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내용 숙지(熟知)를 위해 워밍업 차원의 글을 쓰고 나니 머리가 아프다. 물론 머리가 아픈 것은 생각을 무리하게 이어갔기 때문이다. 어떻든 시급하지 않은 글을 쓴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최근 들은 바에 의하면 아마존에서는 잘 모르면서 질문하지 않고 모른 체 하는 것(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것, 무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일뿐 무지함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기에 여유로울 때 정리, 기록해도 되는데 무리했다. 컨디션을 조절하는데 알라딘에 올린 김선희 교수의 ‘서학, 조선 유학이 만난 낯선 거울’ 리뷰에 댓글이 달렸다. “같은 저자의 ˝마테오 리치와 주희, 그리고 정약용˝도 정말 좋습니다 ㅎㅎ” 감사하다.

 

이 말을 듣고 책 서핑을 한다. 내가 읽고 서평을 쓴 김 교수님의 책은 세 권이다. ‘서학, 조선 유학이 만난 낯선 거울’, ‘나를 공부할 시간’, ‘동양 철학 스케치 2’ 등이다. 곧 ‘동양 철학 스케치 1’, ‘8개의 철학 지도’, ‘실實, 세계를 만들다’ 등을 구입할 것이다.(‘마테오 리치와 주희, 그리고 정약용‘은 절판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허비는 결코 아니다. 곧 가다듬고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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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번역가로부터 국내 저서는 번역서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공감한다. 독자의 수준이나 문제의식이 높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자의 역량 부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많은 우리 저서가 상당 수준의 역량을 보이지만 외국 저서가 보이는 치밀함과 시의적절함과 끈질김에 기반한 깊이 등을 따라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내가 눈여겨 보는 것은 일본 저서들의 약진이다. 최근 박문호 박사께서 추천한 두 권의 지구과학 책 가운데 한 권이 가와하타 호다까의 ‘지구 표층 환경의 진화’다. 인상적이라는 평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라고 한다. 히메노 켄지, 니시자와 타츠오, 세키 노부코 공저의 ‘재미 있는 흙 이야기’는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챕터들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등의 지질연대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달에는 정말 흙이 없을까’, ‘지형학, 지질학, 토양학, 지반공학 등 비슷한 분야가 있는데 차이점은 무엇인가’ 등이다. 지구와 달리 달에 산, 구릉, 평야, 해저 등이 없는 이유를 물과 공기로 인상 깊게 설명한 모쿠다이 구니야스의 ‘그림으로 배우는 지층의 과학’도 주목할 만한 책이다.(설명 자체보다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작은 것에 ‘착안; 着眼‘한 안목이 돋보인다 하겠다.)

 

물 즉 수(水)란 말이 나왔으니 이 단어와 짝으로 쓰이는 유(流)란 말도 생각하게 된다. 유(流)는 음미하기 좋은 글자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유수지위물야; 流水之爲物也 불영과불행; 不盈科不行)는 맹자(孟子)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이 구절에 나오는 과(科)란 말은 과학(科學), 과거(科擧) 등에 쓰이는 말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루, 웅덩이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뜻도 가지고 있다.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이란 말은 흐르는 물은 앞다투려고 하지 않는다는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라는 노자(老子)의 말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유수부쟁선은 물은 흐르더라도 앞다투려 하지 않는다고 번역해야 한다. 호수처럼 잔잔하게 멈춰 있는 물은 당연히 부동(不動)의 평형 상태 즉 선두를 다투는 경쟁심을 보이지 않지만 흐르는 물도 그렇다는 말이다.(유수부쟁선은 식견이 좁은 말이다. 곧 설명하겠다.)

 

여담이지만 부동의 평형상태라고 하니 양자역학에서 무(無)를, 공간은 존재하지만 질량이 없는 빈 공간으로 정의하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들은 그래서 진공에서도 순간적으로 에너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한 기독교인 물리천문학자는 ”그렇다면 공간은 어디에서 기원했는가?“라고 물었다. 어떻든 유수부쟁선이란 말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막히면 돌아가는 것까지 물의 미덕으로 거론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홍수를 본 적이 있는가?’란 물음을 던지고 싶다. 엄청나게 모여 흐르는 물은 무섭게 서로 앞서려고 경쟁하고 그런 물은 돌아가지 않고 모든 것을 넘어 간다. 물은 때로 엄청난 도약(파도)을 한다. 거품이라 하지만 물은 물이다.

 

이곳 한탄강 지질공원에서는 한탄강을 메우며 흐르던 용암이 임진강으로 역류했다는 말을 한다.(가스통 바슐라르가 술을 불의 물이라고 한 것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용암은 초고도의 불의 물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역류라는 말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말도 아니고 옳은 말도 아니다. 조건이 되면 물은 어디로든 간다.

 

노자가 간과한 것은 앞 다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물 역시 조건이 되지 않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역류라는 말을 쓰려면 사람이 의도적으로 역방향의 조작을 가했을 때라야 할 것이다. 역류시켰다고.

 

유(流)는 한번 흘러간 물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유배를 뜻한다. 2천 5백리 강진 귀양형에 처해진 정약용은 18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3천리 흑산도 귀항형에 처해진 정약전은 그러지 못했다.(강효백 교수 페이스북) 상투적이지 않은 말로 흐름의 비유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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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금씩 기독교와 가까워지고 있다. 아현성결교회, 약현성당, 서소문 공원 및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감리교 신학대학 등이 주요 코스인 서소문 역사 탐방 때문인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물리천문학자 우종학 교수의 ‘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을 읽었고 지금은 지질학 박사 이진용 교수의 ‘지질학에서 하나님을 만나다’와 박남희, 이부현 등의 ‘처음 읽는 중세철학’을 읽고 있다.

 

이진용 교수의 책은 ‘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의 문제의식을 잇는 책이라 생각한다. '처음 읽는 중세철학’에서는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서양 중세기에 녹여낸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정초한 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 존 둔스 스코투스 등 기독교와 불가분의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서소문 준비 과정에서는 조선시대 네 차례 가톨릭 박해(신유, 기해, 병오, 병인) 사건을 정리할 수 있었다.

 

김선희 교수의 ‘서학, 조선 유학이 만난 낯선 거울’을 통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얻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이 반드시 개혁적이거나 반성리학적 혹은 탈주자학적인 것은 아니다‘, ’조선 유학자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성리학을 비판한 사람으로 알려진 정약용도 성리학의 토대인 이기론의 이론적 함의와 그 영향력을 제한하고자 한 것이지 주희의 학문 전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었고 성리학의 핵심 주제들과 완전히 다른 이론을 전개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천주교를 종교적으로 수용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유학을 완전히 떠났다고 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다.

 

전희준의 ’기독교 교파 한눈에 보기‘도 좋았다. 이 책을 통해서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 미국 북감리교회와 남감리교회의 차이 등에 대해 알았고 베드로와 반석(磐石)에 얽힌 사연(페트로스와 페트라, 헬라어와 아람어의 차이)을 만났다. 다음달 코스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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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 화백의 ‘명례방(明禮坊)’이란 그림에 들어 있는 이벽, 이승훈, 최창현, 홍익만, 최인길, 김종교, 윤지충, 지황(池璜), 이존창, 김범우,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권철신, 권일신 등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에 걸린 ‘그림의 인물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해설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인쇄해 보았더니 이름을 구별할 수 없어 다시 작은 부분들로 나누어 몇 장을 찍어 보니 구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서소문의 의미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무서운 현장을 별 생각 없이 다닌 것이다. 코스를 둘러보다가 남대문도 가 보았다.(약현성당에서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가는 길) 염천교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을 보고 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해야 할까? 많이 걸었더니 피곤하다.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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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돈을 말하다 - 당신의 부에 영향을 미치는 돈의 심리학
저우신위에 지음, 박진희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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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통증을 줄여주는 존재다.(돈은 세는 것만으로도 진통효과가 있다.), 일상의 일 가운데 좋은 일의 80퍼센트는 돈과 관계 없지만 비극의 80퍼센트는 돈과 관계 있다. 이런 재기발랄한 경구가 빛나는 책이 '심리학이 돈을 말하다'란 책이다. 저자는 절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저우선위에다.

 

하지만 이 책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 돈에 미친 사람은 부도덕할 거라는 편견을 심도 있게 다룬 묵직한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돈은 교환의 도구 이상이다. 1장 돈과 심리, 2장 돈과 사회생활, 3장 돈과 소비행위, 4장 돈과 가정생활, 5장 돈과 사회적 평판 등으로 이루어졌다.

 

부부간에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돈 이야기가 아니라 돈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돈은 이만큼 중요하다. 그렇기에 돈은 행복처럼 한 번에 얻기 힘들다. 돈은 무생물이기에 울거나 웃는 등 인간과 같은 감정표현을 할 수 없다. 다만 감정을 담는 그릇은 될 수 있다.

 

그곳에 담긴 감정이 소비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헌 돈일수록 빨리 쓰고 그 돈으로 산 물건의 가치는 더 낮게 평가된다는 점이다. 더러운 돈은 부도덕한 행위를 하게 만든다는 점도 그렇다. 돈을 쓸 줄 모르면 돈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은 새길 점이다.

 

소비가 주는 즐거움은 잠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돈을 마약의 일종으로 비유한다. 돈은 세상에 대한 시야를 좁혀 안하무인이 되게 한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화장품에 적지 않은 돈을 쓰는 여자는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은 공평하다고 믿는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고 믿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저자는 이는 틀린 관념이라 말한다. 돈은 죽음도 두렵지 않게 한다고 한다. 돈 자랑을 하는 것은 혼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하우스 머니 효과란 것이 있다.

 

도박에서 얻은 돈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되려 남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돈을 다시 도박에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지나친 보상은 실력발휘를 저해할 수도 있다. 보상이 클수록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지만 일상생활에 필요한 창의력이나 집중력이 필요한 일에는 일말의 도움도 안 된다.

 

저자는 남에게 돈을 쓰면 두 배로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연결, 성취감, 자주성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행복해지고 싶다면 물건보다 경험을 사라고 말한다. 인생은 무엇을 했는지로 결정된다. 소폭 할인은 안 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소비에 또는 돈과 관련된 것에 심리가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자주 할인하면 헐값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저자 같은 사람이 돈을 연구하는 것일 테다. 저자는 돈을 연구하고 나서 친구들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흥미롭다. 아니 씁쓸하다고 해야 하겠다. 돈을 좋아해서 돈을 연구하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무언가를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돈을 지불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이는 선불이냐 후불이냐의 문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른 문제다. 행복의 숟간은 짧고 불행의 순간은 길다. 손실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손익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보다 크기 때문이다.(손익이라고 하지 말고 수익이라 해야 한다. 손익은 손실과 이익이기에 손실의 반대어가 아니다.)

 

인간의 길고 긴 진화과정에서 남성들이 주로 구애하는 위치에 있었다. 손실을 두려워 하여 구애하지 않으면 배우자를 얻기 힘들어지기에 남성들은 배우자를 얻을 때 좀 더 모험적으로 변한다.

 

가난은 자제력을 잃게 한다. 저자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힘들지만(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개천에서 자랐다고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올바른 방법으로 스스로를 단련한다면 언젠가 용이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경제학은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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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4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03-25 00:11   좋아요 0 | URL
네... 공감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책에서 명언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