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박은영 교수의 '풍경으로 본 동아시아 정원의 미'를 펼쳐 들었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선비가 관직에서 물러나 칩거하면 은둔이고 세속을 멀리해 별서(別墅)를 짓고 살면 복거(卜居)라 한다."(203 페이지)

 

이 글은 "그들(유가; 儒家)은 항상 출처(出處)를 반복한다. ()이란 상황이 좋아서 공적 생활로 나아가 활동하는 경우이고 처()란 상황이 나빠 자연으로 돌아와 은둔하는 생활이다."('의 아포리아를 넘어서' 262 페이지)란 글을 연상하게 하지만 내 관심은 복()의 의미에 더 쏠린다.

 

복거는 살만한 곳을 가려서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점 복자일까? 점을 쳐서 살 곳을 정한다는 것일까? 점거(占據), 점령(占領) 등의 점은 점(fortunetelling)과 관계가 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프랑스와즈 돌토는 '정신분석학의 위협 앞에 선 기독교 신앙'이란 책에서 언제나 똑같은 반죽을 가지고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드는 것에 비유되는 것 즉 똑같은 것만 생각하고 잘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는 태도를 신앙의 부족으로 정의했다.(다산글방 출간 책 39 페이지)

 

돌토가 강조하는 것은 불확실한 것을 믿는 것이다. 점 역시 불확실한 것을 수용하는 믿음과 관계 있다. 이것이 내가 신앙을 폄하(貶下; 깎아내림)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드러내려는 점의 진면모(眞面貌;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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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말 - 불통의 시대, 나의 말과 몸짓이 너에게 건너가기 위해 이종건의 생활+세계 짓기 시리즈 4
이종건 지음 / 궁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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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은 특이한 위상을 점하는 저술가이다. 이는 건축평단이란 건축 비평지를 창간, 주간 및 편집인 역할을 하고 있고 건축 비평서와 건축 관련 소설을 쓴 이력에 기인하는 진술이다.

 

생활 + 세계 짓기 시리즈로 시적 공간살아 있는 시간등을 상재(上梓)한 바 있는 저자가 이번에 내놓은 책은 영혼의 말이다.(2018712일 출간) 저자는 비판적 이성에 정초(定礎)해야 마땅한 학인(學人)들마저 합리적 대화를 하지 못하는 현실을 우려한다.

 

부제(部題)불통의 시대, 나의 말과 몸짓이 너에게 건너가기 위해인 이 책은 저자의 다방면의 읽기가 추동한 결과물이다. 특히 영화, 소설 등이 눈에 띈다. ‘사울의 아들’, ‘언노운 걸’,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등의 영화와 로베르트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 학교’,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등의 소설이 그것이다.

 

이 책은 예술을 통해 세상의 조화, 바람직한 변천(變遷)을 모색, 궁구(窮究)하는 책이다. 저자에게 예술은 마음을 일렁거리게 해 의미를 붙잡게 하는 것이다.(15 페이지) 저자는 예술을 포함한 소위 문화라 불리는 것(개인의) 어두운 내면을 밝은 사회적 공간에 끄집어 내어 표현하는 것이라 설명한다.(50, 51 페이지)

 

저자는 이 행위(어두운 내면을 밝은 사회적 공간에 끄집어 내어 표현하는 것)를 승화라 표현한다.(51 페이지) 거기에는 친구와 말이나 글로써 주고 받는 행위도 포함된다. 이 부분에서 생각할 사람이 카프카이다.

 

카프카는 펠리스 바우어란 여성과 오랜 세월 편지를 주고 받았다. 카프카는 편지를 통해 문학은 자신에게 삶의 전부라는 점을 거듭 부각시켰다. 하지만 바우어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카프카는 바우어에게 오전에 편지를 쓰고 오후에 또 편지를 쓰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약혼과 파혼을 반복하다가 결국 파혼을 하고 만다. 물론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던 카프카도 파혼으로 끝난 관계에 충격을 받았다. 카프카는 가정보다 문학 및 글쓰기를 우선시한 데다가 신체적 나약과 우울 및 불안 등으로 결혼 생활을 원만히 이끌어갈 자신을 갖지 못했다.

 

저자는 오직 진리만 추구해야 할 과학과 인문학마저 경제적 유용성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된 현실을 우려한다.(20 페이지) 인상적인 문제의식은 상처를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이란 글을 통해 드러난다.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주인공 크라우스는 아주 미미한 존재, 하찮은 존재, 아무 것도 아닌 영()의 존재,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않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존재, 세상과 사람에 대해 어떤 욕심도 품지 않는 존재다.

 

귀족 태생의 소년이 가장 작은 존재, 가장 미미한 존재가 되기 위해 하인 양성학교에 스스로 찾아간다는 반() 영웅적 이야기인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성장과 발전으로 대변되는 서양 근대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문제작으로 평가를 받는다.

 

반면 사울의 아들이란 영화의 사울은 크라우스와 대극(對極)을 이루는 존재이다. “그는 모든 위험을 기꺼이 끌어안은 채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위해 사력을 다한다. 아우슈비츠에 감금된 유대인 사울은 지옥의 상황에서도 오직 죽은 아들의 존엄한 장례를 치르는 데 혼신을 바친다.”(29 페이지)

 

사울의 원형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주인공 안티고네이다. ‘언노운 걸의 의사 제나도 어떤 불확실성과 위험도 무릅쓰고 자신이 마땅하다 여기는 윤리적 책임을 끝까지 떠맡는다.(31 페이지)

 

사울도 제나도 책임(responsibility)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책임의 영어 responsibility는 응답할 수 있음(ability to respond)을 의미한다. 저자는 죽은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살아 있는 자마저 응답하고 약속할 대상이 아닌 생산과 이익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불편한 진실을 우려한다.(32 페이지)

 

크라우스와 사울/ 제나가 대비되듯 영어 단어가 이런 대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는 이성적 믿음을 의미하는 belief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적 믿음 또는 가() 믿음인 alief이다. 소크라테스의 향연(饗宴)’에 의하면 욕망과 사랑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인간이 현재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결핍하고 있는 사물들이나 특질들이다.(46 페이지)

 

향연의 진술은 우리는 무의식 속에 간직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환상을 사랑하며 행복과 불행 모두를 주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애도한다는 정신분석가 장 다비드 나지오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사랑은 왜 아플까참고)

 

인간은 비현실적인 것에 이끌린다. 상상이든 환상이든 거기서 얻는 느낌이 즐거울 뿐 아니라 느낌 자체가 생생하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다.(48 페이지) 저자는 쾌락원칙이 현실원칙에 의해 철저히 거부되기에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것에 끌린다고 본다.

 

저자는 남자는 헤밍웨이의 질문인 소유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마주치고 여자는 셰익스피어의 질문인 존재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마주친다고 말한다.(6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남자는 파트너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을 불안해 하고 여자는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을 불안해 한다.

 

사랑과 섹스는 서로 얽혀 있어 구분하기 어렵다. 저자는 진정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관계가 진정한 친구 관계인가, 란 물음에 대한 답이다. 저자에 의하면 친구야말로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용한 존재이다. 홀로 사는 일은 외로운데 우정은 사랑처럼 불안정(volatile)하지 않고 연인 관계보다 훨씬 자유롭다.(83 페이지)

 

관건은 친구에게 우정 이상의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치명적이다.(87 페이지)

 

저자는 영혼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음은 사상이 아니라 사상들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긴장 속에서 그것들을 균형적으로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교양 곧 문명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94 페이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이런 감동적인 말을 했다. “우리가 알아온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은 패배를 알고 고통을 알고 애씀을 알고 그럼으로써 그 깊이들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발견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연민, 온화함, 깊은 사랑의 염려로 채우는, 삶에 대한 감사, 감수성, 이해를 품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102 페이지)

 

로베르트 무질은 영혼이란 구멍은 균형 잡힌 사상과 교양으로 잘 메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그렇기에 우리의 영혼을 잘 지으려면 자유와 평등, 사랑과 정의, 아름다움과 추함, 쾌락과 고통, 다원주의와 일원론, 진보와 보수 등 대립을 이루는 양극을 함께 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105 페이지)

 

죽은 시인의 사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가 아름다워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원이기에 읽고 쓰는 것이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

 

이 말을 전하며 저자는 홀로 있음의 고통(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다른 이와 함께 있는 것은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상태를 위한 치료약이지만 그것은 결코 건강하지 않은바 홀로 있든 함께 있든 자신의 영혼과 일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한다.(107 페이지)

 

저자는 현실을 지배하는 힘에 감히 맞서는 말이, 깊은 성찰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이 우리의 영혼을 건드린다고 말한다. 저자는 어떤 삶도 언어를 넘치고 언어는 대개 적시(適時)를 놓친다고 말한다.(120 페이지)

 

친구와 말이나 글로써 주고 받는 행위도 승화로 본(51 페이지) 저자는 자신과 소리 없이 말을 주고받는 글쓰기의 놀라운 치유 능력을 언급한다.(120 페이지) 승화와 치유이지만 승화 자체가 바람직한 방어기제이다.

 

저자는 인생은 이야기인 바 이야기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닌 동물적 생존이라 말하는 저자는 이야기할 입이 없고 들을 귀가 없고 남길 이야기가 없고 이야기를 남길 세상이 없는 것은 인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덧붙인다.(121 페이지)

 

여기서 허수경의 바다가란 시를 보자.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인가 두고 왔네//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 두고 왔네

 

손과 눈이 없는 것 다음에 마지막으로 혀가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시가 실린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에는 몽골리안 텐트라는 시도 있다.

 

앞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숨죽여 기다린다// 숨죽여, 이제 너에게마저/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척을 내지 않을 것이다..” 기척조차 내지 않을 것이란 구절이 아프게 읽힌다. 시집이 나온 시기에 시인이 처했던 상황이 짐작된다.

 

저자는 너의 가슴을 건드리고 너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나의 말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 나의 모든 몸짓은 나의 가슴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나와 너 사이의 측량 불가능한 간극을 건너가지 못한다고 말한다.(131 페이지)

 

저자는 교양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133 페이지) 이것이 잘 이루어져야 영혼에 핵심적이 될 수 있다. 철학, 도덕, 예술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김춘수 시인의 을 음미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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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미모를 자랑하지 않으며 향기를 뽐내지도 않는다./ 다른 누가 어떤 평가를 하든 말든 아무 말이 없다./ 누가 자신의 생을 꺾더라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시는 이인주(Bernard Lee)님의 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이다. 순수한 마음이 잘 표현된 쉽고 간결한 시이다. 그러나 나는 이 시를 우주의 실상이 반영된 시가 아닌 지은이의 의도가 투사된 작품으로 읽는다.

 

시인은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라 하네란 시를 쓴 나옹 선사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꽃의 말 없음은 생각 없음이 아니고 아픔 없음이 아니리라.

 

꽃들은 벌,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갖은 술수 부리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꽃들은 아름답다. 아니 그렇기에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옹이 선승(禪僧)이었듯 이인주 님이 성직자(카톨릭 신부)인 것이 눈에 띈다.

 

다음의 시를 보자.

 

명사십리 모래알이 많고 많아도/ 제 몸 태우면서 존재하는/ 저 별의 수보다 많으랴// 백 년 전 혹은 천 년 전에도/ 저절로 피어난 꽃이 있었겠나// 뜻 없이 죽어간 나비가 있었겠나// 너도 나도 그래,/ 살고 싶어서 태어난 것/ 살아 보려고 지금 앓고 있는 중이지.”

 

이승하 시인의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이다. 저절로 피어난 꽃이 없듯 뜻 없이 죽어간 나비 역시 없었다는 데에 시인의 의도가 있다. 그래서 생명은 아프다.

 

이인주 신부의 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의 마음으로 살다가 이승하 시인의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를 읽으며 누구나 아플 때가 있음을 되새기자. 그래서 위로를 얻자. 그러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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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덫‘이란 소설을 쓴 이종건은 조지아 공대 건축 대학에서 역사/ 이론/ 비평 전공으로 박사가 된 사람이다.

몆 귄의 건축비평서를 쓴 그의 최신작인 ‘영혼의 말‘은 존재함에 따라 타인에게 줄 수 밖에 없는 상처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을 다룬 책이다.

하나는 최소로 존재함으로써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기꺼이 상처를 껴안음으로써 최대로 존재하는 길이다.

전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음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로버트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 학교‘의 주인공 크라우스는 이런 인물의 전형이다.

이종건에 의하면 크라우스는 진정한 신의 작품이며 무(無)이며 하인이다.

그런데 신의 작품이나 무는 그렇다 해도 그는 왜 하필 하인인가?

크라우스는 사람과 세상에 대해 어떤 욕심도 품지 않는 존재다.

이 부분에서 나는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란 말을 생각한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의 주인공 요제프 크네히트를 생각한다.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란 질량이 미미한 소립자인 중성미자(neutrino)를 이르는 말이다.

요제프 크네히트에서 크네히트란 하인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론 크라우스는 어떤 욕심도 품지 않기에 무엇도 그를 공략할 수 없는 바위 같은 존재다.

그러니 무, 하인이란 말은 역설적이기만 한 표현이다.

어제 나는 조용미 시인의 ‘물의 점령‘이란 시를 인용하며 이 시를 욕망의 넘침과 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반영된 시로 읽었다.

˝이 생을 조금만 더 사랑하기 위해˝란 표현 때문이다.

이제 내 읽기는 어디로 가게 될까? 이종건의 ‘영혼의 말‘을 다 읽고 그의 다른 작품인 ‘건축 없는 국가(건축비평서)‘와 ‘건축의 덫(소설)‘을 읽게 될 것이다.

행복한 시간들이 되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해(읽어)야 할 것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행복한 고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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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를 숨쉬게 해주는 것은 심리학 책들이다. 이런 현상은 특별하다. 지금보다 더 힘들고 어려웠을 때도 잘 읽지 않던 심리학 책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마음 이전에 나의 마음조차 모른 채 오래 살았고 2002년 알게 된 위빠사나 수행으로 마음 보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만 삶에서 늘 격랑 같은 상황에 휩쓸려 나를 지키지 못했다.

 

심리학 책들을 보면 상처, 아픔 등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내 주위에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만 있는지 나만 예민하고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심리학 책들을 잘 읽지 않았던 이유들 중 하나는 아픈 기억들을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심리학 책들을 잘 안 읽었다고 말했지만 서평 사이트를 보니 50권 이상을 읽었다. 서평을 쓰지 못했지만 미리암 그린스팬의 감정 공부우리 속에 숨어 있는 힘은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심리학 책들이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여성신문을 보다가 알게 된 저자가 황선미 심리학자이다. ‘나도 내 감정과 친해지고 싶다’, ‘받아들이면 알게 되는 것들등 그의 저술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감정은 다양하고 사람마다 다르며, 슬픔은 우울의 여러 다른 모습들이란 가르침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서 사는, 주인공이자 주변인인 역설적 존재들이란 점도 그렇다.

 

이흥표 교수는 우리는 남을 원망하는 편집증과 자신을 원망하는 우울증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이흥표 교수는 우울(憂鬱)이 우울이기를 거두고 투사(投射)가 투사이기를 거두고 정당성을 확보하는 순간이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두려움과 불안, 분노, 상실감을 직면해 자기 것으로 거두어 들일 때란 말을 한다.(‘심리학의 다섯 가지 질문’ 273 페이지)

 

조롱하지 말고 비탄하지 말고 저주하지 말고 단지 이해하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흥표 교수가 제시한 바에 따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길을 반성하고 선택하며 책임지는 것, 단지 회의(懷疑)하는 것 등이다.(‘심리학의 다섯 가지 질문’ 291 페이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정동(情動)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권명아 교수의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을 다시 읽고 브라이언 마수미 등이 쓴 정동 이론을 읽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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