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경제 - 과거 위기와 저항을 통해 바라본 미래 경제 혁명
제이슨 솅커 지음, 최진선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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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셍커의 ‘반란의 경제’는 과거의 일들이 단기, 중기, 장기적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쓴 책이다. 과거의 일이란 저항과 혁명을 의미한다.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금융 예측가이자 미래학자 중 한 사람인 저자는 저항과 혁명을 둘러싼 15가지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분석했다.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대혁명, 의화단 사건, 러시아혁명, 프라하의 봄, 소련 붕괴, 아랍의 봄 등이다.

 

혁명을 일으키는 주요 결정 요인 중 하나는 민중의 배고픔이다. 저자는 미래학자는 금융시장처럼 변동성이 크고 단기적 움직임을 보이는 분야를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래학자는 의사결정자들이 과거의 트렌드, 변화의 주된 요인, 현재의 현실을 반영해 미래를 바꿀 핵심 수단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고 또 바뀌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불확실하고 가변적인 상황에서도 미래의 잠재적 비전과 전개될 방향을 공유하는 것은 중요하다. 저항과 혁명을 유발하는 여섯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전반적으로 열악한 경제 조건, 2)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경제적 기회 부족, 3)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 4)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외국의 영향, 5) 가까운 시일 내 대규모 무력 충돌에서의 패배, 6) 정치적 대표성의 결여 등이다.

 

저자는 실패한 혁명은 논의하지 않았다. 저자는 대공황 시절 참담한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것이 미국의 큰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 독립혁명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혁명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미국 독립혁명의 주요 동인을 이렇게 본다.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경제적 기회 부족,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 정치적 대표성의 결여 등이다.

 

저자는 프랑스대혁명의 주요 동인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여섯 가지 요인 중 가까운 시일 내 대규모 무력 충돌에서의 패배를 제외한 모든 요인이 제시된 것이다. 15가지 사건 중 의화단 사건도 포함되었다. 이 사건은 청나라 말기 1899년 11월 2일부터 1901년 9월 7일까지 산둥 지방과 화베이 지역에서 의화단이 일으킨 외세 배척 운동이다.

 

민중들의 배고픔이란 말을 했거니와 트로츠키는 1905년 혁명 이전의 러시아 경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매우 낮은 생산성을 보이는 어느 유럽 국가보다도 러시아는 현재 3배에서 4배 가량 더 가난하다.”1905년은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시기다.

 

저자는 1917년 러시아를 가난이 세운 사회주의 국가라 표현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레닌이 내건 슬로건은 “평화, 빵, 땅”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도시 노동자계층의 지지를 받아 1905년 혁명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진행되었다. 레닌과 트로츠키를 주축으로 하는 공산당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치러야 했다. 구체제를 옹호하는 왕정파 백색군과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혁명파 적색군의 수년간의 장기적 전쟁이었다.

 

내전은 백색군의 분열과 민중의 지지에 힘입어 1920년 11월 볼셰비키의 적색군이 최후 승자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1922년 12월 30일에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소련을 결성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긴 했지만 무늬만 민주주의 국가였다. 악명 높은 헌법 48조항 때문이었다. 정부가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이었다.

 

이 조항으로 인해 1933년 히틀러의 정권 장악이 가능했다. 히틀러의 정권 장악을 마흐터그라이풍이라 부른다. 1930년대의 대공항으로 최악의 상항이 전개되자 독일은 나치에 투표했다. 놀랍게도 저자는 여섯 요인 모두가 1933년 나치의 권력 장악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한다. 쿠바 혁명은 정치적 투쟁이자 경제 개혁 혁명이다.(77 페이지)

 

1968년 미국에서 인종 차별 시위가 벌어졌다. 1968년은 유럽에서 프라하의 봄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봄은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과 실제로 일어난 그리고/ 또는 사람들이 인식한 외국의 영향으로 인해 발생했다. 저자는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경제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렇기에 문화 혁명에 가깝다고 덧붙인다. 1989년 소련은 경제난에 무너졌다.

 

특정 나이대의 미국인들은 코로나 19 팬데믹을 경험하며 특별히 충격을 받았다. 식품, 화장지 등의 생필품이 동이 나는 것을 보면서 구소련을 떠올린 것이다. 저자는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의 구절을 인용한다. “어떻게 파산하셨어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네요. 천천히...그러다 갑자기!” 저자는 놀라운 미국의 부채 수준을 우려한다. 미국은 205년이 걸려 부채가 1조 달러에 도달했으나 2020년 2/ 4분기에는 매달 약 1조 달러씩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중앙은행에서 새로 돈을 공급하는 양적 완화가 지속 가능성에 마냥 좋은 신호만은 아니라고 말하며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공통분모가 존재하지만 강대국간의 패권 경쟁과 SNS가 불만과 동요의 씨앗으로 무기화될 것을 우려한다.

 

저자는 NOISE를 말한다. Necessities(필수품), Occupations(직업), Information(정보), System(시스템), External(외부 요인)을 말한다. 필수품은 식량, 물, 에너지, 주거지, 안전 등을 말한다. 직업은 일, 직업, 취미를 말한다. 정보는 정확하고 안전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시스템은 금융, 보건, 대중교통, 교육 등을 말한다. 외부 요인은 국제 관계, 군사, 공급망, 무역 등을 말한다.

 

저자는 국가 안보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를 언급한다. 1) 할리우드식 해피엔딩, 2) 무역 전쟁 데탕트, 3) 최고의 친구이자 적, 4) 대리전 등이다. 저자는 우리의 경제와 사회는 많은 위험성과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한다. 차분하게 부정적인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도록 스스로 준비하자고, 이후 좋은 날에 있을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며 미래를 계획하자고 말한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두루 담았고 특히 혁명의 여섯 가지 요인을 제시한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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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實, 세계를 만들다 - 실천을 둘러싼 철학 논쟁들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16
김선희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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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지성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실(實)이란 개념은 언제나 전환의 논리. 변화의 지향점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요 논지다. 실(實)을 주제로 책을 쓸 때 어려웠던 점은 학자들마다 큰 변별점을 찾기 어려운 일반론이 반복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은 인간의 인식 여부와 관계 없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성리학자들은 자주 우주의 근원적 진리를 뜻하는 이(理) 앞에 실(實)을 붙여 실리라 표현했다. 이가 공허한 개념이 아니라 실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공자는 명(名)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사물이나 직함의 명칭을 바로잡고 정리하겠다는 의미나 사회적 준거틀을 질서 있게 정리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 사회적 준거와 틀인 개별적인 명칭과 명분이 그에 합당한 분명하고 의미 있는 실질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의미다.(21, 22 페이지)

 

공자는 명과 실의 관계에서 명을 사회가 따라야 할 표준의 이념으로 보고 실을 그에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 이후 유가(儒家)에게 명과 실의 일치 문제는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정치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제재라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성격을 띤다.

 

명과 실이 함께 다루어지지 않은 ‘논어’와 달리 ‘맹자’에는 그 둘이 하나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맹자는 공자와 달리 명과 실의 관계에서 명의 보편성이나 안정성보다는 실의 차원을 더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맹자가 공자가 제안한 정명 즉 올바른 이름과 적절한 명분의 사회적 실현을 중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차라리 맹자는 실의 의미를 더 강화하고 세분화했다고 할 수 있다. 노자는 한정된 인간의 사유와 인식 능력에서 비롯된 언어로는 항상 변화하는 우주의 실재를 포착할 수 없다고 보았다. 유가 입장에서 정명(正名; 명칭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의무를 부과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한 통치법이지만 노자 입장에서는 통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장자는 이름을 실질의 손님이라 표현했다. 순자에게 이름과 그에 맞는 실질은 사회 정치적 질서의 토대였다. 명과 실에 관한 순자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름을 제정하여 실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름이 규정되지 않으면 사물의 명과 실이 뒤얽혀 사물의 실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순자는 명을 고정불변하는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 과정과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기능적인 규약들로 이해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 규약을 혼란 없이 지키기 위해서는 이름이 반드시 실제에 대한 이해와 고찰을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성리학자들에게 실은 이론적으로 긴장을 유발하는 개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실학이라 불렀다.

 

이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학풍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리학의 입장에서 공리공담에 치우친 불교나 도교 등 경쟁하는 학문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하던 일종의 자기 지칭이었다. 성리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이를 실리(實理; 인의예지라는 근원적 가치)라 부르고 이를 담고 있는 마음을 실심(實心)이라 불렀다.

 

이는 세계를 구성하는 보편 원리이자 도덕적인 가치다. 성리학에서 실(實)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 세계이자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참된 원리 즉 세계가 올바른 방식으로 살재한다는 이념이기도 하다, 성리학에서 실은 성(誠)이기도 하다. 성리학이 성즉리를 말했다면 양명학은 심즉리를 말했다.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 중 하나는 사람의 마음 밖에 별도로 형이상학적 원리이자 도덕적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곧 도덕 원리라는 심즉리 이론이다. 성즉리라는 성리학의 이론은 왕양명이 보기에 이와 기, 본성과 마음을 이원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마음과 본성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왕양명은 마음과 그 마음의 일상적 작용이 곧 도덕적 원리의 실천이라 보았다. 왕양명을 계승했거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추상적인 원리로서의 이를 사변적으로 규명하려는 태도를 텅 비어 있는 학문 즉 허학(虛學)이라는 말로 비판하며 이미 도덕적 기준과 실천적 능력을 담고 있는 마음의 현실적 실천을 강조하는 자신들의 학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실학이라고 주장했다.

 

명말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일군의 학자들은 더 이상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실제의 일에서 실질적인 증거들을 확보해 실질적인 실천과 개혁을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후기의 특별한 학풍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전 실학은 시나 산문을 짓는 문학적 글쓰기와 다른 경학을 의미했다.

 

물론 경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실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경서를 텍스트로 하는 과거 공부조차도 일종의 실용적 기술로 치부했다. 오직 성리학의 근본적 이념에 대한 진정한 탐구만이 실학이었다는 의미다. 율곡 이이만큼 실을 중시하고 다양한 개념을 활용한 조선 유학자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홍대용이 스승인 미호 김원행으로부터 배운 학문은 성리학이었다. 김원행은 조선 후기 호락논쟁 즉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를 두고 벌인 논쟁에서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주장(낙론洛論; 인물성동이론)한 핵심 인물이다. 권상하, 한원진 등은 인물성이론(호론; 湖論)을 주장한 사람들이다. 홍대용은 실심에서 실사로, 실사에서 실지로 향하도록 실의 태도를 모든 영역에 확장하고자 했다.

 

성리학과 대별되는 역사적 실체로서의 실학이 존재하는지, 그 개념이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쟁은 완결되지 않았다.(83 페이지) 실을 강조하는 학문적 경향과 관련하여 다른 유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약용이 성리학의 이론적 토대인 이 개념과, 이가 곧 우리의 본성이라는 이론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정약용의 관점에서 실심은 마음의 본체가 아니라 도덕적인 각성을 통해 매순간 실천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실학은 국가를 새롭게 개조해줄 서양 과학의 다른 이름이었다. 실, 그리고 실학은 통시대적인 개념이었다. 어느 시대고 나름의 학문으로 존재했다는 의미다. 일제 강점기 일군의 학자는 실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조선 후기에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학풍이 존재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현재 실학자로 분류된 학자들의 사상이 모두 사회개혁적인 것만은 아니며 더 나아가 반성리학적이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94 페이지) 성호 이익은 서양 과학 지식을 높게 치고 실용적인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조선의 주자로 추앙받았던 퇴계를 평생 존숭했으며 그의 학문을 계승하고자 노력했다.

 

천문학, 수학, 지리학, 의학, 기계 제작 등 사변적인 이론논쟁보다 백성의 삶에 유용한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한 것을 곧바로 근대성의 추구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더구나 실학과 성리학을 대척점에 있는 학문으로 규정하는 것은 20세기의 관점이다. 당시 조선 후기 학자들에게 성리학과 실학 사이에 강력한 긴장이 존재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문제는 실학에 대한 연구에 지나치게 근대성이란 틀을 적용하려는 연구 태도다. 맹자는 먹이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가축으로 대하는 것이고 사랑하지만 공경하지 않는 것은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어 공경은 물질적인 것이 오가기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그 실질이 없다면 군자는 헛되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실이라는 개념을 통해 진실과 진정성이 없는 관계를 비판한 것이다. 순자는 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명과 실의 불일치 또는 불안정에서 찾았다. 순자는 실보다 명을 중시했다. 공자는 실질적 내용이 겉모양보다 뛰어나면 투박하고 겉모양이 실질적인 내용보다 뛰어나면 번지르르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채(文彩)와 실질이 적절히 조화된 뒤라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점은 공자가 말의 내용에만 마음을 쓴 것이 아니라 표현에도 마음을 썼다는 사실이다. 공자가 지나치게 말을 잘하는 사람을 경계했다면 순자는 말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군자의 본질로 여겼다. 물론 순자의 의도는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선왕과 예악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장자는 치우치지 않지만 양쪽의 평균을 구하지도 않는 조화의 상태를 천균(天均)이라 부르고 그 천균에서의 행위를 양행(兩行)이라 불렀다. 성리학의 관점에서 명과 실은 어느 한쪽도 폐기할 수 없는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송대 성리학자들에게 명과 실은 상호 긴장관계에 놓여 있을뿐 아니라 형식과 내용처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주희의 제자가 주희에게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논어’의 구절에 대해 물었다. 이 구절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유사하지 않느냐고 묻자 주희는 불교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여기고 삶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면 얼마든지 삶을 포기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유학의 도는 삶을 하찮게 여기거나 죽음을 중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도를 깨닫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고 답했다.(159 페이지)

 

유학은 실의 학문, 불교는 허망한 학문이라는 말이다. 성리학적 맥락에서 실리(實理)와 실심(實心)은 우주의 근원적인 이치가 인간과 아무 관계 없이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인 마음에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개념쌍이다.(161 페이지) ‘중용장구’에는 치우치지 않음은 중(中)이고 변치 않음은 용(庸)이라고 한다는 구절이 있다.

 

‘논어집주’에는 명성을 추구하는 일과 잇속을 추구하는 일은 고상함과 비루함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탐욕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은 같다는 말이 있다. 주희, 정이천, 윤돈은 한결 같이 명과 실을 대비시키며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실질에 힘쓰려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주자어류’에는 ”요즘 공부하는 이들이 실지에 발을 붙이지 않고 항상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 비유하자면 밥이 있는데도 스스로 먹으려고 하지 않고 다만 문 앞에 펼쳐놓고 자기 집 안에 밥이 있다고 남에게 알리려고만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생각을 깨끗이 없애야 비로소 발전이 있다.“는 구절이 있다. 착실(着實)이란 실지에 발을 붙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진실하고 절실하다는 의미다. 왕양명은 성리학이 자기 내면의 완전성과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자꾸 외부에서 탐구한 이치를 통해 자기 마음을 보완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식이라면 결국 외부 세계와 내 마음이 둘로 나뉜다는 것이다.(174 페이지)

 

왕양명의 생각은 근원적 이치가 나의 마음과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마음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양지(良知)란 순간적인 결단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내 마음의 등불이자 지도를 의미한다. 양지는 내 마음 안에 들어온 천리라는 것이다.

 

왕양명이 양지를 강조한 것은 외부에 이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해도 내 마음이 스위치처럼 켜져서 외부 사물과 접촉하지 않으면 결국 그 이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76 페이지) 후대 학자들은 왕양명의 주장을 주관 유심주의 즉 외부의 객관적 세계를 부정하고 마음만을 진실한 것으로여겼다고 비판하지만 그의 의도는 외부 세계와 내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 것, 객관 세계와 주관 세계가 양분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추사는 실사구시를 유학의 학문적 이념으로 세우고 이와 다른 학풍들 즉 노장, 불교,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술을 거짓된 학문 즉 허학이라 비판했다. 시서화에 능했던 뛰어난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김정희 역시 요순우탕, 문무주공과 같은 고대 유학의 성인들을 높이고 그들의 가르침에서 진리를 도출하는 일을 진정한 실사구시로 파악하는 유학자였다.(20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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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만 틸든은 ‘숲 자연 문화유산 해설’에서 "해설의 기본 목표는 상세한 부분이 아무리 흥미 있다 하더라도 부분보다 전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총체가 아니라 전체에 주목할 것이다.“(81 페이지)란 말을 했다. 저자는 총체는 무한대로 솟아오르는 것이라 말한다.

 

전체(全體)와 총체(總體)는 어떻게 다를까? 가뭄으로 마을 전체가 황폐화되었다고 하면 괜찮지만 마을 총체가 황폐화되었다고 하면 이상하다. 마찬가지로 작품은 작가의 신념과 가치관의 총체라고 하면 괜찮지만 전체라고 하면 이상하다.

 

전체적이라 함은 대부분이라는 의미다. 총체적이라 함은 전면적이고 전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꽃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 꽃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꽃의 역사, 지질, 생태, 인문적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시간 제약 때문이다.

 

나로서는 대략 이 정도만을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람이 허튼 데가 없이 찬찬하며 실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 착실(着實)이다. 철학적으로 이는 실지(實地)에 발을 붙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착실의 반대어는 무엇일까? 나는 보허(步虛)가 아닌가 싶다. 허공을 걷는다는 의미다.

 

나는 착실한 해설을 하는가? 아니 착실이 원래의 의미(‘실지; 實地‘에 발을 붙이고 있는 상태)를 잃고 허튼 데가 없이 찬찬하다는 말로만 쓰이는 현실을 고려해 ”나는 성실한 해설을 하는가?“라 고치면 어떨까? 아니 이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실답(實踏)의 해설을 하는가?“라 고쳐야겠다. 부분보다 전체를 말하는 해설인가란 의미다. 그런데 가령 오규원 시인의 시 '바위에 별이 스며들어 꽃이 되었다.'란 구절을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암석(지질), 별(천문), 꽃(생태)을 두루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순자‘에 이런 말이 있다. 만물이 비록 많으나 어느 때는 이들을 한꺼번에 거론하고자 할 때가 있고 이를 일러 물(物)이라 한다. 물이라는 것은 가장 큰 공명(共名; 공통 개념)이다....어느 때에는 개별적으로 거론하고자 할 때가 있으니 예를 들어 조수(鳥獸)와 같은 것이다...조수라는 것은 가장 큰 별명(別名; '종; 種' 개념)이다..”

 

순자는 말을 좋아하고 말을 잘 하는 것을 군자의 본질로 여겼다. 순자는 말의 내용이나 실속 만큼 드러내는 방식, 표현 과정도 중요하게 여겼다.(김선희 지음 ’실(實), 세계를 만들다‘ 참고)

 

인간은 악의 성향을 타고 태어났다는 주장(성악설)을 폈지만 교육에 의해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다고 가르친 순자(김백철 지음 ’왕정의 조건‘ 참고)의 말이니 믿음이 간다.

 

본지(本旨)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말하자면 ”순자의 성악설이 맹자의 성선설과 모순되는 이론이었던 것은 아니다. 두 사상가는 인간 본성 가운데 상이한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서로 다른 입장에 섰으나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생각은 많은 곳에서 일치하는 유학자였다.“(김교빈, 전호근, 김시천, 김경희 등 지음 ’동양철학 산책’ 참고)

 

공명(共名)과 별명(別名)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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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바울 - 바울의 역사와 유산에 관한 소고
존 M. G. 바클레이 지음, 김도현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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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Paul)은 작은 이라는 의미다.(76 페이지) 하지만 그는 기독교 신학에서 참으로 큰 인물이다. 베토벤이 바흐는 시내가 아니라 바다라고 한 것을 연상하게 한다. 음악학자 폴 뒤 부셰는 바흐는 시내가 아니라 동유럽 방언으로 순회음악가라 설명했다.

 

바울은 순회 수공업자였다.(15 페이지) 그뿐 아니라 그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였던 선교사였다.(26 페이지) 바울은 최저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60 페이지) 존 바클레이의 ‘단숨에 읽는 바울’은 150여 페이지의 분량에 담을 수 있는 핵심적인 내용들을 담은 알찬 책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바울에 대해서뿐 아니라 기독교 일반, 그리고 서양 철학 및 역사를 함께 아우르는 눈을 가질 수 있다. 바울은 그냥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고 단 하나의 그림에 담거나 단 한 가지 방식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한 인물이다.(84 페이지)

 

또한 바울은 대단한 논쟁가였다.(73 페이지) 갈라디아서 연구로 철학 박사가 된, 신약학 교수인 저자는 믿을 만한 일곱 성경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데살로니가 전서,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갈라디아서, 빌레몬서, 빌립보서, 로마서다. 이 성경은 모두 바울이 쓴 편지들이다.

 

바울과 관련된 것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편지뿐이다.(31 페이지) 바울의 권위는 의심받기도 했고 자신이 세운 교회에 의해 도전을 받기도 했다.(34 페이지) 동료 신자들 사이에서 바울을 의심하고 싫어하며 반대했던 자들이 적지 않았다.(73 페이지) 물론 저자는 바울의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의 열정적이고 개성 있는 글솜씨에 매료되곤 한다고 말한다.(46 페이지)

 

모든 역사적 판단은 다툴만한 여지가 있다. 당연히 바울 서신의 저작설에 관한 다툼도 지난 200여년에 걸쳐 학자들간에 꾸준히 있어 왔다. 상황 대응적이었던 바울은 조직신학자라기보다 실천신학자에 가까웠다.(33 페이지) 바울의 편지들은 체계적으로 작성된 논문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같은 용어도 각기 다른 문맥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91 페이지)

 

그의 편지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전제들을 담고 있어서 그 행간을 해석자들이 메워야 할 때가 있다.(91 페이지)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운동과 맞닥뜨렸을 때 그는 두 가지 이유에서 격분했다. 이미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한 하찮은 반역자로 정평이 난 예수에 관한 충격적 주장(부활, 하나님의 아들)과 예수 운동이 비유대인들을 영입하여 그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취급한 배경 때문이다.(21 페이지)

 

길리기아 속주의 다소(터키 남동부) 출신인 바울은 유대인 지성인이자 자칭 바리새인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소요를 일으킨다는 명목하에 로마 당국자들에게 체포되었다.(27 페이지) 바울이 처형당한 것은 60년대 즉 50을 넘긴 나이였을 것이다. 죄목은 반란죄 또는 치안을 어지럽힌 것이다.(28 페이지)

 

‘단숨에 읽는 바울’은 바울의 고투(苦鬪)와 감정들을 알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로마 문명의 전복이라는 큰 사건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한다는 데에 책의 중요성이 있다. 바울이 활동했던 도시들은 이미 확장세를 타고 있던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있었다.(63 페이지)

 

의외인 점은 바울의 신학은 교육을 받은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비해 철학적으로 덜 헬레니즘화되었다는 말(51 페이지)이다. 바울의 언어는 여러 철학적인 관점과 조화를 잘 이룰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나며 구원 및 이에 따른 인간의 자아실현에 관한 그의 이해는 스토아학파, (신) 플라톤주의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헤겔 혹은 실존주의 철학자 등에 의해 다양한 철학적 옷이 입혀졌다.(97, 98 페이지)

 

오독인지 모르나 바울은 양가적이었던 것 같다. 그 자신 미혼이었던 바울은 미혼을 옹호하는 신학적, 실천적 주장을 다양하게 전개했지만 결혼을 반대하거나 부추기지는 않았고(66 페이지) 예수를 못 박아 죽인 이 세대의 통치자들을 폄하하기도 하고 예수를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을 능가하는 권력을 지닌 우주의 주님으로 높였으나 로마서를 기록할 때에는 이 세상의 권세에 복종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70 페이지)

 

바울은 자신이 받은 소명은 독립적인 것이라 생각했다.(74 페이지) 바울은 종교를 바꾸지 않았다. 즉 개종하지 않았다.(22, 23 페이지) 바뀐 것은 그의 생각이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바울의 개종 이야기란 말을 한다,(76 페이지)

 

바울의 편지는 이해하기 어렵고, 성경의 지위를 가진 권위 있는 글이고,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많고, 그렇기에 구원 자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90 페이지) 바울이 그리스도가 율법의 텔로스가 되신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무엇일까? 텔로스는 마침을 의미하기도 하고 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울은 자신이 역사의 마지막 세대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95 페이지) 바울은 죄라는 용어로 위법 행위는 물론 불순한 세력까지 지칭했다.(96 페이지)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본문을 해석하는 사람은 모두 각자의 관심사와 정황, 개성을 본문에 투영하는데 심지어는 자신들의 전제들을 본문이 깨뜨려주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그렇다.(98 페이지)

 

오늘날의 바울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로마서 7장에 매료당했다.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는 구절이다. 은혜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급진적 해석들은 가능하긴 하지만 필수적인 바울 읽기는 아니었고 성경의 다른 본문들과 상당한 긴장을 초래했다.

 

그가 생을 마감할 시기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그를 흠모하던 사람들 중에서도 그가 너무 극단적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후대 신학자들은 때로는 그의 일부 극단적인 결론에 대해 자신의 지지를 거두어들이기도 했다.(109, 110 페이지)

 

마르틴 루터가 성경의 권위를 그리스도교의 다른 모든 권위 위에 올려놓았지만 신구약 성경 모두를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준 것은 바로 바울의 편지들이었다. 바울의 독신주의 조언을 결혼보다 성적 순결을 우선순위에 놓는 것으로 이해한 오랜 해석 전통에 대항하면서 루터는 자신의 수도승 서약을 파기하고 수녀와 결혼해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으며 결혼과 가정의 소박함을 향유했다.(119, 120 페이지)

 

루터는 영적 서열 없이 오히려 삶 전체를 신성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비록 이론적으로는 개신교의 관점에서 성경 전체를 읽는다곤 하지만 다른 나머지 성경에 비해 바울의 편지들이 기형적으로 우위를 차지했던 것도 사실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한다.(124 페이지)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한 번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자칭 유대인이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당대에 고안된 것이다. 바울의 유산은 서로 엄청나게 다른 해석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모호하다.(130 페이지)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성장한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바울에 대한 해석도 신학적 원인 중 하나다, 저자는 바울은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많은 1세기의 목소리로 남아 있을 것이라 말한다.(137 페이지)

 

저자는 말을 참 잘한다. 가령 바울이 어떤 이들을 매료시킬 수 있다면 또한 그는 급진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이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143 페이지)는 말을 보라. 아이러니한 것은 바울의 편지들이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걸쳐 진행된 노예 문제 논쟁에서 양 진영에 의해 원용되었다는 점이다.(143 페이지)

 

노예제도 옹호자들은 주님이신 예수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범사에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인용했고 반대자들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면서 그를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묘사한 구절을 원용했다.

 

바울은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생각은 우리가 기대하는 바대로 자유, 평등, 관용 등과 같은 가치와 항상 부합하지는 않는다,(150 페이지) 모든 정체성을 그리스도께 속함이라는 숭고하고 유일한 선(善) 아래 두면서 상대화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로지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보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바울의 본문들은 충분히 열려 있다. 다시 말하지만 얇은 분량에 핵심적인 내용들을 담아낸 내공과 글 솜씨가 대단하다. 바울에 대한 애정보다 비판적 지지를 하는 데 마음이 갈 것 같다. 물론 애정을 위해 읽은 책이 아니라 비판하기 위해 읽었는데 지지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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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대한 권리 -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시대 리커버
강현수 지음 / 책세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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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수의 ‘도시에 대한 권리’는 전 세계적으로 진보적 도시 정책의 핵심 의제가 되어 가고 있는 개념인 도시에 대한 권리에 대해 다룬 책이다. 이는 특정 도시 공간을 이용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이해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개념이다.

 

1968년 68 운동이 프랑스를 휩쓸던 시기에 (68 운동의 진원지인 낭테르 대학의 교수였던)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책에서 처음 제기된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 누구나 나이, 성별, 계층, 인종, 국적, 종교에 관계 없이 도시가 제공하는 편익을 누릴 권리, 도시 정치와 행정에 참여할 권리,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를 스스로 만들 권리에 대한 개념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많이 낯선 개념이다. 르페브르는 지금의 사회를 도시사회로 보고 논의를 풀어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촌 대신 도시에 모여 살고 있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사람들의 존재 방식, 사고 방식, 행동 방식이 도시적으로 바뀌었고 도시가 아닌 농촌까지도 도시 사회가 되었기에 도시와 농촌의 물리적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르페브르는 마르크스가 규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 사이의 모순이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시 성장을 통해 극복되었다고 보았다. 르페브르는 1) 도시에서 자본의 이윤을 위해 봉사하는 교환 가치가 사람들의 사회적 필요를 담고 있는 사용 가치를 압도하고 있으며, 2) 거주의 의미가 단순히 거주처의 의미로 축소되고 있으며, 3) 당시 프랑스 사회에는 중요한 도시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르페브르에게 도시는 다양한 도시 거주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와 연관되는 일종의 집합적 작품이었다. 르페브르는 작품은 사용 가치이고 제품은 교환가치로 정의하며 도시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 즉 거리와 광장, 건축물, 기념물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축제라고 보았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가 시민들이 서로 만나고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객관적 필요에서 비롯된다. 도시 공간을 재산 즉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상품으로 보는 개념은 전유의 권리와 대립된다. 전유의 권리란 공간에 접근하고,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할 권리, 사람들의 필요에 부합하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권리를 포함한다.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통해 도시 생활이 변혁되고 나아가 사회가 변혁되며 시간과 공간도 변혁된다고 보았다. 르페브르는 사람들이 도시 중심부로부터 배제되고 도시 공간이 기능별, 계층별로 격리/ 단절되는 현상을 비판했다.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의 권리다. 교환 가치보다 사용가치, 사유 재산권보다 전유의 권리를 강조하는 도시에 대한 권리는 자본주의의 핵심 논리에 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도시 프로젝트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가능한 개혁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엔 산하 기구인 유네스코와 유엔 해비타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운동이 대표적이다.

 

현재 인정받고 있는 도시에 대한 권리는 소수의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들에게 한정되고 있다. 하비, 퍼셀 등은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가 완전히 실현되려면 사회관계의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요한 점은 도시에 대한 권리는 개인적 권리 즉 자유주의적 권리로 해석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빈곤, 사회적 배제, 도시 폭력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점령하라 운동(월가를, 여의도를...)이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지만 지향하는 바는 몇 가지 점에서 겹친다. 점령하라 운동은 도시의 중심부 공간이나 상징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령하는 운동이다. 그 운동은 사람들이 함께 토론하며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운동이기도 했다.

 

인종, 종교, 성별, 연령, 국적, 문화, 성적 취향 등의 차이로 인해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는 개인과 집단들에 대한 권리가 도시에 대한 권리에 포함된다.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도시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다.

 

권리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거나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투쟁을 통해 진화, 발전해온 것이다. 근대적 인권 선언의 효시인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는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후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프랑스에서는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이 자국민들 즉 프랑스 국민의 자격을 갖춘,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에게만 보장되었다.

 

같은 국민이라도 빈곤층, 여성 등은 재산이 있는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다. 각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보편적인 시민권을 부여받은 것은 노동운동, 여성운동 등 사회 각 계층의 투쟁이 시작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사적 소유의 권리를 불가침의 권리인 자연권 즉 인권으로 인정함으로써 인권이란 자본을 소유하고 사적 소유의 자유를 추구하는 부르주아의 권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도시 단위에서 권리 주장이 유용한 것은 왜일까? 인본주의 지리학자 투안(Yi ? Tuan)은 사람들이 공간을 더 잘 알게 되고 공간에 자신의 가치를 부여함에 따라 공간이 장소가 된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치를 부여하는 곳 즉 장소들은 균질하지 않고 각기 다르다. 도시가 강조되는 것은 현대인의 일상생활의 장소가 도시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실천 운동의 장소다.

 

막스 베버가 강조한 것처럼 서양 역사에서 도시의 중요한 특징은 정치적 자율성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도시가 중세의 봉건적 구조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인간들을 배출한 장소였기 때문에 시민의 의미는 도시 거주자에서 자유와 권리를 가진 주체적 인간으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근대적 의미의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시민이란 말은 근대 국가의 국민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도시 문제로 발현되지 않는 세계 문제는 별로 없다. 도시는 세계의 문제가 집중되는 장소이자 그 문제가 해결되는 장소다. 여성주의자 아이리스 영은 타인에게 동화되기보다 낯선 사람들을 인정하고 차이에 대해 개방적인 비억압적 도시에서 이상 사회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세계화 시대에 차이성은 소멸될 우려가 높다. 그래서 장소의 차별성이 경쟁무기가 된다. 세계화 시대에도 특정 장소에 기반을 둔 도시나 지역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르페브르가 말한 도시란 물리적 공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도시적 생활양식을 상징한다. 그가 말한 도시에 대한 권리란 기존 도시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미래 도시에 대한 권리이며 전통적 의미의 도시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게층적 구분이 사라지는 도시 사회에 대한 권리다.

 

도시에 대한 권리가 미래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말은 우리사회의 도시에 대한 권리 억시 현재 존재하는 실정법상의 권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권리를 꿈꾸는 상상력을 요구한다. 르페브르는 도시 거주자들뿐 아니라 도시 이용자들도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좋은 의미이지만 상당히 추상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구체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주의적 비판, 호모 사케르를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등이 제기되지만 도시에 대한 권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2009년 용산 참사는 유엔이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이기에 하지 말라고 거듭 경고한 강제 철거 관행이 촉발한 참사였다. 저자는 전면 철거 재개발은 인권에 대한 엄청난 침해라고 규정한다.

 

도시에 대한 권리 중 하나가 주민들의 참여권이다. 1989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시작된 주민 참여 예산 제도는 세계 각지로 급격히 퍼져나갔다. 68 운동 당시 가장 유명했던 구호는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적 조건 즉 현재의 물질적, 제도적 조건과 각 주체들이 지닌 가능성과 역량을 고려한 상상력은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정당한 논리나 도덕적 가치가 없는 권리 주장은 기득권층의 특권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자이메 레르네르의 도시 침술이 도시에 대한 권리와 부합한다. 큰돈을 들이는 대규모 프로젝트 대신 작은 비용으로 침을 놓듯 작은 변화를 주어 영향을 확산시키는 방식이 도시 침술(urban acupuncture)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에 대한 가장 큰 걸림돌은 정당한 권리 주장과 부당한 특권 요구를 명쾌하게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지점들이 무수히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총체적 삶의 터전이 아니라 거주지에 불과하다.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는 모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때만이 모든 이에게 뭔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사에 대한 권리는 인권보다 더 구체적일 수 있다. 내가 도시에 대한 권리에 대해 갖는 관심은 간헐적으로 도시(특히 서울)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갖는 관심이다. 나는 서울이 걷기 좋은 도시,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는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잘 지켜지는 도시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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