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으로부터 지금껏 자신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만 해왔기에 그 벌로 너희 일곱 형제 모두 34세 이전에 죽을 것이란 말을 듣고 자란 키에르케고르는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정신불안증으로 우울한 인간이 되었다.

 

어떤 직업도 없이 부자 아버지에게 빌붙어 산 키에르케고르는 자기 기분대로 살며 열 살 연하의 레기네 올슨에 구애해 약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녀를 위해 그녀의 행복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치워주어야겠다. 근데 그게 대체 뭐지? 어머 그게 바로 나? 그런가? 나란 말인가? 그래 나다....”란 생각 끝에 결국 혼자서 멋대로 파혼을 단행한다.(가게야마 가츠히데 지음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 258 페이지)

 

키에르케고르, 참 어이없는 인간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레기네 올슨에게 마음이 간다. 키에르케고르의 이상(異常)보다 더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레기네 올슨의 상실(喪失), 분노 등이리라.

 

최근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를 낸 심리상담사 선안남 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만나서 눈 보며 대화를이란 기사이다.(20171122)

 

이 기사 중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상대방에 대한 좌절은 나의 환상에서 기인한다. 나의 어떤 결핍이 상대에게 환상을 품게 만들었는지 돌아보고 이별 후 충분한 애도를 통해 단단한 마음을 만들자.”

 

공감한다. 그런데 환상에 기반을 두지 않는 만남도 있는가?란 궁금증이 생긴다. 양자(兩者)의 환상이 엇비슷하면 성공 이별이 아닌 것 - 에 이르는가? 이래 저래 심리학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은,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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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
가게야마 가츠히데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철학은 어렵고 관념적인 학문이다. 학자들끼리 사용하는 어의(語義)도 다르고 학문 자체가 일상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을 규정하는 본질 차원의 깊이를 이해함으로써 얻게 되는 희열감은 크다. 그 때문인지 쉽고 재미 있는 책은 그 나름대로, 본격적인 무게로 쓴 책도 그 나름대로 선택되고 있다.

 

가게야마 가츠히데의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은 제목 그대로 쉽고 재미 있게 철학자들 28인의 핵심 사상을 설명한 책이다. 28인은 탈레스에서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베이컨, 데카르트, 칸트, 헤겔, 벤담, 존 스튜어트 밀, 키에르케고르, 니체,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프로이트를 거쳐 융에 이르는 분들이다.

 

돋보이게도 왠만한 철학서에서 잘 접하기 어려운 지식들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책이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이다. 이는 각 철학자들을 짧게 핵심을 골라 설명해야 하는 부담감이 작용한 결과이다.

 

가령 우리에게는 선천적으로 경험론적 능력인 감성(感性)과 합리론적인 능력인 오성(悟性)이 있다. 감성이 감각적으로 소재의 상황을 인식한 것을 오성이 분석, 판단한 뒤 이론이성이 양쪽을 정리해 인식으로 연결시킨다.

 

칸트 철학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론이성에는 한계가 있다. 감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 가능하다. 이 부분은 야스퍼스의 포괄자 개념으로 이어진다.(296 페이지) 한계상황은 과학만능의 시대에서 포괄자의 존재를 잊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포괄자를 생각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칸트가 말한 것처럼 과학적인 인식이 감성 오성의 상호작용으로 성립하는 이상 먼저 감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초경험적 세계까지 포함한 세계의 전체상을 과학의 힘으로는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괄자란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존재이다.(292 페이지)

 

여러 철학자들 가운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질적) 조합은 많은 곳에서 의미 있게 이어진다. 그리스도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만남은 위험하다.(128 페이지) 플라톤 철학이 천상의 본질인 이데아를 중시하기에 교회적으로 신과 동의어인 까닭에 교회 입장에서는 반가운 상황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본질은 개체에 내재해 있기에 연구자가 본질을 연구하다 보면 어느 사이 개체에 대한 흥미로 바뀌기 쉽다.

 

여기서 보편 논쟁이 있게 되었다. 형상이나 이데아 즉 사물의 본질을 의미하는 보편은 실재하는가 이름만인가, 하는 논쟁이 보편 논쟁이다. 개개의 사물이 보편을 복사했다고 요약할 수 있는 플라톤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이 안셀무스이고 보편과 본질은 존재하지 않을 뿐 부르기만 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이 로스켈리누스와 오컴의 울리엄이다.(129 페이지)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재적 위치에 섰다. 그는 보편은 신의 지성에 있어서는 사물에 앞서 실존하지만 세계 속에서는 사물 속에 실존한다고 정리했다. 개별 철학자들을 논하지만 이어지는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의 또 다른 특징은 시대 배경을 잘 반영했다는 점이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편에서 이런 부분이 논의되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주의인데 정신적인 쾌락을 의미하고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를 부르짖었는데 이들은 모두 마케도니아 왕국에 의해 도시 국가가 붕괴된 시대의 삶의 방식이다.(90 페이지)

 

저자는 입시학원 강사로 현장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가볍고 거친 말투도 그대로 게재했다고 말한다.(15 페이지) 그런 점을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키에르케고르편을 보자. “어설프게 진지하고 불성실한 인간은 태연하게 나는 직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나는 신념을 굽힐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담고 스스로 쓰레기더미 속에 떨어진다.”(264 페이지)

 

이 부분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이 글을 쓰다가 때려주고 싶었다.” 키에르케고르는 부친으로부터 지금껏 자신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만 해왔기에 그 벌로 너희 일곱 형제는 모두 34세 이전에 죽을 것이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자랐다.

 

다행히 살아남은 키에르케고르는 정신불안증으로 우울한 인간이 되었다. 아무 직업도 없이 부자 아버지에게 빌붙어 산 키에르케고르는 자기 기분대로 살며 열살 연하의 레기네 올슨을 마음대로 이기적으로 대하고 구애한 끝에 3년만에 약혼에 이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녀를 위해 그녀의 행복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치워주어야겠다. 근데 그게 대체 뭐지? 어머 그게 바로 나? 그런가? 나란 말인가? 그래 나다....”란 생각 끝에 결국 혼자서 멋대로 파혼을 단행한다.(258 페이지)

 

저자의 예리함은 여기서 빛난다. “왜 키에르케고르처럼 자기를 좋아하는 이기주의자가 레기네의 행복을 생각했지?” 저자는 키에르케고르를 어설프게 진지하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정의한다.(263 페이지) 재미 있고 역동적이고 효용까지 있는 저자의 내공을 만끽할 수 있는 책으로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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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판단력 비판‘ 등의 책을 읽으시는 마루님께 자극을 받았다.

힘을 내고 다시금 나를 추동할 계기를 얻은 것이다. 그 감사함에 나는 희유(稀有)하십니다란 댓글을 달았다.

요즘 글이 지지부진하다. 이유는 하나다. 읽기가 변변치 않아서이다.

절대량이 부족하고 그나마 쉽고 편한 것만 읽었을 뿐이다.

쉽고 편한 글을 계속 읽는 것은 동어반복(tautology)의 늪에 빠지는 것과 같다.

읽기가 변변하지 못한 것은 삶이 지치고 힘들고 바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짧게 깎은 머리 때문에 귀 위에 여분의 펜을 둘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밑줄을 그것도 두 가지 이상의 색으로 긋는 나에게 귀 위에 여분의 펜을 두지 못하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펜을 주머니에 넣었다 빼곤 하는 번거로움이 문제였다.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을 진인사대천명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론서를 읽어야겠다. 어렵게 씨름하고 고투해야 인식능력이 자라고 세상을 보는 눈이 성숙해질 것이다.

시험공부가 진정한 공부의 알리바이이듯 쉬운 책 읽기는 의미로운 공부의 알리바이이다.

6월 이상의 지옥 레이스가 될 7월이 오히려 의지를 불사르게 한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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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시인의 생인손을 읽는다. 시인은 기본적으로 아픔에 민감한 사람들이지만 김승희 시인은 유독 아픔에 민감하다.

 

시계풀의 편지 4’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여, 나는 그대의 하얀 손발에 박힌/ 못을 빼주고 싶다/ 그러나// 못박힌 사람은 못박힌 사람에게로/ 갈 수가 없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시인의 의도가 가닿는 곳은 아픔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는 지점임을 알 수 있다.

 

찬바람 속에서 고독에 닿아 있는 쓸쓸한 힘을 나는 아직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너를 만나고 싶다’ 127 페이지)는 분이기에... ‘생인손에서도 아픔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는 구조가 감지된다.

 

시인은 손가락 하나를 앓으면서부터/ 다른 것들은 다 배경으로 물러선다./ 시퍼렇게 파도를 몰고 달려오는/ 한 고통의 기세등등, 의기양양 아래/ 세상에는 당신밖에 보이지 않고/ 다른 생의 가치들은, 뼈들이 녹는 비누의 시간이란 말을 한다.

 

배경으로 물러선다는 말은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경(前景)과 배경(背景)의 관계를 염두에 둔 표현이리라. 시인은 생인손도 아프지만/ 하나의 고통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지배하는 것은 더 무섭다며 당신을 자신의 생인손으로 규정한다.

 

생인손도 아프지만/ 하나의 고통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지배하는 것은 더 무서워,// 그렇게 당신은 나의 생인손이다마음에 동병상련의 누군가를 담아두는 일, 그것 역시 사랑이리라. 생인손의 다른 말, 동병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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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명상 태극권 사범, 심신수련 단전호흡 사범과 각각 짧은 10분씩의 통화를 했다. 인상적이었던 분은 심신수련 단전호흡 강사이다. 이 분은 초면(첫 통화)인 나에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님께는 단전호흡이 딱 맞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과 내가인지 프로그램과 내가인지 모르겠지만 인연이란 단어까지 사용했다. 이 사범은 건강과 명상과 심리상담, 치유명상, 위빠사나, 사마타 등의 다양한 분야의 강사 자격증을 가진 분이어서 허튼 말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인연이란 말에 현혹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는 명상 태극권과 심신수련 단전호흡 가운데 인연이란 말이 나온 심신수련 단전호흡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쩌면 나는 건강과 명상 등 다양한 자격증을 가진 사범으로부터 영적(靈的)인 기대를 갖고 그 프로그램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명상 태극권 사범과 심신수련 단전호흡 사범의 반응에는 차이가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선생님, 이번 시즌 후 계속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을 지도하시는 거죠?' 라 물었을 때 전자는 '' 정도의 말을 했고 후자는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란 말을 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나를 지배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상투적인 다짐을 또 하지는 않겠다. 프로그램 시작일인 711일이 기다려진다. 장장 6개월의 시간을 거친 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맞을 것이다. 시작일까지 몸을 잘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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