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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글쓰기를 잘하려면 기승전결을 버려라 - 실험보고서에서 「네이처」논문까지
강호정 지음 / 이음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과학 글쓰기에 대한 바른 생각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환경공학자 강호정 교수다. 과학 글쓰기는 글의 형식이나 전개 방식에 있어서 다른 글쓰기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인문학적 글쓰기 방식으로 과학 글쓰기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과학자, 하면 실험하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지만 과학자가 가장 많이 하고 있고 중요한 것은 글쓰기다.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항시적으로 과학 글쓰기에 대한 요구와 압박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20 페이지) 글을 씀으로써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개별 사실에서 개념을 도출하거나 추상화하는 작업 등 과학에서 요구하는 일반적인 활동들이 가능해진다. “과학 글쓰기는 문학 작품과 달리 창의적인 문체와 같은 필력에 의존하는 글이 아니”라 “ 정해진 원칙과 규칙에 맞추어 쓰는 글이다.”(24 페이지)
저자는 과학 글쓰기의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1) 누가 읽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2) 글의 내용은 전문성을 살리되 읽는 이가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 3) 과학적 양식에 맞춰 글을 써야 한다. 4)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의 글을 써야 한다. 5) 과학 글쓰기라 하더라도 수사학적인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1)은 일반 독자들도 읽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2)는 물론 무조건 글의 모든 내용을 쉬운 말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 전문성을 살리되 읽는 이가 이해하기 쉽게 쓰려면 a) 문장 구조를 단순하게 유지하고, b) 논리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구조가 균형이 잡히도록 해야 하고 c) 용어 사용은 명확하고 통일성 있게 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
3)은 IMRAD(Introduction, Materials and method, And Discussion)을 의미한다. 과학적 양식에 익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관련 분야의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이다. 4)는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글이라는 의미다. 그러려면 글의 내용이 독창적, 창의적이며 이전에 보고된 바 없는 새로운 정보를 포함해야 하고, 글 속에 풍부한 정보가 들어 있어야 하고, 글의 각 구성 요소들이 엄밀한 논리적 연결성을 가져야 하고, 다루는 내용의 세세한 부분까지 근거가 명확하고 오류가 없어야 한다.
5)는 문장 자체도 수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통일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부정적 평가를 받는 글의 대부분은 통일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응집성이 있어야 한다. 응집성은 글의 덩어리들이 논리적, 시간적, 공간적으로 적절한 순서를 이루고 결합되어야 확보될 수 있다. 때로는 관계사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강조는 저자의 중심적 논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보이는 것이다. 글의 서두나 마지막에 위치시키고 분량도 상대적으로 길게 써야 한다. 정의(定義)는 사전적 의미, 문장에서의 의미, 확장된 의미, 역사적으로 변천해온 의미들을 제시하는 것도 포함된다. 과학 글쓰기에서 기승전결 구조는 잘못이다.
전(轉)은 기(起)나 승(承)에서 언급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이 갑자기 나타남으로써 독자의 흥미와 감동을 일으키는 부분이지만 과학 글쓰기에서는 글 전체에서 동일한 메커니즘과 논리적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에 맞지 않는다. 기승전결 구조는 결론이나 핵심 부분을 의도적으로 글의 뒤쪽에 배치하는 글 구조다. 과학 글쓰기에 반전이나 극적 결말은 부적절하다는 의미다.
과학 글쓰기에서는 저자가 논리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언급이 서론부터 시작하여 방법론, 결과의 의미 해석 등이 논문의 부분 부분에 적절하게 나타나야 한다. 서론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가 결과나 토의 부분에서 언급되면 안 되고 반대로 서론에서 언급한 문제에 대해서는 결과나 토의 부분에서 자세하게 논증해야 한다.
과학 글쓰기가 제대로 안 되는 대표적 이유는 시간에 쫓겨 글을 쓰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충분한 시간을 갖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찍 시작하는 것이다.(61 페이지) 미국 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이 시험지 답안지에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을 넓은 의미의 표절로 보거나 좋은 연구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도 획득된 정보를 자신의 머리에서 가공하여 새로운 정보로 재생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70 페이지)
한 번 발표한 논문을 다른 언어로 다시 발표하는 경우도 표절이다. 기존 논문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보충 자료를 추가하여 논문을 작성하는 경우에는 표절로 간주하지 않는다. 자신이 작성한 회색 문헌(grey literature)이라 불리는 준학술적이고 비공식적 성격의 글을 학술지에 다시 투고하는 것은 표절이 아니다. 표절 시비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용 부분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학문의 출발점은 선행연구들에서 제시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평가하고 반추하여 기존 연구에서 검토되지 않은 질문이나 부족한 연구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다.(77 페이지) 저작권은 글이나 창작물에 대한 상업적 소유권과 관련된 것이다. 저자권은 누가 저자에 참여하고 복수 저자의 경우 순서는 어떻게 정할 것이며 누가 이것을 결정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다.
자연과학 분야의 학문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어서 전 과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초기에 마련한 가설에 따라 실험디자인이 결정되며 그 실험디자인과 가설에 따라 연구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실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한 실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이론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86 페이지)
이런 연구자의 주관적 사고의 개입이 과학 발전에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거나 순수하지 않은 의도와 연결될 때는 자료 조작이라는 형태로 변질하기도 한다. 자료 조작은 크게 위조와 변조로 나뉜다. 위조는 없는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변조는 얻어진 결과를 임의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변조는 윤리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Introduction은 서론, Materials and method는 재료와 방법, Discussion은 토의다. References는 참고문헌이다. 서론에서는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고 배경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자신의 논문과 연관되어 있는 배경 정보를 얼마나 밝힐 것인가를 한정지어야 한다. 본 연구와 관련된 선행연구에 대해 소개한다. 서론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연구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론은 무엇인지 간략하게 언급한다.
토의 부분은 얻어진 결과를 해석 및 분석하고 그것에서 파생하는 여러 가지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창의성과 논리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초록(抄錄; abstract)과 결론(結論; conclusion)에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균형 있게 파악해야 한다. 학위논문은.. 정해진 시간 안에 써야 한다. 저자는 단 한 명이다. 학술지 논문이나 실험 보고서 등에 비해 양이 많고 내용이 자세한 편이다. 제한된 독자에게만 이용된다. 학위 논문은 일반적으로 매우 긴 글이기에 몇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1) 각 부문마다 제목, 부제목 등을 적절하게 붙여서 논문의 논리적 구성, 내용의 중요도 순서 등을 표현해야 한다. 2) 어떤 양식이든 각 장의 마지막에 독자의 이해를 돕는 요약을 첨부한다. 3) 몇 가지 간단한 편집디자인 효과를 주면 좋다. 각 페이지 옆에는 꼬리말이나 머리말 형식으로 각 장에 대한 제목을 달고 쪽 번호는 오른쪽 상부에 둔다. 좋은 연구 계획서는 잘 조직되어서 읽는 사람이 쉽게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내세우는 바를 잘 강조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은 부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논의 전개는 깔때기를 통과하듯, 즉 개괄적인 연구 배경으로부터 점점 구체화해 다루고자 하는 핵심 내용으로 좁혀간다. 연구계획서의 주요 내용에 논지의 초점을 맞추어 그것에 대해 자세히 논의한다. 연구 제목과 내용은 구체적이면서 학문적 조류(潮流)에 부응하는 연구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선행연구와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것, 적정한 수의 가설과 목적을 제시하는 것, 다년간에 걸쳐 진행할 연구과제의 경우 그 필요성에 대해 설득력 있게 자세히 언급하는 것, 공동연구의 경우 각 연구자의 임무와 책임을 설정해 명시화해야 한다. 과학자가 대중을 위해 쓰는 글은 과학자들간의 의사소통과는 다른 글쓰기 방법이 필요하다. 저자는 publish or perish 대신 publish and prosper이라는 말을 새롭게 제시한다.
미국 대학 교수들이 학생들이 시험지 답안지에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을 넓은 의미의 표절로 보거나 좋은 연구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보고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지금껏 서평을 거의 요약, 정리 차원에서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옮겼다. 하지만 요약은 짧게 하고 내 문제의식으로 정리하고 변형해 풀어쓰고 내 생각을 많이 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