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발견 - 지휘자가 들려주는 청취의 기술
존 마우체리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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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우체리의 ‘클래식의 발견’. 오랜만에 만난 읽을 만한 음악책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고전음악은 공동체, 자연, 인간의 열망과 승리, 약점, 그리고 혼돈에 형식을 부여하려는 욕망을 기념하는 음악이다.(15 페이지) 같은 맥락으로 저자는 예술을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혼란스러운 것을 모방과 상징체계를 통해 조직적으로 구성하려는 인간 욕구의 결과물로 정의한다.(28 페이지) 저자는 인간이 대략 20만년전부터 지구에 살았다고 말한다.(26 페이지) 사피엔스를 두고 이르는 말로 보인다.

 

저자는 음악은 자연의 힘을 활용하는 바 여기서 자연이라는 말은 우리 주위의 자연과 우리 안의 자연 즉 인간의 본성 모두를 뜻한다고 말한다.(55 페이지) 여기서 스피노자의 능산적(能産的) 자연과 소산적(所産的) 자연을 떠올리게 된다. 능산적 자연은 세계의 근원적 원인체계를 구성하는 신과 신의 속성들이다. 소산적 자연은 세계의 결과체계를 구성하는 양태다.

 

초기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세상에 대한 은유와 상징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들은 대략 4만년전 동굴벽에 2차원 이미지를 그렸으며 이런 이미지를 3차원 동물의 재현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움직임을 나타내고 싶으면 동물에 다리를 추가로 그려냈다.(66 페이지)

 

새로 나온 연극을 보고 온 사람에게 무엇에 대한 내용이었어요?라고 질문할 수 있다. 고전음악에 대해서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대신 이렇게 물을 수는 있다. 어떻게 들리던가요? 하지만 여러분이 무언가를 느끼고 경험했더라도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미처 없을 수도 있다. 음악의 경험은 몸으로, 감성으로, 영혼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경험될 뿐인 무언가를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들렸다는 말은 표면적인 부분이나 양식을 기술하는 것이지 그 음악이 주는 느낌이나 효과는 전하지 못한다.(137, 138 페이지) 저자는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이 말한 신체 예산(body budget)이란 개념을 말한다.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돈이 필요할 때를 예상해서 자원을 미리 확보하듯 캄브리아기의 작은 생물들이 배고픈 포식자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살아남으려면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방법이 필요했다. 신체예산에 관한 한 예측은 늘 반응을 앞지른다. 포식자의 공격에 앞서 움직일 준비를 한 생물들은 포식자가 덮치기를 기다린 생물보다 생존 가능성이 더 컸다.(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26 페이지)

 

캄브리아기(고생대의 첫 시기)에 포식자가 출현함으로써 지구는 경쟁이 더 심하고 위험한 것으로 탈바꿈했다. 잡아먹는 자나 먹히는 자나 모두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더 많이 감지하도록 진화했다. 그들의 감각계는 더 정교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앞의 책 24 페이지) 아무리 천재라 해도 일관되게 위대한 곡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181 페이지)

 

책 중간쯤에서 익숙하지 않은 작곡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안나 소르발스도티르(Anna Sigriður Þorvaldsdottir; 1977 - )다. 사람들은 날카롭고 거칠기 이를 데 없는 그녀의 음악을 그녀의 고향 아이슬란드의 초현실적 지질구조와 연관시키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블랙홀로 떨어지는 사변적 은유라 표현했다.

 

저자는 지휘자들은 영원한 학생이라 말한다. 공연에 참석하는 청중과 마찬가지로 항상 배우고 지식을 넓혀간다는 것이다.(201 페이지) 저자는 음악과 관련하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항상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 말한다. 청중이 음악의 궁극적인 해석가다.(207 페이지) 작곡가나 연주자의 취향이 어떻든 간에 궁극적으로 음악을 해석하는 사람은 여러분이다.(284 페이지)

 

도전과 좌절의 숱한 연습의 시간들, 고독하고 힘들기만 하고 보상은 없을 때가 많은, 그럼에도 손에 든 악기에 숙달하고 싶다는 목적, 그래서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여러분에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음악가들 모두가 자신이 고른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겠다는 일념에 평생을 바친다...모든 연주자는 저마다 얻고자 하는 이상적인 소리가 있다. 손목의 각도, 활이나 손가락 위치 등을 미세하게 바꿔가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상적인 소리에 다가가려 애쓴다.(222, 223 페이지)

 

타협은 정치나 종교, 철학 담론에서 다소 부정적인 어휘로 사용되지만 음악은 타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실내악은 타협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다. 지휘자가 이끄는 관현악곡으로 규모가 커지면 타협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달라진다.(248, 249 페이지) 여러분이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다면 그 작곡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편으로 실내악보다 좋은 것이 없다.

 

운 좋게 연주자들을 볼 수 있는 작은 방에서 실내악을 듣는다면 여러분은 곧바로 공동 연주자의 위치로 끌어올려지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그들이 애쓰는 것을 느끼고 음악적 요소들을 서로 건네는 모습을 볼 것이다, 서로 눈을 맞추고 숨소리와 몸짓,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249 페이지)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꾸준한 지원과 영감, 비판, 보살핌을 여성들에게 의존하여 구했다.(273 페이지)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봄의 제전’을 실제로 작곡한 것이 아니라 ‘봄의 제전’이 지나가도록 통로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바그너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완성 악보를 보고는 내가 이 곡을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어란 말을 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책들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와 일단 그곳에서 쓰여지고 나면 내 몸을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나는 공허한 기분에 빠져 내 몸 속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나는 한 번도 나의 개인적 정체성을 느껴 보았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에 불과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곳에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일종의 교차로인 것입니다.”(이정우 지음 ‘가로지르기’ 87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영원히 음악과 함께할 것이라 말한다. 음악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는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이다.(293 페이지) 종횡무진 글 잘 쓰는 지휘자/ 음악교육자의 책은 이렇게 끝난다. 앞서 말한 스트라빈스키, 바그너의 경우 걸작을 쓴 사람이지만 만일 평범한 곡을 쓴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말하면 그 사람은 수준이 떨어지는 곡을 쓰고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사람처럼 보이려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꼭 걸작을 통해서만이 작곡가가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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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곡의 결혼행진곡을 듣는다. 바그너의 것(로엔그린이란 오페라에 나오는)과 멘델스존의 것(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이다.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은 신부가 입장할 때 울려퍼지고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은 신랑, 신부가 퇴장할 때 울려퍼진다. 사실 바그너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브람스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바그너 음악을 듣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나는 브람스 음악 애호가인 것과 별개로 바그너 음악을 듣지 않는다. 어떻든 사이가 좋지 않았던 멘델스존과 바그너의 음악이 결혼식장에서 나란히 울려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바그너는 멘델스존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만큼 브람스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브람스는 교향곡 3번 2악장에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바그너의 유도동기(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를 담았다. 이를 지휘자이자 음악 교육자인 존 마우체리는 브람스가 적이 아닌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며 차분하게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바그너의 대단한 성취를 기리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렇듯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존 마우체리의 ‘클래식의 발견’은 참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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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줄로 사로잡는 전달의 법칙
모토하시 아도 지음, 김정환 옮김 / 밀리언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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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줄로 사로잡는 전달의 법칙‘은 핀포인트 레슨이란 말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하나의 단어가 들어가는가 들어가지 않는가는 큰 차이로 연결될 수 있다. 문장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효과를 낼 수 있다. 저자는 말의 전달력을 높일 것을 주문한다. 내용이 좋아도 전달력이 떨어지거나 적절하지 못하면 원하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가령 내세울 것이 없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카페를 숨겨진 은신처 같은 카페로 소개하는 것은 하나의 요령이다. 지금 시대는 주목을 끄는 기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구성과 연출의 차이로 인해 유튜브와 텔레비전 방송의 길이 차이가 난다. 대부분 개인이 만드는 유튜브는 구성과 연출력이 떨어져 프로그램을 길게 만들기 어렵다.

 

흔들기와 받기는 텔레비전 방송의 기본 구조다. 사장이 전 사원 급여 10퍼센트 인상이라는 결단을 내린 덕분에 회사는 커다란 성장을 이루었다.(a 문장)보다 회사가 커다란 성장을 이루는 계기가 된 사장의 결단. 그것은 전 사원 급여 10퍼센트 인상.(b 문장)이 효과적이다. 그것은이란 말이 주목을 끈다. 상대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도록 한다. 상대가 피곤하지 않게, 머리를 쓰지 않게 해야 한다.

 

구성과 연출이란 상대가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를 말한다. 텔레비전 방송은 흔들기와 받기 말고 다양한 기술을 사용한다. 핵심 사항을 전진 배치하라. 오프닝 타이틀(요약 영상)로 기대감을 심어준다. 시청자가 방송을 봄으로써 얻을 이점을 확실히 전달한다.

 

“오늘 같이 점심 먹을래요?”라고 하기보다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이 근처에 있는 중국집을 소개했는데 굉장히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오늘 점심에 같이 가보지 않을래요?”처럼 말하자. 후자의 경우 듣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제시되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때 비로소 움직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흔한 질문으로 공감을 얻도록 하자.

 

맛집 평가 사이트에서 평점이 높은 식당을 찾아갔는데 실망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쓸 경우 평범하게 글을 쓰면 주목을 얻지 못하기 쉽다. 대신 “맛집 사이트에서 평점이 5점 만점에 3.5점 이상이기에 기대를 품고 찾아갔는데 너무 평범해서 실망했던 경험은 없으신가요?”나 “사진에 나오는 식빵은 푹신푹신하고 정말 맛있어 보였는데 직접 가서 먹어보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던 적은 없으신가요?” 같이 쓰도록 한다.

 

비장의 카드는 앞에 꺼낸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의 경우 포인트별로 나누어 설명을 전달한다. 몇 가지 포인트를 전하는 식으로. 길게 나열하기만 하면 효과를 못 얻는다. 매력 하나, 매력 둘, 매력 셋, 매력 넷 하는 식으로 하자.(일목요연의 미덕을 통해 효과를 보는 것이다.) 단계는 다섯 개를 넘지 않도록 한다. 정보에 주제와 관점을 넣는다. 상대의 머리에 정보를 집어넣는 반복의 힘을 활용한다.

 

“수없이 옻칠을 해서 광택을 내는 칠기처럼 같은 정보를 반복해서 전하면 상대방의 뇌에 그 정보를 각인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정보를 계속 똑같이 전하면 상대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91 페이지) 그래서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맛집의 경우 1) 점주의 매력이나 철학의 관점에서 접근, 2) 입소문이나 블로그 관점에서 접근, 3) 미식 관련 잡지나 인터넷 기사 관점에서 접근 해보자.

 

정공법이 아닌 방법을 비법이라고 표현한다. 드러나지 않고 평범했던 사람을 서클의 숨은 중재자라 표현해보자. 좁은 실내 공간을 가진 음식점을 아담하고 가정적인 음식점이라 소개한다. 손님이 없어서 썰렁한 음식점을 차분한 음식점이라 소개한다.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나쁘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좋은 점을 가장 좋은 점으로 바꾸어 표현한다. 당연한 것에 주목하라.

 

쇠고기 본연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일품 쇠고기 요리처럼. 평점한 명한 지갑을 소개할 경우 방향을 돌려 제작자를 소개하는 방식도 있다.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단맛이 나지 않는 음식을 달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반전 표현을 염두에 둔다. 진하다, 강하다는 어떤가. 비교 우위를 통한 반전 효과도 생각하자. 집을 중개(仲介)할 때 상대적으로 좋은 집은 나중에 보여주자. 그러나란 말로 긴장을 준다.

 

일에 대한 자세가 안일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밀레니엄 세대 중에 최선을 다해 일하며 자신에게 엄격한 젊은 경영자도 있었다,(a 문장)보다. 일에 대한 자세가 안일하다는 평가가 많은 밀레니엄 세대. 그러나! 그런 밀레니엄 세대 중에 최선을 다해 일하며 자신에게 엄격한 젊은 경영자가 있었다.(b 문장)가 낫다. 일을 하는데 팀장 메시지가 왔을 경우 일하고 있다고 하기보다 지금 일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믿음을 준다.

 

간판을 사용해 권위를 높이자. 3대 ( ) 중 하나. 팔로워 ( ) 만명.. 긴급, 대박, 철저, 최강 등의 말은 강한 이미지를 주는 단어들이다. 딱 하나란 말로 100% 반응을 끌어내자. 일상 생활의 불필요한 지출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앱이 인기!란 말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수입이 감소해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는 지금 일상생활의 불필요한 지출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앱이 인기!란 말은 배경을 넣은 설명이다.

 

수치 데이터로 확신을 준다. 온난화와 녹지 감소에 따라 여름철 기온 상승으로 일사병 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지 말고 일사병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가는 사람의 수는 연간 6만명에 이릅니다라고 하자. 구체적 수치를 예시한 것이다. 익숙한 수단을 알차게 이용하는 것이 전달력을 높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가장 큰 것에 급(級 등급 급)이란 말을 붙이면 모호한 표현이 되어 오히려 손해를 본다. 가장 크지는 않은 것에 급이란 말을 붙이면 최대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 이익이 된다. 모호한 표현은 전달력을 떨어뜨린다. 군더더기 표현을 하지 말자. 전달력이 약하다는 점이라고 하지 말고 전달력이 약한 점이라고 한다. ’오해를 부르는 사태가.‘라고 하지 말고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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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책 - 세미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공부 함께하기
정승연 지음 / 봄날의박씨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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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seminar)는 토론식 수업을 의미하는 말이다. 정승연의 ‘세미나책’은 세미나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 공부에 대해 논한 책이다. 저자는 출판사 블로그 관리를 맡고 있고 인문학 세미나의 강의 수강도 하고 있는 분이다. 써야 할 글이 많은 분이다. 저자는 경쟁력 담론을 인문학과 무관한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인문학을 비판과 대안 창조의 학문으로 보는 나의 문제의식에 수렴하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관성적인 생각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습관처럼 굳어진 나의 관점에 균열을 내고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하리라. 저자는 답은 잠정적이기에 다시 갱신된다고 말한다. 이는 심지어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글쓰기는 연습(187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다른 말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인문학 공부는 잠정적이라는 다른 말(22 페이지)과도 통한다. 저자는 배움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서 있지만 배움은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온다고 말한다.(26 페이지) 저자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 원리에 기반하는 대상이라 말한다.(29 페이지) 세계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 아닌 특정 원리에 기반하는 현상이라는 말, 그리고 배움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서 있다는 말은 학문이란 현상을 넘어서는 본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에 의하면 세계관을 의식하며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원리주의와 회의주의라는 두 개의 극단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세계란 자기가 경험한 것이기에 그에 대한 질문은 결국 ‘나’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32 페이지) 공부란 ‘나’를 해석하는 문제라는 의미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어느 순간 공부를 왜 하지?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국 공부를 해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문을 두고 생각해본 결과 안 해도 된다는 결론이 났다면 그때 공부를 중단하면 된다는 것이다. 세미나를 통해 읽기를 이어가면 서로 다른 구성원들 속에서 그 밀도가 높아짐을 느끼게 된다.(42 페이지)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또는 우리 모임의 바깥과 연결되는 것이다. 자기 세계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관건은 어려운 책이라도 끝까지 혼자서라도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한 번 의미 깊은 말을 한다. 경험이 많지 않으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74 페이지) 나는 평소 공부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는 말을 하곤 한다. 공부할 것을 찾아내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니 글감을 찾는 노하우를 갖춰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어렵더라도 해설서에 의지하지 않고 원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저자가 말하는 원전이란 원서를 우리 말로 번역한, 그 철학자가 직접 쓴 1차 텍스트를 말한다.) 저자는 원전을 읽는 고생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 해설서를 읽으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79 페이지) 그렇게 해설서를 경유해서 다시 원전으로 돌아오면 그제서야 조금씩 원전이 건네는 말이 들려온다.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일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글자도 이해되지 않던 문장이 단박에 이해될 때가 있다.(88 페이지) 고전이란 시간을 견디는 책이다. 매번 다시 태어나는 책이라는 의미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18세기 낭만주의자들에게 신성한 자연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20세기 중반에는 주체 중심의 근대철학을 극복하는 토대를 마련해주었고 오늘날에는 뇌과학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것이다.(9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읽기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글을 읽는 동안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머릿속을 뒤적거려야 한다. 잘 읽히지 않는 대목을 만나면 샅샅이 훑어야 하고 이것도 맞춰 보고 저것도 맞춰 보며 텍스트를 의미화해야 한다.(102 페이지) 공부 하는 이유는 앎을 확장하고 상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104 페이지)

 

텍스트를 읽는 것은 작은 부분들을 그러모아 전체를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앎들을 텍스트의 내용과 합치고 뭉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앎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104 페이지) 이 말을 들으며 인간은 안식처가 있는 덕분에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이야기를 주고받는 능력 덕분에 적절한 안식의 공간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이야기의 끈’ 5 페이지)는 말을 생각한다.

 

내용상 똑같은 지식이어도 내가 내 삶으로 지속적으로 불러들이는 것들이 아닌 지식들, 무언가를 위해 공부한 지식들은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생명력을 급속도로 잃고 만다.(108 페이지) 인문 고전 읽기는 텍스트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독특함과 차이를 수행하는 능력을 확대하는 일이다.(116 페이지)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 연구자가 아니어도 공부하는 삶은 가능하다. 자유로움이 그들의 생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지식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은 없다. 기존 지식들을 연결하거나 분해, 조립하면서 재구성한 것들이다. 그렇게 스스로 재구축한 것들이야말로 자기 인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의 지식을 만들려면 원재료가 있어야 한다. 기존 지식들이다. 읽고 또 읽어야 한다.(126 페이지)

 

인문 고전 텍스트의 요점 같은 것은 세미나가 끝나고 난 후에 다 잊어버려도 상관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질문을 만들고 그에 답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발제란 세미나에서 회원들을 대신해 질문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140 페이지) 문제로 보이는 것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문제와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다.(140, 141 페이지) 세미나에서 발제문은 읽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그 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읽는 것과 동시에 의문을 만들어야 한다.

 

질문을 위한 질문이라도 만들려고 마음을 먹고 읽어야 겨우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발제문을 쓸 수 있다.(185 페이지) 텍스트를 바탕으로 글을 쓸 때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텍스트를 고스란히 옮길 가능성이 높다. 그럴 바에는 그냥 텍스트를 보면 된다. 각각의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면 아주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발제문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152 페이지)

 

이 부분을 읽으며 에세이는 유기적으로 이어지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공부는 지식이 나를 거쳐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160 페이지) 자신의 지식을 말로 바꾸어 밖으로 내놓는 것은 중요하다. 세미나는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다.(161 페이지) 세미나에서는 내가 읽어내지 못한 지식을 다른 사람은 읽어내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입을 거쳐 나온 그 지식이 내가 얻은 지식들을 활성화시킨다.(166 페이지)

 

이를 보며 우리 모임을 생각한다. 세미나 모임은 아니고 비영리 모임인데 공통 이슈 외에 구성원들의 주된 관심사가 각기 다른 것이 특징이다. 세미나는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공부방식이다.(176 페이지) 저자는 공부는 단지 아는 것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차라리 모르는 것을 늘려가는 일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178 페이지) 글을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 써지지 않아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잘 쓰려면, 최소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능한 한 적게 하려면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184 페이지) 저자는 작가들이 글을 보통 사람들보다 잘 쓰는 이유가 써야만 하는 글, 쓰기로 약속한 글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185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과거의 글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그 만큼 그가 성장했음을 증거한다고 말한다. 머리에서 나와 손을 타고 화면에 글자로 출력되기까지 엄청난 변환과 왜곡이 일어난다. 이 역시 많이 쓰는 것으로 점차 극복할 수 있다.

 

관건은 어려운 읽기, 쓰기, 말하기에 적응하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쓰기로 약속이 된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을 쓰지 않고선 공부를 한 것 같지 않은 데까지 가게 된다.(197 페이지) 나는 서평을 쓰지 않으면 책을 읽은 것 같지 않다거 느낀다. 창의성이란 숙달과 관련된다.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이해하는 것에 매몰되면 정답이라는 가상을 추구하게 된다.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모두가 좁은 의미에서든 넓은 의미에서든 진리를 추구하는 학인이고 해석자다.(201 페이지) 우리는 애정을 가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최근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을 선물 받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다. 인문학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더 설득력을 가진 해석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틀릴 가능성이 없는 해석은 없다는 의미다.(20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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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0-06 0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

초딩 2021-11-07 11: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1-07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11-07 1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thkang1001 2021-11-07 13: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벤투의스케치북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1-08 18: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이하라님

벤투의스케치북 2021-11-0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thkang1001님
 

쓰기나 과제 마감에 쫓기는 중에 관련 없는 책을 읽고 서평까지 쓰려는 이상한 버릇이 또 나타나고 있다. 바쁜 중에도 당장 필요하지 않은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서평까지 쓰려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듯 하다. 읽다 보면 쓰지 않을 수 없지만 읽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황 없을 때에는 자제해야 할 욕심이다. (서평을) 쓰고 싶은 책은 며칠만에 다 읽은 정승연의 ’세미나책‘이다.

 

과제 마치면 책만 읽게 될 시간들이 올 것이라 믿지만 어긋난다. 다른 과제, 다른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랜 만에 알라딘에서 내 리뷰를 읽고 구매에 도움을 받은 사람이 보낸 thanks to link를 두 건 받았다. 우에노 치즈코의 ’논문 쓰기의 기술‘, 니시나리 카츠히로의 ’선천적 수포자를 위한 수학‘ 등이다. 책 값의 1%에 해당하는 120원, 150원을 각각 받은 것이지만 기분 문제다.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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