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 길상사(吉祥寺), 종로 대각사(大覺寺), 파주 보광사(普光寺), 경주 불국사(佛國寺), 화성 용주사(龍珠寺), 영월 법흥사(法興寺)...지금껏 해설한 여섯 사찰이다. 종로 청룡사(靑龍寺)를 해보고 싶다. 허경(虛鏡) 스님이 수행하다 82세로 입적한 동망산 자락의 사찰이다. 시누이의 시댁(해주 정씨의 남양주 진전읍)에 묻힌 비운의 인물이다.

 

조카(시누이의 아들) 정미수(鄭眉壽)의 간청을 받아 그를 시양자(侍養子)로 삼은 것이 그나마 아름답고 마음 훈훈하게 다가온다. 허경 스님이 시누이의 시댁의 선산에 묻힌 것 역시 정미수의 덕이었다.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이 분이 궁에서 나올 때 따라나온 여인들 모두 스님이 되었다.

 

아버지 신수근(愼守勤)이 반정 세력편에 서지 않고 연산군편에 섰다는 이유로 왕비 자리에서 쫓겨난 중종 원비 단경왕후 신씨가 연산군의 비였기에 쫓겨난 고모 폐비 신씨를 친정에서 만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지난 번 영월 시간에는 청룡사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정순왕후가 궁에서 나올 때 따라나온 후궁 권씨는 허경(努鏡)이라는 법명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努’가 허로도 읽히는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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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엔 산사에 간다 - 막힌 일상을 확 풀어줄, 자연주의 도심 산사 20곳
여태동 글.사진 / 크리에디트(Creedit)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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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째 서울 (중심의) 문화 해설을 하다 보니 몇 가지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해설 포스트의 대부분은 종로구의 장소들이고 나머지는 중구의 그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산사(山寺)라는 말에 걸맞게 대부분 산에 있는 사찰은 해설 포스트로 삼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성북을 하며 길상사를 포함시킨 적이 있고, 종로를 하며 대각사(大覺寺)를 포함시킨 적이 있다. 지방의 경우 파주 시간에 보광사를, 경주 시간에 불국사를, 화성 시간에 용주사를, 영월 시간에 법흥사를, 철원 시간에 도피안사를 포함시켰을 뿐이었다.

 

여태동 저자의 ’점심시간엔 산사에 간다‘는 내게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이동 도선사에서 홍은동 옥천암까지 모두 서울의 사찰, 그 가운데서도 점심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란 점이다. 책에서 다루어진 사찰은 모두 20곳으로 내 고충과 달리 종로나 중구 외의 곳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찰 한 곳만을 해설할 수도 있지만 대개 두 시간을 하는 문화 해설에서 사찰 특집이 아닌 이상 책에서 소개된 사찰만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해당 사찰 주변의 문화 유산이나 유적지를 시간을 고려해 포함시켜야 한다. 물론 현대적인 건축물을 할 수도 있고 서울 미래유산을 포함시킬 수 있다.

 

스무 곳의 사찰 가운데 한 번이라도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은 견지동 조계사, 성북동 길상사, 정릉동 봉국사 등 세곳이다. 돌아가시고 나서 알게 된 이래 사숙(私淑)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런 염(念)으로 존경했던 일지(一指) 스님이 지난 2004년 45세의 세수(歲首)로 입적(入寂)하신 갈현동 수국사는 특별히 관심이 간다.

 

책의 특징은 각 사찰의 시작 부분에 사찰의 개략적 정보와 길 안내가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점심 시간엔 산사에 간다‘는 출간된 지 13년이 넘었는데 점심 시간에 다녀올 수 있다는 말은 저자가 종로 우정국로에 소재한 전법회관에 사무실을 차리고 있었던 불교신문 기자로 있을 때 나온 말이니 종로 중심가에서 점심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고 관건은 ’전철 또는 지하철에서 어디’라는 말이다.

 

강북구 우이동을 주소지로 한 도선사(道詵寺)는 북한산의 남쪽 지역에 자리한 사찰이다. 도선 국사가 창건한 사찰이어서 도선사다. 의아한 것은 삼각산 도선사라는 현판이 있음에도 북한산 도선사라 소개한 것이다.

 

두 번째 사찰은 견지동 조계사(曹溪寺)다. 너무 유명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곳이다. 주변에 우정국과 수송공원이 있다. 수송공원은 목은 이색 선생의 사당이 있는 곳이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정국 건물 구석에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동상이 있다.

 

세 번째 사찰은 상도동 사자암(獅子庵)이다. 이 사찰은 광화문 양편에 불을 잡는 해태를 세우고 숭례문을 지어 불기운을 막고자 한 것처럼 비슷한 목적으로 지은 사찰로 경복궁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기운을 누르고자 사자 형상을 한 곳에 세웠다. 이를 비보(裨補)사찰이라 한다.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는 것만이 아니라 강한 기운을 제하는 것도 비보다.

 

네 번째 사찰은 수유동 화계사(華溪寺)다. 숭산 스님이 주석했던 인연으로 외국인들이 찾아와 수행하는 국제적 선원이다. 화계사 앞에 한신대학원이 있다.

 

다섯 번째 사찰은 갈현동 수국사다.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의 수국사(守國寺)다. 세조가 일찍 죽은 아들 의경세자(성종의 아버지)를 위해 지은 사찰로 정인사(正因寺)라 불리다가 경종이 아버지 숙종과 인현왕후의 명릉(明陵)의 사찰 이름을 가져와 수국사라 했다.(경종 1년) 본문에 내가 이야기한 일지 스님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이 반승(半僧), 반속(半俗)의 모습으로 저술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여섯 번째 사찰은 진관외동 진관사(津寬寺)다. 비구니 스님들의 주석처다. 일곱 번째 사찰은 진관외동 삼천사(三千寺)다. 조선시대에 3000명이 수행할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 삼천사란 이름도 이로부터 유래했다. 임진전쟁 당시에는 스님들의 집결지였다. 서울의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여덟 번째 사찰은 정릉동 심곡암(深谷庵)이다. 저자는 자신이 심곡암을 자주 찾는 이유는 주지 스님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했듯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큰 복이다.

 

아홉 번째 사찰은 정릉동 경국사(慶國寺)다. 고려 충숙왕 12년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 청암사(靑巖寺)라 불리다가 조선 명종 5년 문정왕후가 나라에 경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 경국사로 개명했다. 임진전쟁 당시 서산대사(휴정)와 사명대사(유정)가 머물며 승병을 지휘한 사찰이다. “경국사는 숲으로 둘러싸인 초록 요새다. 그래서 절에 들어서면 안온하다. 어지간한 구중심처보다 더 깊은 맛을 자아내는 사찰이다.”(125 페이지)

 

열 번째 사찰은 구기동 승가사(僧伽寺)다. 구기동(舊基洞)은 종로구에 속한 동이다. 구기동 이북 5도청이 있는 버스 종점에서 내려 아래로 10여미터를 내려오면 승가사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열한 번째 사찰은 성북동 길상사(吉祥寺)다. 책에 소개된 사찰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찰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김영한(자야, 길상화 보살) 신도와 백석 시인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법정 스님 사연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소유를 덜어내는 궤적으로 설명한다.(149 페이지) 경내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최종태씨가 화강암으로 만들어 봉안한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열두 번째 사찰은 신촌 봉원사(奉元寺)다. 전통 불교 의식인 무형문화재 제 50호 영산재(靈山齋)를 보존하고 있는 근본 도량이다. 신라말 도선 국사가 반야사라는 명칭으로 창건하였고 고려말 태고 보우가 중창하였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삼존불을 조성하였다. 영조 때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고 봉원사라는 현판도 내렸다. 사람들은 이후 봉원사를 새 절이라 불렀다. 신촌(新村)이란 이름도 이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열세 번째 사찰은 구기동 금선사(金仙寺)다. 승가사에 이어 다시 만나는 구기동의 사찰이다. 고려말 또는 조선초 무학대사가 지었다고 알려졌다. 이 절은 정조와 수빈 박씨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순조를 낳은 분이 수빈 박씨다. 농산 스님이 순조로 환생한 것을 알게 된 정조는 스님을 핍박하던 폐단을 없애고 내수사(內需司)에 명하여 목정굴 위에 절을 크게 중창하게 했다.

 

이 일로 매년 음력 6월 18일 순조의 탄신제가 열린다. 목정굴에서 정진하던 농산 스님이 앉은 채 열반에 들었고 굴 안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서북쪽으로부터 맑고 붉은 서기(瑞氣)가 왕실에 닿아 산실을 휘감았다. 저자는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맞다고 말한다.(178 페이지.. 본문에는 세옹지마라 나온다.)

 

의빈 성씨가 사망한 후 수빈 박씨가 후궁이 되었는데 이는 홍수 때문이었다. 화평옹주(사도세자의 친 여동생)의 남편이자 정조의 신임을 두텁게 받았던 박명원(연암 박지원의 8촌 형)은 못생기고 철없는 자기 딸 대신 홍수 때문에 집을 잃고 자신의 집을 찾아온 먼 친척 박생원의 딸을 후궁 간택에 내보낸 것이다.(수빈 박씨; 순조 어머니. 의빈 성씨; 문효세자 어머니.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 김씨)

 

열네 번째 사찰은 삼성동 봉은사(奉恩寺)다. 봉은사는 추사 김정희가 쓴 판전(板殿)이 있다. 저자는 판전을 보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다가 한승원 작가의 소설 ‘추사’를 읽고 자세를 달리 했다고 말한다. “봉은사에 가면 꼭 봐야 할 나무가 있다.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지만 부도전 옆 경사면에 서 있는 산사나무다. 수령만해도 200년이 훨씬 넘은 이 나무는 가을이면 엄지 구슬만한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다. 한자로는 산사목(山査木)이다.”(191 페이지)

 

열다섯 번째 사찰은 흑석동 달마사(達磨寺)다. 서달산의 사찰로 돌이 많아 서덜서덜 다녔다고 해서 서덜산이라 불리기도 했다.(서덜: 냇가나 강가 따위의 돌이 많은 곳, 생선의 살을 발라내고 난 나머지 부분. 뼈, 대가리, 껍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열여섯 번째 사찰은 구의동 영화사(永華寺)다.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절이다. 신라 문무왕 1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해 화양사(華陽寺)라 불렀다. 아차산에는 이름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온달과 관련한 것이 하나, 조선 명종 때 홍계관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다.

 

열일곱 번째 사찰은 정릉동 봉국사(奉國寺)다. 한양으로 수도를 정한 후 무학대사가 비보사찰을 세웠다. 현종(숙종 아버지)이 태조의 두 번째 비 신덕왕후의 묘를 능묘로 정한 후 명복을 비는 왕실의 원당으로 지정하고 나라를 받는다는 의미의 봉국사라 불렀다.

 

사찰 중심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영락전(靈樂殿)이 있다. 봉국사의 중심 건물은 만월보전(滿月寶殿)으로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어머니 품 같은 산사 분위기를 전해주는 건물은 광응전(光膺殿)이다.

 

열여덟 번째 사찰은 숭인동 청룡사(靑龍寺)다. 종로구 숭인동 17 - 1 번지에 자리한 사찰이다. 단종과 비(妃) 정순왕후 송씨의 애절한 사연이 깃든 사찰이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면 낙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곧바로 난 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청룡사가 나온다. 청룡사 한켠에 정업원구기가 있고 앞에 동망봉이 보인다.

 

청룡사를 끼고 왼쪽으로 오르면 원각사가 나온다. 그 옆 복원된 초가 뒤뜰에 자주동천이라는 글귀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수양대군의 쿠데타로 왕대비에서 대역죄인이 된 정순왕후는 더는 수강궁에 머물 수 없어 삼각산 청룡사로 향했다. 정업원(淨業院)에 가서 부처님께 예불하고 경전을 독송하며 죄업을 참회했던 정순왕후는 궁 밖으로 나서면서 출가를 결심했다.

 

정업원은 처음에는 내불당(內佛堂)이라 불렸으나 유생들이 항의를 해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청정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정업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궁을 나선 정순왕후는 청룡사에 머물렀다. 청룡사에 하룻밤을 보낸 단종은 다음날 정순왕후와 헤어져 한맺힌 유배길을 갔다.

 

정순왕후는 단종을 마을 다리까지 배웅했다. 이 다리는 후세에 영원히 이별을 나눈 다리라 하여 영리교(永離橋)라 불렸다. 정순왕후는 청룡사 지진 스님으로부터 허경(虛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세조가 된 수양대군은 정순왕후에게 영빈전이란 작은 집을 짓고 식량을 내렸으나 허경 스님은 끝내 거부하고 청룡사에서 기거하며 82세까지 살았다.

 

정순왕후는 입적 후 단종의 누나인 경혜 공주의 시댁인 정씨 집안의 묘역인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 사능리에 묻혔다.(‘사릉; 思陵‘) 177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년) 11월 6일 단종 복위와 더불어 정순왕후로 복위되어 종묘에 신위가 모셔졌다.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안 정순왕후가 동망봉(東望峯)에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동쪽을 향해 통곡했다. 온 마을 여인네들이 땅 한 번 치고 가슴 한 번 치며 동정하는 곡을 했다.

 

열아홉 번째 사찰은 삼성암(三聖庵)이다. 150년 정도된 사찰이다.

 

스무 번째(마지막) 사찰은 홍은동 옥천암(玉川庵)이다. 자하문(紫霞門) 지나 세검정(洗劍亭) 지나 흰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이다. 1990년대만 해도 생활 폐수로 검은 물이 흘렀고 연희동으로 빠지는 홍제천(弘濟川)은 먼 옛날 옥처럼 맑은 물이 흘러 옥천이라 했다. 이 계곡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옥천암에는 하얀 관세음보살이 마애불(磨崖佛)로 새겨져 있다. 조선 태조도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마애불 앞에서 기원했다고 한다.(25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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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 전기원은 극한 직업 중 하나다. 위험하고 힘들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직업인 까닭에 일당이 4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수십 미터 높이의 송전탑에 올라 작업하는 송전 전기원들은 높이, 바람, 고전압(물론 '활선; 活線'을 '사선; 死線'으로 바꾸는 조치를 취하지만 잔여 전압도 작지 않다.) 등과 맞서야 하는 사람들이다.

 

송전탑과 송전탑 사이에는 여러 겹의 전선이 이어져 있다. 선들 사이에 접촉이 생기면 화재 등의 사고가 나기에 그러지 못하도록 사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스페이셔 댐퍼(spacer damper)를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기에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스페이셔 댐퍼를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교육방송의 극한직업 프로그램에 나온 한 송전 전기원은 자신에게 산타기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는 말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위험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는 없다. 그 분들은 PVC 재질의 안전장치로 손의 마찰을 방지해가며 하나의 송전탑에서 이웃 송전탑으로 이동해간다. 스페이셔 댐퍼가 선과 선의 접촉을 막는 장치라면 PVC 안전장치는 손과 선의 직접 접촉을 막는 장치다.

 

무거운 장비와 함께 가는 것이기에 요령 같은 것이 있냐는 취재팀에게 힘으로 할 뿐이라고 답하는 전기원을 보았다. 장인(匠人)에게서 나온 극히 상식적인 말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진 여건에서 일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본 교육방송 극한직업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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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유튜버 이상우의 주식투자 끝장내기
이상우 지음 / (주)이상미디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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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유튜버 이상우의 주식투자 끝장내기‘는 저자가 18년간 쌓아온 주식 투자의 비기(秘技)를 한 권에 모은 책이다. 유튜버에 가면 이상우 저자의 경우 구독자가 60만명에 근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주식 투자는 관련 지식과 정보가 모두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투자자의 감정과 심리 등 재무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부분들이 투자 성과의 대부분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주식 투자에서 핵심적인 것은 감정 또는 마인드이다. 본문에 의하면 매도세는 매수세보다 급하고 감정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오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로 인해 정상적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진다.(221 페이지) 심리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일깨우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술적 분석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저자는 분산 투자가 모든 상황에 적절한 투자 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주식 시장은 심리싸움이다’라는 파트가 눈에 띈다. 저자의 별명은 개선 선생이다. 개미들의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주식에서 지양해야 할 부분들을 나열한 부분은 사실 심리학 교과서를 방불하게 한다. 책을 읽으며 유튜브를 시청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해가 참 쉽고 친근감을 들게 한다. 저자의 책은 그래프 로 도배가 되어 있다. 매 페이지에 그래프가 눈에 띈다. 저자는 역발상을 하라고 말한다. 이는 주식에만 유효한 지침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길을 따르지 말고 거꾸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가령 공포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글쓰기에서 좋은 글감을 얻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듯 주식 투자에서는 좋은 종목을 선정해야 좋은 투자를 할 수 있다. 저자의 책에는 다양한 변수와 그에 대한 마땅한 대응법이 나열되어 있다. 투자의 고수들이 소개되고 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 등이다.

 

분석 기법의 하나이겠지만 저자는 기업의 기초 체력을 점검할 것을 당부한다. 주식은 나 혼자만의 일방적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를 또는 기업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래량은 최고의 예언가라는 말이 있다. 거래량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표라는 의미다.(169 페이지) 용어 설명 가운데 고가놀이란 말이 나온다. 상승하던 주가가 잠시 높은 가격대에서 횡보하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173 페이지)

 

이런 내용들에 친숙해지면 재미 있고 유익하게 주식 투자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선 선생의 꿀팁이라는 코너를 보자. 세 발걸음과 한 번의 비틀거린 법칙이란 것이 있다. 월가의 주식시장 속설 중 하나로 미연준(미국 연방준비제도)이 세 번의 연속적인 금리인상을 하게 되면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인다는 말이다. 이는 사람들의 심리와도 관계 있는 것으로 주식시장에서 3이라는 숫자가 강력한 의미를 가지는 것과 같다.

 

주가의 경우 한 두 번의 음직임은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같은 방향으로 세 번 움직이면 확실한 신호로 받아들인다.(233 페이지) 책에는 사례 분석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다이아몬드형 사례, 사각형 패턴 사례, L 자형 사례, N자형 사례, 대칭삼각형 사례, 상승삼각형 사례 등등...책에는 격언 또는 금언 같은 말들이 허다하게 제시되어 있다. 하나둘씩 익히면 절대 유용할 것이다.

 

‘계획 세우기’란 챕터를 보자. 주식 역시 얼마나 살 것인지, 얼마나 보유할 것인지, 사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충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원칙은 구체적이고 치밀할수록 도움이 된다. 손절매를 잘하는 사람이 주식투자 9단이라는 말이 있다.(336 페이지) 명심할 말이다. 감정에 따라 손절하거나 추가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세웠던 계획을 지키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말일 수 있는 것이 전략 없는 곳에 승리 없다는 말이다.(380 페이지) 투자 전략을 세우면 오답노트 효과와 위험관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투자와 위험은 불가분의 관계다.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387 페이지) 개선 선생이라는 별칭대로 저자의 책은 초보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그렇다고 전문가급의 사람들에게 무용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꽤 유용함을 알 수 있다.

 

특별 부록이 있는 마지막 부분까지 책은 정성스럽게 짜여 있다. 급등주 찾기 훈련 차트 50선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상투자그룹이란 이름의 유튜브 채널이 어느 정도까지 구독자수가 늘어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올 컬러에 촘촘한 그래프, 분석, 명연 등이 망라된 책은 읽기 상쾌한 소스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의 책이 바로 그렇다.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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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이(鳥居; とりい)란 말을 처음 듣고 도라이? 도리아 등의 말을 생각했다. 일본 신사(神寺) 입구의 기둥문이다.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부여박물관(현 국립문화재연구소)을 보고 김중업 건축가가 일본풍이라고 비판했다. 김중업 건축가가 지적한 부분은 두 가지이다. 모서리 장식부가 X자형으로 교차되는 지붕 양끝의 목재인 지기(千木; ちぎ)를 닮았고 입구의 문이 도리이를 닮았다고 한 것이다.

 

도리이는 새가 앉은 모습의 솟대를 연상하게 한다. 물론 솟대는 가로 형태의 나무가 있지는 않다. 연천 호로고루에서 솟대를 본 기억이 난다. 우리의 홍살문이 도리이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설도 있다. 3년전에는 프랑스대사관을 찾았고 재작년에는 안양의 김중업 박물관을 찾았고 지난 해는 올림픽공원에서 평화의 문을 보았고 광희문 앞에서 아리움 사옥을 보았다. 그리고 안국동에 갈 때마다 김중업 건축가의 대형 사진을 본다.

 

안국동 외의 공간들은 모두 해설을 하거나 듣거나 글을 쓰기 위해 찾은 곳들이다. 올림픽공원이나 광희문은 찾을 기회가 거의 없지만 안국동은 자주 가기에 그때마다 별 생각 없이 건물이나 건축가의 사진을 보게 된다. 서울이 익숙해지는 만큼 건축물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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