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519) 동기 이 ** 선생님의 창경궁 해설을 들었다. 정조,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 영조, 영빈 이씨 등의 이름이 등장했고 서울대 의대에 위치한 경모궁(景慕宮) 터 이야기도 나왔다.

 

해설 하루 후인 어제 이** 선생님은 단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세종은 누구나 다 추앙하는 임금인데 정조는 그에 못 미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금 보니 세종 시대와 정조 시대의 차이 358- 보다 정조 시대와 현대의 차이 242-가 더 짧네요. 새삼 조선이 얼마나 오랜 왕조였는지...”

 

이런 인식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오래 전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이 컴퓨터로 몸을 유지하는 과학자 스티븐 호킹과 목발을 짚은 사람의 차이비장애인과 목발을 짚은 사람의 차이보다 크다는 말을 한 이래 처음 접하는 인식이다.

 

같은 범주에 드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범주 내와 범주 밖의 사람의 차이보다 큰 것은 이례적이다. 어떻든 세종은 누구나 다 추앙하는 임금인데 정조는 그에 못 미치는 것 같다는 이 ** 선생님의 말은 정확하다고 해야 한다.

 

올해가 세종 즉위 600년의 해이기 때문에 그런 면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해야 하리라. 정조는 세계사에 유례(類例)가 없는 문체반정을 일으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조선 멸망의 단초(端初)를 제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 내 관심은 미시사(微視史)와 일상사(日常史)에 닿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치에 대한 관심은 놓을 수 없다. 역사에 대한 식견이 많이 부족한 내가 현 단계에서 몰두해야 할 것은 판단이 아니라 많은 자료를 접하는 일이다.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성급히 결론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점은 겸재(謙齋) 정선(鄭敾)에 대해서도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관념 산수, 실경(實景) 산수, 진경(眞景) 산수로 나뉘는 그림 세계에서 말할 것은 이런 그림 구분이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의 개념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겸재가 진경 산수를 그렸다는 의미는 그가 진경 산수를 그린 이후 계속 그런 유의 산수만을 그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진경 산수를 그리기도 했고 실경 산수를 그리기도 한 것이다.

 

클라인은 망상 분열적 위치와 우울적 위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두 개념은 유아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보이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망상 분열적 위치는 죄의식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홍준기 지음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 366 페이지)

 

실경(實景) 산수 - 진경(眞景) 산수 구분을 정신분석 용어를 써서 비유하는 것이 기분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겠지만 클라인의 말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망상 분열적 위치와 우울적 위치 사이의 동요는 언제나 발생하며 정상적 발달의 일부이다.따라서 발달의 두 단계 사이의 명확한 구분선을 그을 수 없다. 게다가 변화는 점진적 과정이고 두 위치는 일정 시간 동안 어느 정도 섞이고 상호작용한다.”(‘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 360 페이지)

 

클라인이 비가역적인 단계 또는 시기라는 말이 아닌 위치라는 용어를 쓴 것은 두 위치가 일정 시간 동안 어느 정도 섞이고 상호작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겸재의 진경 산수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진경인가 아닌가는 관람자의 주관적 판단에 달린 문제이기에 학술용어가 될 수 없다(동국대 김병헌 교수)는 주장,

 

작품의 소재나 주제 표현법 등이 한국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표현이 형성된 배후에 중국의 예술사조가 상당히 개입되어 있었기에 우리 특유의 현상이 아니라 동아시아 미술에 공히 나타나는 현상(한정희 교수 지음 한국과 중국의 회화참고)이란 주장 등이다.

 

김병헌 교수는 진경산수라는 용어를 기존에 쓰던 실경산수라는 용어로, 진경산수화풍이나 진경산수화법은 겸재 산수화풍과 겸재산수화법으로 바꾸면 간단히 정리 되고 겸재 정선은 조선 후기에 유명한 화가로 중국의 남종화법을 토대로 독창적 기법을 구사하여 뛰어난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산수화 중에 어떤 작품은 표암 강세황으로부터 동국진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한정희 교수는 정선이 중국 화법을 연구해 그것을 우리 산천을 묘사하는 데 적용함으로써 우리의 새로운 산수화인 진경산수화를 창안했다고 주장했다. 저자가 말했듯 기운이 넘치고 토속성이 감도는 분위기가 살아 있는 겸재의 그림은 중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취이지만 그것이 순수하게 우리의 전통 속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한국과 중국의 회화’ 231 페이지)

 

정리하자면 겸재에 대한 논의는 그가 1) 진경 산수화를 창안했고 그것은 순수한 우리 화풍임을 인정하는 논의, 2) 진경 산수화란 용어는 관람자의 주관적 판단에 달린 문제이기에 학술 용어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동국대 김병헌 교수),

 

3) 그가 중국 화법을 연구해 그것을 우리 산천을 묘사하는 데 적용함으로써 우리의 새로운 산수화인 진경산수화를 창안했고 기운이 넘치고 토속성이 감도는 분위기는 중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지만 그것이 순수하게 우리의 전통 속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라는 논의(한정희 교수) 등으로 나뉜다.

 

나는 세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세 주장 모두 참고해 모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상하고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주역 지산겸(地山謙)괘에서 나온 겸재(謙齋)라는 호를 공부하고 그 호가 그의 작품 및 인품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만도 아니고 예술만도 아니고 예술과 사상에 관한 역사이기에 참 어렵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겸재의 예술적 성취이다. 물론 이 부분도 내가 느끼고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길러야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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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킹 980g - 전국 백패킹 성지 가이드
고요한 지음 / 성안당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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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킹이란 짊어지고 나르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반드시 장비를 챙기고 다녀야만 백패킹은 아니다.(79 페이지) 여행가 고요한의 백패킹 980g’은 백패킹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주로 걷기에 해당하는 백패킹은 산을 걸을 수도, 바닷가를 걸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이동 중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냄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백패킹은 얼마나 짐을 적게 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가가 관건이다. 중요한 사실은 짐을 줄이자는 것은 자연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둔다는 말이다. “여행에 중독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조언은 예산부터 신과 기타 장비 등에 이르기까지 세세하다.

 

등산화 끈을 묶는 방법까지 귀띔할 정도인 저자에 의하면 백패킹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배낭(의 무게)이다. 그런가 하면 침낭과 매트는 생존과 직결된 아이템이다. 책은 세세한 온갖 사진들을 담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텐트에 큰 욕심이 없다면 중저가를 고르라고 말한다. 히말라야에서 야영할 것이 아닌 이상 텐트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고 소비는 합리적일수록 좋다는 것이다.

 

당연히 취사장비도 필요하고 등산 장비도 필요하다. 등산 스틱, 의자, 테이블, 실타프, 의류도 주의해 골라야 한다. 헤드 랜턴, 물통, 보조 배터리, 다용도 칼, 상비약 등도 챙겨야 한다. 중요하게 알게 된 사실은 현행법상 야산에서의 취사는 지정된 야영장을 제외하면 전국 어디서든 불법이라는 점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많은 백패커들이 아슬아슬하게 취사한다.

 

국가가 지정하고 관리하는 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 자연휴식년제 지정장소, 생태계 보존 지역 등에서 텐트를 칠 수 없다. 저자는 지난 201010월 중순 배낭 하나 둘러메고 한 달간 강원도 도보 일주를 하던 중 만난 한 백패커로부터 이런 저런 정보를 얻었다. 그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은 저자는 2013년부터 본격 백패킹을 결심한다.

 

그런데 여행 시작점인 천년 고찰 월정사에 도착해 난처한 지경에 이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월정사는 지금도 내 감성을 자극한다. 어쩔 수 없이 도둑 야영을 한 이야기를 저자는 전한다. 저자는 백패킹에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결행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체력 부담, 야생의 무서움, 행동의 불편함 때문이라 말한다.

 

체력적인 고단함보다 떠나기까지의 결정이 더 힘든 것이라는 저자는 그러나 일단 무모하게 떠나보면 새 여행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87 페이지) 평창 오대산, 인천 덕적도, 대부도, 하동 섬진강, 제천 청풍호와 비봉산, 파주 파평산, 여주 강천섬, 고창 선운산, 영남 알프스, 정선 연포마을, 인천 자월도, 인천 대이작도, 인천 굴업도, 울진 전곡리, 삼척 덕풍계곡, 정선 만항재에서 동해 무릉계곡, 정선 방장산, 평창 장암산, 강릉 괘방산, 정선 민둥산, 고흥 마복산, 영동 민주지산, 홍성 오서산, 태백 태백산, 횡성 태기산, 강릉 안반데기, 김녕 성세기 해변, 높은 오름, 한라산 둘레길, 우도 비양도, 돈내코 계곡 등을 추천한다.

 

주제별로 나뉘어 있는 것이 특색인데 가령 백패킹과 어울리는 섬, 최고의 풍경, 환상적인 겨울 풍경, 제주도라는 특별한 이름 등이다. 저자의 책에는 사계절이 담겨 있다. 우리 나라의 자연적 조건이 반영된 편집이다.

 

물론 우리는 뚜렷한 사계절이 우울증과 연관이 깊다는 사실을 안다. 점점 여름과 겨울이 길고 봄과 가을은 짧아지는 듯 해 아쉽다. 이번 책에서 나는 많은 명소를 처음 접했다. 우리가 찬사를 보내는 자연에 꽃과 나무, 풀들이 포함되어 있고 산과 바다를 빼놓을 수 없다. 나라면 어땠을까?

 

꽃과 바다를 노래한 시들을 읊으며 백패킹을 실행할 수 있을까? 체력 걱정을 가장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의 주된 요지가 체력에 있다. 월정사(月精寺)가 있는 오대산도 좋고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도 내 로망이다.

 

고두현 시인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생각하게 된다.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 여름 푸른 상처/ 온 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 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나는 체력을 잘 유지해 시를 외우는 백패킹을 할 수 있을까? 각 명소를 가는 데 필요한 체크 포인트, 여행지 정보, 교통편 등을 상세하게 전하는 저자의 꼼꼼함이 돋보이는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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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란 글자가 문제이다. 어제 인왕산을 순례하며 왕릉의 정자각에 대해 설왕설래한 것이 시초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정자각의 정은 정()이 아닌 정()이고 발음은 '정자'가 아닌 '정짜'라고 해야 맞다.

 

그런가 하면 궁정동 안가(安家) 터의 우물터로 추정되는 곳을 보며 우리는 궁정동이 궁정동(宮庭洞)이거나 궁정동(宮廷洞)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찾아 보니 궁정동(宮井洞)이었다.

 

주역에서 정(: 48번째)괘는 군자의 덕성을 상징한다. 우물이 맑고 차고 깨끗하여 누구에게나 유용해야 하듯 군자의 덕성도 맑고 깨끗하여 만인에게 항상 새로운 정신과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서대원 지음 주역 강의’ 511 페이지)

 

(: 50번째)괘는 안정을 상징한다. 서대원은 정()의 정신을 분배의 도와 균형의 정신이라 말한다.(‘주역 강의’ 523 페이지)

 

지난 주 최초의 유토피아 조선의 강사는 정동(貞洞)이 왜 정동이냐 물었다. 답은 태조 이성계(왕위 등극 후 이단李旦으로 개명)의 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貞陵)이 있었던 곳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사는 이성계가 강씨를 처음 만난 곳인 우물의 사연이 담겨 정()이 아닌가, 하는 확인 불명의 말을 했다. 정릉(靖陵)도 이야기거리이다. 편안할 정자를 쓰는 중종의 능은 편안함과 정반대였다. 홀로 묻히고 도굴당하고 침수까지 된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능 조성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세상을 다 아는 듯 날치는 풍수 전문가들을 보면 넌센스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풍수란 것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된 구실이자 명분이라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어떻든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유부단과 잔인함의 이중적 면모를 보이며 이복형인 연산군이 죽인 선비들보다 더 많은 선비들을 죽인 중종의 능에 편안할 정()자를 썼다는 점이다.

 

이는 아무래도 부당한 네이밍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정이란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문제이다.

 

우물이 있어서 정()자를 써 온정동이니 훈정동이니 하고 우물 정자를 닮아서 정간보(井間譜)라 하고 군자를 상징하기도 하는 정()이라 할 수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앞의 두 사례만 있다는 점이다.

 

지극히 상징적인 군자 = 의 사례가 반영된 이름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물론 이 사례 역시 우물의 현실적 면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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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산 시집의 저자는 한동안 시를 멀리한 적이 있었다는 말을 했다.

자서(自序) 형식의 이 글에서 시인은 그것(한동안 시를 멀리한 것)이 시에 대한 배려였으나 이제는 그것을 버리지 못해 시집을 내놓게 되었다고 썼다.
나는 그가 꿈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시로부터 놓여나지 못한 것인지 생각한다. 어느 쪽이었을까?

요즘 내 관심을 끄는 것은 꿈이다. 세상의 사건들은 특정 주제에 맞춰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을 담은 책들이 질서롭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단편적이고 산발적이고 무질서한 사건들의 더미 속에서 의미를 찾아 펀집, 배열하기 때문이다.

나는 꿈과 관련된 주제들을 찾아 정리하고 싶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창의적 예술 작품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꿈, 무엇보다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며 시보다 더 시적(박지영 평론가/ 시인의 표현)인 꿈,

정신분석의 분석 대상인 꿈, 일상적인 시간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기에 의식의 시간의 지평을 벗어나 있는 무의식과 관계 있을 성 싶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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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철학을 공부한 폴 뒤 부셰(Paule du Bouchet: 1951 -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한 권인 ‘바흐 천상의 선율’의 저자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이 분을 남성인 줄 알았다.

이 책에서 부셰는 바흐(Bach)라는 말이 독일어로 시냇물을 뜻하지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보헤미아나 동유럽 여러 지역 방언으로 순회음악가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말을 했다.

아른슈타트 시대(1703 – 1707), 뮐하우젠 시대(1707 – 1708), 바이마르 시대(1708 – 1717), 괴텐 시대(1717 – 1723), 라이프치히 시대(1723 – 1750)로 나뉘는 바흐의 시대는 후원자에 따라 다른 성향의 음악이 작곡된 시기였다.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라이프치히 시대에 바흐는 시의회, 성토마스 학교 교장, 학교 부속 교회 성직자를 상관으로 모셔야 했기에 그 갈등 사이에서 탄핵, 감봉, 경고 등으로 무수한 고초를 겪었다.(서우석 지음 ‘물결 높던 날들의 연가’ 49, 50, 55 페이지)

라이프치히 시대 이전에 바흐는 1717년 종교 개혁 200주년 축하 공연에 가기 위해 자유를 달라고 했다가 빌헬름 대공의 노여움을 사 투옥당하기까지 했다.

어제 카페에서 바흐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바흐 음악의 정교한 수학적 질서를 이해하기 전에 그의 신산(辛酸)했던 삶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과 아름다운 음악의 확연한 대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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