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이란 말을 처음부터 종묘제사 등에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을 의미하는 것으로 배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에게 익숙한 희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이나 특정 목적 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이나 재산, 명예와 이익 등을 바치거나 버리는 것 또는 그것을 빼앗긴다는 의미리라.

 

많은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지만 희생이란 말이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이라 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에게 그 반대는 무엇인가, 라 물은 적이 있는데 대부분 몰랐다. ‘궤식; 饋食이 답이다.

 

일식을 日蝕으로도 쓰고 日食으로도 쓴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그럼 전통 시대 우리 조상들이 일식과 가뭄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일식을, 신하를 상징하는 달이 임금을 상징하는 해를 잠식하는 현상 또는 강한 음기가 쇠약한 양기를 압도해서 생겨나는 현상으로 보고 구식례(救食禮)라는 퍼포먼스를 치렀다.

 

북을 치고 활을 쏘는 등 달을 향해 공격을 하고 제단에는 희생(犧牲)을 바친 것이다. 반면 가뭄은 일식과 달리 존귀한 양이 비천한 음을 소멸시킨 현상으로 생각해 조용히 기우제를 올리며 비가 내리기를 수동적으로 요청하는 등 난리를 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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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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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을 한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가 "우리 나라가 독립한 이래 가장 위대한 애국자는 침식을 가장 많이 막아낸 사람이다."란 말도 했다지질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David Montgomery; 1961-)의 ''에서 접하게 된 말이다. ‘은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이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이라 했지만 원제는 ’Dirt’. Dirt는 먼지는 물론 흙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몽고메리는 지질학자로서 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앞서간 사회가 그 시대의 흙에 새겨놓은 기록을 살펴보면 좋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지형학자로서 나는 지질연대를 통해 지형이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자연 경관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연구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흙이란 무엇인가흙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는 역동적 시스템(24 페이지)이고 우리 행성을 이루고 있는 암석그리고 암석에서 용해되어 나온 영양소와 햇빛에 기대어 사는 식물들과 동물들의 인터페이스“(28 페이지).

 

암석을 배우는 입장으로 흥미를 가질 만한 분류도 몽고메리에 의해 제시되었다화강암이 풍화하면 모래흙이 되고 현무암이 풍화되면 점토질 흙이 된다석회암은 녹아서 사라지면서 얇은 흙층과 동굴이 있는 암석지대를 남긴다.(31 페이지중요한 점은 지구의 기후대는 흙과 식물군락이 진화하는 템플릿이란 점이다.

 

이 부분에서 기후와 흙과 식물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성경의 모세초기 미국의 인물들 등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을 사례로 거론한 몽고메리가 말하는 바는 흙의 침식 속도와 재생산 속도의 갭이다당연히 너무 빠른 침식 속도는 위험 요소다.

 

몽고메리는 점점 빨라지는 흙의 침식은 그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거덜낸다고 말한다.(202 페이지몽고메리는 문화와 예술과학 같은 다른 모든 것의 밑바탕은 충분한 농업 생산물로 번영의 시기에는 이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농업이 비틀거릴 때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문제는 흙이 천천히 사라지기에 농부들이 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점이다.(211 페이지몽고메리의 이야기는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 1940-2011) 이야기로도 이어진다에티오피아 시골에서 환경을 살린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분이다평생 50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은 분이다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이다


지질학자로서 지형이나 암석보다 흙그리고 흙의 침식과 재생의 관계에 천착한 몽고메리의 노고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1958년 미국 농무부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미국 농지의 거의 2/3가 흙의 유실 허용치를 넘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침식되고 있다.(241 페이지)

 

몽고메리는 흙의 침식이 고대 사회들을 무너뜨렸고 오늘날의 사회도 심각하게 뒤흔들 수 있다는 무시 못 할 증거 앞에서도 지구적인 흙의 위기와 식량 부족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는 허공으로 흩어진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반 미국의 농업경제학자 레스터 브라운(Lester Brown; 1935-)은 현대 문명이 석유보다 흙을 먼저 다 써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246 페이지몽고메리는 토지 생산성은 자본과 노동과학의 투입에 따라 무한정 높아질 수 있다는 엥겔스의 오류를 지적한다.

 

물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흙을 착취하는 기술의 진보라는 생각을 드러냈다엥겔스의 생각은 마르크스를 만나기 전의 생각이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만남을 들뢰즈와 가타리의 그것과 비교할 만하다들뢰즈와 가타리의 만남은 번개와 피뢰침의 만남이라 말해진다들뢰즈는 가타리가 번개였다면 자신은 피뢰침이었다고 말했다


여러 인용 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미국의 지질학자 토머스 체임벌린(Thomas Chrowder Chamberlin; 1843 - 1928)의 말이다. ”흙이 사라지면 우리 또한 사라진다암석을 그대로 먹고 사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모를까.“

 

지질학이란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나 대상을 다루는 학문이다몇 센티미터의 흙을 만드는 데 걸리는 천 년“(332 페이지)은 수십만년수백만년에 비하면 짧지만 우리의 삶에는 아주 긴 시간이 아닐 수 없다책 전편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흙이 보충되기보다 빨리 흙을 잃는 농법은 사회를 무너뜨린다.”(339 페이지)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말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한 문명을 끝장내는 데 이바지하지만 한 문명을 뒷받침하려면 반드시 기름진 흙을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346 페이지)는 말이다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저자가 지질학자이기에 암석에 대해 말할 법 하지만 흙을 이야기한 것은 지질 또는 지리적 관점을 넘어 우리 문명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 결과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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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의 ''에서 다윈의 지렁이(다윈은 흙을 만들어내는 지렁이를 자연의 정원사라 이름했다.) 실험, 지각평형설 등의 개념을 만난다. 지각평형설은 침식으로 인해 땅이 없어지는 몫을 상쇄하기 위해 지표를 향해 암석을 밀어올리는 것을 말한다.

 

몽고메리는 지리학은 흙이 침식되는 원인과 침식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다룬다고 말한다.(10 페이지) 지리학은 자연지리학과 인문지리학으로 나뉘니 몽고메리가 말한 지리학은 자연지리학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생명체에게는 한꺼번에 사라져 버릴 만큼 빠르지 않아야 하고 흙을 늘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침식이 필요하다."(28 페이지)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는 지각평형설은 침식이 땅을 없애기도 하지만 없어진 높이의 상당 부분을 상쇄하기 위해 지표를 향해 암석을 끌어올리기도 한다고 설명한다."(22 페이지) 이 문장에서 땅을 없애는 것이 침식인 것은 분명하지만 암석을 끌어올리는 것도 침식인가요?

 

원문이 어떤지 모르지만 자연의 평형 시스템이 암석을 끌어올리는 행위의 주체로 받아들여지네요.. 다윈의 자연선택처럼요..다윈은 자연선택에 행위자가 있는 것처럼 자꾸 오해하는 것이 괴로워 자연선택 대신에 스펜서가 추천한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정인경 지음 '뉴턴의 무정한 세계' 137 페이지)고 하지요.

 

물론 다윈은 후에 자연선택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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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쓰기와 글짓기는 별개라 생각해왔다. 악필의 변명인 셈이다. 글씨도 잘 쓰고 글도 잘 짓는 사람들 앞에서 초라하게 들리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글씨는 그 사람(서여기인; 書如其人)이라 하지만 인품 이전에 기능의 문제라 생각한다. 그럼 지도 제작은 어땠을까?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각수(刻手)였다는 말이 있다. 목판에 지도를 새기는 능력도 갖추었었다는 말이다.

 

혜강(惠崗) 최한기 선생이 김정호 선생이 지도를 그리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주었으며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마경묵, 이강준, 박선희, 이진웅, 조성호 지음 십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 땅 이야기’ 45 페이지)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가 각수였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안타까운 점은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음에도 선생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재인과 환쟁이는 난전에서 태어나고 난전에서 스러졌느니...“란 시(이달균 시인의 혁필; 革筆중에서)에 그의 얼굴이 겹친다. 난전(亂廛)이 무엇인가? 전안(廛案)에 등록되지 않거나 허가되지 않은 상품을 몰래 파는 행위나 가게를 의미한다. 김정호 선생에게 붙은 항설(巷說) 가운데 하나가 지도 제작이 나라의 기밀을 누설한 죄로 처리되어 옥사(獄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재건(劉在建; 1793 - 1880)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김정호 선생의 죽음이 몰(歿)로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만일 김정호 선생이 죄인으로 죽었다면 물고(物故)라 표현되었을 것이란 의미다.

 

만일 지도 제작이 문제가 되었다면 그에게 재정 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도움을 준 최한기 같은 분이 처벌당했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다는 점도 김정호 선생이 죄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추정을 하게 한다.

 

김정호 선생이 세종이나 정조 시대에 살았더라면 필시 실록에 실릴 정도로 칭송을 받을 수 있었다(시니어 신문 201699일 기사 역사소설 <대동여지도 고산자의 꿈> 출간‘)는 주장이 있다. 김정호 선생 이야기를 한 것은 재인(才人)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옹기장이와 사당패 재인의 사랑 이야기란 부분이 있는 책(이수광 지음 명인열전‘)에서 김정호 선생 이야기를 접하게 된 까닭이다. 재인처럼 김정호 선생도 떠돌이 인생이었다는 데에 생각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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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가 지났다. , 한식, 추석과 함께 우리의 4대 명절로 꼽히는 절기가 동지다. 조선은 어땠을까? 태조실록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동지를 맞이하여 중국의 황제 있는 곳을 향하여 축하의식을 갖고 신하들의 하례를 받다."

 

중국 황제 있는 곳을 향하였다는 말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있다. 화양서원이다. 우암 송시열을 모신 충북 괴산의 사당이다. 이곳이 특징적인 것은 남향이 아닌 북향을 취했기 때문이다. 명나라에 대한 충절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배치다.

 

특정한 날에 중국을 향해 의식을 치르는 것을 넘어 처음부터 중국을 바라보도록 건물을 설계한 것이다. 동지가 4대 명절의 하나인 이유는 길고 길었던 겨울의 어둠이 조금씩 줄어드는 시점일이어서 희망을 떠올리기에 마땅하기 때문이다.

 

태종실록에는 동지이기에 임금이 문소전(文昭殿)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는 구절이 있다. 문소전은 경복궁에 조성된 태조의 첫 번째 비 신의왕후 한씨의 사당이다. 그러니 태종이 어머니 사당에 나아가 참배한 것이다. 태종실록에는 동지는 양()의 기운이 생기는 날이고 군자가 즐거워하는 날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우리가 따뜻한 겨울을 염려하듯 당시에도 날씨 걱정을 했다. "이미 동지(冬至)를 지났으므로 마땅히 추워야 할 터인데도 따뜻하고 마땅히 눈이 와야 할 터인데도 비가 오니 음양(陰陽)이 어긋나는데 어찌 감응(感應)을 부른 바가 없겠습니다?”(성종실록), “요즈음 일기가 불순하여 동지(冬至)가 지나도 기후가 봄과 같고 장마가 멎지 않습니다. 가을 장마도 좋지 않은 것인데 하물며 겨울 장마이겠습니까?....임금이 하늘을 받들어 대함이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다면 어찌 천변이 있겠습니까?”(중종실록)

 

나이 때문인지 성탄이 온 것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 동지(冬至)가 지난 것이다. 겨울이 아직도 적어도 한 달 이상 남았지만 동지가 지났으니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은 목소리로 축 성탄(聖誕)이라는 말을 읊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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