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부득(要領不得)이란 사물의 주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말이나 글의 요령(要領)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물색(物色)없다는 말과 통한다. 말이나 행동이 형편이나 조리에 맞는 데가 없다는 의미를 가진 말과 통한다는 의미다. 두 단어를 무람없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무람이란 부끄러워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데가 있는 것 또는 그런 태도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무람없다는 말은 삼가고 조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엇에 대해? 바로 글이다.

 

비약인지 모르지만 사람에 대해 조심하지 않는 사람은 글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최근 그런 글을 연이어 읽었다. 문법 오류뿐 아니라 사실 오류들까지 범한 데다가 기존 정보들을 자기의 문제틀에 넣어 재가공하지도 않은 글이다. 뜻밖인 점은 문장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 길게 쓴다는 점이다. 고치는 노력 없이 길게 쓰기에 잘못 쓴다고 해도 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글을 잘 이해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문장이 조금만 이상하거나 산만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바로 포기하며 비문(非文)이라고 규정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기야 문장을 쉽고 간결하고 새롭게 쓰면 좋겠지만 누구에게나 그럴 필요는 없고 그렇게 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나는 물정(物情) 모르고 사는 빡빡한 사람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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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인문학 - 생명의 근원에서 권력의 상징이 되기까지, 역사와 문학, 신화와 과학으로 살펴보는 물 이야기
베로니카 스트랭 지음, 하윤숙 옮김 / 반니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베로니카 스트랭의 ‘물의 인문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지식의 숲을 종횡무진 엮어내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로 만든 인상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 내 관심을 더 끈 것은 인문학보다 자연과학적 지식이었다. 지질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가 “우리는 발밑에 있는 흙보다 머리 천체의 움직임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말을 했지만 그간 나는 지질학이나 토양학보다 천문학이나 물리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같은 차원에서 그간 나는 물(베로니카 스트랭이 다룬 대상)도 인문학에 초점을 두고 보아왔다. 그런데 책에서 내 눈길을 끈 부분은 지하수와 화석수 이야기다. 물은 지표 아래 다양한 층에 저장되어 있는데 토양의 틈과 작은 암석의 빈 공간에 물이 가득 차면 이 지점을 지하수면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빙하가 확대되고 후퇴하는 과정을 통해 쌓인 화석수가 지하수의 대부분을 이룬다고 한다.(39 페이지)

 

대부분의 비는 육지보다 넓은 바다에 다시 내리므로 지하수의 과잉 취수는 해수면 상승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 모든 생물군은 공기, 토양, 세포들을 거쳐 가는 물의 이동에 의존한다. 모든 것은 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식물군과 동물군은 물로 연결된 초바다(超바다; hypersea)를 구성한다. 내가 이 책에서 배운 학문 중 하나가 수문학(水文學; hydrology)이다. 여기서 다시 거론하게 되는 것이 앞에서 이미 언급한 천문학이다.

 

그렇다면 지문학(地文學)도 있지 않을까? 검색해보니 지문학이란 지구과학 영역까지 포괄하던 자연지리학을 이르던 말이다.(천문학, 지문학, 수문학, 그리고 인문학..) 물은 생명 유지 수단일뿐 아니라 침략적인 것이기도 하고 부적절한 물질을 운반하는 주된 매체이기도 하다.(49, 50 페이지) 물의 순환적 이동 과정에서는 창조성과 엔트로피가 미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물은 지식과 같은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물이 천천히 흐르고, 스며들고, 퍼지고, 넘쳐 흐르고, 뒤덮고, 심지어는 세뇌하기도 하는 것처럼 지식은 지혜의 샘에서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순진무구한 상태를 오염시키거나 타락시키며 독을 퍼뜨리거나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간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물의 수많은 이동을 관찰하고 이에 관념을 부여할 뿐 아니라 현상학적으로 물의 이동을 경험하기도 한다.(66 페이지)

 

강은 시간과 공간을 따라 변해가는 생명의 이동을 완벽한 비유로 표현한다. 훼손되지 않은 산비탈에서 샘솟아 나온 강물은 세차게 휘몰아치는 에너지와 폭포와 급류의 형태를 띠면서 풍경에 활기찬 작용을 가한다.(78 페이지) 본격적인 관개(灌漑) 시작의 가장 큰 이유는 벼농사 때문이다. ”관개 기술이 급성장하면서 인간 사회의 지도자들은 점차 신격화되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왕의 선정을 관개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은 사막을 비옥하게 만드는 물 공급자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물의 창조적 힘이 현실에 나타난 화신으로 여겨졌다.“(113 페이지)

 

초기 유대교 - 기독교와 아랍의 문헌에는 다양한 신과 예언자들이 밀려나고 어디에나 있는 전능한 존재, 결국 한 명뿐인 남성 존재만이 그 자리에 남는 이행 과정이 나와 있다. 두 종교적 전통에 나오는 고대의 홍수 이야기에는 물의 혼돈과 무질서 개념은 계속 유지되지만 전능한 신의 관점에서 이를 재구성함으로써 벌을 내린 다음 용서해주는 힘을 표현하고 있다.(117 페이지)

 

더욱 규모가 크고 강대해진 사회에서 나타난 여성적인 것(물질세계)과 남성적인 것(문화)이라는 양분화된 인식에서는 혼돈의 물(다스릴 수 없는 물)과 좋은 물이라는 이원적 인식이 나타났고 세심하게 물이 공급되고 잘 관리된 농경지의 모습이 점차 일신교적 종교 문헌에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117, 118 페이지) 자연, 그 중에서도 특히 물을 여성으로 개념화하는 과정은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체제에서 그리고 물질세계, 특히 물과의 관계에서 남성의 권위를 선언하는 것과 나란히 진행되었다.

 

그 결과 관개 사업은 인간 지배의 새로운 우주론적 견해를 낳았고 더욱 힘을 얻었다.(121 페이지) 치수 사업은 인류가 지구상의 다른 종과 맺는 관계를 가장 많이 변화시켰으며 인간의 작용 가운데 으뜸이라고 할 만한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122, 123 페이지) 도시는 반드시 물 공급이 원활한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 런던의 경우 하수구로 알려진 '위를 덮지 않고 터놓은 수로'에 가정용 요강의 내용물, 쓰레기, 재뿐만 아니라 가축 분뇨까지 버렸다.

 

하천 옆에 사는 사람들은 분뇨가 곧바로 하천으로 떨어지도록 화장실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물 대신 양주, 에일, 맥주, 포도주 등을 마셨다.(152, 153 페이지) 13세기에 국왕은 대형 수도관을 건설한 이후 멀리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수많은 수로를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인이 심은 원소의 과학적 분석이라는 씨앗이 18세기에 결실을 맺었다. 이 열매를 바탕으로 다음 세기 동안 물질적인 것으로 형성된 사고방식은 세계를 공학으로 설계하는 보다 전문적 능력과 결합되어 근본적으로 물과 생태계를 관리 대상으로 보는 관계를 낳았다.(163 페이지)

 

물은 늘 사색과 감정 이입의 대상이 되어 왔고 수자원 기술의 발달은 그 미학적 특성을 찬미하는 예술적 표현을 수반했다.(174 페이지) 저자는 인간의 개입 가운데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아마도 댐만한 것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생명의 물질이 흐르지 못하도록 막아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물길을 내는 것보다 명확하게 지배를 표현할 수 있겠는가, 란 말이다.(189 페이지) 저자는 인간이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순환하며 영양분을 운반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며 다른 물질을 흡수하고 온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유동적 능력을 지니는 물(민물과 바닷물)에 가하는 갖가지 압박을 우려한다.(202 페이지)

 

물의 흐름을 바꾸어 인간 활동에 전용한 결과 수질에 커다란 문제가 생겨 세계의 가난한 지역에서 매일 1만명에서 1만 4천명의 사람이 수인성 질병으로 죽는다. 플라스틱 생수병 하나를 만드는 데 그 용량의 여섯 배나 되는 물이 들어간다.(211, 212 페이지) 물이 다른 물질을 분해하고 운반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모든 식물군과 동물군이 오염의 폐해를 입는다는 의미다. 저자는 대다수 도시는 재활용 물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전에 수많은 사람의 몸을 거쳐온 물을 마신다는 것은 최대한 좋게 생각해서,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한다.(222 페이지)

 

이 부분에서 NASA 우주선의 물 재활용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우주선 안의 모든 동물 - 인간과 쥐 등 - 에게서 나온 거의 모든 물 입자를 이용한다. NASA의 정수 처리 전문가 레인 카터는 역겹게 들릴지는 몰라도 우주정거장의 정수기에서 나가는 물은 우리가 지구에서 마시는 물보다 훨씬 깨끗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51 페이지) 우리가 마시는 물 성분의 거의 100%가 공룡의 몸을 통과한 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를 티라노사우르스수(水)라고 한다.

 

10여년전 영국 지리학자 앤서니 앨런이 음식과 가공물질에 얼마나 많은 물이 들어가는지 계산하는 법을 만들어냈다. 커피 한 잔에 대략 140리터의 가상의 물(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식품이나 제품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 사용되는 물)이 필요하고 500그램의 치즈에는 2,500리터, 1kg의 쌀에는 3,400리터, 청바지 한 벌에는 5,400리터, 자동차 한 대에는 50,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234 페이지)

 

물발자국이라는 개념도 있다. 생산과정에 사용되는 물이 남기는 공간적 자리를 의미한다. 청색 물발자국은 지역 환경에서 얼마나 많은 물을 가져다 썼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고 회색 물발자국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염 폐수를 만들어냈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저자는 우리는 사회적, 물질적 행위들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업과 환경을 경쟁적 시장에 맡겨두는 것을 반대한다.

 

데릭 복이 이런 말을 했다. ”교육이 비싸다고 생각된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삶을 한 번 살아보라. 지속가능성을 이룩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면 어디 한 번 그것을 포기하고 살아보라.” 저자는 많은 대항운동은 사회적, 생태학적 정의를 향한 열정 그리고 감각과 영혼까지 아우르며 물과 관계를 맺으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 사이를 흐르며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물을 보며 각자 생각하는 바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너무도 마구 다루어졌다는 점이다. 저자가 강조한 초(超)바다란 개념을 공부하는 것이 어떨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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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의 경로당 수가 107개라고 한다. 관계자께 들은 이야기다. 오래전 연천읍 통현리에서 일로당(逸老堂)이라는 현판을 본 기억이 나 ”요즘은 경로당이라 하지 않고 일로당이라 하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렇지 않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검색해보니 연천읍 통현리 일로당(逸老堂)이란 글이 떴다.

 

문제는 한 군데서 본 일로당이란 명칭을 근거로 그런 질문을 했다는 점이다. 더 찾아보니 장자(莊子)가 하늘이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일로란 편안한 노인이란 의미다.

 

전북 고창군에 일로당(逸老堂)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일로당(逸老堂)이라는 호를 쓴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돈녕부사를 지낸 양관(梁灌; 1437~1507)이란 사람이다. 궁금한 것은 이름에 물댈 관이란 글자를 쓴 이유다.

 

요즘 읽고 있는 베로니카 스트랭의 ‘물의 인문학’에 관개(灌漑) 이야기가 나온다. ”관개 기술이 급성장하면서 인간 사회의 지도자들은 점차 신격화되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왕의 선정을 관개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은 사막을 비옥하게 만드는 물 공급자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물의 창조적 힘이 현실에 나타난 화신으로 여겨졌다.“(113 페이지)

 

특이하게도 관(灌)이 내림굿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나는 '벚꽃과 그리스도'란 책에 실린 ‘엔도 슈사쿠와 물의 성사(聖事)‘를 읽다가 장마비를 의미하는 매우梅雨와 안개비를 의미하는 무우霧雨를 알았다.(매화 매와 비 우를 쓰는 글자가 장마비라니..아닌 게 아니라 매; 梅에 장마라는 의미가 있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엔도의 작품에서 인간은 물을 통해 생과 죽음의 영역을 왕래한다. 또 물을 통해 인간은 다른 종교와도 만나게 된다. 물은 신의 은총이 인간에게 부어지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45 페이지) 아, 관불식(灌佛式)이 있지. 이제 이런 관념적 상상은 그만 접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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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 - 세계 1위 미래학자가 내다본 로봇과 일자리 전쟁
제이슨 솅커 지음, 유수진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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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 금융 예측가이자 미래학자인 제이슨 셍커의 책이다. 자동화와 로봇 시대를 전망한 이 책에서 저자는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로보칼립소 혹은 로보토피아란 말이 있다. 로봇으로 인해 맞이하는 파멸적 상황 혹은 로봇으로 인해 맞이하는 유토피아적 상황을 말한다.

 

물론 저자는 차분히 분석한다. 저자는 인간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은 투자대비수익률에서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을 것이고 창출되는 일자리도 있을 것이다. 낮은 교육 수준과 기술이 필요한 일은 사라질 것이고 더 많은 교육과 기술이 필요한 직업과, 많은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직업의 전망은 밝다.

 

고용주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하고 자동화는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직업의 미래에 커다란 변화가 있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 미래가 무엇처럼 보일지, 어떻게 노동시장을 변화시킬지가 로보칼립스와 로보토피아 논쟁의 핵심이다.(62 페이지)

 

로봇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인간과의 진정한 접촉을 경험하는 일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로봇이 별다른 역할을 하기 어렵다. 로보칼립스논자들은 1) 사람들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고, 2) 모든 직업이 사라질 것이고, 3)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상실할 것이고, 4) 로봇이 인류를 집어삼킬 것이라 말한다.

 

중요한 점은 로봇 시대에도 고부가가치 일은 전망이 좋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운송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한다. 로보토피아논자들은 1) 자동화 시대가 오면 사람들은 더 많은 이동과 시간의 자유를 누릴 것이고, 2) 공급망이 변하고 최종 사용자와 소비자에게 창고가 더 가까워짐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고, 3) 상품과 서비스의 선택이 증가할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동화를 부추기는 사회보장제도란 말을 한다. 저자는 사회보장제도에 개혁이 없다면 점점 더 불어나는 정부 부채와 변화하는 인구 구조로 인해 자동화가 가속되고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 말한다. 일부 사상가들은 로봇에 급여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저자는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는 미국 경제에 자동화의 과잉이라는 중대 위험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키오스크(분식점, 패스트푸드, 푸드코트에서 고객이 직접 주문, 결제하는 시스템)은 저자는 보편적 기본소득의 맹점을 논한다. 저자는 재원 마련은 차치하더라도 1) 인플레이션의 심화, 2) 세금 인상, 3)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발전 저해, 4) 사회분열 등의 문제를 낳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보편적 기본소득의 길을 한번 따라가기 시작하면 그 어떤 금액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많은 기업 지도자들이 로봇세를 지지한다. 전체 8장 중 7장에서 저자는 답은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소득이 더 많다.

 

8장은 로봇 시대에도 끄덕없는 일자리란 장이다. 저자는 이런 제안을 한다. 1) 자동화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직업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라, 2) 가치 있는 기술을 배워라, 3) 산업, 기업 혹은 지역에 변화를 줌으로써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위치에 머무르라. 등이다.

 

눈에 띄는 말은 “기술을 내 편으로 만들어라.”란 말이다. 사람들은 일에서 삶의 목적을 찾는다고 한다. 저자는 앞을 내다보고 새로운 기술을 지렛대 삼아 경력을 발전시키고 코로나 19의 도전을 넘어 향후 회복의 긍정적 기회를 찾기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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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철학자 ’노자(老子)‘의 말이 소환되는 경우는 아주 제한적이다. 세상에서 물은 가장 상위의 선(善)의 표본이란 의미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할 때 정도다. 일정 정도 의미가 있지만 상선약수만을 이야기한다면 클리세를 반복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더구나 지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상선약수를 언급하는 데 그친다면 너무도 상투적이다.

 

의문이라도 드러내 함께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두보(杜甫)의 ’강한(江漢)‘이란 시가 있다. 강한이란 장강(長江)의 강과 한수(漢水)의 한을 합친 말이다. 우리의 한강과 아무 관련이 없지만 왜 한강이 아니라 강한인가, 란 궁금증에 해결책으로 시를 읽을 수도 있으리라.

 

이 시에 “양자강과 한수, 향수에 젖은 나그네, 하늘과 땅, 한 쓸모없는 선비”라는 구절이 있다. 싯다르타가 쉼 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며 깨닫는 과정을 그린 헷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연상하게 한다. 두보는 회한 또는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물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 그린 것이 아닐지?

 

주로 재인폭포를 드나들고 가끔 베개용암과 백의리층에 들러 물을 바라볼뿐인 나 역시 새 정서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잡아 리얼하게 표현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폭포 인근에 댐이 생겨 마을 입구까지만 운행하는 버스에서 내려 폭포까지 20여분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을 만난다. 내가 하는 생각, 떠오르는 생각 등...

 

하지만 폭포를 바라보며 갖는 생각이나 느낌에 비하면 볼품 없다. 이태호 교수의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같은 책을 비롯 조선의 학인들이 감행한 여행을 다룬 책을 보려고 한다. 이태호 교수의 책에는 박연포도(박연폭포 그림)를 겸재 정선의 실경(實景) 표현 방식으로 정의한 글이 있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재인폭포 이해를 위해 치르는 의식 같은 것이다.

 

5월에 세 차례(13, 20, 22일) ’연강임술첩 - 그 속에서 연천 풍경을 노닐다’ 공부가 예정되어 있다. 겸재가,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재인폭포에 대해 다루지는 않았지만 좋은 기회다. 연천은 어떻든 용암이 만든 검은 돌의 고장이다.

 

’제주 과학 탐험‘이란 책에 “용암이 식는 이유는 공기와 접촉했기 때문이다. 만약 용암이 물과 만났다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베개용암을 만들었을 것“(218 페이지)이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주상절리와 베개용암의 차이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연천 재인폭포 근처에 비가 와야 물이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비와야 또는 비온 뒤 폭포가 있다. 이 부분에서 제주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연천이 내륙의 제주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주에 비가 오고 나면 만날 수 있는 엉또 폭포가 있다. 엉은 절벽이나 벼랑을 의미하고 또는 입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엉은 엉알 해안이라는 말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엉알의 알은 아래라는 의미다. 마이클 브라이트는 ’손 안의 지구과학‘에서 폭포를 침식에 잘 견디는 암벽에서 물이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라 정의했다.(105 페이지) 이런 정의를 눈사람 만들 듯 크게 해 의미 있는 생각으로 이어가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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