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진을 보며 한여름 극심한 폭염을 이겨보려고 앨범을 뒤지다가 눈내린 한양도성 혜화 구간을 순회하며 찍은 2016년 12월 말의 수업 사진을 어렵게 발견, 단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뭘 잘못 만졌는지 키보드가 영어로만 입력할 수 있게 되어 서툰 영어로 설명을 해야 했다.

그 사진은 함께 수업한 우리 모두가 알지만 게시자의 입장에서는 왜 올렸는지에 대해서 밝히는 것이 순리였다.

이 사진이 우리의 좋은 겨울을 생각나게 한다, 한국어 키보드가 작동하지 않는다, 죄송하다 정도의 말을 영어로 썼지만 결국 언어의 한계가 곧 사유의 한계임을 실감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 후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키보드를 복구하고 충분한 전후 사정을 우리 말로 게시하고 나자 속이 후련했다.

외국의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런 글을 본 생각이 난다. I write better than I Speak. 말하는 것보다 더 잘 쓴다는 말인데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하기 만큼 쓰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니 말하기 만큼 쓰기도 쉽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쓰기는 참 더딘 과정이지만 바로 바로 고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말 대신 글을 쓰면 문법을 지키고 주술관계를 맞추는 등 비문을 쓰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하고 그것이 쓰기를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 일급 작가들의 비문들을 예시해 바르게 고친 박찬영의 책을 보고 명문 쓰기는 고사하고 비문 쓰기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글을 쓰고 또 쓰면서 바르게, 간결하게 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저절로 어법에 맞는 말을 하게 된다.

물론 내용도 충실해야 하지만 둘 다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책 읽기임을 생각한다면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한다는 말 외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내 카카오스토리를 보고 내가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는다는 말을 하는 분이 있고 특별하다, 호기심을 갖게 한다는 말을 하는 분이 있지만 다독이나 특별함이 해결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본은 여전히 책이다. 엄청나게 읽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인 사람이 되는 것, 일상 가운데서 특별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잘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꿈이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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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슬프고 우울하고 아픈 일들로 넘치니 페북 역시 그러할 수 밖에.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들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

최윤 작가의 ‘회색 눈사람‘의 마지막 문장을 음미하게 된다.

이 구절에 가려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 문장 앞에 이런 구절들이 있다.

˝이번 겨울에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 비어 있는 들판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볼까. 며칠 전에 지구를 뜬 그녀의 별에 전파가 닿게끔 머리에 긴 가지로 안테나도 꽃고..그러나 사람이 죽은 다음에 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작가의 말대로 사람은 죽어 별이 되는 것은 아니고 상처와도 같은 빛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겠는지.
당연히 빛 같은 존재가 아니어도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고 과제이고 당위이리라. 가슴 아픈 이별(자살)이 더 이상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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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재미 탐구‘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마이클 폴리(Michael Foley) 책의 원제는 ’Isn‘t This Fun?‘이다. ’이것 재미 있지 않아?‘ 정도의 의미이다.

사실 공자의 ’논어’에서도 재미는 언급되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않은가란 말이 그것이다.

즐기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낙자생존(樂者生存)‘이란 모토를 제시한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Pleasurable Kingdom)‘이란 책도 얼핏 생각난다.

최근 글이 흥미롭다는 평을 들은 내게 특별히 관심이 가는 책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본격 재미 탐구‘는 인간을 중심에 놓은 책이고,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은 동물들을 중심에 놓은 책이라는 점이다.

평소 글을 재미 없게 쓴다는 생각을 하는 내게 컨텐츠가 흥미롭다는 평이 내려진 것은 반갑고 기쁜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재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다만 새로운 것 또는 상투적이지 않은 것들을 충분히 배치하는 것이 글이 재미있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는 한 요인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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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이) (포처럼) (내리) 찌는(=쬐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푹푹 찌는 날들이 아니라 폭폭(暴瀑) 찌는 날들이다. 정말이지 밤새도록 찌고 새벽부터 찐다. 김수영 시인의 '폭포'를 읽는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의 이미지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생생하다. 묘사 시의 대표격이다.

 

김수영 시인의 어법대로 표현하면 햇볕은 무서운 기색도 없이 우리 머리 위를 수직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된다. 묘사가 시각적이라면 진술은 청각적이다. 묘사하지 않는다면 즉 은유를 쓰지 않는다면 햇볕은 햇볕 햇볕은 햇볕 식의 말을 해야 하리라.

 

이 경우 바다에서 보이는 일몰을 해가 끓어넘치는 금속의 대양 속에 닻을 내린 것으로 묘사한 카뮈 '이방인'(이정서 번역 '이방인' 85 페이지)과 같은 서정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철학적인 과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우리는 집을 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는 집이 아니라 색, , 그림자 등의 빛만을 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138 페이지)

 

피셔는 곰브리치가 "우리는 사물을 더이상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을 개별적인 형태로부터 조립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모방이 아니라 조립이다."란 말을 했음을 언급한다.('84 페이지)

 

시 쓰는 평론가 이수명은 최근 나온 '표면의 시학'이란 시론집에서 "현대시는 내용과 관념으로 포커스를 맞추어나가기보다는 형식과 허사, 빈말들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했다.(66 페이지) 나도 햇볕은 햇볕이라는 빈말을 더했다. 다만 시가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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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려던 내 마음은 남자가 없는 세상에 도달하게 되었다. 남자 자체가 없는 세상, 늘 남자인 존재, 자신을 증명하려는 존재가 없는 그런 세상에..˝

페미니즘에 바탕을 둔 SF를 쓴 어슬러 르 귄이 ‘어둠의 왼손‘ 발간 40주년 기념 서문에 쓴 글이다.
만일이라는 가정법을 써서 현실이라 불리는 것들을 체계적으로 줄이거나 지우는 것을 ‘세계의 축소‘라 부른 프레드릭 제임슨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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