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2 - 물방울부터 바다까지 물이 드러내는 신호와 패턴을 읽는 법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2
트리스탄 굴리 지음,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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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 굴리는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2’에서 자신의 책은 물 자체를 다루었다고 말한다.(‘물; 物‘ 자체가 아니라 ’물; water’ 자체다.) 굴리는 작가, 항해사, 탐험가이다. 물은 물에 달라붙는다. 물에도 점성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물에 매료되어 점성(粘性)을 신중하게 관찰했다.

 

그는 나뭇가지 아래에서 물방울이 떨어질 정도로 커져도 약간 마지못한 것처럼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드디어 1508년경 물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물방울의 목이 길게 늘어났다가 방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늘어지면 그제야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관찰은 백 길의 계곡을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은 마치 용(勇) 같다고 표현한 공자의 생각과 배치된다. 물의 점성 또는 장력 vs 중력의 구도가 흥미롭다. 물이 서로, 그리고 컵 옆면에 달라붙게 하는 장력(張力)은 모세관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장력은 물체 내의 임의의 면의 양측 부분이 서로 수직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모세관현상은 가는 대롱을 액체 속에 넣어 세울 때 관 안의 액면이 관 밖의 액면보다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어떤 수역(水域)을 볼 때도 색깔이나 색조의 미묘한 변화보다 물의 움직임을 먼저 알아챈다고 말한다.

 

측량사들은 오래전에 대단히 극단적인 환경에서 원주민들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고찰해 불을 피운 흔적이 원주민들이 야영지를 만들었다는 의미고 그것은 당연히 아주 가까운 곳에 물이 있다는 뜻임을 알았다. 버드나무나 오리나무는 뿌리가 정기적으로 물에 젖는 곳에서만 자리기 때문에 물이 근처에 있다는 강력한 단서가 된다.

 

흐르는 물이 내는 소리는 물에 공기가 섞여 만들어진다. 저지대 강은 훨씬 조용하고 물 자체는 거의 고요하다. 물의 특성 중 이해하기 가장 쉽고 찾기 쉬운 것 중 하나는 베개라는 별명의 현상이다. 강한 물줄기가 시내에서 바위나 다리 기둥 같은 장애물 같은 것에 부딪히면 그 장벽의 상류 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형태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움직이는 물에서 보는 다른 많은 것처럼 베개는 정체이자 유체이고 물은 매 순간 변화한다. 하지만 베개의 형태는 베개를 만드는 물의 흐름이 일정한 한 거의 일정한 형태를 유지한다. 물의 색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분을 알아야 하고 각각은 그 자체만 보면 아주 단순하지만 합치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필요 이상으로 훨씬 어렵게 느껴지게 만든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네 분야는 다음과 같다. 물 아래 무엇이 있는가? 물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물 위에 무엇이 있는가? 빛의 영향은 무엇인가? 등이다. 물의 색깔을 이해하려고 할 때 고려해야 할 첫째 사항은 당신이 물을 보고 있는 것인지 반사되는 것을 보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멀리 있는 바다를 볼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주로 더 멀리 있는 하늘이 반사된 모습이다. 그래서 멀리 있는 바다는 화창한 날에는 파란색으로, 구름 낀 날에는 회색으로 보인다. 물에 닿는 빛이 없다면 색깔도 없다. 빛이 물에 색깔을 부여한다. 불을 켜고 컵 안의 물 색깔을 욕조 안의 물 색깔과 비교하면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욕조가 평범한 하얀색이라면 2센티미터 정도 깊이로 물을 채운 다음 안을 들여다보라. 컵 안의 물처럼 완전히 무색투명하게 보일 것이다. 이제 욕조에 물을 꽤 깊게 채워보라. 좀 더 깊은 물을 쳐다보면 아주 약간 푸른색이 도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에서 깊고 맑은 바닷물을 내려다볼 때 물 색깔이 파랗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맑은 물은 색깔이 없지만 색깔을 약간 흡수한다. 백색광이 물에 닿으면 일부는 반사되고 일부는 물 분자에 흡수된다. 물에 들어가는 백색광은 무지개의 모든 색깔로 이루어져 있고 그 색깔들은 똑같이 흡수되지 않는다. 빨강, 주황, 노랑이 파랑보다 물에 더 많이 흡수된다. 그 결과 백색광이 지나가는 물의 양이 많을수록 밖으로 나왔을 때 더 파랗게 보인다. 과학자들은 물에 흡수되지 않고 가장 멀리까지 갈 수 있는 정확한 색깔을 찾았다. 바로 녹청색이다. 심지어 파장도 찾았다. 480 나노미터다.

 

저자는 폭포를 물이 어떤 높이에서 다른 높이로, 대체로 단단한 바위에서 좀 더 침식되기 쉬운 부드러운 바위 위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박순 시인의 ‘페이드 인’이란 시가 있다.

 

“물줄기는 지그재그로 흘렀다 무모하게 뛰어내렸다 절/ 벽 앞에서 뒷걸음질 치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부딪/ 치고 튕겨져 나왔다 무른 바위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 는 시간은 계속된 지 오래 서로는 파편이 되어가는 시/ 간에 충실했다 어느 한 날 폭포는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붙었다 산짐승의 이빨을 닮은 폭포는 바닥/ 을 향해 매달려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폭포와 바위/ 는 뜨겁게 영겨븥었다 경계를 감춘다 겨울은 마취의/ 계절이다 눈을 좀 붙여보는 건 어때? 한숨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봄은 서로의 경계를 드러내는 통증의/ 시간 입술 위에 봄을 올려놓는다, 그 환한 봄을, ”

 

절벽 앞에서 뒷걸음질 치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란 말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머뭇거림과 상통한다. 봄은 서로의 경계를 드러내는 통증의 시간이란 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워터폴스왈렛(waterfallswallet)이라는 폭포 이야기를 한다. 스왈렛은 땅에 있는 움푹한 곳이나 함몰지를 부르는 옛 이름이다. 물이 지면 높이에서 시내의 형태로 흐르다가 툭 튀어나온 바위에서 땅에 있는 커다란 함몰지로 떨어져 내린다.

 

굴리의 책은 물에 관한 모든 것을 망라한 책이다. 폭포 이야기가 더 나왔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방대한 책을 내 관심사에 맞춰 읽었다. 소략하게 읽었지만 다시 꼼꼼하게 읽어야 할 책이다.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1’도 읽어야겠다. 곁에 두고 틈나는대로 읽으면 영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의 색깔을 이해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네 가지를 논한 챕터에서 저자가 보인 내공은 대가의 면모라고 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과학책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는 책을 쓴 저자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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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시크릿 -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56가지 마음 훈련법
류창장 지음, 정은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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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스펙트럼은 넓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 오로지 자기 마음에 기쁨이 충만한 상태, 이것이 저자 류창장이 생각하는 행복이다. 그가 쓴 ‘행복 시크릿’은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56가지 마음 훈련법’이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행복은 사랑이란 단어처럼 추상적이다. 이는 행복이란 어느 만큼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짐을 의미한다. 저자는 행복에 대해 어떤 말을 할까? “행복의 기준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만족과 기쁨이 생성되고 자기 가치관을 반영하여 삶의 의미를 더하는 기준점을 마련한다.”..이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행복 시크릿’은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벌거나 성공을 하는 방법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마음 가짐을 새롭게.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책이다.

 

그럼 마음을 새롭게, 효율적으로 하는 것은 쉬운가? 그렇지 않다. 기술 또는 요령이 필요하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을 기술(태도)에 중점을 두고 분석한 것처럼. 가장 단순한 것에서 기쁨을 찾아라란 귀띔도 그런 것들 중 하나다.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잘 안 되는 것들이 책에 순서대로 나온다. 자신에게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라는 말도 그렇다. 자신을 신뢰하면 타인의 신뢰가 따라온다는 말도 그렇다.

 

우선 나부터 나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타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상상력은 행복의 투명 날개라는 말은 귀기울일 만한 지침이다. 창작의 한 요소로 여겨져온 상상력이 행복을 부른다니 흥미롭다. 저자에 의하면 삶에서 어떠한 의미이든 경험은 긍정적인 환상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 무궁무진한 힘이 나오고 창조적 영감이 나오게 한다.

 

그러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저자가 말하는 상상력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다. 상상력은 꿈과도 통한다. 그래서 가꾸고 키워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요령은 수행과 닮았다.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미래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 꿋꿋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결국 현재, 그리고 나에 충실할 것이 요구된다. 저자는 그래서 이 순간을 잘 보내면 미래가 탐스러워진다고 말한다. 바라는 바 없이(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완벽주의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완벽주의는 욕심이다. 본문에 한 정신과 의사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는 그 의사가 정신질환에 대해 단 한 문장으로 수식한 말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열심히 공부해 가고 싶은 대학에 갈 걸, 이럴 줄 알았다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가족을 더 사랑할 걸....치료 과정에서 내담자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라고 한다. 잘못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면 당신은 그 잘못으로 인해 후회할 필요가 없다. 과거는 이미 죽었다. 미래만이 자신의 것이다...이는 영국 시인 셸리의 말이다.

 

저자는 “이럴 줄 알았다면”이라고 탄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미래를 욕심 내지 않으면 너그러운 것이고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다. 행복은 마음이 느끼는 것이지만 현실적 조건(몸, 배움, 만남, 행동)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투자하고 사회적 교류를 위해 투자하고 배움에 투자하고 여행에 투자하고 미래에 대해 투자하는 것이 요구된다. 저자는 물질적 빈곤은 언제든 해결 가능하지만 정신적 빈곤은 없애기 어렵다, 정신이 풍요로워지면 물질적 빈곤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감정의 부자가 될 필요도 있다.

 

“풍부한 감성과 낭만으로 자기 삶의 질을 높이고 풍성하게 채워보자. 웃음이 당신 얼굴에 늘 머물 수 있는 비결이다.” 저자는 손에 쥐고 있는 오늘을 먼저 완성하라고 말한다. 본문에 시인 바이런과 괴테 이야기가 나온다. 바이런은 젊은 노인, 괴테는 나이 든 젊은이로 살았다. 두 사람의 행복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말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당신은 행복하다는 말이다. 행복은 아주 가볍고 단순하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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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책을 빌려가 벽지로 쓰고 있는 친구 이야기가 문득 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출간된 한 승려의 산문집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에게는 책도, 유교도, 불교도 깨달음을 얻는 데 필요한 통발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지 않은가?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그 책이 책도, 유교도, 불교도 깨달음을 얻는 데 필요한 통발로 여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극적이고 멋지지만 그에게 친구의 책은 깨달음의 수단 이상은 아닌가?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책을 빌려간 그 사람은 책을 찢어 벽지로 쓸 만큼 빈한한가?

 

문제는 더 있다. 깨닫고 나면 다시는 책을 들춰볼 필요가 없는가? 최근 연천 지질공원에 대한 책이 출간된 것을 보고 심정이 복잡했었다. 동료들에게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알린다면 알라딘의 신간 링크를 보내줄 것인가, 내가 산 책 사진을 찍어 보내줄 것인가? 등등으로 복잡했었다는 의미다. 결국 링크를 보내는 방식으로 일부 동료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내 책도 아니면서 왠 고민인가? 하겠지만 평소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을 어이없어 하던 주제 넘은 입장으로 좋은 교재가 나온 것을 알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을 불편하게만 보고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식을 알려주지 않는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알린 것이다.

 

알라딘의 신간 링크를 보내줄 것인가, 내가 산 책 사진을 찍어 보내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 이유는 어디든 책 사기를 아까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형편이 좋으면서도 책 사기를 아까워 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그들에게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해설을 하는 데 도움을 준 저자들에게 빚을 진 것이 분명하다면 저자가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책을 사 경제적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런 선행이 쌓여 출판계가 좋은 책을 계속 낼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든 링크를 보낸 것은 내가 산 책을 찍어 보낼 경우 빌려달라는 말이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책은 곁에 두고 읽고 익혀야 하는 것인데 빌려 읽겠다고 하면 제의를 받은 나는 나대로 불편할뿐더러 공백이 생기고 빌려서 읽는 사람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지 않겠는가?

 

간략하게 한 번 말한 바 있지만 연천 지질해설사가 된 이래 늘 지식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 매일 과학 책들 특히 지질 신간을 검색했다. 내게서 신간 출간 소식을 들은 한 분은 내게 거듭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한 일이지만 내 책도 아닌데 과한 감사함을 들어 송구하다. 내가 알린 분들이 비슷한 처지나 마음이 맞는 동료들에게 책 소식을 전하리라 생각한다.(내가 책 소식을 전한 분들은 마음 맞는 분들이다.) 책 내용을 획일적으로 전하는 해설을 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책을 읽는 사람이 누구든 자신의 문제의식으로 내용을 익혀 새롭게 구성하고 해설을 구상하는 노고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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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발자국 -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유쾌하고 지적인 인간 진화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 틈새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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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두 저자(후안 호세 미야스와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쓴 ‘루시의 발자국’은 소설 형식의 독특한 고생물학/ 진화 책이다.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유쾌하고 지적인 인간 진화 탐구 여행’이란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 후안 호세 미야스란 소설가와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라는 고생물학자가 만나 대화를 나눈 내용을 담은 책이다. 고생물학이라 했지만 인간에 관한 책이기에 인접 학문들의 성과가 무수히 반영되었다.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 철학, 유전학, 생리학 등등이 그것이다.

 

책의 서두에 아타푸에르카란 지명이 나온다. 이곳은 연천과도 관련이 있는 스페인의 구석기 명소다. 두 도시의 인연은 지난 2012년 아타푸에르카 주민들이 연천전곡리구석기축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연천을 방문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아타푸에르카는 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이다. 감수자의 말처럼 아타푸에르카 유적지는 스페인의 어떤 유적지보다도 인류 진화사에 대한 지식을 많이 던져준 유적지다. 스페인은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등의 유적들이 발견된 곳이다.

 

두 주인공은 프라도 박물관, 어린이놀이터, 장난감 가게, 마드리드 근교의 계곡, 성인용품점, 공동묘지, 원시인들의 동굴 벽화 등을 방문해 대화를 이어나간다. 대화의 주도권은 고생물학자가 쥐었다. 제목에 나오는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별칭인 루시를 말한다.

 

루시는 한 때 최초의 인류로 여겨졌던 존재다. 이 화석에 루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74년 미국의 인류학자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화석을 발굴할 당시 라디오에서 비틀즈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아르수아가는 대자연을 사원이라 하지 않는다면 달리 뭐라고 하겠습니까란 말을 한다. 후안 호세 미야스는 자신이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라 생각한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 중 2%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래했으나 그의 생각은 자신이 어릴 적 상징 능력이 부족해 연애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네안데르탈인의 속성과 연관지은 것이다.

 

소설가는 돈을 보고 여자 아이들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여아 아이들이 내뿜는 광채에 빠져들어 여자 아이들을 좋아했으나 여자 아이들은 상징 능력을 소유한 남자 아이들을 좋아했다. 책에는 저자의 가설이 섞여 있다. 가령 농업을 여성이 발명했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고생물학자에 의하면 남성이 들소, 말, 매머드를 사냥하기 위해 온종일 돌아다닌 사이 여성이 농업을 발명한 것이다.

 

고생물학자는 진화는 사건의 발단, 절정, 결말이 없는 카오스의 세계라 말한다. 고생물학자는 조각상을 보며 이것들은 한때는 타는 듯 뜨거운 액체였다는 말을 한다. 고생물학자는 신은,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 사회의 주류와 가깝다는 소설가의 말에 동의한다. 어떤 사회 구조냐에 따라 신의 성향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친사회적인 신은 사회가 수 세기에 걸쳐 충분히 복잡해지면 나타나지만 시차(時差)가 존재한다.

 

고생물학자의 말에는 냉정하고 예리한 면이 있다. 가령 소설가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개인의 삶이 우연의 산물이라 말하자 선생님은 모르지만 보험회사는 안다, 개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개별 개미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지만 개미집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이야기할 수 있다, 역사는 단순히 나열된 사건들의 연속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을 한 것이 그렇다.

 

역사에는 의미나 방향보다 패턴이 있다. 마크 트웨인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韻律)을 맞춘다는 말을 했다. 소설가는 학문적으로 어렵고 딱딱한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고생물학자의 능력에 놀란다. 책에는 리처드 랭엄 이야기도 나온다. ‘요리 본능 - 불, 요리, 그리고 진화’라는 책을 쓴 동물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가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두뇌 크기가 커졌고 그로 인해 진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고생물학자는 뇌 크기가 어느 정도 커진 후 화식(火食)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한다.(리처드 랭엄은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의 보노보라 말했다.) 요리해서 먹은 것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가 풍부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머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 그림들이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했는지, 사냥과 연결된 속죄의 행동에서 비롯됐는지, 그것도 아니면 다산(多産)과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것은 전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일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가 그것을 밝힐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더 위대한 거예요.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는 구석기 시대인들이 남긴 동굴벽화에 대한 말이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흥미 있는 말은 지금은 조리용 용기(남비, 솥)가 일상적이지만 석기시대의 그 물건들의 출현은 혁명이었다는 말이다. 요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릇이고 그로 인해 저장이 가능해졌고 그래서 잉여, 재산의 개념이 생겼다.(325 페이지) 화폐 이전에 그런 시스템이 생겼으니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다.

 

신석기 시대의 유골들을 살펴보면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고 볼 생물학적 지표가 없다. 사냥과 채집을 하던 구석기인에 비해 키와 뇌가 작아졌고 농사 짓고 곡식 빻고 가축을 돌보는 등의 일을 하느라 온갖 질병을 앓았고 수명도 짧아졌다. 그럼에도 신석기인들이 살아 남아 승리한 것은 경작용 토지나 가축용 목초지가 된 땅이 자연 생태계보다 더 많은 인간을 먹여 살렸기 때문이다. 더 잘 살지는 못했지만 더 많은 자식을 낳았고 더 지속적이었다.(330 페이지)

 

인상적인 부분은 뇌가 커지게 된 메커니즘에 대한 논쟁(화식 때문이냐 에너지가 풍부한 음식 때문이냐)에 대해 소설가가 뉘앙스의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하자 고생물학자가 우리는 그 뉘앙스에 매어 살고 있다고 말한 대목이다. 불이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었다는 사람과, 진화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할 때 불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논쟁이란 말도 인상적이다.

 

우리는 불의 자식일지도 모르겠다. 고생물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몸에 가장 좋은 것은 바닥에 있어요. 나무는 땅에서 영양분을 얻어요. 미네랄도, 물도, 땅에서 뽑아 올려 빛이 주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무기물을 유기물로 바꾸지요.”(322 페이지) 처음 어떤 유형의 책인지 모르고 구입해 읽다가 소설 형식이어서 다소 실망했는데 참 인상적인 대목이 많아 만족스럽다. 소설 형식인 것을 알았다면 사지 않았을 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때로 헤아리지 않고 어떤 결정을 하는 것도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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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주식사전 - 2030 유망 업종과 종목을 단어로 이해하는
장지웅 지음 / 여의도책방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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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지웅의 ‘2030 유망 업종과 종목을 단어로 이해하는 빅데이터 주식사전’은 투자에 어려움을 느끼는 투자자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 장지웅은 15년간 다수의 상장사와 자산운용사, 창업투자회사, 벤처캐피털 등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실무와 운영을 모두 거친 장지웅 미래용역 대표다.

 

제목에 나오는 2030(년)은 우리나라 증시뿐 아니라 전 세계주식시장에서 앞으로 10년간을 의미한다. 책은 한 챕터당 하나의 섹터가 배정된 형태로 구성되었다. 1. 바이오, 2. 그린뉴딜, 3. 미래차, 4. 언택트, 5. 미디어, 6. 소비재, 7. 4차산업, 8. 소부장, 9. 5G 등이다.

 

각 챕터(섹터)마다 스무 개 내외의 업종이 포함되었다. 소부장은 소재, 부품, 장비의 머리말이다. 책 뒷부분에 기본 용어가 정리되어 있다. 환율, 금리, 코스피, 코스닥, 다우존스, 나스닥, 증권 등 쉽게 접하는 단어부터 캔들, EPS, IPO, PBR, K - OTC, ROA, 일봉, 주봉, 월봉, 턴어라운드 등 생소한 단어까지 모두 66개의 주식 용어를 망라했다.

 

각 세부 내용마다 단어 정리가 되어 있다. 가령 백신은 인공적으로 면역을 주기 위해 몸에 투여하는 항원의 하나로 정리했다. 더구나 2020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COVID - 19 팬데믹이 발생하고 난 뒤 사람들은 백신의 등장을 기다렸다는 말처럼 현 흐름에 대해서까지 서술했다.

 

그리고 관련 종목으로 SK 케미컬, 대한과학, 에스티팜, 녹십자, 일양약품,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을 뽑았다. 중요한 점은 각 챕터마다 마인드맵을 실었다는 점이다. 각 업체의 현황이 간략하게 브리핑되었는데 SK 케미컬은 SK 케미컬의 자회사 SK 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와 코로나 백신에 대해 CMO 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해 놓았다.

 

CMO는 위탁 생산업체로 COVID - 19의 집단 면역을 위한 다량 백신 확보를 위해 백신 개발업체들은 CMO 계약을 맺는다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항원, 병원체, 항체, 콜드체인 등 연관 단어도 함께 뜻 풀이 형식으로 수록한 것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가령 콜드체인은 저온 유통체계로 - 70도 이하에서 보관되어야 하는, 백신 유통에 있어 필수 시스템으로 설명되었다.

 

전문가의 한 마디도 만날 수 있다. 예컨대 “백신 판매가 승인받은 지금 수혜를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기업을 알아보세요.” 같은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CMO는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의 이니셜로 위탁생산을 뜻한다. 이 아이템은 바이오의 아홉 번째 순서로 등재되었다.

 

바이오의 주요 아이템인 미국식품의약국(FDA)에 대해 전문가는 바이오 기업 투자를 한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존재라 설명했다. 임상시험이나 판매 승인이 FDA의 판단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이오의 12번째 아이템은 파이프라인이다. 내 경우 이는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이란 책에서 처음 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개념이어서 흥미로웠다. 단 원래 의미는 석유/ 천연가스 등 유체(流體)의 수송을 위해 만든 관로(管路)를 의미하지만 바이오분야에서는 연구개발 중인 프로젝트를 말한다.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분야이기에 파이프라인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이란 책에서는 파이프라인을 전통 기업을 플랫폼 기업과 대비하여 말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바이오의 17번째 아이템인 사이토카인 폭풍이란 말은 태풍 같은 자연현상(으로 보)이지만 면역에서는 인체에 바이러스가 침입할 경우 백혈구가 만드는 물질을 의미한다. 이처럼 저자의 책은 시사용어사전이라 해도 좋다. 기본 용어 중 환율에 대해 말하면 뜻은 기축통화인 달러와 원화의 교환 비율을 표시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환율이 오를 경우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삼성전자, LG 등)은 해외에서 번 달러를 국내에서 더 많은 돈으로 바꿀 수 있어 좋다. 어닝 서프라이즈는 시장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발표한 경우를, 어닝 쇼크는 시장 예상치보다 저조한 실적을 발표한 경우를 의미한다.

 

전자의 경우는 다음 분기 실적에도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인해 주가가 상승하고 후자의 경우 기대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주가가 떨어지기도 한다. 이를 보면 주식은 사람들의 심적 기대나 좌절, 편향 등이 반영되는 상대적인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현상에는 사람의 기대가 반영되지 않는다.(장기적으로 보면 사람의 행동은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전체 주식시장을 조망함과 동시에 투자에 신중을 기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긴 책이다. 초보 투자자는 기업에 대한 정보를 제한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고 증권사 리포트를 참고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 용어부터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은 예금이나 적금과 달리 늘 위험이 상존하는 분야기에 용어 숙지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 점에서 저자의 책은 시의적절하고 실용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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