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측체의 - 기 철학과 서양 과학의 행복한 만남 청소년 철학창고 30
이종란 지음 / 풀빛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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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강(惠崗) 최한기(1803 - 1879)의 ‘기측체의(氣測體義)’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기(氣)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해도 얼핏 제목만으로는 의미를 헤아리기 어렵다. 최근 읽은 한 책에 의하면 터 잡기 예술과 지식체계로 나뉘는 풍수에서 후자의 경우 기(氣)는 중요하게 처리되지 않는다.(전종한, 서민철, 장의선, 박승규 공저 ‘인문지리학의 시선’ 참고)

 

최한기에게 기는 이기론에서 말하는 기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를 해석하고 조망하는 가장 큰 틀이다.(김선희 지음 ‘서학, 조선 유학이 만난 낯선 거울’ 263 페이지) 혜강의 기는 비근하게 말하면 사람 이전에 먼저 자연 속에 있다가 사람의 몸이 생기면 그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자연 속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기측체의’ 31 페이지)

 

혜강이 보는 질(質)은 기가 단단히 엉겨 굳은 것이다.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차가운 것으로 풀이하지만 비유하자면 혜강에게 기는 빗물, 질은 얼음이다. 어떻든 기는 공기와 다르다. 공기는 아무리 모여도 물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한기는 만물의 근원을 기로 보았다. 최한기는 기가 아니라 질의 차이에 의해 나무, 돌, 사람 등이 다르다고 보았다.

 

최한기는 서양 종교에서 말하는 신 대신 신기(神氣)가 영원히 존재한다고 보았다. 최한기는 좋은 책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끼지 않고 사들이고, 독파한 뒤 오래 된 책은 헐값으로 팔았으며 다 전하지 않지만 평생 천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김선희 지음 ‘서학, 조선 유학이 만난 낯선 거울’ 259 페이지) 무수히 많은 책을 접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기측체의’에도 다양한 책이 인용되었다. 최한기는 기(氣)가 리(理)의 근본이라 주장했다는 점에서 주자 성리학자들과 달랐다. 주자 성리학에서는 공히 실체인 기와 리는 서로 떨어질 수도 없고 섞이지도 않는다고 보았다.(최한기는 리를 실체가 아니라 보았다.) 최한기는 리는 기로 이루어진 사물을 통하지 않고서는 직접 경험하거나 파악될 수 없다고 보았다.

 

최한기는 법칙이 사물보다 먼저 있거나 독립해 있다는 견해를 비판했다. 최한기는 성리학의 리(理)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유행지리라는 말을 만들어 법칙 또는 자연의 원리를 말할 때만 사용했다. 추측지리는 인간이 추리하고 판단한 결과 생긴 학설이나 윤리를 말한다.(‘추측; 推測’은 추리와 판단의 결합어이다.) 최한기는 인간은 형질(육체)과 신기(마음)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또한 신을 기의 정화(精華)로 보았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이 불의 밝음은 기름의 정화이며 기름은 불의 바탕이라는 말이다. 성리학에서는 인의예지를 하늘의 이치로 본 반면 최한기는 인간의 육체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하늘의 이치가 아니라고 보았다. 최한기는 성선설, 성악설을 모두 따르지 않았다. 즉 선악은 본성에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자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만일 선하든 악하든 인간의 심성이 미리 정해진 것이라면 그것은 운명적인 것으로 행동에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한기는 인간의 정이 일곱 가지이지만 크게 나누면 좋아함과 싫어함 두 가지라 보았다. 최한기가 처음 안 천문학 지식은 천주교의 신학관인 천동설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로부터 벗어났다. 최한기는 마음과 앎을 분리했다.

 

경험 이전에 마음에 온갖 이치가 갖추어져 있다고 본 성리학이나 양명학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 것이다. “대개 앎이란 내가 밖으로부터 얻어온 것이지 마음속에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최한기는 사람의 공부는 오직 자신에게 여러 냄새가 찌든 것을 없애는 데 있다고 보았다. 최한기가 사용하는 신기란 자연과 인간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물질, 마음이면서 인간의 인식 주체, 반사운동을 주관하는 무의식 등을 두루 의미한다.(113 페이지)

 

경험 외에 앎의 방법으로 추측이 있다. ‘추측록’은 추측에 관한 책이다. 최한기는 인간의 마음을 원래 맑은 것으로 보고 인간의 경험을 샘물에 물감을 넣는 것에 비유했다. 최한기는 주자(朱子)는 많은 이치를 갖추어 만사에 응한다고 했는데 이는 모두 추측의 큰 작용을 찬미한 것이지 결코 만물의 이치가 본래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 아니라 말했다.

 

사람들의 모든 이치를 하늘의 이치라고 여긴 사회에서 그런 이치는 인간 사고의 산물이라 주장한 최한기의 사유는 당시 지배층의 주목을 받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한기는 사랑과 공경이 맹자가 말한 선천적 능력인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에서 나왔음은 인정했지만 경험이나 추측 없이 윤리적 행위가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한기는 윤리와 도덕이 자연 속에 없다는 말로 자연과 인간을 구별했다. 이는 자연법칙인 천리 속에 인간 윤리의 영원성이 들어 있다는 성리학의 주장을 정면 부인하는 것이다. 천리 속에 인간 윤리의 영원성이 들어 있다는 말은 인간 윤리는 절대 불변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성리학자들이 천리 즉 리(理)를 높이 여기고 기(氣)를 아래로 본 것은 당시의 신분 제도를 옹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신분 제도는 하늘이 준 불변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최한기는 사물을 살피는 다섯 가지 방법을 이야기했다. 1)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2) 주체인 나의 입장을 떠나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 3) 주체인 내가 직접 사물을 탐구하는 것, 4)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주체인 나를 살피는 것, 5) 밖의 대상과 관계하지 않고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다. 최한기는 증험(證驗)도 이야기했는데 이는 내가 사물을 제대로 아는 것인지,

 

사물의 물리를 가지고 내가 아는 것이 거기에 부합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최한기는 앎이란 바깥의 정보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이전의 지식과 정보 또는 내면에 확립된 일정한 기준이나 범주를 가지고 비교, 검토, 검증하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최한기는 주자학과 양명학을 말류의 폐단을 노출하여 떳떳한 가치를 보여 주고 있지 않음을 근거로 비판했다. 최한기는 자연사물의 법칙인 유행지리를 성리라고 불렀다. 최한기는 주공(周公)과 공자를 맹목적으로 받들지 않았다. 그들의 말도 시대 변화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한기뿐 아니라 전통 유학자들은 우리가 말하는 종교도 학문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서양 종교를 서학(西學)이라고 불렀다. 성리학은 인간의 욕심 자체가 나쁘지는 않지만 불선으로 흐를 수 있기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한기는 자연은 그 자체 질서에 의해 움직이지 인간적 윤리나 도덕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지만 자연을 벗어나 살 수 없다. 자연이 인간과 만물의 고향이자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최한기는 다윈에 앞서 우승열패(優勝劣敗)의 관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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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쓰기의 기술 - 정보생산자를 위한 글쓰기 매뉴얼
우에노 지즈코 지음, 한주희 옮김 / 동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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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구란 누구도 제기한 적 없는 가설을 세워 증거를 수집해 논리를 구성하고 답을 제시해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 정보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창의적 정보 생산자가 될 것을 권한다. 정보는 노이즈(이질감, 거슬림, 의구심, 불편함)에서 생산된다. 들어야 할 말은 듣지 않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선택적 난청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보는 시스템과 시스템의 경계에서 발생한다. 누구도 제기하지 않은 가설은 독창적인 가설이다. 이로부터 독창적 답이 나온다. 교양은 노력으로 채울 수 있으나 독창성은 직관력에 달렸다. 교양이 있고 독창성이 떨어지는 것보다 교양이 부족하고 독창성이 있는 것이 낫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명쾌한 표현과 흔들림 없는 논리적 구성을 바탕으로 근거를 제시해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기술이 논문이라는 아웃풋에 요구되는 조건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배움이란 모방이란 단어에서 왔다고 말한다.(일본어로 배우다는 ‘마나부; まなぶ’라 읽고 모방하다로 읽는다.) 우에노 치즈코는 느낀 점을 솔직하게 쓰라고 요구하는 문장교육보다 생각한 바를 데이터에 근거해 논거를 제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듯 쓰라고 요구하는 문장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의식 없는 질문은 없다.

 

사회과학자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인간은 언제 삶의 의미를 느끼는가?“ 같은 질문으로 바꾸어야 한다. 선행연구가 존재함에도 새로운 질문을 설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도출된 결론에 수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질문은 핵심적인 질문으로 축소해야 한다. 질문을 설정한다는 것은 항상 자신만의 질문을 설정한다는 의미다.

 

우에노 치즈코는 논문을 비판적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 비판적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닌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정답이 필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텍스트를 오독하면서 독창성이 발휘되기도 한다. 선행연구가 축적되었을 때야말로 자신이 세워야 하는 연구질문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가설이란 편견이나 예단의 다른 이름이다.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연구에 착수하는 연구자는 없기 때문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학문은 중립적,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신화를, 가설은 이미 주관적이라는 말, 가설은 내 가설이지 타인의 가설이 아니라는 말로 비판한다. 이론은 현실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다. 어떤 이론이라도 사각지대가 존재하며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질적 정보는 관찰과 면접 등으로 얻은 언어화된 정보이고, 양적 정보는 통계나 설문조사 등으로 얻은 수량화된 정보다. 데이터 수집 이후가 중요하다. 데이터 분석이라는 중요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담론은 단어 이상의 의미 단위다.(136 페이지) 푸코는 역사에 계보학이란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정향진화론이나 발전 사관 등 목적론적 인과율에 대해 변화 전후를 기술하는 계보학은 변화가 필연적이지도 않고 증명하기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지며 전환기에 존재했을지도 모를 다른 가능성을 선택지로 제시한다.

 

가토 노리히로는 계보학을 역사의 사다리 타기를 거슬러 오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담론에서 나온 정보 유닛에 논리적 관계를 부여하는 것은 담론 간에 다시 시간이라는 변수를 도입해 이야기를 편성하는 것이다. 이를 스토리텔링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재문맥화라고도 한다. 정보의 재문맥화는 당사자도 인지하지 못하고 놓친 ’정보의 집합 사이에 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시간축에 따라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설명 또는 해석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분량이 질을 규정함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목이 중요하다. ’방문 간호사를 둘러싼 과제와 전망’이란 제목은 최악이다. 이를 ‘방문 간호사는 왜 늘지 않는가?’로 바꾸면 바로 질문이 무엇인지 전해진다. 문제설정이 결정되면 반은 성공이다. 나머지 반은 논증이다. 차례는 몇 번이고 수정해도 좋다.(219 페이지)

 

우에노 치즈코는 차례를 보면 논문의 질을 알 수 있다기보다 저자의 머릿속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차례가 잘 정리되지 않았다는 말은 저자의 머릿속도 잘 정리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사회과학의 문장은 설득을 위한 문장이지 공감이나 감동을 위한 문장이 아니라며 느낀 것을 느낀 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것을 근거를 제시해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쓰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논문의 기본은 질문과 가설, 근거와 발견, 결론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문장으로 써야 한다. 대부분 논문에는 요약이 필요하다. 100에서 400자 정도로 정보를 모두 담아야 한다. 이 요약을 논증하는 것이 본문이다. 서두에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기술을 츠카미(つかみ)라 한다. 논리적 문장은 결론이 앞에 나온다.(두괄식으로써야 함)

 

아는 것을 전부 쓰려고 하지 말라. 선행연구를 검토하는 이유는 한 눈에 자신이 세운 연구 질문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일뿐이다. 자명하게 통용되는 정보를 생략하지 말라. 이미 아는 것도 잘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온다. 개념과 용어 대부분은 여러분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앞서서 사용한 것이다. 그러면 누구의 어떤 개념을 어떤 이유로 채택하는지를 명시해야 한다.(230 페이지)

 

본문과 인용을 구별해야 한다. 연구자가 아이디어를 다른 것으로부터 빌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빌린 아이디어를 이용해 새로운 발견에 이를 수 있으면 된다.(231 페이지) 연구자에게 최상의 보수는 자신이 설정한 질문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는 쾌감이지 표절이나 도용은 아니다. 표절이나 도용은 본말전도다. 알기 쉽게 써야 한다. 아무리 복잡한 개념이라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다.(236 페이지)

 

논문의 수신자를 의식하는 것은 논문을 쓰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비평하는 일은 자기 논문을 쓰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비평과 말꼬리 잡기는 다르다. 비평은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에 맞춰 그 의도가 더 잘 통하도록 조언하고 논지의 결함이나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을 법한 비판을 예상해 저자가 방어할 수 있는 지혜를 주기 위한 것이다.(248, 249 페이지)

 

비평은 비판, 반론과도 다르다. 예를 들어 상대의 논지에 찬성할 수 없더라도 가능한 한 상대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저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예상 가능한 비판이나 결함을 제시하고 이를 보완할 논점을 넣어서 완성도 높은 논문으로 만들기 위해 돕는 것이 비평이다. 논문 내용에 비판이나 반론을 하고 싶으면 논문이 발표된 후에 적절한 매체에 서평이나 논문의 형태로 발표하면 된다.(249 페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논지의 타당성과 설득력이다. 출처를 표기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처럼 이야기하면 표절이고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이 한 말처럼 표현하면 조작이다.(270 페이지) 학문과 논문 모두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논문 작성법을 충실하게 따른 논문의 경우에도 무시무시한 비평이 존재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다.(272 페이지) 우에노 치즈코는 문체가 하나로 굳어지면 사고를 제약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문체는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는 편이 좋다는 의미다.(303 페이지) 고등교육의 가치는 지식을 생산하는 데 있다. 메타 지식을 만드는 것이다. 지식이 이미 존재하면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31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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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지리학의 시선 - 개정3판
전종한 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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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Manuel Castells; 1942 - )은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지리학의 종말을 예고했다. 하지만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인간 삶은 네트워크화하고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하면서 새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기에 지리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리학의 기본 개념은 위치, 장소, 장소 내의 관계, 이동, 지역 등이다.

 

지리학은 위치를 중심으로 인간들의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앙리 르페브르는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접하는 모든 공간이 자본주의적인 재화 흐름의 결과라는 말을 했다. 지리학자가 연구하는 장소, 공간, 지역 속에 시간이 퇴적(포함)되어 있다. 최초의 지리적 호기심은 제국주의자와 무역업자들에 의한 실용적 계기를 따라 촉발되었다.

 

칸트에 의하면 발생 시기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구축되는 지식은 역사학, 발생 장소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구축되는 지식은 지리학이다. 역사학은 시간과, 지리학은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지역 연구 전통에 뿌리를 둔 지리학의 한 유형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첩보 활동처럼 지역에 대한 사진을 중시하고 모든 정보를 가시적으로 소개할 뿐 정보제공자의 판단은 최대한 유보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지리가 아닐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구조주의 지리학자들은 공간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론으로 노동의 공간 분화, 세계 체제론,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정치경제학적 관점을 차용한다. 지리적 지식의 축적이 존재론(세상에 무엇이 존재하고 관찰될 수 있고 알 수 있는가에 관한 신념), 인식론(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떻게 지식을 도출할 수 있는가, 어떻게 다양성 있게 알 수 있는가에 관한 입장), 관념론(지식 추구의 기저에 있는 사회적, 정치적 이유나 목적에 관한 것), 방법론(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절차에 관한 것) 등에 근거해 이루어진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식이란 객관적 실체가 아닌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지식이 사회적 구성물이란 말은 지식은 구성적이며 편견적이며 상황의존적이며 입장 차이를 반영한다는 의미다. 지도는 재현의 한 방식이다. 지도는 재현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모든 지도에는 의도적 거짓말이 아니라 해도 운명적 거짓말이 자리한다. 지도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저자에 의하면 어떤 이들은 지도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소수 의견이며 그 소수의 학자들이 자신들만의 의제를 부각시키기 의해 불편부당한 연구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불편부당이란 아주 공평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음을 의미하니 잘못 사용한 용어다. 자신들만의 의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는 말에 들어 있는 자신들만의라는 말이 단서다. 자신들만의 의제를 부각시키려는 사람들이 아주 공평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용어를 쓰는가, 말이다.)

 

책에는 지리학자 양성지(梁誠之)가 나온다. 규장각을 건의해 현실화시킨 사람이고 우리나라를 성곽의 나라로 정의한 사람이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우리 국경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도 풍수지리 사상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풍수는 자연 형세와 인간의 길흉화복을 연관지어 이해하는 전통 지리이론이다.(151 페이지)

 

풍수의 5방색은 청(동), 백(서), 적(남), 흑(북), 황(중앙)이다. 저자는 인간과 자연환경을 대립 항으로 설정하고 어떤 것이 어떤 것에 대해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실제 살지만 인간 답게 살 수 없는 곳이라면 외쿠메네가 아니라고 말하는 학자의 견해를 소개한다.

 

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화, 쌍방적 관계 등으로 표현하는 생태론적 입장은 우리를 현혹시키는 다소 그럴 듯한 생각이라 말한다. 즉 인간과 자연을 부단히 구분하고 양자를 대립항으로 설정하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터 잡기 예술로서의 풍수와 달리 지식체계로서의 풍수는 거의 논의된 적이 없다. 지식체계로서의 풍수에서 기(氣)는 중요하게 처리되지 않는다.

 

지식체계로서의 풍수는 풍수를 우리 조상들의 공간관이나 환경관으로 인식하는 관점이다. 풍수는 당나라로 유학 갔던 선종 스님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당나라에서 경험하고 깨우침을 배운 곳과 유사한 선종도량을 찾기 위해 전국을 찾아 다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문 구산파가 형성되었다. 풍수는 애초 상류층의 지식이었으나 조선 중후기 이후 일반에 전해져 집터, 묘지 등을 잡는 데 적용되었다.

 

선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왕족, 귀족 등은 선승들로부터 배운 풍수 원리를 통치이념으로 사용했다. 반궁수(反弓水)도 그 중 하나다. 강 흐름이 활처럼 휘어져 땅이 움푹 들어온 곳을 말하는 것으로 이 경우 개경을 겨누는 것이 되기에 그 지역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금강은 오래전 읽은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이익(李瀷)은 금강을 공주강이라 했다.

 

그는 고려 태조가 금강을 반궁수(反弓水; 강 흐름이 활처럼 휘어져 땅이 움푹 들어온 곳)의 강 즉 화살로 개경을 겨누는 반역을 꾀할 곳으로 낙인찍어 그 지역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고 명했다고 썼다. 신도비(神道碑)는 종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사람에게 세우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조선 초기에는 태조의 건원릉 신도비나 세종대왕 신도비처럼 왕릉에 세우거나 이순신 신도비처럼 공신이나 큰 유학자에게 내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經世遺表)는 도성 및 읍성 계획의 원리인 국도조영(國都造營) 원리와 기준을 기록한 ‘주례동관고공기(周禮冬官考工記)’에 의한 도시 계획 원리를 기록한 우리 나라 책이다.(‘동관; 冬官’은 토목을 담당한 ‘공조; 工曹’의 별칭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차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 적합한 개념이다. 다양성, 특수성, 고유성, 다성성 등은 차이의 이음동의어다. 공간이 모더니즘을 상징하는 용어라면 장소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상징하는 용어다. 전자는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 후자는 이해하거나 읽어낼 수 있다는 생각과 연관된다. 역사학자 다비(Henry Clifford Darby; 1909 - 1992)는 경관(景觀; landscape)을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조화와 통합, 자연과 인문이 결합된 것, 다양한 힘들의 순간적 균형 및 평형 상태로 정의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농촌 경관이라는 말은 성립해도 밭 경관이란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밭은 농촌을 이루는 한 요소다. 담론이란 신체를 통한 실제 체험과 대비되는 언어적 구성물을 의미한다. 지금은 언어를 경과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담론의 시대다. 동일한 현상이라도 현상을 바라보는 주체에 따라 다르게 읽는 시대를 말한다. 인식론적 상대성이 나타난 시대다.

 

포스트모던 인문지리학에서는 장소를 용기(容器)가 아닌 사회, 문화적 범주(사회 또는 집단 등에 의해 구성된 것)로 읽는다. 앞에서 풍수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던 전력을 이야기했지만 일본 역시 그랬다. 그들은 우리의 음택풍수를 공동 묘지 제도 도입을 통해 제약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순종을 도모했다.

 

경관과 장소는 문화적으로만 읽힐 수 없고 정치적으로만 읽힐 수도 없다. 인구는 사람의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는 도시 사회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都市)란 왕궁이 있는 장소와 시장이 있는 장소를 합친 말이다. 학술적 의미의 도시를 뜻하는 urban은 고대 최초의 도시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 왔기에 음미할 만한 것이 없다.

 

행정적 의미의 도시를 뜻하는 city는 거주나 캠프를 의미하는 케이(kei)에서 왔다. 우르는 불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가는 중에 한동안 거주했던 곳이다. 우르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우리나라에서 상업 기능이 공공 기능보다 우세한 도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 상업 발달기다. 우리의 일상적 도시 경험은 부자 동네와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타워팰리스가 상징하는 상류층과 구로구 공단 주변의 외국인 노동자 쪽방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거지 스펙트럼을 통해 계급과 계층을 드러낸다.

 

도시는 그 내부에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지만 도시 전체적으로도 하나의 특성을 갖는다. 도시 바깥의 대상을 향하는 것이다. 경제학이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를 문제 삼고 입지를 문제 삼지 않는 반면 지리학은 어디서 생산되는가를 주시한다. 지리학의 임무는 지역성을 밝히는 것이고 그 지역성의 핵심적 요소는 산업 활동이다. 자본주의는 속성상 생산 시설을 특정 공간에 집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소외 지역을 만들게 된다.

 

자본주의 발달은 공간적으로 점(point)에서 시작해 교통로를 따라 선(linear pattern)적으로 확대되므로 자본주의를 담지하는 국민국가 영토의 전 영역 구석구석까지 발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 거주 문제에 이르면 공간 불평등은 더욱 커진다고 하며 저자는 기회의 평등을 위하여 넓은 영토 국가에서 시골 지역 전체의 주민들을 모두 서울로 이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거리에 따른 기회 불평등도 사라지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공간적 정의라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466 페이지)

 

지역 불균등을 논의하는 것은 지역 불균형 현상을 비판하고 균등 발전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책 앞 부분에 베르나르 바레니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5, 16세기 이래 이루어진 수많은 탐험과 무역 활동을 통해 세계 여러 지방에 대한 지리적 지식 및 세계 각지에 대한 자세한 지지(地誌)적 정보와 자료들이 수집되었으나 자료 방식을 더욱 체계적으로 조직, 기술, 설명할 필요가 대두된 과정에서 베르나르 바레니우스가 공헌한 바가 있다는 내용이다.

 

그의 고민은 지리학을 점성술이나 천문학 등과 분리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점성술과 천문학에 대한 저 먼 공간의 지리학을 지표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즉 실질적인 땅에 관한 지리학으로 구체화했다. 사정이 다소 다르지만 천문학에 대한 관심에서 지리학과 지질학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선 나의 사정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억사학은 변함 없는 내 관심사다. 지리학은 공간, 역사학은 시간과 이론적으로 연결된 학문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독신(瀆神)이라고만 쓰면 신을 모독하는 것이지만 앞에 해악(海岳)을 붙이면 해악독신 즉 바다와 산, 강을 주관하는 신을 의미한다. 조선은 사직, 종묘 등에 대사(大祀)를, 삼각산신, 한강신, 경기도 송악(개경)산신 등의 13곳의 해악독신에게 중사(中祀)를, 목멱산신, 계룡산신 등 23곳의 산림천택(山林川澤)신에게 소사(小祀)를 드렸다.

 

와쓰지 데스로우는 추위를 느낀다는 것의 의미를 사례로 들어 자연환경이 자연과학적 대상에 국한하지 않고 근원적으로 인간과 관련한 문제 즉 인문성의 문제임을 강조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가령 우리는 추위를 느낌으로써 한기(寒氣)라는 독립적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 자신(주관적 체험)과 한기(초월적 객관)를 구분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인문지리학의 시선’은 많은 유용한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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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철학 지도 - 나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밑그림
김선희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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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담론 및 정치사를 철학적 관점으로 조명하는 김선희 교수의 책이다. 여덟 개의 질문에 답을 해나간 책이다. 왜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가?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 왜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가? 우리에게 우정이란 무엇인가?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 등이다.

 

모두 만만하지 않은 질문들이다. 내게는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 등이 크게 관심을 끈다. 각 챕터에 주요 철학자들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가령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에는 헤라클레이토스, 아리스토텔레스, 임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니체, 앙리 베르그송,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움베르토 에코, 장자, 호이징하 등이 거론되어 있다.

 

유토피아를 다룬 장에서 저자는 유토피아의 유형을 셋으로 나누었다. 천년왕국, 아르카디아, 유토피아 등이다. 유토피아는 섬으로 묘사되는 특징이 있다. 외부와 단절되었다는 점에서 섬이지만 이는 닫힌 공간이기에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철학적 주제이자 철학적 제안으로서의 유토피아는 과연 과학, 정치, 도덕이 조화를 이룬 세계가 가능한가라는 고전적인 질문 위에서 시작된다고 전제하며 수많은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이 철학적 제안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 말한다.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자기를 향유하고 삶의 중심에 자신을 두는 것은 어쩌면 미성숙의 특권, 청춘의 상징과 같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자기 안에 머무는 것이 전부라면, 그래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청춘이 아니라 어린아이에 가깝다는 말이다. 자기 안에 머물다가 밖으로 나온 사람은 루소 말대로 제2의 탄생을 이룬 사람이고 성공이 아닌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가?에서 우리는 그리스 비극이 극 형식을 의미할뿐 그 자체로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 비극은 거대한 운명, 개인이 뒤엎을 수 없는 커다란 운명과 불완전한 인간의 대결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대결 속에서 발생한 엄청난 고통을 이기고 승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다룬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주인공들은 운명에 의해 망가지는 존재이지만 그 운명에 무작정 끌려가는 존재는 아니다. 저자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나는 아파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대단히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고통을 견디는 시간과 고통을 잊고 있는 시간, 고통을 보류하는 시간, 그리고 겪은 고통을 해석하는 시간의 묶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passion이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수난(受難)과 열정(熱情)을 함께 의미한다. 고통은 수난당하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모종의 결단을 촉구하는 듯 하다. 저자는 수전 손택의 ’타인으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손택은 카메라를 총에 비유했다. 총의 비유는 카메라가 살아있는 존재를 대상화하고 고통받는 타인을 사물화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카메라에 담긴 타인의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나와 상관없는 하나의 외적인 대상이 된다.

 

저자는 사진에 담긴 고통받는 타자들은 단순히 일회적인 연민의 대상으로 추상화되기 쉽다고 말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내가 소비하는 일회적 상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이 프레임에 포착되는 순간 이미 연출되고 조작되고 선별되고 구성된 이미지로 환원된다.(109 페이지) 타인의 고통을 관음하고자 하는 심리의 바탕에는 그 고통에 대한 나의 무관함,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해 내가 확보한 안전한 거리가 깔려 있다.(110 페이지)

 

스토아철학자 세네카는 연민이란 원인을 보지 않고 감정적으로 사건을 대하는 태도, 감정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원인을 보더라도 연민의 마음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연민받은 대상은 수치를 느낄 것이다. 저자는 어떤 고통에도 나의 책임이 일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며 고통과 비극이 나의 조건이기도 하며 이를 이겨내고 극복하는 힘 역시 온전히 나에게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비극과 고통을 바라보는 출발점이어야 할 것이라 말한다.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을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정의한 것을 알 수 있다. 희극 즉 코메디는 어원적으로 술의 신이자 방랑과 격정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위한 가장행렬(광란의 축제)을 의미하는 데서 온 말이다. 저자는 우리사회에 인신공격과 감정적 손상을 동반하지 않는 웃음이 얼마나 될까요라고 묻는다.

 

저자에 의하면 풍자는 적대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고 그 대상에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다. 해학은 자기 약점에 대한 부정을 바탕으로 한다. 상대에 대하여 감정이입을 하거나 상대를 연민하면 웃을 수 없다. 웃음의 대상과 감정적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웃음을 거두게 된다. 저자는 불교적으로 느껴지는 말을 한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마저 드라마의 관객 같은 자리에서 볼 수 있고 그냥 남의 일로 받아들이면 나의 비극은 희극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삶을 비극적이라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도 남의 삶에 대해서만큼 나에게 거리를 두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모든 경계를 허물고 근원적 일자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예술로 보았다. 니체는 진정한 그리스 예술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질서 잡힌 체계를 향한 통제의 힘들(대낮의 힘들)이 디오니소스적인 것들에 질서와 빛을 부여한 뒤 진정한 예술성 즉 비극성이 깨졌다고 보았다.(131 페이지)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후의 긍정, 고통을 통과한 이의 명랑성이 진정한 명랑성이라 할 수 있다. 놀이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루덴스란 개념이 있다. 호이징하가 한 말이다. 오로지 그 자체의 기쁨을 위해 하는 행위들이 놀이다. 놀이는 그 자체로 자유로워야 하며 일상적 삶과 구분되어야 한다.(137 페이지)

 

놀이는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만드는 생성의 힘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의 생성 과정을 우연성이 지배하는 자유로운 전개과정으로 보며 그것을 놀이라 표현했다.(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황금용에 대해 낙타는 순종하고 사자는 반항하지만 어린아이는 그것을 가지고 논다고 본 니체에게 세계는 선과 악을 넘는 신성한 놀이다.

 

왜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가?에서는 집에 관한 이야기가 다루어졌다. 한국사회에서 집은 개인이 입은 가장 큰 옷이자 물질로 치환된 자아(自我)다.(157 페이지) 저자는 자기 곁에 영원히 머물기를 바라는 바다의 님프 칼립소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오디세우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화의 세계에서 정주와 이동은 단순히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의 변화, 지적 능력까지 포함하는 영혼 전체의 성숙과 관련된다.(167 페이지)

 

변화 자체가 하나의 질서이지만 이 변화는 무한한 확장이거나 양적 증가가 아니라 매번 국면의 전환으로 나타난다. 도가적 사유에서 순환은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원형적 순환이 아니라 리듬의 전환으로 보아야 한다.(171 페이지) 우주는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기에 인간이 쉽게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변화와 운동에는 근본적으로 질서와 리듬이 있어서 인간은 이를 예측하고 해석해 나쁜 국면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주역은 나쁜 운명을 바꿔줄 신비한 점서가 아니라 부정적 국면을 견디기 위한 예측과 해석을 제공하는 책이다.(173 페이지)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라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변화는 우리의 감각 때문에 생기는 가상(假象)에 불과하다. 이 부분에서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假現說)을 생각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이 계속 변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하나의 이론을 만들 수 없으며 그래서 진정한 사유는 감각에 포착되는 변화가 아니라 오직 이성에서 사유되는 고정 관념뿐이라 여겼다.(175 페이지) 저자는 사람들이 잡 노마드, 21세기 유목민 등의 말에서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182 페이지) 저자는 어떻게 하면 고착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이동의 낭만성을 자각하고 부유를 벗어날 것인가 등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철학 공부를 하는 이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우정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우정의 의미가 집중 다루어졌다. 우정은 한 순간에 영혼이 열리면서 시간성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랑과 달리 오랜 시간 동안의 관계로 이루어진 시간성의 산물이다.(190 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정론이 유행한 배경이 마테오 리치와 관련 있다는 점이다. 공자는 친구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을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생각했다. 공자는 곧은 사람, 성실한 사람, 들은 것이 많은 사람을 이로운 벗으로 보았다. 공자는 서로 성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귀지 말라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파문당한 후 렌즈를 연마했다. 아는 고급 기술이었다. 비루하고 구차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정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스피노자다. 그는 이성에 따르는 사람을 자유인, 정서나 속견에 이끌리는 사람을 노예인으로 정의했다. 저자는 자유인은 자족적인 존재라면 그런 이에게 공동체란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을까? 라고 묻는다. 스피노자는 자유인은 공동체를 초월하는 존재라 말했다. 자유인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파생된다.

 

물론 스피노자는 자유인은 공동체 내부에서 다른 사람들과 우정으로 연결되기에 힘쓴다고도 말했다. 스피노자는 능동적 인간 즉 강한 인격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증오하거나 멸시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세계에 내재하는 존재기에 자신과 관련된 우주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 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에서는 자화상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화상은 화가들이 붓으로 쓴 자서전 같은 것이다. 그림은 현재의 사실적 기술이 아니라 화가가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 세상에 드러내고 싶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담고 있다.(227 페이지) 저자는 자신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에 대해 쓰는 것과 차원이 같은 것이라 말한다. “나는 왜 나를 잊지 않고, 흘려 보내지 못하고 기록하는가?” 근대에 이르러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다. 개인이라는 자각이 역사적으로 부상한 이후에 자화상이 나왔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개인은 성찰하고 계획하는 인간이고 시간적으로 미래를 향해 현재를 기획하는 존재다.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에서 저자는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지적 학습만이 아니라 자기를 변화시키는 모든 실천적 노력을 모두 공부라고 한다. 저자는 다양한 지적 전통을 하나로 규정하려는 시도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것이 과학을 유일한 기준으로 보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있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남을 의미하지만 실제 맥락은 조금 다르다. 청출어람은 학문의 효과를 말하는 말이다. ’순자‘ 권학편에 나오는 말이다. 순자는 자기를 바꾸는 힘을 학문으로 정의한다. 공자는 다양하게 배우되 마음의 의지나 지향은 단단하고 두텁게 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절실히 탐구하되 이를 일상의 현실적 차원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공자에게서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신분이 아니라 능력을 통해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능력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서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도덕적 능력이다. 공자는 능동적이고 도덕적인 주체를 군자라 불렀다. 타고난 신분으로서의 군자가 아니라 자기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내버리는 사람은 소인이라 불렀다.

 

리(理)는 사물의 구성 원리일뿐 아니라 그 자체가 도덕적 가치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리(理)를 부여받아서 이루어진 존재다. 저자는 성적에만 올인하고 성공을 위해 매진하는 숨막히는 사회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8개의 철학 지도‘는 철학은 근본적인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임을 알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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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와 감리교 전통의 여성들
이정미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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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는 18세기 영국의 가장 탁월한 신학자이자 사회개혁가, 실천적 페미니스트였다. 웨슬리는 감리교부흥운동을 통해 근대 여성 해방운동의 역사적 초석을 마련한 인물이다. 웨슬리는 1787년 10월 멘체스터 감리교 연회에서 공식적인 여성 설교자로서의 출현을 승인했다. 감리교의 여성해방운동은 북미 성결주의 운동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정미의 책 ‘존 웨슬리와 감리교 전통의 여성들’은 감리교 전통의 열 명의 여성을 다룬 책이다. 첫 번째 인물은 감리교의 어머니 수잔나 웨슬리다. 웨슬리는 어머니 수잔나를 통해 여성의 능력에 대한 산 교훈을 얻었다. 수잔나는 아들 웨슬리의 사상 형성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쳤다. 수잔나는 웨슬리가 감리교인이 되기 오래전부터 이미 감리교인이었다.

 

웨슬리가 감리교 운동 속에서 여성 리더십을 인정하고 공식적인 여성 설교자들을 승인한 것은 어머니 수잔나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여성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인물은 존 웨슬리의 영적 후원자 셀레나 헤이스팅스다. 웨슬리나 감리교회에 대한 책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것은 영국국교회(성공회)와 감리교의 관계다.

 

지난 2017년 보도이지만 영국 감리교와 성공회가 18세기 이후 200년 이상 갈라져온 교회 역사를 통합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사실 웨슬리는 성공회 사제였다. 세 번째 인물은 감리교 여성 설교자의 원형인 메리 보산퀫 플레처다. 네 번째 인물은 감리교 최초의 비공식 여성 설교자 사라 크로스비다.

 

다섯 번째 인물은 감리교 운동의 재정적 후원자인 레이디 맥스웰이다. 이 분은 플록의 부유한 남작부인으로서 주일학교의 설립자이며 헌팅턴의 셀레나 백작부인과 함께 웨슬리를 비롯한 많은 감리교 지도자들의 영적 카운슬러였다. 레이디 멕스웰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소속이었다. 그녀가 감리교회에 입회한 것은 1764년으로 이 해에 웨슬리와 레이디 맥스웰이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섯 번째 인물은 파운데리 신도회의 엘리자베스 리치 몰티모어다. 이 분은 웨슬리와 함께 순회설교여행(itinerant preach trip)을 하면서 자신의 은사를 십분 발휘해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했다. 일곱 번째 인물은 감리교의 여성 순회설교자 헤스터의 앤 로우 로저스다. 이 분은 이사야 40장 본문(“내 백성을 위로하라“)을 설교를 통해 듣고 감흥을 얻었다.

 

여덟 번째 인물은 공식적인 여성 설교자 사라 말렛이다. 감리교 역사상 처음으로 멘체스터 연회에서 공식적 여성 설교자로서 승인을 받은 인물이 사라 말렛이다. 당시는 여성은 교회 내에서 잠잠하라는 성경(고린도전서 14장 34, 35절)을 근거로 여성들의 설교를 허락하지 않던 시대였다. 1786년 웨슬리가 사라와 면담을 통해 그녀의 소명(하나님으로부터 들은 설교하라는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확증했다. 아홉 번째 글은 메리 테프트와 여성 설교자 임명에 관한 감리교회의 반대에 대한 글이다.

 

마지막 열 번째 글은 페베 팔머(Phoebe Palmer; 1807 - 1874)와 성결주의 운동이란 글이다. 페베 팔머는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란 구절(디모데전서 2장 12절)을 이렇게 해석했다. 여성이 가르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금지한 것은 남자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교회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이며 여성이 공중에게 가르치는 것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그러면서 그녀는 만일 바울이 여성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금했다면 사도행전 18장 26, 27절이 증거하는 사례 즉 브리스길라가 아볼로에게 예수의 복음을 가르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팔머는 성경의 여성 선지자들 가운데 이스라엘 사사 시대의 드보라와 아론의 누이 미리암, 예언자 훌다 및 초대교회의 신실한 동역자인 유오디아와 신디케 등의 주목할 만한 여성 지도자들의 실례를 들면서 여성 사역에 대한 적극적 지지와 후원을 호소했다.

 

팔머는 성경적 근거에서 설교와 예언은 분리할 수 없는 복음서이며 그런 단서는 오순절 사건의 성령 강림의 역사에 있다고 강조했다. 팔머는 “오순절에 성령의 은사와 권능이 무시될 수 있는 기사입니까? 마가의 다락방에서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그의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쓸 때 예수의 부활하심을 맨 먼저 증거한 여자 증인들도 그들과 함께 회개하며 탄원의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천사의 입술로부터 그러한 계시를 들었고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세상의 만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여자 사도들이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팔머가 여성 목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성구로 든 구절은 사도행전 2장 3, 4절이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팔머는 미국에서 제2차 대각성운동이 전개되는 시기에 여성의 참정권과 금주에 대해 캠페인을 벌인 동역자 프랜시스 우리라드와 함께 노예 해방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마지막 순서로 언급된 페베 팔머는 인상적인 인물이다. 성경 해석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페베 팔머는 바로 가부장적인 전통으로 뭉친 교회에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구절을 들어 멋진 해석을 해낸 인물이다.

 

두 가지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모두 하이젠베르크가 한 말이다.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은 어느 이론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그 이론이 일관성이 있다거나 명확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론을 더 다듬고 그 진위여부를 가리고자 하는 일에 참여해보겠다는 희망에서인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보자는 바람이며 이것 때문에 우리는 과학의 길을 혼자 더듬어 가는 것이다.“(‘입자, 인간, 자연에 대한 단상’ 16 페이지)라는 말이 그 하나다. 

 

”과학의 역사는 비단 발견과 관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개념의 역사이기도 하다.“(같은 책 23 페이지)는 말이 다른하나다. 과학이란 말을 기독교로 바꾸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성경을 더 다듬고 그 진위여부를 가리는 일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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