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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문학 강의 : 서울의 재발견 - 시민이 행복해지려면 도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승효상 외 지음 / 페이퍼스토리 / 2015년 8월
평점 :
‘서울의 재발견’은 건축전문가, 지구과학이나 지리 전공자들, 그 밖의 인문학자들의 옴니버스 형태의 책이다. 총 아홉 장의 글과 한 편의 대담이 실려 있다. 승효상은 ‘지문의 도시, 서울‘에서 우르(Ur)를 예로 들었다. 도시의, 도회지의 등을 뜻하는 urban이 우리에서 파생된 말이다.
승효상에 의하면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우르는 다스리는 사람, 시민, 생산하는 곳, 통치하는 곳 등을 갖춘 도시다. 흥미로운 점은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비판하려고 책을 썼는데 모순되게도 르네상스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서 수많은 도시계획도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우리가 투시도법에 익숙해진 이후 얼마만큼 세상을 왜곡해 보게 되었는지를 비판하는 글로 시작하는 책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어느 페이지부터 시작해도 전체의 줄거리를 다 알 수 있어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누군가가 좋아하는 도시는 구석을 파악하는 것으로 도시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도시이고 그 도시가 민주주의 도시라고 승효상은 말한다. 승효상은 달동네란 도시계획가나 건축가 아니라 주민 스스로 세운 동네라 말한다. 달동네는 재개발의 손쉬운 대상이다. 건축(建築)은 일본식 한자로 지금은 중국에서도 이 말을 쓴다.
우리는 조선 시대까지 영조(營造)라는 말을 썼다. 승효상은 city는 소프트웨어, urban은 하드웨어라 말한다. 리(理)가 옥석의 결, 무늬를 의미하는데 터와 무늬의 결합어인 터무니는 원래의 땅 무늬 위에 우리가 사는 인문적 무늬를 덧댄 것이다. 승효상은 터무니를 지문(地文)이라 바꾸어 부른다.(’지문의 도시, 서울‘이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어떻든 승효상은 산이 있으면 깎고 밀어서 터무니를 없애고 지은 아파트는 터무니 없는 집이라 말한다.(’리; 理’는 자연의 무늬, ‘문; 文’은 인위적 무늬다.) 우리에게 배산임수 자체가 랜드마크였다. 데이비드 하비는 도시는 이미지보다 서사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도시 안에 녹아 있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미학보다 윤리라는 말을 했다. 오영욱은 도시의 주요 키워드로 흔적을 들었다.
물론 오영욱은 도시는 기억과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도 했다. 오영욱에 의하면 도시의 흔적은 상처와 추억이 공존하는 도시의 자취다. 조한 건축가는 처마의 선은 구축 방식에 따라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형태라 말한다. 조한 건축가는 감동의 원인은 바로 시간이라 말한다.
조한 건축가는 기억은 실존의 문제라 말한다. 지구과학교육과 출신의 작가 권기봉은 수선(修善)이란 모범, 으뜸 등의 의미로 한 나라의 선(善)은 수도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라 말한다. 양주동은 서울은 새벌에서 나온 말이라 설명했다. 새는 솟아 있다, 높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벌은 울타리를 의미한다. 서울은 높은 울타리 즉 성곽을 가진 도시라는 의미가 된다.
동양학자 조용헌은 서울은 산이 있는 도시라 말한다. 조용헌은 바위는 유독 두뇌를 혹사시키는 작업에 참 좋다고 말한다. 서울은 대도시인데도 북한산 같은 바위산이 있고 한강이 있다. 조용헌은 중국 남경은 진시황 때도 계속해서 왕이 날 것이라고 운위되던 곳이어서 진시황이 남경 사람을 등용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을 고려 태조가 모방한 것이라 말한다.
고려 태조는 금강을 반궁수(反弓水; 강 흐름이 활처럼 휘어져 땅이 움푹 들어온 곳)의 강 즉 화살로 개경을 겨누는 반역을 꾀할 곳으로 낙인찍어 그 지역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고 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성계도 전주 사람이니 강남 사람이란 점이다. 그래서 이성계는 ‘용비어천가’에서 아무리 강남을 견제해도 인물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는 서울의 오래된 골목 이야기를 한다. 골목이란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자동차가 생기고난 후 더 이상 골목을 만들지 않기에 역사적 공간이 되었다. 로버트 파우저는 골목에는 추억과 기억이 있다고 말한다. 기억은 객관적 메모리이고 추억은 애착이나 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161 페이지)
로버트 파우저는 골목에는 낭만과 신비주의, 이국성이 있다고 말한다. 19세기끼지 골목은 도시 흐름의 중심이었다. 골목은 어떤 면에서 개발되지 않은 곳, 자동차가 없는 곳, 옛 생활방식을 상징한다. 창신동은 오래된 서민 동네로 20세기의 모든 주택의 형태가 모여 있다. 아파트, 연립, 양옥, 한옥, 큰 집, 작은 집, 일본식 집...창신동은 주민 스스로 뉴타운을 포기한 첫 사례지다.(서촌은 서울시가 보존하자고 한 것이다.)
창신동 사람들이 스스로 재개발을 포기했기에 앞으로 낙후된 동네를 어떻게 서울시와 소통해 극복할 것인가가 큰 관심사다. 로버트 파우저는 서울은 파리나 빈과 다르게 골목으로 인해 계획되지 않은 랜덤성으로 빛난다고 말한다.
역사지리학자 이현군은 장소는 시간이 녹아 있는 시간의 지층이라 말한다. 한양이 의례, 관념 등이 중시된 도시였다면 서울은 자본주의의 도시다. 한양이 의례의 도시라는 말은 숙정문,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등이 형식적으로 만든 문이라는 말과 통한다. 가물면 남대문을 닫고 숙정문을 열고 기우제를 지냈다. 양의 기운을 차단하고 음의 기운을 크게 하기 위한 조치다.
비는 용이 내려준다고 믿은 조선 사람들은 용 대신 도롱뇽을 경회루에 묻었다. 광진(廣津)은 건너면 광주(廣州)여서 붙은 이름이다. 삼전도, 송파나루는 비가 많이 오면 새 물길이 생긴다고 하여 신천(新川)이라 불렀다. 언어학 박사 유재원은 서울 언어의 변천사를 다루었다.
고미숙은 10년마다 대운(大運)이 바뀐다고 말한다. 1년마다 바뀌고 오늘 하루도 바뀐다고 말한다. 기획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서울의 재발견’은 흥미로운 구성의 책이다. 여러 전문가가 본 서울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 책이다. 글쓰기에 단서를 주는 책이다. 고 박원순 시장과 고미숙의 대담을 보며 한 시대가 그렇게 갔구나, 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