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건축 - 건축으로 사람과 삶을 보다
최동규 지음 / 넥서스BOOKS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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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건축’은 새문안교회를 설계한 서인건축 대표 최동규 건축사가 설계한 21 개의 건축물에 대한 설명서이다.(서인이라는 이름이 어떤 한자를 쓰는지 궁금하다. 한자어로 이름을 정해놓고 상세 내용은 전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좋은 건물이란 용(用), 체(體), 미(美)를 충족시키는 건축, 한 번쯤 들어가보고 싶게 하는 건축이라 설명한다. 용, 체, 미를 충족시키는 건물이란 필요(用)에 맞도록 몸체(體)를 아름답게(美) 구현한 건물이다. 저자는 실용성과 미학의 차이를 크게 두지 않는다고 한다. 실용성은 단순한 욕심만이 아니라 주어진 대지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몸짓을 표현하는 중요한 윤리의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감옥에서 지내는 것과 우리가 각자 자신의 집에서 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문 하나가 철창처럼 현대인을 구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저자의 프로젝트는 사람들을 예의 그 구속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향으로 수렴되리라.

 

저자는 이렇게 영화로부터 단서를 얻는 건축사다. 새문안교회는 스토리가 제법 알차다. 7개의 회사가 응모한 현상 설계의 전문가 심사에서 최동규씨는 2등으로 수상자가 되지 못했지만 1등과 2등의 모형을 가져다 놓고 신도들의 선호도 투표와 장로들의 투표를 실시한 결과 최종 案으로 선정되었다.

 

당회장 목사께서 "나는 전문가들이 1등으로 뽑은 안으로 짓고 싶지 않아요. 2등 案은 내용은 모자랄 수 있어도 보충하면 좋은 설계가 될 것 같습니다."란 폭탄선언(?)을 한 것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 건축물은 준공 당해인 2019년 가을 스페인 구겐하임 빌바오에서 열린 아키텍처 마스터스 프라이즈에서 수상작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당시 1등을 한 건축물이 그대로 최종 안으로 결정되어 아키텍처 마스터스 프라이즈에 나갔다면 어떤 결과를 받았을까? 궁금하다.

 

저자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설계한다고 한다. 가령 의정부 영아원 및 경기북부 아동일시보호소의 경우 처음으로 아기를 발견한 사람이 아기를 안고 올 때 비가 온다면? 그 아이의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진다면? 등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상세한 설명을 시도한다. 상세함은 층(層)을 위로 높이 포개어 짓는 건물에서 같은 높이를 이루는 부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설명하려면 까다로운 것이 층이라는 단어다. 아니 어디 층뿐이겠는가?

 

알바 알토를 사사했다는 저자는 실력을 갖추려면 체면보다 실력자의 작품을 모방하고 공부하고 습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강남구 소망교회는 저자가 알바 알토를 사사한 뒤 처음으로 구체화한 건축물이다.

 

저자에 의하면 소망교회는 자신의 스승이자 두 번째 사랑인 알바 알토에 대한 오마주가 되기를 원하고 그의 건축물 특히 볼프스부르크교회를 각도에서부터 상징까지 모방, 인용한 작품이다.(저자가 30대 초에 설립한 서인건축은 고전을 거듭하다가 아내의 권유로 참여하게 된 서울부부합창단 모임에서 소망교회 집사를 금** 사장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건축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소비되는 소비재의 핵이다.(100 페이지) 저자는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의 신이 되기 위한 노력이 건축을 발전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건축은 한 나라의 정신사적 가치를 상징하기에 건축가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알바 알토로부터 그만 빠져나오지?‘ 저자가 한 지인에게서 들었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저자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게 되길 바란다고 답했다. 15년이란 세월을 알토를 사사한 저자는 도봉구 방학동의 녹산교회를 설계하면서 알로토부터 벗어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녹산교회 건축 과정을 가장 강렬하게 알토에게서 벗어나게 된 시점이라고 느끼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들어 올리고 알에서 부화한 듯한 내적 감흥을 느꼈기 때문이라 설명한 저자는 알 속의 병아리와 밖의 어미 닭이 동시에 알껍데기를 깨는 것을 의미하는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을 덧붙인다. 저자는 알바 알토를 자신의 스티그마(흔적)라 말한다.

 

신촌성결교회편에서는 잇스토리란 말이 소개된다. 역사를 의미하는 히스토리에서 파생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과 유산(遺産)을 강조한 신조어다. 평창동 차경재(借景齋)는 개인 집이다.(경치를 빌려온 건물이라는 의미의 집인데 본문에는 차경제라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빛이 들어찬 공간이 가장 바람직한 예배당이라 말한다.(220 페이지) 모새골성서연구소는 사방에서 빛이 유입되는 아름답고 따뜻한 공간이다. 저자는 건축물은 삭막한 도심에 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거대한 꽃 한송이라 말한다.(233 페이지)

 

저자는 서울의 야경은 그 어떤 도시의 그것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익숙함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김수근 건축가로부터도 배웠다. 샘터 사옥, 아르코예술극장, 아르코미술관 등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대학로의 건축물들을 열거하며 저자는 김수근 건축가는 우리나라 건축에서 벽돌의 시대를 열고 건축가로서 문화와 예술의 영역과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 말한다.(246 페이지)

 

저자에게 김수근 건축가는 직장(공간社) 내 스승이다. 김수근 건축가가 저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상상력, 관찰력, 판단력은 건축가의 필수 소양이다.“ 저자는 상상은 관찰과 사유를 통해 성장하고 판단 역시 관찰을 통해 쌓아둔 자료를 근거로 삼기에 위의 세 항목은 하나인바 결국 종합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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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 네트워크 경제 입문자를 위한 가장 친절한 안내서
강성호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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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인쇄술에 이어 세 번째 정보 혁명으로 네트워크 경제를 제시한 책이다. 제목은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이다. 플랫폼이란 원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를 의미했다. 오늘날 플랫폼을 대표하는 것은 인터넷 공간이다. 만남은 연결을 의미한다. 플랫폼은 소비자와 판매자를 매개한다. 메신저, 뉴스, 상품, 콘텐츠, 숙박, 신용카드, 결혼 상대 등이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을 즐겨 했다. 어떤 일에는 그만한 기회비용 즉 대가(代價)가 따른다는 말이다. 양면시장이란 말이 있다. 남성은 낮은 가입비를, 여성은 높은 가입비를 부담하는 결혼정보회사처럼 비용을 지불하는 쪽과 혜택을 받는 쪽이 다른(있는) 시장을 말한다.

 

네트워크 경제를 이해하는 강력한 프레임을 제공하는 양면시장 이론은 플랫폼 서비스의 이용료가 공짜인 이유를 설명한다. 소비자들이 카카오에 아무런 비용을 내지 않는 것은 광고주들이 카카오의 운영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도 카카오에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광고 노출이라는 비금전적 비용이다.

 

광고가 싫다고 해서 다른 메신저를 사용할 수도 없다. 이미 카카오가 메신저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경제는 ’더 많은 노동시간‘ = ’더 많은 소득’이라는 공식을 붕괴시키고 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놀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스포츠 스타, 인기 학원 강사, 연예인)은 최소의 노동력만 투입할 뿐 소득은 TV나 인터넷 등의 네트워크가 창출한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공유할 수 있는 재화, 서비스는 상품에서부터 노동력, 컴퓨팅 파워까지 무궁무진하다. 미래에는 인공지능 서비스, 의사결정 지원 서비스, 사랑과 우정 등의 감정도 공유될 수 있다. 경제 권력이 정치 권력을 압도하는 기업사회가 도래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경제 권력은 자본파업의 가능성을 통해 힘을 휘두른다.

 

자본 파업은 자본가가 공장을 짓지 않는 것, 해외로의 공장 이전(오프쇼어링) 등을 말한다. 자본 파업은 정부가 가장 두려워 하는 상황이다. 법과 제도도 사람들에게 적용되면 현상을 유지하려는 관성(제도의 경로의존성)을 지닌다. 플랫폼 기업들은 너무도 손쉽게 개인정보를 얻고 있다. 대부분 별생각 없이 플랫폼 기업에 개인정보를 퍼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개인정보를 대하는 태도도 이중적이다. 대다수 사람은 개인정보 보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개인정보를 너무도 쉽게 제공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를 프라이버시 역설이라 한다. 연결 그 자체가 권력이다. 연결 그 자체가 권력으로 작용한 사례의 대표는 우리나라의 촛불집회다. 촛불집회의 원동력은 연결 그 자체다.

 

리더도, 별도의 조직도,위계질서도 없이 모인 그들은 누구의 강요나 돈에 의해 그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는 1대 9대 90의 법칙이 있다. 90퍼센트는 단순 관망자이고 9퍼센트는 재전송이나 댓글로 확산에 기여하고 1퍼센트만이 콘텐츠를 창출한다.

 

수많은 사람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인터넷상의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소비, 확산할 뿐 사실을 검증하지 않는다. 따라서 뉴파워(네트워크에 연결된 대중)는 항상 선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SNS는 동질적인 정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규합하는 일종의 디지털 정당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플랫폼 경제에서 독점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신용카드업은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신용카드사는 소비자와 가맹점을 이어주는 전형적인 양면시장 플랫폼 기업이다. 사람들이 다양한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는 현상을 멀티호밍이라 한다. 여러 채의 집을 두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의미다.

 

플랫폼 시대에는 경영 전략도 변해야 한다. 플랫폼이 개인의 성향을 분석하고 취향에 맞춘 콘텐츠를 우선 노출시키는 것을 큐레이션이라 한다. 큐레이션은 본래 미술관에서 기획자가 우수한 작품을 뽑아 전시하는 행위를 의미했지만 이제는 플랫폼 기업이 소비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큐레이션은 오래전부터 기업의 중요 활동 중 하나다. 책을 보기 좋게 편집하는 일, 이마트가 상품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 일 등은 판촉수단이지만 더 좋은 상품을 전달하기 위한 큐레이션 작업의 일종이다. 개인도 큐레이션 작업을 한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것을 골라 메신저 프로필로 올리는 것이 그렇다.

 

영어 단어 talent는 무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talanton에서 유래했다. 탈란톤은 성경에서 달란트로 번역된다. 달란트는 그 무게에 해당하는 동전의 가치를 가리키면서 자연스레 화폐단위가 되었다. 돈과 재능은 어원이 같다. 돈이 곧 재능이다. 재능이 있어도 충분한 자본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기회를 잡기 어렵다.(성공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잡기 어렵다는 의미)

 

저자는 카카오도 금융 네트워크가 될 수 있을까란 말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은행은 판매 플랫폼이 아니라 서비스 플랫이 되는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 마지막 파트인 네트워크가 만드는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는 결론격의 장이고 가장 재미 있는 장이다.

 

플랫폼 기업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금산분리가 있듯 플랫폼과 산업을 분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인공지능에 의한 외부 감사제도도 있다. 데이터 공룡들의 독식이 문제다. 노동이 사라지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할까?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아니 인공 지능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J.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디즈니의 ‘겨울 왕국’,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 등은 과거에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작품들로 기존 데이터를 조합하고 응용하는 것으로는 창작하기 어렵다. 2013년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에는 잔에 물이 차면 넘치는 부분이 가난한 이들의 혜택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잔이 차기도 전에 기업들이 가득 찬 잔을 더 키우는 마술을 부린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낙수(落水) 효과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뒷 부분에서 저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서울 도심의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것은 좋은 교육을 받고 나름으로 노력한 덕분이지만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는 가장 치명적인 우리나라의 아킬레스건이다.

 

공유가 키워드다. 토지 공개념도 그렇고 카피레프트 운동도 그렇다. 모든 국민이 플랫폼을 조금씩 공유한다면 과거의 생산수단을 소유한 기득권자들의 혁신에 대한 반감은 감소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사유(私有)와 공유(共有)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승자독식이 아닌 보통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다.

 

기술이 인간을 위해 일하고, 돈보다 사람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제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네트워크가 촉발하는 변화가 두렵다고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다. 저자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책이 읽을 만한 책일 수도 있고 아무런 영감도 주지 않는 범서(凡書)일 수 있겠지만 자신의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준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꽤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었다. 상술할 수 없지만 저자의 몇몇 개념과 아이디어로부터 다른 분야에 응용할 단서를 얻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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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의 문장 - 신유한 평전 18세기 개인의 발견 1
하지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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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신유한(申維翰; 1681 - 1752)은 낯선 이름이었다. 그가 임술년 연강(연천) 뱃놀이의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1082년 소동파(蘇東坡)의 적벽(赤壁) 뱃놀이를 모방한 홍경보, 정선, 신유한의 뱃놀이는 1742년 10월 기망(旣望)에 있었다.(왜 소동파가 즐긴 7월이 아닌 10월이었을까? 홍수 때문이었을까?)

 

홍경보는 경기 관찰사였고 양천 현감이었던 겸재 정선은 그림의 대가였다. 시의 대가이자 ‘해유록’, ‘청천집’ 등으로 유명한 저자였던 청천(靑泉) 신유한은 당시 연천 현감이었다.(그가 태어난 곳은 경남 밀양이다.) 그의 호 청천은 어머니가 꾼 태몽인 푸른 학의 청(靑)과,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으나 뜻 밖으로 말랐다가 일주일만에 다시 솟아난 샘의 천(泉)을 합한 말이다.

 

달항아리 출판사에서 나온 18세기 개인의 발견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하지영의 ‘천하 제일의 문장’은 신유한의 삶과 문장,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조명한 신유한 평전이다. 그는 한미(寒微)한 가문 출신이자 서얼(庶孼)이었다.(21 페이지) 그가 연천 현감으로 제수(除授; 추천에 의하지 않고 임금이 직접 관리를 임명함)된 것은 1739년이다. 1년전인 1738년 연천 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응하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은 그는 임술 뱃놀이를 치른 1742년 이후 1743년까지 연천 현감직을 수행했다.

 

당시는 연천에 큰 물이 나 많은 사람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88 페이지) 신유한은 도학(道學)의 전통이 강한 영남 지역에서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어릴 적부터 굴원(屈原)의 ‘이소(離巢)’를 읽기 시작했다. 그는 후에 자신보다 ‘이소’를 좋아하는 자도, 자신보다 ‘이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자도 없다고 자부했다.(314 페이지)

 

그는 증광(增廣) 진사시에 2등 18위로 합격했으나 끝내 만족할 만한 벼슬을 하지는 못했다. 신유한은 서얼허통이 이루어진 시대에 태어나 그 시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갈 수 있는 자리에는 한계가 있었다.(61 페이지) 증광시는 조선 시대 때 나라에 경사가 있을 경우 기념으로 보게 하던 과거를 말한다.

 

신유한은 문장이 자신을 입신하게도 했고 그르치게도 했다고 생각했다.(100 페이지) 신유한은 문체가 괴이하다, 난해하다, 요즘 문장이 아니다, 정도를 따르지 않는 문장이다 같은 말을 들었다. 최창대는 신유한이 고(古)를 지향하지만 정신을 닮는 것이 아니라 자구만을 본뜨는 의고(擬古)의 폐단이 있다고 지적했다.(240 페이지)

 

조선 후기의 서예가이자 문신인 윤순(尹淳; 1680 - 1741 )은 신유한에게 문장이 아니라 도학에 전념하라고 충고했다. 물론 신유한은 윤순의 충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도(道)와 문(文)이 별개라는 신유한의 생각도 논란거리였다. 신유한은 문장이야말로 자신이 온전히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생각했다.(259 페이지)

 

신유한이 과거에 급제한 직후 정치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인물은 최석정, 최창대 부자다.(최석정의 조부가 최명길이다. 최명길은 병자호란 당시 ‘주화론; 主和論‘의 대표자였다.) 신유한은 봉상시(奉常寺; 제사와 시호에 관한 사무를 맡아 보는 일) 임무를 하다가 지방관으로 나가곤 했다. 그가 지방 수령으로 보낸 시간은 17년이다.(77 페이지)

 

신유한이 사행단(使行團)의 일원(제술관; 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쓴 ‘해유록(海遊錄)’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한 명저다. 제술관은 조선 시대, 전례문(典禮文)을 지어 바치던 임시 벼슬이다. “‘해유록’은 신유한의 문장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데다가 집집마다 소장하고 애송했을 정도로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유통되었다.”(141 페이지) ‘해유록’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쌍벽을 이루는 성과로 꼽힌다.(141 페이지)

 

‘해유록’을 비판한 사람들도 있었다. 정약용은 신유한이 기물의 정교함이나 조련하는 법에 대해서는 상세히 관찰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신유한은 일본 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정치나 양국 교류에 생산적인 제안을 하지 못했다. 정치적 안목보다 문학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유한에게 만남을 제안한 사람 가운데 겸재 정선의 다섯 살 연상의 친구였던 사천(川) 이병연(李秉淵)도 있었다. 최석정이 인물을 제대로 등용하지 못하는 조선의 현실을 규탄했다(155 페이지)면 이병연은 신유한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현실을 한탄했다.(199 페이지)

 

연천은 다스리기 어려운 잔악한 고을이었고 흉년까지 만나 백성들이 의지할 데가 없었는데 신유한이 백성을 구제하여 온 경내가 편안해 백성들이 흉년을 근심하지 않았다.(385 페이지) 신유한이 연천 현감으로 재임한 시기는 59세에서 63세까지다.(291 페이지) 신유한이 일생 마음의 스승으로 모신 큰 스승이 있었다. 바로 미수 허목(1595 - 1682)과 고운 최치원이다.

 

신유한은 허목을 통해 문학적 영감을 얻기도 하고 자신의 학문의 근거로 활용하기도 했다. 신유한이 척박한 땅 연천에 정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허목 덕분이었다.(226 페이지) 신유한은 강한 자의식, 복잡한 내면을 숨기지 않고 문학 속에 쏟아냈다. 자신의 문학세계를 해명하는 글쓰기를 반복했고 지인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과 일상, 불편한 심사를 빈번하게 노출했다.(280 페이지) 


신유한도 현실의 모순을 거론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개인적인 세계로 도피해 문제를 해소하는 한계를 드러냈다.(293 페이지) 신유한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는 그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월적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309 페이지) 이는 그가 개인 차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결과 빚어진 필연이었을 것이다. 


사마천은 용문산인(龍門山人)이라 자호(自號)했다. 용문은 사마천의 출생지이다. 잘 알려졌듯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천문관측과 의례(儀禮)를 담당하다가 한무제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한 뒤 홧병으로 죽은 태사령(太史令)이었던 아버지 사마담으로부터 여행을 과제로 부여받았다. 사마천에게 여행은 아버지 사마담을 이어 하게 된 역사서 집필을 위한 전제이자 과제였다. 사마천은 초나라의 충신이자 '초사(楚辭)'의 저자인 굴원이 간신의 모략으로 자결한 비극의 현장인 멱라강을 둘러보기도 했다.(신유한이 어려서부터 읽은 '이소'는 '초사'에 수록된 장편 서정시다.)


사실 사마천은 역사가이기 이전에 여행가였다.(김선희 지음 '나를 공부할 시간' 20 페이지) 이런 점에서 보면 신유한은 흥미롭다. 그는 사마천은 넓은 곳을 유람했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고 자신은 좁은 공간에 거할지라도 상상의 유람을 할 수 있기에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마천은 인식의 한계 안에 있었고 자신은 인식의 경계 밖에서 노닌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굳이 용문이라는 말을 쓸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이곳 저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는 곳 이상을 볼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는 말인가? 


신유한은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조했다. 신유한은 청운의 꿈을 안고 소론, 노론, 소북 할 것 없이 자신을 알리고 인정을 받고자 노력했지만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286 페이지) 신유한은 서얼이라는 신분상의 경계, 지방과 서울의 경계에 위치한 자였다.(293 페이지) 그는 좌절과 기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렸다.(302 페이지)

 

신유한은 과거 시험에 도움이 되는 공부보다 선진(先秦)의 글을 배우라고 가르쳤다. 저자는 신유한의 문장을 조선 문단에서 최고의 문장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당시 문단에 작은 균열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신유한은 조선의 경계 밖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경계를 열었다.

 

그는 조선의 경계 밖에서 욕망하고 투쟁하고 좌절하고 삶을 극복해낸 사람이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신유한은 연강 뱃놀이가 계기가 되어 알게 된 신유한 이상이었다. 그의 삶은 파란과 격정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출세를 위해 애쓰고 좌절한 그의 삶이 슬프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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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공부는 문해력이 전부다 - 내 아이를 바꾸는 문해력 완성 3단계 프로젝트
김기용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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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문자 해독률은 아주 높지만 문해력은 매우 낮다. 문자 해독률이 높은 것은 우리나라 문자가 배우기 좋은 것 때문인 점, 남다른 학습 의지 등이 두루 작용한다. 반면 문해력이 낮은 데에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점, 학교 졸업과 함께 글읽기에서 멀어지는 것 등이 두루 작용한다.

 

문해력은 개인의 생존은 물론 공동체 생존의 전제다. 그럼 초등학생은 어떤가? 아니 이렇게 묻기보다 초등학생들의 문해력 향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리라. 초등 교사 김기용 님의 ‘초등 공부는 문해력이 전부다’는 ‘평생 성적, 문해력이 좌우한다’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초등 시기는 문해력을 키우는 시간이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이 부족하면 생각하고 표현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문해력은 모든 학습의 기초다. 서술형 평가 문제가 늘어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남들보다 뛰어난 고차원적인 문해력은 노력과 반복, 실천을 통해 길러진다는 점이다. 올바른 이해는 입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출력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저자는 모르는 단어를 모두 알려고 하기보다 유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년별 특성에 따라 접근법이 다르다. 초등 단계는 그리 길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6년이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해력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발생한다. 비문(非文)을 쓰는 어른의 경우 글쓰기 실력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문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창의력이 가장 높은 집단은 명확한 규칙 아래 모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한다. 어휘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초등 시기는 게임을 하기보다 책 읽기를 해야 한다. 게임 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면 책 읽기에 시간을 낼 수 없어 어휘력을 키우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들에게는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목표가 있는 과녁 독서가 필요하다. 목표는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관용적 표현이 사고력을 키운다. 저자는 한자를 중시한다. 교과서 단어의 50퍼센트 이상이 한자어다.

 

말놀이하기, 우리 가족 행복 시간 찾기, 가족 일기 쓰기, 아이만의 어휘 사전 만들기, 좋아하는 책 따라 쓰기 등은 어휘력을 기르는 다섯 가지 습관이다. 말을 많이 할수록 어휘력도 자란다. 언변이 좋은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독서량이 많고 말하기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저자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말할 것을 권장한다. 저자는 두 명 혹은 네 명이 짝을 지어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유대인 전통 교육방법인 하브루타 대화를 추천한다. 저자는 매일 글쓰기를 추천한다. 당연하게도 글쓰기는 책읽기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글쓰기는 무조건 재미 있게 접근하라고 말한다. 테마 일기 쓰기는 부담 없이 문해력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이다. 생각을 확장하는 거미줄 글쓰기란 것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쓰기를 말한다. 아이의 자존감은 문해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모르는 문장과 단어를 보아도 도전적으로 읽는다.

 

아이에 대한 믿음 갖기, 아이의 자율성 기르기, 작은 성취감 갖게 하기 등이 필요하다. 1) 올바른 공책 정리 습관을 기르도록 한다. 학습 후 10분 후, 1일 후, 일주일 후, 한 달 후 등 총 네 번 복습하면 머리에 오래 남는다. 2) 수업시간에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3) 교과서와 친해지도록 한다. 4) 일곱 구절로 요약해 연습하도록 한다.

 

마지막 장 제목은 ‘아이 스스로 문해력을 키운다’이다. 적절한 보상과 피드백이 필요하다. 자기문해학습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1)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갖는다. 2) 자율성과 책임감이 높다. 3) 되돌아보는 능력을 갖추었다. 부모는 학습의 동반자다. 비교하지 말고 자기 아이에게 집중한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공부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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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 - 미분부터 이해하면 수학공부가 즐거워진다
장지웅 지음, 김지혜 감수 / 미디어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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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비로소 고교 수학의 중요성을 알았다고 하는 저자의 책이다. 저자는 미분을 이해하는 것을 시 이해, 그림 이해와 같은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수학 특히 미분은 기호 이해가 필수다. 책 제목은 ‘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이다. 이 개미는 생각실험에 등장하는 가상의 개미 즉 미분 개미다.

 

개미는 산을 오른다. 종(鐘)을 뒤엎어놓은 것 같은 산을 개미가 오른다. 오를수록 즉 위치가 변할수록 개미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경사도에는 차이가 난다. 각 지점에서 접선의 기울기를 계산하는 것이 미분과 관련이 있다. 곡선의 모양을 기울기의 값으로 묘사하는 것이 미분의 언어로 곡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개미가 오르는 산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뾰족하게 생긴 것,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한없이 올라가야 하는 것, 완만하게 올라가는 것, 급격한 내리막길 등등..개미가 넘어야 하는 산의 모양을 그래프라 한다. 미분 수업은 다양한 함수가 주어졌을 때 접선의 기울기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를 탐구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미분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함수 그래프는 곡선이다. 즉 반드시 곡선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직선의 기울기가 음수인 경우도 있다. 내려가는 길이다. 미분 개미는 평행선을 걷기도 한다. 평행선의 기울기는 0이다. 좌표상의 수치를 이용해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GPS 개미다.

 

특정 점에서의 접선의 기울기를 미분계수라 하고 모든 점에서의 미분계수를 모아서 그래프로 표현한 함수를 도함수(導函數)라 한다. 이차함수는 볼록하고 삼차함수는 오르락내리락 한다. 정상을 기준으로 왼쪽면은 미분개미 입장에서 일정한 오르막 경사를 느끼게 하고 오른쪽면은 내리막 경사로 느끼게 한다.

 

상수(常數)를 미분하면 0이 되고 일차함수(직선)를 미분하면 주어진 함수의 기울기 그 자체가 되며 이차함수를 미분하면 직선 모양의 도함수가 나오고 삼차함수를 미분하면 이차함수 모양의 도함수를 갖는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상황을 지수 함수로 표현한다. 미분개미는 왼쪽으로 이동할수록 즉 0에 한없이 가까워질수록 그래프 위를 따라 절벽을 오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GPS 미분개미의 y 좌표값은 한없이 커질 것이다. 이를 lim(무한대 기호)로 표현할 수 있다.

 

미분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수학, 과학 서적은 미분이란 변화를 다루는 개념이라 설명한다. 미분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연이란 일반적인 물리현상을 말한다. 스프링 끝에 매달린 물체는 아래로 잡아당긴 후 놓을 경우 시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다가 멈추게 될까? 매우 뜨거운 강철을 차가운 물에 갑자기 담글 때 강철의 온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까? 비행기 날개 주변의 공기흐름은 어떤 모습일까? 등을 미분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미분 관련 문제는 온실 속의 미분 문제와 야생의 미분 문제로 구분된다. 미분을 잘하는 것은 간단한 함수뿐만 아니라 좀 더 복잡한 함수가 주어지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해셜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상태다. 복잡한 형태의 미분 즉 야생의 미분 문제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미분 도구를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의 책은 적분까지 다루었다. 미분과 적분은 전혀 관련 없이 보이지만 둘은 놀랍게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분을 설명할 때 수식이 많으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수식을 배제하면 미분의 주변부만 살피는 공허한 작업이 되기에 그 관계를 잘 파악해 최적의 부분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의 책은 미분개미라는 가상의 도구를 사용해 쉽게 설명을 시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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