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게 민감한 마음‘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울프가 유일하게 질투심을 느꼈다는 뉴질랜드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일기‘라는 작품을 읽고 쓴 작품이다.

맨스필드는 5년의 고투(폐결핵) 끝에 육체적 건강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했다.

질병이 정신에서 온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영적 형제애를 추구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지와 바다와 태양과 그것의 경이로움들과 긴밀한 접촉을 통한 충만하고 성숙하며 살아 숨쉬는 삶으로 이끄는 힘을 건강이라 썼다.

질병 즉 건강 이상이 정신에서 오는 것이라는 맨스필드의 생각은 정서를 남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물론 수학적 자연을 창조하기 위한 도구로 보는 일본의 수학자 오카 기요시의 생각(‘수학자의 공부‘ 146 페이지)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정서가 학습을 지배하며 정서와 인지는 분리되지 않는다는 논의(하버드대 교육학과 커트 피셔 교수)를 떠올리게도 한다.

오카 기요시는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배우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리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토요일 나는 나를 겸손하다고 말한 분께 아, 저는 자랑도 많이 하고 아는 척도 많이 합니다라는(겸손하지 않습니다라는) 답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분은 내가 수행하는 수불석권의 자세 즉 쉼 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자세 자체를 겸손함의 증거로 보신 것 같다.

관건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서 나아가 내 이야기를 충분히 해야 의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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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준비하다가 옛 생각을 떠올렸다는 문장을 만났다. 이 문장은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재판을 준비한 사람도 나고 옛 생각을 떠올린 사람도 나이기 때문에 '옛 문장을 떠올렸다' 앞에 나는이라는 말을 생략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을 준비하다가 옛 생각이 떠올랐다는 문장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재판을 준비한 사람은 나고 떠오른 것은 옛 생각이기 때문 즉 주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목할 부분은 떠올렸다는 말은 타동사이고 떠올랐다는 말은 자동사라는 점이다.

 

자동사인 떠올랐다를 쓰려면 재판을 준비하는데 옛 생각이 떠올랐다고 하면 된다. 문제는 재판을 준비하다가 옛 생각이 떠올랐다는 문장은 이상한데 재판을 준비하는데 옛 생각이 떠올랐다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반대로 재판을 준비하는데 옛 생각을 떠올렸다는 말은 어떤가? 이 경우도 이상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왜 이상한지 모르겠다. 이 경우는 어떤 이가 재판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내가 옛 생각을 떠올렸다는 의미로 보아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재판을 준비하는 사람 즉 주어를 명기해야 하리라.(두서 없는 생각이리라 여겨지지만..) 해박한 분들의 조언을 바라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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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 ‘시인/ 평론가‘라 할까? 장석원 ‘평론가/ 시인‘이라 할까?

김수영 문학관에서 진행된 장석원 님의 ‘김수영 시의 난해와 감동‘이란 강의를 듣기 전 내가 한 생각이다.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오늘 강의에서 시인과 평론가의 면모 가운데 어떤 점이 두드러지는가에 따라 ‘시인/ 평론가‘라 할 수도 있고 ‘평론가/ 시인‘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늘 강의는 강연자의 김수영 체험기를 시작으로 철학자들의 김수영 선호 등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강연자는 논자들이 김수영 시에서 자신의 논의를 뒷받침해주는 부분만을 토막내 이용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고 강신주 철학자가 국문학을 전공한 자신들도 간파하지 못한 부분을 캐치해냈다는 점을 지적하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는 진솔한 이야기도 했다.

결론은 강연자가 시인과 평론가의 면모를 조화롭게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니 장석원 님이라 해야 옳다.

나는 ‘등나무‘란 시를 인접성의 관점으로 보라는 강연자의 말이 시를 환유적으로 보라는 것인가 물었고 김수영 시인이 읽었으리라 추정되는 논어나 주역을 참고하되 지적 재단이 아닌 감성을 활용한 공감의 시각으로 분석 대상인 김수영 시인의 시를 나누지 않고 전체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물었다.(두 물음 모두 긍정하는 답을 들었다.)

장석원 님의 평론집(‘김수영 시의 수사학‘)과 시집(‘역진화의 시작‘)을 읽어야겠다. 이 부분은 물론 미래 기약에 속하는 부분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강의 들은 두 분과 인사동에서 밥 먹고 술 마시고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다.

이 두 분은 지난 1월에서 4월 사이 종로 50 플러스 센터에서 함께 한 분들이다.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은 약 네 시간이었다.

헤어지는 악수를 청하는 두 분에게 나는 오늘 즐거웠습니다란 인사를 드렸다.

아, 참 식사중 나는 두 분 중 한 분에게 ˝제가 선생님 좋아하잖아요......˝란 말을 드렸고 이에 그분은 웃음으로 답하신 것이 하이라이트라 해야 할 것이다.

오늘 내가 한 즐거웠다는 말씀은 허언이 아니었다. 아니 심리상담사에게 하듯 깊은 내면의 말을 많이 한 날이었으니 의미 있는 날이었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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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숙(1918 - 1993) 작가 자료를 정리하다가 작가가 스물 일곱에 교통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아들 용기(1944- 1970)씨를 애통해 하며 쓴 소설 ‘우리 사이 모든 것이‘를 읽었다.

의학도였던 용기씨는 바쁜 시간 틈틈이 최선을 다해 첼로도 연주하며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기도 한 분이다.

그는 보케리니의 곡을 자주 연주했고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헨델의 수상 음악도 연주하곤 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래서 보케리니 곡도, 바흐 무반주 모음곡도 아프고 용기씨가 형에게 원거리 전화를 걸어 수화기에 대고 연주했다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더욱 아프다고 말한다.

작가는 시인 폴 발레리의 ‘풍부한 부재‘를 이즈음처럼 절감한 때는 없었다고 말한다.

˝너는 가고 없지만 너의 추억은 충만해 있˝고 ˝너는 무가 아니고 부재˝한다는 의미이다.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죽은 아들을 살리는 약을 찾아다닌 끝에 그것이 허망한 꿈임을 알아차린 야윈 고타미의 깨달음이 극적이고 은유적이라면 한무숙 작가의 것은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다.

˝너 까닭에 이 괴로움, 이 아픔을 갖지만 너는 태어나야 했고 많은 추억을 남겨주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슬픔과 아픔도 남겨야 했다.

그것은 섭리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신의 섭리에 간섭해서는 안되는 것이다.˝(‘우리 사이 모든 것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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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마천의 마음으로 읽는 사기‘란 신간에서 역사의 숲에 난 문학의 길 즉 사림문로(史林文路)란 말을 만났다.

저자는 자신을 역사의 숲에 난 문학의 길을 걷는 산책자라 소개했다.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 보니 이 단어는 이미 2006년 발간된 ‘거문고 줄 꽂아 놓고‘에도 소개되어 있다.

이 단어를 그간 나만 몰랐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우정들을 소개한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김상헌과 최명길의 우정이다.

주화파였던 최명길이 척화파였던 김상헌에게 끓는 물(척화)과 얼음(주화)은 결국 하나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책을 읽어 그 불편함의 진실을 더 알아보아야겠다.

사림문로도 그렇고 오늘 (페북에서) 접한 literary historian란 말도 그렇고 쉬운 것은 없는 듯 하다.
연암이 ‘열하일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 공자가 240년 간의 역사를 간추려서 ‘춘추‘라 하였으나 이 240년 동안 일어난 군사, 외교 등의 사적은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과 같은 잠깐 사이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미숙, 길진숙, 김풍기 등 엮고 옮긴 2008년 출간 그린비 버전 상권 226 페이지)

연암은 이 말을 하며 달리는 말 위에서 휙휙 스쳐가는 것들을 기록하노라니 하나의 옛날이나 오늘은 크게 눈 한 번 깜박하고 크게 숨 한 번 쉬는 사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니 나는 그 잠깐 사이의 일을 기록한 책에서마저 길을 잃곤 한다. 간추림의 미덕을 발휘하는 역사가들처럼 나는 훑어봄의 미덕을 발휘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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