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節藻梲, 산절조절이라 읽는다. ()은 마디 절로 많이 쓰이지만 이 성어(成語)에서는 지붕 받침대인 두공(枓栱)을 의미한다. ()이 두공을 뜻하는 것은 사전을 통해서는 알기 어렵다. ()은 동자기둥을 뜻한다. 공자(孔子)는 신분을 뛰어넘는 규모의 일무(佾舞)를 추었다는 이유로 계손(季孫)씨를 질타했듯 신분에 맞지 않는 장식을 했다는 이유로 노나라 대부 장문중(臧文仲)도 질타했다. 산절조절했다는 것은 두공에 산을 조각하고 동자기둥에 수초 무늬를 그려넣었다는 뜻이다.

 

한 학인은 늘 쓰던 말의 의미와 그 말에 담긴 이치를 새로이 공부할 때 느끼는 기쁨이 주역을 공부할 때 얻는 빼놓을 수 없는 재미라고 말했다.(‘내 인생의 주역‘ 397, 398 페이지)나도 강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주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기한 재미는 한자를 공부할 때 전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재미다. 흥미로운 점은 오타로 인해 가장 많이 힘이 드는 경우가 주역을 공부할 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가령 간유배(艮有背)를 간기배로 잘못 기록한 한 책을 보고 아, 주역에서는 유()라는 글자가 기라는 음으로도 읽히는가보다란 생각을 했다. 문제는 그럴 경우 그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다. 이는 우리가 순서의 의미로 많이 아는 차()가 주역에서는 거처나 장소 등을 의미하고, 왼쪽을 뜻하는 좌()가 내치다는 의미로 쓰이고 고()의 경우 알린다는 의미가 아닌 뵙고 청하는 것을 의미할 경우에는 곡으로 읽히는 것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 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지을 ; 자를 앞에 두고 차를 다음에 두면 조차; 造次라는 말이 된다. 조차는 조차간; 造次間의 줄임말로 아주 짧은 시간, 아주 급한 때를 의미한다. ’조차; 造次가 아주 급한 때를 의미한다면 전패; 顚沛는 정신이 없어 엎어지고 자빠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 는 물이 쏟아지는 것, 넘어지는 것 등을 의미한다.

 

잘 알려졌듯 ; 는 제왕의 고향을 의미하는 풍패; 豐沛라는 말에서 만날 수 있는 말이다. 풍패는 한고조 유방이 태어난 곳이자 처음으로 군사를 일으킨 곳이다. 풍패가 제왕의 고향을 의미하는 것은 이런 연유들로 인해서다. 이성계의 연고지 전주에 있는 객사에 풍패지관; 豊沛之館이라는 현판이 있다. 1606년 명나라 황손의 탄생을 반포; 頒布; 널리 펴서 알게 함.. ; 나눌 반)’하러 온 사신 주지번; 朱之蕃이 썼다는 글씨다. 전주를 유방; 劉邦의 고향에 비유한 이름이다.)

 

곁가지가 길었는데...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문제는 주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간기배란 간유배의 오타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그러면 이리 저리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헤아림 때문에 공부가 되었다. 배망면낙(背邙面洛)이란 말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의미라는 점도 흥미롭다. 낙양(洛陽)은 망산(邙山) 즉 북망산(北邙山)을 뒤로 하고 낙수(洛水)를 앞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황하의 지류인 낙수는 산시성과 허난성을 흐르는 강이다. 낙양이 배산임수를 하고 있으니 망산 남쪽에 낙양, 거기에서 더 남쪽에 낙수가 흐른다는 말이다. 이를 산남수북(山南水北)이라 한다. 산의 남쪽, 물의 북쪽이 양()이라는 의미다. 한양(漢陽)은 낙양이라는 말을 따라 지은 이름이다.

 

중국의 경우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으로 인해 강이 대부분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그리고 물이 넘치면 대개 남쪽으로 흐른다. 물이 넘치는 남쪽은 습해서 음()이고 상대적으로 건조한 북쪽은 양()이 된다. 풍패지관이란 말도 배산임수란 말도 한양이란 지명도 모두 중국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반영한다. 최근 겸재 정선의 그림을 소중화(小中華) 사상의 구현으로 정의한 미술책을 읽었는데 함께 알아볼 만한 이슈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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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번째 괘인 수택절(水澤節)괘까지 읽었다. 물이 위에 있고 연못이 아래에 있는 괘 또는 연못에 물이 가득한 형국이다. 이 괘를 보며 박상륭 작가의 '죽음의 한 연구'에 나오는 마른 늪을 떠올렸다. 마른 늪보다 절제하는 연못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60번째 괘라니 잘 건너온 듯 하다. 이제 풍택중부, 뇌산소과, 수화기제, 화수미제가 남았다. 수화기제와 그 뒤에 나오는 화수미제가 말해주듯 하나의 책을 읽고(건너고) 나면 새롭게 건너야(읽어야) 할 책이 나타나게 된다.

 

이미 건넜음을 뜻하는 기제(旣濟) 다음에 아직 건너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미제(未濟)가 오는 것은 태평[] 다음에 막힘[]이 오는 것, 기다림[] 다음에 송사[]가 오는 것과 패턴이 같다. 어떻든 책 선택은 내가 하지만 때[]와 자리[]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고 어떤 책을 읽을지 아직 떠오르는 바가 없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주역에 개안(開眼)하게 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고 주역도 충분히 독공(獨工)이 가능함을 알게 해준 책이다.

 

수택절은 가장 쉬운 효사들로 구성된 괘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절제에 대해 말하는 '수택절'의 택은 한 없이 받아들이는 연못이 아니라 수용 가능한 만큼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아낌 없이 흘려보내는 연못이다. 이 괘의 주지(主旨)와 다르게 나는 수택을 수택(手澤) '손의 자취' 또는 '손때'라 읽는다.(은 연못이기도 하고 자취이기도 하다.) 중천건에서 수택절까지 왔으니 물때가 끼듯 책에, 그리고 시간에 자취, 흔적, 고투 등이 그려졌음이 분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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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칸타타 12'눈물 흘리며Weinen, 탄식하며klagen, 근심하며sorgen, 두려워하다zagen'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주역 45번째 괘인 택지췌(澤地萃)괘의 자자체이(齎咨涕洟)란 구절이다. 탄식하고 탄식하고 눈물 흘리고 콧물 흘린다는 뜻이다.

 

()는 모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자자재이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있기 마련인 갈등으로 인한 탄식과 눈물을 표현하는 말이다. 물론 탄식과 눈물만이 있는 모임은 없다. 리더가 덕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면 후회거리가 없어진다는, 같은 괘의 다른 구절을 통해 우리는 어렵지만 아름다운 만남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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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지 않는 상황을 밀운불우(密雲不雨)한 상황이라 말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기다림이다. 구름을 모으는 것이 내 일이라면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구름을 모으는 일이란 말은 메타포다. 물론 굳이 이런 말을 안 해도 된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녕 의도하는 것이 자연 현상인 비가 내리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다. 자연현상인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구름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새로울 것 없는 말이지만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자세가 필요하다. 식물학자 안드레아스 바를라게는 땅 위에 계속 물웅덩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란 글에서 거의 매년 봄마다 정원 일을 시작해도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3월 초에 햇살 드는 날들을 고대하는 한결 같은 자신의 습성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바를라게는 토양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토양의 점성이 크다면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고 말한다.

 

주역(周易)의 다섯 번째 괘인 수천수(水天需)괘는 기다림에 대한 괘다. 기다림<; >이란 유부(有孚)해야 즉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유부옹약(有孚顒若)을 줄여서 부옹(孚顒)이라 한다. 믿음이 있으면 우러름이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물을 의미하는 감()괘를 구름을 상징하는 괘로 풀이한 주역 책들이 있음을 말하고 싶다. "구름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날씨과학’ 163 페이지)기 때문이리라.(구름이, 너무 많이 가진 수분의 일부를 내려놓는 것이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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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읽는 조선 - 공간을 통해 본 우리 역사 규장각 교양총서 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도시는 내 주요 관심사다. 서울 및 연천 해설의 연장선상에서 생긴 결과다. 서울은 한성백제와 조선, 일제하의 경성 등의 키워드로, 연천은 고구려와 고려 등의 키워드로 풀어나가고 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펴낸 도시로 읽는 조선은 한양, 개성, 전주, 변산, 제주, 평양, 인천, 원산, 경성 등의 아홉 도시를 해명함으로써 조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공간과 장소는 의미가 다르다. 공간은 낯설고 유동적이어서 쉽게 잡히지 않는 개념이고 장소는 공간에 주관적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책에서 다룬 아홉 도시 가운데 내게 주관적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곳은 한양, 개성, 원산, 경성 등이다. 물론 한양, 경성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고 개성, 원산은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곳이다. 다만 한양, 경성은 서울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만나는 곳이고 개성은 고려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원산은 내가 사는 연천을 통과하던 경원선의 종착점이다. 한양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려 문종대부터다. 고려는 건국 이후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서경(西京)으로, 신라의 수도 경주를 동경(東京)으로 삼아 개경(開京)과 함께 3경 체제를 구축한 데 이어 문종대에 양주를 남경(南京)으로 승격시키고 궁궐을 조성했다.

 

58세에 고려 수도 개경의 수창궁에서 즉위한 조선 태조는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태조는 즉위 2년까지 고려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계룡산을 새 수도로 추천한 사람이 권중화였다. 하륜은 무악(현재의 신촌, 연희동 일대)을 추천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성(漢城) 설계를 담당했던 정도전도 처음에는 천도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태조대에 전조후시(前朝後市) 원칙에 따라 신무문 밖에 시장을 조성했으나 지역이 좁고 바로 뒤가 막혀 있어 태종이 종로로 옮김으로써 유통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개성은 20136월 개성역사유적지구란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영조실록에서 처음으로 두문동(杜門洞) 일화가 나온다. 두문동(杜門洞)은 고려가 멸망하자 조선 시대 송도(개경, 개성) 성거산 서쪽에 고려의 신하 72명이 살던 곳이다. 72명은 공자의 제자 72현을 모델로 만든 수()로 보인다.

 

전주는 감영(監營)으로 호명되었다. 감영은 감사(監司)의 본영(本營) 즉 조선시대 8도에 파견된 관찰사(2)의 업무 공간이었다. 전주는 나주, 광주에 비해 서울에서 가까운 고을이다.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관찰사는 일상적으로 지방관의 근무를 평가하고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감찰(監察) 업무를 치르는 등 상당히 힘든 일정을 치렀다. 조선 후기 전주는 감영을 바탕으로 대도시로 성장했다.

 

사람 살기에 적합하면서도 호젓하고 풍광이 빼어난 변산은 한 면은 넓게 바다로 열려 있고 나머지 세 면은 산으로 둘러쳐져 있는 호리병 같은 곳이다. 변산반도와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있다. 교산 허균과 반계 유형원이다. 변산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형원은 서른 두살 때 변산에 들어와 죽을 때까지 살았다. 변산에서 유형원이 집중적으로 저술한 책이 반계수록이다. 이 책은 토지제도를 비롯, 정치, 교육, 군사 제도 및 사회신분제 등 국가 전 분야에 걸쳐 조선의 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법제를 모색한 국가 기획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기조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에 둔 변혁이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등에게로 이어졌다.

 

제주는 풍부한 신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브리콜뢰르(손재주꾼)의 브리콜라주(손재주 작업 결과물)로 파악한 신화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 제주다. 치밀한 계획이 아닌 무엇이든 손쉽게 사용 가능한 재료로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다.

 

평양은 평안도의 감영이 있던 곳이다. 평양 감사가 아니라 평안 감사라 해야 맞다. 감사 즉 관찰사는 도 단위의 관직이다. 평안감사가 탐관오리의 대명사가 된 것은 평양이 사행로의 주요 경유지였기 때문이다. 경유지 도처에서 사신들을 접대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은 일본에 의헤 설치된 조계(租界) 지역이었다. 인천은 1876(고종 13) 강화도 조약 이후 부산(1876), 원산(1880)과 함께 개항된 세 항구 중 하나다. 인천이 개항된 시기는 1883년이다.

 

영흥만에 위치한 원산은 태조 이성계의 조상인 목조(穆祖) 때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조선은 일본이 개항지로 영흥만을 요구하자 왕릉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일본이 원산을 개항지로 고집한 것은 가상의 적인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경성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의 500년 도읍지인 한양(한성)을 대체해 불린 이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 도시인 서울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가 20세기 초 즉 경성 시절이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독립운동과 저항, 상존하는 위험이 그 사대의 전부가 아니듯 모던함도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근대 또는 현대라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변화와 속도를 당대인들은 모던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경성과 밀접했던 시인, 작가가 이상(李箱), 박태원 등이다. 이상은 제비 다방, 쓰루(つる; ) 다방 등을 운영했다. 상자 속에 갇힌 듯 전공이나 제한된 관심사에 매몰된 근대인을 희화화한 이상은 암울하고 무력한 식민지 시대에 비상 충동을 느꼈으리라.

 

책의 앞 부분에 이상의 오감도 이야기가 나온다. 1인의 아해부터 13인의 아해까지 등장하는 이 시에서 13이란 숫자는 조선 13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 8도가 13도가 된 것은 1896년 갑오개혁 이후다. 이상의 오감도는 막다른 골목이자 뚫린 골목인 식민지 시기 한반도의 공간성과 역사성을 결함시킨 작품이다.(9 페이지) 이상의 날개가 관념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좌우된 개인의 실존을 드러낸 작품이듯 오감도 역시 시대상황과 무관할 수 없는 작품이다. 도시 이야기를 다룬 여타의 다양한 책들을 읽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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