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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ㅣ 인간 3부작 1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8년 11월
평점 :
임마누엘 칸트. 우리의 정조(正祖) 재임기(1776 - 1800)에 주요 철학서들을 쓴 독일의 철학자이다. 독일의 대학생들이 오히려 영어 번역본으로 읽는 철학자. 서울대 백종현 명예 교수가 쓴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칸트의 3대 비판서인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을 상세 분석, 설명한 책이다. 칸트는 최초의 직업 철학자이고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철학, 수학, 자연과학을 폭넓게 공부한 철학자이다.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50km 이상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40세 때인 1764년 사학 교수 자리를 제의받았으나 전공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한국인 누군가가 칸트의 독일어 저서를 읽는다면 그는 눈으로는 독일어를 읽지만 머릿속에서는 그 독일어에 상응하는 한국어를 찾아서 그 내용을 이해하기에 그것은 결국 한국 사상을 읽는 것이라는 말이다.(34 페이지)
우리의 어휘들이 대부분 일본에서 온 것들임도 주목할 이야기거리이다. 예술, 이성, 과학, 기술, 철학 등의 말이 니시 아마네(西 周: 1829 - 1897)가 만든(서양 개념에 상응하는 말을 고안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3대 구호를 자유, 평등, 박애로 번역한 사람이 나카에 조민과 고토쿠 슈스이다.(자유, 평등, 연대가 타당하다.)
일본 사람들이 서양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일 때 중국 문헌들 중 유사한 한자어를 찾아 번역어로 만들었다. 중국 사람들마저 자국어로 알고 큰 저항 없이 받아서 썼다.
칸트의 철학적 숙고 속에는 고대, 중세의 사상, 근대의 과학 사상이 두루 포함되어 있기에 그의 사상을 철학 사상사의 중앙 저수지라 부른다.(63 페이지) 칸트 이전에 모든 존재자를 존재하도록 하는 근본 원인, 신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칸트는 존재자 자체는 인간의 앎의 영역에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에게는 오직 인간 앞에 나타나 있는 것 곧 현상과 대상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했다.
칸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당연한 일이다. 신을 알 수 없다고 했으니. 칸트 철학의 원인은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순수이성비판),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실천이성비판),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판단력 비판) 등이다. 칸트 철학에서 순수한 이론 이성은 자연세계의 입법자이고, 순수한 실천 이성은 도덕 세계의 입법자이다.(80 페이지)
순전히 자력으로 법칙을 수립하는 원리의 능력을 순수이성이라 한다. 그러니 그것은 신에게나 해당하는 말이고 그런 까닭에 정확히 말하면 유사(類似) 순수 이성이다. 비판은 순수 이성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분간하는 것이다.(83 페이지)
순수 이성 비판은 순수 이성의 자기 한계 규정이다. 칸트는 자연과학 지식만이 엄밀한 의미에서 지식이라 보았다. 자연과학 외에는 지식이 아니다. 사변에서는 지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칸트는 인식의 형식을 감성의 형식과 지성의 형식으로 나누었다. 칸트에 의화면 어떤 것이 있다면 이는 공간과 시간상이라는 지평선 위에 있는 것이다. 신, 영혼 등은 공간과 시간상의 지평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칸트의 논의에서 그것들은 논의 대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칸트가 뉴턴 물리학을 철학적으로 설명했다고 하지만 칸트는 시공간을 관념(주관적인 것)이라 보았고 뉴턴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지성의 형식은 범주이다. 통각(通覺)이 허브(hub: 축)이면 범주는 스포크(spoke: 바큇살)이다. 통각은 의식의 통일작용을 말한다. 이 작용 없이는 우리는 자연 현상 세계에서 하나의 사물을 인식할 수도 없고 그 하나의 사물의 변화도 지각할 수 없다.(105 페이지)
칸트 철학의 한계를 말할 때가 되었다. 감각인상들이 잡다하게 주어지지만 그것들은 무엇인가가 우리 감성을 자극함으로써 생긴다. 이것이 통각의 통일의 상관자라 아닌가, 란 말을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의 곳곳에서 했다. 형식과 질료의 상관자로 초월적 주관과 초월적 대상을 대응시키지 않으면 칸트 인식론의 완결을 기대할 수 없다.(114 페이지) 내 생각이 감각 질료라면 그것을 체계화한 문서는 지식, 한글 프로그램은 인식 주관의 형식에 비유될 수 있다.(92 페이지)
실천 이성 비판과 상응하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이다.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는 도덕의 문제, 현실이 아닌 이성이나 이념에서 도출되는 문제이다. 저자가 예로 들었듯 인간은 누군가 배가 고파 밥을 훔치면 열흘 굶고 안 훔칠 사람이 있겠느냐는 옹호론까지 나온다.
인간 행동의 원인이나 이유를 끊임없이 경험적인 세계에서 찾는 것이다. 경험 세계 밖의 신, 영혼 등을 찾던 사람들이 이 경우에는 경험적인 세계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다.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 지식의 측면에서 감각을 넘어사는 세계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고, '실천이성 비판'을 통해서는 행위면애서 끊임없이 감각적인 요인으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지 말 것을 가르친 것이다.(145 페이지) 불교의 논리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유(有)를 이야기하니 집착하고 무(無)를 이야기하니 허무에 빠지는 사태를 경계해 나가르주나는 '중론(中論)'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있다 함은 상주(常住: 항상 존재함)에 집착하는 편견이고 없다 함은 다멸(斷滅: 끊어짐)에 집착하는 편견이다. 그러므너 지자(智者)는 유와 무에 의지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일지 스님은 공(空)을 무(無)가 아니고 모든 현상이 상호 연계된 상태에서 끊임없이 운동, 변화하는 존재의 성격을 가리킨다고 말한다.('중관불교와 유식불교' 75 페이지)
칸트는 도덕은 자연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신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 인간 이성에서 발원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지닌 이성의 힘이 자율성이다. 자율이란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의미를 통해 알 수 있듯 국가와 관련해 쓰이던 말이다.
칸트에게 의지는 선의지이다. 좋은 것을 하려 하는 것이다. 의지는 선의지이고 자유의지이다. 악한 의지는 무의지라 해야 한다. 칸트는 타자에 대해서는 행복하게 하고 나에 대해서는 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만이 의미 있다고 보았다. 결과를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선의지이다. 선의지는 어떤 행위를 오직 의무이기 때문에 하려는 의지이다. 조건 없이 하는 것이다. 이를 정언명령이라 한다.
최고선은 칸트적 이성의 세 번째 물음인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의 답이다. 칸트는 인간에게 허용될 수 있는 희망은 행실을 한 그 만큼 행복을 누림이라 말했다. 칸트는 인간의 마음씨가 도덕법칙과 항상적으로 합치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시간 길이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칸트는 영혼의 불사성을 요청한다. 칸트는 최고선의 실현을 위해서 신의 현존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사변한다.(184 페이지)
칸트는 현실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교회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기독교를 떠나지 않았다. 가난뱅이에다가 전형적인 훍수저였다. 촌구석에서 테어나 집안도 미천했다. 제대로 된 그림을 본 적도, 제대로 된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가 한 예술적 경험이라고는 쾨니히스베르크 지역 귀족집의 정원을 본 것이 고작이다. 학생 시절 칸트가 탁월했다는 증언은 없다. 호기심이 많고 성실했을 뿐이다.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교수 자리조차 45세가 되어서야 이룰 수 있었다. 63세에야 가난에서 벗어나 자기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미 결혼 적령기가 한참 넘어선 때였다. 그래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늘 아플락 말락 했지만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몸이 쇠약해 늘 골골했지만 섭생에 신경 써서 실제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 몸으로 칸트는 80세를 살았다.
칸트가 말하는 판단력 비판에서 판단력이란 반성적 판단력이다. 개념이란 자기 안에 서로 다른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표상이다.(208 페이지) 반성이란 서로 다른 것들이 있을 때 그것들을 어떤 공통점에서 볼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칸트에게서 미학(美學)은 미적인 것에 대한 학문이라기보다 에스테틱 즉 감각/ 미감에 대한 학문이다.
칸트는 사상가는 무엇보다 세월에서 많은 것을 깨우치고 앞에서 미처 못 본 것을 새롭게 보고 앞서 말한 것을 뒤집어 말하는 것이 정상이라 말했다. 만약 어떤 사상가가 수십 년에 걸쳐 수십 권의 저작으 펴내면서 일관된 서술이나 주장을 편다면 그는 엄밀히 말해 사상가로 보기 어렵고 기억 장치만 갖춘 기계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칸트의 철학적 물음은 늘 "어떻게 ~이 가능한가?"이다. 칸트에게 미적 쾌감은 욕구가 없었으나 무슨 목적이 달성된 것처럼 흡족한 느낌을 말한다. 상상력과 지성이 합일하는 데서 미적 판단, 미적 쾌감이 생긴다. 내가 이 장미가 빨갛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시간상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성의 개념과 감성의 소여를 결합하는 끈이 도식이다. 이 도식을 만드는 능력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지금, 지금, 지금이라는 잡다한 시간 표상을 하나의 연속체(quantum continuum)로 만든다.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의 연속체로 상상함으로써 시간 지평이 열리고 그 위에 사물들이 현상하니까 비로소 지성이 무엇인가를 인식하며 그 본질과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다.(227 페이지) 실천이성 비판까지의 칸트를 고전주의, 판단력 비판의 칸트는 낭만주의의 일원이다.(232 페이지) 실러 등은 칸트 책들에서 '판단력 비판'만을 책으로 쳤다.
1794년에 이르러 칸트는 실러를 인용하면서 젊디젊은 실러의 환심을 얻기 위해 변명까지 한다. 그 엄격했던 칸트가 아름다운 영혼이란 말을 한 것이다. 독일 이상주의자들의 칸트에 대한 최대의 불만은 하나의 이성을 두고 이론이성, 실천이성 등으로 나누어 세계를 자연 세계와 윤리 세계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233, 234 페이지)
칸트는 판단력을 이론이성과 실천이성, 지성과 이성을 잇는 다리로 보았다. 칸트는 지상에 세워진 천국을 간절히 바랐다. 칸트가 말하는 인간이란 세계 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관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칸트는 철저히 인간이 동물이라는 전제하에 인간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동물이기에 쾌락도 있고 숭고도 있다. 숭고하다는 것은 동물이라서 할 수 없는데도 무언가를 하니까 숭고한 것이다. 자기를 극복하니까 대단한 것이다. 인간은 동물이면서 자유를 가지고 있어 위대하다.
자연은 자유롭지 않다. 모두 필연적이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자연물이다. 인간의 일들도 필연적으로 일어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존재자의 관점에서 말하고 기독교는 신의 관점에서 말하니 객관주의 철학이다. 칸트는 나를 주체로 놓고 존재세계든 당위세계든 바라보니 주관주의 철학이다. 그러나 칸트에게 나는 나 일반을 지칭한다. 칸트에게 주관주의는 인간중심주의이다.
저자는 객관주의가 옳음을 주장하면서 손님 이야기는 들어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자기 주장만 줄곧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칸트는 사물 자체라는 말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했다. 말로는 신이 보기에라고 하면서 결국 너의 관점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명작을 추천한다. 음미하고 또 음미할 책, 재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