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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지리학의 시선 - 개정3판
전종한 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7년 9월
평점 :
스페인의 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Manuel Castells; 1942 - )은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지리학의 종말을 예고했다. 하지만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인간 삶은 네트워크화하고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하면서 새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기에 지리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리학의 기본 개념은 위치, 장소, 장소 내의 관계, 이동, 지역 등이다.
지리학은 위치를 중심으로 인간들의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앙리 르페브르는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접하는 모든 공간이 자본주의적인 재화 흐름의 결과라는 말을 했다. 지리학자가 연구하는 장소, 공간, 지역 속에 시간이 퇴적(포함)되어 있다. 최초의 지리적 호기심은 제국주의자와 무역업자들에 의한 실용적 계기를 따라 촉발되었다.
칸트에 의하면 발생 시기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구축되는 지식은 역사학, 발생 장소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구축되는 지식은 지리학이다. 역사학은 시간과, 지리학은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지역 연구 전통에 뿌리를 둔 지리학의 한 유형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첩보 활동처럼 지역에 대한 사진을 중시하고 모든 정보를 가시적으로 소개할 뿐 정보제공자의 판단은 최대한 유보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지리가 아닐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구조주의 지리학자들은 공간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론으로 노동의 공간 분화, 세계 체제론,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정치경제학적 관점을 차용한다. 지리적 지식의 축적이 존재론(세상에 무엇이 존재하고 관찰될 수 있고 알 수 있는가에 관한 신념), 인식론(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떻게 지식을 도출할 수 있는가, 어떻게 다양성 있게 알 수 있는가에 관한 입장), 관념론(지식 추구의 기저에 있는 사회적, 정치적 이유나 목적에 관한 것), 방법론(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절차에 관한 것) 등에 근거해 이루어진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식이란 객관적 실체가 아닌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지식이 사회적 구성물이란 말은 지식은 구성적이며 편견적이며 상황의존적이며 입장 차이를 반영한다는 의미다. 지도는 재현의 한 방식이다. 지도는 재현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모든 지도에는 의도적 거짓말이 아니라 해도 운명적 거짓말이 자리한다. 지도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저자에 의하면 어떤 이들은 지도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소수 의견이며 그 소수의 학자들이 자신들만의 의제를 부각시키기 의해 불편부당한 연구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불편부당이란 아주 공평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음을 의미하니 잘못 사용한 용어다. 자신들만의 의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는 말에 들어 있는 자신들만의라는 말이 단서다. 자신들만의 의제를 부각시키려는 사람들이 아주 공평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용어를 쓰는가, 말이다.)
책에는 지리학자 양성지(梁誠之)가 나온다. 규장각을 건의해 현실화시킨 사람이고 우리나라를 성곽의 나라로 정의한 사람이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우리 국경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도 풍수지리 사상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풍수는 자연 형세와 인간의 길흉화복을 연관지어 이해하는 전통 지리이론이다.(151 페이지)
풍수의 5방색은 청(동), 백(서), 적(남), 흑(북), 황(중앙)이다. 저자는 인간과 자연환경을 대립 항으로 설정하고 어떤 것이 어떤 것에 대해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실제 살지만 인간 답게 살 수 없는 곳이라면 외쿠메네가 아니라고 말하는 학자의 견해를 소개한다.
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화, 쌍방적 관계 등으로 표현하는 생태론적 입장은 우리를 현혹시키는 다소 그럴 듯한 생각이라 말한다. 즉 인간과 자연을 부단히 구분하고 양자를 대립항으로 설정하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터 잡기 예술로서의 풍수와 달리 지식체계로서의 풍수는 거의 논의된 적이 없다. 지식체계로서의 풍수에서 기(氣)는 중요하게 처리되지 않는다.
지식체계로서의 풍수는 풍수를 우리 조상들의 공간관이나 환경관으로 인식하는 관점이다. 풍수는 당나라로 유학 갔던 선종 스님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당나라에서 경험하고 깨우침을 배운 곳과 유사한 선종도량을 찾기 위해 전국을 찾아 다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문 구산파가 형성되었다. 풍수는 애초 상류층의 지식이었으나 조선 중후기 이후 일반에 전해져 집터, 묘지 등을 잡는 데 적용되었다.
선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왕족, 귀족 등은 선승들로부터 배운 풍수 원리를 통치이념으로 사용했다. 반궁수(反弓水)도 그 중 하나다. 강 흐름이 활처럼 휘어져 땅이 움푹 들어온 곳을 말하는 것으로 이 경우 개경을 겨누는 것이 되기에 그 지역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금강은 오래전 읽은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이익(李瀷)은 금강을 공주강이라 했다.
그는 고려 태조가 금강을 반궁수(反弓水; 강 흐름이 활처럼 휘어져 땅이 움푹 들어온 곳)의 강 즉 화살로 개경을 겨누는 반역을 꾀할 곳으로 낙인찍어 그 지역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고 명했다고 썼다. 신도비(神道碑)는 종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사람에게 세우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조선 초기에는 태조의 건원릉 신도비나 세종대왕 신도비처럼 왕릉에 세우거나 이순신 신도비처럼 공신이나 큰 유학자에게 내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經世遺表)는 도성 및 읍성 계획의 원리인 국도조영(國都造營) 원리와 기준을 기록한 ‘주례동관고공기(周禮冬官考工記)’에 의한 도시 계획 원리를 기록한 우리 나라 책이다.(‘동관; 冬官’은 토목을 담당한 ‘공조; 工曹’의 별칭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차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 적합한 개념이다. 다양성, 특수성, 고유성, 다성성 등은 차이의 이음동의어다. 공간이 모더니즘을 상징하는 용어라면 장소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상징하는 용어다. 전자는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 후자는 이해하거나 읽어낼 수 있다는 생각과 연관된다. 역사학자 다비(Henry Clifford Darby; 1909 - 1992)는 경관(景觀; landscape)을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조화와 통합, 자연과 인문이 결합된 것, 다양한 힘들의 순간적 균형 및 평형 상태로 정의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농촌 경관이라는 말은 성립해도 밭 경관이란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밭은 농촌을 이루는 한 요소다. 담론이란 신체를 통한 실제 체험과 대비되는 언어적 구성물을 의미한다. 지금은 언어를 경과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담론의 시대다. 동일한 현상이라도 현상을 바라보는 주체에 따라 다르게 읽는 시대를 말한다. 인식론적 상대성이 나타난 시대다.
포스트모던 인문지리학에서는 장소를 용기(容器)가 아닌 사회, 문화적 범주(사회 또는 집단 등에 의해 구성된 것)로 읽는다. 앞에서 풍수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던 전력을 이야기했지만 일본 역시 그랬다. 그들은 우리의 음택풍수를 공동 묘지 제도 도입을 통해 제약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순종을 도모했다.
경관과 장소는 문화적으로만 읽힐 수 없고 정치적으로만 읽힐 수도 없다. 인구는 사람의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는 도시 사회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都市)란 왕궁이 있는 장소와 시장이 있는 장소를 합친 말이다. 학술적 의미의 도시를 뜻하는 urban은 고대 최초의 도시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 왔기에 음미할 만한 것이 없다.
행정적 의미의 도시를 뜻하는 city는 거주나 캠프를 의미하는 케이(kei)에서 왔다. 우르는 불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가는 중에 한동안 거주했던 곳이다. 우르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우리나라에서 상업 기능이 공공 기능보다 우세한 도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 상업 발달기다. 우리의 일상적 도시 경험은 부자 동네와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타워팰리스가 상징하는 상류층과 구로구 공단 주변의 외국인 노동자 쪽방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거지 스펙트럼을 통해 계급과 계층을 드러낸다.
도시는 그 내부에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지만 도시 전체적으로도 하나의 특성을 갖는다. 도시 바깥의 대상을 향하는 것이다. 경제학이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를 문제 삼고 입지를 문제 삼지 않는 반면 지리학은 어디서 생산되는가를 주시한다. 지리학의 임무는 지역성을 밝히는 것이고 그 지역성의 핵심적 요소는 산업 활동이다. 자본주의는 속성상 생산 시설을 특정 공간에 집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소외 지역을 만들게 된다.
자본주의 발달은 공간적으로 점(point)에서 시작해 교통로를 따라 선(linear pattern)적으로 확대되므로 자본주의를 담지하는 국민국가 영토의 전 영역 구석구석까지 발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 거주 문제에 이르면 공간 불평등은 더욱 커진다고 하며 저자는 기회의 평등을 위하여 넓은 영토 국가에서 시골 지역 전체의 주민들을 모두 서울로 이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거리에 따른 기회 불평등도 사라지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공간적 정의라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466 페이지)
지역 불균등을 논의하는 것은 지역 불균형 현상을 비판하고 균등 발전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책 앞 부분에 베르나르 바레니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5, 16세기 이래 이루어진 수많은 탐험과 무역 활동을 통해 세계 여러 지방에 대한 지리적 지식 및 세계 각지에 대한 자세한 지지(地誌)적 정보와 자료들이 수집되었으나 자료 방식을 더욱 체계적으로 조직, 기술, 설명할 필요가 대두된 과정에서 베르나르 바레니우스가 공헌한 바가 있다는 내용이다.
그의 고민은 지리학을 점성술이나 천문학 등과 분리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점성술과 천문학에 대한 저 먼 공간의 지리학을 지표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즉 실질적인 땅에 관한 지리학으로 구체화했다. 사정이 다소 다르지만 천문학에 대한 관심에서 지리학과 지질학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선 나의 사정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억사학은 변함 없는 내 관심사다. 지리학은 공간, 역사학은 시간과 이론적으로 연결된 학문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독신(瀆神)이라고만 쓰면 신을 모독하는 것이지만 앞에 해악(海岳)을 붙이면 해악독신 즉 바다와 산, 강을 주관하는 신을 의미한다. 조선은 사직, 종묘 등에 대사(大祀)를, 삼각산신, 한강신, 경기도 송악(개경)산신 등의 13곳의 해악독신에게 중사(中祀)를, 목멱산신, 계룡산신 등 23곳의 산림천택(山林川澤)신에게 소사(小祀)를 드렸다.
와쓰지 데스로우는 추위를 느낀다는 것의 의미를 사례로 들어 자연환경이 자연과학적 대상에 국한하지 않고 근원적으로 인간과 관련한 문제 즉 인문성의 문제임을 강조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가령 우리는 추위를 느낌으로써 한기(寒氣)라는 독립적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 자신(주관적 체험)과 한기(초월적 객관)를 구분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인문지리학의 시선’은 많은 유용한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