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but dissertation...논문 말고 나머지는 다 한(논문만 쓰면 되는)..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한 이십 여년 전 김승희 시인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 방 하나 얻어드리고 싶은 간절함을 하늘 한 모금만 있으면 좋겠다는 시로 표현했지요..

70여 년 전에 타계한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픽션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 연 500파운드의 돈,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지요..

all but dissertation이든 하늘 한 모금이든 연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과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이든 모두 간절함의 표현일 것입니다..

아침 잠이 덜 깨 보조 배터리를 챙기지 않은 탓에 배터리의 하찮은 잔량을 눈치 보며 글을 쓰려니 발자크의 인간희극에 나오는 소원을 이루는 만큼 수명이 줄어드는 주인공 생각이 납니다..

지금 이 순간 저의 진실한 사변입니다.. so long..감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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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덜 깼기 때문인지 소요산 역 가는 버스에 책(오형엽 교수 지음 ‘문학과 수사학‘)을 놓고 내렸다.

집에서는 보조 배터리를 챙겨 나오지 않았다. 7시 40분에 내린 버스에서였으니 이른 시각이 아니지만 쌓인 피로 때문에 실수했다고 생각한다.
버스 회사에 전화해 승차 시간과 지점, 하차 시간과 지점 등을 알렸으나 12시 40분 현재 연락은 오지 않았다.

책이 흔하지만 한 권의 책도 잃어버리면 슬픈 이별을 한 듯 마음이 아프다. 세컨드 옵션으로 가방에 넣고 나온 책이 없었다면 어떻게 할 뻔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시장 접근성과 업체간 긴밀한 협력을 위해 노후한 골목에서 집적 경계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을지로 인쇄업소 부분에서 옛 생각 아니 옛 책 생각을 한다.

최윤 작가의 단편 ‘회색 눈사람‘이 그 책이다. 얼마 전 끝난 을지로의 인문 책쓰기 모임에서도 나는 ‘회색 눈사람‘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내용 소개는 생략. 분위기 좋은 소설이고 짧은 소설이지만 요약하기는 쉽지 않은 책...)

내 추억이라도 되는 듯.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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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많은 궁리가 보람도 없이 무성의하고 의례적인 결정으로 낙착되는 것이 글 제목 선정이다.

본문을 함축하는 짧고 핵심적인 제목을 짓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내용도 좋고 제목도 좋게 글(또는 책) 제목을 짓는 경우이다.

그래서 때때로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의 목차나 제목을 눈여겨본다.

한동안 읽지 않다가 요즘 문학평론집들을 다시 읽는다. 장석원, 조강석 평론가의 강의가 계기가 되었다.

장석원 교수의 강의는 지난 토요일 이미 들었고 조강석 교수의 강의는 이번 주 토요일 예정되어 있다.

관련 책을 찾다가 구입한 뒤 꽂아 두고만 있었던 오형엽 교수의 책 ‘문학과 수사학‘을 찾아냈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검색하니 이런 책들이 딸려 나왔다. ‘한국 모더니즘 시의 반복과 변주‘, ‘주름과 기억‘, ‘신체와 문체‘, ‘현대문학의 구조와 계보‘, ‘환상과 실재‘, ‘현대시의 지형과 맥락‘ 등이다.

공통점이 있다. 모두 A and B의 형식이라는 점이다. 지금 읽고 있는 ‘문학과 수사학‘까지 일곱 권 모두 같은 형식이다.

흥미롭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겠고 의도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

제목의 이런 형식적 통일성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관건은 좋은 내용이고 의미 있는 현실 연관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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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가 된 이래 내가 처음으로 해설한 곳인 종묘(宗廟)는 그 만큼 남다르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가 리움 미술관 초청으로 한국에 왔으나 실상 그는 종묘 정전(正殿) 그것도 일반 관람객이 없는 이른 시각에 자신의 일행만 입장하는 오롯한 시간의 종묘 정전 관람에 더 큰 관심을 가졌었다.

 

이 내용은 작고한 구본준 저자의 세상에서 가장 큰 집에서 보았다. 그 이후 종묘에 대한 일반적 컨텐츠 외에 게리의 사례 같은 내용을 플러스 하면 삼박한 해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희생(犧牲)과 궤식(饋食)처럼 대립(?)하는 두 사례의 비교에 더 관심을 두었다.

 

서울 스토리란 책에서 바로 그 종묘 관련 내용을 새롭게 접했다. 현재의 시() 개념과 유사하게 사용된 단어가 읍()이고 도읍(都邑)은 읍 중에서 대표적인 곳으로 도()와 읍()은 종묘의 유무에 따라 나뉘는 바 종묘가 있는 곳은 도읍, 없는 곳은 읍이다.

 

도읍에 성이 들어서면 도성(都城)이라 한다.(47 페이지) 내가 거행한 첫 해설지라는 이유 말고 내가 궁궐보다 종묘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의식 차원일 수도 있을까? 계속 공부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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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공부 - 완벽한 몰입을 통해 학문과 인생의 기쁨 발견하기
오카 기요시 지음, 정회성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수학자 오카 기요시(岡潔: おか きよし, 1901 1978)수학자의 공부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이성과 정서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알 수 있는 책이다. 1부 수학을 배우고 즐기는 삶, 2부 학문의 중심은 정서다, 3부 내가 사랑하는 예술로 이루어진 이 책은 곰에서 왕으로를 쓴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가 해제(解題)를 썼을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의 책이다.

 

자신을 단지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뿐이라 소개한 저자는 봄 들녘의 제비꽃은 제비꽃으로 피어 있으면 그 뿐이듯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말을 한다. 저자는 종교인이 겪음직한 집중과 깨달음의 순간을 몇 차례 경험했음을 밝힌다.

 

생각이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모이는 느낌이 들더니 점점 구체화하기 시작했다(22 페이지),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며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숲을 빠져나와 넓게 펼쳐진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생각이 한 방향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28 페이지), 밤에는 아이들과 함께 골짜기에서 반딧불이를 잡았다가 놓아주곤 했는데 그러는 사이 갑자기 어려운 문제가 저절로 풀렸다(29 페이지) 등이다.

 

저자는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연습이 학습의 근본이라 주장한다.(105 페이지) 저자는 에세이 작가로도 명성이 자자했던 프랑스의 대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수학적 발견 과정에 대해 썼을 뿐 기쁨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았음을 의아하다고 말하며 정서(情緖)가 깊을수록 경지(境地)가 넓어진다고 결론짓는다.

 

정서를 강조하는 저자의 지론은 책 전편을 통해 일관되게 제시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마쓰오 바쇼 등을 가장 사랑하는 문학가이자 예술가로 소개(190 페이지)하는 저자는 작가 소세키와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 등을 정서가 깊을수록 경지가 넓어진 사례로 설명한다.(30 페이지)

 

이 밖에 저자는 베토벤을 좋아하지만 그보다 슈만을 더 좋아해 그의 음악을 피히테의 철학에 견주어도 손색 없을 만큼 뛰어나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저자가 좋아하는 작가는 앙드레 지드, 도스토예프스키 등이다.(196 페이지) 좋아하는 화가는 고흐, 피에르 라프라드, 요코하마 다이칸 등이다.(196 페이지)

 

물리학과에 들어간 뒤 물리가 싫어져 수학과로 전과(轉科)(43 페이지)한 저자는 (이론) 물리학자를 소목장이에, 수학자를 씨 뿌려 곡식을 수확하는 농부에 비유한다.(83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물리학자가 다른 사람이 만든 재료를 조합하여 뚝딱 다른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수학자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사람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저자는 학문의 세계에서 어느 스승한테서 배우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47 페이지) 정서를 강조하고, 기쁨을 안 뒤 슬픔을 알게 된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에 걸맞게 문학, 예술 등에 남다른 조예를 드러낸다. 저자에게 수학은 매혹적인 바다이고 수학의 본질은 조화(調和)이다. 저자는 조화를 추구하는 예술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예술과 가까이 하면 아름다움의 조화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상에 앉아 책만 보고 공부하기보다는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마음으로 수학을 배우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말한다.(73 페이지) 여러 말이 인상적이지만 글쓰기와 관련해 참고할 말이 있다. 공식을 쓰면서 답을 구하기보다 머릿속에서 충분히 정리한 후 한 번에 써 내려가는 편이 좋다는 말이다.(77 페이지)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는 명암을 집필하던 중 세상을 떠난 소세키의 삶을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었다고 표현한다.(81 페이지..소세키는 50의 나이에 위장 건강 탓에 타계했다.) 선사(禪師)의 느낌이 드는 부분이다. 정서 중심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쉽게 부패한다(84 페이지)고 말하는 저자는 적절할 때 행하지 않는 선행은 선행이 아니라고 본 공자의 말을 인용하기까지 한다.(88 페이지)

 

저자의 독서 지론(持論)도 흥미롭다. 즉 책을 마구 읽는 것은 이곳저곳에 씨앗을 뿌리는 일과 비슷한 것으로 봄이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듯 이 시기에는 우리 마음 밭에도 생각의 씨앗을 뿌려두어야 한다는 것이다.(126 페이지) 인간론도 그렇다. 동물성이라는 나무에 인간성이라는 나무를 접붙여 생긴 나무가 인간이라는 것이다.(134 페이지) 저자는 동물성이라는 싹을 너무 빨리 성장시킨 결과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무자비해지고 잔인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137 페이지)

 

저자에게 정서란 남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자 수학적 자연을 창조하기 위한 도구이다.(146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공부의 핵심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158 페이지) 또한 하나를 듣고 암중모색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다.(164 페이지)

 

저자는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리 없기 때문에 배우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157 페이지) 저자는 요즘 소세키의 소설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자극적인 소설을 찾고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 추정하는 등 문학, 예술, 인문학론에 두루 능하다.

 

남성이 자신의 정서에 이는 파도를 가라앉히지 않은 채 여성을 바라보면 여성의 정서에 일렁이는 파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저자의 글도 흥미롭다.(199 페이지) 저자는 뉴턴이 입자로, 호이겐스가 파동으로 본 빛에 두 속성이 모두 있다고 말함으로써 논쟁을 마치게 한 루이 드 브로이를 예로 들며 문학에도 파동형과 입자형이 있다고 말한다.(213 페이지)

 

입자형은 직관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뜨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한편 프랑스 유학 시절 쥘리아 선생님께 수학에도 리듬(운율)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226 페이지)는 저자의 말은 최근 시의 리듬을 공부하려는 나에게 큰 단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해제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수학은 인간의 뇌에서 만들어지고 수학을 이루는 수와 논리는 인간의 신체를 매개 삼아 살아 간다고 설명한다.(233 페이지) 인간의 구체적 경험이 없었다면 수학도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정서라는 저자의 말에서 정서는 자본의 반대어이다. 요즘 보기 어려운 독특하고 따뜻하고 역동적이고 인간적인 수학자의 공부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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