼭 닦았다고 할 것이며 다스림에 결함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말했다. ”전하께서는 타고난 천성의 선함을 스스로 믿지 마시고 아직 수양에 이르지 못한 것을 경계하십시오. 그리하면 덕이 닦아지고 정치가 잘 행해질 것입니다.”(245 페이지


정도전은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라 말했다. 정도전은 공양왕에게 우왕(禑王)과 창왕(昌王)은 신돈의 아들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개혁세력이 자신들의 입지(立地)를 위해 내세운 설득력이 떨어지는 명분이다.(박종기 지음 조선이 본 고려참고)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임금이다. 정도전은 삼봉집에서 천자의 문을 단문(端門)이라 한다며 단이란 바로 정()이라 풀이했다. 경복궁의 정문을 오문(午門)이라 한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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