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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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年輪)이란 나이테를 이르는 말로 이 의미에서 여러 해 쌓은 경력이라는 확대된 의미가 파생했다. 나이테는 영어로 ‘tree ring’이라 한다. 벨지움 출신의 세계적인 연륜연대학자로 현재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 나이테 연구소 교수인 발레리 트루에(Valerie Trouet)의 ‘나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나이테에 새겨진 기후와 생태, 나아가 나무의 기쁨과 슬픔 등을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연륜연대학의 전반적 상황을 알게 해줄 귀한 자료다.

 

원제는 나무 이야기(‘Tree Story: The History of the World Written in Rings’)다. 나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은 본문에 나온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합당한 주의를 기울여 정확하게 나이테를 읽어야 한다. 그러자면 패턴을 인지하는 약간의 재능, 그리고 아주 많은 훈련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또 나무를 괴롭고 아프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연륜연대학자들에게는 천만다행이게도 나무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생물이다. 나무는 인간이 생겨나기 훨씬 전, 생명이 아주 단순하던 지질시대에 기원했다. 인간과 비교하면 나무는 움직이는 부위도, 여분의 기관도 훨씬 적은 편이다. 나무에는 꼬리뼈도 수컷의 젖꼭지도 없다. 그러므로 나무가 공유하는 풍부한 정보를 찾아내려면 그저 잘 보기만 하면 된다.”(75 페이지)

 

연륜연대학을 영어로 dendrochronology라 한다. 나이테 과학이 출범한 것은 약 100년 전이다. 애리조나대학교 나이테 연구소가 멕시코 국경에서 북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애리조나주 투손의 소노란 사막에 자리를 잡은 것에는 사연이 있다. 연구소를 세운 앤드루 엘리콧 더글러스는 원래 천문학자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는 데 최적지가 사막인데 천문학 후원자인 퍼시벌 로웰 팀에서 근무하던 더글러스는 그 유명한 화성인 논쟁으로 로웰과 갈라선 뒤 연륜연대학을 개척했다.

 

더글러스가 나이테를 수집한 이유는 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 태양의 활동 주기를 추적할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그런 관심을 보인 것은 태양활동 주기가 지구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지구 기후에 대한 관심이 태양활동 주기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 천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더 나아가 연륜연대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발레리 트루에는 자신을 연륜기후학자로 소개하며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고 말한다.(18, 19 페이지)

 

연륜기후학자들의 목표는 과거의 기후를 최대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53 페이지) 기후 재구성이란 기온이나 강수량 등 기상 관측이 이루어지지 않은 과거의 기후 상태를 대체 자료로 추정하여 정량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50 페이지) 연륜연대학은 생태학, 기후학, 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밝힐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20 페이지)

 

나무에서 부피 생장이 일어나는 곳은 나무껍질과 목질부 사이의 부름켜(cambium; 형성층)라는 섬세한 부위다. 새로운 나무 세포는 부름켜에서 만들어진 뒤 먼저 형성된 더 오래된 세포 바깥에 축적된다. 한 나무의 줄기를 통틀어 나무껍질 바로 안쪽의 이 얇은 부름켜만이 실질적으로 살아 있는 부위다. 그 외의 목질부와 나무껍질은 죽은 물질로서 일차적으로는 나무에 안정성을 제공하고 보호하며 지하의 뿌리와 위쪽의 나뭇잎 사이에서 물과 영양분을 수송한다.

 

목질부는 크게 변재(邊材)와 심재(心材)로 나뉜다. 물은 줄기의 바깥쪽 부분인 변재에서만 이동하고 안쪽의 심재나 나이테의 정중앙인 수심(樹心)에서는 이동하지 않으며 목편을 추출해도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51 페이지) 나무도 사람처럼 어릴 때만 키가 자라고 커서는 둘레만 늘어난다. 혹독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나무들은 생장에 심한 제약을 받아 천천히 자란다. 그 결과 나이테는 아주 좁고 목질은 치밀하다. 이 나무들은 상대적으로 온화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나무들에 비해 아주 오래 산다.

 

석회암 지대에서는 나무를 썩게 하는 균류나 곤충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어서 나뭇진이 들어 있는 목재는 죽은 후에도 수천년 동안 풍경의 일부로 남게 된다.(68 페이지) 나무는 식량과 물이 풍부하고 남과 경쟁하거나 공격받지 않는 행복한 시기에 무럭무럭 자라 넓은 나이테를 만들고 가뭄, 한파, 태풍 등을 겪는 불행한 시기에는 생장에 투자할 에너지가 많지 않아 좁은 나이테를 만든다. 더글러스는 나이테 열(列) 중에서도 패턴이 독특한 특정 구간을 나이테 서명이라 칭했다.

 

완전히 똑같은 나이테 열은 없다. 심지어 한 나무에서 채취한 두 개의 표본도 서로 다르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수집한 표본이라면 적어도 몇 개의 공통된 이상 생장 연도가 있다.(85 페이지) 반화석(半化石; subfossil)은 호수 바닥에서 발견되는 나무처럼 미처 완전히 화석화되지 않은 나무를 말한다. 나무가 물이나 토탄층(土炭層)에 쓰러지면 그 목질부는 무산소 환경에서 보존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나무를 썩게 하는 생물이 호흡하지 못해 살지 못한다. 이로 인해 나무는 퇴적층에 묻혀 1만년이 넘는 과거를 비교할 수 있는 잔해를 선물로 준다.

 

현재 우리는 11, 650년전에 시작된 홀로세의 간빙기를 살고 있다. 소빙하기는 대부분 지역에 추위를 불러왔지만 일부 지역에는 추위보다 습기로 정의되었다.(128 페이지) 초기 사회기후학 역사가들은 기후사와 인류사를 결정론적으로 결합했다. 이들은 과거 문명의 흥망성쇠는 오직 기후 변화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후사와 인간사는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한다.(147 페이지) 나이테가 우리에게 놀라운 것들을 말해주지만 기후의 대체 자료로서 한계와 결점도 있다.(154 페이지)

 

나이테 기록은 가뭄, 극단적 기온 변화 등은 물론 홍수나 폭풍 같은 다른 극한 기후를 재구성하는 데도 활용된다.(161 페이지) 가뭄과 허리케인을 보자. 가뭄(이 일으킨 파괴력)은 나이테에 새겨진다.(155 페이지) 허리케인은 선박을 침몰시키고 나무의 생장을 억제한다.(166 페이지) 저자는 선박 침몰 사건이 (직접적으로는)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나무의 생장 시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한다.

 

지진도 나무에 손상을 가하고 생장에 영향을 준다.(172 페이지)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 발전소 참사로 인해 붉은 숲(red forest)이 만들어졌다. 붉은 숲이란 소나무가 죽으면 적갈색을 띄는 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체르노빌 핵 발전소 참사는 나이테를 아주 이상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는 부름켜가 방사선으로 인해 손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생장철의 한창때 나뭇잎이 사라지면 생장 호르몬이 부름켜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러면 나무는 에너지가 고갈되고 새로운 목재를 형성할 의욕은 물론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에 시작한 세포 형성을 제대로 마무리할 동기도 잃는다.(180, 181 페이지)

 

저자는 기후가 로마 제국의 해체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기후사와 인류사의 연관성을 연구할 때 상관 관계가 반드시 인과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196 페이지) 저자는 기후 불안정은 사회적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해도 여러 요인이 맞물린 그물망의 한 부분을 구성할뿐이라 말한다.(210 페이지)

 

중세 시대의 고온은 최근 수십 년간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에 추월당했다.(235 페이지) 저자는 글로벌 워밍(warming)이 아니라 글로벌 위어딩(weirding)이 정확한 말이라 말한다. 지구 날씨가 정신 나간 것처럼 요상하게 행동한다는 의미다.(241 페이지) 저자의 책은 나무에 대한 책이자 기후에 대한 책이다. 저자가 하는 작업이 연륜기후학이라는 사실은 물론 책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이다.

 

저자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들 중 산불의 메커니즘을 빼놓을 수 없다. 나이 든 나무들은 지표화(地表火) 발생 이후 더 잘 자란다. 물과 영양분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 제거되고 불이 숲 바닥에서 상층부까지 타고 오르게 만드는 하층부 식생 발달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물론 불이 상층부까지 번지면 큰 나무들도 큰 피해를 입는다.(264 페이지)

 

인간과 달리 나무에게는 상처를 치유할 메커니즘이 없다. 나무가 상처를 입으면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는 새로운 목재 세포를 키워 상처 부위 양쪽에서부터 흉터를 덮고 자라 마침내 닫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불이 자주(5 - 10년만에 한 번씩) 일어나면 대개는 상처가 밀봉되기 전에 다음 불에 노출되는 것이기에 상처 부위는 나무를 보호하는 껍질도 벗겨진 상태고 상처 조직에는 나뭇진 함량이 높아서 연속적인 화상에 추가로 손상되기 쉽다. 한 나무가 계속해서 불에 델 때마다 나이테로 화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상처가 추가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산에 불이 났다고 무조건 물을 뿌려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지난 한 세기 동안 지나치게 열심히 불과의 사투를 벌여 온 위험한 결과를 이제 체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원래보다 자주 발생했어야 하는 지표화를 지나치게 열심히 끈 탓이다. 나무는 사냥과 전쟁에 들고 나갈 무기 재료가 되었고 도구, 가스, 스포츠 용품, 인쇄용 목판, 종이를 만드는 데도 사용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문명은 나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화석 연료를 태움으로써 자연적인 탄소 순환의 한 단계를 드라마틱하게 가속시키고 균형을 깨뜨렸다. 현 지질 시대는 인류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시기의 인간은 지구 시스템에 일어나는 가장 강력한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지질 기록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겼다.(294 페이지) 만약 인간이 오늘 당장 지구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가 지구의 대기권, 생물권, 수권, 지권에 만든 변화는 수천 년이 지나도 감지될 것이다.(295 페이지)

 

큰 재앙이나 전염병 등으로 많은 인구가 죽었을 때 숲의 형편이 나아졌다는 지적은 충격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숲은 세상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인간이 만든 기후 변화 문제는 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화석 연료에 들어 있던 수백만년 분량의 탄소를 한꺼번에 투척하고는 현재와 미래의 숲이 알아서 해결해주리라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다. 게다가 숲을 가꾸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숲이 자라려면 탄소 이상으로 많은 것이 필요하다. 공간, 물, 질소, 인 등의 영양소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나무를 넘어 기후, 더 나아가 지구에서의 평화롭고 안락한 공존에 가 닿아 있다. 연륜연대학자들에게 나이테 개수보다 나이테 간격과 순열이 더 중요한 것처럼. 또한 과거의 기후를 재구성하는 것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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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마법 (특별판 리커버 에디션) - 지식 세대를 위한 좋은 독서, 탁월한 독서, 위대한 독서법
김승.김미란.이정원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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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마법‘에 첫 번째로 인용된 글이 랄프 왈도 에머슨의 디음과 같은 말이다. “가장 발전한 문명사회에서도 책은 최고의 기쁨을 준다. 독서의 기쁨을 아는 자는 재난에 맞설 방법을 얻은 것이다.” 서재는 지식의 베이스캠프다. 저자 김승은 미국도서관 협회의 초기 모토인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시기에. 꼭 필요한 책을 소개해 주는 것”이라는 말을 자신의 모토로 삼은 사람이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 100명 중 16위에 오른 히틀러는 중학교 중퇴자로서의 지적 불안을 과도한 독서로 누른 사람으로 16000권의 책을 소장한 서재의 주인공이었다. 김승 저자는 시야에서 시각이 나오고 시각을 통해 관점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 분은 전공 분야가 아니라 새 주제로 강의할 분야라 해도 관련된 많은 책을 읽는다고 한다.

 

이 분에 의하면 같은 주제의 여러 책을 읽을 때 가장 어려운 단계는 초반 10~15권을 읽을 때다. 이 단계를 지나면 내용이 상당 부분 겹친다고 한다. 그러면 탄력을 받는 독서가 가능하다. 깊은 독서는 넓은 독서 후에 가능한 프로젝트다. 본문에 꿈과 목표의 가장 간단하고 명확한 차이가 기록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목표가 계획으로 바뀐다면 탁월한 독서다.

 

목표와 계획의 차이는 기간에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 꿈, 목표, 계획, 실천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신의 즐거움에 동참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단한 표현이다. 책은 꾸준히 읽어야 한다. 임계상황에 이르게 되고 읽은 기간, 읽은 분량, 들인 시간, 노력의 크기 등이 때가 되면 모두 통찰로 변한다.

 

사람을 돕기 위해 독서를 한다는 저자는 그렇기에 실용적인 독서에 매달리지만 인문학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또한 베스트셀러를 무조건 경계하지는 말 것을 주문한다. 정리와 정돈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정리는 불필요한 것을 선별해서 유용한 것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고 정돈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정연하게 두는 것이다.

 

책을 많이 가지게 되면 정리, 정돈이 필요하다. ’지식 세대를 위한 좋은 독서, 탁월한 독서, 위대한 독서법‘을 부제로 한 ’서재의 마법‘은 이런 흐름으로 이어진다. 서재를 매개로 한 인터뷰집이다. 책, 나아가 서재에 대한 전문가의 내공이 오롯히 담긴 책인 ’서재의 마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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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21-07-18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깊은 독서는 넓은 독서 후에 가능하다는 말에서 깨우침과 공감을 느낍니다. 한 분야에 대해서도 두루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벤투의스케치북 2021-07-18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저도 남겨주신 글에 공감합니다
 
이웃집 투자자들 - 25명의 투자 전문가가 밝히는 성공 투자 비법
조슈아 브라운.브라이언 포트노이 지음, 지여울 옮김 / 이너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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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투자자들 25명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한 ’이웃집 투자자들‘은 성공 투자자들의 비법이 담긴 책이다. 널리 알려진 이름은 보이지 않지만 각자 처한 곳에서 이름 있는 투자자들이 아닐까 싶다. 두 저자(조슈아 브라운, 브라이언 포트노이)에 의하면 책에 수록된 모든 참여자들은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이나 효율적 시장 이론 같은 학문적 투자 이론에 정통하고 나름의 고유한 장소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투자와 저축, 지출 등에 대해 귀띔해준 전문가들이다.

 

모두 다섯 부로 구성된 가운데 각 부에 속한 다섯 명의 개별 제목이 있고 각 부의 총론격 제목이 있는 것이 책의 특징이다. 1부 돈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하는 것들, 2부 절대 후회하지 않는 투자법, 3부 돈을 버는 감각을 키우는 법, 4부 지식과 경험은 부를 키운다, 5부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 등의 제목이 기대감을 높이는 구성도 흥미롭다.

 

이 제목들은 각 부에 속한 구체적 제목들과 어울려 전체를 돋보이게 한다. 1부에서는 조슈아 브라운의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포트폴리오는 없다‘, 2부에서는 데비 프리먼의 ’빚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3부에서는 애슈비 대니얼스의 ’이리저리 흔들리지 마라‘, 4부에서는 조슈아 D. 로저스의 ’손실에 얽매이지 말아라‘, 5부에서는 돈도 간절해야 모은다’ 등이 특히 관심을 끈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포트폴리오는 없다‘는 지침과 통하는, 5부에 속한 하워드 린드존의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가 전체적으로 명심해야 할 지침이다. 업계에서 가장 많은 소셜 미디어 팔로워를 달성한 조슈아 브라운은 당일 매매나 스윙 매매를 하지 않는다. 그런 솜씨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려면 온종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압박감 때문이다.

 

이 분은 알파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식이 좋아서 (자기 돈으로) 주식을 샀다고 말한다. 이 분은 누구에게나 두루 통용되는 포트폴리오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로 우리의 시간 범위와 위험 요소, 수요와 욕구, 정서적 요인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으로 제시한다. 자신만의 요령을 터득할 때까지 20년이 걸렸다는 이 분은 그간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실수도 많이 했다.

 

데비 프리먼은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 빚지는 일을 결코 두려워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2014년 남동생의 자살을 겪은 데비 프리먼은 우리의 주변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재정적 기회가 모습을 나타냈을 때 기꺼이 행동에 나서고 장기적 목표를 위해 일관성 있게 절제하며 노력하되 미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오늘을 즐겁게 보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가족의 자살을 겪은 프리먼은 배우자의 죽음이나 이혼 같은 중대한 인생의 전환기를 겪고 있는 고객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퇴역 군인 문제, 자살 예방 문제 등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애슈비 대니얼스는 재무적 문제 해결 방법의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 말하며 우리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아 그것을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니체와 라 로슈푸코 풍으로 쓴 투자에 대한 격언을 활용해 글을 써보려 한다는 조슈아 D. 로저스는 자신이 사업에 투자한 결과 손실을 입게 된다면 자신 말고 아무도 탓할 수 없다는 상황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 분은 개인 투자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사람은 단기나 중기적 관점에서는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자기 파괴적인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몇 개의 투자에서 실패를 하더라도 큰 수익을 내는 투자를 통해 승리하는 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이 분은 가장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말을 들려준다.

 

레지타 레이니 브랙스턴은 성장하면서 집에는 항상 돈이 부족했고 재무 투자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투자한 덕분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이 분이 말하는 자신에 대한 투자란 버지니아 대학교의 매킨타이어 경영대에서 공부한 것을 말한다. 흑인 여성인 레지타 레이니 브랙스턴에게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고교 2년 시절 흑인 여성이 공인회계사 면허를 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브랙스턴은 경영학 석사이자 공인재무설계사로 2050 웰스 피트니스 창립자이자 공동 CEO다. 맺는 글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2007년 저서 ’블랙 스완’에서 '검은 백조 이론'을 처음 제시한 레바논 태생의 미국 경영학자, 통계학자, 수필가, 위기분석전문가다. 그가 말한 것은 “나한테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말고 당신 포트폴리오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말하라.”란 말이다. 저자들은 투자란 숙련된 솜씨가 필요한 (그리고 개인적인) 예술이라 말한다. 관건은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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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내가 사는 경기도 최북단 연천군의 주요 마을인 전곡읍 전곡리에서 주한 미군 병사 그렉 보웬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이 일로 인도 동쪽은 양면을 가공한 발달한 주먹도끼가 사용되던 곳이 아니라는 모비우스 이론의 오류가 드러나 구석기 역사가 새로 쓰였다.

 

비만 오면 땅이 질어 진 골짜기로 부르다가 한자로 전곡이라 이름지은 이 마을은 충무로 진고개를 한자로 이현(泥峴)이라 부르고 함경남도 북청군의 한 면을 이곡면(泥谷面)이라 부르는 것처럼 이곡(泥谷)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질다는 뜻과 상관없는 글자 중 질다를 의미하는 진과 발음이 비슷하고 뜻도 반듯한 온전 전(全)자를 택해 전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안데스산맥의 돌이라는 뜻의 안데사이트를 편안할 안자를 택해 안산암(安山巖)이라 번역한 것도 그 중 하나다.

 

나는 한탄강 지질해설사 1년차인 지난해 100이란 수의 옛말이자 온전하다는 뜻이 있는 온이라는 단어로 임진강 주상절리를 설명했다. 온전할 전(全)과 온은 통하는 말이다. 요즘 나는 주상절리는 온전한가, 란 화두를 매만지고 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변해가는 자연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수많은 개별 요소들의 어우러짐으로 스스로 그러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온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이란 책에 제주 오름을 우주를 보는 천문대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부분읃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의미 있는 대목이다. 팩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해석이고 스토리텔링이다. 온전함이란 이렇게 각자 처한 곳에 맞는 최적의 눈으로 자연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얻는 성과물이다.

 

문경수의 책에는 50년 세월 해녀 일을 한 뒤 지질해설사가 된 장순덕 님 사연도 나온다. 장순덕 님은 오랜 세월 물질 하며 본 해저지형 이야기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해설사가 된 분이다. 자기만의 이야기는 이렇듯 힘이 세다. 이 역시 온전함을 만드는 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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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연구 - 따뜻하고 친근한 감정의 힘
권택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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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택영 교수의 ‘감정 연구’는 뇌과학의 최신 성과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및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등을 근거로 감정과 느낌, 공감, 소통 등에 대해 논한 책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윌리엄 제임스의 동생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등의 작품을 뇌과학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새로운 해석을 많이 포함해 눈길을 끈다.

 

책을 수월히 읽으려면 우선 감정과 느낌의 차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 감정(emotion)은 외부 자극에 대한 몸의 반응이고 느낌(feeling)은 인지(認知)다. 감정이 먼저 몸을 통해 나타나고 의식은 그 후 그 감정을 느낀다.(12 페이지) 즉각적 몸의 반응이 감정이고, 그것을 학습을 거쳐 예측하고 인지하는 것이 느낌이기에 느낌은 인지와 거의 같으며 착오를 불러일으킨다.(112 페이지)

 

의식이 진화한 인간에게는 동물처럼 단순하고 즉각적인 몸의 반응과 더불어 더 높은 차원의 느낌이 작용한다.(39 페이지) 감정은 전두엽에 연결된다. 그래서 기억뿐 아니라 학습, 인지. 판단 등 뇌의 모든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사랑이 감정이고 동시에 생각이며 가치 판단이란 의미다.(128 페이지) 사랑은 자의식이고 기억하는 모든 것(14 페이지)이고 감정이면서 동시에 필링 즉 느낌이다.(29 페이지)

 

궁금한 것은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이란 감정과 사랑이란 느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강할까, 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녀 사이의 사랑이 오래가려면 에로스(성적 사랑)만으로는 안 되고 필리아(우정)만으로도 안 된다. 치열한 열정으로 시작하여 때로는 우정처럼 함께 다투면서도 이해하고, 부모의 사랑처럼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가장 높은 신의 사랑을 언젠가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물론 가장 밑바닥에 있으면서 가장 오래된 에로스의 위력이 녹록지 않기에 이런 조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31 페이지)

 

중요한 점은 감정은 힘이 세다는 점이다. 진화한 인간은 가장 강한 동물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취약한 동물이기도 하다. 생명유지와 직결되는 것이 감정이다. 감정이 많고 세분화될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해지며 그런 만큼 생존력이 높아진다.(29 페이지) 감정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유기체의 생명 본능(207 페이지)이고 유기체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적 자극에 대응하는 내적 반응(232 페이지)이다.

 

인간에게도 다른 동물들이 그렇듯 주로 뇌의 아랫 부분에서 감정을 저장하고 몸으로 반응하는 과정이 일어나지만 해마가 진화하여 서사적 기억을 저장하고 학습과 배움을 통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기능은 뇌의 상부에서 주로 맡는데 하부와 상부의 뉴런들은 상호 접촉하고 소통한다. 이때 하부와 상부를 중계하고 소통시키는 역할을 맡는 것은 변연계다. 두려움은 모든 동물에게 있지만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불안심리가 있고 뇌의 상하균형이 깨질 경우 질병(anxiety disorder)이 된다.(39 페이지)

 

중요한 점은 뇌의 상부가 손상되면 생명은 유지할 수 있지만 하부가 손상되면 생명 그 자체를 잃는다는 점이다.(123 페이지) 뇌의 상부와 하부의 대조적인 면처럼 우뇌와 좌뇌의 대조적인 면도 흥미롭다. 우리는 우뇌보다 좌뇌를 중시하지만 우뇌가 손상되면 사물의 전체를 보지 못한다. 좌뇌는 사물의 부분만을 본다.(309 페이지) 감정은 기억의 저장에도 영향을 준다. 뇌 안에서 감정을 수용하여 의식에 전달하는 편도체는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와 붙어 있기 때문이다.(205 페이지)

 

의식은 감정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완벽한 해결은 없고 타협이 있을 뿐이다.(45 페이지) 이 부분에서 이성과 감정의 관계를 철학자들의 대립(?)을 통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립이라 했지만 저자에 의하면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이성에 감정으로 저항했고 니체는 칸트의 이성에 감정으로 반발했다.(23 페이지) 스피노자가 감정을 이성보다 열등하게 보았던 당대의 주류 사상과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감정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은 대단히 뇌과학적이다.(181 페이지)

 

스피노자는 감정을 인지와 구별하지 않았다. 둘은 하나의 살아 있는 실체이자 우리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며 생명의 근원인 신이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마음에서도 일어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몸에서도 일어난다고 주장하며 몸과 영혼을 분리하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자세히 나눠 긴 목록을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욕망이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한 느낌,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25 페이지)

 

책의 1/ 3 지점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대립을 목도한다. 그것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윌리엄 제임스의 대립이다. 프로이트는 상처를 주는 말이나 사건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믿어 평생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상흔을 치유하려 했는가 하면 제임스는 따스함과 치밀함을 가진 사건이나 말이 더 잘 기억된다고 보았다.(122 페이지) 저자는 두 심리학자의 말이 다 옳다고 판정하면서도 영리한 뇌는 생명을 위해 힘들고 아픈 상처를 더 오래 기억하도록 만들었다는 말을 더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도 흥미롭다. 플라톤은 극(劇)이 관중의 감정을 흔들어 공화국 건설에 방해가 된다고 믿었고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을 통해 극이 왜 필요한지 우회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감정이란 억압하면 제거되지 않고 한꺼번에 폭발하기에 살살 달래어 정화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이 감정 게임의 절정이 그 유명한 카타르시스다. 이 단어는 원래 몸 안의 나쁜 내용물을 배설한다는 의학적 용어였다.(137 페이지) 저자는 감정이 이렇게 중요하거늘 왜 지금껏 감정을 억압하고 인지와 판단을 더 높이라고 말해왔는가, 의문을 제기한다.(46 페이지)

 

저자는 감정을 억누르면 이성이 활동할 것이라는 전통적 이분법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느낌이 이미 판단을 내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58 페이지) 저자가 “자주 끌어들이는” 학자가 있다. 윌리엄 제임스가 당사자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의 통찰이 최근 뇌과학자들에 의해 그대로 증명되기 때문이다.(180 페이지)

 

윌리엄 제임스는 “한 인간의 자아는 그가 그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총 합산이다. 그의 몸과 심리적 강도뿐 아니라 옷과 집, 아내와 아이들, 그의 조상과 친구들, 명성과 직업, 그가 소유한 땅과 말, 그리고 심지어는 요트와 은행 수표까지 포함된다. 이 모든 물질이 그에게 같은 감정을 부여한다.”고 말했다.(49 페이지) 한 인간이 물질과 상관 없이 순수한 개체로 존재한다고 믿고 가르쳐온 초월적 자아는 없고 영혼과 몸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가치와 물질이 그의 의식을 구성한다는 의미다.

 

윌리엄 제임스는 1884년에 쓴 ’감정이란 무엇인가‘에서 (슬퍼서 우는 것이고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울기에 슬프고 웃기에 행복하다고 말했다.(126 페이지) 행동이 일어난 뒤 인지가 발생한다는 윌리엄 제임스의 가설은 최근 뇌과학을 통해 진실로 밝혀지고 있다. 윌리엄 제임스의 현상학과 심리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 가운데 베르그송이 있다.(73 페이지) 베르그송은 기억을 현실에서는 접근 불가능한 순수기억, 습관적 기억 즉 몸의 기억,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회상 혹은 삽화적 기억인 이미지 기억으로 나누었다.(72 페이지)

 

베르그송이 기억을 이미지 기억으로 부른 것은 우리 뇌가 과거의 사실을 현재 입장에서 이미지화하여 떠올린다는 의미다.(80 페이지) 이는 감정과 느낌은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기에 어떤 대상에 대한 고정불변의 절대적 감정이나 판단은 있을 수 없으며 그런 만큼 대상에 대한 감정과 인지는 주관적인데 이는 대상도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53 페이지)이라는 말과 함께 보아야 할 말이다.

 

전두엽 이야기를 하자. 나의 전두엽은 시간과 장소의 영향에 따라 계속 변모하는 경험들을 저장하고 인출한다. 이것이 컴퓨터와 다른 점이다.(148 페이지) 뇌의 이런 특성이 무한한 상상력과 독창성의 원천이다.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내 느낌이 존재하기에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감정과 인지가 달라진다(151 페이지)는 말도 가능하다. 많은 뇌과학자들이 동의하듯 진화는 최선의 대응을 위해 현재를 중시한다. 과거를 위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 최선으로 대응하기 위해 회상하는 것이다.(155 페이지) 이런 것을 전이(轉移)라 한다. 컴퓨터는 뇌와 달리 전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경험을 저장하는 전두엽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해마에 의해 업데이트된 자료들을 내놓는다. 그리고 경험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해마는 옆에 붙은 편도체의 영향을 받는다. 편도체는 주로 하부로부터 온몸의 반응인 감정을 기억하여 상부로 전달하는 변연계의 일부다. 해마는 현재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 그러므로 주로 이들의 합작에 의해 저장된 과거는 언제나 현재 입장에서 재해석된다. 시간은 과거를 연결하는 이 서사적 기억에 의해 태어난다.

 

이것이 의식의 진화다. 이때 의식은 나라는 자의식이다. 여느 동물들과 달리 나의 경험, 나의 과거, 나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나의 시간이고 주관적이다. 그런데 자의식은 개인의 의식이면서 동시에 사회 의식이다. 그래서 타인과의 약속이 함께 작용한다. 시계와 달력이 필요하고 이로써 내가 감지하는 시간은 달력이나 시계처럼 규칙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계적 시간과 다르게 간다.(167, 168 페이지)

 

프로이트 이야기가 재미 있게 다가온다. 저자는 그를 아주 오랫동안 연구했음에도 왠일인지 그의 말을 자꾸 오해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프로이트의 억압은 의식 안에 무의식이 위장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억압된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참된 뜻이다. 무의식을 억압해야 한다는 의미가 이니라는 말이다.(140 페이지) 자아가 현실을 대변하고 초자아가 강력한 이드의 대변자(223 페이지)라는 말도 그렇다. 이는 프로이트의 말이다. 프로이트의 글에서 중요한 것은 초자아가 이드의 변형이라는 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뇌 구조를 연상시키는 구조의 책이라는 설명도 흥미롭다. 파충류에서 시작하여 포유류를 거쳐 인간의 뇌에 이르는 진화의 단계처럼 ‘월든’은 먹고 잘 곳을 마련하는 몸과 물질의 요구에서 정신과 우주의 깊이를 탐색하는 상승구조의 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신적인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연의 일부인 파충류의 생명 보전 욕구가 강력하게 남아 있다. 소로는 “나 자신의 일부분이 그 잎사귀이며 식물의 부식토”라는 말을 했다.

 

이런 새로움은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그림에 대한 해석 부분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그림은 당연히 2차원의 평면에 그려진 것이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화폭에 파이프를 담은 그림이다. 우리가 실제 파이프로부터 보는 것은 깊이감(입방체)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렇게 저장된 경험의 눈으로 그림에 없는 것을 본다. 그림 속 파이프가 실체가 아닌 재현(된 것)이라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싱겁다.(146 페이지)

 

저자는 예술을 생명을 보존하는 항상성의 뿌리로 정의한다.(141 페이지) 18개월 이후 자의식이 생기고 사회화가 시작되기 전 몸의 기억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유아기 망각에서 망각은 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회상이라는 기능을 얻으면서 지워진 것일뿐 몸의 기억으로 더 오래 남는다는 의미다.(309 페이지)

 

예술 작품이 꽉 막힌 감정을 흐르게 하여 재조정하고 균형을 취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을 준다는 에른스트 크리스의 견해가 후에 항상성의 원리로 발전했다.(267 페이지) 에른스트 크리스는 프로이트가 생전에 출판하지 않은 중요한 글인 ‘과학적 심리학에 관한 연구’(1895년)를 발견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1950년대)한 사람이다.

 

몸이 느끼고 의식이 판단한 결과로 얻는 지혜인 공감은 뇌와 심리학을 연결하는 가장 유용한 고급 개념이다.(311 페이지) 그토록 오랜 시간 예술이 지속된 이유는 공감의 효력 때문이다. 공감이라는 개념을 음미하게 된다. 덧붙여 기계와 다른 인간의 특성(스스로 경험하고 실수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란 개념도 음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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